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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자리(마 23:1-23 대전-86강 이근호자유게시판마태복음

자리 (마 23:1-23 ) 대전-86강
이근호

2017년 3월 28일본문말씀: 마태복음 23장 1-23절

(마 23: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마 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마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마 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 23: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마 23: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마 23: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 23: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마 23:10)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마 23: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마태복음 23장1절부터 합니다. 마태복음 23장은 어느 구절로 유명 한가하면 23절‘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이 대목이 유명합니다. 이것은 뭐냐하면 십일조를 꼭 하라고 예수님께서 법으로 계속해서 시켰으니까 믿음도 챙겨야 되고 십일조도 해야 된다. 그래서 십일조 없는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을 반 토막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온전히 하려면 예수님 말씀도, 예수님도, 십자가 복음도 믿고 십일조도 필히 해야 된다라는 근거로 제시된 것이 마태복음 23장23절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런 내용이 아니라는 것은 마태복음 강해서 작은 권력이라는 책을 보면 나옵니다. 번역이 이런 게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 반대로 되어 있어요.

어떻게 되어 있냐 하면 의와 신과 인으로 이미 십일조에 관해 완료되었기 때문에 완료된 것을 모르고 있는 인간들은 계속해서 10%를 내고자 한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십일조 완성한 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계속(십일조) 내는 인간들을 용서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정 반대라니까요.

십일조를 내겠다는 말은 십일조를 어떻게 완성하느냐를 내가 분명히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무시 했다는 말이죠. 그건 그것이고 나는 십일조를 내겠습니다라는 자체가 이미 완성된 십일조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하시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쉽게 말해서 “십일조 하기만 해봐라! 내가 저주 할테니!” 이런 뜻이란 말이죠. 완전히 (우리가 아는 것과)반대이지요.

그러니까 교인들 가운데 공부 좀 해서 율법이 온 것은 우리 입을 막고 저주하러 오심이고 이젠 율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구원 받는다고 로마서에 그렇게 되어 있는데 왜 목사님은 다른 율법은 지키지 말라고 해놓고 왜 십일조는 지키라고 합니까? 라고 하면 그 논리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목사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그건 내가 알바 아니고 성경대로 한번 보라! 말이지요. 할 말 없지요!” 이런다고요. “성경대로 할 뿐이야!”

그것으로 유명한 구절로 (예수님이)누구에게 욕하고 있냐하면 바리새인을 향해 하고 계신 거에요. 23장이 1절부터 바리새인을 욕하는 구절입니다. 심지어 욕의 끝이 어느 것이냐 하면 33절 읽어 보세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그런데 마태복음 5장에 보면 바리새인보다 그 의가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고 되어 있는데 바리새인보다 그 의가 낫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말을 들으면 “야! 바리새인들은 좋겠네!” 얼추 따라 잡았다고 생각하잖아요.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것이 아니고 바리새인 노선 자체가 다른 호남선과 경부선처럼 노선 자체가 다르듯이 그 쪽 노선에서는 최고 오야봉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다 따라가는 거에요. 바리새인 법에, 주의 말씀을 들으라! 듣고 순종하는 이것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법을 주신 이유가 뭐냐 못 지켜서 주는 게 아니고 지킬 수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지킬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율법 주신 것을 우리가 허투루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리새인의 주장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뭐냐하면 구약의 율법과 지시와 명령들은 우리가 어디서 잘못 됐는가를 이미 구원이 확보된 상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이미 죽은 자로 그리스도의 의로 새로이 산 사람으로서 율법을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제가 이번 주 주일 낮 설교에서 다시 합니다.

23장은 1절부터 바리새인을 욕하는 겁니다. 욕 할 만하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악마의 자식,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했으니 성경에서의 독사는 가장 최악의 나쁜 동물로 비유하고 점잖은 표현은 개, 수로보니게의 여인처럼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위치, 자리의 중요성. 개가 되었든 벌레가 되었든 내가 현재 있는 위치가 부스러기라도 떨어지는 위치에 있으니 생명의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자리가 중요하다는 말은 현재 내가 귀신 들렸다라든지 아픈 것이 문제젯거리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10명의 문둥병자가 주님께 왔는데 그들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해서 고침을 줬어요. 그런데 9명은 그냥 가버렸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중심에 있지 자기 자리가 뭔지를 몰라요. 자기가 중심이 되는 자리만 확보했지 이런 사람들은 내가 문둥병 때문에 사람의 대우를 못 받는 것이지 병만 아니면 나도 너 못지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에요.

그러나 돌아온 한 사람은 내가 문둥병에 걸려도 쌉니다. 내 자리가 문둥병 보다 더한 벌과 저주를 주신다 할지라도 이 자리가 주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자리라면 문둥병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돌아온 거에요. 주님이 나의 병을 고친 것이 아니고 내가 죄인임을 알려 주시고 또한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병 고침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 사함을 위해서 왔다는 죄 사함이 적용되어 병 고침으로 나았음을 고백하는 겁니다.

자리의 중요성을 말하는 겁니다. 23장의 마태복음을 해석 하면서 이것만 알면 해석 다 되는 거에요. 과연 바리새인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있지 않잖 요. 있지 않을 경우에 그들은 율법에 대해서 어떠한 모양을, 실천과 준수를 보이느냐? 이것을 보면 되요. 그리스도와 대립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와 순종, 전도도 나오지만 15절을 읽어 보세요.
(마 23: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도다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가며 하잖아요. 선교로 자기 몸을 드렸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는 거에요. 예수님이 준비하신 자리와 전혀 상관없는 자들이 그저 세력 확장, 또는 하늘나라의 확장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뭐로 겸손하게 포장하냐 하면 당신의 나라의 확장이라고 하며 교회 플랭카드로 만들어 걸어 놓지요. 우리가 동업자이니까 도와달라는 말이죠.
우리는 교회 자체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교회를 키우려 하는 것이 뭐가 흠이냐는 겁니다. 이 참에 하늘나라 확장에 참여해서 영광의 나라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광고 할 수 있는 근거로서 그대로 계속해서 땅 끝까지 내 제자를 삼아라는 마태복음 마지막에 말처럼 하는데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태복음 23장 8-10절을 봅시다. 23장 8-10절 읽어 보세요,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 23: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마 23: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선교단체 간사들을 참! 수직 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권위가 생기지 않아요. 정치학이나 행정학에서, 무조건 무조건이어야 되요. 명령이라 상부에서 하달 된 대로 해야 질서가 잡혀요. 조직을 운영하려면 상부 하달이 원활하게 돼야지 안 그러면 힘의 누수가 많거든요. 무조건 복종해야 되요. 그것이 A.D 300년 전에 생긴 수도원과 같습니다. 수도원 제도가 어디에서 나왔느냐 로마의 군단 진영에서 나왔어요.

로마의 군대 진영에서 나온 체제를 수도원에서 그대로 활용한 겁니다. 지금도 수도원 또는 수녀원에서는 위에서 이야기 하는 것에 일체 토를 달면 안돼요. 토달려하면 수녀 복 벗고 밖으로 나가야 되요. 추방시켜 버려요. 무조건 지켜야 되요. 군대도 그런 군대가 없어요. 그러면 그것이 기분 나쁘지 않으냐? 참 사람의 심리가 그래요. 기분 나쁘지만 자주 그렇게 명령을 받게 되면 길들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젠 그게 편해요.

이것이 뭐냐 하면 학교 교사의 3월 달 분위기와 같습니다. 3월에 분위기 잡아놔야 편하지 그렇게 안하면 1년 동안 힘들어져요. 분위기 꽉 잡아야지! 그렇게 하면 얘들도 편하고 선생도 편하고 나중에 다 편해요. 이런 것을 바리새인들이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하고 있고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하면 교회에서 이렇게 하면 “이게 뭐가 나쁜데? 하늘나라, 당신의 나라도 확장되고 일사분란하게 능률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좋지 뭐가 나쁘냐?”

이렇게 되면 자리가 다른 자리에요. 다른 자리에 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가를 봐야죠. 앞서 말한 것을 우리가 안 할 수는 없어요. 그것이 회사이던 학교이던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 하면서도 이게 바로 죄라는 것을 알면 되요. 또 이것을 안다고 해서 죄가 아닌 게 아니에요. 어쩔 수 없어요.

사람에게 잘해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에게 잘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인간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에요. 인간은 누구에게 잘해 준다는 게 없어요. 만약에 두 사람이 있을 때 그 한 사람이 어떤 수를 써도 (상대방에게)영향력이 제로입니다. 인간은 누구에게 영향을 줄 수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아이고! 선생님이 아니였으면 내가 다른 길로 갈 뻔 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개과천선해서 술, 담배도 끊고 나쁜 길에서 나왔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이용하는 거에요. 영향을 받아서가 아니고 나에게 이익 되는 것이 뭐냐? 본인의 결정입니다. 본인의 선택 사항이지 선생님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든지 부모 잘 만나서이다. 이런 것은 제대로 현실을 몰라서 그래요.

실제로는 남에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인간도 남을 이용 안하고 그냥 지나치는 인간은 없습니다. 전부 이용합니다. 강아지까지도 주인을 이용해요. 사람은 타고 났어요. 남을 이용하는 것을, 그래서 이 정도로 끝내야지 그러니까 은혜를 잊으면 안돼!라고 하면 도망칩니다. 부담돼서,

그래서 랍비나 바리새인들이 권력을 쥐고 있었는가? 이게 악마의 힘이에요. 경찰이 군대의 힘을 동원했구나! 아니에요. 동의를 받은 거에요. 왜? 모든 인간은 아까 이야기 했듯이 꿈이 있기 때문에 자진해서 협력해요. 이것을 정치적 용어로 마스터라고 해요. 식당에선 쉐프라고 하고 쉐프는 지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의 명령이 얼마 가지 못해요.

조직에서 얼마 안갑니다. 존경을 받아야 돼요. 또 존경 받는다는 말을 정말 좋아한다는 말로 생각하지 마세요. 이용하기 좋은 분이다. 저 사람의 기술은 내가 계속 배워야지! 이것이 누구 좋으라고 하는 겁니까? 본인에게 좋으라고 하는 거에요. 순종하면서 (기술을) 빼먹는 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빼먹을 것이 없으면 그 관계도 끝이에요. 부모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뭐 빼 먹을 것이 없나 해서 어무이! 하고 뭘 들고 찾아오지요. 나중에 그 부모가 아프고 힘없어져 봐요. 기저귀차고 있으면 귀신은 뭐하노? 하지요.

모든 인간에게는 꿈이 있고 그 꿈을 다른 말로 상상계라고 하는데 상상, 환상, 또는 관념, 희망, 희구, 여망이 있어요. 어떤 영웅이 찾아와서 큰 바위 얼굴처럼 이것을 채워주기를 바랄 때 그 사람을 강제로 마스터로 옹위를 해버려요. 옹립을 해 버립니다. 이번 여름 수련회 때 열왕기 상.하를 할 거에요. 거기에 르호보암 이야기가 나옵니다. 솔로몬의 신하들이 새로 왕이 된 김정은 이에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백성들의 말을 들으면 오래 갈 것이고 백성들의 말을 안 들으면 오래 못 갑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같은 동기들이 아버지 때보다 더 조져야 됩니다해서 듣잖아요. 르호보암 말이 맞아요. 신하들의 말이 틀렸어요. 왜냐하면 역사라는 것이 과거로부터 미래로 갈 때는 점점 죄 질이 악화되는 겁니다. 이런 중요한 점을 우리가 놓치고 있는데요. 사실 이건 듣고 보면 상식이고 맞는 말인데 우리가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굉장히 많아요.

예를 들어서 1년 4개월 된 애기가 있다고 칩시다. 걔가 알아서 빨간 색, 파란 색을 알아서 들고 썼다고 합시다. 쓸 때 “야! 영특하다. 그 나이에 벌써 색깔을 알아서 구분하네!” 할 게 아니고 그 아인에겐 계속해서 숙제가 추가적으로 주어지는 거에요. 이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거든요. 아홉 살 된 얘가 색깔 구분한다고 천재는 아니잖아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잘한고 해봐야 2학년 되면 과제가 또 있고 나중에 중학교 가면 배울 게 또 있고,

이게 뭐냐하면 수고하고 무거운 짊이 인생을 살면 살수록 계속 주어져요. 그러니까 인생 자체가 늪에 빠졌어요. 어쩔 수 없어요. 15-17살 얘들이 어떤 생각을 하냐 하면 나는 저 아파트에 살 수 있으면 더는 소원이 없다든지 나는 저 회사에 취직만 하면 아무 수원이 없습니다. 신입 사원들이 면접 볼 때 뭐라 합니까? 저를 입사만 시켜주신다면 뼈를 깎는 각오로 몸을 바치겠습니다. 6개월도 안돼서 대모 합니다. 노조에 들어서.

어떤 목표나 꿈 자체는 좋은 거에요. 그러나 꿈이 현실이 되면서 생각지 못했던 꿈이 새롭게 뿜어져 나와요. 그 꿈으로 인해 결핍이 생기면서 하나의 고통으로 주어지는 겁니다. 내가 9급 공무원만 되면 정말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 찬양으로 평생을 보내겠습니다. 막상 되면 “저는 5급으로 들어오고 나는 9급으로 들어와서 대우가 다르네!”하고 대번 주둥이가 나옵니다. “나에게만 일을 다 시키고 저는 군수 아들하고 놀고 쉬고 나는 야근까지 시키네!”라고 하는 거에요.

나만 만만히 보고 나에게만 부려먹고! 온갖 그 시점에서 그 날짜에 도달했기 때문에 아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남의 상처를 치료하려고 함부로 덤벼들지 마세요. 그 상처는 그 사람에게 꼭 적합한 거에요. 주님께선 상처를 치유하는 게 아닙니다. 주님께선 더 큰 상처라 할지라도 구원받는 데는 아무 상관없고 무관함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이게 죄 사함이에요.

자! 본격적으로 마태복음 23장을 해 봅시다. 하여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욕하거든요. 그러면 우리도 같이 욕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자리가 같아야 되지요. 예수님께 용서 받은 사람이 바리새인을 같이 욕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왜냐 본인이 바리새인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철저하게 예수님이 욕하는 욕을 평소에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래요. 그 사람이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 본인은 내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다고 해요. 그러기에 욕을 할 수 있는 거에요. 저쪽에선 뭐라고 합니까? 배신자라고 하지요. 그것을 새 계명이라고 해요. 그것이 요한복음에선 사랑이라고 하거든요. 사랑은 어디서 나오냐 하면 세상이 주는 증오에서만, 연못에서만 연꽃이 피듯이 그렇게 나와요. 증오 없이는 사랑이 뭔지 몰라요. 증오 없는 사랑은 내가 마땅히 사랑 받을 만 해서 받은 줄 알고 착각을 한다니까요.

신데렐라가 언제 기뻐합니까? 신데렐라가 자기 집에서 환대 받을 때가 기뻐요? 아니면 천시 받을 때가 기쁩니까?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누구에게 구박받아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동화가 빛이 나는 겁니다. 증오 속에서 왕자의 사랑이 돋보이는 거에요. 미녀와 야수도 마찬가지고.

주님께서 바리새인의 이야기를 할 때 “너 똑바로 들으란 말이야!” 하실 때 손가락 방향을 누구에게 향해야 됩니까? ☞나에게 향해야지요. 왜? 풍선 두 개를 들고 있으니까, 내가 두 개의 풍선을 들고 있다고요.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풍선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바리새인이 아닌 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바리새인을 욕한다고요. 예수를 믿음으로 바라봐야지 왜 행함으로 바라보냐고 이렇게 한다고요.

그런데 풍선을 들고 있는 새로운 피조물은 믿음이라는 게 행함이다. 그렇게 보면 바리새인들이 절대로 행함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이야기 하지요. 왜냐하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야고보서 2장에 나오는 것을 바리새인들은 그대로 받아드리기 때문에 그들이 혹독한 자기 파괴, 자기 낮춤, 자기 부인에 매진했어요. 그것이 금식입니다. 바리새인이 금식 할 때 예수님은 뭐 했지요? 제자들하고 술 드시고 계셨어요.

자기를 부인하라 해놓고 막상 자기를 부인 안해. 뭐가 중요하냐 하면 금식이나 회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금 누구와 함께 하는 지의 자리가 중요한 겁니다. 너는 누구와 함께 있는 거야? 예수님 앞에 서면 항상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왜? 워낙 고생하셨으니까 그 앞에서 무슨 몸이 아프니, 힘드니 그런 소릴 할 수 없어요.

다시 2절 봅시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자리가 나오잖아요. 3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그들의 말은 본받으라는 거에요. 이거 설명을 잘 들으세요. 성경의 언어(단어)가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단어 그대로 썼어요. 사랑이라든지 천국, 빛, 용서 이러 것을 썼다고 합시다.

그런데 두 종류의 사람이 (위의) 글을 봅니다. 오늘 제가 십자가 마을에 글 올린거와 같아요. 사랑, 천국, 빛, 용서, 이 개념을 모세의 율법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성경대로 나에게 퍼부은 신다는 사람이 있어요. 그 방향이 말씀이 우리가 건드릴 때 움직이는 게 아니고 그것과 관계없이 온 우주가 말씀이 겹겹이, 층층이 쌓여서 굉장히 바쁘게 활동하고 있음을 느끼는 거에요. 발에 체이는 게 말씀이에요.

그런 반면에 성경 말씀은 성경책 안에 가두어져 있고 내가 성경책을 펼쳐서 큐티하고 묵상해서 “주님이여! 이 말씀을 내가 지키겠나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시니 오늘은 꼭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뭔가 창고에서 끄집어내듯이 할 때 영향력이 있고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이것을 대구 강의에서 성경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살금살금 성경에 다가가요. 성경을 펼칩니다. 왜 펼치느냐? 성경에서 내가 이익이 되는 게 있을까? 하고 찾는 사람과 이런 경우엔 뭐가 드러나냐 하면 나는 성경을 외면하지 않았다라는 자기 의가 생기겠지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겼다고 하지요.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성경 자체에서 날아오는 성경 자체를 완성하신 분의 마음을, 영이라 하지요. 예수님의 영이 먼저 와 버리면 이 사람은 졸지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뭐가 되냐하면 죄인이 되어 버려요. 성령에 의해 죄인의 입장에서 성경을 보게 되면 왜 죄인인가의 이유가 온 성경 전체에서 나와야 되는 거에요.

그러면 성경책이 있는데 성경을 완성 하신 분이 성경을 가지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니 나는 갑자기 죄인이 되었다. 이 사람은 예수님 쪽에서 왔기 때문에 넘어 온 것은 우리가 요청해서 온 것입니까? 요청 없이 그냥 온 것입니까? 그냥 온 것이기 때문에 그 관계는 끊어질까요? 안 끊어질까요? 안 끊어지지요. 끊어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성경대로 환란과 핍박이 옵니다. 비 바람이 불겠지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 오기 전에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지! 했는데 이런 게 오니까 정말 사랑하시는 게 맞구나!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 온다 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본인이 결과적으로 믿어지게 되요. 왜냐하면 환란이 와도 내 쪽에서 참아내야지! 이렇게 되어 버려요. 내 쪽에서 다가가는 것으로 되어 버려요.

주님이 주시고 주님이 귀하다고 주님이 알아서 주변에 있는 보조 음향까지 넣어서 하니까 아하! 이 바닥이 이런 바닥이구나! 어떤 경우라도 십자가 피는 취소 않되 게 끈질기구나! 라고 깨닫게 되겠지요. 환란과 핍박 중에도 감사가 나와요. 이것은 예상 못한 겁니다. 환란과 핍박이 왔을 때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어서 환란과 핍박이 지나가기를 원하겠어요? 그냥 지나가는 것을 원하겠지요. 그러나 오히려 환란과 핍박이 왔을 때 감사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환란과 핍박이라는 것은 힘들다 이렇게 되는 거잖아요. 힘들다, 어렵다, 너무 괴롭다를 분석해 보면 우리가 요청하지 않은 주님의 요청에서 하늘나라에서 건너 온 거지요. 그러면 여기서 250억 돈 다발. 15만평 땅 값 백배 오르기, 주식 산 거 10배 오르기, 또 수석, 또 취직, 군대에 갔는데 도로 집에 가라는 것, 미국 아이비리그에서의 초청장,

10군데 지원 한 곳에서 다 오라하고 MIT이냐 하버드냐 예일이냐 콜롬비아 대학이냐 다 오라하는데 장학금까지 주고 이게 뭐냐 하면 내가 원치 안은 거잖아요. 그러면 요청하지 않은 거니까 이게 어디에 속한 것이냐 하면 이것을 두자로 환란이라고 하는 거에요. 십자가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2천명이 넘는 것, 우리 교회 교인이 2백 명 되는 것. 환란입니다.

그러니까 환란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타이밍은 우리가 요청하는 데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일은 항상 우리가 요청하고 기도하게 만들고 그 기도의 응답이 안 되도록, 안 들어 준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빡세게 기도하게 만들어요. 반드시 절대로 내 뜻을 펴서 이런 것들을 줘요. 이런 것들을 주시면서 “네가 네 인생을 꾸려 나갈 존재가 아니다, 그런 것은 벌써 탈락이야! 이미 너는 구원 되었어!”

그러니까 요청하지도 안았던 로또, 대박 이런 것이 나오는 거에요. 로또 복권을 본인이 산 것도 아니고 바람에 날려서 두 바퀴 돌다가 뺨에 붙었는데 버리기는 뭐하고 다음 일요일에 버려야지! 했다가 토요일에 되는 그런 거 있잖아요. 갑자기 남편이 고개 푹 숙이고 사랑한다고 하는 현상, “앞으로 뭐든 당신 뜻대로 할께!” 라고 하는 어떤 환란들, “나는 엄마 없이 못살아!” 하며 순종하는 이런 환란. 이것이 정도가 얼마나 괴롭냐 그렇지 않냐가 아니고 예상 못한 것들은 다 환란이 됩니다.

그래서 환란 가운데 기뻐하라! 무엇을? 십자가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라는 거에요. 야소보서에 그런 말씀이 있어요. 못 되거든 기도하고 잘되거든 찬양하라! 왜냐하면 오래 안 간다는 거에요. 찬양 억지로 해봐야 환란이 또 오게 되어 있어요. 환란이 왔을 때 그 때서야 우리는 십자가 은혜를 알지요. 풍선 두 개가 있잖아요. 새로운 풍선이 주어져도 육신에서 육신으로 가버리면 동질화 되요. 나는 ~이렇다가 되어 버려요.

결국 뭐냐하면 몇 시간도 안되서 자기 자랑거리가 되어 버립니다. “주께서 나를 사랑했대, 그러니 나를 건드리면 넌 죽어!” 이젠 이것을 행함이라 하지 않고 사건이라 하는데 성경에선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로마서 9장에 보면 엘리야 시대 때 7천 명이 있는데 행함이 아니고 은혜로 남은 자, 그러면 행함이 아니고 은혜로 남을 것 같으면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도 노선을 따라 가야 되요? 안 따라 가야 되요? 따라 갈 수밖에 없어요.

뭐든지 해놓고 그것이 행함이 아니고 은혜였다는 겁니다. 은혜는 원인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고 결과 편에 서 있지요. 예를 들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아니가 이렇게 공부를 잘합니다. 이게 뭐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결과가 아니고 뭡니까? 원인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은혜가 아니고 지금은 그것을 은혜라고 하지만 행함이 되어 버립니다. 이번에 금식해서 내 믿음이 생겼습니다. 라고 할 때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행함이 되지요.

진짜로 은혜 받을 때는 찬양이 절로 나와요.(Softly and tenderly Jesus is calling,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찬양을 영어로 부르는데 참 예뻐요. 처음 은혜 받을 때는 찬양이 절로 나와요. 그런데 42~45초 지나면 행함으로 바꾸어요. 그게 풍선을 두 개 갖고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소원이 없어지겠지요. 이 풍선을 짜증나는 풍선을 얼른 터트려 주옵소서! 이게 사도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빨리 죽게 하옵소서!

하나가 죽어야 하나를 건지지요.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나사로를 죽였잖아요. 나사로는 재대해서 편히 사는데 믿음 없는 누이동생 둘 때문에 다시 부대 복귀했어요. 터졌던 풍선 다시 쥐고 사는 거에요. 이 말은 항상 말씀을 들어야 된다는 거에요.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건 뭐냐하면 우리 죄를, 우리의 빚을 갚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옵소서!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 사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그래요. 이 말은 우리의 죄는 절대로 우리가 해결 할 수 없다. 자! 23장 보시면서 먼저 제가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뭡니까? 기준은 지금까지의 강의에 의하면 예수님의 완성이지요. 완성이 기준이지요. 이 말은 내가 옳고 그름을 판정해서는 안된다는 말이죠. 나처람 되면 옳고 나처럼 안되면 그르다는 말을 해버리면 그것은 자기 행함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잘못된 거에요.

나처럼 깨져야 된다. 이건 맞아요. 나처럼 죄인이라 해야 돼! 이건 기준이 되요. 나처럼 죄인이라 해야 된다는 말은 늘 나를 죄인 되게 하는 예수님의 기준이 그런 것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예수님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것이 나타나요. “너는 왜 자꾸 그런 소리를 해? 네 옆에 누가 있어? 지난 설교에서 밤에는 모든 암소가 까맣게 보인다고 했지요. 얼룩소도 별 수 없어요. 전부 까매요.

십자가 앞에서 모든 인간은 다 까매요. 어리석은 타조 이야기도 있잖아요. 뒤에서 다른 짐승이 막 쫓아오니까 모래밭에 자기 머리만 파묻으면 갑자기 밤이 된 줄 알고 몸통은 다 내 놓고 머리만 박고 있으면 됩니까? 이 세상은 예수님의 기준만으로 덮여 있어요. 삼층천이고 대기권이건 모든 것이 십자가 기준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것을 눈 감고 아웅 하듯이 안 들을란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주님께서 복음대로 일 안하고 하시지 않거든요.

많은 목사님들이 개척 교회를 하거나 목회를 하는데 제가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이 맞는데 그러면 목회가 안된다는 거에요. 그것은 어리석은 타조와 똑같은 거에요. 목회가 되든 안되는 간에 지금 무엇이 일어났느냐가 중요하지 내가 지금 교회에서 생계비를 더 받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얼마나 주의 목사로써 더 사느냐, 살아있는 주의 종이기 때문에 내가 설교하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모였다!

그것을 통해서 남에게 주의 목사인 것을 과시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남이 망했다고 하고 당신은 목사도 아니라고 손가락질해도 그런 것은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은 주님을 안 믿으니까 남을 의식하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면 주님께서 믿게 하도록 하시지 왜 그렇게 합니까라고 한다면 계속 환란을 주는 거에요. 우리를 욕하는 사람을 계속 붙여줘서 정말 내가 이런 것을 이겨서 구원받았는지! 아니면 아무 상관없이 공짜로 구원을 주셨는지!

따져 보니 아하! 이게 흔들기구나! 이런 것이 흔들기에요. 바둑을 두는 사람을 프로 기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프로 기사들이 제일 즐거워 할 때가 있는데 바둑을 두면 두 사람의 형편이 서로 다릅니다. 바둑을 끝낸 뒤 다시 어디가 잘못 되었었는지 보는 것을 복기라고 해요. 아마 바둑 는 사람이라면 아마 5단 정도만 되도 바둑 든 것을 다 없애도 강아지가 갑자가 와서 흩으러 놔도 200수 정도는 다시 놀 수 있어요.

복기를 할 때 한 쪽은 행복에 겨워 할 때가 있어요. 이기면 되요. 한 쪽은 복기를 힘들게 하는 거에요. 왜? 졌기 때문에 그래서 단 한번만 이기면 되요. 인생에서 단 한번만 이기면 되요. 내가 이긴 게 아닙니다. 주께서 이기는 자리에 우리를 넣어 주면 저쪽 이긴 편에 서서 90이 됐든 100세가 되든 모르겠는데 자식들이 좀 애를 먹여도 괜찮아요. 왜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 하시고

지난 낮 설교 때 했잖아요. 이미 죄를 이겼기 때문에 마음껏 욕 실컷 먹고 온갖 서러움 받아도 복기잖아요. 욕 얻어먹어도 욕 하지 마세요. 왜? 따지고 보면 욕먹을 짓을 했어요. 남에게도, 그럴 필요 없는데 성경을 들여다보면 바리세인들이 한 짓이 평소에 우리가 하고 있어요. 여기 5절을 봅시다.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사람에게 보이고저 행위를 한다는 거에요.

집구석에 혼자 있을 때의 행동하고 밖에 나가서의 행동하고 마땅히 다르지요. 같을 리가 있어요? 다르지요. 다를 수밖에 없지요. 타인을 의식하는 것이 사회생활 하는 데의 예의니까! 그런데 예의에서 더 나아가면 예의를 자리는 당사자가 누구다? ‘나’이다. 그래서 자기 부인이 안 된다는 거에요. 나는 당신에게 별로 나쁜 짓 한 게 없다라고 할 때 뭐가 앞에 붙습니까? ‘나’가 붙지요.

이별의 끝은 어디 인가요?라는 노래 가사를 보면 왜 당신이 떠났는데 내가 괴로우냐는 가사가 나와요. 내가 왜 힘이드느냐 말이죠. 예수님의 기준에 의하면 어떻게 답변해야 합니까? “네가 뭔데? 힘 안 들어야 하는 이유가 뭐냐?” 자! 금요일에 철야 기도를 합니다.” 우리 가정이 박살났습니다. 왜 이렇게 됐습니까? 주여! 주님의 응답은 간단해요. “네가 뭔데?” 왜 힘 안 들어야 하는 지 근거를 나에게 말해봐라!“

다음에 금요일에 기도 하러 올 때는 나는 왜 힘 안 들어야 하는 이유를 갖고 오너라! 응답은 감사로 끝나야 돼요. 모든 응답은 범사에 감사로 끝나야 됩니다. 이렇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해야 되지요. 주님과 비하면 힘든 것도 아니지요. 그 다음 5절에 그들은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 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 하느니라

자! 이 욕을 바리새인에게 하셨는데 이 욕을 하층민들에게는 할까요? 안 할까요?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겐 안 하는 이유가 하층민의 소망이 그 사람들 바리새인이기 때문이에요. 한 통속이에요. 지금 대표로 욕을 얻어먹는 거에요. 삼성 그룹의 이재용씨가 지금 구속되어 있지요. 그런데 일반 서민들은 그것이 가슴 아프지 않아요. 나도 돈은 있고 구속 될 수도 있었는데 소망이 삼성 그룹 정도이기 때문에,

지금 구속된 순간부터 이재용씨의 재산은 하루에 10억씩 늘어납니다. 왜요 주식 값이 올라가기 때문에 엎어져도 올라가는 거에요. 사람들의 부러움에 대상이 되는 거에요. 한 한 달간 구속 되지 않을래? 한 10조 재산 가질래? 바리새인을 욕하지만 바리새인의 이미지 요소가 우리에게도 가득 차 있어요. 그리고 7절에 보면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고 하는 것은 똑똑한 사람을 말합니다. 바보가 아니라 똑똑한 사람, 배울 것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몰라요.

왜냐하면 배울 게 있다는 건 정신적으로 갑이라는 뜻이에요. 갑이 되면 남부러울 게 없어요. 장기나 바둑에서 수가 높으면 벌벌 떨지 않습니다. 그런데 잘 못 두는 사람은 속으로 벌벌 떨어요. “이거 내가 잘못 주는 게 아닌가? 대마 죽는 게 아닌가?” 특히 돈 애기 할 때 이러다 돈 다 날리는 게 아닌가? 부인이 “기원에 가서 얼마나 잃었나?” 하지요.

사람이 세상을 모르게 되면 자진해서 벌벌 떨어요. 심지어 돈이 많더라도 떨고 자식이 잘 되도 떨어요. 자우가 없어요. 예수님의 기준, 그것이 우리에게 넘어오면 그것보다 귀한 보물은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주께서 흔들어 주실 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십자가 영생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날마다 더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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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0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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