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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70407a 울산강의-레위기 8장 : 보편적 단독자자유게시판레위기

20170407a 울산강의-레위기 8장 : 보편적 단독자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레위기 8장을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과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수양 둘과 무교병 한 광주리를 이끌고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으라”

출애굽기, 레위기 나오는데 출애굽기는 지시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레위기는 지시한 사항을 실제로 구체화 적용시키는 대목입니다. 이론과 실천이라고 볼 수 있지요. 명령이 실제로 모세를 통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행될 때 이들이 뭘 하고 있느냐는 거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간에 하나님 지시에 의해서 인간과 하나님이 통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 한 마디로 시스템이죠. 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게 신약에 보면 여러분이 다 아시는 중보자가 되죠. 항상 중보자 이야기하면서 제가 늘 강조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 이 장치를 인간들이 요청했느냐는 겁니다. 요청하지 않았지요. 예를 들어서 홈쇼핑에 물건을 주문하지 않았는데 집에 택배가 왔을 때 기분 좋은 겁니까, 어떤 위기를 느끼는 거예요? 이건 뭐지? 내가 주문하지 안 했는데 물건이 우리 집에 도달했느냐? 내가 모르는 더 넓은 범위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지금 레위기 8장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대제사장 위임식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회중을 다 모아야 돼요. 3절에 모든 백성을 회막 문, 성막 앞에 다 모으는데 이러한 절차를 이스라엘이 요청한 적이 있느냐는 겁니다. 없는 거예요.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의 차이점은 신에 대해서 자신들의 믿고 싶은 대로 믿을 수 있는 백성이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 방식을 만들어낸다면 하나님은 다정한 하나님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을 요모조모로 조작할 수도 있고 요리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요청한 적 없는데 하나님이 지시로써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말은 이건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위기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생각할 수 있는 범주 바깥에서 인간과 의논도 없이, 인간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인간의 요청도 듣지도 않고, 인간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일을 진행시키니까 이건 일종에 심판입니다.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죠.

흔히 옛날 말에 있잖아요.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고운 자식 나무라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어요. 부모가 애가 미울 때 자기 미운 감정을 자제한다고 네가 좋아하는 케이크 사 왔다. 그럼 애는 그 취지도 모르고, “참 엄마는 사랑도 많아. 내가 애를 먹이는 데도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오나니. 먹을게요.” 그럼 엄마가, “더 먹어.” “배부른 데요.” “더 먹으란 말이야.”

그건 자식이 요청한 적 없어요. 요청한 적이 없는데 케이크를 사줬다는 말은 이건 징벌입니다. 지금 벌을 내리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은 죄 지었는데 벌이 있을 거란 게 아니라 하나님께선 벌을 먼저 준비해서 거기에 넣게 되면 애는 질질 울면서 케이크에 범벅이 돼가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때부터 우리 잘못 안 들켰습니다. 일찍 시작한 것 전혀 들키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벌이 먼저 주어지고 그 다음에 내가 요청하지 않은 새로운 환경이 부여될 때 죄를 알아야 돼요. 도대체 죄를 어떻게 아느냐 하면, 이 벌에 합당한 어떤 죄를 내가 품고 있는지 연결시킬 책무가 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을 중보자라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예수님은 그 죽음의 의미를 확대시켰어요. 이 죽음은 네 죄 때문에 죽는다고 그 의미를 확대시켰단 말이죠. 그러면 우리는 그것이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에, 아버지께 받은 징벌적 사건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그때부터 우리는 내 대신 누가 죽어야 될 정도의 죄가 이미 내 안에서 작용하기에 나는 십자가에 죽는 벌과 그리고 나의 모든 행동을 연결시키는 책임을 부여받게 되는 겁니다.

방금 이야기한 걸 어렵게 해볼까요? 없었던 것이 새롭게 나타남은 없었던 것의 나타남에 의해서 물려버린 그 대상은 없었던 것이 사라짐과 동반해서 같이 사라져야 된다는 원칙입니다. 흉측한 예를 들면, 집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멕시코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길이 20미터 되는 뱀이 나타났다. 집에서 그 뱀을 기다렸습니까? 그런 적 없거든요. 그냥 집에서 드라마 보고 있는데 뱀이 갑자기 나타났다. 내가 요청하지 않은 거죠.

요청하지 않은 뱀이 나를 물었다면, 그럼 나는 그 뱀에 삼켜서 뱀이 그 집에 살 건 아니고 떠날 거잖아요. 잠시 없던 뱀이 나타났다. 그 뱀은 그 집에서 서서히 사라진다. 나중에 보니 드라마 보던 주인 양반도 뱀 안에 들어가서 뱀과 같이 사라진다. 이걸 두 자로 ‘복음’이라 하는 거예요. 이게 복음이에요.

이 시스템을 우리가 요청한 적 없다니까요. 십자가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어느 누구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적이 없어요. 그런데 뱀과 같이 사라졌는데 뱀 옆구리가 세 글자가 새겨있다고 봅시다. 어떤 글자냐 하면, ‘새 언약’이라고 나타내면서 그 뱀은 슬금슬금 이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그 뱀이 도달한 곳을 새 언약의 나라라고 합니다. 이걸 두 자로 줄이면, 이게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언약이 완성돼야 종료되고 완료되어야 구성되는 나라가 천국입니다. 그리고 옛 언약 중에 하나가 오늘 하는 레위기 8, 9장입니다.

레위기 8장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는데 그 율법을 모세언약이라고 해요. 모세언약은 구성요소가 여러 가지에요. 시내 산에서 모세가 받은 걸 모세언약이라 합니다. 점점 이야기가 어렵게 돼가는 데, 오늘 본문에 8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과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수양 둘과” 이렇게 하라 했단 말이죠. 이렇게 하라는 이유가 5절에 보면 나와요.

“모세가 회중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행하라고 명하신 것이 이러하니라 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그들을 씻기고 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더하고 에봇의 기묘하게 짠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메고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패를 붙이니 곧 거룩한 관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일곱 가지 요소가 여기에 장착됩니다. 어벤저스인가? 무기로 완전히 장착하는 거예요. 인간은 있는데 목욕해서 발가벗었는데 인간은 육체밖에 없어요. 그런데 인간이 요청하지 않은, 제가 여러 번 강조합니다. 아론과 아들들을 발가벗겨 놓고 인간이 요청하지 않은, 인간 시장에서 팔지 않는 물건, 인간 사이에 교환체제에서 나타나지 않는 상품, 인간 공장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그 무엇이 아론과 그 아들들을 발가벗고 놓고 일곱 가지를 덕지덕지 붙이는 겁니다.

그러면 알맹이는 인간의 육체지만 바깥에 있는 모든 모양새, 의복은 인간 나라에 있던 복장이 아니에요. 인간 나라에 없는 복장이에요. 그럼 우리는 묻지요. “누구야, 너? 정체가 뭐냐?” 그 정체가 배역이에요. 배역은 연극할 때 맡은 역할을 말합니다. 아론과 아들들은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 약간 더 붙이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만들기, 더 붙이면,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 백성, 이걸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만들기에 나선 쪽은 인간 쪽이 아니고 하나님 쪽이에요. 그래서 복음의 시작은 인간이 요청이 아니고 요구할 사항이 아니에요. 그건 하나님의 자의적인 일방적인 뜻에 의해서 주어진 겁니다. 여러분이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신다면 다음 질문에 답변을 해주셔야 해요. 복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답은 두 개입니다. 있거나, 없거나 둘 다 정답이 돼요.

복음이 없다고 한다면 이건 인간 중심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아론과 아들들을 발가벗겨놓고 일곱 가지 동원된 의복들, 치장들 그 모든 것이 주어지면 그렇게 생겨난 인간 존재는 인간 세계 어디에도 없던 인간이 나왔단 말이죠. 그렇다면 처음부터 하나님의 언약이라든지 제사장 제도는 인간 나라에 없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인간 쪽에서 볼 때 복음이 없다는 게 정답입니다.

지금도 울산이고 대구고 복음 없잖아요. 교회도 복음 없잖아요. 교회란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다 모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과 정성을 끌어 모으자, 이게 교회지 인간세계에서 할 수 없는 것을 모시자, 이런 교회라면 교인들이 그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요. 목사님,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고 시키세요. 시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데로 역량대로 하겠습니다. 이게 수월하지 없는 것을 믿으라고 하면 미친 것도 아니고, 없는 걸 어떻게 믿어.

오늘 아침에 메일을 열어보니까 어떤 분이 비밀 글로 질문을 했어요. 비밀 글을 공개하면 됩니까? 하지만 비밀 글로 하다가 잘 안 들어가니까 공개 글로 나타나서 제가 지웠는데 그 내용이 뭐냐 하면, “예수 믿는데 마리아 믿어도 됩니까?” 질문이 되게 비밀스럽지요. 그래서 답변했지요. 마리아 믿어도 되지요. 예수 믿고 마리아 믿고, 제가 답변하기를 이라크도 믿고 북한도 믿으세요. 트럼프도 믿고, 믿어도 돼요. 왜냐하면 믿음을 내가 결심했다는 것, 사람이 결심할 때는 내가 믿을만해서 믿고자 결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믿는다는 것은 없는 게 아니고 내가 예상한 것, 상상한 것, 기대한 것, 이미 있는 거란 말이죠. 있는 거니까 예수도 믿고 마리아도 믿고 뭘 믿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성경에서 믿음이란 것은 없는 건데 믿어지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거예요. 에베소서 2장 8절. 내가 원인이 되어서 결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 원인이 되어서 그 결과로 생기는 것이 진짜 믿음이기 때문에 그 선물이 오게 되면 그전에 내가 괜찮다고 여기고 믿는 것, 심지어 그렇게 해서 내가 예수 믿는 것조차 죄가 돼버려요.

그래서 올려놓으니까 댓글이 한 개 달렸지요. 그 댓글이 내가 답변한 거니까. 오후 한 3시에 보니까 답변이 두 개 됐어요. 그 말은 그분이 제 답변을 읽고 다시 보내왔다는 거예요. “고맙습니다. ㅋㅋ”

정답이 뭐냐 하면, 복음은 없는 겁니다.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일방적인 하나님의 조치입니다. 따라서 그건 우리에 대한 위기고 심판이에요. 네가 아는 범위 내에서 너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네가 알고 있는 것으로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일체 하나님의 구원과는 무관 것이고 그냥 네가 몸부림치는 것밖에 안 된다, 라는 내용이 대제사장 시스템 안에 그 의미가 포함돼 있단 말이죠. 그래서 이야기하는 것은 복음은 없는 겁니다.

그럼 왜 복음이 있다는 것이 왜 정답이 되느냐? 인간 쪽에선 복음이 없다고 봤는데 하나님 쪽에선 복음이 있어요. 하나님 쪽에서 원해서 줬으니까. 하나님 쪽에서 복음이 있으면 우리가 없어요. 우리가 있어도 없는 존재가 돼요. 복음을 집어넣으면 복음만 살려내요. 지남철이 없을 때는 쇳조각이 흩어져있어요. 이걸 균일성이라 합니다. 천문학에서 굉장히 어려운 용어에요. 균일성은 무작위로 흩어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상식과는 다르죠. 천문학자들은 그렇게 봐요. 무작위로 흩어져있는데 균일하게 흩어져있다. 동일한 시간과 공간 요소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울산 시내 보세요. 각자 자기 인생 살잖아요. 위에서 보면 흩어져 있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지남철, 위에서 복음을 줬는데 복음에 달라붙었다. 그러면 균일성이 깨져버려요. 어떻게 달라지느냐? 지남철에 달라붙은 쇳조각과 그렇지 못한 쇳조각으로 구분됩니다. 그 쇳조각을 구약에선 화목제물이죠. 신약에 와도 마찬가지에요. 예수 그리스도와 화목하라. 그렇게 않으면 하나님과 원수가 돼요. 이건 협박, 공갈 이상입니다.

이렇게 날카롭게 대립이 되는 이런 상황을 인간이 기대하거나 요청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생각해보니 이렇게 사단 난 것이, 문제된 게 예수님이 다녀갔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님이 안 다녀갔으면 세상 아무 문제없어요. 각자 균일하게 자기 인생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에요.

방금 이야기가 사도행전 17장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을 경우에 하나님께서 이방민족에 대해서 어떤 조치나 어떠한 책망이나 비난도 하지 않는다. 그냥 방치했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분으로 이 땅에 내려 보냄으로 말미암아 이제부터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원한 형벌에 들어간다고 돼있어요.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 전도하면서 이런 대범한 공갈, 진짜 터무니없는 공갈협박을 외쳤습니다. 제3자 입장에서 누가 이 사회를 소요케, 혼란케 하는 겁니까? 점잖은 보통 사람에 의하면 사도 바울이죠. 방금 제가 일반 사람을 점잖은 사람이라 했지요. 점잖은 사람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이렇습니다. 관성으로 사는 자에요.

뇌에 세 종류가 있는데 오랜 된 뇌가 있고 중간 뇌와 새로운 뇌가 있어요. 오래 된 뇌는 행동을 관장하고, 중간 뇌는 정서를 관장하고 새로운 뇌는 창의성과 이성을 관장해요. 현대 뇌 과학에서 이렇게 하는 이유는, 치매 걸린 환자가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은 어디서 나오는가? 뭔가 따져서 나오는 게 아니고 젊을 때부터 해왔던 행동이 그냥 짐승의 충동처럼 나와요. 이게 제일 오래 된 뇌에요.

이것이 계속 눌리고 쌓이고 강렬하고, 새로운 것은 치매 걸리면 다 날아가 버려요. 그러면 행동할 때 어떻게 행동합니까? 본능적으로 나오겠죠. 그걸 저는 관행, 관습이라 하는 거예요. 인간은 제가 아까 평범한 사람이라 했지요. 평범한 사람은 살던 대로 사는 거예요. 하던 대로 했고. 관행, 관습은 상식이 돼요. 그럼 상식선에서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보잔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목사님, 우리는 성도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 이야기하지 맙시다. 성도가 뭘 알아야 하는지 그런 이야기해야지 지옥 갈 사람 이야기를 끄집어내느냐고 하는데 이게 남 이야기하는 걸로 여러분 느껴지십니까? 어떤 시에 이런 게 있어요. 노인들은 혁명을 싫어한다. 그걸 과학적으로 따지면 이거에요. 변화를 싫어해요. 변화를 무서워해요. 그걸 보수적이라 합니다. 그 보수들이 모인 걸 태극기집회라 해요. 그냥 하던 대로 살자. 별 것 없다. 혁명을 싫어한다니까요. 세대 차가 나잖아요.

교회에서 권사들, 장로들 찬송 불러도 치매 걸리면 나훈아, 남진 노래 나와요. 위에 있는 찬송가는 이건 정서적인 문제인데 치매가 이것까지 다 날려버렸어요.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아야지, 양심껏 살아야지. 그것 다 날아갔어요. 역시 남는 것은 동물적 본성만 남는데 그 동물적 본성이 나훈아와 가까이 연결되는 겁니다. 가락이. <내 주를 가까이>보다 <안동역에서>가 더 가깝다니까요.

사도 바울의 말이 이건 믿으란 이야기가 아니에요. 믿지 못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마지막에 이게 붙어있어요. “너희가 듣기는 들었는데 너희들 못 믿을 이야기지? 그런 줄 알고 전했어. 보기는 보아도, 너희들 날 봤지? 아무리 봐도 사도처럼 안 보이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었어.”

어느 누구도 구원받지 못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이 손수 이루기 때문에 그래요. 언약을 주신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을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자기가 내려준 언약을 손수 이루신 하나님을 여호와라 해요. 이게 모세 때 나타납니다. 모세 이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던져주고 모세 때 던져준 언약을 친히 이루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모세언약이란 자체는 없는 거예요. 여전히 꾸준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만 계속 가는 겁니다. 이게 갈라디아서 3장에선 이렇게 돼있어요. 모세언약, 다른 말로 율법이거든요. 율법은 핵심요소가 아니다. 율법으로 구원받는 핵심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나기 위해서 잠시 들어왔다가 빠지는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언약 주고 430년 후에 율법 준 것은 왔다가 빠짐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주목하지 말고 율법조차도 다가가는 너희들이 진짜 쥐어야 될 그걸 보란 말이죠. 그게 뭐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걸 갈라디아서 3장에서 복음 설명하면서 해요.

갈라디아서 3장에서 그 이야기하기 전에 1장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해놓고 10절에 보면,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했지요. 다시 말하면 나는 목회하려고 온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목회해서 구원받는 그런 방법 없어요. 그리고 2장 끝에 보면 율법으로 의로울 사람은 없다. 율법으로 만약에 의롭게 된다면 십자가를 주께서 지시지 않았다. 십자가를 예수님이 지신 것을 헛되게 하려면 율법이 구원된다고 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

그러면 사람들은 율법을 행하지 않고 십자가를 믿으려면 믿을 당사자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나오겠지요. 율법을 행하는 당사자나 십자가를 믿을 당사자나 어차피 내가 있어야 되는 것은 기본 원칙이 아니냐고 하겠지요. 거기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언약을 주신 분이 언약을 성공적으로 회수한다는 법칙이 있지요. 그걸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집어넣습니다. 나는 이미 죽었다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할 걸 찾지 말고 십자가를 헤쳐서 죽은 나를 끄집어내란 말이죠.

내가 둘이 된 거예요. 주님이 십자가 지실 때 그 안에 담겨있는 내가 있고, 십자가를 믿어서 구원받겠다는 그러한 노림수를 가진 가짜 나, 잘못된 나, 예수 믿고 구원받겠다고 기대하는 그 나, 그 두 개의 나 중에서 내가 믿어서 구원받겠다는 것은 율법으로 구원받겠다는 것과 동일한 노선이라는 거예요.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고자 하는 것이나, 예수 믿어야 구원된다는 그 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나 여전히 초점이 어디 있느냐 하면, 나는 살았고 더 살아야 되겠다는 데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구원받는 나는, 나한테 작업을 거는 게 아니고 십자가 안에 실려서 택배로 선물로 그 안에 포장돼있다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헤치느냐? 포장지는 성령이 와서 하나둘 벗깁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그 안에 뭐가 있느냐 하면, 나는 죽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산다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그 안에 담겨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뭡니까? 배역, 무대에서 역할을 하는 겁니다. 어떤 역할? 죄인의 역할. 어렵지만 여러분이 이 논리를 견뎌야 돼요.

제가 강의 다시 하겠습니다. 뒤에 오신 분도 계시고 이쯤해서 다시 해야 돼. 지나간 건 다 잊어버리니까. 인간과 하나님이 그냥 만나지 않고 여기에 장치를 만들었어요. 이 장치는 우리가 요청한 게 아니고 하나님께 만들었습니다. 이 장치가 신약에 오면 중보자라 했지요. 그런데 중보자가 왜 필요하냐 이 말이죠. 우리가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데.

레위기 8장에서 사람을 발가벗겨놓고 일곱 가지 옷을 입히는 거예요. 그럴 때 그 인간이 우리가 예상한 인간이냐, 아니면 낯선 인간이냐? 당연히 낯선 인간이죠. 전에 알던 아론이 아니죠. 본인이 발가벗었는데 옷 입었다고 하지 않고 나는 이러한 옷으로 나의 배역을 표현하는 겁니다. 걸쳐 입은 옷이 내 존재보다 우선하는 거예요. 내가 법학박사인지, 법대 나와서 판사, 검사냐, 의사냐 그건 인간들이 고시공부해서 따낼 수 있는 거예요. 할 수 있는 겁니다. 기도 두 시간했다. 십일조 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는 계산만 하면 돼요. 십분의 일 계산하면 되니까.

그게 아니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덧입혀질 때 이건 하나님이 주신 배역이 돼요. 그걸 흔히 말해 은사라 해요. 선물이 된다고. 은사는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내가 이런 배역을 지금껏 원한 적이 없다는 것을 토해 놓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작전은 우리가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없었는데 나타났다가 아까 뱀 이야기처럼 우리를 가지고 사라지지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있다, 없다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해요. 어차피 없어질 것 나타나기는 왜 나타났느냐고 하면 안 되고, 없다가 나타났는데 나타난 것이 계속 있든지, 그런데 있는 것도 아니고 사라져요.

예수님이 오셨잖아요. 계속 살면 되는데 십자가 지시고 사라졌잖아요. 그래서 제자들은 오셨다, 사라졌네. 어디 갔지? 그걸 옆에 있던 천사가 나무래요. 보기는 뭘 쳐다 봐? 주께서 원하는 것은 예수님이 어디 있느냐가 아니고 예수님이 남기고 간 그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이 한 자로 이게 죄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님이 오신 것은 자신의 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를 덧입혀서 십자가로 데려가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셨어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제사장들이 입는 복장은 결국 인간의 죄를 전제로 해서 일곱 가지로 입는 거예요. 이것도 모르고 제사장 보면서 저 스타일 괜찮다. 보석이 주렁주렁하네. 나도 만들어볼까? 얼마면 저렇게 입을 수 있겠어? 이렇게 되면 안 돼요. 이 복장은 인간의 죄를 들추기 위한 하나님의 배역을 맡은 자가 입을 옷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라지기 때문에. 주께선 사라지거든요.

레위기 8장 22절 봅시다. “또 다른 수양 곧 위임식의 수양을 드릴새” 지금 위임식하고 있는데 네 종류의 제사가 들어갑니다. 속건제 빼놓다 다 들어가요. 처음에 속죄제 드리고 그 다음에 번제, 소제 드리고 마지막으로 화목제 드리고 위임식 끝납니다. 23절에 보면, “모세가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르고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그 피를 바르고 또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피라는 것은 생명인데 생명을 뿌린다는 말은, 인간을 즙을 짜는 거예요. 좀 과격한 비유라도 이게 이해하기 쉬워요. 즙을 짜면 이빨이 몇 개 있는지 임플란트 했는지 키가 얼만지 이런 것은 다 형체가 뭉개져요. 속에 있는 핏줄이 터져서 피가 나오겠지요. 피가 나올 때까지 제물을 잡는 거예요. 주께서는 형체가 어떤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피만 건지는 거예요.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자로 규정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도 사실은 안에 피를 출렁거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액체란 원래 형태가 중요하지 않고 액체의 종류가 중요한 것처럼 피를 담는 용기 또는 그릇 그 정도밖에 안 돼요. 인간은. 그런데 그 피가 뿌려지는 거예요. 제단에서. 제단에 뿌려진다는 것은, 그 제단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은 공장 시스템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가 들어와서 그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면 그 죄는 사함이 되고 거룩이 되고 의로움이 되는 거예요. 일단 원료로 피가 들어가야 돼요. 죄가 들어가야 된다고요. 공식으로 하면, ‘피=죄’가 되는 겁니다.

죄인을 짜서 죄를 끄집어내고 그 죄를 피라는 양식으로 전환시켜서 이 피를 하나님의 제단, 다시 말해서 저주의 심판대에 발라 버립니다. 너희는 나한테 마땅히 저주받아야 될 자다. 따라서 저주받거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것으로 역할은 끝났어요. 하나님이 누군지 알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는 그 선을 넘어가선 안 돼요. 죄 아는 걸 대가로 구원을 요구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꼼수를 쓰면 안 돼요. 회개할 테니까 구원해달라는 소리하면 안 돼요. 그건 아직도 꼼수 쓰고 있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우리는 이미 죽고 그 안에 누가 산다? 그리스도가 사는 거예요. 나는 뭐냐 하면, 새로운 피가 들어오는 그릇이 될 뿐이에요. 예수님의 십자가, 우리 대신 피 들어가고 그 피에 안수를 했기 때문에 양의 피거든요. 양의 피가 우리 대신 저주를 받고 저주받은 양의 피를 몽땅 태우는 향기를 하나님께서 흡족하게 받으시면 양은 자기의 역할을 다한 겁니다. 그 결과가 뭐냐? 죄 지었는데 제사 지낸 이후에 각자 자기 집에 돌아가서 멀쩡하게 잘 살고 있어요. 왜 잘 삽니까? 하나님이 함께 있음에도 멀쩡하게 산다는 말은, 너와 나 사이에 죄가 제사로 말미암아 처리됐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막 사시라 이 말입니다. 그래야 막 살아야 되는 것에 대해서 거부를 느끼는 사람, 불신자로 드러날 것이고 막 살란 소리 안 하면 불신자가 안 드러나요. 불신자 이면서도 신자인 척해선 안 되겠어요. 그래서 분개를 유발해요. 성경에 수천 군데에서 바르게 살아라, 형상을 본받으라, 네가 빛의 자녀처럼 살아라, 서로 용서하며 살아라, 이렇게 있는데 네가 뭔데 건방지게 막 살라고 하느냐고 분개를 일으키죠.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은 제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보는 순간 우리는 막 살고 있구나. 전혀 말씀에 부합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을 제가 옆에서 거드는 것뿐이에요. 꼴좋다, 막 살라고 거들 뿐인데 거기에 동의하고 감사하겠지요. 그런데 신자 아닌 사람은 분개하겠지요. 그래서 저는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고 성경을 더 퍼붓고 .....

제사장이라 보지 말고 이해하기 쉽게 그냥 기계라고 해요. 낯선 기계에요. 로봇이에요. 하나님이 만든 기계입니다. 기계는 인격 같은 걸 보면 안 돼요. 기계는 배역의 기능만 챙기면 되는 겁니다. 대제사장이란 기계가 보여줄 기능이 뭐냐? 대제사장이니까 제사지요. 우리가 여기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제사라는 걸 알 수 있지요.

제사에서 죄인이 하는 역할은 뭐냐? 죄 짓는 거죠. 자기가 죄인으로 죄 짓고 있는 그대로. 이 말은 자기가 알아서 개과천선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알아서 자기 행동을 조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가져와야 돼요. 이게 주님이 주신 믿음입니다. 어차피 즙을 짜거든요. 우리 동네에 그런 가게 많아요. 즙 짜드립니다. 우리교회 밑에도 있는데. 어차피 짜봐야 죄밖에 안 나오잖아요.

유월절 어린양을 왜 죽였습니까? 죽여서 피를 바른 이유가 뭡니까? 죽어 마땅하다는 거예요. 안방에 앉아있는 인간들이 죽어 마땅하다는 거예요. 양을 죽여서 발랐다는 말은 우리가 죽어야 될 것을 양을 대신 바쳤다는 뜻이잖아요. 이 말은, 우리는 양 같아서 우리는 죽어 마땅한 존재에요. 그러면 울산 바닥에 살면서 평소에 하루하루 늘 죽어 마땅하는 것을 느끼면서 살면 되는 겁니다. 참 쉽지요.

아침에 식사하고 설거지 하면서 죽어 마땅합니다, 하는 거예요. 죽어 마땅한 자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어 마땅한 우리에게 오뎅 김치볶음을 주시고, 내일은 번데기로 죽어 마땅함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항상 죽어 마땅함으로 살아가는 것, 이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죠.

복음을 듣는데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요. 복음을 듣고 어떤 사람은 점점 더 분노해요. 복음을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기뻐하는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분노해요. 이상하죠. 분노할 게 없는데.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감사해요. 분노하는 게 아니고. 그래서 제가 조사해보니까 분노하는 것은, 내가 당신이 말하는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이야. 그런데 복음 받아들이고 난 뒤에 뭘 해야 되느냐? 그 이야기를 해 달라 하는데 안 해주니까 분노가 일어나는 겁니다.

복음 받아들이는 행함을 했는데 이 행함이 전부가 아니고 뭔가 있을 것 아니냐? 그걸 추가적으로 계속 이야기해줘야 하는 데 그게 안 나오니까 화가 나는 거예요. 왜냐하면 복음만 알면 자기는 쪼다 되는 거예요. 쪼다 되기 싫은 거예요. 왜? 오래 된 뇌거든요. 관행과 관습은 내가 남한테 멋진 존재라는, 존재증명이라 하는데, 내가 남한테 기죽지 않는 존재로 증명하는 그것이 사는 보람이 된단 말이죠. 그게 관행이에요.

치매 걸린 그런 분이 옆에 안 계시니까 여러분이 실감이 안 나시는 것 같은데 치매 걸린 분에게 뭔가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게 되면, 그런 건 안 들어오고 그러면 죽으란 말이냐, 하고 대번에 화를 내요. “그럼 나가 죽을게.” 오래 된 뇌, 관행이고 관습입니다. 사람이 오십 넘어가면 슬슬 나옵니다. 육십 넘어가면 그런 경향이 많이 있고요. 육교 밑에 건너다가 걸리면 젊은 네가 왜 나한테, 이렇게 나옵니다. 자기밖에 몰라요. 밑바닥에 오래 된 관행과 관습밖에 몰라요.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고 사회가 그러니까 자기한테 새로운 걸 강요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촌에 목회하는 방법은, “참 훌륭하십니다. 이 교회 세운다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고 기도 했습니까?” 이걸 매주 집어넣으면 아무 소리 안 하고 월급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 장로님들 본받으셔야 됩니다. 이 예배당 세운다고 집을 전세로 돌리고 나머지 돈을 바쳐서 주의 은혜로 세웠습니다.” 이걸 매주 반복하게 되면 촌에서 자식들 피아노레슨 받을 수 있습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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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0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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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