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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81 강도의 소굴묻고답하기-

볼륨을 크게 높여라 041009강도의 소굴이 된 교회와 예수님의 눈물 (눅 19:28-48 / 마21장)종말에 나타나는 특이한 형상 중의 하나가 믿음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 믿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해 절절매는 두손 두발 다 든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마 25장에서는 세 가지 비유 속에 표현하기를 한 쪽은 무식하고 융통성 없고 독립심도 없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바로 옆에 주인이 시키는 것처럼 간섭을 받는 것에 있고, 또 한족은 일단 지금은 눈에 안보이는 눈에 보일때까지는 독자적이고 융통성 있게 자기 삶을 꾸려가겠다는 겁니다. 한 쪽은 간섭 때문에 미련하게 다 빼앗긴 자요, 한 쪽은 자기를 위한 삶을 펼칠 융통성을 부린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12 정탐군 이야기에서 그대로 나옵니다. 한 쪽은 그들에게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안된다고 독자적인 융통성을 부리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갈렙은 무식하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우리 밥이라고 사람들을 선동질 합니다. 현실감에 동떨어진 말을 합니다. 한 쪽은 자기들이 정복해야할 땅으로 여기니 힘과 힘의 비교우의에서 안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갈렙은 자기 정복해야할 땅이 아니라 주님이 정복하실 땅이라고 보니 우리 밥이라고 참 철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밥풀떼기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환경을 똑같이 정탐하고 같이 돌아와서도 두 패가 갈라지는 주장입니다. 이 두 패를 마 25장에서 세 가지 비유로 두 쪽으로 나누시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두 패로 나누어짐으로 성취됩니다.지난 시간에 예수님이 삭개오를 영접하여 인자가 오심은 잃어버린 자기 양을 찾고 찾고 찾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음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는 이렇다 라고 비유로 열 므나 비유를 말씀 하셨습니다. 즉 남겼음이 목적이 아닌(장사하는 사람들 이 부분에서 사기 당하신 겁니다) 주인의 왕 됨을, 주인 됨을 원한자가 충성된 종이고(단 한명의 정탐자 갈렙), 주인의 왕 됨 주인됨을 원치 않는자가 악한 종 곧 독자적인 행동 또는 믿음을 일관하던 자(10명의 정탐군)였다는 겁니다. 비유란 자기백성에게만 그 비밀을 알려주고 자기백성 아닌자에게는 모르도록 하는 은폐적인 내용입니다. 즉 귀는 자는 듣고 귀 없는 자는 못듣도록 하는 것이 비유입니다. 남겼다는 해석은 성경을 보는 땡중들도 다 할 줄 아는 해석이기에 머리 관점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할 행위 관점이지요. 정작 주인이 있든지 없든지 늘 주인의 간섭을 받는 자가 곧 충성된 종이였고, 주인의 간섭이 아닌 독자적인 지혜를 펼친자가 악한 종이였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종말에는 보호자 싸움입니다.(민 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오늘은 그 비유 이후에 드디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면서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이번 주간에 몇 몇분들과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대부분 교회를 생각할 때 먼저 딱 떠올리는 것이 당신 어느 교회 다니나요? 어느 교단 소속입니까 소유(소속)의식 입니다. 내가 교회 다님으로 인해 교회의 소속으로인해 안정감이 소유가 되고,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음으로 인해 불안감을 통해 죄책감을 많은 분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몸뚱아리에 붙어 있는 손가락 발가락인가요 라고 묻습니다. 장로교 몸뚱아리? 감리교 몸뚱아리? 그러나 예수님은 영 엉뚱한 교회를 말씀 하십니다. 그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스가랴 9:9의 예언대로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참 이상하지 않나요? 좀 독자적으로 개성적으로 입성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 왜 초라하게 나귀새끼가 뭡니까 이게 ! 아무리 예언이지만 그 예언 하나님이시다면 좀 바꿔도 되지 않을까요? 융통성 없게 왕의 입성, 곧 하나님의 입성인데 예루살렘 성전 곧 교회에 왕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데 왜 이렇게 풍채 없이 초라하게 어린 나귀새끼가 뭡니까? 그 당시면 적어도 꼬끼리 오늘날로 벤츠 타고 와야 아 왕이 오는구나 다들 눈치 챌 것 아닙니까? 자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뭔가 그림이 잘 안맞습니다.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초라한 나귀새끼 타고, 요즘으로 따지면 거의 다 폐차 직전인 중고 티코를 타고 예수님이 들어오시는데, 호텔 도우미는 티코 탄 손님 인간 취급도 안하지만 여기 무리들은 갑자기 큰소리로 외치면서 빵빠래를 울리면서 마치 왕의 행차를 보는 듯 합니다. 자기 겉 옷을 빨간 카페트 깔 듯이 쭈욱 깔아서 그것도 그냥 춤추는게 아니라 있는 힘껏 소리지르며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겁니다. 예루살렘 성 바깥 입구 쪽에서는 눈치 챈 듯 난리입니다 난리.(마 21:9)(눅 19:37-38)오죽 난리를 쳤으면 이 상황을 소동이라는 표현으로(마21:10-11) 발칵 뒤집어지는 소동입니다. 마치 예견된 영접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깜짝 이벤트처럼, 게릴라 폭우처럼 갑자기 막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말이지요. 얼마나 낯설은 모습입니까? 그러니 온 성에 있는 자들이 뭐지 뭐지 누가 왔나? 누구지? 낯설고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하다는 겁니다. 조용하던 예루살렘 성이 시끌법쩍 소동이 일어난 겁니다. 마치 동방박사의 방문 때처럼 말이죠.자 그럼 분명 도대체 왠 이런 소란인고 하는 자가 있겠죠. 이 무질서를 질서로 체계적으로 잡고자 하는 무리가 등장할껍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선생 예수여 좀 조용히 삽시다.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떠들고 난리입니까? 여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볼륨 좀 줄여 주시오. 그리고 이 무리들을 진정시키시오. 천박스럽기는 ...(다윗은 법궤가 돌아오니 이제야 머리가 왔다고 아이처럼 그 머리 앞에 왕이 아닌자처럼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아이처럼 좋아라 춤추고 바지 벗겨질 정도로 왕이 왔다고 오바 춤을 춥니다. 그런데 그 광경을 본 미갈은 왕의 방정맞은 행동에 자기 위신까지 챙기려 하니 왕고라지 저게 도대체 뭐고 왕은 왕답게 처신을 이 많은 눈을 봐서라도 해야지 이겁뭡니까? 다윗 어린이 나빠요 다윗 춤 나빠요 다윗 바지 홀라당 나빠요! 왕의 체면 홀라당버린 다윗 왕)아 이 얼마나 눈물겨운 이웃사랑의 실천 아닙니까? 남편인 왕의 체면 높여주는 말 아닙니까?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좀 조용히 하세요 라고 해주는 저 겸손함. 누차 말하지만 바리새인은 늘 일관성이 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모든 유대인도 인정한 바입니다.이 요청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예수님은 오히려 볼륨을 더 높여 버립니다. (눅 19:40)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자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으로 가까이 가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우십니다. 우리는 조금 전 일도 감을 못잡는데 또 갑자기 우시니 이것 또한 감을 못 잡습니다.도대체 왜 우시는 겁니까? 누가 예수님을 울게 만들었습니까?우시는 이유가 이러합니다.(눅 19: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눅 19: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눅 19: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눅 19: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이게 무슨 말씀일가요? 예루살렘은 평화의 의미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 평화로움에 눈물 흘리는 자가 없는데 예수님만 아니다 라고 우시는 겁니다. 즉 예수님의 눈에만 전혀 평화롭지 못한 예루살렘을 보고 우시는 겁니다. 얼마나 평화롭지 못하냐? 평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에, 눈치 채질 못하기에, 원수들이 다 장악하여 폐허가 되는 저주가 임함을 예수님 혼자만 보시고 엉엉엉 우시는 겁니다.이게 무슨 말일가요? 예수님의 첫 번째 우심이 바로 사랑하는 자인 나사로와 그 누이 마르다 마리아 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이 자신이 부활임을 이야기 할때 다들 자기 믿음을 들고 나왔습니다. 네네 부활 할꺼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눈치 채는 자 없고 아무도 믿는 자가 없어서 민망해서 쪽팔려서 우셨습니다. 왜 아무도 안 믿을까요? 그것은 이미 믿고 있는 부활이 있기에 아무도 못 믿는 겁니다.마찬가지로 지금 예수님이 분명 호산나의 찬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에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라는 성 입구 성 밖에서의 찬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예루살렘 성은 평화가 뭔지 전혀 알지 못하기에 저주가 내려지고 페허가 될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우시는 겁니다. 한마디로 저들은 철두철미하게 예루살렘 안에 있으면 평화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믿음이 예수님의 눈물에 의하면 오히려 반대로 저주다 라는 겁니다. 마치 오늘날 현대인이 교회에 출석하고 다니고 그 속에서 알려주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은 따 놓은 당상 세이브, 교회 밖은 아웃 지옥 갈 사람인줄 알았더니만 예수님의 눈물에 의하면 오히려 반대더라 라는 겁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강도의 소품들을 다 엎어버리시는 겁니다. (눅 19: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눅 19:46)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눅 19: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눅 19: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전에도 언급했지만 분명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제사 잘 드리라고, 예배 잘 드리라고, 재물 잘 바치라고 등장된 하나의 서비스 프로그램일 뿐인데 예수님의 눈에는 강도짓이라고 합니다. 이상하지요. 분명 교회를 교회 답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지요. 제자훈련, 새신자 양성, 찬양학교, 부부십계명, 모조리 다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이요, 절차요, 행사들인데 왜 예수님은 강도 짓이라고 다 엎어버리시는 것일까요?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을 모르는자 있나요? 다 상식적으로 알지요 그거 모르고 교회에 나오는 자 없습니다. 다 기도 했고 또 하고있고, 또 할껍니다. 그런데 왜 흥분하냐고요? 그래서 예수님은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뭘 몰라하기에? 평화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평화를 가르치시는 겁니다.여기에 성전의 기득권층이던 자들은 예수님에게 자기들 역할을 다 빼앗길 판국인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죽일려고 계획을 잡지요.자 그럼 가만히 보니 예수님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 문제 없는 도시입니다. 술술 잘 흘러갑니다. 뭐 하나 나무랄때가 없습니다.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왜 예수님의 믿음 때문에 졸지에 인간들의 믿음이 위기가 닥쳐오는 것일까요? 아무 문제 없는 그냥 믿고 잘 믿고 잘 댕기고 잘 신앙하면 될터인데 왜 갑자기 엉뚱한 믿음이 나타나서 그 고요하고 청아한 맑은 호수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로 만드는 것일까요?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그래서 미꾸라지 한 마리 소동을 제거할려고 계획을 잡잖아요. 그물을 준비할 계획, 등등 그것은 예수님이 보시는 교회와 사람들이 세우는 교회가 너무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사람들이 세우는 교회는 그야말로 흠도 없고 티도 없는 교회 바른 교회 개혁된 교회 깨끗한 거룩한 교회를 꿈꿉니다. 꿈만 꾸지 않습니다 꿈(별 하나 넣고)은 이루어진다, 반드시!. 그래서 고생 고생 만들어서 세웠습니다. 예루살렘 근처에 사는 것은 그야말로 소원 성취입니다. 많은 분들이 나도 대구 살면 우리교회 다닐텐데, 상당히 부러워 합니다. 그만큼 교회가 없다는 것이겠죠. 물론 그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주님의 눈물을 생각해봅니다. 교회란 제대로 된 목사 장로 제대로 된 사람들이 구성되어서 개혁 바른교회 신실한 교회로 성립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결정 됩니다. 아무리 개판 같은 교회이더라도 머리가 예수님 이면 그 교회는 그 머리로 교회 된 겁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타락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몸으로 결정되는 교회는 애초부터 교회가 아니죠.지금 사람들이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개혁복음주의 적으로도 뭐 하나 흠 잡힐 것이 없는 예루살렘 교회를 만드는데 성공 했습니다. 주의 전의 사모하는 열심히 한결같이 일관되게 작용하여 그들은 오로지 교회만 바라보며 교회 근처에 사는 낙으로 소원을 이룹니다.그러나 유독 빠진 것이 있는데 바로 머리만 하나 달랑 빠져 있습니다. 평화의 왕이 빠져 있습니다. 몸뚱아리는 기똥차게 완벽한 섬김의 공동체 아름다운 공동체 이웃사랑의 공동체로 형성이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머리만 딸랑 빠져 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 팔 다리 다 완벽함 그 자체입니다. 그런 예루살렘 교회를 보시고 예수님은 우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날마다 날마다 말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머리 되기를 싫어하는 우리들 때문에 머리는 버림을 받는 겁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말이죠.(마 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 21:43 - 46)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입니까? 기도 받는 대상에 의해서 누구의 집이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기도는 인간의 아이디어가 아닌 하나님만의 아이디어요 인간의 기도 안받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성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도 받는 대상에는 관심 없고 그저 내가 기도하면 당연히 받을 것이다. 내가 교회 다니면 당연히 천국이다 즉 대상자가 있던지 없던지 머리가 누구인지, 평화가 누구인지 전혀 관심 없고, 교회 다니는 것 그 자체, 내가 신앙하는 것 그 자체, 내가 믿는 것 그 자체, 찬양하는 것, 기도하는 것, 내가 전도한다는 것 그 자체에만, 주의 전을 열심히 사모한다는 것에만 관심 뿐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 일이라고 합니다. 함께하는 자가 주도권이 아니라 나 홀로의 주도권으로 일을 다 처리하는 겁니다.(빌 2:21)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사귐이란 상대방에 의해서 늘 역동적입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라는 광고 카피처럼. 사귀는 대상이 극장가에서 만나자 하면 거기에 가야 머리를 만납니다. 이번엔 극장이 아니라 백화점이면 그 백화점에 가야 머리를 만납니다. 즉 백화점이 교회가 아니라, 극장이 교회가 아니라 그 만남이 머리로 인해 몸이 결정되기에 그 몸을 교회라 하는 겁니다.사람들은 교회의 머리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를 사모하는 열심히 자기의 믿음을 교회 속에 가득 채우려 합니다. 열심 충성 봉사 섬김. 정작 이런 것이 가득찬 교회에 예수님의 머리 되심은 들러갈 자리가 상실 되어 오늘도 예수님은 수많은 교회들이 있어도, 머리 둘 곳 없이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되는 겁니다.수 많은 교회론이 펼쳐지며 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자 서로 섬겨야 한다. 다 그렇게 교육 받지만 머리되신 예수님이 있나 없나에 대한 날마다의 확인은 교육으로도 자기 믿음으로도 안되기에 눈에 안보이는 예수님 대신에 다른 것으로 채워 놓는, 뒤바꿔 치기 하는, 선수쳐버리는 기가막힌 우리 믿음 종교성에 우리는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비록 거룩한 모습 하나 없지만 창녀 세리(매국노) 강도 문둥병자 소경 귀신들린자로 교회 삼아버리시고 그 교회의 머리가 친히 되셨습니다. 완벽한 몸뚱아리의 머리 되시길 원치 않고(그들도 천박스러운 비천한 머리는 싫타 하여 버렸습니다), 오히려 비천한 자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완벽한 역사전통의 거룩으로 갖출 것 다 갖춘 예루살렘 교회와 예수님이 친히 세운 약하고 뭐하나 변변한 신학, 교리, 개혁정신 등 그런거 하나 없는 약하고 천하고 미련한 교회가 서로 충돌하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두 교회다 천국 못 갑니다. 구원 없습니다. 그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냐 아니냐 로만 결정 될 뿐이지, 인간의 믿음은 잘 난 교회 못난 교회 둘 중 하나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 뿐입니다.예수님 !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저마다 꿈과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는 집을 짓고 있습니다. 내가 건축한 교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겠다는 열심으로 오늘도 교회 짖기, 개혁교회 만들기, 바른교회 세우기를 꿈꿉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교회를 향하여 눈물 흘리십니다. 머리는 없고 몸뚱아리는 자기의 믿음으로 꽉 채워서 교회 이다고 우깁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 눈물을 우리가 어떻게 과연 믿어야 할지요? 어떻게 그 눈물에 우리가 동참 할수 있겠습니까? 주님 그저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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