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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170210b히13장5절(하나님의 형상)-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

안양20170210b히13장5절(하나님의 형상)-이 근호 목사

아까 중요한 거 다시 합시다. 무슨 뜻이냐 하면 이겁니다. 선악과가 있잖아요. 지금 선악과 위험한 지뢰밭을 에덴동산에 낙원에 왜 나두었느냐 말이죠. 그것은 마귀를 유인하기 위해서 하신 거예요. 마귀를 유인하는 겁니다. 인간 쪽에서 보면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되지요. 그건 사람에게 해당되는 식이고 마귀는 이미 죽은 거예요. 죽었으니까 죽은 행세를 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귀는 계속 따 먹으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아담보고. 이미 죽었으니까. 인간은 아직까지 선악과 따먹지는 않아서 안 죽었잖아요. 저주를 안 받잖아요. 에덴동산에 그냥 살고 있잖아요. 뱀이 에덴동산에 침투한 거예요. 침투해가지고 자기는 이미 신세 조진 거예요. 이미 저주 받는 겁니다. 저주 받는 티를 내는데 자기 자신의 본성을 그대로 발휘할 수밖에 없어요.

선악과 따 먹어라! 선악과 따 먹어라! 지는 망했지만. 자꾸 망하라고 하는 거예요. 따 먹어라 하는 거예요. 따 먹어라 하는 대상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다 말이죠. 그러니까 악마의 적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형상이에요. 그런데 형상이 신약에 보면 누구에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귀는 철저하게 아버지 앞에서 예수님과 같은 라이벌을 느끼는 겁니다. 그 라이벌이 진짜 아들과 가짜 아들이 라이벌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이스마엘 말고 누구? 이삭. 에서아니고 누구? 야곱. 성경 보면 희한한 게 그냥 야곱만 구원하면 돼요. 그런데 왜 에서를 맏이로 들러리로 왜 나옵니까? 들러리로 왜 필요해요?

인간 구원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 세계에서 주가 되신 분이에요. 만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주가 되신 게 아니고, 이게 삼위일체로 안 풀려요. 삼위일체 백날 해봐야 이거 안 나와요. 그래서 제가 삼위일체 싫어하는 거예요. 진짜 복음은 삼위일체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삼위일체는 어떤 궁극적인 논리를 끄집어내는 건데 그 논리가지고 영적세계로 점프할 수가 없어요.

니고데모가 밤에 왜 찾아왔습니까? 비약하려고 하잖아요. 어떤 논리로 체계를 갖추면 나는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볼 수 있습니까? 어떤 논리를 제시하라고 하는데. 니고데모는 본인을 뭐로 봅니까? 인간으로 보잖아요. 예수님은 이 니고데모를 뭐로 바꾸는가 하면 육으로 바꾼 거예요. 왜냐 하면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나머지 모든 인간은 죽으리라, 죽으리라, 이미 누구 편입니까?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쪽이에요. 생명나무 있는 쪽이 아니고 생명나무가 없는 쪽이에요. 아니 훌륭한 사람 많은 거 알아요. 착한 사람 많은 거 아는데. 자기 두 발 딛고 있는 자리가 생명나무가 없는 곳에 있는 한, 착해 봤자고 훌륭해 봤자고, 간디고 공자고 맹자고 해봐야 그 근처에 생명나무 있습니까? 부처 옆에 생명나무 있습니까? 없잖아요.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종교가. 아니 교회 다니는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님이 함께 있어서 계속 말씀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니가 일방적으로 니 변명으로 일관하는 인생인 것을 깨닫게 하는 거예요. 돈을 사랑 안하려고 애를 썼는데 마침 요번에 목돈 들어와서 잠시 한 이틀 동안 사랑했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해해 달라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고 니가 누구냐는 거예요. 니가. 앞으로 잘할게요. 가 아니고 니가 누구냐는 겁니다.

선악과를 심어놨을 때, 주님 쪽에서 인간보고 이야기합니다. 따먹지 말라. 정녕 죽으리라. 그런데 여러분, 어떤 말을 할 때는 경험되지 않은 말을 할 때는 어떤 말인지 못 알아들어요. 그런데 아담은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할 때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죽어봐야 알지. 죽어본 적도 없잖아요. 예를 들어서 세 살 먹은 애보고 엄마가 이 고추장은 굉장히 매우니까 먹지 말라 했어요. 그래서 조카이기도 하고 숙모가 그런 이야기하니까 저는 실감나는 교육을 했지요. 먹여봤어요. 자, 엄마가 하는 뜻을 알겠지? 맵지? 그러니까 먹지 말라. 하는 거야. 내가 실감나는 교육을 나름대로 했는데 나중에 그 소리 듣고 나를 죽이려고. 우리 애한테 왜 매운 걸 먹였느냐고. 철이 없었어요. 지금도 철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의미 없는 말을 합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죽는다는 걸 니가 알잖아. 그러니까 먹지 마!” 이게 성립이 안돼요. 그러니까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의미는 없어요. 인간은 어떤 창조주와 관련성을 맺어야 의미가 발생되는 겁니다. 결국 인간을 만들어 놓고 인간을 마귀가 유인하는 미끼로 사용한 거예요. 그게 하나님 앞에 주되심에 의미에요. 그 의미는 어디에 나오느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금 이 말을 신학자들은 칼바트도 이해를 못해요. 형상대로 만들었다 하니까 칼바트는 이리 이야기합니다. 아~ 인간은 고귀한 존재다. 왜? 거룩한 하나님의 모습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우수한 형상이다. 이리 했거든요. 제 뜻은 그게 아니고 예수님이 다녀가는 중간 절차로서 의미 있다 이 말입니다. 중간 절차. 고유한 의미는 없고 하나님의 형상되신 분이 나타나서 인간을 어떻게 다루었느냐 주님한테 의미만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니 옆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뭐를 받는다? 저주를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왜? 피조물이니까. 독자적인 의미와 가치는 피조물에게 주면 안돼요. 왜? 창조주도 아니잖아요. 영광을 창조주가 받아야지 피조물이 왜 받아야 됩니까?

제가 이런 쪽으로 하니까 어떤 교수가 저한테 누구를 통해서 비난을 막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인간이 영광받기 위해서 그렇다. 이리 막 나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지요. 물론 기본적으로 함께 영광 받지만, 인간도 영광 받는다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공격하는 거예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직접 그 사람과 만나서 토론 안 됐으니까. 왜 그런 발상을 해야 되는데? 주님만 영광 받으면 됐지. 콩고물로 우리 영광 받는 이야기를 왜 그걸 굳이 하는 이유가 뭐냐, 그건 교인들을 꾀기 위한 하나의 장사술밖에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께 잘하면 여러분도 영광 받습니다. 결국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여러분의 뜻대로 되는 겁니다. 뜻을 위하면 교회에 나오셔야 됩니다. 절에 가면 안 되고. 교회에 나와야 되지요.” 이런 장사술을 펼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이야기 듣기를 원했고 사람이 소망이 있어야 살지 소망이 없으면 못 살아요. 아무리 어려워도 의인이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나는 이유가 뭡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엄마가 “야, 야, 저녁 됐다. 빨리 와. 밥 먹어라.” 그 소리 듣고 죽는 것을 보류하고 밥부터 챙기는 겁니다. 인간은.

인간은 누가 불러줄 때, 일단 희망을 얻고 가는 거예요. 인간은 희망입니다. 고도를 기다리잖아요. 고도가 뭐냐 하면 신이에요. 이름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신은 기다리는 맛이지 신이 나타나면 안 됩니다. 신이 나타나게 되면 뭐가 없어져 버려요? 그 순간 희망이 날아가 버려요. 블로흐라는 철학자가 희망의 철학이라는 것을 했고 그걸 누가 인정 했는가 몰트만이 희망의 철학에서 희망의 신학으로 바꾼 겁니다.

사람은 희망 없이는 못 산다는 거예요. 가만히 보세요. 진짜 그렇지요. 어려워도 슬퍼도 달리잖아요. 하니는. 왜 달립니까? 아버지보다도 엄마가 그리워 달리잖아요. 은하철도999 왜 달립니까? 죽었던 엄마를 보고 싶어서 그 은하철도 타고 가잖아요. 철이가. 모든 드라마 모든 시청률이 희망으로 힘내는 거예요. 칼이 가슴에 꽂혀도 희망가지고 살아가요. 도깨비처럼. 이 희망밖에 없는 세상에서 누가 죽었어요? 예수님이 죽었잖아요. 그러면 진짜 예수님은 죽었고 가짜는 교회에서 대환영받고. 장난칠 거 장난쳐야지요. 진실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잖아요.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 그 목사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 누가 예수님을 봤나? 이리 나와요. 그러면 예수는 모르고 지금 목회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 모르고. 사람들이 원하는 예수. 사람들이 원하는 예수하고 교환한 거예요.

좀 더 진도 나가 봅시다. 다윗에서의 나는 누구라 했습니까? 예수님. 자,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하면 다윗을 그냥 예수님 연결하면 예수님이 연결이 안돼요. 다윗에서 어디로 보내는가 하면 다윗 언약과 만나게 하는 겁니다. 다윗 언약과 만나는 순간 다윗은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고 다윗 언약 속에 어떤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누구냐, 주의 이름이에요.

주의 이름이 통치를 하시면서 하나의 미끼로서 누구를 사용하느냐, 소위 잘난체하는 다윗을 사용하는 거예요.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잖아요. 이게 사실은 게임으로 불공평한 게임입니다. 30판 해서 1판 더 붙어야 돼요. 돌을 빼고 일단은 한 번 붙어야 돼요. 완전히 K1게임하듯이 한 번 하고 깨지면 안 됩니다. 두 번 다시없어요.

홍해를 건널 때 애굽 군대가 빠져죽었잖아요. 그것도 불공평해요. 왜냐 하면 한 번 빠졌으면 그 다음에 바로 왕이 군대를 정비해서 다시 왔을 때는 공평하게 그들도 홍해가 갈라지고 말 타고 와가지고 애굽 군대하고 이스라엘 군대하고 30판 다시 붙어야 돼요. 그걸 가지고 이 세상에서 승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승리는 그게 아니고 가만히 있다가 선박 날리는 거예요. 상대방은 생각도 않는데 선박 날리는 거예요. 먼저 선박 날리고 내빼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사사기속의 그리스도 책에서 붙여놓고 승리한 것이 아니고 이미 확정된 승리를 못난 인간 보내서 확인 한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게 신약 오면 뭐냐, 십자가라는 새 언약의 승리를 위해서 작은 소자, 못났고 못난 인간을 이 땅에서 해가지고 누구나 니도 집적거리고 누구나 집적 건드리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도는 누가 봐도 건드릴 만할 정도로 본인이 죄인인 걸 알아야 돼요. “니 간음죄 했지?” “응” “니 살인죄 했지?” “응” “니 돈 사랑하지?” “어떻게 알았지?” 이게 성도에요. 누가 와서 집적거려도 “그래” “그래” “니는 간음에다가 거기다가 간음한 남편을 꼬셔가지고 미필적 고의에서 니가 앞장세워서 고난으로 니가 죽였지?” “응” “그래, 니가 잘났나?” “응 잘났어. 잘났어.” 이게 다윗입니다. “그래, 밧세바가 낳은 애는?” “죽었어.” “니가 죽였지?” “응” 이거 뭐 말할 게 없어요.

베드로보고 “당신, 죄인이야?” “응” “당신, 사도로 구원받았어?” “아니” “뭐로 구원받았어?” 베드로전서1장에서는 뭐라고 나옵니까? 보배로운 피로. 보배로운 피로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다. 내 대신 누가 죽었데. 이걸로 끝나고 말았어요. 이걸로. “바보야?” “응” “교회 몇 명이야?” “없어” 사도바울에게는 “교회 몇 명이야?” “아는 사람 몇 명 있어” “몇 명 되는데?” “편지에 등장하는 그 몇 명뿐이 없어.” “사도야?” “응” “니 전에 전도할 때 굶었잖아?” “응” “강도 만났지?” “응” “바다의 위협?” “응, 했어.” “사도야?” “응, 사도야.” “왜 그런데?” “은혜가 내게 족하데.” “니 병 들었어?” “응, 병 들었어.” “뭔데?” “사단의 가시라.” “기도했나?” “기도 했어.” “몇 번 했나?” “세 번 했어.” “주님이 고쳐줬어?” “아니” “왜 못 고치는데?” “은혜가 족하데.”

그런 사도바울 간증집회 해봐야 교인 안 모입니다. 말이 통해야 되지요. 말이 통해야. 성경 보면서 여러분 뭐 봅니까? 그런 거 눈에 안 보이던가요? 횡재하려고 보지 마세요. 횡재는 없습니다. 이 땅은 굉장히 정확해요. 노력한 만큼 주게 돼 있어요. 놀면 백수 되고 안 놀면 돈 벌고 그래요. 돈을 챙겨야 돈을 벌게 되어있고 돈 안 챙기고 돈 버는 수는 없습니다. 돈 안 챙기고 돈 나오면 돈 다 날립니다. 교회에 헌금한다고 돈 다 날리고. 헌금하면 더 주는 거 아니에요. 그걸로 끝이에요. 나가면 손해에요.

7절에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다윗이 믿음의 종말이 어떻습니까? 진짜 다윗이 율법대로 살 때는 남들 보기에 믿음인체 보였지요. 그런데 진짜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내가 모친의 죄 중에서 태어났다는 게 이게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그렇다는 거예요. 이게 자기 겸손의 미덕을 발휘한 게 아닙니다. ‘그래, 내가 이렇게 겸손하게 되면 이스라엘 양들이 얼마나 존경하겠나.’ 이런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니고 진짜로 그래요.

그래 다가도 나중에는 마지막 때는 분명히 인구조사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우리 같으면 그렇게 얻어맞았으면 인구조사 안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누굴 보냅니까? 사단이 와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시킵니다. 책임은 누구한테 있습니까? 사단을 누가 보냈어요? 하나님이 보냈지요. 그럼 책임은 누가 져야 돼요? 분명히 하나님이 져야 될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는가 하면 다윗은 누구 책임이라고 봅니까? 사흘 만에 칠만 명이 죽었지요. 온역으로 죽었어요. AI 조류 독감으로. 하여튼 죽었잖아요.

하나님이 사단을 보내놓고 자기 책임을 하는 이것이 뭐냐 하면 다윗언약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금 앞당겨 보여주는 겁니다. 바로 죄 지은 적도 없으면서 그 죄를 책임을 누가 담당한다? 예수님 본인이 담당하는 거예요. 지금 예수님 바빠요. 구약대로 살기에 바빠요. 착하게 사는 게 바쁜 게 아니고. 구약의 언약대로 살기에 바빠요. 아브라함 구원하기에 바쁘고, 야곱 구원하기에 바빠요. 이삭 구원하기에 바빠요.

그들에게 준 모든 코드. 그 코드를 예수님이 가져오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뭐가 되느냐 하면 패턴이 돼요. 같은 문양이 반복되는 것. 우리는 예수님의 뭐가 되느냐 하면 무늬가 돼요. 얼룩덜룩 무늬. 무늬의 특징은 중심이 없는 게 특징이에요. 남자들 예비군복보면, 예비 훈련가가지고 강의 들을 때 심심하잖아요. 맨날 하던 소리, 작년에 왔던 강사 또 와가지고 같은 농담도 한 번 들으면 좋은데 작년에 웃어줬지만, 그 다음 두 번째는 안 웃어주거든요. 같은 소리하니까.

그 때 무슨 생각합니까? 휴대폰 다 빼앗겼으니까 뭐만 보느냐 하면 개구리복 보는 거예요. 그 무늬를 보게 되면 똑같은 무늬에요. 얼마나 시간 때우기 힘든지 그걸 다 볼까요. 그 얼룩무늬가 똑같아요. 얼룩무늬는 분명히 무늬는 있는데 그 천의 무늬의 뭐가 없어요? 중심이 없지요. 천에다가 중심이 들어가 버리면 그건 디자인 위험한 디자인이 돼요. 왜냐 하면 사람의 옷에 거기다가 집중을 해버리면 전체적인 조화가 안돼요. 아름다움은 대칭성이거든요. 중심이 하나 차지해버리면 대칭성이 깨져서 이게 아름답지가 않아요.

어떤 옷 못 입는 여자가 원피스를 입었는데 거기다가 둥그런 태양 같은 하나 옆에다가 넣어보세요. 저런 미친 사람이 있나. 항상 옷 입을 때 앞뒤가 균형이 맞아야 돼요. 사람의 얼굴이 아름다운 이유가 균형이 맞기 때문에 그래요. 균형이 안 맞을 때는 성형외과 가야돼요. 이건 견적내서 고쳐야 됩니다. 한 쪽 눈은 나이 들어 주저앉았는데 다른 눈은 멀쩡할 때는 하나는 올려야 돼요. 주저앉은 거 집어가지고 올려줘야 돼요. 올려봐야 또 주저앉지만. 하여튼 버틸 대로 버텨봐야 돼요.

우리는 중심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 너 뭐 때문에 사느냐, 누굴 믿느냐 할 때, 답변하기가 굉장히 난처해요. 예수를 믿습니다. 이리 되어버리면 그 쪽에서 오해를 해버려요. 예수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처럼 오해를 해버린다고요. 그러면 우리는 뭐냐 하면 죽을 놈이 믿기는 뭘 믿어! 이리해야 정답이 되는 거예요. 죽을 놈이. 이미 살았다 이 말이거든요. 그런데 그 쪽은 못 알아 듣지요. 그걸 감췄으니까. 나는 살았거든. 헤헤. 이걸 살짝 감추고 “죽을 놈이 믿기는 뭘 믿어. 이리 살다 죽지 뭐” 우리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죽는 게 아니고 그런 말을 하던 안 하던 우리는 죽어가고 있어요. 폐기처분하고 있어요.

그래서 다윗은 다윗언약에 무늬고 이게 패턴으로 주어졌고 그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지요. 그래서 언약을 완성하신 분에 의해서 구약의 성도들이 무덤에서도 그들이 구원받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있는 무덤 문제는 먼저 일어나고 고린도전서15장에 보면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순서가 있습니다. 그 순서는 역사적 순서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터를 남긴 순서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누구부터 먼저 일을 했습니까? 아담부터 했으니까 아담부터 살겠지요. 이게 시간상 순서가 이리 한 것보다도 주께서 먼저 툭 툭 패턴을 던져놓은 그 패턴대로 이제 살아나는 거죠.

그러면 이 세상이 그리스도 언약 앞에서는 시간은 뭐 밖에 없는가? 시간은 현재밖에 없어요. 모든 게 현재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현재지만, 우리의 육의 세계에서는 이게 과거와 현재, 미래, 후회와 소망사이에 나는 거기서 뭔가 실존은 갈등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겁니다.

현재는 성령이 주님께서 와버리면 말씀+십자가가 와버리면 나는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말씀되고 십자가가 십자가 되는 효과를 위해서 그리스도 증인하라고 지금 내가 이런 지점에 이 순간에 내가 아직도 여기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몇 초가지도 않지만. 몇 초가든 말든 그건 시간은 의미 없으니까.

8절에 봅시다. 자, 아까 7절에서 믿음을 본받으라. 다윗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다? 마지막 끝까지 사탄이 와서 인구조사해가지고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그리고 분명히 모든 일은 누가 벌렸다? 주님이 했지만, 다윗은 뭐라고 합니까? 다 누구 때문이요? 다~ 내 탓이오! 내가 인구조사해서 했습니다. 사탄 니가 아니고, 다 내 탓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다 내 죄 때문입니다. 사실은 따지고 보면 예수님을 증거 하라고 예수님이 그렇게 일을 만들어놨지만, 우리는 다 내 탓이오! 이리 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주의할 게 있어요. 다 내 탓이라 했는데요. 이걸 주님 앞에서는 그렇게 하셔도 되는데 같은 인간보고는 그런 소리하면 안돼요. 같은 인간한테는 뭐? 뭐? 뭐? 뭐? 오늘 제목을 “뭐?” 라고 할까. 뭐? 뭐? 뭐? “니 잘났나?” “그래, 나 죄인이다! 왜?” 이리 나와야지 내 탓이오! 이러면 이용해 먹으려 해서 안돼요. 요거 밥이구나! 이러면 안 된다니까요. 같은 죄인에게 고백할 이유 없어요. 회개를 주님 앞에 해야지 왜 같은 인간보고 합니까? 목사보고 회개하지 마세요.

자꾸 회개하라 하면 “니나 하세요. 니나 잘하세요.” 하면 되지. 그럴 필요 없어요. 목사가 와가지고 “집사님, 오늘 회개해야 되요.” “안 할 거예요. 니나 하세요. 나 안 할 거에요.” “성경 보세요. 회개해야 성령세례 받습니다. 회개하고 믿어야 그 다음 됩니다. 회개라는 행위로 구원받습니다.” “니나 회개하세요. 니나” “나 그냥 죽을 거예요. 지옥 갈 거예요.” 이게 믿음의 진수입니다. 믿는 자는 그렇게 살았어요.

왜 그래야 되느냐, 그래야 주님 탓을 안 해요. “이번엔 주님이 실수하신 겁니다. 주님이 저를 잘못 관리하신 거예요. 복이 저쪽에서 이쪽으로 와야지요. 헌금은 제가 하는데 복은 왜 저쪽에서 받습니까?” 이런 노림수가 이러한 쓰잘데기 없는 그 흥정 같은 것을 안 하게 되지요. 됐지요. 그게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그 잔을 넘어갈 수도 있는데 넘어가지 않고 그 잔을 마시는 게 예수님의 믿음이었다. 죄도 안 지으면서도 그 죄를 자기가 담당하는 거죠.

그 다음에 8절에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뭐다? 동일하다. 여기서 이 말의 의미는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은 동일한 뜻이 아니에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렛 예수입니다. 나사렛이라는 동네는 하늘나라 주소가 없어요. 어디에 있습니까? 나사렛은 이스라엘 북쪽 100키로 위에 그 동네가 나사렛이잖아요. 그러니까 나사렛 예수라 하는 것은 이미 이 세상도 누구 손에 접수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 정은이가 까분다. 주께서 그렇게 까불게 하시는 거죠. 질문) “목사님, 어제, 오늘, 현재, 시간개념 아니지요?” 이건 시간개념이에요. 시간개념 속에서 주님은 동일하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변화를 유발하는 겁니다. 그걸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의 법칙이에요. 엔트로피라 하는 것은 무질서는 커지는 쪽으로 가고 반대는 없다는 거예요. 반드시 이 세상은 파멸로 이어진다는 것. 그걸 열역학에서 이미 20C초에 알아냈어요. 모든 것은 무질서화된다. 질문) “지옥도 영원하지요?” 당연하지요. 지옥을 영원하다, 라는 말을 하기 전에 해야 될 것이 뭐냐 하면 언약은 영원하다, 에서 하나는 저주 받을 자 또 하나는 복 받을 자. 천국, 지옥은 영원한 거예요.

언약을 영원히 하려면 언약이 영원히 성취가 되어야 돼요. 그래서 주님이 언약을 영원히 성취시켰거든요. 그렇다면 지옥에 누가 들어갑니까? 하늘나라 보좌에 마귀는 더 이상 오지 않아요. 지금은 까불락 거리면서 주의 보좌에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시킨다 하지만 모든 게 마지막이 되면 영원한 무저갱에 들어가 놓고 맨홀 뚜껑 닫아버리면 못 나와요.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지옥은 딴 게 아니고 “에이, 지옥 가거라.” 이 말이 아니고 “에이, 마귀하고 살아라.” 이게 지옥이에요.

“마귀하고 살아라.”를 다른 말로 하면 “에이, 적그리스도하고 살아라.” 이 말이고 “그래 주님 사랑하지 마! 그래 십자가 사랑하지 마!” 그 말이에요. 이게 오늘날 지옥이에요. 주님을 누가 사랑합니까? 자기만 사랑하지. 그래 얼마나 감사합니까? 천국 가기 전에 지옥 구경하고 싶었는데 실컷 하고 있잖아요. 아이고~ 고마워라~~

문밖에 나가면 다 지옥이에요. 계란이 왔어요. 계란! 이게 지옥이라니까. 무슨 천국이 계란이 필요합니까? 세상사는 게 전부 다 지옥이고 내일되면 또 촛불집회하고 지옥가고 태극기집회하고 지옥 갈 거예요. 실컷 관람하세요. 천국가면 어디 그런 좋은 구경하겠어요? 지옥 구경 실컷 하는 겁니다.

자, 8절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하지요. 동일하다 했으니까 그걸 어디다 적용시키는가 하면 6절에 적용시켜 봅시다. 동일한 분이 5절에도 붙고 6절에도 붙지요. 동일한 분이 우리와 함께 있다 이 말이죠. 그리니까 우리는 무엇에 기 죽었다? 겁냈다? 변화는 것에 너무 기죽었고 벌벌 떤 거예요.

그러면 왜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까? 돈은 우리에게 새로운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변화를 우리에게 강요하거든요. 20억? 그게 돈이야? 다른 사람 봐! 40억 하는 사람 도와주지도 않아. 그래 40억 벌어야지. 돈은 계속해서 더, 더, 더.... 음주 측정하듯이 더, 더, 요구를 하니까 직장에서 승진하면 그걸로 멈추지 않아요. 더, 더, 더, 높은 자리로 또. 임원 자리까지 올라가야 돼요.

애가 공부 잘해. 이제 전교1등까지 가야돼요. 전교1등, 전국석차가 10등 안에 계속해서 더, 더, 더. 애가 공부를 잘해? 그럼 효도해야지. 효도하면 뭐해? 돈을 더 벌어야지. 아휴~ 그게 참 자기의 소망이 되니까. 그러니까 이게 변화하는 것에 몸이 같이 놀아나고 있다는 자체가 그게 지옥이라는 겁니다.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주께서는 우리한테 꼭 필요한 것을 줬어요. 그게 용서입니다. 용서의 보자기에요. 제가 지난 수요일에 이야기했나요. 주일날 오후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죄는, 내가 지은 죄가 한 25가지라면, 내려온 보자기는 뭐냐 하면 50,000가지의 보자기에 해당되는 용서를 가져온 거예요. 그러면 이상하다. 나는 25가지 이외에는 나머지 한 2000가지는 내가 착하다고 여겼는데 용서가 50000가지 해당되는 그게 왔으니까 결국 나는 2000가지라는 그것도 사실은 뭐라는 말입니까? 이게 나는 잘났다고 했는데 나는 잘난 게 아니고 이게 보류된 죄가 된 거죠.

자기가 아무리 맨날 부흥회해서 회개하라 하는데 옛날에 했던 거 하라하니까 억지로 또 끄집어내서 되새김하듯이 하는데 용서는 이 오만가지에 해당되니까 보자기가 너무 커. 나는 그냥 반성합니다. 하고 교회 헌금 좀 바치라 하는데 예수님은 뭡니까? 용서는 자기 생명을 바쳐버려요. 너무 오버한 거 같아. 예를 들어서 애가 뭘 마시다가 물 좀 흘렸어요. 그러면 휴지가지고 닦으면 되는데 갑자기 엄마가 죽여주옵소서! 가슴을 마구 치면서 피를 흘리니까. 이상하다. 이게 균형이 안 맞는 거예요. 이걸 닦으면 그만인데 왜 엄마가 오버를 하고 있느냐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아직 멀었다는 거예요. 더 살아서 망가지고 더 살아서 죄를 더 지어야 돼요. 착하다 하는 것도 이게 누굴 위한 착함이냐, 나의 영광을, 자존감을 위한 착함 자체가 주님 앞에서는 용납이 안돼요. 우리끼리는 용납이 되는데 저 하늘에 계신 영광스러운 주님 보기에는 그것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뭐냐, 주님께서 이 땅을 다녀갔다는 말은 니가 무슨 짓을 해도 이미 용서는 다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용서를 확인하는 것만 남았어요. 회개한다고 용서 받는 게 아니고 이미 용서 받은 사실을 회개해보니까 다시 생각나게 만드는 거예요. ‘아! 바보같이. 용서받았지. 아이고~ 그것도 모르고 죄 지었다고 또 헌금 목돈을 내놓았으니 바보같이. 돈 낸다고 구원받는 거 아닌데. 또 속았어. 또 속았어!’ 이리 되는 겁니다.

자, 그 다음에 9절 봅시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 당시 히브리 당시에 얼마나 사기꾼들이 많았겠습니까? 거룩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거룩하면 일단은 여러분은 구원받고 하나님한테는 영광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했겠어요.

음식물가지고 장난치고 있는 사람이 죽 있는데, 그걸 가지고 11절에 보게 되면 10절, 11절 설명이 필요해요. 성경을 보면서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 나오는데 왜 그러느냐 하면 구약의 제사법하고 연관될 때는 사람들이 일반 교인들이 돈 번다고 바빠 가지고 언제 구약 제사법을 요약 할 기회도 없었잖아요. 구약 제사법 레위기 같은 거 신경 안 쓰잖아요. “예수 믿으면 됩니까?” “예, 믿으면 됩니다.” 아멘. 하고 끝나버리지 제사법하고 예수님의 어떤 관련을 몰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성경을 보게 되면 그러한 제사법이 주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왕 나왔으니까 제사법을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10절에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법이 있다. 라고 했는데 이걸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설명이 그렇게 호락, 호락하지는 않을 거예요. 제단이라 하는 것은 장소 점유입니다. 점유라 하는 것은 어떤 걸 차지하는 거예요. 장소를 하나 차지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지하철이 비좁을 때 엉덩이 큰 아줌마가 자리에 가방을 던져놓고 엉덩이 비비고 하면 장소를 점유한 게 되지요. 건드리지 마라고. 흔들면 앞뒤 다 튕겨져 나갈 정도로 자기 자리 장착하는데. 주님께서 이 땅을 한 곳을 점유했다는 말은 이 땅의 주인공이 나타난 거예요. 주인공이 나타나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책임을 물으면 안돼요. 이 땅에서 아무런 하나님 앞에 접촉점이 없으면 내 하는 잘못은 내가 책임져야 돼요.

그런데 하늘나라에서 동사무소를 여기다가 분집을 냈다. 그러면 사무를 누가 봅니까? 우리 심판에 관한 행정 처리를 누가 합니까? 그것은 자리가 점유된 제단에서 해야 되는 거예요. 이게 이스라엘의 특혜입니다. 다른 민족한테는 이런 이스라엘 내에 어떤 장소를 준 게 아니에요. 이스라엘에게만 12제단이 있으면 텐트를 쳐가지고 포진해가지고 항상 이 중앙을 하나님이 점유를 한 거예요. 문제 있으면 누구한테 와야 돼요? 점유된 중앙 성소에 와서 죄를 용서받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친히 이 경계선을 바깥의 이방민족과 차이 나게 지켜주는 겁니다.

지켜줄 때 근거가 있어요. 이스라엘이라고 지켜주는 게 아닙니다. 생산된 게 있습니다. 그걸 의의 생산이라 하는데. 생산이란 말은 제가 썼어요. 복음의 생산. 의의 생산. 생산이라 하는 것은 경제적 용어에요. 경제적 용어라는 말은 생산이란 말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썼느냐 하면 반드시 재료가 있지 않으면 생산물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재료가 있지 아니하면.

그럼 재료가 뭐냐, 이스라엘이 재료에요. 그들의 죄가 재료가 되고 죄로 들어가서 나오기는 뭐로 나오느냐 의가 나오는 거예요. 요게 제단의 장치가 하는 일이 역할이 이거에요.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언약’이라고 하는 겁니다. 언약이라 하는 것은 input 죄, output 의. 편리하지요. 그러면 우리는 궁금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죄가 들어갔는데 의가 나옵니까? 죄가 들어갔으면 죄가 나와야 되는데 의가 나오느냐 말이죠.

그 방법이 뭐냐, 죄가 들어갔으면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죄에 대한 벌이 있어야 돼요. 죄에 대해서 벌을 제대로 내릴 때 그게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겁니다. 정의를 부르짖는 게 뭡니까? 죄인에게는 벌을! 이게 정의 아닙니까? 사회 정의. 정치 정의지요. 마찬가지에요. 죄를 지었으면 벌로 때려줘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의가 나오느냐, 죄인을 때릴 때 그 죄의 것을 대신 얻어맞는 그 대상자가 나옵니다.

조선시대 때 돈 많은 양반들이 매를 맞을 때, 아프니까 어떻게 합니까? 친척이나 빌빌거리는 노숙자보고 대신 한 대당 10만원씩 주고 대신 맞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용서가 공짜가 아니에요. 무상이 아닙니다. 채찍 맞은 아픔이 있어요. 지난 주 낮 설교에 했는데 도마가 창 자국 못 자국 보잖아요. “왜 주님이 이렇게 상처가 났어요?” “니 때문이잖아. 니 믿음 없어서 창 자국 났잖아.” “아! 내가 믿음 없는 게 맞는군요.”이게 믿음이에요. 믿음이 있습니다. 하고 달려들면 그건 믿음이 아니고.

나로 인한 상채기. 나로 인한 상처가 주님 몸에 이게 영원토록 새겨져 있다는 사실. 그 상처가 새겨진 예수를 믿는 거예요. 그럼 그것은 뭘 믿는 거예요? 나는 죄인입니다.를 수용하는 겁니다. 받아들이는 거예요. 우리는 큰 소리 칠 수가 없어요. 범사에 감사할 뿐이지 찡찡거리고 이러면 안돼요. 지가 때린 상처가 있는데.

어려운 것이 여기 어린 양이든 수양이 들어갑니다. 들어가게 되면 대신 받아요. 받고 난 뒤에 연기가 올라가는 걸 가지고 이걸 번제라 합니다. 번제. 번제는 뭐냐,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냄새를 맡습니다. 음~ 향기 좋다. 다시 말해서 “나는 죄 지은 것한테 벌주는 게 취미야.” 그런 뜻이에요. “아이고~ 죄지은 놈한테 합당한 벌을 내리니까 내가 속이 다 시원하네.” 에스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에 벌주니까 내가 속이 다 시원하다.

그렇게 처리했거든요. 그런데 그 어린양이 이중성이 있어요. 대신 어린 양을 죽인다 하는 그 약속을 누가 수용하는가 하면 제사장이 수용을 하게 돼요. 그러면 그걸 무슨 나라라고 하는가 하면 거룩한 제사장 나라라고 합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나는 인간하고 상대 안한다. 제사장들만 상대한다. 그래서 제사장 나라에요. 제사장 나라는 왕이 없어요. 제사장들이 숨어있는 왕 하나님하고 중간에 중보자 역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사장 나라는 다른 말로 하면 중보자의 나라. 다른 말로 아들의 나라에요. 그게 천국입니다. 중보자가 나서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

중보자가 처리를 제대로 했으니까 죄가 벌이 안 나오고 용서가 주어지지요. 제사장 나라에서 뭐가 나오는가, 제사장 덕분에 하나님의 의가 나오고. 의라는 말은 거룩이 되고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더러웠는데 깨끗하다는 뜻이에요. 이런 말도 굉장히 어려운데 여러분이 어려운 말도 감당해야 돼요. 깨끗함이란 반드시 더러움이라는 게 선제되고 난 뒤에 깨끗함이 있는 것이지 그냥 깨끗함은 없어요.

하늘나라는 깨끗하다. 하면 안돼요. 하늘나라는 반드시 이 땅을 경유한 분이 깨끗하다. 이렇게 되어야 돼요. 이 땅을 경유한 분. 아들의 영광이 아버지의 영광이에요. 이 땅을 경유해야 돼요. 그래서 이스라엘 이 피조세계에 하나님께서 의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피조세계가 없으면 이 이스라엘이 없으면 제단이 없으면 하나님 의가 나오지를 않아요. 언약대로 할 때만 의가 나온다는 말은 이 죄와 인간들과 상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죄인인 인간들과 상대했다는 거예요. 죄인과 상대 안하면 의가 나올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의가 성사가 될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5장21절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이 의를 신약에 오면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화목제물이라 해요. 화목제물. 이 화목제물이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겁니다. 일단은 제단이 있다는 것은 장소를 점유한 거예요. 장소를 점유했으니까 이 점유했다는 것은 중앙에 있다는 말이고 모든 인간들은 중앙의 취지를 위해서 그들이 부속, 쉽게 말해서 일본말로 시다발이. 우리는 주님의 시다발이입니다. “이 시다발이가?” 이러잖아요. 느 아버지 뭐하시노? 조폭입니다. 뭐 이런 것이 있어? 하듯이.

우리는 주님의 시다발이에요. 그런데 그 시다발이가 주님의 시다발이는 천사도 그 시다발이 속에 들어갈 수 없어요. 천사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그 신분은 예수님의 신부의 자리에 진짜 영원한 자리는 인간이어야 되지 천사는 그 자리에 못 들어갑니다. 히브리서2장에서 그렇게 천사들이 부러워하는 거예요.

요한계시록에서 사도요한이 누구한테 절합니까? 천사한테 절하지요. 천사한테 절하니까 천사가 갔잖아가지고 “재벌2세가 나한테 절하는 게 다 있나?” 재벌 집 아들이 양반집 아들이 종한테 왜 절을 해요? 꼬라지는 이래도 하나님의 양자입니다. 맏이를 잘 만나 가지고 줄줄이 동생들이 맏이 덕분에 호강을 누리는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의 맏아들 되게 하심이라. 로마서8장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은 뭐냐, 중심 없는 자리에 중심을 이미 언약의 이름으로 중심을 잡았어요. 이제는 나머지는 뭐냐, 중심에 의해서 파생된 현상들이 점점 확대됩니다. 이스라엘에서 점점 더 확대가 되지요. 그게 뭐냐, 제사의 확대입니다. 제사장 너희는 다 해봐야 인간제사장은 어설프기 짝이 없어요. 제사장이 죽었다는 말은 메시아 아니구나! 메시아 아니야. 진짜 메시아가 아닌 거예요.

그러나 메시아는 말라기에 보면 메시아는 반드시 레위언약을 통해서 오게 되어있습니다. 말라기에 마지막에 보면 모든 언약은 소멸되더라도 레위 언약은 남게 되어있어요. 그 거룩의 예수님께서 레위 언약을 이룸으로서 또 로마서에서는 다윗언약이고 하여튼 모든 언약은 전부 다 예수님이 합류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이 땅에 장소가 점유되지요.

요 장소를 뭐냐, 수련회에서 했어요. 다중현실. 아토피아. 장소 없는 장소. 주님이 우리와 함께 있고 주께서 우리를 도와줌에도 불구하고 어디 있는데? 하면 소개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잘난 내가 천하 죄인으로 살아가는 이 모습 봐라. 이 변화가 내일 되도 마찬가지일거야. 이 동일한 변화가 주님 덕분에 생긴 변화야. 이게 바로 제사를 원하는 게 아니고 헌금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원하는 것은 상한 심령이라는 것을. 이 놀라운 변화. 이것은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갈라지고 홍해가 갈라지는 그 기적은요, 백날해봐야 남의 일이에요.

진짜 기적은 내 몸이 갈라져야 되고 내 마음이 쫙 갈라져가지고 내 죄가 드러나야 죄라는 마그마가 드러나야 기적이지, 헌금 얼마 했습니다. 교회 몇 년 다녔습니다. 목사, 장로입니다. 그건 기적도 아니에요. 땅 사놨더니 땅값 올라서 교회 지었다. 그건 기적도 아니에요. 진짜 기적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머리가 안 나올 싶은데 머리가 잘 나와서 이것도 기적이라 하는데 뭐 감사하니까 좋아요. 좋긴 좋은데 그래서 본인이 뭡니까? 누구야, 너? 미장원에서 머리 잘 나와서 뭘 느꼈습니까? 내가 예상한 대로 안 되는 내가 죄인인 걸 알았습니다. 그게 바로 기적이다 말이죠. 머리가 못 나와야 되는데 잘 나왔다는 계기를 통해서 내가 죄인인 걸 내가 영원토록 동일하게 변화지 않는 죄인인 것을 깨닫는 그게 기적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미 장소가 점유된 겁니다. 이 땅에 장소 없는 장소로 죄인이 된 거죠.

그 다음에 13장11절부터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건데 요건 다음 시간에 하겠지만, 우선 한 번 봅시다.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이렇게 되어있지요. 여기에 보면 짐승의 피가 들어가잖아요. 짐승의 피가 들어갔다는 것은 피는 태워지는 게 아닙니다. 피는 뿌려지는 거예요. 태워질 때는 연기가 돼서 사라지지만, 그 표현체, 인간의 눈에 띄는 표현체, 이 짐승이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가를 확연히 드러내는 바깥의 유일한 증거물은 피입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의 피이죠.

예수님은 피를 남기고 사라지신 분이에요. 피를 남기고. 그 능력은 부활해서 주어진 능력이고. 성령은 피를 앞장세워서 이야기하고. 그런데 구약에서는 이 기능을 누가 하느냐, 대제사장이 하지요. 제사를 할 때, 속죄제 제단이 있고 회막이 있습니다. 텐트가 있어요. 텐트는 둘로 나누어져 있고 커텐 쳐 있는데요. 속죄제 같은 경우에는 여기 향단이 있어요. 여기 뿔 바르고 7번 회막에다가 뿌리고 바르고 그 다음에 여기는 피를 제단 사면에 또 뿌리고, 피 가지고 뿌려줄 때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걸 거룩이라고 해요. 피로 말미암아 오염을 제거하는 겁니다.

그럼 이것은 누가 하지요? 마지막 묻고 마칩시다. 이게 어린 양의 피지요. 어린 양이 하지요. 그럼 내가 어린 양입니까? 아니면 어린 양은 나와 타인입니까? 남이지요. 그러니 복음이 뭐냐, 남이 일을 저질러 놓고 우리는 그 효과 받는 게 복음이에요. 그러니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면 돼요? 안 돼요? 이것은 굉장히 수상한 거예요. 내 인생에 대해서 내가 닦달 낸다는 것은 이것은 정말 믿음 없는 짓입니다.

“주께서 의도적으로 일으키셨습니다.” 이리 되어야지 그렇게 일으켰다는 것은 뭐냐 하면 그걸 인정할 때 구원받는 게 아니고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자꾸 놓치니까 일을 벌여가지고, 일을 벌리면 우리는 당장 본능이 뭡니까? “아이고, 안 그러는 건데. 그럴 필요 없었는데. 그 때 좀 속도 줄이지. 나는 순경 숨어있는 줄 몰랐지. 남들이 노랑불일 때 갔으니. 아이구!” 이렇게 하는데 그 경찰은 누가 배치했습니까? 주님이 배치했어요.

평소에 얼마나 주님을 믿는다 해놓고는 사실은 뭡니까? 자책해서 지금보다 내가 개선하려는 그 육적인 본성을 여전히 견제하고 있다는 것을 티를 내기 위해서 주께서 그런 사태를 일으킵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다음에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빈 파이프에 지나지 않는데 독단적인 나만의 나를 움키려 하는 이 버릇이 바로 사탄에게 배운 버릇인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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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0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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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