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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 강의(2017. 1. 20) 1강자유게시판마가복음

광주 강의(2017. 1. 20) 35-1

마가복음 9장 38-40절을 봅시다.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여기에 보면 제자들 생각과 예수님 생각이 다르지요. 다른 이유는 제자들이 세상을 보는 범위와 예수님이 세상 보는 범위가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을 좁게 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전체를 봅니다. 범위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예수님은 본인 중심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같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름을 알려주십니다. 여기서 차이가 발생하고, 차이에서 십자가 사건을 벌어집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바라봅시다.’라는 말의 의미는, 내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수용하는 겁니다.

차이를 수용한다는 것은 ‘나는 늘 현실과 다른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럼 현실과 같은 방향으로 바꾸면 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하는데 방향을 바꿀 수 없는 이유가,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내 중심이기 때문에 이것을 포기하거나 스스로 거부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는 차이가 나든 말든 끝까지 고집스럽게 내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예수 안에 들어있는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것은 현실에 안 맞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이 실패 체험이 성도에게 주어진 복입니다. 실패 체험보다 더 좋은 체험은 없어요. 왜냐? 자기 고집을 내세웠다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구 뭐라고 해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 굉장히 후한 점수를 받는 겁니다. ‘내 뜻은 이런데 주님의 뜻은 이와는 다를 거야.’ 이건 얍삽한 거예요. 절대로 이렇게 살면 안 돼요. 자기 고집대로 밀어붙여야 돼요. 그래야 차이를 발견하게 되고, 차이가 나야 ‘이 죄인을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가 그 현장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조치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들을 따르지 않으면서 예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해서 그들을 금했지요. ‘당신들 그러면 안 돼. 우리가 본부야.’ 본점에서 물건도 안 내려줬는데 대리점에서 물건은 판매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제자들은 계통을 생각하는 겁니다.

제자들의 생각은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고, 그 아래 독점적으로 우리(제자)들이 있고, 그래서 ‘예수님의 일과 우리들이 하는 일이 일치되고, 따라서 우리들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곧 예수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주님의 뜻과는 차이가 난 거지요. 이 차이는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12제자에게 세상 모든 권한을 다 넘긴 것이 아니고 다른 주머니를 찬 것 밖에 안 됩니다. 제자들 외에 다른 사람에게 주의 일을 시킨 것이면 제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황당한 거예요. 예수님의 모든 권한을 제자들에게 넘기면 간단한 문제인데 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니면서 자신의 권능을 제자들에게만 아닌 다른 자들에게 허락하시는 이유가 뭔가?

실패하는 체험이 가장 좋은 체험이라고 했지요.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면 으스대고 까불어요. 이렇게 되면 십자가 앞에 나설 이유가 없어요. 차이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잘 됐다는 말은 주께서 도와주셨다는 말이고, 결국 내 뜻과 예수님 뜻이 일치되니까 자신이 독점권을 가진 것으로 여겨요.

제자들이 건방지게 나온 이유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독점해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제자들은 종교와 복음의 차이점을 몰라요. 종교는 내 것을 드려서 보상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일체 우리의 것을 받지 않습니다. 더러워서 안 받습니다.

우리의 회개도 안 받고, 우리의 헌금, 기도, 봉사도 안 받고, 우리의 어떤 정성도 안 받습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누누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다니면서 함께 고생하니까 복음이 아닌 종교가 되어버려요. ‘주님과 함께 고생하는 사람이 우리 외에 또 있겠어? 우리가 고생한 만큼 독점권도 우리가 갖는 것이 당연하지.’

‘주님을 따르지도 않고 주와 함께 고생하지도 않는 자들에게 주님이 독점권을 줄 리가 없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종교의 대표는 유대교입니다. 지금 제자들이 모르는 것은 ‘주의 이름, 그리스도’가 무엇인지를 몰라요. 단어의 뜻을 모르니까 복음으로 맺어야 될 관계를 종교적으로 맺은 겁니다. 정성을 다해 희생하면 주께서 은총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복음이 되고 신앙이 되어야 하는데 종교로 이동하는 허점을 제자들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이 허점은 오늘날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들에게 먼저 지적한 것이지요.

39절에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1절에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여기서 ‘내 이름(주의 이름), 그리스도’가 무엇인가? ‘주의 이름’을 설명하려면 반드시 대비되는 이름이 있어요. 그게 뭔가 하면 ‘나의 이름’입니다.

성경에서는 ‘나의 이름’이라고 하지 않고 ‘아담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즉 ‘사람의 이름’이 되겠지요. 그래서 주의 이름은 사람의 이름 속에 섞여서 찾아오신 겁니다. 로마서에는 주의 이름은 ‘마지막 아담’이라고 했어요. 어떤 분은 이런 표현을 했어요. ‘복음의 종착점’이라고. 더 이상은 없다는 거지요. 진리가 다 드러난 거예요.

천국은 무엇입니까? 아담에게 마지막 아담(예수님)이 덮쳐서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겁니다. 로마서 6장에 나오는 말씀이죠. 그러니까 아담이 늙어 죽는 것은 소용없어요. 그래서 천국은 죽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살아 있을 때 이미 확정됩니다.

구원은 탈락이 아니고 배재입니다. 입사 시험에 합격한 자들에게 ‘합격한 사람은 1주일 후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연락이 왔어요. 이것은 합격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만약 합격하지 않은 사람이 오리엔테이션에 가면 그 때는 추방됩니다.

탈락이라고 하면, 둘이 같이 시험을 쳤는데 A는 합격하고 B는 탈락했다고 하지요. 배재는 탈락과 달라요. 이미 결정되었기에 ‘너는 들어가면 안 돼.’ 라고 밀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밀어내는 거예요.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누가 잘하는지 한 번 보자.’ 이것은 종교입니다.

솜씨를 보고 판정하는 것은 종교고, 복음은 우리의 솜씨를 전혀 보지 않습니다. 왜냐? 더러워서 용납하지 않습니다. 수련회 때 제가 말했지요.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을 죽게 만듭니다. 아담이 스스로 죽는 것은 종교입니다. “내가 주를 위해 죽겠나이다.” 이건 종교에 해당됩니다. 베드로가 ‘목숨을 바치겠나이다.’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거절했지요. ‘주의 이름’ 안에 이런 요소들이 담겨있습니다.

나의 이름은 아담의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아담은 1명입니다. 이걸 이해해야 돼요. 어떤 사람은 ‘팔자 참 더럽다.’고 하는데, 더러운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은 똑같아요. 왜냐? 모두가 아담 안에 속했기 때문에 네 인생, 내 인생 따로 없이 똑같아요. 이 말을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아요. 왜? 어떤 사람은 일생을 편하게 살다가 죽을 때도 편하게 죽고, 어떤 사람은 평생을 고생하며 살다가 죽을 때도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요. 그러니 인생이 똑같다는 말을 인정하지 않아요.

아담의 요소가 확장되면 아담의 요소를 드러내기 위해서 숫자가 계속 늘어납니다. 지금까지 태어나서 죽은 사람이 200억 쯤 된다고 하는데, 200억 속에 아담의 요소가 파급된 거예요. 태어나서 고생을 모르고 평생 편안하게 산 사람과 태어날 때부터 어려운 환경에 태어나 질병으로 평생을 고통당하며 산 사람을 비교해 봅시다.

둘 다 아담의 속성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겁니다. 꽃봉오리에 꽃이 하나 피면 다른 꽃은 피지 않습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 꽃을 피우게 되면 다른 사람은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요. 그런데 그 모두를 모아보면 그것이 아담의 속성입니다.

아담의 속성의 특징이 있어요. 이것을 알아야 이것과 반대되는 예수님의 속성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특징이 뭐냐? 창세기 2, 3장에 나옵니다. 4장에는 살인 사건이 나오지요. 인류 최초의 범죄가 살인 사건입니다. 살인한 자는 아담의 아들이지요. 살인 사건이 인간 속성의 근본이 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가 됩니다. 그럼 사람들이 우상이냐, 아니냐를 판정할 때 형상으로 만들면 우상이고 보이지 않는 여호와를 섬기면 우상이 아니라고 여기는데 그것은 잘못이에요. 십자가 언약과 무관한 신은 전부 우상입니다. 탐심은 사단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죄가 엎드려 있다가 가인을 덮쳤잖아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독하고 조롱한 배후 세력은 누구입니까? 사단입니다. 그러면 아담 속에 악마가 심어준 것은 탐심입니다. 그러면 탐심이 어떻게 살인으로 이어지는가? 프로이드가 이런 주장을 했어요. ‘인간의 모든 행위는 성욕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이 주장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학문이 시작된 지가 4,000년이 흘렀는데, 인간의 모든 행동이 성욕에서 나온다는 것은 프로이드가 처음 주장한 내용입니다. 이 사람은 어디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는가 하면, 인간이 자기 몸을 스스로 관리하지만 성에 관해서는 본인이 절제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을 보고 마음이 끌린다면 이것으로 끝입니까?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플라토닉, 정신적 사랑이라고 합니다. 옛날 그리스에서는 소년을 사랑하는 것이 유행했어요. 이성을 사랑하는 것이 지겨워서 동성을 사랑하게 되고, 동성 중에도 어린 소년을 사랑합니다. 프로이드는 이것을 정신병 증세로 봅니다. 인간이 정신병자가 되지 않으려면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욕구, 욕망, 충동을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것은 다 관리가 되는데 성욕은 정신적으로 관리가 안 되는 것이, 육신이 정신보다 앞서서 움직이니까 통제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프로이드는 더 깊이 생각했지요. 인간의 모든 행동이 성욕에서 나오기에 성욕을 조사해 본 것입니다. 성 충동은 인간의 정신으로 관리할 수 없어요. 절제를 시켜도 일시적인 뿐 지속할 수는 없어요.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절제가 되지만 혼자 있을 때는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성욕이 발동할 때 상대방을 파괴하고 싶은 겁니다. 극도의 기쁨이 있을 때 상대를 죽이고 싶어요. 사마귀는 짝짓기를 한 후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습니다. 극도의 희열에 빠지면 이게 바로 상대방을 파괴하는 겁니다. 살해의지와 동일하게 되는 거예요.

사단이 아담에서 한 말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고 했어요. 하나님은 둘을 용납 못합니다. 나 외에는 다 나에게 굴복해야 합니다. 인간은 이런 욕망이 멈추지를 않습니다. 이것은 이성이 아니고 본능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 외에 모두를 죽여야 합니다. 이것이 희열 중 최고의 희열입니다.

성관계를 통해서 상대방을 파괴하고 죽이는 겁니다. 진짜 죽이지는 않지만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그 파괴 본능이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마귀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우리는 상상도 못합니다. 마귀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신이 되라고 한 거예요. 신이 되라고 하면서 점점 인간을 죽이는데, 그 방법이 뭔가 하면 상대방을 파괴시킨 후 죄책감을 느끼게 합니다.

절정의 순간에는 이성이 통하지를 않아요. 그러나 절정의 순간이 지나면 다시 이성으로 돌아옵니다. 그 때 느끼는 감정이 ‘내가 뭔데 나의 만족을 위해 상대방을 죽였나? 나는 나쁜 놈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서 스스로 상대의 종이 됩니다. ‘당신의 기쁨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용의가 있습니다.’

스스로 종이 된다고 했는데, 그 종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해 순교하고, 내 죄를 보상할 수만 있다면 내 목숨도 아낌없이 드리겠다는 그 의도가 자신에게 또 최고의 희열을 줍니다. 에스더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 앞에 나타난 에스더를 보면서 최고의 희열을 느낍니다.

희열을 느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납니까? ‘네가 원한다면 이 나라의 반을 주겠다.’고 하지요. 이 말은 헤롯 왕이 딸의 춤을 보면서 기뻐하며 이런 말을 하지요. 본인이 무슨 제안을 한 것인 줄도 몰라요. 딸의 춤에 매혹되어 황홀한 나머지 딸에게도 최상의 기쁨을 주고 싶었어요.

사랑 앞에 자기 자신이 작아지는 거예요. 그것도 모자라요. 당신의 존재를 위해 나는 사라져 가는 겁니다. 모나리자의 그림 앞에서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면서 2시간, 3시간 그 자리에 서서 작품 앞에서 자신은 작아지는 정도가 아니고 자신이 사라져도 그 감동을 유지하고 싶은 거예요.

인간은 사단에서 사로잡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습니다. 나를 대신할 수 있다면 아낌없이 죽겠다는 것도 죽음이고, 내가 신이기에 내 앞에 아내도 자식도 없습니다. 오직 내 만족을 위해 모두를 희생시켜서라도 나의 기쁨을 채우고 싶습니다. 인간은 죽음과 죽음 사이에 갇혀 있습니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죽음의 충동에서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정리해 봅시다. 죽음 충동인데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날 건드리면 죽인다.’ 이것이 우리가 평소 행동하는 가운데 나옵니다. “취직시켜 주세요. 취직만 한다면 어떤 일도 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충성하겠다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큰 수술을 하는데 “우리 아버지 살려준다면 제가 간을 팔아서라도 수술비 내겠습니다. 수술만 잘 되게 해 주세요.” 자진해서 종이 되는 거지요. 이 말은 자진해서 ‘내가 원하는 바가 된다면 나는 더 이상 인생 안 살아도 돼요.’ 이거잖아요.

시집 간 색시가 “시부모님 사랑만 받는다면 내가 이 집 귀신이 되겠습니다.”라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내게 돈 200만원 빌려 준다면 1주일 내에 꼭 갚겠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나에게 기쁨을 준다면 아낌없이 나는 당신의 종이 될 용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방금 한 말 있지요? 취직, 돈 빌려 주는 것. 결혼. ‘만약 내가 원하는 것을 안 해주면 내가 이 회사 불지를 거야.’ 불을 지르지는 않지만 태우고 싶어요. ‘내 결혼을 끝까지 반대한다면 나는 시부모 얼굴도 안 볼 거야.’ ‘만약 당신이 내게 돈 200만원 안 빌려준다면 당신 인생 얼마나 잘 되는지 내가 지켜 볼 거야.’

이게 바로 마귀의 심성이잖아요. 마귀가 시키는 것은 자기처럼 되는 거예요. 마귀는 타락한 천사입니다. 사단은 하나님께는 대들지 않아요. 자진해서 하나님의 계약자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사단은 예수님 자리에 끼어들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인간들은 종교를 원하는 거예요. 하나님과 직접 상대하기를 원하는 겁니다. ‘내가 목숨 바쳐서 주를 따르겠나이다. 금식기도 하겠습니다. 헌금도 하겠습니다.’ 이 못된 버릇이 우리 속에 들어있어요. 주님은 복음을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복음을 종교로 바꿉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몰라요. 자기 마음에 드니까 아낌없이 바치겠다는 겁니다.

이 마음의 이면을 보면 ‘내 뜻대로 안 해주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라는 것이 숨어있어요. 이런 마음이 사단의 심보이고 우리는 사단의 아바타입니다. ‘하나님, 나와 직접 거래합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입니다. 사단의 전당이죠. 그럼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은 어떤가? 똑같아요.

유대인들의 교훈집 탈무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1)나는 형제와 싸우고, 2)우리 형제는 사촌과 싸우고, 3)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과 싸운다. 이것이 뭐냐 하면, 나는 형제와 싸우지요. 그런데 만약 사촌이 달려들면 싸우던 형제는 한 편이 되고 사촌과 싸우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른 민족이 공격해 오면 사촌과 내가 힘을 합해 다른 민족과 싸웁니다.

이 말을 거꾸로 해봅시다. 다른 민족과 싸움이 없으면 가까운 친척과 싸웁니다. 천척과 싸움이 없으면 형제와 싸웁니다. 이 교훈이 말하는 것은, 인간은 평화로울 때나 싸울 때나 항상 자기를 위하여 싸운다는 겁니다. 그런데 프로이드는 여기에서 더 나갔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이성적이고, 더 깊은 곳, 충동까지 들어가 보자. 이것은 꿈 해석이죠.

충동의 기본은 성욕입니다. ‘성욕에 들어가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쾌락에 이끌린다.’ 문제는 프로이드가 이것을 해결 못했어요. 이 쾌락이 어디서 오는지를 몰라요. 우리는 쾌락을 얻기 위해 날마다 더 큰 자극을 원합니다. 사람은 금지된 것을 소망합니다. 금지되지 않은 것은 쾌락감이 떨어져요.

그동안 시험 공부한다고 얼마나 힘들었어요? 그런데 애쓰면서도 어떻게 인내했습니까? 시험이 끝날 날을 기다리며 참았지요. 금지된 것 너머를 고대하면서 참은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바로 충동에서 나왔고, 성욕에서 나왔다고 해서 인간을 인간 선에서 무엇으로 바꾸는가 하면 짐승까지 낮춘 거예요. 프로이드가.

인간에서 짐승으로 낮추니까 비로소 정답이 나왔어요. 뭐냐 하면, 인간은 원래 없는 건데 짐승 같은 우리가 자기를 고상하게 만들기 위해서 인간으로 지칭한 것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4장에 보면 정상적인 동생을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죽일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죄가 덮치니까 아무 이유도 없이 동생을 죽이게 됩니다.

우리 생각에는 동생을 안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프로이드의 이론에 의하면, 동생을 안 죽이면 쾌락을 놓치게 돼요. ‘쾌락을 참으면 되지.’ 라고 하는데, 참는 것은 이성의 문제입니다. 참는다는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밑으로 숨깁니다. 언제까지 참을 건데요? ‘참자. 오늘은 안 죽인다.’ 이건 지연시키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절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프로이드의 주장 중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는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튀어나와요.’ 어떤 여인이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뜨개질을 합니다. 그 광경을 보고 프로이드가 하는 말이 ‘당신은 지금 간음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어요. 이처럼 모든 행동은 충동이 주는 쾌락을 억제하는데, 억제를 하니까 몸이 폭발 직전에 있어요.

쾌락은 죽는데서 와요. 죽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쾌락이 없어요. 그래서 배고플 때는 ‘배고파 죽겠다.’고 하지요. 그래서 배불리 먹이면 그 다음에 뭐라고 합니까? ‘배불러 죽겠다.’고 해요. 배불러 죽을 때 기분 좋겠어요, 기분 나쁘겠어요? 배부른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요. 유지하는 방법이 현재의 상태를 고정시키는 것이고, 이 행복한 순간에 죽고 싶은 거예요.

가장 행복한 것은 최고의 기쁨을 함유한 채 죽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내리는데, 이왕이면 추운 겨울에 차가운 물에 뛰어내릴 때 고통이 있는데, 이 고통이 나의 쾌감의 정도를 더 높여줍니다. 이게 충동인데, 이 충동이 모든 인간 속에 다 담겨 있어요.

모세는 화가 나서 지팡이로 반석을 내리쳤어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자기 충동이 주님의 말씀을 가린 거예요. 달리 말하면 주님이 모세로 하여금 이성의 껍질을 벗긴 거예요.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이 언제 타락합니까? 번창하고 일이 잘 될 때입니다. 왜냐? 본인이 신이기 때문에.

사단이 인간에게 심어준 것이 뭔가 하면, 누구를 의지할 필요 없이 스스로 서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자기가 예수님의 하청업자기 때문에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거예요. 이것은 주님의 주도권을 빼앗았다는 말은 아니고, 주님으로부터 하사받은 권한을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다른 무리들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니까 제자들이 화가 난 거예요.

제자들은 결국 주님 앞에서 자신들의 악마적 속성을 들킨 거예요. 사실은 주님이 이런 상황을 유도해 냈지요. 우리가 생각할 때에 평소와는 반대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신은 당연한 운명인 거예요. 우리가 죽지 아니하면 이 불신은 계속됩니다. 주께서 우리를 죽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혼자 남는데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은 우리를 죽이면서 본인도 같이 죽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을 부활시킬 때 우리도 같이 부활되고 보니까 비로소 내 중심이 아닌 예수님 관점에서 자기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린 겁니다. 이것은 성령을 받아야만 되는 일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수입을 늘려주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관점을 우리에게 심어줍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모든 행동은 죽음 충동에서 나왔고, 그 죽음 충동은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쾌락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쾌락은 항상 우리를 갈급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쾌락이 무엇인지에 대해 프로이드나 라캉은 알았습니까? 몰랐어요. 이들은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했어요. 인생에 목표가 있는데 이것은 미지의 X입니다. 뭔가 목표는 있는데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목표는 아무리 다가가도 계속 생성됩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인간은 이미 하나님의 계약 안에 놓여있기에 본의 아니게 영적 전쟁에 휘말린 겁니다. 그래서 탐심은 곧 우상숭배가 됩니다.

인간이 욕심을 갖는 것, 최고의 쾌락을 탐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했기에 탐심이 곧 사단 편에 선 것이고 우상숭배자가 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고, 주도권을 남에게 안 빼앗기려 하고, 예수님을 이용해서 나의 유익을 구하는 이 모든 사단적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낍니까?

지금 제자들이 무엇 때문에 불쾌해 합니까? 예수님 때문입니까, 이웃 때문입니까? 이웃 때문에 기분이 나빴어요. ‘왜 우리 허락도 없이 귀신을 쫓아내? 귀신을 쫓아내려면 우리 허락을 받고 해야지.’ 이런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고자질을 하지요.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막10:38).”

제자들 생각에 예수님은 자기들 편이라고 여긴 거예요. 그러나 제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아담에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할 일은 주님께 할당 받은 아담의 속성을 죽는 순간까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보여주면서 이미 죽었던 내 모습이 바깥으로 배출되는데, 그것은 분명히 해독 주스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내가 아담의 죄악 된 속성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아는 재미로 사는 것이 성도가 사는 즐거움입니다.

10분 쉽시다.

(2017. 2. 9. 09:51 녹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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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0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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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