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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79강-YouTube강의(위험한 토대)170117-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열왕기상

179강-YouTube강의(위험한 토대)170117-이 근호 목사 179강, ‘위험한 토대’입니다. 성경에서는 토대를 두 종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받을 토대와 구원받지 못할 토대. 마지막 심판 때 본질이 다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 드러난다면 그러면 우리는 내 토대가 어떤지를 아직 모르고 있지 않느냐,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 토대 오기까지 수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토대가 무엇인지 점검하는 양식으로 이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일단 우리를 심판하는 절차를 가지고 우리에게 들이대고 그 심판에 대해서 공감하는 사람은 구원이 된 사람이고, 그 심판에 대해서 납득을 못하고 그 심판기준에 대해서 거부하게 되면 그 사람은 지옥에 가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늘 성경 말씀을 봐야 된다는 이유가 뭐냐 하면 자기의 토대 점검을 수시로 해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오늘 제목이 ‘위험한 토대’다 말이죠. 그럼 위험한 토대니까 인간들이 근본적으로 살면서 날마다 자기의 기초, 자기의 든든함을 기초공사를 늘 다지고 다지는데 기초공사 다질 때, 그 다지는 그것이 어떤 식으로 다지느냐 하면, 대외적으로 나는 적어도 이 정도 되는 사람이다. 라는 고 방식에 그 형식을 갖추고 토대를 갖추게 됩니다. 누가 나에게 어떤 이야기했을 때, “나 이 정도야. 나 이런 사람이야. 나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야. 나 이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어. 이 정도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그렇게 무가치한 게 아니야.” 라는 식으로 대외적으로 마음에 반발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남을 안 만나도 남을 만났다 쳤을 때, 혹시 순식간에 남한테 들킬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를 사전에 염두에 두고 그것을 예상해서 항상 자기 생활에 다짐에 철저를 기하는 거죠. 그러면 그것은 누구한테 들킨다는 말입니까? 남한테 들키는 거잖아요. 남한테. 하나님이 아니고 남한테. 그러면 그 남한테 들킬 때 남이 나한테 들이미는 기준이 뭐냐, 그것은 내가 평소에 내가 갖고 있는 기준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에 내가 내 모습이 부끄러울 때는 남도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느냐. 남이 가는 기준과 내 기준이 이 인간상에서는 똑같다는 생각으로 평소에 살아가요. 그러니 평소에 살아가면서 늘 의식하는 것은 집밖에 나갈 때는 집밖에 다니는 그 사람들, 만나는 사람들 의식하지요. 집안에 있을 때나 외출할 생각이 없을 때는 편한 복장을 합니다. 그런데 밖에 나갈 때는 남들이 이미 거기에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 욕 얻어먹지 않기 위해서 내 치장을 다시 해야 되고 화장도 다시 해야 되겠지요. 이리 생각하니까 우리의 평생 동안 24시간 매일 일상이 딱 그거지요. 뭐 그거 외에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게 일상적이다 보니까 그게 당연하고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가지고 한 번도 하나님 앞에 나설 때 내 토대는 건전한가, 옳은가는 평소에 남들하고 사귀는 게 너무나 일상화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딱 끼어 들어서 너의 토대가 뭐냐를 묻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감이 없어요. 감각이 없어요. 성경에서는 도둑같이 온다는 것에 대해서는 도둑같이 오게 됐을 때에 대외적으로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인상 받는다고 해서 도둑같이 오시는 주님 앞에서 통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교회 갈 때 목사들부터 장로들부터 교인들이 칭찬 한다고 해가지고 그게 주님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겁니다. 교회나 세상이나 똑같은 기준이니까. 그래서 이 시간에 말씀을 가지고 기준 되는 토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열왕기상17장 17절을 보게 되면, 열왕기상17장 자체가 사르밧 이라는 그 지역에 한 과부가 살고 있지요. 사르밧이라는 그 지역에 한 과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걸 사르밧 과부라고 하는데. 그 과부가 누굴 만나는가 하면 길르앗에 우거하는 엘리야를 만나게 됩니다. 자, 우리가 엘리야가 없는 입장에서는 그냥 남들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일상이지요. 그게 평소에 우리가 습관처럼 된 거예요. 사는 게 전부 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사르밧 과부도 마찬가지로 우리와 똑같아요. 그런데 사르밧 과부가 누굴 만나는가, 엘리야를 만납니다. 엘리야를 만났는데 그 엘리야한테 대접을 해줘요. 엘리야가 대접을 해달라해서 해주는데. 대접할 지경에 사르밧 과부는 사는 게 무척 어려워서 마지막 기름과 마지막 밀가루 떡 먹고 그날 밤으로 죽으려고 한 찰라에 엘리야가 갔습니다. 그런데 그 과부에게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서는 도대체 하나님이 원하는 토대가 무엇인지 잘 안 밝혀지지요. 열왕기상17장 19절 보겠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를 만나서 대접을 받았어요. 대접받을 때는 몰랐지요. 계속해서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넘쳐나고 기름통에 기름이 넘치는 혜택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고, 선지자 대접을 잘하니까 이런 복을 받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지요. 사르밧 과부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토대는 선지자한테 잘 대접하면 되겠다. 요걸로 끝이었어요. 그게 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에요. 이 사르밧 과부한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 아들이 병이 위중하다가 죽었어요. 그래서 엘리야한테 이야기합니다. 18절에 보면 엘리야한테 따집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이건 뭐냐 하면 “그래, 나 죄 많은 여인 맞습니다. 그래서 그거 알려주려고 일부러 와서 내 아들 죽였습니까? 내가 그렇게 대접했는데.” 지금 항의하는 거예요. “아이고, 내 아들 죽여서 감사합니다.” 이게 아니고. 그러니까 그 사르밧 과부의 기본 삶의 태도가 뭡니까? 선지자한테는 요새 말로는 목사님한테는 잘 대우해준다. 이것이 하나님 믿는 백성으로 마땅하다. 요 정도에 그치는 거죠. 그런데 그 정도 그치는 것이 갑자기 화로 분노로 변했어요. 왜 분노가 일어났지요? 사랑하는 가족 그것도 그냥 가족이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선지자가 왔다간 다음에 죽었잖아요. 쉽게 말해서 절에 가다가 교회 오고 난 뒤에 아들이 죽은 거와 똑같은 거예요. 하나님 잘 믿으려고 했는데 아들 죽고, 예수 잘 믿고 천당 가려고 했는데 아들이 죽은 거예요. 따질 수밖에 없지요. 이게 뭐냐 토대 갈아치우기입니다. 우리의 기본 본질 갈아치우기에요. 그 다음에 19절에 보면,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고 그 다음에 20절 보세요.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로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이렇게 하니까 아들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났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 우리에게 원하는 요구는 뭐냐 하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우리의 토대가. 이 말은 우리가 매일같이 주께서 엘리야처럼 찾아와서 우리에게 살게 하지 아니하면 언제든지 우리가 죽어 마땅한 존재라는 그 인식이 우리의 토대로서 갖추어지고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교회 와서 남들한테 칭찬받는다. 집사에서 장로 됐다. 이런 게 토대가 아니고 어느 교회 200만원 바쳤다. 이게 토대가 아니고 먼 어려운데 가서 파키스탄 가서 선교했다. 이게 토대가 아닙니다. 토대는 뭐냐 하면, 나의 토대는 선교사를 하던, 헌금을 하던, 찬양을 하던 간에 찬양해도 죽어 마땅하고 선교해도 죽어 마땅하고 헌금해도 죽어 마땅하고 애 잘 키워도 죽어도 마땅한데 주께서 은혜로 오늘 하루도 살게 하셨으니까 살았다는 것이 매일의 토대로서 이렇게 갈아치워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게. 세상 나와 보세요. 남들 보기에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 그걸 전부다 토대로 안고 다 살고 만나고 합니다. 그런데 성도는 ‘나는 죽어 마땅한데 오늘 저 사람 만나게 했구나!’ 이게 달라요. ‘주께서 저 사람 보내서 만나게 했구나!’ 이렇게 되는 겁니다. 또 주의 일하라고 저 사람 만나고 주의 일하라고 오늘도 시장가게 하셨구나! 왜? 죽어 마땅한데 이런 일을 하라고 애 공부 안한다고 나무란 그 일하라고 죽어야 될 내가 살아있는 거예요. 항상 토대가 십자가 죄인으로 언제든지 죽여도 저는 할 말 없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것도 주의 뜻인데 내 힘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항상 새롭게 리필 되어야 돼요. 갈아치우고. 커피 마시지만 또 리필 하듯이. 늘 갈아치워야 될 그게 토대다 말이죠. 그렇지 않은 토대는 늘 위험한 토대고 지금 구름타고 오신다면 지옥 갈 사람은 결단 나는 토대입니다. 세상 본받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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