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출 18: 1- 4 (모세의 두 아들)
모세의 두 아들2004년 10월 17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18:1-4
18:1 모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가 하나님이 모세에게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들으니라18:2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 보내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18:3 그 두 아들을 데렸으니 그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 함이요18:4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
모세는 천국과 관련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나오는 변화산에서 모세는 분명히 엘리야로 더불어 예수님과 이야기했던 사람입니다. 그만큼 모세를 통해서 천국의 모습이 표출된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3:5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사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인님이 따로 계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물론 사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인님들은 안심놓을 위인들이 되지 못하기에 주인님만 믿고 모든 것을 걸기에는 너무나도 위험스럽게 느낍니다.
한시적으로 주인님을 섬기는 척하지만 어떤 위험스러운 상황이 찾아오면 더 이상 그 사람의 사환노릇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즉 유리할 경우에만 사환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의 집의 사환에게 그럴 권리나 자유가 주어져 있을까요?
결코 모세는 본인이 사환노릇하고 싶어서 하나님께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인해 졸지에 하나님의 집의 사환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자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아신 바 된' 인간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보고 하소연 하기를 "제발 저를 좀 알아주세요"라고 사정을 해봤자 그 사람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자신의 집의 사환으로 취업시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신분은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요, 떼 써서 얻어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쪽에서 먼저 일을 벌리신 그 일로 인하여 자기까지 그 취지가 도달한 것입니다.
목숨을 바친다고해서 하나님의 사환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 천하를 헌납한다고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모세에게 일어난 일이 오늘날 우리 성도에게도 그대로 일어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즉 모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두 아들이 생겨나는 것처럼, 하나님으로 인해 성도된 자도 이 두 아들의 의미가 그대로 발생되게 되어 있습니다. 두 아들의 이름에 담긴 뜻은, '이 세상에서 객이 되었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도우셔서 구원되었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를 다루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런 취지가 일어나는 쪽으로 성도를 몰아넣습니다. 어떤 식으로 이 현상이 나타날까요?
일단 모세의 경우에는 가족 해체가 일어납니다. 전에 모세가 애굽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가는 와중에서 두 아들과 아내와 헤어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모두 모세의 '피남편' 역할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피 남편'이란 모세의 진정한 사명과 연관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도 구원될 수 있는 새로운 가정을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피가 주도권을 쥐지 못하는 가정은 하나님 앞에서 죽임을 당한다는 겁니다.
이 사실이 현실로 확연히 드러난 사건이 바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인한 구원 사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대단한 가정이라도, 심지어 왕의 가문이라 할지라도 소용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흠없는 피'로 인해 보호받는 가정이 되지 못하면 그 가정은 저주받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을 이러한 가정으로 만들어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에 파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구원이 먼저 모세 가정에서부터 일어나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4장에서, 모세는 한 가장의 자리에서 내려앉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새로 등장되는 새 가정을 위해서는 그가 먼저 피를 봐야 했습니다.
이 점은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고백한 대목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4:26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세 아내 십보라의 입장으로서는 죽음을 안고 사는, 그것도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안겨주시는 죽음을 지닌 그런 남편과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한 가장의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충실한 사환이 되어야 합니다.
피가 인도하는대로 아니, 피가 기다리는 데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이 실시하시는 구원 작업에 참여해야 합니다. 구원이란 모든 것이 해체해 버리고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제공되어져 합니다. 죄가 사라진 관계에서 말입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집의 사환이 된 이상에 모세에게는 더 이상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있다면 오직 하나님만 계실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만 생성될 뿐이요 하나님의 집만 형성될 뿐입니다. 가족이 해체된 그 모세의 경험은 사실 모든 이스라엘이 함께 겪여야 될 질서입니다. 모세로 인하여 생긴 하나님의 집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운명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모세는 아내와 두 자식과 다시 상봉합니다. 즉 모세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스스로 남기신 계획에 준해서 빈틈없이 일을 진행시켜 왔음을 모세는 알게 됩니다. 즉 모세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한 계획이라든지, 자신만의 비젼 같은 것은 가질 입장이 못됨을 알았습니다. 그저 나그네요, 하나님 덕분에 살았음을 증거해야 될 사환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오늘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과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 됩니다. 이 가정을 스스로 깨어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점은 과정 구원되는 가정이 엄연히 있음을 증거하라고 상대 배우자를 만났다는 사실습니다.
따라서 서로 서로 모세같은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서로 나그네와 순전히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구원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정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자기 소유를 삼아 마치 리모컨으로 체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듯이 상대방을 움직일려고 해서는 아니됩니다.
천국을 위한 봉사하라고 상대 배우자를 만난 겁니다. 사람들이란 늘 이 세상에 죽치고 살고자 하는 동기를 강합니다. 그러다보면 나그네 같은 삶이나 하나님의 일방적인 도와주심 보다는, 뭐든지 내 힘으로 다 처리해서 그 생긴 것을 영원히 자기 업적으로 삼으려는 강력한 의지로 뭉쳐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살면 너무 소소하게 작은 문제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크게 심각한 문제도 아닌데 단지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을 우선시하다 보니 상대방에서 마음을 상처를 주게 됩니다.
이럴 때는 성도된 자가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고린도전서 2:2-7에 보면,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도라는 신분 자체가 돈을 주고서는 얻을 수 없이 값진 신분이기에 이 세상 것에 대해서 양보하므로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는 '어린 양의 피'가 소중함을 삶을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자체가 또 한 사람의 모세가 되어 생활을 통해 남들에게 천국의 모습을 알릴 수가 있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모세같이 이끈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놓치지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