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7강자유게시판골로새서

7강

하나님의 창조는 팽창이고,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수축되었고, 그 후에 예수 안에 있던 것이 또다시 팽창되면 그것이 바로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고 했지요. 그리고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은 예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지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팽창이 펼쳐지다가 예수님을 보내셔서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집어넣고(수축) 여기서 다 이루시고, 다음에 성령을 통해서 성도에게 이것을 전달하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집약해서 예수님께 담기고, 여기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주로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사역은 끝이 납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이 세상을 보는 관점으로 보게 됩니다. 이게 말은 쉬운데 뭘 전달했는가? 무엇을 집어넣었는가? 그 들어간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하지만 실재로 우리가 받아 챙기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뭘 받아 챙겼습니까?

골로새서 1:2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 여기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피가 왜 등장하는가? 예수님의 손과 발, 예수님 옷자락, 예수님 눈빛 다 가능한데 굳이 예수님의 피를 거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실 내용을 전달했고, 전달한 모든 것이 예수님 피로 완성이 됩니다. 왜 하나님의 모든 일이 피로 완성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예수님의 피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시장에서 살 수 있습니까? 교회 가면 살 수 있습니까? 성찬식 때 포도주를 마시면 실 내용을 받아들이게 됩니까? 우리가 실재로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피는 구경도 못했어요. Rh+인지 Rh-인지, O형인지, A형인지 전혀 모릅니다.

이런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구원 받는 일에만 너무 심취해서 실재로 예수님 피로 구원 받았다는데 왜 굳이 예수님 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예수님 피로 하나님의 모든 일이 완성되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지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하면 골로새서가 신약에 있는데, 신약 끝에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고, 구약 처음에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실 내용이 무엇인가를 확인해 보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1:12, 20절에 보면 ‘금 촛대’가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은 1장부터 하나님의 성전이 나오는데, 성전은 제사 드리는 곳이지요. 요한계시록 8:3절에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라고 되어 있고, 5절에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야기한 것처럼 시간을 걷어치우면 성질과 성격만 남아요. 걷어치우고 남는 성질과 성격은 뭔가? 성전 제사의 무한 반복이 이어집니다. 요한계시록 11:19절에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라고 합니다. 이 자체가 구약 하나님의 성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요.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얼마 전에 경주에서 강도 5.7의 지진이 일어났는데, 만약 하나님의 성전에 지진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다중현실 속에서 완성을 보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창세전에 무엇을 계획했고, 그 계획에 아버지와 아들이 관여했는가? 이것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잖아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실패로 끝납니다. 그럼 남는 것은 뭔가? 하나님이 드리는 제사만 있지요. 하나님이 다 마련해 놓으신 제사에 우리를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성전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계획해 놓았습니다.

성전을 만들면 하나님이 예수님께 전달하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성전 완성에 꼭 필요한 것을 주신 거죠. 그 필요한 것이 골로새서 1:20절에서 ‘십자가의 피로 되었다’고 합니다. 성전은 제사 드리는 곳이고, 제사의 상세한 내용은 모세가 받은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성전 기구를 만들게 하시고 운영 방식은 성막에 피 뿌리고, 재단에 피 뿌리고, 지성소에 피 뿌리고 성전 곳곳에 피를 뿌립니다.

그리고 레위기 17:11절에서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고 했어요. 제가 질문합니다. 생명이 머리에 있지 않고, 심장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왜 피에 있는 것입니까? 왜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가 하면, 실재로 우리가 예수 믿는 자라면 믿음의 실 내용을 받았고, 그것이 어떤 효과가 나타난 것인지 모르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골로새서를 보면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 믿지요?”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었으니 교회 값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교회 값’이 뭔가 하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빛과 소금이 되고 착한 사람들이 모였다고 소문이 나고 전도를 많이 해서 하늘나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동원되는 것은 기껏해야 세상 사람들보다 좀 더 나은 윤리, 도덕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어요. 자신의 욕구, 욕망을 못 이깁니다.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보기만 해도 미운데 어떻게 합니까? 미운 점을 찾아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보기만 해도 미운데 어떻게 합니까?

심지어 미운 사람 때문에 교회도 가기 싫어요. 내 마음에 충동이 요동치는데 말릴 수가 없어요. “이렇게 해서는 안 되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미워하는 것은 죄야.” 하면서 아무리 다짐을 하고 미워하지 않으려고 해도 본인 힘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조작을 해요.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주님이 감안해서 봐 주시겠지. 회초리 2대 맞을 것을 1대로 감해 주실 거야.’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신약에서 인간의 행함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행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부족합니다.”라고 하면서 회개하고 가슴을 쳐도 그것은 골로새서 2:18절에 위반됩니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골로새서에서 ‘정사와 권세’는 악마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악마가 인간을 짓눌러 옴짝달싹 못하게 하면서 악마가 유행시킨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뭔가 하면, ‘천사처럼 완벽하고 철저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너를 엄격하게 채찍질 하라. 경건에 경건을 더해라!’ 이렇게 속삭입니다.

이런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행함이 동원되어야 하고, 행함이 동원되면 지난 번 행함과 지금 행함의 차이에 대해서 본인이 쾌락을 느낍니다. 담배를 2갑 피웠는데 1갑으로 줄이면 기쁩니다. 이제 반갑으로 줄일 계획을 세웁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피를 보는 것이 아니고 성장하고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만족에 빠집니다.

이미 우리는 죽은 자인데 성장과 변화를 기대한다는 자체가 잘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할 것은 없고, 주께 받은 것이 피인데 그 피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때는 율법이 주어집니다. 율법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고, 율법을 성취시키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주셨고 예수님이 받아서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 끼어들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은 무엇을 주셨고, 그것을 왜 예수님이 하셔야 하는가? 다른 말로 하면, 왜 우리 인간은 행할 때 그것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게 되는가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출애굽기로 가야 돼요. 골로새서는 중간에 있으니까요.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세웁니다. 또 언약이 나와요. 언약은 창세전에 성부와 성자가 맺은 것이 언약입니다. 어떤 인간도 이 언약에 참여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역사는 성부와 성자가 맺은 언약을 구체화시키는 카펫입니다.

언약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셔서 성전을 만들게 했다면, 이방 민족은 왜 역사에 등장하는가? 그것은 거룩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이스라엘과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방민족은 하나님에 의해 저주받게 되어 있고, 이스라엘은 축복의 대상입니다.

이방민족은 왜 저주받고 이스라엘은 왜 축복 받는가를 똑똑히 보라는 겁니다. 그건 하나님의 언약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약의 실 내용이 무엇인가를 확인해야겠지요. 막연한 언약 개념 말고, 언약을 지탱하고 계속 가동하게 만드는 요소가 뭐냐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언약을 세우는데 여러 가지 필요한 장치들이 있어요. 첫 번째는 율법이 있어요. 두 번째는 제사가 있어요. 세 번째는 제사가 끝난 후 모세가 피를 백성들에게 뿌립니다. 그러면 1, 2번을 봅시다. 율법이 주어졌는데 율법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하면 거룩을 요구합니다. 처음부터 인간들이 거룩했으면 율법을 주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주었다는 것은 거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어 거룩을 요구하게 되면 여기서 꼭 알아야 할 것은 더러움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의 내용을 보면,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성전에 참여할 수 없는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인간이 스스로 ‘이것은 나쁜 짓이야.’라고 판정해서 ‘주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나오지 말고 율법을 주기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겁니다.

오징어를 먹으면 더럽습니까, 안 더럽습니까? 오징어 두루치기 얼마나 맛이 좋습니까? 정말 맛있어요. 인간은 자기에게 기쁨과 이익을 주면 좋은 것으로 간주해요. 그러나 레위기 11장을 보면 오징어는 먹지 말아야 할 부정한 음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강에 좋지 않다거나 칼로리가 지나치게 높다거나 그런 것을 따져 먹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오징어는 무조건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오징어가 듣는다면 상당히 기분 나쁠 거예요. 오징어가 “제가 왜 더럽습니까? 저는 바닷물에 깨끗이 씻었습니다.” 이렇게 나오면 안 돼요. 하나님은 천국과 지옥을 만드시고, 지옥을 더러운 곳으로 삼으시면서 그 지옥의 구성 요소를 이 땅에 더러운 것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왜냐하면 더러움을 바탕으로 율법대로 하는 것만 거룩하다는 것을 따로 발췌해서 그들만 하나님이 드리는 제사에 혜택을 입고 참여시킵니다.

모든 것이 성전 중심이죠. 결론을 말씀드리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고 예수님은 예배를 드림으로 성전 제사는 완료됩니다. 그러면 창세전에 성부와 성자가 이벤트를 벌이면 끝난 것인데 인간은 왜 만드셨는가? 그것은 예수님을 주로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이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에 대해 찬양하고 박수칠 사람들이 필요했던 거예요. 이것이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게 기도하신 것은 알지만 기도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요? 요한복음 17:1절에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이 약속한 내용입니다. 이 약속을 모르는 사람들은 ‘성자보다 성부가 1인자니까 1인자를 영화롭게 하면 성부가 기뻐하기겠지?’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성부가 제일 서열이 높은 것처럼 생각하는데 큰 착각입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영생이 뭔가 하면,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주신 자들이 있어요. 아버지가 아들이 영화롭게 되는 것으로 만족하듯이 이 세상의 피조물들은 아버지가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처럼 그들도 아들을 영화롭게 해서 아버지가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그 판에 참여시킬 때 세상의 모든 역사는 종결됩니다.

이것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내용입니다. 9절에 보면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를 위함이니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 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씀에서, 사랑의 대상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니고, 세상 중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맡긴 자들입니다. 그들을 건지는 권한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거예요.

소위 ‘뽑기’를 하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아들이 뽑는 거예요. 그래서 10절을 보면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그렇게 영광스럽게 하는 것과 동일한 생각으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예요.

삼위일체 안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돼요. 성경은 예수님 중심이지 삼위일체 중심이 아닙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는 내용이 앞뒤고 맞지 않고 모순됩니다. 단일 현실은 다중 현실의 내용을 다 포착할 수가 없습니다.

창세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영광을 그 백성에게 동일하고 나눠주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율법을 준 것은 무엇이 더러운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거예요. 오징어, 메뚜기, 돼지기 등은 먹으면 안 돼요. 짐승 중에는 되새김질도 하고 굽도 갈라진 것만 먹을 수 있어요.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노아 홍수 심판 때 방주에 더러운 짐승과 새는 2쌍씩, 깨끗한 것은 7쌍씩 들어갑니다. 그런데 더럽다, 깨끗하다는 것은 노아가 정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지정해 주셨어요. 율법에 의해서 무엇이 깨끗한가, 더러운가가 분류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식을 먹을 때도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가려서 먹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방민족과는 다른 자들임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럼 정결한 것을 먹으면 거룩한 백성이 되는가?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백성이기에 하나님이 그 거룩을 유지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을 준 거예요. 이 율법은 많은 조항들이 있는데 나름대로 지킨다고 했지만 육신이 연약해서, 혹은 자연적 충동 때문에 율법을 위반하게 됩니다.

율법을 위반하면 7월 10일 속죄일에 대제사장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온 백성이 죄를 다 씻는 제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인간 개인이 하는 속죄를 위한 행위는 주님이 안 받습니다. ‘회개합니다. 제물 드립니다.’ 이런 것을 안 받고, 사전에 율법을 주고 제사 제도를 마련한 것은 성부와 성자 사이에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됩니다.

제사를 통해서 율법의 완성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리고 죄 지은 인간들은 들러리가 됩니다. 그래서 율법과 제사를 통해서 거룩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율법과 제사는 끝났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그 다음에 피를 가지고 백성들이 참여해요. 제사 드릴 때 나오는 피지요. 여기에서 제사와 피를 결합시킵니다. 죄인인데 제사로 용서했다는 것은 7월 10일 대제사장이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그 제물의 피를 백성들에게 뿌립니다. 이렇게 되면 율법의 인격화, 또는 제사의 인물화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마련한 제사에 피를 통해 백성들을 참여시키는 겁니다. 피로 참여한다는 말은, 제사 드릴 때 흘리는 그 피를 하나님의 범주에서만 머물지 않고 백성들을 피로써 여기에 초대하고 합류시킵니다. 중요한 것을 다시 강조하겠습니다. 율법이 아니면 어떤 인간도 자신이 더럽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양심 수준에서 내가 더러운 자라는 것은 믿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어떤 일을 했는데 결과가 좋게 나오면 우리는 내가 한 일을 착한 일로 오해할 소지가 많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착한 일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내가 뭔가 나쁜 일을 해서 이런 결과가 온 것은 아닌지 오해할 소지가 많습니다.

율법과 제사의 만남에 의해서 인간은 어떤 짓을 해도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거예요. 인간은 선악의 딜레마에 빠져서 선과 악을 나누는데, 선악 속에 갇힌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전혀 선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따먹지 말라는 것을 왜 따먹었느냐는 말이지요. 그것은 악마의 권세에 눌러 따먹은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가운데 구원론은 끼어들 틈이 없는 겁니다. 예초에 구원론은 없어요. 왜냐하면 일방적으로 초대하는데 무슨 구원론이 있어요. 구출이나 구원이란 개념은 인간에게서 나오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아들에 적용시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 백성의 선봉에 선 것은 모세가 지팡이를 든 모습입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 물을 갈라 길을 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든 것이 아니라 지팡이가 모세를 이끈 거예요. 모세가 지팡이에 종속됩니다. 그래서 아말렉과 전쟁할 때 지팡이를 들었을 때는 승리하고 지팡이가 내려오면 패하는 일이 벌어졌지요(출17장). 이런 일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어쨌든 인간에게서 나오는 어떤 행동도 하나님은 더럽다고 안 받는다는 거예요. 그럼 무엇을 경유해야 합니까? 반드시 제사를 경유해야 되는데, 율법을 시작으로 제사를 경유해서 제사 드린 제물의 피에 참여할 때 비로소 그 인간은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또 의문이 생깁니다.

피에 참여하는 것이 골로새서 2:10절에 나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라고 했지요. 십자가 피가 있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인간이 있다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엇을 전달해 주셨습니까? 율법과 제사로 예수님이 주가 되시는 그 취지가 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해 주셨지요.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되었지요. 그러면 여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더러움이죠. 이제부터 골로새서가 어렵습니다. 보통 골로새서 해석을 이렇게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모인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바른 행동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합니다. 골로새서 3: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수배니라.”고 했고, 8절에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눈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러운 말이라.” 12절에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이렇게 되어 있지요.

13절에는 “피차 용서”하라 했고, 16절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 하나님을 찬양하고” 등등 계속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예수 믿고 성도가 되었으니까 이런 것들을 향해야 하겠구나.’라고 나옵니다. 그러면 여기에 나오는 모든 개념들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면, 평소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조작해서 착한 사람으로 포장한 그 윤리, 도덕(구멍 난 스타킹)으로 ‘이 성경 말씀을 최선을 다해 지켜서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자.’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착하고 싶어도 직장에 가면 팀이 구성되어 같이 움직이는데 그것이 윤리, 도덕이 아니라고 해서 내가 혼자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계란 한판에 2,300원 했는데 최근에 조류독감 때문에 8,500원까지 올랐어요.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우리는 소비자의 고충을 생각해서 계란 값을 올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까?

또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사장도 아닌 직원이 계란 값을 갑자기 올리면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힘들다고 마음대로 계란 값을 올리지 않고 팔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했다면 당장 쫓겨날 거예요. 그런데 신앙 좋은 사람이 “하나님 뜻대로 선한 일을 했으니까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실 거야.”라고 믿고 그렇게 행동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까요? 안 도와주십니다.

내가 나쁜 일 하려고 하지 않아도 뒤에서 떠밀면 밀려서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뒤에서 밀고, 나도 밀려가 다른 사람을 밀게 됩니다. 사회는 이렇게 빡빡하게 돌아갑니다. 세상은 혼자 사는 동네가 아닙니다. 당구공처럼 나를 치면 나도 굴러가서 다른 공을 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라는 거예요. 이게 골로새서 3장과 합치되는 말입니까? 십자가 지신 주님 앞에서 통할까요? 아니죠. 강남의 부자 아줌마들이 모인 교회 여전도회와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줌마들의 윤리, 도덕은 수준이 달라요.

강남에서는 집사가 욕을 하면 “어머, 저 집사님이 화가 많이 나셨나봐!”라고 하지만, 노점상 아줌마가 욕을 하면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가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교회에 부임해서 욕하는 것이 듣기 싫어서 설교 시간에 “악한 말은 버리고 선한 말을 합시다.”라고 하면 “우리교회 나가서 목사 당신이나 선한 말 잘 해라.”하고 쫓아냅니다.

사람은 권력장(場)에 놓여 있기 때문에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환경이 차이가 나서 어느새 거기에 물들게 되면 본인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지만 남들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골로새서 3:5절에 나오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구멍 난 어설픈 윤리적 의미를 가지고 지키려 하지 말고 이것은 다른 기준에서 와야 합니다. 다른 기준이 뭔가 하면, 율법의 완성에서 와야 합니다. 율법의 완성은 십자가지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다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가페 사랑, 에로스 사랑, 필로스 사랑을 말하는데 성경에는 이런 구분이 없어요. 인간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주님의 은사로 왔을 때 ‘나는 죄인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한꺼번에 떠져 나오는 것이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나의 육은 더럽다고 주께서 죽였습니다.’ 라는 결과물이 성령의 열매에요. 누가 죽였는가? 성령이 주인공이 되어 나를 시시때때로 죽입니다. 죽일 때 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고 ‘나는 죄인입니다.’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십자가가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면 율법의 기준은 예수님의 공생애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살았는지 거기에 비춰 우리는 어떤가를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삶을 흉내조차 낼 수 없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간음, 음란, 부정, 사욕, 탐심이 되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예수님 삶을 비디오로 찍어놓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나하나 내 삶과 비교합니까? 예수님의 공생애를 성령께서 우리에게 시시각각 우리에게 적용시킵니다.

적용시키는 방법은 양몰이, 소몰이 하듯이 적용시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차단시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길을 탐색하게 되지요. 그것도 차단시키지요. 그럴 때마다 우리 속에서 무엇이 나오는가 하면, 십자가에서 주님이 건네받은 육적인 죄가 우리가 불평, 불만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입니다. ‘네가 이런 탐욕이 있었지? 나에게 들켰다.’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이 방법을 어디에서 사용했는가 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데려나와 광야에 떠돌 때 이 방법을 사용했어요. 생존에 기본적인 것 물과 양식은 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광야는 이 기본적인 것도 없었어요. 그러니 자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을 원망했지요. 이런 원망이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이렇게 판정 내리면 우리는 억울한 느낌이 들겠지요. 우상 숭배는 부처상에 절을 한다든지 점집에 찾아가서 사주팔자를 본다든지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한다든지 하면 우상 숭배라고 인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구멍 난 윤리관으로 본 우상 숭배입니다. ‘나는 절에도 가 적 없고, 점집에 간 적도 없고,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에게 기도한 적이 없기에 우상 숭배를 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지요.

이게 바로 죄인의 생각과 판단입니다. 주님이 우상 숭배라고 규정하신 것은 ‘탐심이 곧 우상 숭배’입니다. 그러기에 지금보다 더 나은 뭔가를 요청할 때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나와요. ‘좋다. 그건 그렇다 치고, 우리가 탐심은 있었지만 부정은 저지르지 않았다.’ 이렇게 나와요.

이것 역시 자기가 알고 있는 의미를 고집하는 것이지요. 십계명을 보세요. 이 10개의 계명이 나중에는 두 개의 계명으로 축약되고 결국에는 한 계명으로 축약됩니다. 두 개로 축약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한 계명으로 축약하면 사랑이 되지요. 로마서 13:8절에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했잖아요.

“나는 평소에 다른 여자에게는 눈도 안 돌렸습니다.” “그럼 너는 이웃을 사랑하나?” “아니요” 그러면 그는 간음한 자입니다. 사랑하기는 싫고, 골로새서에 나오는 대로 착하게는 살고 싶지요. 그러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야 해요. 매일 아침 일어나서 “나는 부족합니다. 저를 용서하소서.”하면서 기도하고 있는데, 남편이 “여보, 미숫가루 어디 있지?”라고 하니까 “시끄럽다. 기도하는데 --” 하면서 화를 내지요.

백날 도를 닦으니 뭣합니까? 도 닦는 시간에 남편이 방해하니 벌컥 화가 나는데. 이게 사랑입니까? 그러면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왜 남편이 끼어들어 화나게 되었는가? 주께서 일으키신 일입니다. 주님이 소몰이 한 거예요. “놀고 있네. 네가 도 닦는다고. 도 얼마나 닦았는지 보자.”하면서 주님이 남편을 보낸 거예요.

‘하나님이여 저는 복음 전하는 기업에 가서 열하겠습니다.’ 하고 사장이 기독교인이고, 신앙을 바탕으로 기업을 운영한다는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한 달이 지났는데 월급을 안 주는 거예요. 열정 페이(pay)입니까? 기독교 학생들을 모집에서 일을 시키고는 돈을 안 줍니다. 그래서 데모하면 ‘먹는 것 입는 것으로 족한 줄로 알라고 했다’면서 성경구절을 들먹이고 --

그러니까 이 세상은 십자가로 시간이 종결되면 성질만 남는데, 십자가의 용서가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어요. 그럼 본문에 나오는 탐심과 음란은 뭔가? 사랑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 계속 자극을 주는 주님 말씀입니다. 즉 십자가의 율법적 기능이 됩니다. 사도의 모든 율법과 권명이 다 이런 것입니다.

이미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에게 ‘네가 원하는 세상보다 훨씬 더 귀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수시로 성령께서 이런 말씀으로 우리 속에 역사하셔서 다시 주님 십자가 앞에서 “저는 죄입니다.”라고 죄인이라는 최고의 사랑을 드러내면 그 순간에 놀랍게도 사랑과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가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노리고 시작하면 안 돼요. 성령의 열매로 바로 가지 말고 반드시 이것을 거처가 가야합니다. 갈라디아서 5:19절 이하에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생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 등등 여러 가지가 나옵니다.

이것은 일반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뿌리는 같은데 표출되는 모습은 다양합니다. 이것이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 근거가 갈라디아서 5:6절에 나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반드시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됩니다. 사랑을 담는 믿음이라고 믿음이고, 사랑을 담는 소망이라야 소망이 됩니다. 결국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죄인이라고 느낄 때 죄인에게 믿음을 주신 사랑의 주님께 감사가 나오는 겁니다. 모든 것이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골로새서 3:14절에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지요. 탕수육 위에 소스를 붙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사랑의 소스를 부으면 소스에 잠겨버립니다. 그러면 ‘나는 부정한 일은 했지만 음란하지는 않았다’는 식으로 나눌 수 없게 하나라 묶어버립니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으면 죄인인데, 이미 구원 받았기에 무한 리필로 사랑을 계속 부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제사에 참여시키는 방식입니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09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5,942 강의 [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2 - 구조의 조건 - 최고관리자 17-01-16
15,941 자유게시판 219강-고후 4장 10-11절(예수 죽인 것)170115-이 근호 목사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01-16
15,940 자유게시판 116강-신 22장 6-8절(하나님의 보호)170115-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7-01-15
15,939 묻고답하기 한 통속 - 최고관리자 17-01-15
15,938 자유게시판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9강 - 최고관리자 17-01-14
15,937 자유게시판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8강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17-01-14
열람 ➜ 자유게시판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7강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17-01-14
15,935 자유게시판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골로새서강해 제 6강 [할례와 세례] - 최고관리자 17-01-14
15,934 자유게시판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골로새서강해 제5강 [팽창과 수축] - 최고관리자 17-01-14
15,933 자유게시판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골로새서강해 제4강 [언약의 자리] - 최고관리자 17-01-14
15,932 자유게시판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골로새서강해 제3강 [우리는] - 최고관리자 17-01-14
15,931 자유게시판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골로새서강해 제2강 [사라지는 유령] - 최고관리자 17-01-14
15,930 자유게시판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골로새서강해 제1강 [장소 없는 장소]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17-01-14
15,929 묻고답하기 이명직 목사님의 수련회 소감문 - 최고관리자 17-01-14
15,928 묻고답하기 이미아 성도님의 수련회 소감 -지옥의 아랫목 - 최고관리자 17-01-13
15,927 자유게시판 수련회를 다녀와서.. - 최고관리자 17-01-13
15,926 묻고답하기 종이에 손을 베고 / 이혜인 수녀 - 최고관리자 17-01-12
15,925 자유게시판 70강-창 16장 6-10절(구원의 구조)170111-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7-01-12
15,924 묻고답하기 송민선 성도님의 수련회 참석 소감 - 최고관리자 17-01-12
15,923 자유게시판 218강-고후 4장 7-9절(보배와 질그릇)170108-이 근호 목사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01-11
15,922 자유게시판 2017년 십자가마을 겨울 수련회 정산 보고 - 최고관리자 17-01-11
15,921 자유게시판 115강-신 22장 5절(남녀 구분)170108-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7-01-10
15,920 강의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골로새서:복음의 생산) 전체영상보기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17-01-08
15,919 묻고답하기 예수 죽인 것 - 최고관리자 17-01-08
15,918 자유게시판 177강-YouTube강의(사랑)170103-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7-01-08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