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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골로새서강해 제4강 [언약의 자리]자유게시판-

201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골로새서강해 제 4강 [언약의 자리](강의 : 이근호목사) 악마가 일을 저질러 놓고 저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내뺐습니다. 그 안에 갇혀 있던 인간은 신이 되고 싶어서 신을 찾고 아우성이고 해결책은 전혀 없습니다. 본인이 신이 되고자 하는 그 자체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중심으로 연관시키는 그것과는 전혀 대척되는 잘못된 관계지요. 여기에 대한 주님의 해결책은 바로 자리입니다. 자리를 마련하는 거예요. 자리를 마련하는 구절들이 골로새서에 가득 담겨 있어요. 이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천지창조할 때 창조하신 그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자리를 만듭니다. 그 창조하신 원리가 뭐냐? 어두움 가운데서 빛이 있으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악마가 저질러놓은 이것을 통째로 뭘로 보는가 하면, 어두움의 자리로 봐서 창조의 준비과정에 도입시켜 버립니다. “실컷 어두워라. 마음껏 어두워라. 내가 이 어두움을 활용하겠다. 쓸데없다 버리지 않고 활용하겠다.” 하는 겁니다. 그런 내용들이 여기 1장 12절부터 나오는데 그냥 말로 죽죽 이어가겠습니다. 이 전체 어두움인데 전체가 어둡다 하니까 그 어두움이 무엇인지 어두움에 있는 사람은 그 어두움에 대해서 오해해요. 이 어두움이라는 것은, 빛의 관점에서 봤을 때 어두움이지 우리가 봤을 때는 이게 어두움이 아닙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그런 어두움이 아니에요. 우리는 상당히 활발합니다. 제가 두 번째 시간 끝에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의 중요성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0미터 쯤에서 볼 때 그녀는 귀티가 흘러보였다. 3미떠쯤 떨어졌을 때는 10미터에서 볼 때처럼 보이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더라.” 그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늘 뭘 한다? 자기자신을 조작하는 거예요. 조작을 해서 나중에 수축이 되지요. 조작을 해서 수축이 되는 인간들이 많이 있게 되는 겁니다. 이게 자연이라고 했지요. 이 원, 자연이라고 했는데 인간이 갇혀 있는 모습의 자연입니다. 이 자연이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성질이 뭐로 바뀌는가 하면, 어두운세계로 바뀌게 돼요. 빛이 왔으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희한하지요. 보통 빛이 오게 되면, 예를 들어 촛불이 가까이 오게 되면 온 그 만큼 밝아지는 것이 정상인데 빛이 들어서니까 오히려 어두움이 더욱더 어두워지더라. 이 말은 뭐냐 하면, 인간은 예수님이 오실 때는 건전한 사람이고, 교양있는 사람이고, 품격있는 사람이고, 점잖은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빛된 복음을 이야기하게 되면 완전히 미쳤어요. 발작을 일으킵니다. “내가 뭐가 잘못되었는데? 내가 어째서 죄인이란 말이냐?” 그러니까 “그것봐. 어두움이 더 티를 내잖아.” 점점 더 어두워지는 거지요. 어두운 자리에 빛을 비추는 이 방식으로 주께서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그 처음은 이걸로 시작되는 겁니다. 처음은 이스라엘로 시작돼요. 이스라엘의 특징은 뭐냐 하면, 다른 나라에 대해서 폐쇄적 민족입니다. 첫 번째는 혈통으로 폐쇄적 민족이에요. 아브라함자손이 아니면 하나님나라 백성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자손이 아니면 백성이 아니라는 이 폐쇄적인 원칙을 고수하는 반복되는 제도가 있었으니 그 제도가 뭐냐 하면, 할례입니다. 이게 골로새서 2장 11절에 나오지요.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여기서 할례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기 위해서 사전에 뭐가 준비되어 있다는 말입니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준비되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잠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다른 나라와 완전히 다릅니다. 다른 나라는 혈통만 있으면 이스라엘은 혈통이 우선이 아니고 약속이 우선이에요. 이스라엘을 만든 사람은 자생적이 아니고 만든분이 따로 있어요. 시작점이 뭐냐? 위, 하늘이에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만든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다른 나라는 뭐냐? 다른 나라는 약속이 없어요. 그게 비약속이고 비언약이지요. 이쪽은 약속대로, 언약대로 만든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요. “이 땅에 언약을 펼쳐 보이리라. 그걸 증거할거야. 그걸 실현에 옮길거야.” 그게 이스라엘 나라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의 존재가 언약을 증거한다면 그 증거하는데 성공했습니까, 실패했습니까? 성공했습니다. 왜? 그 나라가 멸망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의해서 멸망당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언약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나라는 폭삭 망한 겁니다. 왜냐 하면, 언약에 이런 것이 있어요. 내 말씀을 지키게 되면 복을 받되 만약에 못지키게 되면 저주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아주 충실하게, 합당하게 이스라엘의 역사가 적용이 된 겁니다. 지금 제가 이스라엘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은 안심 푹 놓지 마세요. 이게 오늘날 부르심 받은 성도한테 이야기하는 거예요. 성도한테 뭐라고 하느냐 하면, “네가 십자가복음 말고 다른 복음을 전한다든지 다른 말을 하게 되면 너는 저주를 받으리라.”가 적용되는 대상이 바로 성도에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면, “만약에 내가 25년동안 복음 이야기하다가 26년째 복음말고, 그것도 실수로, 그것도 약간의 치매기운이 있어서 실수로 ‘종교는 다 똑같지 뭐.’ 이렇게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것도 딱 한 번 그렇게 했을 뿐인데 그것도 저주받습니까?” 이렇게 나온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성도로 부름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목사님, 예정되었는데 혹시 내가 복음적으로 살지 않고 십자가를 안 믿으면 그 예정도 한꺼번에 취소되고 무효되는 겁니까?”라고 걱정을 하신다면 처음부터 예정을 받아본적도 없고, 아예 예정된 사람도 아니에요. 그러면 예정된 사람은 예정에 대해서 의심이 되어도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입을 다물고 있든 발설을 하든 자기 구원에 대해서 신경쓴다는 자체가 이것은 출발점을 나로부터 출발해서 하나님의 괜찮은 정보를 얻어서 결국 내가 신이 되고자 하겠다는 어두움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부터 시작합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나님의 언약만 나타난다면 저는 지옥가도 좋습니다.” 로마서 9장 3절의 말씀이에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내 형제가 구원받는다면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저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것이 내가 소원하는 바입니다.”라고 사도바울은 이야기하지요. 구원파에게 그런 이야기 하면 큰일날 거예요. 사도바울은 구원파에서 쫓겨날지 싶어요. 구원받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자진해서 저주를 받겠다니 이것은 미친 짓이지요. 인간은 자아로부터 출발하는 것도 아니고 주체로부터 출발하는 것도 아니고, 주체는 중간이고, 하나님이 만든 그 자리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그 자리는 무슨 자리인가? 언약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언약의 자리를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라고 묻게 되면 그 언약의 자리는 우리쪽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자연세계에서, 인간쪽에서 출발해서 얻을 수가 없어요. 어떤 경우라도. 이 자연속에 갇혀 있고, 악마가 일을 저질러 놓고 내뺀 입장에서 악마 잡아다가 “네가 책임져라.” 할 수도 없고요, “선악과 먹은 것을 토해낼까.” 이럴 수도 없는거란 말이지요. 인간쪽에서 출발할 수가 없어요. 창세기 3장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부부사이에 문제가 생겼지요? 여자는 남자를 사모하고 남편은 아내를 지배하라,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이게 하나님이 주신 벌이에요. 죄지었으면 벌 받아야 되는 것이 맞잖아요. 제가 너무 심한 욕을 했습니까? 죄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요. 무슨 생각들 하고 계십니까? “목사님, 힘들어 못살겠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요. 기본이 안되어 있어요, 기본이! 부산의 어떤 분이 기간제 교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임용에서 탈락했어요. 걱정이 되어서 연락을 했는데 전화를 안받습니다. 혹시 이 화면을 보시거든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평소에 하던 말이 있어요. “나는 주를 위해서 살기 때문에 탈락이 되든 안되든 다 주의 뜻으로 받습니다.” 내가 아마 수십번 들었어요. 그런데 도대체가 연락이 안돼요. ‘입원했겠지.’ 이렇게 좋게좋게 생각은 합니다만. 모든 것을 끊고 기도하러 들어갔을수도 있고요. 부부 사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부부사이가 갈라지는 것이 힘들지요. 그게 우리에게 당연한 거예요. 부부사이가 좀 좋아지거든 감사와 찬양을 하시고. ‘어떻게 살다살다 이런 일이 다 있나.’ 부부사이가 좋아지거든 “주여,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저같은 죄인에게 이런 말도 안되는 행운을 주신다는 것이 겁이 납니다.” 이렇게 나와야 돼요. 에베소서라든지 골로새서 3장에 나오지요. ‘주 안에서’ 부부생활을 하라는 말이 뭐냐 하면, 나를 위한 아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주를 위한 사건으로서 아내되는 사건, 남편되는 사건이 이루어진 거예요. 어떤 사건? 언약의 자리안에 있는 사건. 언약의 자리는 뭐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맴매 하는 것, 벌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몸소 살면서 마음껏 보여줘라, 그 말이지요. 남편은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된다고 욕심을 내다가 삐끗 해서 발 다칠 수도 있는 문제고. 뭐든지 상대방을 볼 때에, 너는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그것을 그냥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이 부부생활입니다. 그래서 “난 시집 안갈래.” 하지 말고 좀 가주시고 장가 가세요. 장가 가겠다고 신청한 사람이 몇 명 있는데 사적으로 만나서 잘 유도리 해보세요. 올해 나이 사십다섯인데 얼마 전에 광주에 취직해서 있어요. 뒤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아 계십니다. 이름은 구지 밝히지 않겠습니다. 이성철이라고. 물론 총각입니다. 살아봐야 주께서 주신 벌이 뭔가를 알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자식은 내 손에 자식이지만 사실은 내 몸에서 출생한 것이 아니고 출현된 거예요. 우리집 가정을 깽판 놓으려고 출현한 거예요. 이거는 자기 맘대로에요. 어머니 은혜 못잊어……, 이런 것은 하나도 없어요. 툭 하면 “엄마는 왜 나를 태어나게 했습니까?” 이런 반발이나 나오고. 어디서 그런게 나오는가 몰라. 그런 것을 겪게 하는 것이 뭐냐? 언약으로 자리 만들기입니다. 그런 자리는 우리가 요청한다고 주는 것이 아니고 출발을 육으로부터 출발해요. 이게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인데 육으로부터 출발해서 영적 사람이 되게 하는 겁니다. 육은 아브람이지요. 나중에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바뀌어야 돼요. 여기에 투입된 것이 뭐냐? 할례입니다. 그것을 할례언약이라 합니다. 이게 생성이에요. 아브라함이라는 어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이 할례언약에 담겨 있는 어떤 메시아라는 인물을 구원하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왜? 메시아만 입자기 때문에, 존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만들어진 곁가지들이거든요. 단독존재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단독존재라는 것은 악마가 우리에게 그런 심보를 심어줬지 단독존재라는 것은 이 땅에 없어요. 심지어 귀신과 마귀까지 전부 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연계되어 있어요. 이것은 과학이 주장하는 진리와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부터 어려운데 좀 참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뀔 때에 아브람은 아브라함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자, 복습해 봅시다. 상상한다는 것, 단일현실일때 이 상상하는 것을 뭐라고 했습니까? 외재성이라고 했지요. 외재성이라는 뜻은 현재 있는 나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그대로 구원받는 것, 내가 설정하고 상상한 이 세상 뒤의 여분의 자리를 만든 것을 외재성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주님께서 마련한 이 바깥은 내가 동질성을 유지하면서는 절대로 나갈 수가 없다고 했지요. 그래서 어떻게 나간다고 했습니까? 내가 죽어야 나간다고 했지요. 내가 죽어야 나가는데 내가 죽어버리면 내가 꿈꾸던 소망도 다 같이 없어져 버려요. 네 소망은 나는 안 듣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소망은 성령이 우리에게 심어준 소망, 그 소망이지요. 그 소망은 내 소망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 안에 주님의 자기소망을 우리 안에 집어넣은 소망이에요. 그래서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주께서 사람이 그 원하는 바를 만들어내고 주께서 그렇게 시도한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있는 주님이 만든 새로운 인간을 나라는 그 형틀을 통해서 그내용물을 뽑아내는 식으로 하는 거예요. 너 말고 네 안에 있는 너. 너는 자아고 네 안에 있는 너는 주님 보시기에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만든 새로운 주체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새 사람이라고 하고 새사람은 옛사람에 담기게 되어 있어요. “겉사람은 날마다 후패하고.” 후패해요. 늘어진다고 올리거나 하지 마세요. 후패합니다. 계속 우리는 늙어갈 수밖에 없어요. 늙어갈수록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해산할 날이 가까운 거예요. 지금 장로님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시는데 연세가 제일 많으신 것 같아요. 제대 날짜가 얼마 안남았거든요. 군복 벗을 날이 가까이 왔다는 말입니다. 예비군이 아니고 제대날자가 가까웠고 우리는 아직도 예비군으로 있고, 그래서 모든 면에서 벌 받고 있고 이 저주의 땅에서 저주를 받고 있는 거예요. 힘들지만. 그것을 견뎌내기 위해서 우리는 뭐 한다 했습니까? 모든 의미와 정보를 가지고 우리는 뭘 한다고 했어요? 조작하지요. 어떻게 합니까? 남들 보기에 10미터쯤에서 보면 폼을 내지만 가까이 가보면 그 폼을 낸다고 얼마나 자기를 위장하는지. 나도 마찬가지고. 사람을 너무 가까이 보면 실례입니다. 가장 각도가 나오는 데서 봐줘야 그게 사람간의 배려에요. 옆 모습이 좋아보이면 그 모습이 보이는 쪽으로 봐주야 돼요. 방금 미장원에 다녀 왔을 때는 방금 만진 머리를 보고 이야기를 해야 되고. 인생이라 하는 것은 조작밖에 없어요. 인간이란 조작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아브람에 있어서 아브라함은 생각도, 상상도 못한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생각한 것이지 아브람이 생각한 것은 없어요. 그러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넘어가면서 생성이 되어야 되는데 이 생성의 자리에 아브람을 대체할 존재가 등장합니다. 이삭이 등장합니다. 이게 과학에서, 양자물리학에서 안나옵니다. 생물학에서 이게 안나와요. 과학이 진리라고요? 이런 이야기 안합니다. 여자 나이 90, 아내 나이 100세인데 아기를 낳았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과학자는 뭐라고 합니까? “만들자, 만들어.” 아예 태를 인공지능으로 만들어버리지요. 이런 구상을 한다고요. 그러면 주님께서 어떻게 나옵니까? 여자가 900살이고 남자가 1000살인데 아이를 낳았다. “따라오려면 따라와봐!” 과학은 악마거든요. 악마는 항상 신이 원하는 것을 따라붙이려고 더, 더, 더, 계속 나가는 겁니다. 그게 바로 행함으로 구원 아닙니까? 행함으로 구원은 목적이 있어요. 도토리가 참나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듯이. 그래서 BC 400년경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존재는 목적이 있다. 도토리가 참나무가 되는 것을 지향하듯이 인간 나름의 목적이 있다.” 그게 과학의 원리에요. 최초의 생물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플라톤은 하늘이야기를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의 이야기를 했거든요. 땅의 실제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요. 그러면 뭐가 문제냐 하면, 있음에서 더 나은 있음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자리 만들기는 이스라엘 없이는 자리가 안 만들어져요. 이스라엘 제켜 놓고 이방나라가 백날 의논해 봐야 천국가는 자리가 없어요.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지 이방인의 메시아가 아닙니다. 이방인은 곁가지로 들어가는 거예요. 참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임하는 것입니다. 이방인은 언약이 없기 때문에 언약이 없다는 뜻은 쉽게 말해서 상종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이스라엘이 기본이에요. 그래서 어떤 과학자도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건너온 것을 증명 못합니다. 그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던가? 물이 절벽이 된 이유를 설명을 못해요. 그래서 과학의 힘을 빌린 고고학자들은 “그것은 홍해바다가 아니고 갈대바다라 해서 그냥 얕은 개울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과학에 아부를 해서 과학에 빠진 사람까지 교인으로 확보하려고 교회가 그것을 요구하니까 신학자들이 하는 짓이 뭡니까? 교회 부흥되도록 하는 것이 2천년교회역사의 신학이 된 거예요. 그중 하나가 삼위일체고. 예수 믿을 필요 없이 삼위일체 문장외우면 구원받는다, 삼위일체가 거기서 나온 거예요. 삼위일체를 인정하면 그것으로 정통이 된다는 겁니다. 정통이 되면 그 교회 연필심들은 몽땅 다 전세버스 타듯 전체로 다 천국간다는 거예요. 문장 잘 외웠으니까. 엑기스만 골랐으니까. 오랜 역사가운데서 거짓된 것들 다 제키고 옳은 것, 옳은 것, 옳은 것만 했기 때문에. 이게 바로 “너희 애비는 악마”라고 했던 그 짓을 똑같이 하고 있어요. 정통이 구원합니까? 본인의 존재감이 그리스도를 막고 있으면서 구원을 어디서 찾아요? 구원은 없어요. 본인이 십자가를 막고 있으면 구원받는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총맞은것처럼 구멍나면 돼요. 총맞은 것처럼, 총도 아니고 대포를 쏴서 구멍이 뚫려야 돼요. 구멍이 뚫려서 십자가가 바로 보여야 됩니다. 아브람이 구원받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다 실패로 끝나야 돼요. “가만 있어 봐. 아기를 못낳아? 내가 아들까지 낳도록 할 테니까.” 그러면 그 아들이 아브라함을 위한 대체제물로 들어가요. 네 아들을 바쳐야 됩니다. 바칠 때 생성중에서 하나님이 주인공으로 삽입이 되면서 생긴 아브라함은 아브람과 전혀 상관없어요. 전혀 상관없고 아브라함은 누구한테 종속되느냐 하면, 자기자식한테 종속됩니다. 나의자손이 선조인 나를 구원해요. 아브람의 자손이 아브라함을 구원하는 겁니다. “언약이 있는 한 이 일은 언약이 완성될때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아브라함은 미리 당겨서 믿었지요. 그 자손은 끝은 뭐냐? 예수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나를 보기를 기대했다가 보고서 기뻐했다.”고 했거든요. 뭐가 살아있어야 돼요? 하나님의 언약이 살아 있어야 돼요. 언약은 우리를 개무시하는 겁니다. 그냥 무시가 아닙니다. 개무시하는 거예요. 왜 개무시할 수밖에 없는가? 우리가 자꾸언약을 가로막고 있거든요. 손들고 “저 구원해주세요.” 이렇게 나오니까 “손 내려! 손 내려! 손 내려!” “저요!” “손 내려!” “앞으로 순종해서 구원받겠습니다.” “손 내리라니까. 구원은 네 소관이 아니야. 네가 요구할 입장이 못돼.” 구원은 예수님이 자기원하는 사람만 구원할 뿐이에요. 요한복음 5장에서. 아버지가 자기 원하는 사람을 추려내는 것처럼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 구원하는 권세를 준게 아니고 심판하는 권세를 줬어요. 말자체가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다 손 내려!” 그런 뜻이에요. “다 손 내려! 내가 심판하러 왔다. 심판 다 받아.” 라고 해 놓고 심판 받는 중에 “너, 너, 너 나와.”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나옵니까? 심판을 흠뻑 뒤집어 쓰고 나옵니다. “죄인중에 괴수입니다.” 하고 나오는 거예요. 그럴 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의미가 있는 겁니다. “나는 저주받아야 되는데, 지옥 가야 되는데,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그럴 때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지요. 자기 믿음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자랑하지 않아요. “나 예수 믿습니다.”를 자랑하지 않아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엄홍길이라는 그 사람이 에베레스트 산에 갔다 와서, 나 그 산에 갔다 왔다, 는 그 이야기를 왜 합니까? 이야기할 필요 없어요. 나 예수 믿습니다, 하고 남에게 이야기할 필요 없어요. 나는 죄인입니다, 그러면 돼요. 목사가 설교할 때 “나는 죄인입니다.” 그 말 하면 되지 딴 소리 하면 안돼요. 성경말씀에 비춰볼 때, 여러분 말고, 장로 말고, 성경말씀에 비춰볼 때 나는 죄인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 되면서 아브라함은 아브람은 아브라함되기 위한 하나의 재료가 되는데 이 속에서 하나님의 의가생성돼요. 아브라함은 의를 위하여 재료로 부름받은 겁니다. 아브라함이 되어놓고 아브라함 입장에서 다시 아브람을 생각하고 다시 그 과정을 생각할 때 그 과정을 소급해서 보는 관점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걸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내 믿음은 여기에 절대로 도달 될 수 없었습니다.” 하는 고백이에요. “내가 눈치채서 아브라함 되는 그런 수는 절대로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모든 인생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믿음은 오직 내 인생에 개입하신 언약적인 주님만 믿습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개입은 뭐로 이루어져요? 사건이지요. 사건이라 하는 것은 내가 요청한 것이 아니고 호출한 것이 아니에요. 그냥 들이닥치는 거예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런 질문들을 해대요. “목사님, 그 이야기 듣고 한 20년간 그 사건이 오기를 기다렸건만 오늘 1월 9일에도 안오게 되면 저 지옥가면 어떻게 해요? 우연적 사건, 바람같이 분다는 성령이 내 옆 사람에게는 다 불었는데 나에게는 불지를 않으니까 선풍기바람이라도 돌리든지 해서 어떻게 구원받는 수가 없겠습니까?”라고 한다면 그것마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긴 현상입니다. 왜? 그 이야기가 본인이 구원받지 못하게 되는 죄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그래요. 구원받기를 원했더니만 구원했다는 것이 되어버리면 출발점이 구원받고자 하는 악마적인 속성이 그대로 노출된 거예요. 그러면 구원받은 사람은 그런 사람이 없는가? 있지요. “있다면 저 사람에게는 그런 악마적인 속성이 있어도 용서해주고 왜 나는 용서해주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네가 뭔데? 네가 주제파악좀 해라.” 너는 하나님 형상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하나님의 형상을 봅시다. 골로새서 1장 15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뭡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했지요. 먼저 나셨다는 것은 먼저 나신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뒤에 나오는 모든 사건과 현상들은 먼저 나신분에게 예속되고 종속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겁니다. 그물망이지요. 촘촘한 그물망입니다. 심지어 그 안에는 마귀도 들어 있고 다 들어 있어요. 어떤 피조물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조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할 때 그 진짜 인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그걸 두 번째 아담이라고 하고 두 번째 인간, 마지막 인간입니다. 로마서 5장에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러면 우리는 뭐냐? 우리는 인간 아니지요. 인간 아니고 흙이지요. 흙이 되면 인간은 언제 됩니까? 흙이 되었다가 하늘의 형상을 입게 되면, 그리스도의 형상을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조건으로 입게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겁니다. 이 이야기가 이스라엘에게 주어지는 이야기에요. 이방민족에게 주어진 이야기가 아니고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지는 이야기에요. 그 시발점 되는 것이 뭐냐?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 안 나왔습니다. 여기에 뭐가 들어가는가? 할례가 들어가지요. 중요한 것이 있어요. 갈라디아서 4장 다같이 찾아봅시다. 갈라디아서 4장 22절,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여기 보면 하나는 계집종 하갈이고 또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 사래지요. 같은 인간이 보기에 사람이지요. 사람인데 24절에 보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이것은 비유니.” 사람을 개무시하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의 입자로서, 존재로서 버티고 싶은데 너는 하나의 은유라는 겁니다. 은유라 하는 것은 껍데기만 겉으로 있는데 그 실체는 겉으로 안 나타나고 그 껍데기의 실체, 베이스는 따로 깔려 있다는 겁니다. 그게 아까 말한, 주체밑에 깔려 있는 ‘자리’에요. 언약의 자리에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눈 이유는 마지막에 뭐가 있는가? 천국과 또 뭐가 있어요? 지옥이 있지요. 지난 주일 낮 설교에서 했잖아요. 쓰레기통은 쓰레기 담으라고 있는 거예요. 쓰레기통이 텅텅 비면 안됩니다. 주께서는 쓰레기를 생산해내요. 이것은 아니고, 이것은 아니고, 이것은 아니고, 이렇게 분류하는 거예요. 주께서 그렇게 하겠다는데 우리는 어쩔 수가 없어요. 지옥간 쓰레기나 천국간 사람이나 모두 합치면 둘 다 은유고 비유에요. 누굴 위해서? 예수님만 모든 것의 주가 되고 모든 창조의 네트워크는 오직 예수님을 중심에 두는 거예요. 하나님은 뒤에서 우병우처럼 팔짱끼고 흐뭇하게 보시는 거예요. 비선실세는 예수님입니다. 그 앞에 있는 문고리삼인방은 은유에요. 왜 이 예가 적절하게 다가오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에요. 그렇게들 하고 있잖아요.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당신이 했잖아.”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형제를 미워했잖아.” “기억나지 않습니다.” “스물다섯살 때 교회갈 때 30분 늦었잖아.”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차피 은유니까. 너의 죄를 일체 묻지 아니하신다는 겁니다. 왜? 몸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래요. 아브라함때 아브람의 죄를 묻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브람을 볼 때는 뭐로 보느냐? 현재 믿음으로 의롭다 한 그 과정에 아브람, 옛날 육에 속한 인간이 꼭 필요했다는 사실, 친히 주님께서 자리로서 준비했다는 하나님의 네트워크만 기억하면 되는 거예요. 우리가 평생 죄짓고, 반항하고, 대들고, 불신하고, 주께 욕하고 원망했던 모든 것을 이 땅에서 살면서 기억만 하면 되는 겁니다. 어떤 차원에서? 주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 믿음 안에서 기억만 하면 되는 거예요. 내가 이정도밖에안되는 죄인중에 괴수였는데 주님의 은혜로 이렇게 구원받았습니다, 하는 거예요. 죄도 질적인 차이가 있지요. 사도바울은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 우리죄는 과속좀 하고 어릴 때는 노상방뇨 하고 이 정도지요. 그런데 사도바울의 죄는 뭐냐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였습니다. 저 인간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도바울이 얼마나 당당한지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지난 일, 예수 잡아 죽이는 그것도 하나님이 시키신 하나님의 비유였고 은유였다는 겁니다. 내 책임 아니라는 거예요. 이 뻔뻔함? 이런 철판이 어디 있어요? 너무나 뻔뻔해요.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지 못합니까? 좀 팔짱도 끼고, 우리가 검찰청의 우병우처럼 뻔뻔함을 배웁시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성령안에서의 자유함이라고 하는겁니다. 구애받지 말고 주눅들지 말고,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중요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비유인데 그 비유가 있다는 말은 비유를 비유되게 하는 실체가 있을 거잖아요. 그 실체가 26절에 나옵니다. 그 실체가 문제가 돼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그 다음에 뭡니까? “우리 어머니라.” 어머니가 위에 있다는 거예요. 안상홍집단인가요? 어머니의 하나님을 주장하는 그 동네인가요? 그 어머니를 아무나 어머니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그 어머니로 낳은 자식만 어머니가 그 어머니가 되는 겁니다. 그 자식은 어떤 자식인가? 27절에 나옵니다. “잉태치 못한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다시 말해서 믿는 자는 이 땅에서 나를 신자되게 만들고 믿는 자 되게 만든 어떤 인물도 같은 인간 내에는 없다는 겁니다. 어느 누구도 나의 어머니가 될 수가 없다는 것. 그러면 그 어머니는 뭐냐? 그냥 하늘에 있는 어머니라 하지 마시고, 바로 비약하지 마시고 언약이 우리에게 엄마역할로 자리를 깔아요. 자리를 깔게 되면 그 자리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효과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나옵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사람을 뭐라고 하느냐? 4장 29절에,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라고 되어 있어요. 두 종류의 인간으로 되어 있어요. 비유인데 하나는 성령따라 난 사람이 있고 육체를 따라 난 사람이 있지요. 육체를 따라났다는 말은, 아버지 날 낳으시고, 그런 겁니다. 그런데 성령을 따라 난 것은 아버지가 날 낳아도 내가 구원받는 것은 아버지가 육적인 아무 역할을 못하는 거예요.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라서 모태신앙이고, 유아세례받고, 아버지가 목사고, 장로가정이라 해도 절대로 나를 구원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냥 시키는대로 하게 되면 용돈이나 더 타낼지는 모르겠지만 교회 가준다고 구원받는 것 아니에요. “그러면 교회 안가면 안됩니까?” 안간다고 구원받는 것 아니에요. 그러면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성령 받고 난 뒤에 그 전의 과정, 성령께서 어떻게 나를 다뤄왔는가, 나를 이끌어 왔는가, 인도해왔는가를 소급, 믿음은 소급현상이거든요, 소급해서 ‘내가 믿습니다.’가 아니라 ‘성령께서 믿게 하셨다.’고 언약으로 돌려버려요. 돌려버리면 어떤효과가 있느냐 하면, 나는 죽어도 이 언약의 자리는 계속 남는 겁니다. 내가 죽는 자리에 다른 사람이 구원받고 또 다른 사람이 구원받아요. 동일한 언약의 자리에. 이것은, 도서관에 책 던져놓고 거기서 공부했는데 다음날 되면 다른 학생이 내가 있던 자리에 자기 책가방 놓고 공부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자리는 영원토록 갈 자리지요. 그 영원한 자리가 할례언약의 연속성에서 이루어지는 제사법에 있어서의 화목제물이 만든 자리가 되는 겁니다. 화목제물이 만든 자리가 돼요. 이것이 골로새서에 나옵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부터 누가 읽어보세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 분명히 주님께서 창세전에 먼저 난 것(1:15)으로 되어 있지요. 창세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창세전에 먼저 난 것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났지요. ‘죽은 자들’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주님께서 언약을 완성하는 그 터, 토대, 베이스, 그 죄많은 이세상을 하나도 버리지 아니하고 아주 실용성 있게 다 그걸 모아서 주님께서 주가 되시는 자기 터전으로 사용하시는 겁니다. 세상에 이렇게 알뜰하게 살림사는 분은 없어요. 바퀴벌레나 지옥 갈 사람까지 다 끌어모아서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나를 죽여라, 그 말이지요. 사람은 죽고 나서는 살 수 없다는 그것이 완전히 깔려 있는 이 세상, 죽음으로 끝나는 이 세상에서 “그렇지 않다. 죽음 가운데서도 구멍 뚫고 사흘만에 살아난다는 이 경우가 너는 예상 못했지만 분명한 현실로 주어진 거”예요. 이게 다중현실인 겁니다. 기존 현실에서는 악마를 이기지 못한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말은 이미 악마를 거뜬하게 이긴 거예요. 악마를 이긴 입장에서 그 다음부터는 들락날락 하는 이것은 그냥 패스포트에요. <엽기적인 그녀>라는 영화에서 남녀커플이 미성년자 못들어가는 술집에 들어갈 때 “혹시 미성년자가 아닌지……?” 하니까 차태현하고 전지현하고 짝을 맞춰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쳐들면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와요. 한 번 보라는 말이지요. 만 19세 이상이라고. 주님께서 악령마저 이겼기 때문에 그 이긴 패스카드가 들어 있는 사람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 4:8) 답답하다는 이 말을 고치겠습니다. 교회용어로 바꾸겠습니다. 컬컬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당하여도 절망하지 않는다는 조로 이야기하지요. 이 말은 우리한테 즐거운 겁니까? 아니면 슬픈 겁니까? 갑자기 우울해져요? 어떻습니까? 여러분, 병주고 약주는 것이 좋습니까? 아예 병 안드는 것이 좋아요? 우리 개인적 입장에서는 컬컬이고 답답이고 아예 좀 조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스데반집사 보세요. 그리고 열 두제자 보세요. 베드로를 보세요. 그 가는 길이 원치 않는 길, 허리끈 틀어 쥐이고 원치 않는 길로, 그것도 질질 끌려가잖아요. 내일일을 알지 못하면서 질질 끌려가는 겁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모든 것이 막혀 있을 때, 대책이 없을 때, 과연 내가 성령으로 난 사람인지,육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인지 티내는 하나의 실험기회가 온 거예요. 내가 노력해서 기도해서 해결하려 하면 이것은 마귀에 완전히 빠진 사람입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 내가 기도하면 효과 있더라는 이것은 안됩니다. 그런 짓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 해결점은 있어요. 어디 있습니까? 내가 그 해결점을 엉덩이에 깔고 앉아서 누르고 있어요. 나만 낮추면 되는데, 나만 쪼다 되면 되고, 내가 세상에서 개망신되면 되는데, 내가 남한테 인정받으려고 하니까 일이 자꾸 꼬이는 거예요. 이게 뭐냐? 사사기에요. 사사기의 구원자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에요. 쪼다같은 방앗간 주인, 그게 사사에요. 인간취급도 못받는 왼손잡이, 그게 사사고 깡패 입다가 구원자에요. 심지어 잇따라 세 번씩이나 여자를 밝히는 그 삼손이 구원자라니까요. 왜 자꾸 환경을 조작을 하십니까? ‘이 괜찮은 나에게 괜찮은 환경이 주어져서 나는 괜찮은 인생 살았다고 남에게 자랑질 해야지.’ 이것은 10미터에서 하는 남에게 보여주기인데 3미터 앞까지 가면 그것이 들통나요. 이것은 조작한 인생입니다. 주님이 거기에 속아넘어갈 리가 없어요. 나는 남을 속이고 싶어도 주님은 우리에게 속아넘어가지 않는 것에 대해서 또 다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내 수법에 안속아넘어가시고 또 나로 하여금 네가 너무 과분한 은혜 받았음을 깨닫게 하시는 그것이 매일의 감사가 되시고 범사에 감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화목이라는 말, 제사 이야기를 했는데 남은 시간에 제사 이야기를 잠시 해 드리겠습니다. 제사가 주님이 시킨 것이 맞아요. 그런데 문제점이 있어요. 제사의 특징은 인간쪽에서 하나님쪽으로 나간다는 이것이 문제가 돼요. 그래서 제사해서 실패해요. 인간쪽에서 하나님쪽에서 나가는 것은 뭘 들고가요. 십일조나 예물을 가지고 나가서 받으소서, 하고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야기합니다. 시편 50편, “온 산의 것들이 다 내것인데 거기서 그것들의 장소를 이동시킨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내 것이 될 일은 없잖아. 네가 나한테 바칠 생각 하지 말고 현재 네 안에 갖고 있는 모든 것이 나에게 바치기 전에 내가 너에게 먼저 준거잖아.” 줬다는 거예요. 다 준거예요. 십일조 바치기 전에 우리는 십의 전부를 이미 누리고 살고 있는 겁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십일조의 완성, 그것이 의와 신과 인입니다. 돈 낸다고 십일조가 새삼스럽게 완성된 것이 아니에요. 다 주님의 것이라고 믿을 때 이미 십일조는 완성이 된 거예요. 어디서 왔는가? 그리스도가 죽은 자에서 살아났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그것이 곧 율법의 완성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들고 나오게 했어요. 들고 흔들고, 요제, 거제, 붓고, 전제, 태우고, 화제, 이 네가지 종류의 제사법이 인간쪽에서 뭔가 손대고 실시하는 거예요. 이게 무슨 현실? 단일현실이지요. 이 단일현실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뭐냐? 천주교고, 심지어 개신교도 물상적, 물질화된 매개를 일반 고객들이 원하니까 목사가 갑자기 로만 칼라를 하지를 않는다 철마다 가운을 갈아입지를 않나, 계절마다 커튼을 바꾸지를 않나. 이것은 무슨 이야기냐? 교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월급 값을 하니 쫒아내지 마세요.” 그런 뜻이에요. 이제는 말한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까, 새신자 모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제발 월급 깎지 말고 보너스도 두둑하게 주세요. 커튼 바꾸잖아. 아마추어들은 모르지만 내가 프로기에 알아.” 맥추절에 맞춰서 바꾼다는 그런 짓들을 하는 거예요. 어쨌든 간에 구약의 제사의 특징은 인간 쪽에서 다가가는 거예요. 그런데 신약은 아서라, 말아라, 내가 너에게 다가오는 겁니다. 그냥 덮치는 것, 함몰되는 거예요. 식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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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0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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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