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강-YouTube강의(사랑)170103-이 근호 목사
177강-YouTube강의(사랑)170103-이 근호 목사
제177강, 제목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사랑하지 말아야 될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다하면, 그 사람을 사랑하자. 하게 되면 지금껏 사랑한 사람도 있고 더 추가해서 사랑의대상이 하나 더 증가한 셈이 되지요. 그런 사랑은 이건 어려울 게 없어요. 사랑해서 그냥 사랑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사랑은 뭐냐 하면 뭘 하나 사랑했잖아요. 그러면 그 전에 사랑한 걸 다 미워해야 됩니다. 증오해야 돼요. 아~ 진짜 어렵지요. 누구든지 처나 자식이나 아비나 남편이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 이렇게 했거든요.
그 말씀을 예수님이 하신 이유가 평소에 우리는 뭘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바로 혈통, 배 아파서 난 자식, 나를 닮은 내 가족, 내 형제. 절대로 우리는 이걸 미워할 수가 없어요. 뭐 가끔 아버지가 화나가지고 “호적 빼라.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다.” 라고 하는 그런 큰소리치는 이유가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요. 진짜 그 사람 미워하면요,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이리 돼요.
관심 있기 때문에 잘되라고 혹시 이런 과격한 발언이 나중에 이게 자극이 되어서 개과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되라고 그렇게 자기로서는 하기 싫은 이야기를 아버지는 나를 미워하는 모양이다. 라는 오해 받을 것을 각오하고 아픔을 각오하고서 내뱉는 거거든요.
그래서 평소에 주님을 사랑하라고 성경에서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평소에 자기 사랑함을 꼭 쥐고 그냥 그대로 사랑하고 거기다가 예수님까지 덤으로 하나 더 숟가락 얹듯이 사랑하게 되면 같은 한 바구니에 같이 다 모인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어떤 현상이 등장하느냐 하면 만약에 천국 갔을 때, 내가 평소에 진짜 사랑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천국에 안 보이면 그 사람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어요. 심지어 그 사람이 지옥에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 없이 천국에 사느니 차라리 그이와 함께 나는 지옥에서 불구덩이에서 살래. 이런 강렬한 애정표시를 하겠지요.
그런데 제가 평소에 얘기하듯이 죽어서 천당 가서는 안 된다고 했지요. 죽어서 천당 가면 천당을 못갑니다. 어디에 가야 되느냐, 살아있을 때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어야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살아있을 때.
그러면 천국 와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안 보이고 지옥에 있으니까 “나는 지옥갈래. 나는 천국 싫어! 심심해서 못 살겠어.” 라고 하는 그런 성깔을 부린다면, 그런 성깔이라면 벌써 이 세상에서도 죽기 전에도 이미 그런 성깔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예수 믿는 건 좋은데 “나는 저 사람과 함께 예수 믿는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어. 저 사람이 교회가면 나는 교회 안 갈 거야.” 이런 거 있잖아요. 또는 반대로 내 사랑하는 사람이 절에 가는데 나는 교회에 가고 싶지만, 그 사람을 내가 너무 사랑해서 나도 같이 그 사람 따라서 나는 가까운 절에 가서 시주하고 절하겠다. 이런 태도.
“나는 사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저 사람도 버릴 수 없어서 나는 그 사람이 가는 종교를 선택했습니다.” 하는 그런 경우에 성경에서 준 사랑이 아니에요. 왜냐 하면 방금 제가 나열한 이 사랑은 그 사랑의 결정권이 누구한테 있느냐 하면 본인한테 있어요. 본인은 남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내가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이OO목사님을 내가 사랑한다고 한다면 만약에 사랑하는데 이목사님은 막 뒤에서 험담하고 막 욕한다. 지금도 그럴 수 있겠지만. 욕한다 이러면 욕해도 사랑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오! 내가 그만큼 당신을 생각해줬는데 당신은 나를 뒤통수 때려! 그러면 갑자기 사랑이상으로 증오가 나오겠지요.
그러면 이 말을 정리하면 뭡니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어요. 내가 힘들여서 이렇게 아끼는데 자기 아꼈다는 그 아낌을 기억해가지고 계속 기억했던 자기 아낀 것만 계속해서 내가 내 기억을 이뻐하는 것처럼. 그걸 지켜주는 것처럼, “나처럼 지킬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요.” 그런 것처럼. 자기가 지켜준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이렇게 인정을 해버리는 겁니다. 내 편 되는 경우라는 조건 걸고 사랑이라는 그런 고상한 개념을 툭 던지는 거예요.
모든 인간이 다 그래요. 사실은. 모든 인간이. 죄로 태어나 다 그런데. 그걸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느냐 하면 부부생활, 결혼생활에서 그걸 확인할 수가 있어요. 당신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하겠다. 라고 보통 프로포즈할 때 그렇게 하는데. 시늉을 하면 안 되지요. 죽어야 되지요. 시늉은 누구는 못해. 다합니다. 죽어야 되지요.
그러면 여자가 하지요. “당신이 지금 나를 이렇게 사랑한다하는데 만약에 내가 애를 낳아가지고 당신보다 내가 낳은 애를 더 사랑한다면 당신도 나처럼 내가 낳은 애를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느냐?” 여자들은 그런 테스트를 결혼 전에 해보지요. 자꾸 찔러본다고요. 과연 평생 모든 걸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상대자인지 봐요. 사귀면 사귈수록 질문의 난이도가 높아져요. 오래 사귀면 결혼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집니다. 전에 안 했던 질문을 더 난이도를 심하게 해가지고 꽈서하기 때문에 남자들은 그 다음에는 정신 바짝 차리자. 해가지고 다음에 또 어떤 질문이 튀어나올지 모르지요.
성경에서는 바로 일체의 모든 인간의 사랑은 이것을 악마의 솜씨라고 봅니다. 이것은 육에서 나온 육의 징후라고 봐요. 멸망 받을 죄라고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할 때, 그 하나님의 사랑의 개념을 우리 식으로 곡해하시면 곤란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내 속에 하나님의 것을 집어넣어놓고 집어넣어준 그것을 하나님이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을 닮았지요. 우리도 내가 남한테 내 것 집어넣고 내 것 준 것. 내가 준 선물 아직도 가지고 있나? 이런 거 묻지요. 그것만 보는 거예요.
만약에 어떤 분에게서 내가 성경책을 받았는데 이걸 귀하게 여겨야 되는데 이걸 팽개친다. 하면 집사님은 줘놓고도 기분 나쁘지요. 이런 생각 들지요. 여자가 시집가서 제일 듣기 싫은 게 뭐냐 하면 처음에는 몸만 오너라. 해놓고는 니 올 때 혼수 얼마 했나? 시가집이 물을 때, 직접 그렇게 묻는 사람 없고 “아이고, 뉘 집은 좋겠다. 옷을 그리 많이 해왔다며.” 이건 뭐 솔직히 발로 안 차는 것 같으면서도 발로 팍 차는 셈이 되어버려요. 그러면 보복조치 날아오지요. 여보, 빨리 갑시다. 빨리 친정에 갑시다. 이렇게 하지요. 보복 조치 날아오는데.
성경에 고린도전서13장 13절은 여기는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하나님의 선물을 줬다는 거예요. 아니 받은 적이 없는데 언제 줬다는 겁니까. 줬다는 겁니다. 그 선물을 가지고 은사라고 하거든요.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왜 사랑이냐 하면 믿음, 소망은 이게 이 세상 천국 갈 때까지만 유효하고 그 다음은 천국가고 나면 이게 꼬리 자르기 해가지고 이게 없어져버려요. 이미 천국 왔는데 무슨 소망이 있고, 천국 왔는데 무슨 믿음이 필요해요. 끝나버렸지요.
이게 건물 지을 때 처음에 옆에 지지대 하잖아요. 공사 올릴 때 바깥 미장도 해야 되고 올려야 되니까. 건물 짓고 난 뒤에 어떻게 됩니까? 거기에 있으면 안 되지요. 다 헐어버려야 되지요. 다 헐러버리고 본체만 남아있어야 되잖아요.
믿음 안에 사랑 있었고 소망 안에 사랑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음, 소망, 사랑 이 3가지 다 있어야 되는 줄 알지만 사실은 믿는다는 말은 이 믿음이 어디서 왔는가? 사랑에서부터 원천이 되어서 흘러온 믿음이에요.
믿음, 소망 안에도 사랑에서 온 소망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 이 말 해석 아주 정답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갖고 있었던 믿음, 예수님이 갖고 있었던 소망, 예수님이 갖고 있었던 사랑을 성령의 은사로서 예수님 십자가 부활하시고 성령의 은사로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 것하고 그냥 사랑하자의 차이는 뭐냐, 그냥 사랑하게 되면 내가 주님 사랑하는 사랑을 우리가 부정이 안 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다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졌잖아요. 따라서 우리 사랑은 십자가 앞에서 다 죄라고 들어나는 거죠.
진짜 주님의 성령의 은사 사랑을 받았으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 게 아닙니다. 라는 요한일서의 말씀을 그대로 늘 우리에게 새겨지는 거예요. 나는 주님을 사랑한 적이 없는데 아직도 주님은 나를 사랑하네. 이게 바로 선물로 준 사랑이 우리 안에 있고 주님은 그 사랑을 지금도 바라보고 기뻐하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