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강-YouTube강의(삶의 다른 의미)170103-이 근호 목사
176강-YouTube강의(삶의 다른 의미)170103-이 근호 목사
176강, 제목은 ‘삶의 다른 의미’입니다. 밥 먹고, 사고, 팔고, 일하고, 잠자고 그 외에 인간이 하는 일이 또 있는 것인가? 제가 이 강의를 하기 전에 먼저 질문으로 시작하지요. 밥 먹고 살고, 일하고, 잠자고, 병들어 살다가 죽고 그 외에 인간이 할 일이 있겠는가? 제가 질문을 했는데 제가 답변을 내릴게요. 없습니다. 그 외에는 없어요.
따라서 인간이라 하는 것은 왜 없느냐 하면, 인간이라는 자체가 살아있을 때만 인간이고 죽으면 뼈가 되고 시신이 되기 때문에 의미가 한시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요. 인간이라 하는 임시적인 의미 말고, 영원한 의미가 붙으려면 살아생전에 영원한 의미와 접촉이 되어있어야 됩니다.
그냥 성경 덮어버리고, 다른 똑같이 몇 년 살다가 죽을 다른 사람한테 “우리가 사는 의미가 뭐지?” 라고 한다면 벌써 저는 정답을 내렸습니다. 밥 먹고 살고 그리고 잠자고 일하고 늙다가 잠시 즐거운 거 보다가 아프다가 죽는 것. 그것뿐이지요. 인생이라는 것은.
영원하지를 않다는 말입니다. 영원하지도 않은데다가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에 의미를 붙이면 안돼요. 그건 반칙이에요. 반드시 의미라 하는 것은 오래 지속되어야 되지, 잠시 의미 있다가 사라질 것에다가 의미를 붙이는 것은 그 의미를 붙이자마자 몇 년 살다가 죽어버리면 그러면 그 인간의 의미라 하는 것은 처음부터 다른 의미 없어요.
왜냐 하면 의미가 없어지기 위해서 의미를 붙인 것밖에 안되지요. 의미가 사라지기 위해서. 의미도 없는데 무의미인데 자꾸 의미를 요청하는 그 이유가 아주 잘못됐지요. 그래서 그 인간의 의미가 없으면 그 다음에 뭐까지 나가느냐 하면 인간이라 하지를 말자는 겁니다.
차라리 성경대로 그냥 흙이다. 흙이 잠시 변형 인간인체 하다가 도로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다냐, 성경을 이제 보게 되면 바로 인간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는데 영원한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살다가 사라지는 그것도 영원한 의미가 거기에 들어있고 함축되어있어요. 그게 일종의 동아줄이지요.
영원히 구원받을 수 있는 동아줄을 잡는 거예요. 동아줄은 썩은 밧줄로 하면 안 됩니다. 내가 꾸민 것은 썩은 밧줄 돼요. 왜냐 하면 내가 죽기 때문에. 죽는 당사자가 살려고 하는 것은 이게 오류가 있어요. 죽는 당사자가.
이것 한 번 생각해보세요. 고장 난 컴퓨터가 컴퓨터를 고쳤다고 생각해 보세요. 기계가 기계를 고친다. 그런데 그 고장 난 기계가 기계를 고쳐보면 백발백중 고장 나지요. 다른 사람이 고장 내지요. 엄마 아빠가 인생의 의미를 모르는데 우리는 그 엄마 아빠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빠, 엄마가 묻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이렇다. 그 자식은 또 고장 나게 만듭니다.
본인이 신이 아닌데 어떻게 영원한 의미를 우리한테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엄마, 아빠가 이야기하려면 엄마, 아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안 되고 뭘 이야기해야 돼요? 하나님의 이 계시를 언급해야 됩니다. 이게 부모의 도리고 부모의 역할입니다. 좀 부담되십니까?
“니는 나처럼 살아서는 안 돼!” 이게 베이스에 깔려있어야 돼요. 니는 나처럼 살아서는 안 돼! 니가 내 전체를 담고 있는데 왜냐, 다 큰 인간이니까 니도 내가 무의미한, 허무한 인생을 똑같이 따라가고 있는데 “너는 그래서는 안 돼!” 라는 말을 하려면 바로 부모 된 입장에서 먼저 하나님의 계시와 접촉이 되어야 되고 연결이 돼있어야 되지요.
그러면 연결이 되어있으면 우리가 아는 친척이나 자식들에게 바른 의미를 알려줄 수 있는가, 이렇게 강요해서 반복적으로 인생은 이런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그들이 깨달을 수 있는가,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을 알고 엄마 아빠 된 입장에서 먼저 성경을 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내 삶이 내가 꾸려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본인이 알게 돼요.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 자식이니까 내가 키운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그때부터 어떻게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 맡기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 맡기는데, 어떻게 맡기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맡기게 되는 겁니다. 그럼 그 말은 뭐냐 하면 자식을 키우는 그 속에서 내가 이해한 구절들을 찾아내고 뽑아낼 수 있는 안목이 발생돼요. 처음의 이야기와 다르지요. 처음의 이야기는 부모가 말씀을 알아서, 부모가 복음을 알아서, 자식을 잘 키우면 너도 구원받고 나도 구원받는다. 요러한 계획에 의해서 시작했는데 진짜 복음이 와버리면 그 계획이 누구나 인간적인 계획이고 이미지 계획이고 이건 꼼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건 제대로 복음을 모르는 부모가 성급해가지고 내 자식은 무조건 천당 보내야 돼! 라는 욕심 때문에 중간에 하나님의 계시를 훼방 놓는 겁니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난을 키운다던지, 집에서 뭔가 애완동물을 키울 때, 개는 너무 흔하니까 개나 고양이는 빼고요, 그냥 희귀한 애완동물이나 아니면 어항의 열대어 키울 때, 매일같이 눈뜨면 뭘 쳐다봅니까?
어항 쳐다보지요. 이게 얼마큼 컸는가 보지요. 고 즐거움이 있잖아요. 복음을 알고 말씀을 아는 사람 같으면 자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께서 이 자식 속에서 말씀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그걸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어요.
그러면 자식이 “엄마는 왜 자꾸 나를 매일같이 아침마다 들여다보는데?” 하면 고 때 고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은 엄마하고 다이렉트로 연결하다가 자식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식에게 간다면 애들도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을 통해서 엄마한테 대화를 던지는 것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사될 수가 있어요.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지만.
그러면 그 예를 구체적으로 들어보면 누가복음17장 25절부터 30절에 보면,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해놓고 26절,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또 어떤 대목에는 사고, 팔고 있어요. 사고, 팔고 하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라고 되어있지요.
방금 읽었던 요 26절을 집에서 키우는 자식한테 보는 거예요. 애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애를 26절에 집어넣으면 아이들은 스마트 게임하고 컴퓨터 게임하고 그냥 학원 갔다 오고 친구하고 놀고, 그렇게 하다가 홍수가 나서 다 저희가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다가 이렇게 딱 가로에다가 대체해서 적용할 수가 있는 겁니다.
어떻게 상당히 즐겁지 않습니까? 애가 매일같이 스마트 게임하고 또는 공부 잘하면 공부 잘한다고 자랑질하면서도 뭐를 자꾸 하느냐 하면,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그게 인생의 의미가 아닌데 애는 이게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누가 나오면 반 유엔총장처럼 될래요. 나는 누구처럼 대통령이 될래요. 그게 전부라고 아는 거예요. 그게 한시적이고 임시적인데. 그걸 보면서 “엄마, 오늘 100점 맞았어!” 그런 예들 지금 많지요. 가정마다. “나, 오늘 1등 먹었어.” 그런 거 없습니까? 많지요? “오늘도 1등 했어.”하면 ‘아, 저래서 멸망하는구나!’ 그럴 때 애가 엄마 표정보고 이상하다. 다른 가정은 다 좋아가지고 뭐 사줄까? 이렇게 나오는데 엄마는 쯧쯧 하는 그런 기분으로 “그게 의미가 다가 아니야.” “그게 다가 아니야” “엄마, 그거 어떻게 아는데?” “누가복음17장26절에 나오는 이야기야.” 이렇게 되는 겁니다.
“앉아봐라. 성경 가르쳐줄게.” 이리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성경 들어 줄 테니까 이거 사줘?” 세상적인 행세가 또 나오게 되어있어요. 서로 교환하듯이. 엄마 해줄 것 해주고 나는 뭐 해주고. 저번에 수련회 하는데 수련회에 가주는 대신 일당해가지고 50만원 받은 애가 있어요. 엄마가 수련회 가는데 아들보고 가자고 했거든요. 하니까 애가 가줄테니까 50만원 줘. 이리 되는 거예요. 50만원주고 데려왔다는 겁니다. 50만원인지 15만원인지 잘 모르겠는데.
28절도 마찬가지에요.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아까는 홍수가 났지요. 이번에는 하늘에서 유황불 떨어져서 다 죽었습니다. 이게 누가복음 17장 26절, 28절 이야기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처음에 질문했습니다.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그 외에 인생에 의미 없습니다. 왜? 한시적이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 믿어도 역시 허무하기는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떠날 때는 떠나면서, 떠날 때는 말없이가 아니라 떠나면서 바로 우리 주변에다가 누가복음17장 26절, 28절을 남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