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강-YouTube강의(경쟁 사회)161220-이 근호 목사
174강-YouTube강의(경쟁 사회)161220-이 근호 목사
174강, 제목은 ‘경쟁사회’입니다. 보통 경쟁하면 상대할 만한 사람끼리 붙는 걸 경쟁이라고 하지요. 어른하고 애하고 사실은 경쟁이 라는 것은 성립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 인간사회에서는 경쟁을 누구하고 하느냐, 같은 사람하고 경쟁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경쟁하는 차원이 그 성질이 단 하나로 규정이 돼요. 사람 대 사람. 더 넓게 이야기해서 국가 대 국가. 역시 국가도 사람이 있으니까. 기업체와 기업체. 교회와 교회. 또는 기독교와 불교.
그 안에 내막을 뜯어보면 뭐가 들어있습니까? 사람이 들어있지요. 경쟁이라 한다면 사람과 사람이 경쟁한다. 끝! 그 외에는 다른 경쟁 없지요. 인간이 천사하고 경쟁하고 이런 건 없습니다. 그런데 경쟁을 하면 피곤합니다. 그럼 경쟁을 안 하면 되지요. 그런데 우리가 경험상 목적을 이룬다던지 성공을 이룬다던지 뭔가 얻고자 하는 것은 경쟁 없이는 얻을 수가 없어요. 왜냐 하면 내가 원하는 것도 남도 같이 원하고 있으니까. 목표가 하나인데 둘이 달려들었다. 자연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경쟁을 이렇게 정리합시다. 모든 사람들이 경쟁할 수밖에 없는 어떤 목표점이 이 세상에 형성되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목표하는 것을 서로 얻기 위해서 경쟁한다. 경쟁하게 되면 그 승자에게 모든 영광이 주어진다. 요렇게 설명하게 되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됩니까? 꾸려가고 있습니까? 경쟁과 경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하는 말이 하나의 정답이 될 수가 있습니다.
고요한 세상없지요. 어릴 때 가정에서는 경쟁 없이 그냥 꿈만 꾸는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릴 때 있던 그 아름다운 꿈은 사회에 나가면 경쟁 없이는 그 꿈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그 때부터 인간의 몸은 아프고 피곤하기 마련이고, 얻는 걸 얻기 위해서 손해가 너무 극심하게 되는 겁니다. 나중에는 몸도 망가지고 정신도 망가지고 그러다보면 벌써 인생의 황혼기가 다 되지요.
그러면 성경에서는 인간사회가 경쟁의 사회라면 그러면 하나님의 복음과 구원은 이 세상에 들어올 때 어떻게 들어왔는가, 역시 경쟁합니다. “아니 구원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닙니까?” “그냥 아무것도 아닌데 값없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닙니까?” 우리가 어떤 들을 상식 같으면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냥 준다. 그냥 주시는 건 맞는데, 그냥 주시기 위해서 그 주시는 분이 이 땅에서 경쟁해서 그래서 승자가 되어서 얻어진 것을 우리에게 그냥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어디를 주목하는가 하면 얻었다, 에 주목하지 말고 누가 어떤 경로를 밟았는지 그 경로에 주목해야 돼요. 얼마나 나 때문에 고생했는지를. 그것에 주목하고 그것을 고백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신자에요. 나 구원 얻어 챙겼다! 이건 욕심쟁이죠. 이건 주님을 이용한 거고 그것은 신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신자가 되었으면 나에게 찾아오기 위해서 경쟁이 심한 이 곳에 치열하게 경쟁하시면서 기어이 우리에게 구원을 건네주려고 개인도 파인 이 세상에서 피를 흘리면서 노고를 하면서 오신 거예요. 그게 만약에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러면 그 하나님의 하신 그 경쟁의 고생한 것을 우리가 찾으면 되지 않겠느냐, 아~ 요 경로로 오셨구나! 그럼 그것을 찾게 되고 발견하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된 사람이라고 확인할 수 있겠다. 그런 아이디어가 들겠지요.
그 경로가 성경에 어디 나오느냐, 마태복음2장에 나옵니다. 크리스마스 때 주로 나오는 그런 구절 나옵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누구하고, 누구하고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느냐 하면, 동방박사와 헤롯왕이 경쟁하게 되어있지요. 애들도 아는 거죠. 헤롯왕 때에 동방에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왔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싸우러왔을까요? 곱게 왔다가 곱게 다녀가려고 했을까요? 곱게 다녀가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경쟁하는 세계입니다.
동방박사 본인의 생각에 그냥 조용하게 갔다가 조용하게 빠지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그걸 용납하지 않습니다. 니가 원치 않는 경쟁에 휘말려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뭘 의미하느냐 하면, ‘나는 그냥 산 속에서 기도하다가 곱게 기도하다가 곱게 구원 받을래’ 라는 생각을 우리가 하게 마련이지요. 왜? 세상에서 너무 시달리고 치댔으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성도를 그렇게 그냥 방관하지 않습니다.
동방박사처럼 경쟁사회에 니도 일부로서 빠질 수 없다고 이 경쟁사회에 우리를 집어넣어버립니다. 우리는 상당히 얍삽한 생각에 ‘아이고, 저 요란한 지옥 같은 세상에서 빠져나와서 유유자적하면서 삿갓 쓰고 그냥 긴 강물에 낚시하다가 주께서 부르시면 구원받는, 병풍 속에 동양화에 나오는 어떤 선비 있잖아요. 그냥 바둑이나 두는 그리고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새소리만 들리고 물소리만 들리는 깊은 산 속에 있는 그런 산골에서 살다가 가고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하나님은 성도를 그런 식으로 다루지를 않습니다.
싫든 좋든 경쟁에 던져 넣습니다. 그러면 경쟁에 던져놓으면 그럼 우리가 죄를 이겨야 되는데 무슨 수로 이깁니까?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저쪽에서 다 갖고 있는데. 권력도 없지요. 돈도 없지요. 아는 사람도 없지요. 요령도 없지요. 있더라도 그만큼 그들 지옥 갈 사람들하고 솜씨를 부릴 재주도 없지요.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 와서 경쟁하면서 결국 죄에 굴복할 수밖에 없던 이런 형편에 놓여있습니다.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말입니까? 마태복음2장13절, 14절에 보면 그걸 두 개의 단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부터 먼저 말씀을 드리면 12절에 나옵니다.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고, 그 다음에 무슨 길이지요? 다른 길로 갔지요. 다른 길.
자, 다른 길로 갔습니다. 다른 길에 가니까 경쟁사회에 분명히 들어왔는데 길이 달라요. 동방박사가 원래 다른 길로 가는 게 취미입니까? 취미가 아니고 누가 다른 길로 가게 했습니까? 주님께서 다른 길로 가게 했지요. 이렇게 되면 동방박사는 어떤 쾌감이 생길 수 없느냐 하면, 나는 세상을 이겼다. 라는 그런 쾌감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지요.
그러니까 여러분께 당부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이길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런 즐거움을 주지를 않습니다. 주께서 다른 길로 빼돌렸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길로 갈 이유가 뭐냐 하면 저쪽에서 먼저 달려 드렀잖아요. 죽인다고. 한 성질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나는 주님과 함께 있어.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볼까. 이런 오기 같은 게 나오겠지요. 쓸데없는 오기는 부리지 마세요.
싸울 사람하고 싸워야지, 되지도 않는 사람과 싸울 필요도 없어요. 저쪽에서 공격할 때는 주께서는 다른 쪽의 길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 다른 길이 원천이 있을 게 아니냐 말이지요. 동방박사도 다른 길, 베드로도 다른 길이라면 다 같이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진짜 처음 원료적인 다른 길은 누가 갖고 있는가.
그건 13절, 14절에 나옵니다.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그 다음에 나온 단어가 뭐죠? 애굽으로 피하여. 피하지요. 12절에는 뭐라고 했습니까? 다른 길. 13절에는 피하여.
자, 묻습니다. 피하는 것이 경쟁에서 이긴 거예요? 인간적인 안목에서 진 겁니까? 졌지요. 지세요. 지는 게 이기는 겁니다. 이게 예수 그리스도의 본류적인 거예요. 원판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룰 때는 이렇게 첫 째, 경쟁을 안 붙이는 게 아니라는 것. 경쟁을 안 붙이는 게 아니고, 유유자적으로 혼자 있는 게 아니고, 자기가 알아서 피하지 않고, 경쟁 속에 뛰어들게 만듭니다. 그러면 우리는 거기서 우리가 경쟁을 이길 수 있는 어떤 무기나 힘은 장착되지 않아요.
그냥 당하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약하고 당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되어야 주님의 손길을 우리가 체득할 수가 있어요. 피한 길. 다른 길. 이걸 경험할 수 있어요. 지가 알아서 기도원 들어가고 알아서 돈이 무기라면 나도 돈 있다. 나도 예수 믿는 교회는 이렇게 부자 되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자꾸 같은 급으로 달려들고 싸우고 하지 마세요.
니가 말발 좀 하면 나도 한 말발 한다. 이런 식으로 하지 마시고 그쪽에서 쓸데없이 성경이야기하면 축구이야기하고 이렇게 하세요. 전혀 다른 쪽으로 대체하세요. 미리 손들어버리세요. 졌다. 졌다. 졌다.
오늘 첫 번째 강의의 핵심은 졌다! 입니다. 정치이야기하지 마세요. 졌어요. 모든 권력에 지고, 새누리당에 지고, 민주당에 지고, 항상 주님께서 졌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긴 적이 없기 때문에 지세요. 지고 보게 되면 자존심 깨지고 위신 깨지고 체면 다 망가지고 그 현장에 누가 기다리고 있는가? “이제 왔냐?” 하고 주께서 우리를 반겨줍니다.
스데반집사가 졌습니다.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누가 봐도 졌습니다. 돌에. 권력에. 주께서 일어서서 영접했습니다. 집시다. 이게 경쟁사회에 우리를 집어넣은 하나님의 취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