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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61213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8-미셸 푸코자유게시판-

20161213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8-미셸 푸코
(강의:이근호 목사)

미셸 푸코는 1926~1984, 58에 패혈증으로 죽었어요. 60도 못 살았지만 참 열심히 살았어요. 이 사람이 한 주장들이 현대인들이 굉장히 잘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특히 동성애 부분에서. 동성애에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인권이거든요. 스스로 자기 권리를 마음껏 발휘하는 그런 토대 위의 인권. 내가 남성을 좋아하든 여성을 좋아하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권리라는 겁니다.

동성애 주장의 모토는,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돼있고 그게 남성이든 여성이든 관계없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이라는 거예요. 누구의, 국가나 사회인습에 간섭받을 필요 없는 것이고,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고. 동성애자가 있었는데 왜 그동안 가만있었느냐? 국가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따로 구분해서 통념상, 사회전통상 남성은 남성다워야 되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된다는 그것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푸코에 의해서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안 거예요. 푸코의 사상이 환영받는 이유를 알겠지요. 그걸 성소수자라고 이야기해요. 성소수자가 권세와 권리를 주장하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미셸 푸코의 사상이 어떤 사상이기에 오늘날 성소자들이 기를 펴고 시위도 하고 이제는 국가정책에 자기 의사를 반영하고 그 다음에 미국에서는 남자의 샤워 실과 여자의 샤워 실을 초등학교부터 없앴어요. 남성이 남성답다는 것은 나중에 여성으로서의 인권을 남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박해할 가능성이 많다. 어릴 때부터 차별을 없애면 동등한 인격을 가진 자로서의 이상적인 사회가 펼쳐진다. 거기에도 미셸 푸코의 사상이 다 녹아있습니다.

왜 오늘날 미셸 푸코의 사상을 좋아하느냐 하면, 이것 때문에 그래요. 시대적 단절성입니다. 이 말은 어른들, 기성세대를 따라갈 필요 없다는 거예요. 그 시대는 그 시대고, 이 시대는 이 시대고. 전통이란 연속성을 가져야 전통인데 푸코의 사상을 접하는 순간 우리 세대의 인생은 우리가 알아서 꾸려나가면 되지 모범답안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어르신, 어떻게 하면 됩니까?” 물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하는 대로 살면 그것이 우리 시대가 되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 시대에 갖고 있는 가치관을 어린 세대에 강요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거죠.

그런 것들이 전부 어디서 나왔는가? 미셸 푸코의 사상에서 나왔다고들 이야기해요. 푸코의 사상은 그런 사상이 아닌데도 푸코의 많은 책들 가운데서 자신들이 무질서하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옹호해주는, 무질서란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되죠. 무질서는 항상 질서 있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무질서가 부정적 의미로 있잖아요. 질서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무질서는 없고 이것만 있어요. 창조적 질서만 있는 거예요. 이걸 미셸 푸코는 ‘권력생산’이라 했습니다. 그 시대에 필요한 질서는 그 시대 사람이 만들면 된다는 거예요. 권력이죠.

그런데 하필 요즘 와서 인기 있는가에 대해선 미셸 푸코는 책임 없어요. 왜냐하면 옛날부터 그래왔거든요. 그럼 옛날 사람들은 왜 그걸 몰랐는가? 같은 인간인데 정신 바짝 차려서 요즘 사람처럼 자유분방하게 왜 못 살았는가? 양반이 어디 있고 상놈이 어디 있어. 조선시대 사람, 고려시대 사람은 왜 못했지요? 그 이유에 대해서 밝힙니다.

역사가 흐른다 하잖아요. 역사란 그 시대에 권력을 장악한 사람이 임의로 자기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상체계를 정돈한 거예요. 자기 권력을 옹호하기 위해서. 군주면 군주, 왕이면 왕 모든 것을 새롭게, 이걸 재생산이라 하는데 다시 만든 거예요. 꾸민 거예요. 조작된 거죠. 역사란 그 시대에 단절돼있었는데 사람들은 단절되면 전통성이 없으면 왕의 자리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뭘 우깁니까? 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미셸 푸코는 역사를 지워버리고 계보로 바꾸는 거예요. 계보학은 니체에서 나온 말인데요.

계보학과 역사의 차이는 뭐냐? 인간이 그 시대를 살면서 갖고 있는 자신의 몸, 자신의 신체가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분출하는 욕망이 있을 거란 말이죠. 인간은 그 시대마다 진리처럼, 푸코는 이걸 진리라 하지 않고 ‘지식’이라 한 거예요. 지식을 어떻게 그 당시 권력에서 만들어내느냐, 하는 겁니다. 지식이란 그 시대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민중들에게 분배해준 모든 진리체계를 푸코는 지식이라 한 겁니다. 에피스테메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패러다임이라 하는데, 패러다임은 그 시대에 필요한 인식의 틀이죠. 패러다임은 토마스 쿤이 이야기한 거고, 미셸 푸코는 에피스테메라고 이야기합니다.

역사가 아니고 계보학이라 하면 시간 의식이 소용이 없지요. 시간 의식이 없다는 말은 못해요. 인간은 시간 의식이 있으니까. 이게 별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즉흥적으로 살면 되는 겁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받은 사람이 누구죠? 밥 딜런이죠. 그의 주장이 그겁니다. 역사라는 게 수상하다는 거예요. 역사를 자꾸 가르치는 배후에 누가 있다는 거예요. 누가 있겠어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미국의 정치사가 있겠지요.

그래서 밥 딜런이 제일 먼저 반대한 것이 베트남 전쟁이잖아요. 전쟁을 반대하면서 나름대로 이슈가 히피였습니다. 누구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정주하지 않는 삶, 한 곳에 거주하지 않는 삶. 그건 뭐냐? 대지를 떠도는 삶이에요. 그것은 일종에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 반발이죠. 진리를 갖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그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새롭게 생긴다. 그래서 바람한테 물으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잖아요. <Blowin’ In The Wind>가 그 사상을 담고 있어요. 이조차도 밥 딜런과 미셸 푸코가 관련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미셸 푸코에 대해서 옹호하고 사상에 동조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지요. 그러나 푸코는 그 이야기하려고 사상을 펼친 게 아니에요. 미셸 푸코는 뭘 이야기하느냐 하면, “나는 악마를 보았다.” 상당히 절망적이에요. 옛날에는 왕이 또는 대통령이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반항하고 싶은 대상이 있어요. 삐지면 욕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단 말이죠.

그래서 미셸 푸코는 이성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성은 미쳤다.” 이성에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판단력입니다. 규격화, 합리적인 것, 이게 전부 다 이성이에요. 정돈된 것, 지저분하지 않은 것, 깔끔한 것, 계획적인 것, 규격화된 것을 해서 이성적으로 원칙을 만들고, 그 원칙대로 밀어붙여서 그 원칙이 원인이 되어서 예상한 합당한 결과물을 시간이 흐르면서 내놓게 되면 그걸 진보, 발달이라고 이야기해요.

그럼 이성에서 나온 제일 중요한 게 데이터가 나오지요. 모든 인간을 데이터화 시키면 되는 거예요. 그 시발점을 미셸 푸코는 바로 형벌의 계보학을 통해서 그걸 증명해냅니다. 옛날에는 죄 지을 경우에만 벌을 내렸어요. 옛날이란 말은, 중세 지나서 르네상스에서 1789년 파리혁명까지를 고전주의 시대라 해요. 19세기는 근대, 20세기는 현대로 봅니다.

고전주의 시대에 나온 게, 곤충채집할 때 어떻게 합니까? 곤충을 잡아서 분류를 하잖아요. 처음으로 데카르트의 이성이 발달하게 되면 모든 게 분류하게 됩니다. 데이터를 정하게 돼요. 분류를 할 때 인간의 이성이 동원되지요. 생각해보세요. 인간이 어떤 대상을 볼 때 정리정돈을 한다는 말은, 인간 안에 감정이 앞서는 거예요, 이성이 앞서는 거예요? 내 안에 정리정돈 한 게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바대로 가지런히 정돈하고 싶지요.

정리정돈하면서 나온 게 프랑스에서 문법이 체계화됩니다. 문법이 체계화된다는 것은 언어가 체계화되는 거예요. 언어가 체계화된다는 것은 나중에 태어난 아이들이 기성세대의 언어의 문법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언어체계를 갖추게 되면 계속해서 계보가 아니고 역사가 돼버리면 순종과 복종이 계속 이어집니다. 순종과 복종이 인간의 몸에 각인이 돼요. 이 몸은 습속, 또는 습관화됩니다. 습관화된 이것을 다음 세대에 전해야 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진리체계가 돼버려요.

농경시대에 며느리가 시집오게 되면 시어머니가 부르잖아요. 농경시대란 말은, 힘을 합치지 아니하면 연대하지 아니하면 넓은 토지에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농경시대는 가부장 제도에요. 요즘은 산업시대기 때문에, “이번 명절엔 못 갑니다. 수출 클레임 걸려서 해결해야 돼요.” 이렇게 산업시대는 다양화되어 부모와 합체를 못해요. 같이 있을 수 없단 말이죠. 그러나 농경시대는 토지 생산물 아니면 살 수 없어요.

그런데 십자가운동이 벌어지면서 베네치아, 또는 이태리 남부 나폴리는 무역항이 발달했어요. 무역이 발달하게 되면 토지에서 나온 생산물로 사는 게 아니죠. 무역은 시간차, 시간을 따져서 이윤을 채택하는 거예요. 이윤이 축적되게 되면 단순히 돈이 되는 게 아니에요. 자본이 돼요. 금융자본주의가 되게 되면 옛날에는 노동해서 얻는 생산이 나오는데 이건 시간에 따라서 돈 놓고 돈 먹기가 되겠지요. 있는 돈을 빌려주는 게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돈 있어서 돈 빌려주고 이자 받는 건 옛날부터 있었어요. 자본주의는 돈이 없어도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와서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주되 거기에 대한 이윤을 붙여서 돈의 가치를 늘이는 것이 자본주의에요. 돈 놓고 돈 먹기에요.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그때부터 전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계산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리하면 토지에서 나온 것으로 생산을 얻던 것이 이제는 이성적인 머리를 쓰는 자가 권력을 갖게 되는, 그게 입헌민주주의의 시작입니다. 국회 중심, 상공인 중심으로 하면서 이제는 토지와 관계없이 이성적인 계산에 의해서 부를 획득하고 생산물을 획득한 사람들이 권력층에 합류가 됩니다. 거기서 나온 문화가 바로크문화, 로코코문화가 되는 거예요. 귀족들의 누리는 모든 스타일에 합류하는 겁니다.

여기서 기본적으로 재산이 문제니까 재산이 많아서 협상하지 않으면, 15~17세기 계속해서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는데 전쟁은 용병을 모을 수 있는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데 돈이 있어야 영토 확장에 나설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영토 확장하게 되면 백성들이 나오겠지요. 백성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분류체계가 들어가는 겁니다. 그게 바로 17세기입니다. 미셸 푸코는 17세기 이념과 18세기 이념에서 단절이 일어났다고 보거든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상당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전에 단절을 이해하려면 17세기 때 인간들이 이성적으로 몸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라는 겁니다.

이걸 토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고 몸에 지식이 입력되는 거예요. 이성적 지식이 몸에 입력되는 거예요. 토지 때는 자연스럽게 살면 돼요. 미셸 푸코의 책 중에 [성의 역사]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성에 대해서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너무 과도하지 않으면 모든 게 용납돼요. 동성애도 뭐도 괜찮아요. 그런데 그것이 근대에 들어와서는 이 성에 대해서 강력한 제재가 가해집니다. 함부로 성에 대해서 남발하는 것을 국가적으로 차단시켜버려요.

제가 이런 이야기하는 것이 요즘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거예요. 성에 대해서 지저분하고 더럽고 추잡한 것이지. 그게 바로 우리가 인습화된 거예요. 이걸 푸코가, 내가 악마를 보았다는 겁니다. 악마가 바깥에 있으면 공격할 수 있어요. 이걸 전술, 전략이라 해요. 미셸 푸코가 표현하기를 권력의 전략이 뭐냐 하면, 바깥에 있는 공격하는 권력을 우리 안에 내재화, 자율화 시켜버려요. 그러면 알아서 긴다니까. 내가 알아서 스스로 이러면 나빠, 이러면 좋은 거야, 라고 권력이 나온 지식을 장착해버려요.

유명한 철학자들이 용어를 자꾸 만들어내기 때문에 용어 설명하는데 시간이 많이 가는데 어차피 그 용어를 쓸 수밖에 없어요. discourse라 해서 ‘담론의 공간’이라 합니다. 담론의 공간이란 은연중에 무슨 뜻을 갖고 있느냐 하면, 조직화돼있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이걸 언표라 해요. 언표란 단어도 상당히 낯선 단어고, 담론은 요즘 와서 좀 써요. 담론이란 말과 대화란 말이 달라요. 만들어진 토양이 달라요. 담론은 미셸 푸코가 처음 이야기한 거예요.

담론은 개개인은 평등한데 새롭게 모여서 새로운 지식체계를 창조해볼까, 이게 담론의 공간이에요. 그러면 담론의 공간 이전에 언표의 공간은 어떤 뉘앙스가 있냐 하면, 언표와 담론을 연결시키면, 네가 임시적으로 만든 지식으로 언표 수준에 있는 나를 함부로 질책하지 말라는 자유 인권성이 강렬해요. 이게 대화와 다릅니다. 대화는 네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을 우리가 지혜를 모아보자면 대화, 소통이 되지만, 담론이란 네가 무슨 지식이 있든지 간에 너는 물을 권리가 없다는 것을 강요합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사라지는 거예요.

언표 수준을 미셸 푸코는 존재라 합니다. 담론 수준으로 보면 유명한 푸코의 주체가 나와요. 언표의 존재의 차원과 주체의 차원이 달라요. 여기서 이만큼 무질서한 존재의 차원에서 담론의 차원의 주체가 조직화됩니다. 여기서 고백이 일어나요. 이것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시간이 많이 가지만 해봅시다.

이 고백은 옛날 수도원에서 자기들끼리 유폐된 그물망에서 했던 그때 누구한데 고백했어요? 수도사는 수도원장에게 수도원장은 신에게 각자 고백했지요. 고백이란 이런 뜻이에요. 언표의 주체와 언표 행위의 주체가 달라요. 언표의 주체는 예를 들면, “나는 밥을 먹는다.” 그런데 “밥을 먹는 그 자가 나다.” 할 때는 똑같은 내용을 보여주지만 나라고 고백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내뱉는 거예요. 이건 타인을 호출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체란 유폐된 그물망에서 호명당할 때 내가 이전에 미처 몰랐던 주체가 생산되는 거예요. 백수일 때는 몰라요. 그러나 회사에 취직이 되면 그 다음부터 그 권력의 그물망에서 나는 신입사원이 되는 겁니다. 새로운 주체를 부여받아요. 그런데 거기서 잘렸다. 그 주체는 날아가 버리는 겁니다.

주체는 뭘 염두에 두고 이해되느냐 하면, 자아는 아니란 말이죠. 자아는 홀로 있을 때지만 주체는 사회적으로 나왔을 때 유폐적 그물망이거든요. 나는 악마를 본 거예요. 어떤 인간도 이성적 악마의 그물에서 벗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상당히 암울한 세상을 이야기한 겁니다. 쉽게 말해서 아이고, 인간아 이렇게 됐어? 그 똑똑한 인간의 이성이 보편화되니까 인간은 자기 이성의 전략에 전술에 스스로 늪에 빠져서 해결책이 없습니다.

미셸 푸코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요. 해결책이 없어요. 이건 지난 시간에 한 들뢰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달아나는 것밖에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달아나봐야 1차원적으로 옆에서 옆으로 순환되어 달아날 뿐이지 달아날 다른 장소는 아무도 누가 제시해준 적이 없어요. 그런데 미셸 푸코의 사상을 제대로 모르고 푸코가 동성애 옹호하고 그러니까 미셸 푸코의 시대가 돌아왔다. 이건 들뢰즈가 한 이야기인데, 아니지 미셸 푸코가 들뢰즈에 대해서 앞으로 들뢰즈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해서 미셸 푸코가 들뢰즈의 영향을 받았다 것을 고백했는데 니체, 하이데거 서로 영향 다 받고 있어요.

언표란 주체가 무질서한 것이 조직화되고 담론이 되는데 여기에 인간의 이성이 주어졌고, 인간이 토지 중심으로 살다가 몸이죠. 무슨 몸? 몸은 무역을 하니까 배 타고 왔다 갔다 하니까 땅에 안 매이지요. 농경시대 이야기했지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장소에 사는 게 아니고. 왔다 갔다 하니까 새로운 권력을 생산할 수밖에 없어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촌의 엄마 말 들을 이유가 없잖아요.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지식을 두 사람이 이성적으로 권력체가 만났으면 몸에 각인된 권력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17세기와 18세기가 다르다고 이야기했어요. 지금까지는 서론이고 이제 본론에 들어갑니다. 17세기는 군주의 몸이라 했어요. 몸이라고 같은 몸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미앵이란 사람이 군주한테 대들다 참수당한 대목이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상세하게 나와 있어요.

죄를 지었을 경우에는 형벌을 받는데 18세기부터는 죄 지을까봐 이성적으로 사전에 조치에 들어갑니다. 예방조치로. 그게 이성적으로 효율적이기 때문에. 차가 박았을 때 벌금 물고 교도소에 몇 달 가 있으라. 이것과 국가에서 과속하기 전에 예방조치로 ‘시속 60’이란 표지판을 달아버려요. 그러면 70을 달리면 사고 나지 않더라도 거기에 합당한 벌금을 물게 돼있습니다. 이게 오늘날이잖아요.

죄를 짓고 형벌 받는 것이 아니고 죄 지을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사전에 법을 내재화해서 스스로 알아서 기도록 그렇게 폐쇄적인 그물망으로 인간 전체를 덮어버린 거예요. 옛날에는 눈에 안 띠면 마음대로 해도 됐는데 이제는 내 안에 있는 법을 내가 늘 의식하게 돼요. 알아서 조심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듣는 사람들이, “그게 정상이잖아요.” 하는데 미셸 푸코는, 그래서 너희들이 악마라는 거예요. 스스로 악마가 돼갔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악마가 만든 전략에서 너희 몸은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거예요. 이미 몸에 각인돼있으니까.

옛날에 성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허용이 됐어요. 르네상스 이후에 군주의 몸, 신하의 몸, 백성의 몸이 따로 있어요. 그러면 군주가 자기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지식을 준다 했지요. 지식이 뭐냐 하면, 나는 첩을 두어도 너희는 안 된다고 나와요. 이게 바로 고려시대잖아요. 조선시대고. 몸이라고 같은 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걸 거역하면 어떻게 되느냐? 거역할 때는 몸에 직접 처형합니다. 그래서 다미앵은 공개처형했어요. 그것도 빨리 죽으면 안 되니까 찧고 질질 끌고 그러다 때리는 사람이 지치고. 조선시대나 중국에도 그랬지만 말로 사지를 찧는다든지 해서 사람들에게 몸이라도 다른 몸이 있다고 군주가 자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몸에 한 거예요.

1789년에 왕이 쫓겨나요. 그리고 인권이 나옵니다. 평등, 자유, 박애라는 미국독립운동의 이슈를 프랑스혁명이 그대로 받아서 이 세 가지 모토로, 이미 자본주의시대로 접어들었으니까 모든 인류는 평등하고 모든 인권은 신으로부터 나와서 어느 누구도 누굴 지배할 수 없는 거예요. 민주주의가 뭐냐 하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진리는 뭐냐? 숫자로 하자. 민주주의의 가장 모토는 다수결이에요. 마태복음 7장과는 다르죠. 많은 자가 찾는 건 멸망의 길로 가죠.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게 아닙니다. 다수가 진리 쪽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사는 세계는 인간의 이성으로 결정하는 것이지 어떤 외부의 도움도 여기에 관여하지 말라는 거예요.

미국의 헌법이나 한국의 헌법이나 그 사람의 인종, 민족, 종교, 양심에 비춰 어떤 차별도 둘 수 없는 거예요. 동성애 부부라 해서 부부 아니라고 할 권한이 헌법 자체가 관여하지 못하게 돼있어요. 존 로크는 이걸 천부인권설을 주장하면서 인권은 하늘이 주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을 다른 인간이 못 건드린다. 그럼 그 법은 어디 있느냐? 그건 계약하면 되는 거예요. 그게 사회계약설이에요.

미셸 푸코는 묻습니다. 사회계약설을 누굴 상대로 했느냐? 우린 사람 대 사람이라고 하지만 언제 수 천 만이 사인했습니까? 한 적 없지요. 주민 등록할 계약한 적 있어요? 없어요. 사회계약설은 빈 말입니다. 그럼 뭐냐? 이게 규율인데 계약은 누구와 했느냐? 한 사람 없어요. 규율을 복종할까, 말까는 내가 결정해야지 누가 결정한 적 없습니다. 왜? 규율은 내재화됐기 때문에.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권력이 규율로 내재화한 걸 미셸 푸코는 전략 또는 전술이라고 한 겁니다. 이게 푸코의 뛰어난 점이에요.

분명히 우리는 각자 인간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각자 이성을 존중한다는 거거든요. 자신의 주장을 존중해준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계약대로 했다는 것은 그건 어디까지나 일어난 결과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고 그런 계약을 하고 그런 규율을 옹호하고 복종하고자 한 결정을 언제 했느냐 말이죠. 없지요.

미셸 푸코는 바로 그 점을 파헤치고자 한 거예요. 그래서 그걸 주체의 분열이라 합니다. 권력이란 악마가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고 그 안에 주체는 분열됐는데 어떻게 분열되느냐? 1인2역. 내가 나를 보고 남을 감시하고 서로가 서로를 보고 감시하는 1인2역을 하게끔 규율이 내재화되어서 자발적으로 이게 옳다, 이게 맞는다는 식으로 거기에 맞춤 인간이 되고 이런 악마적 전술을 덮기 위해서 이걸 뭐라고 이야기했냐 하면, 인권이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인간의 이성은 미쳤다는 거예요. 미쳤는데 그걸 정상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럼 이걸 자꾸 미쳤다고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라 다른 방식은 없느냐고 묻고 싶지요. 인권 옹호가 미쳤다면 다른 방법을 제시해보라고 묻는다면, 다른 방법은 없어요. 왜 없느냐 하면, 권력에 갇혀있기 때문에. 이게 미셸 푸코의 사상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비겁한지 새로운 것에 벗어날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것을 마치 새롭다고 자기한테 계속해서 최면을 거는 거예요.

신혼이니까 행복하지요? 행복한 걸 누구한테 점검받았어요? 행복하냐고 누구한테 물어본 적 있어요? 없지요. 자율적으로 내부적으로 행복하지요. 그것은 미셸 푸코에 의하면 행복해야 된다는 그것이 나를 강요하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고 우긴다. 신혼은 행복해야 돼. 이렇게 행복해도 돼? 이 행복이 끊어질까 걱정돼, 라고 하는 식으로 똑똑한 이성이 나를 합리화시키는 겁니다. 이성은 합리화입니다. 무조건. 그 다음부터 이 행복이 깨어질까 똑똑한 이성이 또 생각해요. 그래서 행복하면서도 불안해. 여보, 오래 가자. 죽을 때까지. 누가 건드리지 않았어요. 내부적으로. 이성 속에는 시간 의식이 있거든요. 언제까지 갈지 계산하고 있는 겁니다.

계속 나가 봅시다. 아직도 초반인데, 주체가 되게 되면 이렇게 됩니다. 결국 내가 남을 감시하고 내가 남한테 감시받는 사람 되고. 각자 배우지요. 이게 주체라 했지요. 인간은 몸이 있으면 자아가 있지 주체는 없어요. 내가 타인의 시선을 응시하는 순간 우리는 주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권력에 잠식되어 살아간다는 것이고 우리는 권력이 요구하는 대로 담론의 공간에서 회자되는 그 지식체계에 우리가 편승해줘야 오늘날 인간으로서 대우받는다는 것, 남들이 인정해준다는 그것이 습속화, 습관화되어 살아간다는 거예요.

이 주체의 분석에서 제러미 벤담이란 사람이 있어요. 공리주의의 시초인데 그 사람의 주장이 뭐냐 하면, 파놉티콘, 일망조망방식, 감옥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한쪽이 있고 주변에 감옥이 있어요. 여기는 통제하는 곳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다 볼 수 있으나 저쪽에서는 이쪽이 안 보이도록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일망감시방식이 근대적 방식인데 이 권력이 우리 이성 속에 내재화돼있는 거예요.

우리가 스트레스 받거나 할 때 어떤 프로그램이 제일 재미있느냐 하면, 예능프로. 같은 예능프로라도 일반인이 나오면 재미없어. 연예인들이 나와야 돼요. 가수의 일상 이야기, 정치 이야기. 우리가 보는 이상 뭘 감시한다? 천만 원 현상금 걸린 우병우는 어디 갔을까? 우병우 찾고 최순실 이야기하고. 이게 일망감시방식이란 이성적 합리적 체제가 남을 훔쳐보고 또는 서로가 감시하고 주시하는 방식이 우리 안에 내재돼있는 겁니다.

내재돼있는 방식이 어디서 나왔는지 미셸 푸코는 17세기에 벨라스케스라는 화가가 그린 <시녀들>이란 그림으로 설명해줍니다. 그 그림에 큰 캔버스의 뒷면이 나와 있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뒤에 거울이 있는데 왕과 왕비의 희미한 모습이 있고. 밝게 보이는 데는 신하가 있고. 그 앞에 난쟁이들과 시녀들이 있는 그림.

여기서 미셸 푸코가 뭘 묻느냐 하면, 이 그림을 보는 관람자는 어디 있느냐고 물어요. 화가가 그림 안에 들어있음으로 말미암아 모델이 왕과 왕비인데 거울에 비춰 보이고 왕과 왕비를 그리는 척하지만 화가는 무엇까지 수용하느냐 하면, 이 그림을 그리고 난 뒤에 관람객들이 보게 될 그 사람들까지 의식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결국 17세기 이후에 모든 언표, 모든 담론은 서로가 서로를 보는 거예요. 서로가 서로를 본다는 말은, 언어가 사물과 일대일 대칭되는 게 아니고 비가시적 영역까지 포함해서 공명되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층까지도 서로 소통하고 울리는 거죠. 보이지 않는 곳에도 충분히 울리는 거예요. 그래서 누가 주인공도 아니고 누가 대상도 아니고 대상과 주인공이 서로 공명하는 그 사이에 담론이 형성되고 언표가 형성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갇혀있는 셈이에요. 남들이 말하는 생산된 지식체계로 담론 바깥에 있는 우리까지 지시하고 요구할 수 있는 요구하는 정도가 아니고 의당 그래야 된다는 식으로 권력체제가 내 내부에 이성이란 이름으로 장착될 때 우리는 인권적인 존재로서 남한테 인정받게 돼요. 그런 시대에 있습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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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1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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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