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강-YouTube강의(미래 예상하기)161115-이 근호 목사
170강-YouTube강의(미래 예상하기)161115-이 근호 목사
오늘은 170강, 제목은 ‘미래에 대해서’입니다. 성경에서 선지자들이 등장하지요. 선지자들은 그 말 자체가 미래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미래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다면,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이익이 되겠고 행운이 되겠지요. 장래 일을 미리 안다는 것은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그런 준비성을 갖출 수 있는, 실수를 제거할 수 있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굉장히 크지요.
이렇게 미래에 대해서 아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안심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미래가 우리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미래냐, 아니면 우리가 은근히 미래에 되고자 하는 그 기대와 희망을 좌절시키는 미래냐, 그것은 우리의 선택의 대상이 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래를 이렇게 진행한다, 하는 그 소식을 미리 알아듣게 되게 되면 우리가 그런 미래를 우리가 좋아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걱정하게 되는 겁니다. 그 미래가 제시된 미래가 나왔으면 지금 내가 추진하고 있는 이 모든 일을 접어야 되고 포기해야 됩니다. 이것을 신약성경 마태복음16장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 하는 그 예수님의 뜻에 부합됩니다. 미래에 대해서는 주님이 손에 꽉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미래대로 주께서 일을 하실 거예요.
그런데 그 미래에 대해서 우리는 정보만 알게 되면 얼마든지 미래를 내 것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여기신다면 그건 오산입니다. 그 미래를 미리 알려준 이유는 미리 니 뜻을 접으라고 미리 알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현재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참으로 이것을 빼앗기기 싫고, 이걸 놓치기 싫다면 그 주님의 미래를 미리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의 미래를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세상은 복음대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게 되면, 전부다 외면하고 도망치기 바쁩니다. “나, 안 들은 걸고 할래. 못 들은 걸로 할래.” 내빼기 바쁩니다. 그래서 그들은 뭘 찾느냐, 자기 뜻을 이루어주는, 자기 뜻을 실현시켜주는 그런 미래를 따로 찾게 되는데, 주님의 복음에 의하면 그 미래는 지옥입니다.
지옥을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현재 자신의 꿈을 포기할 것이냐, 복음은 지금도 우리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1장8절에 보면, 사람을 좋게 하랴, 주님을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그 뒤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말씀이 굉장히 상당히 쇼크입니다. 충격적입니다.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이 말씀을 달리 이야기하면 사람의 종인 자들이 하는 모든 일은 너희 구미에 딱 맞는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참된 종이라면 성령 받은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너희들의 구미에 부합되게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오류, 우리의 잘못된 미래상은 구약에서 그것을 이방민족이라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대다수가 이스라엘 국가 생겨난 후 이방민족과 하나님과 함께 동거하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이야기입니다. 열왕기상20장에 보면 그 이방나라와 이스라엘이 전쟁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방나라는 아랍나라인데 지금의 시리아라는 나라인데 벤하닷이라는 거기에 대표자가 장군이 되어서 북쪽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그 때 북쪽 이스라엘 수도이름이 사마리아고, 사마리아를 포위했습니다. 온갖 모욕적인 이야기를 하지요. 모욕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북쪽 이스라엘 왕 아합이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지요. 백성들은 자기 자식들을 삶아 먹을 계획들을 하고 있어요.
그것을 보고 너무 참혹해서 어쩔 수가 없을 정도로 곤궁에 빠졌지요. 그렇게 될 때, 어떤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어떤 선지자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그 미래가 뭐냐 하면, 이 전쟁은 이스라엘 쪽이 승리합니다. 그것도 어른들이 나설 필요 없습니다. 소년 232명만 있으면 승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아합이 소년232명을 각처에서 불러와서 세우고 그 뒤에 약7000명에 정규군을 거기다가 배치를 했지요. 그런데 232명이 먼저 공격을 했습니다. 아람나라에. 아람나라는 엄청난 무려127,000명의 군대를 끌고 왔기 때문에 그들이 이스라엘 쪽에서 성문을 열고 나오는 것은 항복하기 위함이 아니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탕 그들은 술을 퍼먹고 있었습니다.
이 아람나라의 위세에 그동안 그 주변에 있던 32명의 부속 왕들까지 동조해서 아람나라에 이러한 권위를 더욱더 높였니다. 사기를 돋운 거죠. 그런데 진탕 술을 마시고 있을 때에 그 소년 232명이 나갔으니까 그들이 화친하러 온 줄 알고 아무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그 소년들이 군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치기 시작해서 그 때부터 10만 명의 아람나라의 시리아 군대가 죽게 됩니다.
자, 이야기에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패배하고 난 뒤에 아람나라에서 정비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저 이스라엘 나라가 요번에 이긴 것은 요행이다. 이스라엘 나라가 싸움을 이렇게 이긴 것은 그들의 믿는 신은 산의 신이지, 평지의 신이 아니기 때문에 평지로부터 유도해서 전쟁하게 되면 우리가 이긴다. 이렇게 나온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평지에서 전쟁을 붙었는데 이번에는 무려 하루에 10만 명 죽고 또 27,000명이 도망치다가 산이 무너져서 죽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어쩔 수 없어서 산의 신만이 아니고 평지의 신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고 그 다음에 벤하닷의 대처가 뭐냐 하면, 우리를 불쌍히 봐주면 사랑이 많은 왕이기 때문에 봐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항복을 했습니다. 항복을 했으면 쳐 죽여야 할 텐데 아랍 왕이 자기의 위세를 떨치기 위해서 살려줬습니다. 협상을 했습니다. 각 족 아람나라의 다메섹이란 수도와 이쪽의 사마리아 수도에다가 각자 상대방의 나라의 명예를 높이는 돌을 만들기로 하고 그렇게 해서 화친을 했지요.
화친을 하고 난 뒤에 진짜 이 전쟁을 일으킨 예언한 이유가 거기에 등장합니다. 아합 왕이 승리에 도취되었을 때에 어떤 그렇게 예언했던 선지자가 나타났는데 그 선지자가 얼굴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습니다. 얼굴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을 때에 이 선지자인데 전에 올 때는 멀쩡했는데 왜 붕대를 감았느냐, 하니까 그 선지자가 하는 말이 “내가 전쟁에 나갔더니 어떤 한 사람이 끌고 와서 이 사람을 지켜라. 지키지 아니하면 니 생명을 대신 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난 뒤에 어디 볼일 보는 사이에 내가 지킨 종이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붕대 감은 이야기는 안하고.
붕대 감은 이유는 선지자인지, 아닌지 감추기 위해서 그렇게 했지요. 자기가 아합 왕에게 감추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데려왔는데 그 사람을 놓쳤습니다.” 그러니까 왕이 하는 말이 “왜 그 말을 내게 하느냐, 알아서 할 것이지.” 그 때 붕대를 풉니다.
풀 때에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제대로 지키라고 한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는 당신의 목숨이 지켜야 될 그 사람의 목숨과 대신할 것이요. 포로 잡아야 두어야 될 그 사람의 백성이 당신의 백성을 대신할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맙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언입니다.
예언이라 하는 것은 전쟁에 어떤 위기가 왔을 때, 하나님이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것이 자기 기쁜 뜻대로 하나님을 부르게 되어있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응답할 때에 누구나 오해합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 응답 받는구나. 하나님이 내 소원대로 나를 지켜주는구나. 하지만 그것이 예언이 다가 아니라 오히려 그게 반전합니다.
자기의 뜻을 고수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그것으로 인하여 그렇게 생각하는 그 정신머리가 잘못됐다는 것을 제대로 지적하는 그것이 예언의 끝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자기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내 자존심 지키기 위해서 기도할 때, 진짜 하나님의 응답은 자기를 부인해야 된다는 것. 니가 요구하는 그것은 널 망하게 하고, 너를 지옥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복음의 예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