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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161111b히12장23절(언약의 위력)-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안양20161111b히12장23절(언약의 위력)-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성육신이라 하는 것은 거룩한 분이 육신이 됐다는 요한복음1장에 나오는 말씀이지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이 세상에 인간들이 많고, 많을 것 같으면 그 중에서 천재도 있을 것이고, 뛰어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경건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가지고 대표자, 중보자 삼지 왜 따로 하나님이 인간으로 따로 오셔야 되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하늘에 계시고 우리가 착하게, 성실하게 살아서 그 성실을 근거로 해서 하늘에서 봅시다. 만납시다. 이게 우리네의 아주 편한 상식입니다. 될 놈은 되고 시합 붙여가지고 잘사는 사람은 위에서 걷어내서 천당 가고, 못사는 사람은 들 떨어진 사람은 지옥 보내고, 중간쯤은 아주 잘사는 것도 아니고 아주 못 사는 것도 아닌 중상층에 해당되는 사람은 저 생을 따로 만들었으면 참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인데, 그 생각이 바로 바벨탑의 생각이지요.
그 생각은 왜 잘못됐느냐 하면, 인간의 이름 자체가 자기를 정상으로 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별 하자 없다. 정상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뭐냐 하면 이 세상 자체를 하나님 보시기에는, 인간다운 인간이 만약에 한 명도 없다면, 마땅히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다 저주 받아야 되고 멸망 받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뭐가 문제냐 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천지를 6일 만에 창조했던, 6일째 만들어놓은 그 인간자체도 같이 소멸해버려요.
하나님께서 처음에 창조하실 때, 그 계획 잡힌 대로 완성되는 것이 천국이거든요. 따라서 그 계획 잡힌 대로 되는데 마귀가 인간과 합작해가지고 파토내고 말았으니 하나님의 그 창조했던 계획이 그만 실패로 끝날 것인가, 하나님은 그럴 수 없느니라. 마지막 6일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어요.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자체가 육신이 되어버리면 깨어진, 망가진 창조 세계가 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롭게 재창조가 되어버리면 더 이상 악마의 훼손, 악마의 방해공작 필요 없이 완성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렇다면 ‘처음부터 인간을 만들 때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저항력을 갖고 있는 예수님만큼이나 믿음 좋은 사람을 만들지, 처음에 인간은 왜 그렇게 망가지게 했는가?’ 이런 생각이 또 들겠지요. 처음부터. 그게 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형상 있다. 있다는 존재가 되고, 존재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존재에서 어떤 기능이 나와야 돼요. 이 기능이 나와서 천국을 이루는 겁니다.
쉽게 설명하면, 성경에 나오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임금님이 아들의 혼인잔치를 마련했어요. 보니까 이 핑계, 저 핑계 다 빠졌습니다. 음식은 준비되었고 손님은 없다. 임금님 조치는 이거였습니다. 길에 가서 아무나 데려와라 했습니다. 길에 가서 아무나 데려오면 이건 그 있는 존재를 그냥 혼인잔치를 채우는 존재들로 가득 찰 거예요. 그래서 데리고 왔습니다. 데려왔는데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나가라고 했거든요. 예복을 입지 않은 자. 그러면 예복을 입을 것 같으면 사전에 부르지를 말든지 불러놓고 쫓아내어버려요.
여기서 어떤 기능이 생기느냐 하면, 불러놓고 쫓아낸다. 두 번째 그 쫓아내는 기준은 뭐냐, 예복이었다. 세 번째 이 예복은 누가 제공한다? 이것은 주최 측에서 제공한 예복을 입어야 돼요. 본인이 예복을 입으면 안 됩니다. 입구에서 마련한 예복을 입어야 돼요. 그러면 불러놓고 쫓아낼 때 기준은 뭡니까? 예복이지요. 예복 없다고 쫓아내는 요러한 과정은 바로 인간들이 자기 세계를 마련하면서 예수님을 쫓아내면서 인간이 인간세계로서 유지되는 뭐를 제시한 셈이 되느냐 하면 어떤 기준을 제시한 셈이 돼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 대신 예수님의 존재가 천국을 만들면 되는데 여기서 무엇을 끄집어냅니까? 기능을 끄집어내는데 요 기능이 뭐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창세전부터 있었던 기능이 뭐냐 하면 십자가 약속, 이 언약입니다. 언약인데 무슨 언약? 새 언약 때 그 본질이 드러나요.
새 언약이 뭐냐, 십자가 죽음이에요. 새 언약의 핵심은 두자로 하면 ‘죽음’ 누구의 죽음? 하나님의 죽음. 하나님의 죽음이 없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갑니다. 하나님의 죽음이 없는 사람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없다. 그래서 복음은 뭐다? 예수님의 존재가 복음이 아니고,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십자가가 복음이 되는 겁니다. 저 죽음이 나를 살렸다는 거예요. 저 죽음이 나를 살렸다.
그래서 저 죽음이 나를 살림으로서 저 죽음 안에 들어가서야, 저 죽음 안에 내가 들어가 있어야 나는 살았다가 돼요. 그 이유가 뭐냐, 죽음에 의해서 새로이 만들어진 생명만이 생명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에 영원한 비밀이었어요.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 사탄은 이 점을 공략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냥 사탄은 오히려 이러한 새 언약을 이루는 도구가 될 뿐이지요. 까부는데 그 까부는 것이 자기 유리한 대로 까불었지만 그 까분 것마저 예수님의 새 언약을 이루는 재료로 하나님이 사용해버린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십자가 죽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이스라엘을 아들 놓고 이야기하고, 그 아들은 내부 이스라엘이지요. 이스라엘이 아들의 죽음을 묘사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멸망을 해버려요. 이스라엘 나라 자체가. 다른 나라가 멸망하는 것하고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하고 차이가 나요. 다른 나라의 멸망은 그냥 죽어야 될 인간이 죽지만, 이스라엘의 멸망은 아들의 멸망입니다. 그런데 아들의 멸망 그 자리에서 진짜 아들이 거기에서 모습을 출현시키게 됩니다. 죽는 자리에서 나와요. 그게 십자가 그 다음에 뭡니까? 부활이에요.
여러분, 죽어서 살랍니까? 아예 안 죽는 게 낫습니까? 어느 쪽으로 하겠습니까? 아예 안 죽는 게 낫지요. 죽었다가 살면 너무 깜놀, 깜짝 놀라잖아요. 아휴, 식겁했다! 이삭을 그냥 계속 살려주는 게 낫습니까? 죽여 놓고 살려주는 게 낫습니까? 아브라함의 아들이삭을.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이거 식겁할 문제지요. 잡으라 해서 자기 아들 진짜 죽는 줄 알았지요. 그 과정에서 무엇을 새롭게 뽑아낼 수 있습니까? 죽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오늘 본문 23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장자가 될 수 없어요. 죽지 않고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언약적인 것과 내용과 결부가 되면서 내 진짜 아들이다. 니는 내 기뻐하고 사랑하는 내 아들이다. 요단강 세례 받을 때 하늘에서 비둘기 같이 성령이 내려오면서 그런 말씀도 내려왔지요. 그러면 성령이 내려왔다는 말은 존재를 말하는 것보다도 그런 기능을 해야 돼요.
무슨 기능?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다운 기능을 지상에서 펼쳐야 되는데 그 내용은 뭐냐, 아들인고로 아버지 뜻에 따라서 죽어라. 그것도 너의 죄가 아니고 택한 아들들의 죄를 위해서 니가 대신 죽어야 하느니라. 값을 치러야 하느니라. 여러분, 값을 치룬다는 무슨 말일까요? 값을 치룬다는 말은 이쪽에는 값을 치를 필요가 없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거죠. 십자가로 인하여 죄 값을 치룬 사람은 자기 죄에서 오는 저주를 지워내기 위해서 추가적으로 뭐 할 게 남아있어요? 안 남아있어요? 남아있지 않지요.
‘이러면 내가 벌 받지 싶다.’ 그런 인식 드는 것은 이해합니다. ‘이런 나쁜 짓해놓고 내가 산다는 것이 너무 뻔뻔스럽다. 정말 이건 떼치 떼치 해야 돼!’ 충분히 가능한데, 실제로 자기가 자기 머리 때린다고 용서가 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러한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이미 그 값을 치뤘다는 것을 잊어버렸던 그 사실을 계속해서 되풀이해서 확인하는 거예요.
그러면 뭐가 되느냐 하면, 성도가 이 세상에서 죄를 짓는 것은 바깥으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생큐! 고마움. 감사가 나오겠지요. 감사와 더불어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기쁨이 나오는데 이 기쁨은 어느 정도 기쁨이냐 하면 지금 땅이 꺼져서 내가 무덤에 파묻힌다 해도 거기서 웃고 있겠습니다. 할 정도에요. 그런 기쁨이어야 돼요. 근심, 걱정, 두려움, 공포, 불안, 삐질 삐질 땀흘림, 이런 거 없는, 조마 조마 없는 두근 두근 없고 아쉬움 없는 것. 모든 기쁨. 이 지상에서 어떤 것도 뺏어가지 않는 기쁨. 하늘이 준 기쁨이죠. 이것이 죄 사함, 용서해준 기쁨이란 말이죠.
그래서 그것이 바로 장자들의 총회가 기쁨으로 넘치기 때문에 천국가도 전혀 지루하지를 않습니다. 천국가도 지루하지 않고 복음에 지루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십자가 복음에 지루하다는 이유가 정신을 다른 데 팔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단은 복음을 챙겼고 슬슬 내가 기뻐하는 본격적으로 나서 봐. 이 것 참 중요한 건데 그걸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둘 중에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묻고 싶어요. 첫째는 내 인생을 내가 만들어가고 싶다. 두 번째, 나는 이것을 해야만 한다. 어느 쪽입니까? 내 인생은 내가 따로 만들고 싶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내가 이것을 해낸 것이 원인이 되고 결과가 뭐냐 하면 그렇게 해서 내 인생은 요렇게 아담한 인생을 따로 만들었다. 이리 돼요. 2번이 원인이 되어서 1번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1번하고 관계없이 2번자체가 시작이고 2번자체가 결말 이어야합니까? 어느 것입니까? 성도의 모습은 어느 거예요? 2번은 주님의 지시가 있고, 1번은 나의 지시가 있어요. 내가 나한테 지시입니다. 니 인생 뭐야? 니 인생 니하기 나름이야. 니가 이렇게 해야 니가 니 아담한 인생 이렇게 잘 살았다. 따로 장만할 수 있어. 자꾸 나한테 윽박지르고 이걸 강요를 하는 거예요.
나이 50에 여자가 연기의 바다를 보았다. 연극도 있지만, 자식 키운다고 공부한다고 다 시켜놓고 몸은 늙은 줄도 모르고 젊은 줄 알고 착각했는데 자식 시집보내고 돌아서니까 아이고~ 허리야. 벌써 얼굴은 뜨끈 뜨끈 갱년이 와가지고 한평생 도대체 뭐하고 살았는지. 드라마 보니까 그런 이야기 있어요. 너하고 15년이나 살았다. 15년 살았는데 니하고 헤어지나?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여자가 하는 말이 그래 말이야. 내가 니같은 인간하고 15년 산다고 애먹었다. 이리 나와요. 남자는 15년 정을 봐서라도 있어달라고 하는데 여자는 니하고 15년 산 내가 끔찍하다. 니 나한테 욕하나? 퉁치자. 니 욕하고 나는 니 하고 헤어지고. 퉁치자 이리 나와요.
내 인생 내가 따로 이렇게 간직하고 있다면 어떤 일을 해도 이것이 가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사명 이 자체가 거짓이 돼요. 요거 주의 사명 잘 감당해서 이쁘게 포장해가지고 내 인생에 딱 장착해가지고 탑재해서 나 내 인생 이렇게 예쁘다! 이거 자랑하고 싶다면 이것은 사명감이 아닙니다. 이건 내가 나를 시킨 거예요. 악마가 나한테 시킨 거예요.
복음이라 하는 것은 1번을 제거하는 게 복음이에요. 왜냐 하면 하나님은 복음 아니면 다른 것을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성도가 돼서 어떤 일을 할 때, 이게 주의 일이냐, 주의 일이 아니냐, 판단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이게 복음을 위한 것이냐, 참한 내 인생 따로 마련하고자 하는 일이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쁘장한 내 인생이라면 이건 복음 아니고 어떤 일이라도 이건 평생 동안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주의 지시가 되는 거예요.
주의 지시라 하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이 1번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2번 그 자체로서 만족해야 돼요. 그래서 우리들이 살면서 고민, 걱정 아니 될 수가 없지요. 안될 수 없는 게 아니라 눈만 뜨면 고민 걱정이지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걱정하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 걱정하는지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고민, 걱정의 특징이 뭐냐 하면 그걸 해서 어떤 성과를 내가 기대하는 성과를 소유하고자 하기 때문에 고민, 걱정이 되는 거예요. 시키는 대로 하는 되는데.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아니고 시킨 대로 했으니까 뭔가 따로 챙기고 싶은 거예요. 참한 내 인생, 그래서 자랑질하려고. 스스로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나 봐, 잘 살았잖아. 서로가 서로한테 토닥거려주는 거예요. 잘 살았잖아. 힘들었지만 너는 웃을 수 있는 자격이 있어. 이 가을에 홍시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있어. 이런 거. 그래, 그래, 놀러가. 스페인 놀러가. 니는 한 평생 자식을 위해서 고생했으니까 놀러 가. 괜찮아. 그런 자격이 있어. 가. 가. 15일 남편 떼어놓고 가. 그만한 자격 있어. 스스로 자기가 갔다 오면 걱정거리가 와락 달려들어요.
가야 했었었요. 캐나다에. 놀러 가면 놀러 가도록 지시가 있었던 거예요. 자꾸 내가 가고 싶어 갔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부터 출발하지 마세요. 내가 이거 하고 싶다고 하지 말고, 주님의 복음을 알기 위해서 이런 기회를 준 거예요. 모든 것을. 좀 억지 같지요? 억지 같아도 괜찮아요. 억지라도. 억지라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는 이것을 해야만 하는데. 그렇게 할 때 주께서는 이걸 복음적으로 회수를 해버립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면서 1번을 생각 안할 수가 없지요. 바로 1번은 나쁜 것이고 2번은 옳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기회를 준 거예요. 계기를. 그래서 언제 여행갈 때 기도할 때도 1번을 놓고 기도 할 것인가, 2번을 놓고 기도할 것인가, “주여, 가라해서 가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걱정이 없는데, “주여, 나 갈 동안에 가스 불 어떻게 되면..”이렇게 되면 이건 자꾸 아직까지 단도리 해야 될 1번을 꼭 쥐고 있는 게 되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 지켜주옵소서. 하는 게 다른 말로 하나님, 내거 지켜달라는 그러한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버리지요. 내 것 지켜달라는 것.
그래서 이 전체를 1번, 2번을 왔다 갔다 해요. 성도한테만 해당되지만.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가 하면, ‘변이’ 달라는 것. 우리는 이렇게 매일같이 1번 2번 늘 달라집니다. 달라지더라도 감사한 게 있어요. 달라지는 것을 변이라 했지만, 그래프로 이야기하면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파동 같아요. 이게 바로 고비. 고비. 산이 있으면 계곡 있고 계곡 있으면 산이 있고. 매일 고비에요. 버스 늦게 오면 그것도 고비고, 일찍 와도 고비고. 늘 고비에요.
자, 그런데 감사한 것은 이 고비, 고비를 한데로 묶어가지고 일정한 방향으로 특정한 방향으로 주께서 이끄는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언약,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하는 겁니다. 약속의 능력, 위력입니다. 언약의 위력입니다. 언약의 위력에 의해서 끌려가는 우리는 끌려가면서도 어떻습니까? 하여튼 매일같이 요동치고 있어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요. 주께서 시켜서인가 아니면 내가 요거해서 어떤 결과를 내 것으로 전환시키고 싶어서 할까, 매일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해요.
내가 원인이냐, 아니면 내가 결과냐, 지난주일 낮 설교에 그리 했지요. 우리가 우리를 보는 그 해석이 우리의 해석이 아니고 주님의 해석물이라고. 주님의 결과물로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내가 내 입맛에 맞춘 나를 내 인생을 바꿔보려고 쓸데없는 노력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그 자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쁜데, 안 이쁘다는 거예요. 내 인생이. 저 사람보다 안 이쁘고 잡히기 전에 최순실보다 안 이쁘고. 안 이쁘다는 거예요. 지금. 내 인생이 영~ 성에 안 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요동치는 겁니다.
자, 이걸 어떻게 바꾸느냐, 이걸 남은 시간에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 전체, 늘 왔다 갔다 하고 정신병자 다 된 것처럼 헷갈리는데 전체적으로 이걸 히스테리라 했어요. 라캉이 현대인들은 히스테리. 왜 히스테리냐 이유가 자본주의 때문에. 사람을 상대하게 되면 정이란 게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돈을 상대해버리면 사람을 상대한 게 아니기 때문에 냉혹하게 굴어야 하기 때문에 본인의 정서에 안 맞기 때문에 정신적인 혼선이 일어나서 모든 현대인은 히스테리성 정신병자에요. 딱 맞는 이야기에요. 그냥 정신병자에요.
늘 긴장되어 있고 손해날까, 이익 날까 상대를 대하니까 당신 만나고 난 뒤에 돈 얼마 벌었느냐, 얼마 빼앗겼느냐 그거 보면서 사는 거예요. 자, 이런 걸 성경에서는 언약으로 끌어당깁니다. 어떻게 끌어당기는가, 처음에 이 전체한테 하나님이 복을 줘버려요. 언약을 주는데 그 언약이 무슨 언약인가 하면, 바로 율법이라는 모세언약을 줘버립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줘버려요.
사람들이 난리 났어요. 못 지킵니다.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을 줬는데 율법대로 하면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 어떻게 아느냐 하면 이 이스라엘 외부에서 적들이 와요. 적들이 오는데 적들이 한결같이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군사력보다 세요. 군사도 많고 이스라엘은 청동기 문화인데 그 쪽은 철기문화에요. 청동기 문화와 철기문화는 싸움이 안 됩니다. 칼싸움하면 청동기 문화 다 부러져요. 저쪽은 멀쩡해요. 전쟁할 때, 칼과 칼이 부딪힐 때 이쪽이 깨지면 안 되거든요. 합금을 잘 만들어야 돼요. 온도를 잘해서 강철금을 잘 만들어야 돼요. 잘 만들어야 승리한다고요. 그런데 적들은 철기문화에요. 이스라엘은 쇠고랑 하려면 저 블레셋에 가서 주문해야 되고 쇠고랑도 못해서 주석이나 해서 청동기로 한 거예요. 구리 이런 거로 했다 말이죠. 이건 게임이 안돼요. 무기에서 뒤쳐져요. 이쪽의 적들은 마차, 전차가 있어요. 여기는 보병이에요. 게임이 됩니까? 화살로 막 쏘는데. 안된다니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쟁할 때 꼭 이렇게 숫자로나 무기적으로 발달된 무기로 공격하게 만듭니다. 해놓고 방법은 뭐냐 하면, 여호와를 믿어라. 말이야 쉽지요. 여호와를 믿어라. 이게 됩니까? 집이 부도나가지고 채권자들 몰려왔는데 기도하니까 여호와를 믿어라. 해결책이 없잖아요. 적들을 보내서 이스라엘을 당황하게 만들어요. 이게 사사기에 나와요. 그 뒤에 사무엘상에 굉장히 빈번하게 나와요. 사사기는 늘 반복되듯이 나오고. 그때 여기서 집단이 안 되고 내가 있잖아요!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을 가지고 사사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사.
자, 그러면 한 번 봅시다. 이 원리. 율법은 누구한테 주었다? 모든 사람에게 주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마땅히 지켰으면 아무리 적들이 위대하더라도 여호와의 말씀대로 살면 이기게 되는데 이 이스라엘이 말씀대로 안 살 때 꼭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는 적들을 움직여서 공격케 한다 말이죠. 그러니까 한꺼번에 이 사람들 말씀 못 지켜요. 이미 개판됐다 말이죠.
그런데 여기 있잖아! 나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성신을 받은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사람을 뭐라고 했어요? 사사. 사사가 나가서 이것은 전쟁하는 방법도 아니에요. 웃기지도 않는 방법을 통해서 적들을 물리칩니다. 그러면 이 율법이 전체에 선 율법이 무엇으로 서서히 쏠리겠습니까? 한 사람으로 쏠리겠지요. 그 사사 중에 마지막 사사가 누구냐 하면 바로 사무엘입니다. 그리고 사무엘보다 더 노골적 사사가 사울이에요.
사울은 사사도 되고 왕도 되고, 사사가 왕의 과도기적 현상입니다. 사실은 사울은 왕이라기보다도 사사라는 말이 맞아요. 진짜 왕은 사울이 아니고 다윗입니다. 다윗부터. 왜 사울을 왕이라 할 수 없느냐 하면, 왕이 되려면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줘야 됩니다. 그런데 사울시대에는, 사무엘시대에는 모세율법이 적용 되는데에 대해서는 특정 왕에게 율법을 일임하는 아주 그쪽 언약의 시기는 아니에요.
그래서 사무엘이 말씀대로 살아서 하는데 이제 사무엘은 늙어갑니다. 그리고 늙어 죽습니다. 백성들은 당연히 사무엘을 왕으로 여겨서 누구를 보겠어요? 사무엘 아들 괜찮은 아들 보려고 했지요. 사무엘 아들은 사무엘만큼 말씀에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들이 걱정되어서 우리도 왕을 뽑읍시다. 하고 인간 쪽에서 먼저 제안해서 뽑힌 왕이 바로 사울 왕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인간 쪽에서 제안했기 때문에 사고방식이 율법적이 않고 극히 인간적이에요. 그게 어디서 들통 나느냐 하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분명히 배후에 사무엘이 다 죽이라고 했거든요. 아말렉은 다 죽여야 됩니다. 좋은 양,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다 죽여야 됩니다. 했는데 전쟁에 나가서 막상 승리 하는데만 급급해가지고 승리하고 보니까 탐이 나더라 말이죠. 이쁜 처자 있고, 살찐 양, 가축 그 옛날 재산이었잖아요. 그것이 탐이 나서 안 죽인 거예요.
그래서 사무엘이 와가지고 “전쟁에서 이겼다면서 이 소리는 무슨 소리입니까?” “아이구,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실한 양하고 같이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이러지 말라 했잖아요.” “아각왕은 왜 안 죽입니까?” “저 왕은 또 우리가 이렇게 승리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랑질하려고 포로 잡았습니다.” “안됩니다.” 하고 도끼로 아각을 죽이고 “사울 왕 당신은 삑! 끝났습니다. 당신 나라는 이제 끝났어요.” 하고 사무엘은 사울 왕 들키기 전에 몰래 이새의 집안에 가서 다윗에게 기름 부어주고 자기는 라마로 가버렸지요. 가고 거기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 나라에 위기가 온 거죠. 레임덕현상이에요.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대통령이 없어지면 혼란상태가 벌어진 거예요. 임기 끝부분에 뭐가 잘못되었어요. 왜냐 하면 지켜야 될 사무엘을 없어져버리고 백성들은 왕과 개선은 개판이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적들은 쳐들어오고 블레셋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사울 왕이 죽은 사무엘을 불러냅니다. 자, 한바탕 놀아보자! 작두해서 무당을 하는지. 죽은 자를 불러내는 무당을 불렀는데, 무당이 겁나서 나 죽이려고 하지요? 아니야. 내가 진심으로 당신한테 부탁한다. 사무엘 좀 불러다오. 자기가 쫓아내 놓고 자기가 무당 없애면 복 줄줄 알고.
사울은 잘못됐어요. 뭐냐 하면 사울은 이 나라가 하나님 나라지 자기 나라가 아니거든요. 자기 소유의 나라가 아닙니다. 불러내지요. 불러내고 난 뒤에 사무엘 등장해가지고 “당신은 블레셋에게 죽어.” 이래요. 자, 보세요. 블레셋이 와서 이스라엘 왕 사울을 죽였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누구 나라가 됐죠? 이스라엘은 블레셋나라하고 동일한 우상숭배의 나라가 된 거예요.
그럼 이 나라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나라가 이스라엘이 없어지게 되면 언약이 안 되겠지요. 여기서 중요합니다. 언약이란 율법을 준 이유는 인간의 힘으로 언약을 유지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율법을 준 거예요. 오늘날 이 말씀을 우리에게 준 것은 오늘 본문 읽은 것은, 절대로 우리는 이 말씀으로 못 삽니다. 이걸 고백해야 돼요. “주님이여, 언약의 피가 이렇게 중요하지만, 우리는 별 시답지 않게 여기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면 돼요. “우리는 나보다도 더 소중한 자식이 있고, 돈이 있고, 재산이 있고 이게 걱정되지 주님의 언약의 피는 생각도 안했습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죠.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블레셋이 쳐들어옵니다. 블레셋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주여,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럴 수가 있습니까?”하다가 ‘아이고, 내가 미쳤지. 주신 은혜를 모르고 왜 이렇게 난리를 치나. 이게 신자도 아니고 불신자도 아니고 왜 이리 지옥 갈 사람도 아닌데.’ 하면서 다시 한 번 언약의 피를 생각하며, 중요한 것 받아놓고 물에 빠진 사람 살려놓으니까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중요하지 않은 없어질 것에 대해서 너무 정신을 빼앗기고 거기서 내 인생 기쁨과 행복을 거기다 몽땅 다 걸었구나. 하는 그런 후회감이 밀려오십니까? 그런 후회감이 밀려와요? 한 2초 동안.
“이러면 안 되는데. 이것 때문에 죽으신 건 아닌데. 돈 몇 푼 아낀다고 이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 하지요. 그럴 때 어떻게 합니까? 주여, 용서하옵소서. 이리 나오겠지요. 용서하옵소서. 회개 없으면 천국 가는 사람 아닙니다. 그런 회개가 하나님에 의해서 유발되도록 우리가 이런 상황에 있습니다.
자, 아까 한 거 다시 해봅시다. 자, 사울 죽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해결책. 나라꼴 안돼요. 꼴이 안 되면 새로 시작하면 되겠지요. 새로 시작하려면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줘야 됩니다. 그게 뭐냐, 몽땅 다 주어지는 게 아니고 대표자가 하나님의 언약을, 이 율법을 대표자가 온전하게 지키면 대표자 보고 왕이니까, 왕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왕에 부속되잖아요. 왕이 잘되면 덩달아 잘되고, 왕이 못되면 덩달아 못되는 그런 새로운 구조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그 구조를 가지고 뭐라고 하는가 하면, 처음부터 있었지만 기름부음이에요. 기름부음을 헬라어로 이야기하면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지요? 예수 뒤에 뭘 붙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되지요. 이걸 번역하면, “나의 인생의 책임자여!” 이렇게 돼요. “책임자, 예수님이여.” 이런 뜻이다 말이지요. 책임자이신 것을 제가 잊었습니다. 이런 뜻으로 부르시면 돼요. 참 쉽지요. 예수 그리스도 외국말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내 인생에 이미 모든 걸 책임지신 분. 책임지신 분이여, 제가 감사하나이다.”
왕이에요. 기름부운 왕이 책임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보지도 않아요. 다윗 니만 잘하면 영토와 백성이고 다 살려줄게. 이상하게 다윗이 가는 곳마다 승리를 해가지고 잃어버린 땅. 블레셋이고 뭐고 땅을 차지하는 정도가 아니고 그 주변에 있는 10족속이고 7족속이고 모두 다 와서 엎드려 절을 합니다. 누구한테? 다윗에게. 다윗 나갔다하면 100전 100승. 그 혜택은 차기 솔로몬 왕한테 혜택이 다 돌아갑니다. 전쟁의 피는 다윗이 흘리고, 그 혜택은 솔로몬이 입고. 그것이 바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고, 그 혜택은 우리가 입는 그 다윗언약의 구조를 그대로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는 거죠.
지금 제가 강의하는 게 뭐냐 하면, 이 매일같이 요동치는 것에 대해서 언약이 어떻게 이끄냐 하는 그 이야기입니다. 지금 어디까지 이야기했느냐 하면, 다윗 입구에 막 들어섰어요. 자, 조건이 뭐냐, 왕 하나 잘되면 백성은 절로 잘돼요. 그래서 나중에 그 이스라엘 나라가 다윗죽고, 솔로몬 죽고 난 뒤에 남북으로 갈라질 때에 선지자가 하는 말이 있어요. 그저 다윗 같이만 해라. 더도 덜도 말고 다윗 같이만 해라. 다윗의 덕분 때문에 너를 봐주고 있다. 얼마나 다윗 약속이 끈질기게 너에게 효과를 주고 있다. 그걸 계속 이야기해요.
선지자들의 목표가 있어요. 다윗 같이만 하라. 그러면 우리는 이래요. “다윗이 어쨌길래?” “다윗이 뭐 어떻게 순종 했길래 다윗 같이만 해라?” 이렇게 했는데,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한 것 딱 하나 있어요. 자기가 죄인인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왕이면서도 왕이 아니고, 왕은 따로 있다는 거예요. 내 인생이 여기 있는데, 사실은 내 인생이 여기 있는 내 인생이 아니고, 내 인생은 주님의 인생이 내 인생이지, 내 인생이라는 것은 내 인생이 아니라는 것. 그걸 다윗이 알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와 제사와 율법을 원하는 게 아니고 율법의 결과물을 원하는 거예요. 율법이 우리한테 오게 되면 거기에 뭐가 생긴다? 죄가 생긴다 했지요. 죄를 알아야 피를 묻힐 게 아니겠습니까. 율법이 우리한테 온 것은 율법을 지켰다가 아니라 내가 율법 앞에 죄인입니다. 라는 것을 알게 만드는 그 능력이 율법이 성신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왔을 때나 우리가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가정이 어떻고 집안이 이만큼 살아가는 것도 죄인인 내 덕분에 살아가는 게 아니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자랑하고 책임자 따로 있음을 증거 하라고 우리로 하여금 내가 생각했다하면 무조건 내 욕심이고 내 인생 따로 챙기려하는 이 죄인을 불구하고 주께서 인생이라는 사명을 준 거예요. 사명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그냥 밥 먹고 사는 게 사명이라. 참~ 좋지요. 사는 게. 밥 먹고 사는 게, 살림하는 게, 설거지하고 사는 게 사명이에요.
김장 몇 포기 담글 거예요? 김장하는 게 사명이라. 제가 어느 강의에서 노래방 가는 것도 사명이라고. 놀러가는 것도 사명이고. 전부 다. 왜? 주께서 시켰으니까. 뭐하라고? 죄인 되라고. “집사님, 캐나다 가니까 의인되던가요? 죄인 되던가요?” 이 인간 어딜 가도, 죄인이 어딜 가도, 독일가도 죄인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책임자가 넉넉하니까 든든하니까 뭔들 못하겠습니까? 뭔들 사랑이 아니겠어요.
이러했던 그것이 다윗이후에 솔로몬이 혜택을 너무 많이 받았거든요. 슬슬 혜택 받으니까 이걸 이제 소유하려 한 거예요. 소유하면 안돼요. 죄인이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당장 죽어도 우리는 할 말 없어요. 다 털고 오라하면, “예” 가야됩니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가 인생을 이렇게 했습니다. 인생은 뭐냐, 추락이다.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있다가 죽을 때까지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기억도 떨어지고, 정신도 떨어지고. 애의 그 아름다움 나이 70되면 기력 다 떨어져요. 젊어도 다 떨어지고, 아름다움 미, 선 다 떨어지게 되어있어요. 떨어지는 속도는 아무도 못 말립니다. 매일같이 달라져요. 매일 추락이라. 뚝뚝 떨어져요.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떨어지면서 내 것! 내 것! 그 솔로몬 말기에 있는 책이 뭐냐, 전도서입니다. 전도서 마지막 모습이 뭔 줄 알아요? 다 떨어져서 마지막 12장에 보면 나와요. 그냥 뼈들의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뚜두둑, 뚜두둑, 완전히 로봇 춤도 아니고, 뼈들의 부딪치는 소리만 들리니 이빨 부딪치는 소리, 맷돌 가는 소리, 자기를 기계로 봐요. 욕망의 기계로 봐요. 인간은 없고 그냥 기계덩어리에요. 뼈다귀 조립된 것. 겨우 힘 줄 얹은 그것도 문지방이 내려앉으면 같이 내려앉는 거예요. 전도서 마지막은 하여튼 비참하게 했어요. 추락이에요.
솔로몬이 여자가 천명됐어요. 다 소용없어요. 다 했지만 아무것도 아니고 인생 자체가 다 추락이에요. 가을로 가면 11월말, 낙엽처럼 떠나간 사랑~~추락했을 때 언약도 다 함께 어떻게 되겠습니까? 언약도 바이, 바이 되겠지요. 죄인입니다. 할 것도 없어요. 죄인인 것도 지도 이젠 지겨워. 지가 지겨워. 죄인도 한 두 번해야지. 주께서 죄인이라 해도 안 믿어줄 것 같아. 하도 거짓말 많이 했기 때문에.
고마운 것은 죄인이라고 해서 건강해지고 더 의인되는 게 아니고 그냥 구원 받은 채로 말은 횡성수설 무슨 말을 하던 간에 매일 요동치면서 지가 이해하던 안하던 소리 없이 주께서 일괄적으로 이렇게 언약으로 인도하는데 그게 다니엘 끝부분에 다윗언약이 나옵니다.
서양철학에 있어서 유명한 괴물 이름이 키메라가 있어요. 키메라 괴물 아십니까? 1960년도에 우리나라에 최초로 팝페라 가수 키메라라는 가수가 있었어요. 조수미 나오기 전에 한 때 유명했는데. 키메라 이 괴물은 앞에는 사자요, 몸 둥아리는 염소요, 뒤는 뱀.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에게서 나타나지 않는 신들에 의한 창조물이 키메라라는 괴물이 신화에 나와요. 이 괴물이 다니엘 7장에 보면 바다에서 기어 올라옵니다. 한 종이어야 되는데 각자 다른 짐승의 종들이 올라오지요.
이건 뭐냐 하면, 그것이 인간을 지배했다는 말은 인간은 비록 하나님이 창조했지만 그 도중에서 괴물의 종으로 달라졌다. 예요. 인간 같은 인간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드디어 다윗언약에 마지막, 그게 묵시문학 쪽인데 마지막에서 그것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뭔데, 다니엘은 인간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인자에요. 인자. 인자가 뭐예요? 누구 이름이지요? 인자가 장차오실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인자는 이미 창세전부터 계셨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준비된 하나님이에요. 그 분이 이 땅에 오기만 하면 이름이 인자 돼요. 그 이름의 인자를 다니엘이 미리 앞당겨서 그 이름을 호칭을 부여받게 됩니다.
다니엘이 감사한 것은 장차오실 예수님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에요.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연결되기 때문에 뭐가 보이느냐 하면,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요. 아이고~ 이 짐승들. 인간도 아닌 것들. 그래서 어느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어요. 복음을 모르면 사람 아니라 했지요. 복음 모르면 사람 아니에요. 순실이고 뭐고 너무 욕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사람 아니었어요. 사람도 아닌 것을 괜히 욕한다는 것은 욕하는 지는 인간이라고 착각하잖아요. 복음 모르면 사람 아닌 겁니다.
그게 누구 눈이겠어요? 누구 안목이겠어요? 누구 관점이겠습니까? 장차 오실 예수님의 관점으로 볼 때 모든 인간은 어둠이에요. 거기서 자기 백성 만들어내는 임무는 주님한테 달려있고, 거기서 택한 백성 있고, 그렇지 않은 백성은 분류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아까 이야기한 다윗언약의 완성, 오늘 본문 24절에 맞는 새 언약이에요.
그런데 새 언약을 어떻게 창조하느냐,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한 피.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바로 그것을 창조해 내는 거예요. 이제 마지막으로 이 말씀합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거예요. 오늘 강의 마지막입니다.
피가 어떻게 저주받아야 될 자를 낫게 하느냐 이 말입니다. 피가 어떻게 가능하냐.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려면, 매일같이 자기 생각만 하고 있는 사명이라는 핑계는 대지만, 돌아오는 것은 내 것 잘됐다는 그것, 이걸 뭐라고 하는가 하면 언약의 능력으로 이끌지요. 그러면 요 안에 바퀴가 있겠지요. 이스라엘 전체를 언약의 능력으로 이끄시는 거예요. 안에는 저희끼리 개판이죠. 하든 말든 보지 않고 언약대로 바퀴로 굴립니다.
그렇게 가게 되면, 뭐가 등장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어디에 들어가는가 하면 바벨론에 들어가지요. 이스라엘이 바벨론 나라에 들어가면서 이 이스라엘 내부에 뭐가 침투하는가 하면 바벨론의 통치세력이 이 안까지 침투가 되겠지요. 이걸 바로 포로 잡혔다. 이렇게 해요. 그런데 몇 년 만에 돌아온다 했어요? 70년 만에 돌아온다 하다가 말을 바꿨지요. 70년이 아니고 70이레에 돌아온다고 했어요. 70년이라 하는 것은 1년, 2년 따지지만 이레라 하는 것은 현재 지상에 있는 시간으로 계산하는 게 아니고, 묵시적인 완료 성을 70이레라고 표현한 거예요. 이렇게 된다 말이에요.
그러면 바벨론이 이렇게 침투해 버리면 이스라엘은 흔적에서 날아가 버리고 이 전체가 바벨론 제국이 되겠지요. 그러면 언약을 이끌던 이 수레바퀴는 어디로 날아가 버렸습니까? 이게 바벨론 천지 됐으니까. 여기에 누가 등장하느냐 하면 다니엘과 세 친구. 다니엘 밴드. 다니엘 밴드가 등장해요.
다니엘 밴드는 다니엘의 통치를 받아요. 몸으로. 그런데 이 제국을 누가 포위하느냐 하면 묵시 언약이 포위를 해버려요. 그럼 누가 못 살게 구는가 하면 느브갓네살이 힘들어 죽어요. 잠도 못자고 그럼 누구한테 묻는가, 자기한테 포로 잡힌 다니엘에게 묻고 다니엘 세 친구에게 물어버려요. 다니엘에게 묻습니다. 물었을 때, 이 모습이 무슨 모습이냐 하면 그림으로 그려볼게요. 온 천지가 짐승의 나라인데, 짐승의 나라에서 내부 균열이 일어납니다.
내부균열의 중심점이 있지요. 중심점이 인자고, 인자는 3자로 하면 성육신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인자라고 오셔서 내부적으로 드라이버나 뺀찌로 쑤시면 깨지겠지요. 마구 깨져요. 그러면 인간의 나라, 짐승의 나라, 박 근혜 나라, 대한민국이 내부적으로 균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교회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고 무 국가주의에요. 국가라는 게 없어요. 왜냐 하면 이 안에 예수님이 왕이 되기 때문에 왕국이기 때문에, 이러면 또 여호와증인이라 하겠다.
이 안에 예수님 왕국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우리는 이방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 증인은 군대를 안 가려고 하잖아요. 남의 나라 전쟁을 왜 하느냐고. 양심 때문에. 그런데 여호와 증인의 양심은 전부 다 더러운 양심이라서 나 같으면 10년 내리겠다. 지가 뭐라고 안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우리의 죄를 알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호와 증인은 독자적으로 지방교회나 워치만 리 교회나 여호와 증인은 자기들은 어떤 단체다? 자기단체는 완전히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온전한데 왜 회개해야 되죠? 회개할 필요 없잖아요. 이 자체가 짐승나라에서 만든 또 가짜 짐승나라가 되는 거예요. 이게 요한계시록에도 나와요.
여기서는 그냥 전 방위입니다. 흩어지는데 이 흩어진 성도가 전부 다 하나의 언약의 효과를 봅니다. 그 효과가 어떻게 하느냐, 예수님께서 이 짐승의 나라한테 살해당했습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살해당했지요. 살해당했으니까 뭐가 있겠어요? 복수와 보복이 있겠지요. 그게 요한계시록 1장에 나옵니다.
찌른 자도 볼 것이요, 찌른 자라 하는 것은 창을 찌른 자도 볼 것이요, 요한계시록은 보복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재림은 보복입니다. 심판이에요. 따라서 이 보복, 심판이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짐승의 나라인 것을 완전히 폭로시킨다는 점에서 이게 승리가 돼요. 승리가.
예수님이 세상 보는 것처럼 같이 세상을 보게 되면 어떤 형편에 살던 간에 한 달 수입에 관계없이 이미 그 사람은 이긴 자가 돼요. 요한계시록의 이긴 자가 된다고요. 뭐로 이겼다 했어요? 예수님의 어린양의 피로 이겼기 때문에 어린양만 졸졸 따라 다니게 돼요. 개가 졸졸 따라 다니듯이.
어린양만 졸졸 따라다니는 그런 사람이 전 방위처럼 온 천지에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이런 모습인데, 그들은 따로 집합하는 게 아니고 세상 어떤 세상이라도 옳은 세상은 없다. 다 짐승의 나라인 것을 알고서, 그리스도의 용서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만 자랑하는 그런 식으로, 다니엘처럼 살아가는 운명이 오늘 이 시대의 운명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흘린 피가 이 세상이 짐승의 나라인 것을 티를 내는 피기에 그것을 고백하는 안목을 우리가 성령을 통해서 받았기에 우리는 하나의 총회요, 교회인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대로 사는 게 아니고 주께서 말씀되게 하시는 그것에서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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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1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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