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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60강-창 12장 14-20절(권력속의 권력)161102-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창세기

60강-창 12장 14-20절(권력속의 권력)161102-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12장 14-20절입니다. 구약성경 15페이지입니다. 창 12:14-20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입니다. 신앙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일어났던 그 경로, 아브라함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우리가 주목해야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하늘의 본향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했다고 나오는 그 구절 전체가 아브라함의 일대기를 하늘 위에서 봤을 때 그렇게 보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지상에서 어떤 일이 있었든지 간에 그것은 아브라함을 땅에서 떨어내기 위한, 땅에서 들춰주기 위한, 떼어내기 위한,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입니다. 설교 처음에 이야기했지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요.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은 믿음의 계열에 있는 사람은 다 보편적으로, 같은 것으로 능력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이야기가 곧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조치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데리고 다니시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권력속의 권력”이라고 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인도하는가? 아브라함을 개별적으로 그냥 천국으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고, 납치하듯 그냥 당겨서 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층을 통과하게 하는데 그 층이 권력층입니다. 그 권력층을 아브라함의 힘으로서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벗어날 수 없는데 아브라함에게 안 되는, 아브라함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되도록 조치를 해주십니다. 이 말은, 오늘날 우리가 우리 힘으로 구원을 얻고자 시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우리를 둘러싼 권력의 무서움을 무시하는 것 밖에 안돼요. 나 혼자 그냥 도 닦으면 되겠지, 그렇게 구원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바깥에 있는 권력을 이겨낼 수 없다는 이유가 뭐냐? 우리 바깥에 있는 권력과, 내가 내 것이라고 여겼던 내 안의 권력과 동질이기에, 같은 성질이기에 바깥의 권력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내가 바깥의 권력을 이기려면 내가 내 안에 있는 권력이 나의 구원을 저지시키는, 나의 발목을 잡는 그것을 나는 귀한 나의 것이라고, 지금도 내가 그것을 아까워하면서 있다는 것을 간파해야 돼요. ‘이것은 놓으면 안 돼. 이것을 놓으면 나는 내가 아니야.’라고 붙잡는 그것이나 내가 돌파해야 될 바깥 권력이나 동일한 성질의 것입니다. 본질이 똑같아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미워한다, 자기생명을 미워하지 않으면 그 권력층을 통과할 수가 없고 구원도 되지를 않습니다. 한마디로 해서 아브라함은 껍데기에 불과한 거지요.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면서 이 지상의 복이 아니고 하늘본향으로 데려가는 과정 속에서 이질적인 것을 알게 해요. 이 세상 권력 말고, 내가 갖고자 하는 눈에 보이는 권력, 내가 원하는 그것 말고 전혀 내가 원치 않는 다른 세계로 나를 끌고 간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이 점차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내장하고 있는 그 권력과 아브라함 바깥에서 마주치게 되는 권력과 일치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오늘 본문에 보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데리고 애굽에 들어가니까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라고 되어 있어요. 이것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미모가 공증 받은 미모였다는 거예요. 누가 봐도 아름답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은 권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브라함의 바깥에 있는 쪽이 갖고 싶었던 것이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모양이에요. 아내의 아름다움이 권력으로 작용합니다. 아름다움이 가는 데는 홍해 갈라지듯이 전부 길을 비켜요. 앞으로, 앞으로, 아름다움이 가니까 세상 모든 사람이 “어서 납시옵소서.” 해서 길을 다 내줍니다. 바깥사람들이 선호하고 호응해주는 것이라면 바깥 권력과 안의 권력이 일치, 같은 겁니다. 아내덕분이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이 산다는 것은 지금 아브라함은 아내에게 종속되는 겁니다. 권력에 종속된 거예요. 이것을 사실은 아브라함도 사전에 알았습니다. 알았는데 아브라함이 자기 안에 있는 권력, 또는 바깥에 있는 권력에 아브라함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대처하는 방법은 그거였습니다. 나는 그대로 인하여 내가 살아보자는 겁니다. 내가 살겠다는 것. 이 말은 뭐냐?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구원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요. 권력을 뚫어야 되는데 오히려 권력 덕분에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거예요. 내 몸 하나 추슬러서 보존하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살겠다는 자에게는 그 사는데 필요한 권력은 외부에서 수입되어야 되고 외부에서 제공받아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근본적으로 뭐가 안 되는가 하면, 구원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빠져나오는 것이고, 탈출하는 것이고, 벗어나는 것인데 살겠다는 말은 죽치고 계속 눌러 앉아 있겠다는 뜻이니까 전혀 구원과 정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바로 왕을 만나게 해 줌으로 말미암아 그 자체에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복의 근원이다.”라고 신앙의 선조로 이야기했지만 전혀 지상에 있어서는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기 힘으로의 구원이라는 것은 초장부터 실패를 해버린 거예요.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이것을 보게 하는 겁니다. 우리가 구원받고자 하는 그 시도자체가 다 헛수고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우리를 대신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은 뭐냐? 하나님의 구원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떨어버리고 제거하는 거예요. 뭘 제거하고 나오라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알아서 제거할 테니 너는 네 속성대로 그냥 살아라.” 내가 알아서 내 구원의 방식과 다른 것이 어떤 것인가를 털듯이 제거해주겠다는 겁니다. 그 제거해야 될 속성이 뭐냐 하면, 살아보겠다는 것, 나는 나를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살겠다는 이것이 제거대상이 되는 겁니다. 실컷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막강한 권력을 앞에 두게 해서 그 앞에서 거짓말 하면서 애굽에 입성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렇습니다. 그 권력 안에는 아무것도 없더라는 말입니다. 분명히 권력이 뭔가는 대단한 것 같은데 막상 아브라함이 권력 속에 들어가 보니 그 권력보다 더 센 권력이 아브라함과 동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권력과 맞닥뜨린 가운데서는 모르고, 아브라함이 그냥 살아야지, 살아야지, 하는 가운데서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살기 위한 힘이 필요하고 권력이 필요해, 라고 착각하고 오해하는 그 현장에서 주님의 낯선 개입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느껴지게 만들어요. 그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얼마나 확연하게 느끼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모든 것들이 주님에 의해서 제거된 상태를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매일매일의 삶은 뭐냐? 우리가 어떤 것을 제거해야 되는지를 늘 가르치기 위해서 계속 이어지고 연장되는 삶입니다. 우리는 제거될 때마다 깜짝 놀라지요. ‘난 저것 없이는 못사는데. 나는 저것 없으면 죽는데.’ 주님께서는 그게 너의 발목을 잡는다는 거예요. 내가 살아야 된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방식과 다르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방식은 장차 신약에 보면 예수님이 오시잖아요.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 졌습니다. 십자가는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아버지의 뜻이 죽음이라면 이 잔을 마시겠나이다. 아버지의 뜻과 관련된 죽음을 기꺼이 내 안에 탑재, 장착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현재 그런 입장이 아니에요. 나중에 이삭을 바칠 때는 그 죽음이 자기 안에 장착이 되지만 지금 아브라함은 그냥 “내가 적어도 복의 근원이니 나부터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끼리 짜고 거짓말을 해서 살아보자.”라는 식으로 나서는 겁니다. 그런데 12장 7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했어요.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준다고 했는데 그 땅이 어떤 땅이냐는 겁니다. 임의로 이 땅을 두 개의 개념으로 나누겠습니다. 하나는 대지, 펄 벅이 쓴 대지라는 소설도 있지요. 그 대지입니다. 또 하나는 영토. 두 개의 개념으로 나누겠습니다. 두 개의 개념으로 나누는 이유는, 사람들이 땅을 그냥 나를 위한 대지로, 땅으로 봐요. 그러면 그것은 원래 이 자연적인, 인공적인 것이 없는 땅의 본래의 의미가 가려져버립니다. 그래서 제가 둘로 나눈 거예요. 하나는 그냥 자연적인 것, 오직 하나님만이 뭔가 계획 잡힌 대로 펼쳐져야 될 무늬, 그것이 대지라면 거기에 인공적인 것을 가미해서 영토로 만들 때 그것은 권력이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그것은 영토일까요, 대지일까요? 대지입니다. 이 땅의 주인은 아브라함이 아니고 따로 있기 때문에 그래요. 이 땅의 주인은 따로 계시고 그 땅의 주인이 나중에 자신이 이루시는 모든 사역을 위하여 재료로 회수하시는 사실이 신약시대에 다 밝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땅 위에서 일어난 모든 이벤트, 사건들은 너희들을 위한 땅이 아니었고 너희를 위한 영토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드러내기 위한 주님의 영토, 주님의 권력이 임해서 주님의 권력을 방출하고 그것을 게시해야 될, 보여줘야 될 주님의 영토지 인간들의 영토가 아니에요. 그런데 인간들은 이미 죄를 범했기 때문에 각자 이 대지를 자기의 영토로 잡은 겁니다. 그 속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세워서 그 영토에 진입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움직임은 뭐냐? 아브라함의 움직임 자체가 결론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의 해답이 되어버려요. 움직이는 결론입니다. 아브라함 본인도 그걸 몰라요. 그냥 우리처럼 “뭐, 살아야지. 그냥 살아야지.” 그거예요. 그 잘못된 영토와 아브라함과 함께 있던 주님의 영토의 그 부딪힘 속에서 진짜 이 대지가 왜 아직도 유지되느냐를 결론부분이 틈새를 통해서 새록새록 뽑아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노아 홍수 끝나고 난 뒤에 무지개가 피었습니다. 무지개는 인간이 요청한 것도 아니고 인간이 요청할 때마다 피어나는 것이 아니에요. 무지개를 창공에 걸었다는 말은, 이 대지는 노아 언약을 만드신 그 분이 주인이라는 것을 그냥 플래카드로 펼쳐 보인 그것이 무지개입니다. 무지개는 비가 오고 난 뒤에는 어떤 인간의 영토, 바로의 권력에 의해서 “무지개가 생겨라.”라고 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무지개는 인공적인 의지와 요청과 선택과 강렬한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무지개가 등장하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결국 아브라함을 통해서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거예요. 이 대지가 과연 누구를 위한 영토가 되는지, 누구를 위한 권력이 있어야 되는지, 아니면 너희들이 이 땅에 갖고 있다는 권력을 통해서 대지 + 권력, 이걸 통해서 나의 영토화 시키는 이것, 이것은 내 영토다, 내 권력이다, 그것을 옹호하는데 필요한 땅인지, 이제 두고 보면 안다는 겁니다. 사실은 아브라함 본인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기근이 나서 갈 데가 없어서 애굽에 갔을 뿐이고, 갔을 때 본성적으로 죽기가 싫으니까 아내보고 거짓말해서 갔는데 그 다음 조치는 하나님의 개입된 조치가 되어서 그 아브라함 본인도 놀랄 지경이지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본래의 취지가 무엇인지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두고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게 했거든요. 이 거짓말의 반대는 도덕입니다. 이 도덕이라는 것이 어디에 필요한 도덕이냐 하면, 여러분이 제가 아까 말한 영토라는 것을 기억해주시고 그 영토의 질서, 서로가 서로의 질서를 유지할 때 반드시 법이라는 것이 필요해요. 남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 된다. 이것은 기원전 2300년경의 함무라비법전부터 나오고 모든 세상 종족들이 법 없는 종족이 없고 다 법으로 되어 있어요. 단군의 고조선의 법에 함무라비법전과 비슷한 내용들이 나와요. 8개의 법, 8조법금이라는 것이 국사책에 나와요. 도둑질을 하는 자의 손을 자른다는 식의 내용이 나온다고요. 이것은 뭐냐 하면, 내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십계명에 나오는 조항들은 함무라비 법전에도 다 나오는 이야기라는 말이지요. 가락교회에서 그걸 두고 집단주체라고 했어요. 하나가 될 때 가장 안정적이에요. 둘이 되면 경쟁이 생겨서 내가 삶을 사는데 요란스러워요. 불안하고. 이 갈라짐은 우리의 마음도 갈라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걸 법이라는 본드로 강하게 붙여야 돼요. 인간의 언어는 사실은 그 사이사이에 뭐가 있느냐 하면, 다 본드가 붙어 있어요. 의미라는 접착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 접착제를 붙이는 자가 누구냐? 접착제를 붙이는 자는 법에 대해서 전혀 저촉되지 않는 자만이 법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래야 서열이 되기 때문에. 법의 권위가 서려면 법을 만든 사람은 법에 대해서 벗어나줘야 초월적인, 카리스마적인 권위를 갖게 됩니다. 라멕 이야기에요. 가인의 7대손 라멕의 이야기입니다. 법의 제정자는 법에 저촉되면 안돼요.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야 돼요. 그래야 법이 유지가 돼요. 왜냐? 재판을 해야 되기 때문에. 재판받는 사람이, “판사 너는 잘했나?” 이러면 나라꼴이 안 됩니다. 임금은 아내가 열 명이건 스물이든 괜찮아요. 하지만 백성들은 그러면 안돼요. 그래서 애굽에서는 바로가 신의 아들, 태양의 아들입니다. 태양의아들이라는 것은, 서열상 당신이 우리보다 높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백성은 집단주체의 대표자 바로왕의 몸체로서 종속되어 있어야 신과 통하는 유일한 지점에 있는, 신에게로 가는 그 길에 유일하게 있는 그 바로 왕을 경유해야만 우리는 태양신의 나라인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그것이 애굽의 모든 법 밑이 기반으로 깔려 있는 겁니다. 법을 잘 지키면 나라가 잘 된다, 그러면 법 안 지켜요. “법을 잘 지키면 잘 지킨 당신은 사적으로 천국가게 되고 천국가게 되는 사람이니 이 땅에서 복을 받아서 이집트 왕국에서 편안하게 삽니다.” 이렇게 돼야 돼요. 그냥 “여러분은 법을 잘 지키면 행복하게 됩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완전범죄를 노립니다. 법 어겨도 안 들키면 돼버려요. 눈에 보이는 자기 욕망대로 하고 안 들키면 되고 안 잡히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나라꼴이 안 되고 질서가 안 잡혀요. 카리스마적인, 초월적인, 신적인 신성한 의미가 법과 의미 속에 있어야 돼요. 언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에요. 임금의 입에서 나온 것이 언어입니다. 신하들이 하잖아요. “통촉하옵소서.” 임신하니까 “감축 드리옵니다.” 용어 자체가 신성한 용어에요. 임신했다고 하면 될 것을 가지고 “회임하셨습니다.” 용어자체를 서열화 시킨다니까요. 초월시켜요. 대통령 영부인이지 아줌마라고 하면 안 됩니다. 대통령 부인보고 아줌마라고 하면 영창 가는 수가 있어요. 사령관 부인보고 어떻게 아줌마라고 해요. 그러면 질서가 안 잡힌다니까요. 동등은 질서가 아닙니다. 질서를 잡을 사람은 그 질서 속에 포함이 안 되어야 질서가 잡히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가 영적카리스마를 주장하는 겁니다. 교회 꼬락서니 되라고. 그래서 어떤 목사는 십일조를 다 자기 집으로 가져가잖아요. 제사장이니까. “돈이 좋아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교회 질서를 잡고 그래야 교회가 돌아간다. 내가 돈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만큼 목사를 특별 대우하라는 거예요. 교회 어른이 없으면 일이 안 돼. 그게 가부장제도의 연장선이에요. 바로왕은 그런 입장에 있습니다. 애굽에서 바로 왕보다 더 센 권력은 없어요. 그게 애굽의 도덕이에요. 그 도덕이 악한 겁니다. 선과 악을 아는 것이 악한 거예요. 이게 저주받을 짓이 되는 겁니다. 인간이 죽는 이유가 선과 악속에서 그것을 진리라고 여기기에 지옥가야 됩니다. 하나님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주시는 구원은 선과 악에 근거해서 주어진 진리가 아닙니다. 선과 악에 박혀 있는 그 선이 아니에요. 그 선과 악을 나쁘다고 지적질하는 그 힘이 감추어진 의고 거룩이고 선인 겁니다. 감추어졌기 때문에, 인간들이 알고 있는, 인간들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양심적으로 알고 있는 그 선과 악에, 전혀 그 테두리 범위 안에 들어오지 못한 이질적인 요소가 뭐냐?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 참말을 이긴 겁니다. 이게 오늘 본문의 핵심내용입니다. 강도가 천국가고, 세리와 창기가 구원받고, 옆에서 부모한테 효도했다고 한 아들은 지옥가고, 아버지유산 받아서 허랑방탕 다 날리고 온 빈털터리 그 탕자가 천국가고, 착실하게 근무하면서 곱게 구조조정 당한 직원은 지옥가고, 구조조정 당한다 싶으니까 장부 조작해서 그 회사의 공금횡령한 사람은 천국가고, 그 선배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같은 권력속의 똑같은 인간인데, 아브라함이나 바로나 똑같은 인간인데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저쪽에서 이미 설정해놓은 그 진리라는 것, 도덕이라는 것, 선악체계라는 것, 권선징악, 선하면 복 받고 악하면 저주받는다는 그것…… 모든 인간들은 교회 20년, 30년, 40년, 목사, 장로 되어도 소용이 없어요. 모든 인간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따라 붙는 것이 있어요. 마치 수영선수 출발하면 수중카메라가 같이 따라가면서 촬영하는 것처럼, 육상선수 달릴 때 카메라가 같이 달리면서 촬영하듯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 같이 밑에서 따라가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착하게 살 테니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착하게 살 테니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그것. 여러분이 그것을 실감할 거예요. 사회에 나가서 누구를 만나서 복음 논쟁하과 성경과 진리이야기를 해보세요. 두 시간 반 쯤 해 보면 남는 것은 딱 하나 남아요. 난 착하니까 날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에요. 착하니까 건드려야 돼요. 왜? 복음 아는 우리도 그게 바탕에 깔려 있는 채로 주님께서 나를 건드렸기 때문에 그래요. “주님, 저 착하잖아요. 권선징악 잘 알고 있습니다. 착하잖아요.” 주께서 “그러니까 십자가로 건드려야 된다.” 십자가 끝이 뾰족하잖아요. 그러니까 십자가로 건드려야 되는 거예요. 건드리지 말라고 하니까 건드리는 거예요. 건드리지 않으면 구원은 없습니다. 지금 분명히 시키는 대로 가나안 땅에 갔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왔어요. 왔는데도 주께서 건드려서 기어이 기근이 생기도록 해서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서는 애굽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께서 지금 건드리고 떠 밉니다. 떠 밀어서 강제로 누굴 만나게 해요. 바로왕, 최고의 권력자를 만나게 합니다. 그 최고의 권력자는 완전히 안정된 질서를 갖추고 있는 겁니다. 그 질서를 갖추고 있는데 아브라함도 알아요. 그 사람 힘 앞에서 나는 쪽도 못쓴다는 것, 그걸 이겨서 구원받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는 것, 비록 내가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지만 이참에 하나님 믿고 까불다가는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껴요. 예수이름, 하나님 이름 들이댄다고 해서 취직되는 것 아니거든요. 이 세상에서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알아서 기어야 돼요. 그래서 힘 앞에서 알아서 기었다는 말이지요. 기었는데 도저히 기다가기다가 할 수 없어서 둘이 짜고 거짓말 한 거예요. 거기에 성상납까지 자진해서 하고.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인들 못합니까? “살기 위한 것이니 주께서 봐주세요. 하지만 저는 바르게 살고 착하게 산다는 이 의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나오는 아브라함이나 아브라함을 맞아들이는 바로 왕이나 둘 다 똑같은 종류의 인간이에요. 전혀 차이가 없어요. 똑같아요. 착하면 복 받고 거짓말 하면 저주받는다. 여러분, 거짓말 해도저주 안 받고 나쁜 짓해도 벌 안 받습니다. 그런다고 지옥 가는 것이 아닙니다. 백날 이야기해 봐도 우리는 벌벌 떨게 되어 있어요. 이게 평생 가는 겁니다. 그래서 “복음이라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죄인 중에 괴수라도 이미 합격된 사람입니다.” 라고 하면 우선 이론상 듣기는 좋지만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한다는 것은 차마 못해요. 차마 못하면서 매일 주님 앞에 엎드려서 “통촉하옵소서.” 이러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뉴스를 보면서 실제로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보고 굉장히 기뻐했어요. 대구에 어느 학원이 있는데 공인중개사 학원이에요. 그 학원에서 광고를 이렇게 했습니다. 빌딩경영관리사라는 것이 있답니다. 빌딩경영관리사에 관한 법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데 이 법이 통과되면 한 만 명이 필요한데 자격증 있는 사람은 아직 거의 없는 실정이랍니다. “그래서 이 빌딩관리사자격증 따놓으면 일자리 다 하나씩 챙길 수 있습니다.”라고 광고하는 학원이 있었는데 그 학원의 합격률이 무려 98퍼센트에요. 그 학원원장이 맨 그 학원 강사인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분, 공부하지 마시고 시험 치기 전날 저녁 7시에 우리 학원에 잠시만 들렀다가 가시면 합격됩니다.” 공부는 하지도 말라는 거예요. 제가 평소에 이야기하던 복음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 그래도 합격한다는 그것이 비슷한 거예요. 나중에 대구경찰서에서 조사를 해보니까 그 학원에서 시험지를 사전에 유출했어요. “시험지를 가져가지는 마시고 눈으로 죽 보시고 해설 듣고 가시면 그 문제 그대로 나오니까 합격 됩니다.” 해서 98퍼센트의 합격률을 보였답니다. 큰 은혜를 받았어요. 이미 시험문제가 유출된 거예요. 그런데 그 학원은 시험문제 유출된 것을 미리 보고 시험은 치기라도 하지 우리는 시험문제가 뭔지를 몰라요. 시험문제가 뭔지도 모르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보고 “네가 행하는 모든 것이 결론이고 이미 끝난 사실이다.” 하는 거예요. 아브라함 본인이 납득이 안돼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기분은 좋은데 실제로 우리의 삶은 저쪽과 똑같아요. ‘나쁜 짓 하면 이번에 벌 좀 받을지 싶다.’ 혹은 ‘착한 일을 했으니, 교회 나왔으니 이제 복 받을 거야.’ 맨날 권선징악이고 맨날 선악체계에요. 주께서 그런 식으로는 구원이 안 된다는 것을 창세기부터 뻔히 이야기를 했건만 여전이 우리 육에 흐르고 있는 것은 권선징악밖에 없어요. 선악체제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형상 본받아야지. 그리스도 형상 본받아서 빛의 자녀가 되어야지.’ 맨날 빛의 자녀가 된대요. 빛의 자녀가 뭔지도 몰라요. ‘착하게 살아야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했으니 거룩하게 살아야지.’ 성경말씀, 지키지도 못할 말씀, 그것 지킨다고 하는 거예요. 좀 지킨 성 싶으면 흐뭇하게 못 지켰다 싶으면 벌벌 떨고. 그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권력을 뚫겠습니까? 그 권력이나 이 권력이나 똑같은 권력인데. 나를 미워하라고 주신 그 말씀이에요. 이미 결론이라는 말은, 네가 지금 꼼수로 평소에 생각하는 그것은 시험에 안 나온다는 말이지요. 천국시험에 안 나오는 거예요. 나오지도 않는 시험문제를 시험 준비 한다고 평생 다 허비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뭔가 좀 자녀가 잘되면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 그렇구나.’ 연관도 없는 문제인데 찾아요. 그냥 성경의 해답은, 은혜로, 그냥 공짜로 준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것을 찾아요. ‘은혜로 된 것은 알고 있지만 은혜로 기도해서 되었겠지요.’ 자기를 또 집어넣는다는 말이지요. 이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다는 것의 한 예를 더 들겠습니다. 1992년 10월 4일 오후 2시 30분경에, 원주의 김빱천국이 주관하고 있는 천국회관, 왕국회관이지요, 거기서 여호와의 증인들 집회가 있었어요. 원은식이라는 사람이 거기에 들어가서 “내 마누라 내놔라.” 했어요. 다들 가만히 있었어요. 지금 여호와의 증인들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다들 가만있었겠지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러서 열 네 명이 죽었어요. 현장에서 죽은 것은 14명이고 나중에 중상자가 죽어서 사망자가 추가되었는데 죽은 그 이유가 헌혈을 거부해서 죽었어요. 그래서 15명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형제도가 있기는 해도 집행을 안 하고 있으니까 현재 최장기수로 24년 동안 감옥살이 하고 있답니다.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이 땅에 있는 모든 권력체제에 있어서 아무것도 우리가 기대할 것이 없다는 거예요. 제가 주목하는 것은, 지금 불에 타서 죽게 되어서 수혈이 필요한데 수혈을 거부했거든요. 하나님 보시기에 불 지른 그것보다 수혈을 거부했다는 그 인간이 더 못된 거예요. 지금 천국출제문제 아니에요. 수혈 거부하면 천국 넣어준다, 군대 안가면 천국 넣어준다는 그런 문제를 준 적이 없다니까요? 누가 줬겠어요? 극도의 선악체제,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 개혁주의 신학이지요, 최고의 성화론, 청교도정신, 이런 것들, 여호와 증인은 거기서 나온 하나의 가지에요. 가지도 그냥 곁가지들, 신천지도 거기서 나온 거예요. 궁극적으로는 전부 다 마귀에서 나온 거예요. 절대로 복음을 못 듣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 신이 붙잡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 지르게 만들어놓고, 그 가운데서도 그들이 평소에 죽었던 자들이 그 왕국회관에 모여서 무슨 공부를 했는가를 분명히 주께서 알게 해주셨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평소에 우리는 무슨 공부합니까? 성경공부 하면 무슨 복 받을 줄 알고? 형편 필줄 알고? 그랬던 거예요? 성경공부, 예배참석, 이 모든 성경말씀은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똑같이 바보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누구 오실 때까지? 우리 마음에 예수님 오실 때까지. 예수님 오셔서 우리 마음에 그 권력, 내 안의 권력을 툭툭 제거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은 굉장히 단순해요. 제거. 추가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복 주시는 것이 아니고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제거에요. 탁탁 터는 거예요. 마이클 잭슨 춤 보니 터는 것이 나오데요. 데인져러스, 하면서 터는 것이 나와요. 눈이 오면 탁탁 털듯이 터는 거예요. 왜냐? 맨날 우리는 선악으로 먼지를 자구 스스로 뒤집어 써요. 훈장을 달고 스스로 선악을 뒤집어써요. 북한의 장군들의 옷처럼 옷이 늘어질 판이에요. 너무 훈장을 많이 달아서.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매일같이 우리는 우리의 찬란한 과거사 가지고 덕지덕지 훈장을 달아요. 이것을 다 떼어 내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다 네가 네 힘으로 구원받으려고, 영원히 살려고 하는 짓거리인데 내가 과감하게 떼어줄게.” 떼 줄 때 할 말이 없도록, 네가 이 땅에 살면서 거짓말에 거짓말, 곱빼기 거짓말, 백배 천배의 거짓말을 해가면서, 주님, 주님, 하지만 ‘살아야 돼. 살아야 돼. 어쨌든 돈 벌어서 살아야 돼.’ 이런 식으로 했던 그 모든 것을 생산시키고 또 털어내고 생산하게 해서 또 털어내고, 그래서 이 권력층을 이미 통과한 사람으로서, 이미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움직이는 하나의 결론으로서, 이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오신 십자가를 증거케 하시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의 뜻은 제거인데 우리는 추가를 원했습니다. 도전을 원했고, 아름다운 것들, 그런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는 요소에 불과한 것을 저희들이 몰랐습니다. 이제는 지나간 과거를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신 그것이 십자가의 능력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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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1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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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