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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59강-창 12장 10-13절(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람)161026-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창세기

59강-창 12장 10-13절(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람)161026-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12장 10-13절입니다. 구약성경 13페이지입니다. 창 12:10-13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가나안 땅이 약속의 땅인 줄로 아브라함은 생각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약속의 땅에 가면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줄줄 알았지요. 그런데 그 땅에 갔는데 갑자기 기근이 임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은 두 부부가 죽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죽게 되면 복의 근원이 사라져버리는 모순이 벌어집니다. 네가 창대하고 복의 근원이 된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약속과 자기가 있는 삶의 환경이 매치가 될 줄로 생각했는데 매치가 안돼요. 잘 연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한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고 더 이상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서는 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기근에 밀려서 애굽에 갔습니다. 이것은, 땅이라는 것이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생존을 보장해주는 땅이라고 생각한 거지요. 그런데 어느 땅으로 갔는가? 애굽으로 갔거든요. 애굽땅과 약속의 땅하고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라고 하는 그 땅이 애굽땅에 의해서 포위된 형편에 있는 셈이 되어버리지요. 쉽게 말해서, 네가 아무리 날 뛰고 복의 근원이라고 주장을 해도 애굽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네가 못 벗어난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은 받았지만 아브라함이 온 몸으로 느끼는 것은 약속이 아니고 자신의 생존이 우선이 되는 거예요. 일단 살고보자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구원받고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과 사명은 나중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생각했던 약속의 땅은 약속의 땅이 아니고 생존의 땅이 되지요. 생존의 땅은 목숨을 부지하고 연장하는 일밖에 못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뭐냐 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존의 땅에 보낸 것이 아니고 약속의 땅에 보낸 겁니다. 축복의 땅에 보낸 거예요. 축복의 땅이 되어야 하는데 생존의 반대말이 축복이 아닙니다. 심판의 반대말, 저주의 반대말이 축복인 거지요. 아브라함은 자기가 생존하면 복이고 자기가 죽으면 저주라고 오해한 겁니다. 잘못 생각한 거예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기껏 간 곳이 애굽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있으나, 가나안땅에 있으나, 애굽땅에 있으나. 애굽이라는 땅에서 생존을 도모했다는 말은, 그 가나안땅도 여전히 애굽땅의 연속, 연장에 불과한 겁니다. 목숨을 부지해주는 땅, 그 땅을 하나님의 축복의 땅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중간과정이 하나 필요했습니다. 목숨에 필요한 그 땅이 심판의 땅, 저주의 땅으로 드러나는 일이 일어나야 돼요. 그런 일이 일어나서 내가 목숨부지해서 살고자 하는 이것이 축복과는 정 반대되는 속성인 것을 아브라함 본인이 알아야 됩니다. 처음에 아브라함이 이 약속의 땅에 올 때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는데 막상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과의 동행은 없고, 자기 부인과 동행하지요. 인간 대 인간의 동행입니다. 인간대 인간의 동행에서는 거기에 하나님의 동행이 개입하기 전에, 하나님의 동행이 빠져 있는 상태에서 그냥 인간은 인간과 협의하고 의논해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맙니다. 그렇게 처리하는 그것이 어디에 부합되느냐 하면, 애굽의 연장인 그 가나안 땅이 왜 저주를 받아야 될 땅이냐 하는 성질을 드러내는 것과 관련성이 있습니다. 애굽 땅이든지 가나안 땅이든지 살고자 하는 자,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협의해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 그것은 곧 하나님의 동행과 상관없는 저주의 땅이 되지요. 나라의 대통령이 비선실세라고 불리는 사적인 인물과 협의할 때 국민과 상관없는 저희들끼리의 동행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데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사람 대 사람으로 동행하는 방식과 다른 방식의 동행방식이 수립되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동행 이전에 여기 과정이 필요한데 인간과 협의한 그 동행의 결과가 실패로 끝나야 되는 거예요. 인간과 의논한 그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나야 돼요. 실패로 끝난다는 말이 뭐냐? 협의하고자 한 그 인간이나 협의에 응한 인간이나 부부 둘 다 처음부터 실패해야만 하는 인간인겁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되는 아브라함 가정을 실패자를 복의 근원으로 만들려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실패자가 꼭 드러내는 본성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희망을 갖는다는 겁니다. 사람이 희망을 가져버리면 꿈이 현실을 대신해 버려요. 착각이 현실을 대신해 버립니다.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목사님, 저는 한 가정을 이루어서 자식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야, 진짜 큰 희망을 갖고 있어요. 평범하게 산다는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데요. 이 세상에 어떤 가정도 평범한 가정은 없습니다. 평범한 가정은 현실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본인들이 평범하지 않아요. 세 식구가 있으면 세 식구 다 꿈들이 있는데 그 꿈들이 전부 다 자기는 평범하다고 하는데 남들이 보면 평범한 것이 아니고 장미의 가시처럼 남을 찌르는 꿈들입니다. 참 꿈도 야무지다. 희망을 갖고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이 저주받아야 될 이유입니다. 인간에게 희망과 꿈이 있을 때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모독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 앞에 원망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 앞에 반항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희망을 갖고 꿈을 갖고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을 돌아보세요. 모든 인간이 꿈 없는 인간 없고, 희망 없는 인간 없고, 기대 없는 인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지옥이에요. 천국의 특징이 뭐냐 하면,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기대도 없어요. 그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현재 하나님께서 최적화된, 가정 최고 적절한 환경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이라고 했어요. 성령께서는 스톱시키는 거예요. 꿈을 없애버리고 희망과 기대를 마귀의 유혹으로 간주해서 부정해버리는 거예요. 거부해버리는 겁니다. 하루 24시간을 살아가면서 여러분이 괴로운 순간이 어떤 순간이었던가요? 자신의 꿈과 희망과 기대가 좌절될 때 짜증나고 힘들고 괴로운 거예요. 남에게 원망 퍼붓고, 자기 자신에게 원망 퍼붓고. 그런데 언제 감사하던가요? 예상치도 않은 것이 주어질 때 그 때 우리는 감사하지요. 내가 노리고 내가 원했던 꿈의 노선 말고 다른 노선으로 개입할 때 내가 꾸었던 꿈과 희망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것을 노출시킬 때 우리의 존재는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습니다. 깃털처럼 날아다니고 싶지요. 주께 찬양하고 감사하면서. 어떤 사람은 찬양하고 기뻐한다고 하니까 또 나이 많아서 찬양 힘들어서 못한다고 하는데, 노래 1절도 힘들어서 못하는데 4절까지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찬양하고 기뻐하라는 말은 노래를 부르라는 말이 아니고 자기 존재가 가벼워짐을 확인하라는 뜻이에요. 목소리 안내도 움직임 자체가 찬양이 되는 겁니다. 아마 천사가 그런 거지요. 천사의 모든 파닥거림이 다 찬양이 되듯이 노래를 불러야 된다든지, 노래를 부르는 순간과 아닌 순간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삶 자체가 찬양이 되는 거예요.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그 사마리아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는 것, 자기의 꿈과 희망을 내팽개치는 거예요. 너무 심하게 팽개치면 물동이가 깨지는 수가 있으니 조심은 해야 되는데,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냥 동네 사람에게 “나 메시아 만났다.” 하고 돌아다니지요. 다른 말로 하면 “주께서 저를 어떻게 이렇게 구원시켜 주셨습니까?”라는 가벼움, 그 즐거움, 고마움, 이렇게 고마움에 둘둘 싸여 사는 것, 삶 자체가 그게 찬양이고 그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거지요. 그게 바로 복의 근원입니다. 그게 복의 근원이 되게 되면 그 사람이 속해 있는 그 땅이 약속의 땅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가 보는 이 땅에서 약속의 땅을 찾지 마세요. 그 땅은 그냥 애굽이라는 테두리를 못벗어납니다. 여기 살다가 캐나다 가면 되겠지. 캐나다 가 봐야 그거 애굽이에요. 저 갔다 왔어요. 천당 밑에 999당이 있는데 999당이라는 이름의 애굽이에요. 미국 가 봐야 애굽이고 한국도 애굽이고 북한에 있다가 탈북 해봐야 애굽이고. 문제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은근히 애굽적인 희망과 소망과 꿈을 갖고 있는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꿈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똑같은 인간과 같이 어울려서 자기의 꿈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이 꿈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겠다고 서로가 인간 대 인간의 동행, 마음 맞는 부부나 식구끼리만 의논했기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복이 뭐냐 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문제가 뭐냐를 알려주는 거예요. 저주가 뭐냐를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들끼리 백날 해 봐야, “행진! 행진! 행진하는 가야~!” 어디로 행진하는데? 가 봐야 절벽으로 떨어지기 밖에 더 합니까? 행진하면 뭐가 됩니까? 이 땅에서 성경말씀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 뜻과, 인간 대 인간이 동행하면서 의논하는 그 모든 것을 무산시키고 좌절시키는 그것이 이미 복의 근원되기의 시동이 걸린 거예요. 시작을 한 겁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그것이 이미 천국 가는 시동이 걸린 거예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아브라함에게 일어나는 그 문제해결은요, 아브라함 개인을 위한 문제해결이 아니고 모두를 위한 해결방법을 아브라함 개인을 통해서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구원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브라함 개인의 가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모두에게 다 적용되는 보편적인 해결방법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끄집어내는 거지요. 그게 바로 복음이잖아요. 십자가의 용서, 죄씻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그것. 신약까지 가기 전에 아브라함부터 해결책이 나오는 겁니다. 해결책이 나오는데 사람들은 이 본문에서 아브라함을 보면서 아브라함을 좌절시키고 실망시킨 그 하나님을 만날 생각하지 않고 아브라함을 직접 자기와 연계시키려는 경향이 있어요. 말씀을 여러 구절 나열할 테니까 이 구절들을 여러분은 그동안 어떻게 해석했는지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시편 37편 23절과 2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지금부터 제가 읽어드릴 예닐곱 개의 구절은 대심방할 때 딱 적합해요. 대심방용 성경구절들이에요.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 37편 23, 24절의 말씀입니다. 은혜가 안되려야 안 될 수가 없지요. 잠언서 16장 3절에 보면,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이것은 최고경영자, 사장실에 다 걸려 있을 것 같아요. 너의 행사, 네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거예요. 잠언서 16장 25절에 보면,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그러니까 남 너무 부러워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잠언서 19장 21절에 보게 되면,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이 말씀 듣기만 해도 갑자기 꿈이 확 생기잖아요. 이 말씀과 시편에 나오는 말씀, 입을 벌리면 채운다는 그 말씀과 연계시켜버리면, 입을 벌리면 막 들어오는 거지요. 잠언서 28장 26절에 보면,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이런 말씀하고 앞의 말씀하고 들어보면 조화가 잘 안돼요. 잠언서 29장 26절에 보면,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잠언서를 보게 되면 어느 대목을 잡는 것이 유리할지 쇼핑하듯이 바구니에 골라잡아야 될 판이에요. 지금 이 골치 아픈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방금 읽었던 본문을 아주 깔끔하게 해석해 드리겠습니다. 시편 37편 23절과 24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그 뒤에다가, “……자기의 소유를 포기한다면.” 잠언서 16장 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자기의 소유를 포기한다면).” 잠언서 19장 21절,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그 과정에서 자기의 소유가 다 날아갈 것을 다짐한다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오늘 본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와 의논해서 애굽으로 내려갔거든요. 기근이 일어났으니 인간으로서는 우선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뭘 사수하려고 하느냐 하면, 자기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그 본심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애급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만든 거예요. 그 증거가 12절에 나옵니다.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왜 그런 말을 했느냐 하면, 11절에,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당시 사래의 나이가 65인데 요새는 65세 여성이 아리땁다고 한다면 상당히 불신하겠지만 우리교회 권사님은 65세여도 아리땁기는 한데 복음 안에서 아리따운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당시는 수명이 길었어요. 아브라함도 175세까지 살았으니까요. 수명이 반 토막 났다고 보면 됩니다. 요새말로 한 30내지 40세라고 보면 됩니다. 나이 40넘은 영화배우들 보세요. 아리땁잖아요. 예쁘잖아요. 그런데 옛날 조선시대 40넘은 여인네들 한복 입은 것 보세요. 전혀 아름답지 않아요. 춘향이가 16세니까. 그 당시 수명이 50밖에 안되니까 적어도 반 토막이 나면 20가까이는 되어야 아리땁고 그 다음부터는 끝나버려요. 요새 수명이 80이 되니까 40대가 아름답고, 그 당시 수명이 200세 가까이 되니까 65세는 아직도 청춘이잖아요. 물론 주관적관점이겠습니다만 그 당시 사래가 상당히 아리따운 여인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애굽에 내려갔을 때 여기서 아브라함이 갖고 있는 경계면…… 곧 아브라함이 갖고 있는 양쪽 세계를 다 보여주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단순히 생존의 땅에서만 버티는 사람이 아니고 받은 약속이 있습니다. 저주와 축복도 보여줘야 될 그 세계가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무엇을 느끼느냐 하면, 아브라함의 모든 가는 코스가 나그네길이에요. 거처가 없습니다. 직업도 유목이지만 인생 그 자체가 유목적이고 떠돌아야 될 입장에 있습니다. 한곳에 영원히 정착한다는 것은 본인의 사명에 어울리지 않지요.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이미 아브라함은 이방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내려갔다는 것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그 자체를 약속의 땅으로 본 거예요.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어떤 식으로 보여주는가, 그 점을 언급을 해야 됩니다. 제가 아까 언급했습니다. 이 작전이 실패로 끝납니다. 왜 실패로 끝나느냐 하면, 바로 왕이 사래를 탐을 냈던 거예요. 이런 대목에서 해석이 굉장히 난해합니다. 자칫하면 이렇게 잘못 생각할 수 있어요. ‘아브라함이 똑똑하기는 했다. 자기 아내가 예쁜 것을 보고 애굽사람들이 얼마나 탐을 내겠는가? 아브라함이 예측을 잘 했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예측한대로 다 해줘요. 다 해주고 그 끝이, 그 노선이 축복과는 상관없는, 그것이 잘못된 노선인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아브라함이 계획한대로 맞춰줘 버려요.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겁니다. 알려지지 않는 그 내용이, 미래의 일이 현재를 뒤엎는 방식으로 모든 일을 처리를 하는 겁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여행자가 길을 갈 때 구름을 보세요. 구름 모양이 어떻게 변합니까? 수시로 바뀌지요. 저거는 토끼모양, 저것은 절구모양, 저것은 모자모양, 구름은 모양대로 바뀌는데 ‘저것은 모자모양이고 저것은 절구통모양이다.’라고 그것을 규명하는 것은 누가 하느냐 하면, 나그네의 몫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구름은 그 나그네 의견을 받아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요. 인간이라 하는 것은 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면서 이 땅에서 자기생존을 위하다 보면, 세상 돌아가는 것이 뭐든지 자기한테 의미 있어서 돌아간다고 오해를 하고 착각을 한 거예요. 하나님의 계획은 따로 있는데 자꾸 그런 식으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갖고 있던 현실관자체가 우리가 갖고 있는 오해의 여지와 동일한 그런 것을 자꾸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지요. 아까 우리가 본 잠언서의 말씀, 모든 것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그 경영하는 것을 이루신다는 이것은 나그네 가는 길의 구름 같은 것입니다. ‘그렇지. 말씀대로 되는구나. 이 말씀이 있는데 내가 좌절하면 안 되고 내 모든 일을 맡겨야지.’ 그런데 아까 뒤에 붙인 해석은 잊었지요? “내 모든 소유를 포기하면.” 이것은 생각도 안하고 그저 내가 맡기면 주께서 내 뜻을 이룰 것이다? 맞아요. 주의 뜻이 결국에는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주의 뜻이 이루어지지 내가 앞서가면서 이것이 주의 뜻이라고 했던 그 뜻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설교 제목을 달리 바꾼다고 한다면 “농락당한 우리교회”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농락당하는 거예요. 다루어지고 있고 놀림 받고 있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 했는데 내가 착각한 것에 불과하고, 또 하나님의 뜻이다, 했지만 착각에 불과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고, 한 고비고비마다 우리가 오해한 거예요. 이쪽 골목에서 오해하고 저쪽 골목에서 오해하고, 마주치는 현실마다 꿈을 투여하고, 내 꿈은 저 골목 돌아서면 드디어 이루어질 것이라고 또 다시 희망과 꿈을 집어넣고요. 사무엘베게트라는 작가가 쓴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그 연극. 고도라는 것은 없는 거예요. 독일말로 그것은 신이라는 말인데 신을 그냥 무작정 기다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소진시킵니다. 그 희망을 소진시켜 버려요.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진짜 개다, 할 정도로. ‘내가 두 번 다시 하나님을 믿는가 봐라.’ 실망을 한두 번 해야 말이지요. 실망하고 실망하고, 계속 실망해야 돼요. 언제까지? 스데반집사 될 때까지. 사도바울 될 때까지. 열두 제자 될 때까지. 자꾸 왜 하나님 앞에 기대를 걸고 하나님한테 희망을 품느냐는 말이지요. 그 하나님이 가짜거든요. 내가 만든, 구름에 내 맘대로 의미를 붙인 것들, 저것은 모자모양, 저것은 토끼모양, 하나님을 하나의 구름으로 여겨서 처음부터 나를 사랑했던 하나님, 나를 위하시는 하나님,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을 맡기면 내 뜻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 잠언서 16장 3절의 말씀처럼 뜻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 도대체 얼마나 우리의 희망과 기대를 소진시켜야 비로소 하나님과 우리가 전혀 상관없다는 사실을 알겠습니까? 근본적으로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어요. 이 세상이 악하다고 하지만 그 악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따로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 3의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악한 세계에 우리가 같이 포함이 되어서 너 못지않고 서로 동행하면서 같이 꿈을 키워가면서 그 꿈들이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예 “이 애굽땅에서 바로 왕만 망하지 말고 너도 망해라. 네가 바로 왕을 이렇게 속일 것이라고? 그 바로 왕이 너를 속일 것이다.” 속고 속이고, 애굽의 바로 왕이든지 아브라함 부부든지 둘 다 똑같은 거예요. “여보! 당신을 누이동생이라고 하자.” 해서 성상납을 하겠다는 겁니다. 성상납하게 되면 혹시 이 애굽땅에서 보존되게 되면 나중에 기근이 풀려서 다시 가게 되면 약속대로 축복을 받아서 부자 될 거야, 라고 나그네 삶을 사는 이 아브라함부부가 자기 코앞에, 눈앞에 등장하는 구름을 보고 자기와 연계시켜서 일방적으로 의미를 갖다 붙이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성사됨으로서 자기의 뜻이 좌절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성사시킴으로서 성공자체가 실패라는 것, 내 기대와 희망이 성사된 그것이 곧 너는 실패자였어, 라는 것을 지목하는 증거가 되도록 주께서는 이끄십니다. 가슴을 치고 또 가슴을 쳐야 돼요. “쓸데없는 것 가지고 기도제목 걸은 저를 용서하옵소서.” 기도할 것도 아닌데 답답해서, 너무 아슬아슬해서, 너무 무서워서, 사는 것이 힘들어서 무작정 기도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서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주의 차원에서 도로 나를 쏘아대는 화살로 되돌아오는 겁니다. “제기도로 주님을 또다시 아프게 했습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가 가는 하루하루의 삶이에요. 답답해서, 오랜만에 이 단어 나옵니다, 컬컬해서, 답답하고 컬컬한 마음에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예수님을 또 못 박아 죽이는 이유로서 작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브라함의 끝은 어디냐? 에스겔 11장 16절부터 1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열방 가운데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찌라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그들을 흩으시고 그 다음에 그들이 포로 잡혀 가는 그곳에서 내가 그들의 성소가 된다는 겁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실패자가 될 때, “주여,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데 실패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현장을 주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삼아버립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나는 못난 인간이고, 나는 처음부터 실패 외에는 내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인간인 것을 자각하는 그 자리가 주님이 함께 있는 것을 티내는 자리고 표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아까 기도할 때 했지요. 만취하되 자기의 못남에 취해버려라. 왜냐? 이 세상 모두가 잘남에 도취되어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못난 재미로 살아버려라. 그리고 그 방법이 뭐냐? 19절에 나옵니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개개인의 개인구원은 없습니다. 모든 구원받은 사람에게 동일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게 되면, 성령을 주게 되면 굳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준다는 겁니다. 캐시미어 같아요. 부드러운 마음. 부드러운 마음의 특징은, “뭐가 들어와도, 내 인생에 어떤 사태가 들어와도 주님께서 최적화된, 가장 적합한, 하나님의 성전 되기에, 하나님 계시기에, 내가 있기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 주님 계시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합당하게 주셨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자리인 성전입니다.”라고 될 때 아브라함의 완성이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문제는 땅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어디까지 들어오는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지시, 동행자가 그런 지시를 내립니다. 동행자의 지시에요. 자기아내와 의논할 것도 없어요. 이제는 더 이상 사람하고 의논하지 않습니다. 아비멜렉이라는 이방종족을 겁내지도 않아요. 이제는 내 아내가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아요. 사실 사촌여동생이거든요. 그런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어요. 자기 아들도 바치는 판국인데 뭘 더 이상 거짓말을 하고 더 이상 자기를 꾸밀 이유가 없습니다. 잘 되는 것이 있어야 꾸미든지 말든지 하지, 내려갈 데까지 내려갔는데 뭘 꾸밉니까? 아담은 자기 죄를 꾸몄습니다. 무화과나무 치마를 입어서 그 상태에서 생명나무를 취하려고 덤벼들었지요. 그런 상태로. 부끄러운 것을 가리면 생명나무를 따먹을 수 있는 어떤 권한이 있는 것처럼, 그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만하면 당당하다는 겁니다. 이만하면 나도 밀리지 않고 기죽을 필요가 없는, 내가 하나님 앞에 요구할 만한 자격자라고 우기는 거예요. 그 인간들의 집단이 바로 지옥 같은 이 세상입니다. 이 땅이 애굽땅이에요. 아브라함이 있는 그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서 철저하게 아브라함 그 내부를, 예수님의 십자가가 담겨 있는 마음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준비된 그 지옥 같은 세상에서 온갖 것들이 아브라함을 들어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계속 쑤셔대는 거예요. 이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대로 우리는 본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밥 먹고 사는 것, 이 목숨유지가 가장 근본적인 것인 양 우리는 또 애굽으로 피하고 또 피해서 더 나은 생활을 하려고 듭니다. 그러나 말씀에 비춰볼 때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이고 구원의 활동인 것을 이제는 받아들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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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1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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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