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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61007b 울산강의-레위기 1장 : 네 속에 나자유게시판레위기

20161007b 울산강의-레위기 1장 : 네 속에 나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아까 그거는 이사야 37장 36절이었습니다. 십팔만 오천 명 그날 밤에 다 죽었어요. 하나님의 천사가 다 쳐버렸습니다. 효자니 불효자니 가리지 않고 어디 감히 네가 언약을 대들어 하면서 다 죽였습니다.

아래쪽 의미밖에 모르는데 시내 산 위쪽에서 모세가 제사법을 가지고 내려오는 이유가 뭐냐? 네 속에 내가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겠다는 겁니다. 너란 말은 이스라엘 전체를 단수로 간주해서 한 사람으로 봐서 한 아들로 간주해요. 출애굽기 4장의 말씀처럼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다.

그러면 인구가 얼마입니까? 남자만 사십만 명인데 한 아들 되는 방법이 뭐냐? 그건 간단해요. 언약을 줘서 사람들은 언약으로 서로 엮으면 되는 겁니다. 이게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묵주지요. 묵주의 구슬 하나하나가 하나의 줄로 꿰면 전체가 하나가 되죠.

언약으로 엮을 때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이미 엮였잖아요. 이웃이 누굽니까? 바로 네 옆에 있는 사람이 이웃이지. 가족 단위도 엮어버려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계명 없는 부모 공경은 소박한 자기 의미로 되돌아오는 거예요. 부모가 날 키웠는데 내가 양심이 있다면 부모를 잘 섬겨야지. 그렇게 섬겨봤자 예루살렘에서 십팔만 오천 명 다 죽었는데. 효도는 언약이 아닙니다. 양심이 이야기하는 것은 언약이 아니에요. 백날 해봐야 천사가 치면 다 죽어요.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효 아니냐? 그건 효가 아니고 언약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십계명에 있는 부모공경과 양심적으로 부모공경과의 차이가 뭐냐? 십계명 안에는 네 속에 내가 들어간다는 게 포함돼있어요.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앞서서 십계명이 먼저 우리에게 화살처럼 박히는 겁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게 되면 갑자기 나를 집어넣어요. 내 부모이기에 섬겨요. 평소에 이 세상을 내 중심으로 사는 그 본색을 발휘하면서 내 부모니까 내가 섬겨야지. 성경은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신명기에 그런 대목도 나오는데. 자식이 말을 안 듣거든 마을 이장에게 맡겨라. 야무지게 돌로 쳐 죽일 테니. 신명기 21장 19절.

왜냐하면 자식은 네 자식이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언약에 의해서 규정해놓은 자식이거든요. 따라서 그 자식에 대해서 사적인 부모 감정에서 두둔하거나 봐주지 말고 언약의 자식이니까 언약에 맡기면, 언약대로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남의 자식을 돌로 쳐 죽이라는 거예요.

특히 이런 대목이 또 나와요. 안식일에 나무한 사람은 돌로 쳐 죽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안식일에 나무한 사람이 평소에 보기만 해도 미운 사람이면 핑계대기 좋죠. 이게 어디서 법을 어겨, 라고 해서 다른 사람은 작은 돌 던지는데 커다란 돌로 한 방에 때려죽일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만약에 사랑하는 자기 아들이라면 돌로 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계명으로 엮여놨더라도 갑자기 거기서 자기 의미를 가미해버리죠. 여보게, 이는 내 아들이야. 차라리 나를 때리게. 그러면 다른 사람이 너도 죽으라고 같이 죽여 버립니다.

언약이라는 게 이처럼 무서워요. 안식일에 자기 자식이 못 지키면 차마 돌을 못 던지잖아요. 이걸 던져야 계명 지키는 거예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창세기 22장에 나와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잖아요. 이삭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죄 없는 이삭이지만 하나님의 계명은 내 위주의 의미를 일체 관련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애굽에서 홍해 건너올 때 이미 죽었던 자였기 때문에 죽었던 자가 다시 내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나오면, 옛날 애굽의 의미로 시내 산 위의 의미와 연결시키려는 것은 가짜 천국으로 진짜 천국 되게 해달라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불과한 거예요.

하나님의 진짜 천국은 바로 우리가 천국을 가려고 하는 우리마저도 죄로 만들어버려요. 모든 게 죄가 되기 때문에 그 죄 때문에 섭섭하게 여기지 마세요. 죄가 되게 한다는 자체 만해도 이미 언약적 관계로 맺어진 성도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오히려 고마워할 줄 알아야 돼요. 우리가 근원적으로 죄인이라고 누가 이야기하겠어요? 예수님 십자가 아니고는 아무도 그런 얘기 못해요. 교회 나오는 이유는, 우리가 왜 죄인인 것을 알기 위해서 나와야 돼요. 그게 구원받은 사람의 티를 내는 겁니다.

그런데 교회 나오면서 자기 잘난 척하는 것은 오락이고 교회놀이에요. 교회놀이는 소꿉놀이의 연장입니다. 어릴 때 꿈과 낭만, 사랑받기 원해서 하는 거예요. 천주교가 그런 놀이 잘하지요. 복장도 얘들 놀이 복장 있잖아요. 신부들 복장 있지요. 유니폼을 입고 거룩한 흉내를 낸다는 것은 아동들 학예회 때나 나올 법한 그런 짓을 하고 있어요. 어릴 때 훈장 달고 하지요. 그런 짓거리를 하는 거예요. 그걸 정신분석에서는 퇴행성정신분열증. 퇴행성 환자에요. 중들 머리 깎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머리 깎음으로써 뭔가 자기가 세속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남한테 보라고 티를 내는 것은 좋게 이야기해서 아동들 퇴행적 사고방식이죠.

그럼에도 머리 깎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에. 누가 머리 안 깎은 중한테 누가 시주합니까. 그게 자격증 비슷한 겁니다. 어떤 중이 목욕탕에서 머리 깎다가 나한테 걸려서 어디서 목욕탕에서 머리 깎느냐? 목욕탕이 이발소냐고 오지랖 넓게 했지요. 대구 은혜사 옆에 있는 목욕탕에서.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언약을 통해서 다수를 하나로 묶어놨어요. 사실은 처음부터 묶였어요. 창세기 2장에 보면, 부부가 이는 내 살 중에 살이고 뼈 중에 뼈이라 하면서 자기 아내를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이지만 한 몸이라고 돼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짝 지은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리라고 돼있어요. 이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이혼하는 게 죄라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은 아까 강의에도 나왔지만 이혼하라는 말씀이에요. 강의해도 무슨 소용 있어요. 다 잊어버리는데.

벌이 먼저 있고 저주가 먼저 있고 왜 너는 저주받아 마땅한가를 나중에 보여준다 했지요. 십자가 진 사람은 그 말씀을 내가 이혼 안 해도 이미 이혼 당한 상태인 것을 살아가면서 확인하라 이 말입니다. 덥다고 각방 쓰고, 이게 이혼이지 뭐. 삐져서 따로 밥 먹고, 그게 이혼이잖아요. 맨날 어딜 봐서 한 몸입니까? 하나는 축구 보겠다하고 하나는 드라마 보겠다는 게 무슨 한 몸이에요. 꿈도 다른데. 연애할 때는 이래요. “오빠, 내 꿈꿔.” “그래 니 꿈꿀게.” 무슨 꿈꾸는데? 남자는 다른 여자 만나는 꿈꾸는데.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신 모둔 명령과 규정들은 이미 위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온 거예요.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에요. 죄인을 부르러 왔단 말이죠. 자꾸 그걸 지키려한다면 십자가는 헛수고한 거예요. 갈라디아서 2장에 나오잖아요. 율법으로 의롭다 하는 자는 이미 십자가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그건 마귀 짓이에요.

교회 나와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내가 왜 죄인인지 알아서 거기서 감사와 기쁨밖에 안 나와요. 교회 오면서 투덜투덜합니다. 비는 왜 갑자기 와서 지장 있게 합니까. 교회 늦게 온 것도 차 막혀서 그랬습니다. 참 그렇게 궁시렁거릴 자격이 못 된다는 것, 번제 앞에서. 십자가가 번제거든요. 십자가는 한 개지만 다섯 개가 중첩돼있어요. 번제용 십자가, 소제용 십자가, 속죄제용 십자가, 속건제용 십자가, 화목제용 십자가.

화목제가 제사의 제일 마지막이니까 그걸 최종적으로 화목제물로 통합시킨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에 보면 율법 외에 한 의가 있으니 그건 바로 화목제물이다. 예수님은 화목제물. 그건 왜 그런가? 로마서 5장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됐는데 하나님께서 의로 구원했다는 거예요. 그걸 보고 저는 기쁘던데요. 지금 우리가 할 것은 하나님의 원수로 살면 돼요. 그건 하기 참 쉬워요. 내 중심으로 사는 게 원수니까. 모든 사고방식과 행동 자체가 나만 챙기고 내가 최고잖아요. 그 짓을 왜 못합니까? 그건 가만 놔둬도 잘해요.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똑같아요. 둘 다 하나님의 원수 짓하는데 신자의 특징은 뭐냐? 성령을 받아서 원수 짓인지 알면서 원수 짓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천국으로 가고 있는 사람이고, 지옥 가고 있는 사람은 원수 짓하면서 오만 가지 핑계를 다 대면서 어쩔 수 없었다. 사회가 날 버렸다든지, 남들 다 그러는데 나 혼자 병신 되기 싫어서 나도 폭탄주 먹었다든지. 폭탄주 맛있게 먹었다고 하면 될 걸 자꾸 핑계 대는 거예요.

감사와 기쁨은 어디서 오느냐 하면, 내가 변명할 필요 없음에서 와요. 변명은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스트레스는 암을 유발합니다. 이건 내 이론이지만. 아이큐가 낮은 사람은 암이 별로 없다는 그런 근거에 의해서. 한 잔 먹고 또 한 잔 먹고 사는 사람은. 그렇게 사는 사람은 암에 걸려 죽진 안아요. 암은 꼭 남편 바람피운 아내가 거기에 신경 쓴다고 암 걸리고. “하나님이여, 외도한 남자와 살아야 됩니까?” 하나님의 응답은 그겁니다. “내가 네 남편 외도케 했다, 어쩔래?” 네 속에 내가 들어간다.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들어간다.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내 행복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그것으로 인하여 이 언약과 우리가 양보 못할 내 행복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죠. 그 충돌의 증거가 바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식으로 약한 흠 없는 양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피투성이 된 것을 성막 안에서 제사 행위를 통해서 미리 보여주면서 남김없이 다 태운다고 해서 번제라 해요.

번제를 하면서 핵심적인 요소가 이겁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 불로 들어옵니다. 불과 죄인의 만남에서 피가 튀어야 돼요. 그 점을 신약을 통해서 찾아봅시다. 고린도후서 3장에 모세 이야기 나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수건을 덮어썼다. 이렇게 연기로 보여주는 건 간단하죠. 개업했을 때 받은 마크 박힌 수건 있잖아요. 목사들은 울산노회 20회 기념수건, 아줌마들 계모임에서 받은 수건을 덮어썼다고 칩시다. 수건을 덮어썼다는 것은 뭘 의미하느냐 하면, 시내 산 위와 아래와 그렇게 순하게 만날 수 없는 처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겁니다.

모세가 수건을 덮어쓴 것은, 밑에 있는 백성들이 시내 산 위로 올라갈 때 자기들과 똑같은 존재로 봤어요. 그런데 내려올 때는 광채가 너무 눈부셔서 같이 대면해서 이야기 들을 수 없어요. 산 밑에 있는 사람들은 예상하기를 모세가 하나님 만났으니까 무슨 낌새라고 알아차려서 우리가 하나님 잘 섬기는 어떤 아이디어라도 얻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게 생각했던 모세가 말은커녕 정면으로 대하기도 부담이 될 정도로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감당이 안 되면 모세 잘못이에요, 본인에게 문제 있는 거예요? 본인들에게 문제 있지요.

성경 자체가 그런 거예요. 읽기는 쉽지만 성경 한 말씀, 한 말씀이 사실은 우리 자신이 감당 안 될 말씀을 주신 거예요. 그 이유가 어디 있느냐? 우리 자신이 생각보다 과도한 죄인이에요. 너무 이기주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글로 돼있으니까 편하게 읽고 오늘도 두 장 뗐다. 하나님이 복 주시겠지. 주일이니까 다섯 장 더 읽으면 일 년이면 한 권 떼겠지. 다 떼면 뭐 할 건데? 교회에서 수건 하나 줍니까? 하늘나라에선 아무것도 안 주는데?

성경은 보면 볼수록 진도 나가기가 더 힘이 돼요. 숨어있는 걸 끄집어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뻑뻑해요. 내용은 아는데 갈수록 뻑뻑해요. 톰슨성경 보면 요약 나오잖아요. 그것 읽으면 그냥 넘어가죠. 그러나 그 속에서 십자가를 끄집어내면 할 말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 레위기 1장 7절 보겠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고린도후서 3장에서 모세가 수건을 덮어썼는데 그건 감당이 되질 않더라. 어쨌든 수건 덮어썼더라도 지시할 건 지시했어요. 오늘 본문은 번제입니다. 번제는 반드시 불에 다 태우는 거예요. 불이 있어야 돼요. 불은 어디서 내려왔는가? 불은 하나님이 지정한 불이어야 됩니다.

시내 산이 있는데 여기서 보면 높다란 산이죠. 그런데 군홧발로 밟아봅시다. 밟아놓고 그걸 위에서 보면 높다란 산을 눌렀으니까 이렇게 되겠지요. 완전히 뭉갰으니까. 이게 바로 성막입니다. 위로 솟아있는 것을 뭉개버린 거예요. 수직으로 왔을 때는 불붙은 산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시내 산은 화산이었다. 진동이 있었고 진도 5.9 있었고 나무, 돌이 굴러 떨어지고 지진이 일어나서 짐승도 못 올라갔다.

어쨌든 간에 불붙은 산이란 말이죠. 신명기 18장 16절에 보면, 백성들이 불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까이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이여, 불 가운데는 말씀하지 마옵소서, 라고 하거든요. 그렇다면 모세가 시내 산에서 왔다는 말은 이야기는 하면서도 두 가지 해야 돼요. 하나님 만나면서도 백성들도 가까이 할 수 있는 어떤 방안이 없겠습니까? 그게 모세가 수건을 얼굴에 덮어쓴 것, 그게 하나의 방법이 되겠습니다.

그 방법을 하나님께서는 성막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두 개의 요건을 충족시켜놓은 거예요. 그게 아까 네 속에 내가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건 구약이고 신약에서는 주께서 어떻게 들어오십니까?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 함이 있다. 그때는 모세가 수건을 썼지만 지금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가 되어도 아무 구애 받지 않고 얼마든지 하나님과 함께 동행이 성사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주의 영이 바로 십자가의 영이에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가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이기적인 어떤 죄도 주님한테는 늘 용납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 감사하기 위해서는 또 어떤 이기적인 죄를 범했다는 걸 알기 위해서 우리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팔 벌리고 교회 문을 열어야 돼요. 교회 문을 활짝 열고, “자, 여기 죄인 왔습니다. 목사님, 죄인 왔어요.” 그러면 다른 새순교회 죄인들이, “조용하세요. 너만 죄인이야 나도 죄인이다.”

그렇게 앉아서 목사님 설교하시면 이래서 우리가 또 십자가를 비켜갔구나. 그걸 로마서에서는 자기 행위를 죄라고 해요. 행위의 반대말이 믿음이죠. 믿음에서 믿음으로 모든 행위를 비껴지나갑니다. 그러면 행위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인가? 우리가 행위를 들춰내면서 믿음으로 비껴가기 때문에 나중에 믿음으로 바뀌고 이게 하나님의 의가 돼요.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우리 쪽에서 보면 죄가 되는데 주님 쪽에선 하나님의 의가 됩니다. 희한하게 그렇게 돼요.

이 공식을 이렇게 설명하면 돼요. 제가 대구강의에서 했는데 공식은 간단해요. 우리가 가만있으면 주께서 죄를 집어넣어요. 위에서 십자가로 언약이 완성이 되면 하나님의 의가 나오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작동하도록 장치를 집어넣어서 그런 겁니다.

레위기로 다시 돌아와서 우선 물어야 될 것은,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제사장들이나 사람들이 제사행위를 했잖아요. 왜 제사했는데 이스라엘이 망했습니까? 열심히 시키는 대로 했는데. ①규칙대로 안 했다. ②제사하면서 딴 생각했다. ③그냥 제사하는 죄를 범했다. 몇 번입니까? 삼번이 해당돼요. 제사하라는 것은 제사를 함으로써 숨겨놓았던 네가 미처 모르는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 제사를 한 거예요.

예를 들어서 양을 몰고 왔다고 했지요. 그래서 양을 잡아서 불태울 때 그들은 뭘 느끼겠습니까? 내 죄가 공중에 연기가 되어 날아가는구나. 그럼 나는 의인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게 바로 그 제사를 통해서 자기가 의롭게 행했다는 수작을 벌인 거예요. 이것은 기본적으로 개인구원이 계속 작용하고 있는 거예요. 나만 살면 된다는 것, 나만 천당 가면 된다는 것, 나만 복 받으면 된다는 개인적인 게 계속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아까 이야기한 것은 오십 만인가 사십만의 사람들이 전부 다 묵주로 언약으로 연결돼있지요. 그러면 나만 용서 받아 구원되었으면, 그 다음에 이웃사랑을 할 필요가 있겠어요? 필요 없지요. 이미 서울대학 합격했는데 정통종합영어를 왜 봅니까? 수학정석 볼 필요 없잖아요. 세상에 대학합격 해놓고 ebs 수능참고서 보는 사람은 나중에 강남에 학원가 강사 되려는 사람 외에는 없어요. 구원받았는데 성경책 왜 봅니까? 그래서 요새 성경 안 보는가?

구원이란 개념이 나의 구원을 제치고 구원이 주어지는 겁니다. 나의 구원을 일체 거절한 그 빈자리에 구원이 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단체 구원이 되고 집단구원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웃사랑을 안 해도 이미 이웃사랑이 확정된 상태가 돼버려요. 형제를 위해서 네 목숨을 바치라는 그 말씀은 우리의 죄를 통해서 성령께서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되게 만들어요.

극단적인 예지만 요거트 먹을 때 남한테 빼앗길까 몰래 먹는 것도 이웃을 위해서 목숨 바치는 행위로 간주되도록 주께서 조치하십니다. 어떻게? 정말 나도 참 못 되기는 못 됐다. 세상에 이런 못 된 죄인이 어디 있어. 그게 옆 사람이 보면서 요거트 먹다가 온유가 나오고 화평이 나오고 형제우애가 나오고. 조금 전까지 누가 빼앗아 먹을까봐 그렇게 화내더니만 돌아서서는 갑자기 얼굴이 확 피는 게 적대적인 의사가 전혀 없이 너한테 이웃사랑이 뿜어져 나온다고 할 때 그건 내가 십자가 앞에서 죄인인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기 때문에 그런 거야. 성령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야. 이웃사랑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죄를 지어주셔야 돼요. 가만있어도 죄 짓지만. 죄를 짓게 되면 그 죄가 십자가를 경유하면서 완벽한 이웃사랑의 완전체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럴 때 제가 안 했어요. 제가 절대로 그럴 리 없습니다, 라고 할 때 그건 바로 이미 시작된 천국 생활입니다. 면류관을 반납한 행위가 되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조건이 되려면 그 사람에게 성령이 임해야 돼요.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육으로 났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해석은 누가 영을 받았는지 누가 육 그대로 있는지 구분하는 설교가 돼야 돼요. 괜히 육적인 사람한테 열심히 하시면 형제 사랑할 수 있다고 해서 돈만 빼먹고 교회 봉사하게 만들 때 그건 구원받지 못할 사람을 천국 간다고 사기 친 것밖에 안 돼요.

제가 또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분은 성령 받은 사람만 알아듣는다면 나중에 교회에 달랑 두 명밖에 안 남으면 어떻게 합니까? 두 명 남아도 전체 이스라엘 숫자는 조금도 감소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됐잖아요. 다른 교회에 있는 성령 받은 사람이나 나나 주님 보기에는 한 몸이잖아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되면 됐지 눈에 안 보인다고 갑자기 숫자가 감소하고 그런 법은 없어요. 한 마디로 말해서 믿음이 없어요.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한다고 번제가 풀린 게 아니에요. 다시 레위기 봅시다. 1장에서 문제는 이겁니다. 큰문제인데 양이나 소를 끌고 오너라. 머리에다 안수하면 속죄가 된다는 데 왜 머리에 안수하면 속죄가 되느냐 이 말이죠. 제가 묻는 게 뭐냐 하면, 다리는 아니고 머리냐는 게 아니고 안수만 했을 뿐인데 어떻게 양을 가져온 그 인간의 죄가 양한테 인수인계가 되느냐 말이죠. 그 메커니즘, 과정이 도대체 어떻게 성립하는지 그게 궁금하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은 안 궁금해요?

모세가 시내 산 근처에 갔을 때 떨기나무가 있었거든요. 모세가 스스로 자기한테 묻는 게 있었어요. 어떻게 불이 붙었는데 떨기나무가 타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 말은 모세 말에 의하면 불이 붙었다는 것은 뭔가 소모가 되는 경우에만 불이 붙는다고 자기는 익히 알고 있어요. 그게 인간 세계에선 진리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타났는데 불이 붙었는데 떨기나무는 멀쩡해요. 그렇다면 이건 이걸 이야기해요. 단절. 인간이 갖고 있던 생각에서 주님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고 뭔가 끊어짐이 있다는 겁니다. 그 끊어짐이 굉장히 중요해요. 죄는 내가 지었는데 어떻게 흠 없는 양에게 죄가 날아갔는지 이동한다는 게 억수로 신기한 일이잖아요. 주님께서 네 죄는 이미 이쪽으로 옮겨졌다고 이야기했단 말이죠. 예수 피를 믿는 사람은 이미 용서받았다. 이 소리는 교회마다 안 하는 교회가 없지요. 다 그런 소리하지요. 그럼 어떻게?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인간이 모르는 방식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범죄 하고 난 뒤에 생명나무 못 따먹고 쫓겨났지요. 쫓겨나고 난 뒤에 네가 잘 알아서 뒷문 열어놨어. 착하게 살면 뒤로 들어 와. 이렇게 했습니까, 행여나 들어올까 해서 야경 돌듯이 천사들이 불 칼 들고 설치면서 순찰 돌았습니까? 순찰 돌았잖아요. 그건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 의미는 우리 식으로는 도저히 생명나무 있는 곳으로 천국으로 못 간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돼요. 그 말은 그것을 분명히 한다는 자체가, 단절된 자체가 주님의 사랑 속에 주님이 하는 일 속에 이미 포함이 됐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이제부터 시간 끝날 때까지 풀어봅시다. 이게 수학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이에요. 부분집합이 전체집합보다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10*10 된 사각형은 유한이죠. 한계가 있지요. 가위로 잘라봅시다. 자른 걸 또 잘라봅시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유한 속에 무한이 들어가죠. 이걸 인간의 능력으론 풀어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버린 현상들이 의외로 인간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아요.

영양소 있는 음식 먹으면서도 바싹 야위어간다. 분명히 그건 상사병입니다. 심지어 상사병이 어느 정도로 심하냐 하면,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져요. 그리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고 분명히 살이 쪄야 되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욕했다는 것이 머릿속에 들어가면 밥을 먹고 뭘 해도 점점 야위어갑니다. 이건 과학적으로 어떻게 규명이 될 수 없어요.

또 이런 게 있어요. 소크라테스는 그게 뭐냐고 질문했잖아요. 왜 자꾸 남한테 질문을 해야 되는지 소크라테스는 몰랐어요.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의 진리를 남들이 모르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걸 알기 위해서 질문을 해대는 본성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는 알 길이 없어요. 세상 하나하나 질문해보면 모든 것이 결국 해답이 없어요.

목성이 있잖아요. 목성 있으면 가만 놔두면 되지 목성탐사선 주노는 왜 띄웁니까? 달은 왜 가고 싶어 하는 거예요? 엄홍길이란 사람이 세계에서 높은 산 15개 올라갔거든요. 산이 왜 가느냐고 물으니까 산이 거기 있으니까 간다는 거예요. 산이 있어도 안 가면 되지 왜 가는데? 맹목적, 아무 이유가 없어요. 사람은 내가 왜 이렇게 생겼는지 왜 너는 남자고 나는 여자인지 이유가 없어요. 그냥 여자로 태어났어요.

부모가 왜 자식을 사랑하느냐? 이유가 뭡니까? 네가 부모 되면 안다고 노래 가사에도 나와 있지만 부모 되도 모릅니다. 왜 내 자식은 예쁜데 남의 자식은 안 예쁜지. 제 자식이 분명히 셋 중에서 제일 못생겼는데 외손녀는 최고로 본다고. 그게 말이 돼요. 조 집사님한테도 밀렸지 김을수 집사님 외손녀한테도 밀렸지 분명히 그건 맞는데 지 외손자는 예쁘다고 하는 건 뭐예요? 그냥 본능이다

이것은 뭐냐 하면 부분이 전체보다 커요. 이유가 뭐냐 하면,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자기 쪽에서 위로 가요. 자기보다 크고 넓은 걸 생각해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미처 모르는 그 속으로 계속 파고 들어옵니다. 여기서 항상 단절이 일어나요. 부분이 전체를 알지 못하는 그런 방식을 계속 사용합니다. 왜 그러느냐? 천국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네가 죄 짓는 현장이 하나님께선 천국을 만드는 작업 때문에 방향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벌이고 싶은 죄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만들어내요. 죄 없는 곳에는 의가 없습니다. 지옥이 없는 곳에는 천국이 없어요.

아브라함 몸에서 이스마엘 나왔지요. 이스마엘은 저주받게 돼있지요. 저주받게 돼있는 자식을 아브라함이 낳았잖아요. 아브라함에게 이미 저주의 요소가 장착돼있지요. 각자 모든 것 속에 이미 하나님께서 저주밖에 없는 우리 속에서 주님이 찾아오니까 저주만 분명히 있어야 될 자리에서 천국을 실타래처럼 뽑아내는 불가능한 일을 주께서 하신 거예요. 그래서 네 속에 내가 들어가는 거예요. 어떻게 들어가느냐? 죄를 유발시키면서 들어와요. 갈수록 죄를 더 깊이 있고 죄를 더 크게 만들면서 판을 키웁니다.

성경구절 두 개만 이야기할게요.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진다고 이야기했고, 전도서 12장에 보면, 여러분 다 아시다시피 인간의 늙어가는 모습을 그림 그리듯이 표현해놨지요. 귀도 안 들리고 맷돌도 안 좋다고 하지요. 전도서 처음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도다 할 때 우리가 헛되지요. 말이 어려워졌는데 어떤 분이 우리교회에 중요한 질문을 했어요.

주님께서 영적으로 우리를 구원한 건 좋은데 왜 이 세상에는 악인들이 설쳐서 살기 불편하게 만듭니까. 결국 주님이 하신 십자가는 절반의 성공밖에 안 되잖아요. ‘절반’이란 질문을 한 것을 우리교회에 보면 있지요. 제가 절반이라 한 것을 시비조로 나왔지요. 절반이라고 평가를 누가합니까? 이 세상은 영적으로서 1/2이고 나머지 악마가 설치니까 1/2이고 합쳐야 온전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 재림 때 된다고 보는 관찰의 자리를 따로 나가서 자기 자리에서 보는 거예요.

제가 답변하기를 이렇게 따라 나간 이것이 주의 뜻이냔 말이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제3의 영역을 우리가 나의 자리로 잡을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까? 우리를 어디에 집어넣어야 돼요? 이 안에다 집어넣어야 되지요. 아직도 엉망 속에 내가 엉망한데 일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죄 짓고 있다는 것을 성령 받은 사람은 1/2이 아니고 이게 바로 구원이구나. 죄 짓고 있는 이 모습이 바로 구원받았기에 인식되고 느껴지는 결과물이 이거구나. “주여, 죄인 중에 내가 괴수입니다.” 성령 안 받으면 그런 고백 나올 수 없어요. 성령 안 받으면 산 위는 의미 없어요. 지상에 의미가 있지.

지상의 의미는 뭐라고 했습니까? 자기가 역량으로 취직해서 돈 벌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가정 꾸며서 행복하게 살면서 뭐라고 핑계 댄다? 주의 은혜입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수해나면 어떻게 합니까? 주여, 우리 서점 어떻게 할 건데? 살아보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우리 행복을 왜 빼앗아 갑니까? 분명히 교회 나와서 땡깡 부릴 거란 말이죠. 왜 본인을 마치 죄인 아닌 것처럼 자기한테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따로 챙기느냐 말이죠. 그래서 십자가가 죄 속에 들어옴으로써 불러내요. 너, 밖에 나가 있지 말고 들어와. 그리고 십자기를 그 안에 박아버리죠.

그래서 제가 답변하기를 성도는 주님을 배신해야 됩니다. 그분이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베드로처럼 배신해야 돼요. 왜?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이고 최선의 삶은 그겁니다. 사랑하신 예수님을 늘 배신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진짜 이것으로 끝내고 싶어요.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주님을 배신해야 되고, 그냥 배신만 한다면 지옥 가지만 배신했음을 우리가 스스로 눈치 채시면 거기서 우리는 고마움과 감사와 기쁨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주님이여, 또 내 가족, 내 새끼, 나밖에 몰랐습니다. 타고난 걸 어쩌란 말입니까? 주님이 이야기합니다. 누가 뭐랬어. 그대로 살라 했잖아. 고칠 생각이야? 고칠 생각하지 마. 너는 평생 가도록 너는 그렇게 해서 죄라는 재료는 나한테 갖다 내.

그러면 이미 확정된 의미 속에 하나의 부분이 되는 거예요.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전체 속에 우리는 부분으로써 배신하는 열두 제자들처럼 우리는 십자가를 증거하는 기능인으로 주님의 증인 노릇하면서 살아왔다고 나중에 돌아보면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때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제가 언제 주를 위해서 목마를 때 마실 걸 주었습니까? 저는 저 목마를 때만 포카리스웨트 마셨고, 모든 걸 나를 위해서 살았는데 언제 주를 위해서 살았습니까, 라고 질문할 대상이 있다는 게 우리는 행복한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정말 아무리 봐도 뭘 하나 지킨 게 없습니다.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우리에게 이미 합격통지서 보내주셨사오니 십자가로 용서받았다는 합격통지서를 귀한 보배로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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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1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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