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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56강-창 11장 27-32절(아브라함혈통)161005-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창세기

56강-창 11장 27-32절(아브라함혈통)161005-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11장 27-32절입니다. 구약성경 13페이지입니다. 창 11:27-32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 오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사람의 족보에 관해서 나와 있습니다. 족보는 혈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혈통이라면 세상에 그 많은 혈통들이 있는데 유독 왜 성경에서는 이 데라의 혈통을 기록해 놓았을까? 그것은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께서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라는 것, 그것이 이 지상에서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똑바로 보라는 겁니다. 그것을 찾아보라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지상에서 실제로 현실로 영글어가고 있는데 그것은 두 종류의 성질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축복이고 다른 하나는 저주이고. 그런데, 축복이 있는 고세 저주가 있고 저주가 있는 곳에 축복이 있는데, 정확하게 말해서 저주밖에 없어요. 저주밖에 없는데 그 저주를 깨면서 튀어나오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저주만 보이고 축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주밖에 없는 저주의 힘, 저주의 권세, 저주의 덮개,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에서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 특이한 현상을 통해서 축복이 되어버리면, 그 특이한 현상을 방해하고, 특이한 현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 주변의 것들은 자동적으로 그동안 저주아래 놓여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라 하는 것은 혈통 속에 묻혀서 우리에게 전달이 됩니다. 본문 27절에 보면,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하면서 아브라함이 등장하지요. 아브라함은 창세기 20장 7절에 보면 아브라함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선지자라.”라고 되어 있어요. 선지자, 선지자라 하는 것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혈통이 수평적으로 내려간다면 선지자가 등장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개입이라면 그것은 수직으로 그냥 혈통 속에 하나님이 개입해 버립니다. 그러면 혈통의 수평적인 노선은 여기서 끊어지게 됩니다. 혈통이 파괴되는 거지요. 혈통이 파괴되면서 새로운 특이성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혈통 안에서 어떤 면모를 드러내는가? 하나님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축복의 면면이 드러난다면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하나님의 일을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하나님의 일을 찾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 쪽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 쪽에서 찾아와야 되지요. 하나님 쪽에서 찾아오실 때 축복 주시려고 찾아오신다, 라고 하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고 맞는 말이기는 한데, 축복 주시려고 찾아오시는 것은 맞지만 축복과 더불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무엇이 저주인가를 동시에 우리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혈통에 매여서, 하나님의 개입을 접촉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저주 안에 영원히 계속해서 놓여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축복이 이미 하나님이 개입, 선지자의 등장, 다른 말로 해서 축복의 등장한 입장이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혈통이라는 것이 무용지물이고 우왕좌왕 하면서 한평생 보낸 셈이 되는 겁니다.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을 붙들고 살아온 거예요. 혈통이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혈통이 무엇으로 형성되어 있는가? 육신에서 육신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자식이 자식을 낳고 또 그 자식이 자식을 낳으면 전체가 혈통의 사슬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혈통의 본질은 뭐냐? 육신에 있다. 이 말을 다시 하면, 육신을 위해서, 자기생존을 위해서 사는 것, 그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없고, 허송세월, 아무 의미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그렇게 결론지을 수가 있습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라는 요한복음 3장 6절에 나오는 말씀이 이미 창세기에서 시작이 된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육신에 서 있는 사람을 누구라고 보는가? 데라가 나오지요. 27절에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해서 이 데라라는 사람이 어떻게 육신을 대표할 수 있는가? 그것은 여호수아 24장 2절에 보면 그 데라에 대해서 이렇게 나와 있어요.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다른 신을 섬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섬겼으나”라고 되어 있거든요. 혈통적 아버지는 다른 신을 섬겼으나 그 자식인 아브라함의 후손인 너희는 다른 신이 아닌 여호와를 섬기게 되었으니 너는 여호와를 섬기는 특이성을 보여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혈통적으로 봐서, 육신적으로 봐서 그 아버지의 아들, 여전히 혈통 안에 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구분되지 않지요. 아브라함이 누구를 닮았겠어요? 아버지 데라를 닮았지요. 그러면 그 인간의 육신을 아무리 쪼개고 분해해도 거기서 어떤 특별한 점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선지자다? 아브라함이 선지자라는 것은 아브라함의 개인적인 노력이라든지, 지능(IQ)이라든지, 감성(EQ)이라든지, 착했다, 양심 고왔다, 이런 것은 찾을 수가 없어요. 성실했다, 이런 것은 안 됩니다. 정답은 그냥 하나님의 개입이다. 덮쳤다. 하나님이 올라탔다. 아브라함은 그냥 말인데 그 말위에, 혹은 나귀인데 그 나귀위에 예수 그리스도가 올라타서 아브라함을 채찍질 하면서 예수님의 본성인 고향을 향하여, 천국을 향하여 아브라함을 데려가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그러니까 등허리에 귀신하나 붙은 거예요. 성경이라는 것이 설교의 시작을 특이성을 가지고 할 수밖에 없어요. 어떤 불신자들이 성경을 본다면, 아브라함의 부모는 데라다, 그리고 자식은 아브라함이다, 어쩌라고? 너만 부모 있나? 나도 부모 있고 너만 자식 있나? 나도 자식 있다. 끝. 그냥 혈통에서 혈통으로 머물고 마는 겁니다. 이 점을 쉽게 말씀드리면, 어떤 청춘남녀가 연애한다 합시다. 여자가 벌써 남자를 단속하지요. 헤어지면서 “오늘 밤에 내 꿈 꿔야 해.” 당부를 하지요. 남자는 그것을 진정성 있게 보지 않고 그저 애교로 여기고 “그래. 네 꿈꿀게.” 그리고 헤어졌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되어 전화가 왔어요. 여자가 남자에게 “오빠! 어제 왜 내 꿈에 오빠가 다른 여자와 만나는데? 내 꿈속에서 오빠가 행실을 똑바로 해야지 왜 그런 수상한 짓을 하는데?”라고 전화를 하게 되면 남자가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미쳤나? 꿈은 꿈일 뿐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하면서 굉장히 억울해 하겠지요.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오늘날 성경이 그런 대우를 받습니다. “오빠! 왜 베드로 후서 3장에 보니까 전에는 물로 심판받았지만 이제는 불로 심판받는데 왜 지난번에 교회 안 나갔어?” 그렇게 하면 “바빠서 안 나갔어. 불로써 심판받는다는 그런 이야기는 성경 이야기지. 정신 차려. 그것은 성경안의 이야기고 현실이 아니야.” 이런 조로, 심지어 교회조차 분위기가 그런 조로 돌아갑니다. 성경은 마치 꿈속에 있는 허황된 망상의 일부로 아예 밀쳐놓아 버려요. 갈수록 더 그래요. 가락공부 하는데 어떤 분이 농담 중에 ‘천고마미’라 해요. 가을이 되어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니 자기도 살이 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 시대가 천고마비가 아니고 ‘천국마비’입니다.” 천국이 마비되었어요. 제가 설교하고 강의하고 복음전하는 모든 이유가 뭐냐 하면, 지금 천국에 갈거냐, 말거냐를 묻는 거예요. 지금 이 땅에서 천국 삶을 살지 아니하면 죽을 때 되어서 천당 가겠다고 해도 그것은 주께서 그런 인간의 선택을 거부합니다. 천국 갈사람 같으면 벌써 주께서 그 전부터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천국의 삶을 보여주게 되어 있어요. 제가 믿는 것은 그겁니다. 제가 성령세례, 성령이 여러분에게 오십니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은, 성령의 세례를 받았으면,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7) 다시 말해서 뭔가 이 땅에서 붕 떠서, 아직 안 죽었어도 천국생활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는 삶을 사는 사람을 저는 보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그 삶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현실은 허구고 오히려 성경속의 세계가 진정성이 있는 참된 현실이라고 인정하면서 성경속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정말 있는지를 찾는 식으로 제가 강의하고 설교합니다. 제가 항상 설교하거나 강의할 때 마다 어떤 기대감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천국 삶을 미리 당겨서 하시는 분 혹시 계십니까, 하는 측면에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세상 삶이 주가 되고 천국 삶이라 하는 것은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이고, 그런 것 같아요. 식당에 가서 육개장을 시켜서 밥과 국을 함께 먹는데 반찬이 서너 가지 나오겠지요. 거기에는 콩자반도 나오고. 예를 들어서 “아주머니! 여기 콩자반이 떨어졌는데 좀 더 주실 수 있습니까?” “아이고, 마침 콩자반이 떨어졌네요.” “그래요? 그러면 이대로 먹고 가지요.” 그럴 때 천국의 삶은, 내가 보기에는 콩자반 같은 위치밖에 안돼요. 국밥에 해당 안 되고,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시시한 주변의 반찬종료, 찌개다시종류로 밖에는 취급을 못 받아요. 주는 뭐냐 하면, 자기생존에 대한 생계가 주가 되고, 교회 나오는 것은 와도 되고 안와도 그만인, 아무것도 아닌, 변두리에 있는 친목, 혹은 취미생활밖에는 안돼요. 그래놓고는 천국 간다고 우기니 나는 그 말을 도저히 못 믿겠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고 성령이 개입했다는 그런 사람 같으면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아요. 주객이 바뀌어요. 중심과 변두리가 바뀌게 되어 있어요. 직장생활 하면서도 주님이 선지자노릇을 하면서 직장생활 하게 되고, 어디를 가도 ‘참,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것은 별 의미 없어. 육신의 생존을 위해서, 혈통을 위해서, 자식이나 가족을 위해서 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하나님이 내게 개입해서, 내 등허리에 올라타서 부리듯이, 하나님이 이미 이 땅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삶, 그게 바로 이 시대의 선지자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선지자라고 베드로전서 2장에 나오잖아요. 하나님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데라는 어떻게 되는가? 데라는 205세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데라의 운명은 시간적으로는 205세, 장소는 하란이 끝이었습니다. 하란에서 가나안땅으로 가는 그 몫은 같은 데라의 혈통이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현재의 이라크에서 터기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내려와요. 터키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내려오는 그 코스가 남들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어떤 이주민이 자기 살길 찾아서 남쪽으로 내려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천국으로 가는 하나님의 노선입니다. 그 노선에 천국에서 유일하게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의가 거기서 발생됩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이 뭡니까? 아브라함의 축복은 하나님의 의의 발생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존재는 뭡니까? 아브라함의 존재는 하나님의 의가 이 지상적 모습에서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을 보아라. 아브라함에게 일어난 모든 변화가 죄인이 하나님의 의인이 되는 그 모습을 일찌감치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아브라함은 어떤 식으로 보여주는가?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올 때 그 가나안땅으로 왔다는 그것이, 거기로 왔다는 그것도 아니고, 거기에 있었다, 그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뭐냐? 거기에 새로 생겼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지상의 혈통중심의 이 세상과 뭔가 단절되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 단절이 없으면 죄인이 의인이 될 수가 없고 죄인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정리하면, 하나님의개입이라 하는 것은 단절에 있어요. 혈통을 끊어버리는 겁니다. 그것을 아브라함이 보여주게 되는 거예요. 셈에게 축복했다고 창세기 9장에서 이야기했고, 그 셈에서 아브라함까지 오는데 약 10대의 혈통의 연속적인 계열이 있었고, 그 다음에 그 마지막은 데라에서 끝입니다. 데라는 다른 신을 섬겼다고 이야기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이 말은, 다른 신을 섬기는데서 여호와를 섬기는 새로운 인물이 과연 나올 수가 있는가? 없어요. 다른 신을 섬겼으면 그냥 다른 신을 섬기는 겁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력으로, 자신의 결심으로 여호와를 섬길 수가 없는 이유가, 여호와가 없어요. 다른 신은 있어요. 신은 있는데 참된 신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제가 가락강의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지요. 천국이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간이 들어갈 수 있는 천국을 그동안 이 세상에서 가르쳐왔고 유포시켜 왔어요. 그거 가짜입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천국은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이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은 백프로 가짜입니다. 따라서 진짜 하나님은 인간에게는 없어요. 그 인간이 죄인으로 변화되게 되면 그 때 생깁니다. 나를 죄인 되게 만드시는 분……, 옛날에는 그냥 남하고 똑같은 인간, 나도 인간이고 너도 인간이야, 그렇게 인간으로 살 때 알던 그 신이고 진짜 신은 없어요. 그러나 내가 죄인으로 바뀌면서 없었던 신이 등장하는 겁니다. 제가 지난주일 낮에 그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세상에 대해서 헬라철학은 경이로움으로 본다. 인도철학, 불교는 고통으로 봤다. 중국철학은 난세로 봤다. 그리고 철학가들은 존재로 봤다. 과학에서는 하나의 운동으로 봤다. 그런데 종교에서는 뭐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봤다. 그런데 제가 마지막에 이야기했는데, 복음이 뭐냐? 복음은 죄와 의로 본다고 했습니다. 이게 뭐냐? 복음 외에 앞에 것은 전부 다, 나는 멀쩡하게 안 건드려요. 본인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눈앞에 펼쳐질 때 이세상은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철학과 종교와 모든 과학과 학문과 세상의 모든 문화와 문명은, 일단 나는 멀쩡하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교회를 왜 안 나옵니까? 자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왜 사람들이 성경을 하나의 만화보다 덜 취급하고, 그것은 보나 안보나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하는 이유가 왜 입니까? 사람이 자기가 꾼 끔 때문에 고민한다는 그것은 바보고 정신병자처럼 느껴지겠지요. 오늘날 성경의 세계를 곧이곧대로 진짜 세계로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바보병신취급을 당하고, 그런 취급을 자주 받게 되면 본인이 나중에 스스로 ‘내가 뭐가 모자라서 성경을 봐야 해? 성경은 보든 안보든 내 생계에 아무 지장이 없고 오히려 성경 본다는 것이 생계에 오히려 지장이 돼. 이런 것은 귀찮고 내 출세와 성공에 장애물이 돼.’ 이런 식으로 그냥 차버려요. 안 봐요. 성경 말씀 듣지도 않고 설교 듣지도 않아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누가 뭐래도 나는 정상이라는 거예요. 뭣이 중헌디? 자기가 제일 중하다는 거예요. 자기 자신이 제일 중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문제 삼을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교회 나와서 간증을 하는 것을 들어보게 되면, 정말 하나님이 무서운지, 아니면 자기가 깨어지는 것이 무서운지 분간이 안돼요. 하나님 자체가 무섭고 두려운 분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내 것이 깨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서우니까 섬겨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럴 때는 정말 속으로 가슴을 치지요.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닌데!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섬겨야 된다는 그것은 신앙이 아닌데! 정말 하나님을 만나면 입을 그냥 다물고 고개도 못 쳐들어요. 욥처럼 재를 뒤집어쓰고 죄 속에 숨어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시커먼 죄 속에 숨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욥이 그랬던 것처럼. 그 앞에서 내 인생이 꼬였느니, 잘못 풀렸느니, 꽈배기가 따로 없다느니, 자식이 애를 먹이고,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없어요. 직장이 파업을 하니, 교인들 다 떨어져나가서 마누라하고 둘 밖에 없다느니, 내 몸이 아파서 다 죽게 되었다느니, 암 말기가 되었다느니, 그동안 산 것도 고마운 줄 알아라, 그렇게 돼요.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 몸 아픈 것, 사업 망한 것, 부도 난 것, 지지난 것, 태풍 부는 것, 자기 차가 물에 잠긴 것, 떠내려 간 것,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 앞에 기도제목이 될 수가 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을 평소에 우습게 봤으면.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목사님, 그 말이 맞기는 한 것 같은데요. 그래가지고 우리나라 교회가 성도 몇 명 되겠습니까?” 없으면 어때요? 왜 꼭 있어야 해요? 우리나라 교인이 왜 두 명 이상 되어야 해요? 동행자가 왜 있어야 되는데요? 너 혼자 하나님이 무섭다, 하고 고개 처박고 있으면 되지 왜 곁눈질 하면서 고개 처박고 있는 사람 또 있는가, 그 숫자를 왜 세야 되는데? 너만 원산폭격으로 고개 처박고 있으면 되잖아요.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히브리서 13장에 나오는 이야기 아닙니까? 산 자체가, 시내산 자체가 벌벌 떨었다니까요, 하나님 앞에서요. 짐승마저 벌벌 떨었는데요. 교회가 많은 것이 문제에요. 전부 다 가짜들만 대한예수교장로회를 갖다 붙여가지고 가짜들만 있으니 교회가 원래 그런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교회에서 나중에는 남는 것이 뭐냐? 결국 시작도 끝도 부동산에서 시작해서 부동산으로 가는 거예요. 부동산 땅 값, 지분 누가 갖는가? 성경에 보게 되면, 성경은 꿈이 아니고 진실입니다. 제가 가락교회에서 그런 강의 했거든요. 사람들은 이 성경을 굉장히 무시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무시하는 마귀, 예수님 공생애 때 제일먼저 나타난 자가 마귀였어요. 바보 등신 같은 인간들 다 빼버리고 대장과 대장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과 직접 만나요. 거기서 사탄이 예수님에게 쏴댄 무기가 뭔데요? “자칭 하나님 아들이여! 당신도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동안 마귀가 어떤 식으로 인간을 지배했는지가 나오지요. 이유 불문하고 사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고 예수고, 일단 살아남아야 된다는 겁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욕망을 그런 식으로 심었어요. 여러분! 죽고자 하는 사람한테는 마귀가 들끓을 수가 없고요,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마귀가 떠나지를 않습니다. 예수 믿고 살아보자, 하나님 믿고 살아보자, 교회 가서 살아보자, 아무리 해도 마귀만 덕지덕지, 교회 가서는 마귀만 한 트럭 붙어가지고 집에 오면 마귀만 득실거려요. 제가 창세기 하면서 여러 번 유념했는데 다시 이야기하면, 원형은 창세기 1장 1절이 아니에요. 원형은 창세기 2장에 있는 것이 아니고 원형은 십자가에 있어요. 사도바울이 바보입니까? 사도바울이 구약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도바울이 증거한 것은 뭐냐?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그 원형은 끝에 있어요. 지금 변두리가 서서히 원형 쪽으로 가면 갈수록 다가가고 있는 겁니다. 그 십자가 복음이 창세기 11장에서 튀어나와야 돼요. 진짜 원형이 창세기 11장부터 나와야 된다는 말이지요. 십자가는 주님 혼자 올라가서 혼자 못 박히는 연출을 한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당하신 겁니다. 누가 죽였어요. 가룟유다에게 사탄이 덮쳤잖아요.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를 노렸고 죽였잖아요. 이 세상을 지배하는 신이 사탄이에요. 인간이 믿는 신이 사탄이라니까요. 신은 그저 그리스도 못 잡아 죽여서 지금도 그걸 향하여 가고 있는데 그 이 세상 신인 사탄에 속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한물간 옛날의 종교적 교주? 한 때 인기 있었던 백성들의 영웅, 기억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이고, 지금 생계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아무 무의미한 것으로 보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타날 때 “여기 있다.” 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고 현실적으로는 십자가로 나타나요. 더 정확하게는 “너의 배후에 있는 세력이 너를 앞장세워서 나를 시시한 존재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시한 존재로 밀쳤다. 그렇게 될 때 너는 십자가 앞에서 네가 죄인이 된다면 네가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진짜 하나님,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아버지로서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이게 복음입니다. 하나님 존재가 내 존재를 맞아주시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가 앞에 있어요. 십자가는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이거든요. 이제 설교를 마감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전환되면서, 터키에서 가나안땅으로 오면서 아브라함은 뭘 경험해야 되느냐 하면, 그냥 죽음 말고, 시체 그 죽음 말고, 일반적인 혈통의 죽음, 육신의 죽음 말고, 육신이 죽어도 알 수 없는 그 죽음, 원형적인 죽음을 그는 발견해야 돼요. 발견하게 될 것이고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주어진, 혈통이 아니면서 혈통인 것처럼 주어졌던 자식인 이삭을 자기 손으로 죽음에 넘기울 때, 없었던 데서 생긴 그 자식이 이제는 하나님의 죽음으로 자기 아버지를 데려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죽음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 손에서 유발되어야 할 죽음, 자기 손으로 만들어야 될 죽음, 내 손이 개입될 때 그 원형적인 죽음에 내 육신이 관여될 때 관여되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천국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을 의로 여긴다고 로마서에서 했잖아요. “믿습니다, 하나님!” 이것은 누가 못합니까? 우리가 상상한 하나님에다가 “믿습니다, 하나님!” 그건 누가 못해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걸로 다가 아니에요. ㅇ아브라함 손으로 아브라함의 육신으로 몸에 이상한 징표, 할례를 행하고, 그 할례의 의미도 결국은 피 흘림이거든요. 혈통의 끊어짐, 내가 나라고 여기던 이 육신은 주님의 십자가와 연관될 때만 이 육신이 의미가 있지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 부활의 능력, 죄사함과 무관한 육신이라면 그것은 이미 저주아래 있고 지옥가기로 작정되어 있고 버림받은 육신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부러워하겠습니까? 처음 기도할 때 세상 것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지요. 세상신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뭣이 중헌디? 그들의 무엇이 그렇게 부럽고, 뭘 그런 것을 자랑질 합니까? 그들의 삶은 한마디로 죽으면 안 돼, 태풍 오면 안 돼, 지진 나면 안 돼, 북한이 핵 만들면 안 돼, 그저 오들오들 떨면서 하는 것은 “내가 죽으면 안 돼.” 왜 죽으면 안 되는데요? 왜 안 됩니까? “몰라, 몰라!” 모르지? 모르잖아 봐. 모른다고요. 왜 죽으면 안 되는데?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도 죽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주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당겨서 그 시대답게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아브람이 죽음 안에 들어가서 아브라함으로 나오는 작업이 바로 축복의 과정이라면, 이미 우리도 그 과정 속에 십자가 안에 놓여 있으면 똑같은 경험을 같이 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하나님 아버지, 정말 장난처럼 여겨지는 교회 다니기,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런 풍토와 분위기, 정말 천국 가는 사람 찾아보기 힘든 이때에, 좌절할 수밖에 없고 덩달아서 태만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상을 보면서, 날마다 아브라함처럼 그런 어두운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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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1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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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92 자유게시판 165강-YouTube강의(구원의 방해자)161004-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6-10-16
15,791 자유게시판 164강-YouTube강의(죄와 벌)161004-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6-10-16
15,790 자유게시판 20161011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6-라캉 - 최고관리자 16-10-14
15,789 묻고답하기 2016년 노벨 문학상 수장자 밥 딜런의 [바람에 날려]라는 노래의 가사 - 최고관리자 16-10-14
15,788 자유게시판 뉴저지아카데미강의-구약의 흐름 15강 이사야 최고관리자 16-10-13
15,787 자유게시판 뉴저지아카데미강의-구약의 흐름 14강 - 최고관리자 16-10-13
15,786 자유게시판 뉴저지아카데미강의-구약의 흐름 13강 에스겔 최고관리자 16-10-13
15,785 자유게시판 57강-창 12장 1-3절(아브라함의 가치)161012-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6-10-13
15,784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11장50절(예수님 이야기)161004b-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6-10-12
15,783 자유게시판 20161007b 울산강의-레위기 1장 : 네 속에 나 레위기 최고관리자 16-10-11
15,782 자유게시판 20161007a 울산강의-레위기 1장 : 네 속에 나 레위기 최고관리자 16-10-11
15,781 자유게시판 102강-신 19장 6-10절(복수금지)161009-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6-10-09
15,780 자유게시판 207강-고후 1장 12-14(예수님의 자랑거리)161009-이 근호목사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6-10-09
15,779 묻고답하기 Yes와 No의 차이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6-10-09
15,778 자유게시판 뉴저지아카데미강의-구약의 흐름 12강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16-10-08
15,777 자유게시판 뉴저지아카데미강의-구약의 흐름 11강 - 최고관리자 16-10-08
15,776 자유게시판 뉴저지아카데미강의-구약의 흐름 10강 - 최고관리자 16-10-08
15,775 자유게시판 뉴저지아카데미강의-구약의 흐름 9강 - 최고관리자 16-10-08
15,774 강의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63 - 지혜의 증거자 잠언 최고관리자 16-10-07
15,773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11장50절(예수님 이야기)161004a-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6-10-07
15,772 자유게시판 20160916 뉴저지 아카데미 강의 08 – 구약의 흐름 - 최고관리자 16-10-07
15,771 자유게시판 20160916 뉴저지 아카데미 강의 07 – 구약의 흐름 - 최고관리자 16-10-07
15,770 자유게시판 20160915 뉴저지 아카데미 강의 06 – 구약의 흐름 - 최고관리자 16-10-07
15,769 자유게시판 20160915 뉴저지 아카데미 강의 05 – 구약의 흐름 창세기 최고관리자 16-10-07
열람 ➜ 자유게시판 56강-창 11장 27-32절(아브라함혈통)161005-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6-10-06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