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아카데미 강의
20100914 뉴저지 아카데미 강의 01 – 구약의 흐름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구약을 관통해보겠습니다. 구약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고 그것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논리들이 흐름을 이룰 때 잘 이해가 안 되신다면 또 들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창세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창세기는 두 개의 창세기가 있어요. 하나는 나 밖의 창세기. 내 안과 밖의 모든 천지창조를 하나님이 어떻게 운영하시고 창조하시고 나 밖의 다른 사람들, 사탄, 영적 세계, 자연세계 여기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창세기를 썼다고 하는 반면에, 두 번째는 뭐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생각하는 내 안의 창세기가 있습니다.
내가 알기는 기독교 이천 년 역사, 천주교 모든 역사가 첫 번째 나 밖의 창세기를 이야기해왔어요. 나 밖에 있는 창세기가 허구라면, 지금껏 실제라는 말을 앞장세운 종교놀이하고 있었던 겁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모든 것, 그 많은 주석들, 책들이 있지만 나 자신을 감추기 위한 위작 또는 조작된 창세기일 경우에 평생을 창세기로 오락하고 있었던 셈이 되겠지요.
실제 하나님은, 우리가 있으면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내가 조작하고 허구적으로 만들어낸 가짜라는 겁니다. 저 나무와 풀들,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만들었다. 그걸 누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제가 생각하기에 천지창조는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네가 누군데? 네가 너를 모르잖아. 그렇게 고백하고 그렇게 주장하는 네가 너에 대해서 모르면서 천지는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그것이 진리고 맞는다고 네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느냐?
저 달은 하나님이 만들었다. 그게 맞는다는 근거가 어디 있어요? 내가 맞는다고 우기는 것밖에 더 되겠어요? 기독교 이천 년 동안 서로 속이고 있어요. 창세기 주석 책이 수십 만 권 나오는 게 이게 거짓말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거예요. 그렇다고 동의하고 교회 세우고 성당 세우고 그렇게 살아온 겁니다.
그렇다면 창세기를 누가 썼느냐? 제가 알기에는 창세기를 사람이 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썼지만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세기 이야기하면서, “내가 창세기라고 글 쓰면 잘 알아듣잖아. 그지? 그러니까 내가 창세기 썼어.” 이렇게 될 경우에는 인간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없는 인간에게 창세기를 이야기하신 게 돼요. 인간에게 문제가 없다면 십자가 사건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십자가 사건이 있다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지요. 근본적으로 문제 있는 인간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어, 라는 고백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고백이겠어요? 내가 보기에는 사탄의 고백이에요. 내 속에 괴물이 들어서 괴물이 만든 고백, “저는 신이 창조한 걸 믿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 중에 대표자가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그리고 알라 신을 믿는 사람들. 알라는 하나님이란 뜻인데 그들은 천지 창조를 하나님이 했다고 믿지요. 그러면 그 사람 말이 옳다면 알라 신을 믿는 이슬람 사람들은 아무 문제없네요. 문제없으면 천국 가겠네요. 문제없는 인간을 왜 지옥을 보낼까요? 천국 가야지요.
모든 인간의 생각이나 고백에는 나는 문제가 없음이 깔려 있어요. 그동안 몰랐던 걸 더 보탰을 뿐이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문제도 없는 인간이 죽습니까? 왜 죽습니까? 로마서 6장에 나와 있어요. 인간이 죽는 이유는 죗값으로 죽어요. 죄 때문에 죽습니다. 이것 아시지요. 그러면 인간이 살아있으면서 천지는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은 죄일까요, 죄 아닐까요? 죄죠. 그 죄라는 것을 내가 어떤 식으로 눈치 챌 수 있는 역량이나 소질이나 가능성이 죄인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마지막 끄트머리에는 그러니까 나는 괜찮은 존재라고 기어이 증명하는 식으로 모든 고백과 모든 신학과, 성경공부를 하게 마련이에요. 모든 인간들은. 어떤 식으로도 움직임 하나, 생각 하나, 사업 벌이는 것, 그리고 아이들 교육 시키는 것, 결혼하는 것, 농사짓는 것, 어부가 고기 잡는 것, 모든 행동 속에는 반드시 마지막에 뭐가 있느냐 하면, 역시 나는 정당해. 이것이 항상 거기에 전제가 돼있어요. 심지어 인간 대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걸 밝혀내기 위해서 창세기를 둘로 나눈 겁니다. 인간 바깥에 있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그 창세기. 그리고 그러한 고백이 잘못된 데서 나왔다고 우리 내부로 파고드는 창세기가 있어요. 우리 내부에서 창세기를 끄집어내는 겁니다. 우리 바깥에 천지 창조가 있는 게 아니고 내 안에 천지창조라는 그 의식을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거예요. 내 안에 진짜 창세기와 관련돼있는 것이 있기에 인간은 자기 죄를 숨기고 하나님이여, 나는 천지 창조한 것을 믿습니다. 사도신경에 나오지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습니다.”라는 말, 그런 거짓말이 나오게 된 원인을 우리는 모르거든요. 그 원인을 지적하기 위해서 창세기가 쓰인 겁니다.
그러니 이천 년 교회역사고 성당이고 지금 아무 쓸데없는 짓을 계속 해오고 있는 거예요. 창세기조차 모르면서. 창세기 주석을 수십 만 권을 내면서 창세기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왜? 본인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본인이 죄인인 걸 모르는 거예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줄로 믿습니다, 라는 그 고백이 정당하다고 착각을 일으키는 겁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은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음을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에 대해서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의 창세기, 하나님의 계시인 창세기가 내 안의 어떤 점과 결합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두 개의 문장을 쓸 테니 차이점을 아시기 바랍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할/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 없이 못 살겠습니다.] 이게 뭔 뜻입니까? 나는 당신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는 그런 죄인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 없이 못 살겠습니다. 이게 신앙이에요.
신앙이란 창세기란 계시, 구약이란 계시, 십자가란 계시, 신약이란 계시로 날아와서 나를 파괴시켜놓고 나의 파괴를 대가로 해서 진짜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것과 하나님의 계시와 연계를 꾀하시는 겁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나의 파괴 없는 연계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하나님 뜻을 알아채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나는 파괴될 이유도 없고 오히려 계속 유지해야 되겠지요.
모든 인간의 심보가 뭐냐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선 모르고 무조건 괜찮은 것 다 끌어당겨서 자기 것 만들면 자기가 더욱더 든든하고 훌륭하고 성스럽게 된다고 누가 그렇게 생각합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해요. 십자가, 언약, 복음, 좋은 건 다 끌어당겨요. 끌어당기면 끌어당길수록 뭘 몰라요? 자기는 점점 더 위대해지지요. 그게 사탄이에요. 악마는 모르는 게 없습니다. 그게 악마의 속성이에요.
그동안 수천 년 가려졌던 우리가 악마의 일부로서 우리가 존재하고 있으면서 “악마야, 물러가라” 하고 있어요. 본인에서 이미 악마가 작동하고 발동하고 있는데 엉뚱한 사람한테 악마야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고 있단 말이죠. 그게 특히 심한 것이 종교인들이에요. 불교, 기독교, 천주교인들. 자꾸만 종교생활로 신앙생활하려고 해요. 하면 할수록 어떻게 될까요? 무엇이 가려질까요? 자신의 악마성은 점점 깊숙한 곳에 감춰지겠지요.
이것이 진짜 신앙고백이라면, 악마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당신 없이 못 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이렇게 고백한 유명한 사람이 있어요. 어거스틴입니다. 이게 바로 사탄의 고백, 악마의 고백이에요. 차이가 뭐예요? 앞에 있는 것이 ①이고 밑에 있는 것이 ②이라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습니까?
나는 당신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당신과 함께 할 수 없기에 하나님, 당신을 온전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함께 할 수 없는 이 무자격자를 주여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께서 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저를 파괴 시켜주옵소서. 그런 뜻이에요. 왜?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을 파괴하시는 그분이 유일하게 의로운 분이죠. 오직 주님이죠. 주님이 주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대가는 뭐냐? 나의 파괴가 필요하기에 주여, 저는 그런 주님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영원히. 이게 신앙입니다.
그런데 뒤쪽을 보세요. 나는 당신 없이 못 살겠습니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나는 당신 없이 내 영혼이 평안함이 없었습니다. 내 평온을 위해서 하나님이여 나의 주가 되시옵소서.”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그런데 이런 이기주의가 대표적 믿음에 모델이 되고 말았습니다. 최고의 표준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걸 그대로 수천 년 동안 우려먹었고 수련원, 기도원, 모든 교회에서 청소년들이에, 자식들에게 이걸 모방을 시킨 거예요.
두 번째를 모방할 때 따라 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인간은 본래 악마의 종이기 때문에 이런 고백은 쉬워요. 혹시 여러분들 괴로운 게 있습니까? 그 괴로움을 해결하실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주님을 영접하여 여러분 괴로움을 해소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다들 하는 거예요. 이것은 알라 신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불교, 기독교, 천주교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모든 기독교 역사의 대세에요. 이것은 드러났고 위에 있는 고백은 핍박 받았어요.
사람들은 직장생활하고 일하면서 삽니다. 그렇게 바빠요. 그런데 왜 살지요? 아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왜 살지요? 혹시 사시는 이유 아십니까? 모르지요. 성경 백독하면 왜 사는지 이유가 나오던가요? 안 나와요. 해답 안 나와요. 나를 위한 하나님인데 무슨 해답이 나옵니까. 처음부터 성경을 통해서 자기가 꿈꾸던 허구적 세계에 성경을 하나의 자료로 거기다 보탠 거예요.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성경까지 동원한 겁니다. 내가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까지 믿으니 내 미래는 활짝 피어있다. 죽으면 천국 갈 거야. 성경을 믿으니까. 창세기를 믿고 십자가를 믿으니까. 이런 식으로 일본말로 구라, 거짓말을 남발해온 겁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만나고 비로소 평안을 얻었습니다. 이게 2번이라면, 1번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고백이지요. 누구 고백이에요? 바로 사도되기 전에 사울 한 고백입니다. 생판 예상도 못한 분이 왜 찾아오십니까? 내가 예상한 것은 2번이거든요. 인간이 되었으면 하나님을 믿는 게 당연하지. 이게 2번이에요. 인간이 되었으면 창조주를 알아야 존재의 이유를 알지. 이게 2번입니다.
그런데 1번은 뭡니까? 사울이 율법에 흠이 없는 자고,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인데 2번에 대해서 자기가 모르겠어요? 정통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먹힌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확인했어요. 전 국민이 신자기 때문에. 유대나라는 전 국민이 신자에요. 오늘날 기독교 교회가 소원하는 것처럼. 미국이 신자 됨을 얼마나 기쁘겠어요. 전 국민이 신자인 유대교에 정통한 사도 바울이 2번 고백을 왜 모르겠어요. 인간이 되었으면 창조주를 아는 것이 마땅하단 말이죠.
이사야에 나오잖아요. 자식이 되었으면 아비를 알고, 소는 주인을 알고, 돼지는 돼지 주인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알듯이, 사람이 되었으면 하나님을 알아야지. 그건 모든 인간이라면 딱 들으면 아멘 그냥 나와요. 그건 아멘이 아니고 오멘입니다. 그랬던 사울이 정말 하나님 만나고 난 뒤에 뭐라고 했습니까? 생뚱맞은 이야기를 했어요. “주여, 누구십니까?” 쉬운 말로 나는 그동안 뭐했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런 겁니다.
그러면 목사님 생각에는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바깥에 있는 천지창조와 연관시키는 것은 다 거짓이고 사탄이 만든 환상의 세계라면 진짜 세계는 어디에 있고, 진짜 창세기 내용은 어디 있고 그것과 우리는 어떤 관련성이 있느냐고 묻고 싶지요.
인간 속에 창세기적 요소가 들어있어요. 인간이 존재한다는 자체 안에 우리는 모르지요. 우리는 창세기를 바깥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데 확인하기 이전에 우리 속에 창세기적 요소가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우리와 창세기가 어떻게 관련돼있는가? 죄와 관련돼있어요. 그러면 이 사실을 우리가 알아서 눈치 채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여, 제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저런 죄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해놓고, “이런 죄를 알았기 때문에 죄인으로써 천지 창조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내가 믿나이다.” 이러면 사탄의 고백이 아니고 천사의 고백이고 신앙의 고백이면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묻고 싶겠지요.
그런데 인간은 자기 죄를 몰라요. 자기 죄라고 들려오게 되면 가짜 죄를 죄라고 만들어놓고 그게 죄라고 다짐을 하고 장담을 해요. 예를 들어서 나는 옛날에 나쁜 생각을 했습니다. 나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인간은 자기 죄를 몰라요. 예수님께서 오셔야 비로소 죄를 압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각하는 창세기는 전부 다 구라고 가짜라면 진짜 창세기를 만드신 하나님은 창세기를 품고 우리 인간에게 찾아오게 되면 비로소 죄라는 것이 하나님의 작용과 창세기 말씀 작용에 의해서 그때마다 새롭게 펼쳐지게 되겠지요.
의미를 확실히 주기 위해서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4절을 누가 읽어볼까요?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다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지 않았다면 저희가 죄가 없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비로소 죄가 죄로 드러났지요. 그러면 우리가 죄 있는 것은 고백하면서 하나님 믿으면 되지 않습니까, 하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돼요. 우리가 만들어낸 죄라는 것은 기존에 알고 있는 죄, 간음죄, 남한테 피해 입힌 죄, 사기 친 죄, 스스로 나쁜 생각, 우리가 납득이 되는 죄만 죄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죄를 끄집어내는 우리 행위는 죄가 아니고, 스스로 자백한 착한 사람이 돼버려요. 이해하시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내가 반성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대견하고 착합니까? 내가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주 앞에 내려놨다는 말 자체, 그걸 인식한 자체가 이미 그만큼 착하다는 거예요. 안 내려놓은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착한 거예요. 결국 이천 년 교회역사가 지 잘난 맛에 교회 다니고 신앙 생활한 겁니다. 이렇게 나를 부인하고 낮추니까 목사님, 나 이뻐해줘. 신부님 이뻐해줘. 이거라니까요. 세상에선 예쁨을 못 받아서 마음에 평안이 없었으니까.
주님을 알기 전에 평안이 없었는데 주를 알고 평안합니다, 라는 어거스틴의 고백이 왜 사탄의 고백이라고 한 줄 알아요? 지금 놀이하고 있어요. 하나님과 게임, 장난치고 있는 겁니다. 오늘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