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성의 자유로움
글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꼭 이 경험만은 같이 나누고 싶어서 간단하게 적어봅니다.
제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하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순간 그것을 위해서 살고 있었지요.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그것을 주님께서 없애 버리셨을 때 주님께 돌아가는 것은 엄청난 원망이었지요. 제가 한 원망은 “왜 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십니까?” 라는, 진짜 아픔에서 나오는 구구절절한 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밤낮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왜 그것을 없애버리셨을까 생각하면서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막 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랬기 때문에 이렇게 된거겠지’ 라는 지극히 인간스러운 태도를 취했지요. 그렇게 아픈 채 몇일간을 지내다가 어느 순간 주님께서 알게 해주신 점은, 이 점을 제가 꼭 공유하고 싶은 건데, ‘내가 이랬기 때문에 이랬다 라는 말이 정말 신기루와 같은 거 였다는 점입니다.’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을 쭉 보니 꼭 그런 사람도 아니였고 항상 즉흥적으로 변하더군요.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점이 '아 내가 없구나.'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노선의 변경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였듯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것도 실패자의 요소를 품게 하기 위함이었듯이 저의 모든 행함도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이며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하나의 요소로 쓰이는 장치라는 것을 너무나 크게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죄를 통해서 언약을 가동하고 십자가로 완성시키는 주님의 체제가, 내가 죄악중에 출생하였다는 다윗왕의 고백이, 오로지 자랑할 것이 십자가 밖에 없다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너무나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저에게 나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자유였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한 순간에 풀린 듯한 이 느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눈녹듯이 사라져 버리면서 그 속에서 나오는 여유, 터질듯한 감사함.
저에겐 복음을 더욱 선명하게 알게해 준 그런 경험이었고, 이번 추석도 주님에 대한 감사함이 성도 여러분에게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