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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60906 요한1서 시카고강의1-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

20160906 요한1서 시카고강의1-이 근호 목사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만든 세상에 우리가 나중에 들어와서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누가 만들었고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확정짓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지금 공부 할 게 요한1서입니다. 성경의 뒷부분에 나와 있으니까 사람들이 별로 주목을 잘 하지 않죠. 창세기부터 읽다보면 지치기 마련이고, 창세기 읽을 때는 재미있다 싶었는데, 레위기는 재미있는 내용이 하나도 안 나오니까 인내성의 한계를 드러내죠. 마태복음 신약의 족보부터 해가지고 슬슬 참을성 없는 사람들은 족보 하다가 걷어치웁니다. 요한일서까지 계속 쭉 간다는 것이 보통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죠. 요한1서를 읽게 되면 요한1서의 내용이 너무나 한정되어서 무슨 이야기인지를 잘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제목 자체는 사도요한이라는 사람이 교회에 편지를 세통을 보냈는데, 첫 번째 편지가 1서고, 두 번째 편지가 2서고, 세 번째 편지가 3서, 그렇게 제목으로 정해놨어요. 근데 요한1서, 2서, 3서를 이렇게 생각하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되느냐 하면 요한복음과 성경 제일 마지막에 요한계시록 나오는데, 그 사이에서 요한1서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아셔야 됩니다. 요한복음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활동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아, 예수님이란 분이 이런 활동을 하셨구나. 요한복음을 보면서, 아, 정말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리어 굉장히 신앙이 깊은 사람이에요. 근데 요한복음을 보면서, 이게 뭐가 어려워? 예수님이라는 분이 오셔서 활동했다. 끝. 전혀 어렵지 않아요. 근데 요한계시록에 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이 어렵다고 해요. 어려운데, 요한계시록은 어려운데 요한계시록을 풀이한 사람의 책을 보면 별로 어렵지 않고 쉬워요. 3차 대전 그런 것 있나 주시하고, 마지막 때를 대비해서 벙커 만들고, 생수마련하고, 3년 환란, 3년 후 환란, 전 환란 이렇게 해가지고 베리칩 안 받아도 돼요. 마트 갈 때 현찰 내고, 카드사용 안 하고, 전부 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현세 살면서 뭔가 피할 거리, 조심해할 거리만 찾는데, 요한계시록 전혀 어렵지 않다. 그렇게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요한일서를 건너 뛴 결과입니다.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사이에 요한일서가 깔려있다고 했죠? 이 셋 다 사도요한이 쓴 거예요. 요한복음 있고, 그 다음에 편지 요한123서가 있고, 마지막 성경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할 때, 요한계시록은 자꾸 이 현실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고,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과거에 이런, 이런 일을 했다는 그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중간에 있는 요한123서는 뭐지? 몽롱해요. 맥주 한 병 먹고 몽롱한 것처럼. 맥주 한 병 먹고는 되지도 않아요. 한두 병은 먹어야지. 몽롱한 것처럼 뭔가 무슨 이야기인지를 몰라요. 요한계시록은 현실에서 주의하라고 그 정도 하면, 그 정도는 나도 알아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거든요. 특히 요한계시록에 1장에서 3장에 보면 일곱 교회 나오잖아요. 일곱 교회 나오니까, 교회? 여기 네거리에도 교회 있잖아요. 그죠? 교회 있고. 주의 사자가 편지 보낸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주의 사자를 통해서. 그럼 주의 사자는 누구지? 교회 다니는 목사님이 주의 사자니까, 주의 사자에게 편지를 보내니까, 그럼 주의 사자는 이런 것 조심 하고, 저런 것 조심하고, 이런 것은 책망 받아야 하고, 이런 것은 칭찬받아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게 되면 요한계시록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 하거든요. 근데 주의 사자가 목사입니까? 그것부터가 이게 요한일서를 다 건너뛰니까 거짓말만 자꾸 등장하는 거예요. 주의 사자는 목사가 아닙니다. 주의 사자는 천사지 목사가 아니에요. 그러면 우리 교회 천사가 왔다는 것을 아는 교회는 기존의 교회가 아니고 영적 교회라야 이게 천사가 관리한다는 것을 알게 돼요. 영적교회. 당회장 목사가 관리한다고 하면 그거는, 이미 그 교회는 교회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려면 요한일서를, 123서를 거쳐야 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옛날에 이런 분이었다. 어? 그거 쉽네. 요한계시록에서 어떤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왜 환상으로 했지? 그걸 알고 싶으면 완전히 그냥 건너뛰지 마시고 요한123서를 경유를 해주셔야 한다는 그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경유를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신 그 일이 역사적으로 있다면 요한일서에서는 뭐가 날아가느냐 하면 역사가 날아가 버려요. 실제로 일어난 역사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고, 이렇게 하셨고, 열두제자를 불러 세우시고, 병을 고치고,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에 대해서 그걸 역사라고 해요. 실제로 일어난 역사. 오늘 아침에 식사를 몇 시에 했고 그게 역사거든요. 그럼 역사가 아니라는 말은 뭐냐 하면, “그게 무슨 소용 있는데?” 이게 역사 아닌 거예요. 이게 역사 아닌 거다 말이죠. 요한일서에서 역사 아니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카고의 거리에서 오늘도 교통사고 일어났을 거예요. 교통사고 나가지고 우리 고향 달성군 논공에서 19살 먹은 고등학생이 탄 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고등학생 다섯 명이 다 죽었어요. 그 중에 안전밸트 맨 4명이 죽고 안전밸트 맨 1명도 죽었어요. 안전밸트 맸는데도, 도대체 얼마나 속도를 냈으면 그렇게 됐겠어요? 다 죽었냐 말이죠. 그게 tv에 나왔어요. 그걸 뭐라고 했습니까? 강의 들었으니까 복습해보죠. 그걸 뭐라고요? 역사에요. 역사. 그런데 역사 아닌 것은 뭐라고요? 애 다섯 명 죽든 말든, 열 명 죽더라도, 세월호가 물에 빠져서 150명 죽더라도, 세월호 아시죠? 하도 유명하니까. 구원파와 관련된 사건, ~뭐 하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 집 엄마가 자궁이 약해서 자식을 십년을 기다렸는데, 세상에! 이번에 또 유산을 했대. 역사적으로 보면, 그 집 역사로 보면 무지무지 중요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요한123서에 보면 어떻게 됩니까? 뭐? 뭐? 뭐? 그래서? 어쩌란 말이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요한1서, 2서, 3서의 내용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동안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이, 그게 뭐냐 하면, 뭐만 믿었어요? 역사적인 희망이나 기대나 믿었지, 성경에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그 내용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그 내용을 빼버렸어요. 이건 큰 실수였습니다. 사람이 역사 일에 관심 있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자기의 일 년 뒤, 한 달 뒤, 아니면 내일 뒤에 관심 두고 산다는 말입니다. 일 년 뒤, 이년 뒤. 지금은 이래도 내일은 나아질 거야. 이렇게 뭔가 미래에 대해서 지금보다 훨씬 나은 행복이나 좋은 상황이 올 거라고 믿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사람은 어디에 갇혀 있느냐 하면 역사에 갇혀있는, 히스토리history에 갇혀 있는 셈이 됩니다. 여기 미국이니까 영어를 좀 써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어 쓰든지, 안 쓰든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히스토리에 갇혀있는 거예요. 역사 속에. 역사 속에 갇혀 있어가지고 하루 스물 네 시간 생각하는 것이 뭐냐 하면, 역사에 관한 것만 생각해요. 역사에 관한 것만. 이걸 가지고 자폐증 증세라고 하는 겁니다. 자폐증 증세. 자폐증이라는 것은 애를 키우는데 바깥에 안 나오고 어디 겁먹은 것처럼 자꾸 집구석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문 닫고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자꾸 또 기어들어가고 나올 생각을 안 해요. 엄마가 노크해도 문 안 열어주고. 이거는 특히 어린애들한테, 요새 이상하게 자폐증 애들이 점점 더 많아져요. 자폐증이죠. 모든 인간은 자폐증 환자입니다. 어디에 갇혀 있어요? 역사에 갇혀있어요. 그래서 역사 안의 이야기는 자기 딴엔 납득되고 이해된다고 생각하지만, 역사 밖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몰라. 바보에요. 무지몽매해요. 이순신 장군? 아, 그거 1592년 임진왜란 때 죽었던,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잘도 알아요. 과거 일을. 그런데 어떤 무당이 와서 이순신 장군을 지금 귀신으로 모신다, 귀신아 물러가라! 이순신 장군은 죽었어. 언제 죽었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죽었다 이 말이죠. 나의 죽음을 적군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면서 죽고. 죽었다는 말은 지금 있단 말입니까? 없단 말입니까? 지금 없는 거예요. 이 귀신아 물러가라! 없는 것을 왜 니는 믿느냐? 이렇게 되겠죠. 그래서 요한일서 1장을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이거 설명하는데 10분이 넘게 걸렸어요. 1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태초는 시간이 없었어요. 역사가 없죠. 역사에 없던 이야기를 이제부터 늘어놓겠습니다. 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역사를 믿던 사람들은 이 요한1서에 대해서 믿음이 있는 사람일까요? 없는 사람일까요? 답변은 간단한데, 역사의 끝만 믿는 사람에 있어서 요한일서의 내용을 믿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믿을 수 없는 것은 믿음이 없는 자예요. 결국 요한일서는 뭘 이야기한다? 너희들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보고 믿음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뭐라고 고집을 부리느냐 하면 “제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고집을 부리니까, 그거는 역사, 니가 아는, 자폐증환자가 헛소리하는 거라고 이야기해요. 결국 이 이야기가. 성경은 우리보고 믿고 천국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너는, 니가 믿는다는 것은, 자폐증환자처럼 역사 속에 갇혀 있는 것만 믿게 돼있는 존재가 너라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 있다? 없다? 믿음은 애초부터 없는데 믿는다고 하니까 성질이 더 나죠. 믿음도 없으면서 자꾸 믿는다고 하니까 성질이 더 나는 거예요. 애가 성적이 안 좋았다. 그래서 엄마가 화를 냈어요. “뭐 했어? 공부 안 하고?” 그런데 애는 애교가 많아서 “에이. 엄마 풀어!” 자꾸 다가오는 거예요. 엄마가 뭐라고 해요? “공부도 못하면서 꼴 보기 싫어. 저리가!” 밀어내는 거예요. 근데 “에이잉~!” 하면서 애가 다가오는 거예요. 주님께서 지금 밀어내고 있는데, 인간들은 뭐냐 하면, 에이잉~하면서 다가오는 거예요. 믿음도 없으면서. 역사를 믿으면서 마치 믿음이 있는 척 행세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일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 세상이 어떤 식으로 쓰여 지는가, 그걸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요한일서의 진도를 나가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요한일서 하나도 이해 못합니다. 읽기야 한국말이니까 잘도 읽죠. 읽으면 뭐합니까?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데. “태초부터”가 무슨 내용인지, 역사밖에 없는 사람은 태초를 설명 못해요. 자, 이 내용에 여러분들이 장단을 맞춰주면 좋겠어요. 제가 이렇게 물을 때, 개인적인 단순한 질문을 할 테니까, 여러분들이 단순하게 답변하면 되는 겁니다. 제가 무리한 논리는 안 하고 여러분들에게 납득이 되는 논리만 뽑아서 묻겠습니다. 여기 컵이 있는데, 컵이 있다. 컵이 카메라에 비쳐야 되는데, 비치죠? 동영상을 보시는 분들을 위해서. 이거 분명히 맞아요? 틀려요? 맞아요. 지금 간단하게 질문하니까 간단하게 답변해야 됩니다. 추임새를 넣어주세요. 있다가 뭐냐 하면 존재죠. 이 컵이 있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증명할 수 없어요. 컵이 있다 앞에 뭐가 생략되어 있어요. ((내가 보기에)) 컵이 있다. 지금 요한일서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누군지. 우리 자신이 진짜 자폐증환자인지 그거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내가 보기에 컵이 있다죠. 내가 보기에는,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눈이 있다죠. 보니까 눈이 있는 거예요. 눈이 있으니까 이걸 지워보겠습니다. 눈을 빼겠습니다. 그럼 내가 있기에 컵이 있죠. 내가 있기에 컵이 있습니다. 근데 내가 망치로 얻어맞았다. 기억을 잃어버렸다. 기억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목사님 앞에 컵이 있었는데요?” “어? 어? 나는 몰라?” 이러면 나한테는 컵이 있어요? 없어요? 그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있더라도 내가 관심두지 않으면 그건 없는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 앞에 사철나무인지, 주인보고 물으니까 모르겠다고 합니다. 나무가 있는데, 분명히 나무가 가보면 있어요. 있는데, 나뭇잎 숫자를 아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분명히 나무들 있잖아요? 분명히 있는데, 한 나무 당 나뭇잎 숫자가 몇 개이던가요? 관심 없죠. 그거는 사실은 나무가 있더라도 이론상 내가 관심 없는 것은 없다가 돼요. 그래서 있다를 존재라고 하는데, 있다=존재. 있다는 뭘 의미하느냐 하면, 나에게 의미가 있을 때만 있어요. 뭐든 게 나에게 의미가 있을 때만 있어요. 나무가 있으니까 나뭇잎 숫자 셀 수 있겠죠. 하지만 거기에 관심이 없어요. 관심이 없는 것은 나한테 없는 것이 됩니다. 지난밤에 시카고에서 부부싸움 몇 건이나 일어났어요? 모르죠. 이거는 내가 알고 싶은 것에서 빠져있으니까, 이거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누구한테 의미 있다? 나에게 의미 있는 것만 있기 때문에, 결국 누구만 있느냐 하면, 천상천하유아독존, 나만 있는 거예요. 나만. 이 세상에 나만 있어요. 그냥 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의미 있게 있는 겁니다. 첫 번째는 있다를 설명했어요. 있다는 것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있다는 것이 의미 있으려면 뭐냐, 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가 있는 거예요. 내가 있다는 것을. “당신 참 예뻐!” 강의 듣는 사람들은 누가 예쁜지 궁금해 할 것인데, 뒤통수만 보이니까 모르겠지만. 하나의 예를 드는 거예요. 예니까 다른 사람들은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당신, 참 예뻐!” 그런데 다른 사람 보기에는 “별론데?” “내가 이쁘면 이쁜 거야.”여러분 결혼할 때 다 그렇게 했잖아요? 모든 여자들 줄 세워서 골라서 했습니까? 아니죠. 줄 세울 수 있는 그만한 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반경 몇 킬로 내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연관된 가운데서, 그것도 아줌마 빼고, 소녀 빼고, 아가씨들 중에서, 그것도 내 나이하고 얼추 비슷해서, 아래위로 플러스, 마이너스해서 5살 차이로, 그 정도 선에서 마음이 맞아서 한 거예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나한테는 예뻤다는 거예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멱살 쥐고, “니가 여기 있는 모든 여자들 불러봤어?” “아니.” “그럼 니가 왜 그 여자가 예쁘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느냐?” “내가 예쁘면 예쁜 거야.” 결국 그 여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뭐냐, 내가 예쁘다는 주장을 증명해주기 위해서 내 아내는 계속 예뻐져야 돼요. 내가 이쁘다고 하는 여자는 계속 이뻐져야 돼요. 이게 얼마나 일방적인 주장입니까? 이래도 자폐증환자 아니에요? 믿는다고요? 인간은 내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만 믿어요. 나한테 의미가 있고 것만 믿고. 나한테 의미 있다는 말은 뭐냐 하면, 나한테 유용하다는 것입니다. 내 삶에 도움이 되고 내 삶에 보탬이 되는, 나의 유용성. 나한테 유용하다는 말은,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말이에요. 나에게 이익이 될 경우에 그거는 의미가 있고, 그 의미가 있을 때는 나는 관심을 두고, 관심을 두게 되면, 너는 나하고 같이 있는 거야. 내가 존재하듯이 너도 존재해야 돼. 왜냐하면 내가 너를 예뻐하니까 너는 내 허락 없이 사라지면 안 돼. 근데 내 허락 없이 사라지게 되면 우리는, 이게 어디 내 허락 없이 사라져? 라고 하는 감정이 뭐냐, 슬프다. 보고 싶다. 이런 거거든요. 제 말 틀렸어요? 섭섭하네. 이런다고요. 니가 내 앞에서 사라지려면 내 허락 맡아야 돼. 허락 맡을 필요 없는데 왠지 섭섭하지. 안 갔으면 좋겠어. 니 내 옆에 붙어 있으면 좋겠어. 니가 나를 구속하려고 하느냐? 구속이 아니고 뭐 그렇다는 뜻이지. 이런 식으로. 근데 사람들이, 나오는 감정이라는 것이 그냥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 중간에 누가 있어요? 내가 여기 있음에, 있음은 존재입니다. 그 다음에 더 나아가서 내가 나에게 의미 있음에, 존재에서 의미가 들어갔습니다. 왜, 의미 있다고 했어요? 내가 나한테 유용하기 때문에. 나, 니만 내 옆에 있으면 나는 외롭지 않아. 누구 좋아하고? 내 좋아라고. 내 좋아라고 니는 내 옆에서 5미터 밖으로 떨어져서는 안 돼. 늘 붙어 다녀야해. 남녀 간에 연애하면서, 스킨십이라고 하죠. 근데 오늘같이 화씨 92도까지 올라가게 되면, 그것도 모르고 상대방 남자가 스킨십skinship하게 되면, 손 치워라! 근데 날씨 서늘할 때는 만지라고 하면서 왜 손 치우라고 하는데? 지금 날씨 더울 때, 당신의 스킨skin, 피부가 이렇게 터치될 때에 그게 나한테 유용하지 않아. 날씨 서늘할 때는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나한테 유용하지 않아. 땀나. 안 그래도 더워죽겠는데 그런데다 붙으면 36도 되고, 짜증나잖아요. 결국 우리가 뭐 하나님 믿고, 예수님 믿고, 그거는 무엇을 확인하느냐 하면 이 세상은 내 유용한대로,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막 살 거야. 하는 식으로, 이 세상에 일방적으로 의미를 주었고, 나름대로의 유용성을 거기다가 퍼붓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면 군에 갔다, 그런데 비상식량이 다 떨어졌다, 남은 것은 건빵 두개 밖에 없다, 그런데 같은 전우가 두 명 있는데, 그 애도 두 개 다 먹어야 살고 나도 먹어야 산다. 그럴 때는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것이 아니에요. 가위바위보, 또는 묵찌빠, 두개 다 먹기. 왜 그러냐 하면 건빵 두개 남은 상황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던, 어떻게 만들었던,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있음이. 세상이 이렇게 있더라. 사철나무가 이렇게 있고 가로수가 이렇게 있더라도, 내가 관심 두는 그 범위 안에서만 품을 수 있는 나만의 현실이 되는 거예요. 전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전쟁의 의미가 뭐냐? 지금 그걸 따지는 것이 아니고, 건빵이 몇 개 남았냐가 나의 지금의 현실이에요. 건빵이 몇 개 남았냐가. 그러니까 그 현실은 누구의 현실에 의해서?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신이 나를 위해서 허락해줬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이 말이에요. 자,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일방적이죠. 다시 설명하면, 처음에는 뭐였다? 존재, 존재 자체가 수상하죠. 이거는 진리 아니죠? 어렵기 때문에 다시 반복해도 돼요. 컵이 있다. 컵이 있다고 할 때에 왜 컵이 있다고 하느냐, 컵을 누가 보기 때문에? 내가 보기 때문에 컵이 있는 거예요. 내가 만약에 컵이 없다고 우긴다면 컵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있다의 모든 시작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한테 필요한 것들만 주워 모아서 한다는 이 말이죠. 그래서 그렇게 있다가 그 다음에 의미가 되고, 의미는 뭐라고 했습니까? 나의 유용성이 되면서, 다시 하면 처음에 존재에서 의미, 그 다음에 유용성, 이제부터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이 뭐냐 하면 나는 믿는다가 나와요. 나는 컵이 있음을 나는 믿는다. 여기 포도가 있는 것을 나는 믿는다. 자두가 있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 다음에 복숭아가 있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 다음에 멜론이 있는 것을 나는 믿는다. 보는 사람들이 많이도 먹는다고 욕하겠다. 멜론이 있는 것도 나는 믿는다는 거예요. 나는 여기 포도가 있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 다음에 제일 중요한 것이 그게 뭐다? 나는 옳은 소리를 했다. 그게 진리라는 겁니다. 나는 존재한다. 그게 나의 의미들만 모아서 통일된 나의 현실로 본다. 그 다음에 나는 그것이 나에게 유용하기 때문에 의미를 둔다. 근데 그 유용한 것을 나는 뭐라고 한다? 믿는다. 나는 있다는 말을 해야 될 것을 나는 의미가 있어. 이렇게 말을 바꾸고. 유용하다는 말을 해야 될 것을 의미 있다고 이렇게 가짜로 이야기하고, 나한테 이익이라고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될 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는 믿어. 이렇게 감추고. 나한테만 무조건 진리라고 이야기할 것을 또 나는 믿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말이죠. 그래서 이 모든 것이 결국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믿음이에요? 믿음 아니에요? 이거는 정신병환자죠. 이 정신병환자를 이런 써클, 순환구조로 이야기 한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서 깨지느냐, 이 진리가 어디서 깨지느냐, 내가 죽을 때. 내가 죽을 때 내 진리도 깨지고, 내가 믿는다는 것도 다 헛수고고, 죽는 마당에 유용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죽는데. 모든 것을 놓아야 하는데 무슨 유용한 것이 있어요? “아이고, 죽더라도 이 포도 잡수시고 죽으세요.” 지금 죽는 마당에 이 포도가 들어갑니까? 5분 전에는, 나는 이 포도를 믿습니다. 하는 것이 진리라고 해도, 죽는 마당에는 이 유용성도 때늦은 거예요. 이미 차는 떠나버렸어요. 유용성이 없으면 뭐도 무너진다? 유용성이 없으면 의미도 없는 거죠. 의미도 없다 이 말이죠. 사형수에게, 5분 후에 죽을 사형수에게 “손 씻으세요.” 5분 후에 죽을 사람에게 세균 퍼져봐야 무슨 의미가 있어요? 5분 후에 죽는데. 손 씻는 것이 살아있을 때나 의미 있지, 유용하지,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의미 없습니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내 있음이 이제는 좌절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 안에서 이 전체를 누구를 위해서 쓰냐면,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를 위한 역사, 나의 역사죠. 그래서 인간이라 하는 것은 죽음 안에서 자기 역사를 가지고 믿는다고 우기는 것. 이런 정신적인 질환적인 요소가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믿는다는 것이죠. 믿는다는 것은 있음에 대해서, 있음을 가지고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것. 그래서 여기 컵자리에다 이번에는 예수님을 집어넣읍시다. 이제 여러분 아시겠죠?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이거 진리입니까? 진리 아닙니까? 이거는 진리 아니죠. 나는 삼위일체 믿는다. 이거 진리 아닙니다. 나는 교회 다닌다. 이거 진리 아닙니다. 나는 천국 믿는다. 이거 진리 아닙니다. 전부 다 가짜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음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짜입니다. 내가 없어질 때도, 포도 맛있다고 그런 소리 할래? 내가 없어지는데, 내가 사라지는데, 포도 맛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유용성이 있습니까?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도 믿음이 아니에요. 자, 지금까지 한 것을 한 5초 동안 정리해보면, 지금 이 세계는 믿음의 세계입니다. 전부 다 나름대로 다 믿어요. 모든 인간은 다 믿어요. 모든 의미 있는 것은 놓치지 않아요. “놓치지 않을 거예요~” 탕웨이가 선전하는 SK2 피테라에센스 광고에 보면, 발음도 잘 안 돼요. “놓치지 않을 거예요~” 의미 있는 것을, 나한테 유용한 것을 놓치지 않을 거예요. 이게 무슨 세계냐, 믿음의 세계에요. 이 세상은 믿음의 세계에요. 이 세상은 믿음의 세계.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다 자기한테 존재의 의미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믿음 생활하는 교회가 얼마나 엉터리냐는 겁니다. 지금 다들 믿음의 세계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모든 사람은 신자다. 모든 사람은 신자가 되는 겁니다. 조건이 하나 있어요.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은 이미 신자입니다. 신자라는 말을 세자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종교인입니다. 모든 사람은 종교인이에요.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날 때부터 종교인입니다. 왜냐하면 뭐가 형성되기 때문에? 나는 믿습니다가 형성되기 때문에. 나는 의미 있는 것은, 유용한 것은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예요. 절대 놓치는 법이 없어요. 내게 이익 되는 것은. 전쟁가운데 마지막 남은 건빵 두 개는 절대 남한테 양보하기 싫습니다. 나는 이 건빵을 믿습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근데 다른 전우가 정신병자가 되어가지고 저걸 건빵으로 보지 않고 돌멩이 두 개로 보니까 자기는 신났지. 돌멩이로 보니까 의미가 없잖아요. 근데 자기는 건빵으로 보이고. 자기는 의미가 있으니까. 신자로서 이 세상을 믿음으로 보니까, 믿음 있는 신자가 되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통일된 현실관이라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의 통일된 현실관이 있습니다. 통일관. 하나로 통일된 현실. 그 현실의 통일관은 자신의 존재의 유용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아직까지 요한일서 보면 안 됩니다. 요한일서 근처에도 안 갔습니다. 이제 요한일서 들어가는 방법을 구약에서 시작합니다. 아시는 사람은 아시는 하나의 사건이 있는데, 구약의 이스라엘백성도 마찬가지고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의 종교인이고, 신자고, 의미를 갖고 있고, 이게 전부 다 어디서 나왔다? 자기 존재에서 나왔죠. 그런데 구약의 출애굽기 12장에서 보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여호와의 밤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밤.” 여호와의 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무서운 영화를 보면나오잖아요. 꼭 무서운 영화에는 공주전화부스에 12시에 스산한 바람이 불면서, 그것도 11월에 찬바람이 불 때, 낙엽을 확 몰고 가면서 외로운 가로등이 공중전화부스를 딱 비치게 되면 왠지 으스스하고 춥죠. 그럴 때 어디선가 귀신이 나올 때가 된다 말이죠. 근데 보통 새벽 2시 43분, 44분 정도에,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잠 잘 때, 단란한 자기 가정에서 불 끄고 잠 잘 때입니다. 근데 거기 일본의 사무라이가 창검 들고 와서 무자비하게, 그 집안에 있는 맏아들을 무자비하게 다 때려죽이고 홀연히 스산한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난데없이 죽음이 찾아오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온 집안이, 애굽 사람 온 집안이 울게 돼요. 아까 강의할 때 했죠? 사람이 섭섭하다는 것이 어떤 경우라고 했는데, 내가 존재를 증명하는데, 내 허락 없이 내 현장에서 떠나버리면 뭐라고 해요? “나는 너하고 같이 있고 싶은데. 이 밤에 가니까 좀 섭섭하다.” 이런 이야기하잖아요. 자식하고 단란히 한 방에서 잔다는 말은, 니가 있음에, 니가 나한테 유용하고 그걸 통해서 내 존재는 증명이 되는데, 사무라이가 와가지고, 눈만 내놓고 얼굴을 검은 보자기로 다 싸맨 그 사무라이가, 그것도 둘째 아들은 필요 없고 첫째 아들 다 찔러죽이고 나갔다면, 이건 섭섭한 정도가 아니에요. 섭섭한 정도가 아니니까, 성경에 보니까 집마다 곡성. 통곡소리가, 울음이 계속 일어나는 거예요. 그럴 때,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뭐라고 했습니까? 단순한 거니까 답변해주셔야 해요. 하나님이 다녀가셨다고 할까요? 사탄이 다녀가셨다고 할까요? 사탄이 다녀가셨다. 왜냐하면 믿음의 세계에서, 통일되니까, 통일은 내가 난 자식하고 자고, 딸은 옆방에 자고 아들은 저 방에서 자고, 이렇게 통일 된 것을, 자기 존재증명인데, 이것을 훼손했을 때는, 나한테 손해를 끼치는 것은 전부 다 사탄이에요. 왜? 나의 의미는 유용성이기 때문에. 나한테 이익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믿는 이유가 내 존재를 확인해주고 증명해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세계냐, 신자에요. 신자. 그래서 모든 인간은 자기를 신봉하는 자기 종교인이에요. 그게 자기의 믿음의 세계에요. 그 믿음의 세계를 외부에서 파괴시키면 뭐가 되느냐 하면, 정체를 밝히는 것과 관계없이 그거는 사탄이에요. 그래서 여기서 공식 하나 나옵니다. 여호와는 뭐다? 사탄이다. 여호와=사탄. 나의 존재를 파괴시키는 사람,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나의 존재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는데, 영생까지 따고 싶은데, 나를 조기에 죽여 버려요. 그걸 파괴시키는 사탄은 여호와입니다. 이걸 인정을 하지 못하면, 내가 바로 여호와를 사탄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나는 바로 여기에 버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성경 한 구절도 못 나갑니다. 니가 사탄이든지, 당신이 공격하는 내가 사탄이든지, 둘 중의 하나인데, 나는 믿습니다. 당신이 사탄이고 내가 참된, 의롭게 살고 있는,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너도 신앙인이고 나도 나름대로, 나름 신앙인인데, 나는 내가 중요한 것을 알고 있는 내 종교에 영원한 충실한 신자다. 왜? 제가 아까 믿는다고 했잖아요. 믿음세계라고 했잖아요. 나는 믿는 자에요. 나는 내 것을 남한테 양보하거나 파괴되거나 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충실한 신도에요. 유일한 신도가 나밖에 없어요. 심지어 우리가 지옥 갈 때도 누가 걸리느냐 하면 내가 걸려요. 힘내! 힘내! 사우나 한번 간다고 이래 생각해! 거기 친구들 많은데 거기 가서 고스톱 치든지, 전처럼 살면 되지 뭐. 물론 물은 없겠지만. 마지막까지 배려하고 끝까지 사랑하고 걱정해주는 것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어요. 나밖에 없어요. 이 충실한 존재를 내가 어떻게 배신합니까? 마지막 존재. 나는 이미 신앙 얻은 자고 이미 신자인데. 그래서 여호와가 하는 모든 일은, 다시 말해서 내가 신자이기 때문에 여호와(여호와=사탄)가 하는 일은 뭐가 되느냐 하면 불신자를 눈에 띄게 하는 일들을 바로 여호와께서 성경을 통해서 행합니다. 지금 이 개념 자체가 완전히 반대됐죠. 하나님 믿어야 신자고,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을 불신자라고 하는데, 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냐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인간은 자기를 믿는 믿음의 세계를 꾸역꾸역 만들어 가고 있어요. 자, 그럼 여기서 쉬는 의미에서 누가 한 번 답변해보세요. 물이 끓는 온도가 100도다. 물이 끓는 이유가 왜 100도인지 설명해보세요. 진짜 어려운 질문입니다. “물이 끓는 온도가 100인 이유는 물이 끓기 때문에.”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거는 미장원 옆에 이발소 있다면, 이발소 어디 있느냐고 하면 미장원 옆에 있다 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이거는 말 하나마나에요. 이건 에디슨이 어릴 때 이야기한 거예요. 사과가 여기 있어요. 사과가 또 여기 있어요. 그래서 이걸 가지고 두개라고 하는 겁니다. 사과1+사과1=사과2 여러분 알았죠? 이렇게 하니까 에디슨이 손을 들었어요. 선생님 왜 이게 2입니까? 러셀이라는 사람이 이거 증명하는데 300페이지가 넘었어요. 1+1=2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세계 최고의 수학자가. 이걸 증명할 길이 없어요. 왜 이걸 3이라고 쓰면 안 되는데요? 왜 이걸 4라고 쓰면 안 되는데요? 왜 2냐? 이걸 증명해보라는 겁니다. 이유 있어요? 없어요? 이유 없는 거예요. 이거는 뭐냐, 약속이죠. 근데 누구끼리 약속한 거예요? 누굴 빼고 약속한 거예요? 사탄(여호와)은 빼고 약속한 거예요.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존재, 그 다음에 의미, 그 다음에 뭡니까? 의미 있다는 것은 유용한 것만 의미 있죠. 집에 올 때, 나뭇잎의 숫자가 몇 개냐? 그건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의미 없는 거예요. 그 다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믿음. 그 다음에 이게 바로 나한테 진리가 되는 거예요. 아이구, 우리 색시는 얼마나 예쁜지. 이건 누가 봐도 진리에요. 남들이 별론데? 내가 예쁘다는데 누가 별로라고 해? 그녀는 예뻤다. JYP가 이야기하는데 그걸 누가 거부해요. 진리가 되는 거예요. 진리를 믿는 신자끼리 물 끓는 온도를 90도 하지 말고, 100도라고 해서, 라면 집어넣자. 약속을 했다 이 말입니다. 이게 진리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이 100도가 너의 죽음 문제를, 너가 안 죽는 것을 보장하느냐 이 말이에요. 진리라면 어떻게 돼요? 죽음 문제도 해결해줘야 되잖아요. 죽음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진리라고 여겼던 모든 것, 내가 신자라고 여겼던 모든 것, 내가 의미 있다고 어겼던 모든 것들이, 죽는 순간에 훅하고 날아가 버려요. 죽는 순간에 포도가 포도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포도라는 것은 맞는데, 죽는 나한테는, 사형수인 나한테는 의미가 없으면 나한테는 진리가 아닌 거예요. 결국 인간들은 너무나 일방적입니다. 일방적이에요. 보편적인 진리는 인간에게 없습니다. 나만 살면 돼요. 나만 행복하면 되고, 나만 즐거우면 되고, 나만 살면 돼요. 따라서 성경을 보면서도, 성경 믿고 하나님 믿고 예수님 피라고 하는 것도, 그것도 진리다? 진리 아니다? 사실은 자기 나름대로 진리라고 우기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전혀 진리도 아니고,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도 아니고, 그냥 놀이에요. 화투놀이나, 포커놀이처럼 그냥 종교놀이, 종교게임 한 거예요. 교회 가면 집사님~!하면서 칭찬해주죠. 사회에서 인정 못 받는 것 교회에서 인정해주고, 봉사 열심히 막 하니까 대중들이 앞서서 막 칭찬해주니까, 어릴 때 칭찬 못 받아가지고 정신이상한 사람처럼, 교회 가서 열심히 충성하니까 막 칭찬받고. 살 보람을 느끼고, 그래. 나는 믿습니다. 주를 위해서, 이래 나오니까 그게 자기에게 유용하니까, 그게 자기한테 의미가 있으니까, 그래! 나는 교회 나와서 예수 믿어야지! 예수 믿었으니까 영생 얻고 천국 간다고? 누구 맘대로? 누구 맘대로요? 그럼 똑똑한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무슨 소리 하느냐 하면, 수 천 년 철학자들이 죽어봐야 안다는 거예요. 자기들도 이게 일방적이라는 것을 알아요. 왜? 서로가 다르니까. 니 예수, 내 예수 다 다르니까. 어느 예수가 맞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기준도 없으니까. 뭐라고 하느냐 하면 살 때까지만 재미나게 살기 위해서 종교를 이용하자. 그렇게 합의를 봤어요. 봤기 때문에 뭐라고 하느냐 하면 죽기 전까지는 재미나게 살자는 거예요. 죽음 뒤는 모른다고 했죠. 모른다. 공자가 이야기했어요. 죽음 뒤도 모르는데 사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그런 소리 했거든요. 모른다고 했죠. 모른다를 다른 말로 하면 무지가 돼요. 무지. 무지는 뭐가 되느냐 하면 믿음의 대상이 되지를 못합니다. 믿음의 대상이 되지 못하면 이거는 결국 뭐냐 하면 유보되는 거예요. 유보. 또는 지연되는 겁니다. 지연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인간이 실선으로 나오다가 점선으로 남겨두는 것을 지연이라고 하잖아요. 그렇죠? 이걸 통합해서 보면 내가 이렇게 죽음 뒤를 모르니까 일단은 그 정도로 보자 하면 이거는 뭐가 대상이 안 되느냐 하면 진리의 대상이 안 됩니다. 진리의 대상이 안 돼요. 진리의 대상이 안 되면 뭐가 깨지느냐 하면 온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어요. 컵을 이렇게 손으로 잡는데, 손이 컵을 잡았다고 생각하는데, 잡는 순간 지지직하고 손이 사라졌다고 합시다. 그런 드라마가 있어요. W라는 드라마. 컵을 쥐니까 손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렇다면 컵을 쥔 손을 내가 온전히 보인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장담을 못하죠. 이걸 가지고 학자들은 불확실성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다. 그러니까 졸지에 신자라고 우기다가 이제 공부 좀 하고 나니까 뭐가 됐어요? 내가 신자가 아니고 불신자라는 것. 불신자가 된다는 말은 뭐냐 하면 확실한 것이 없다는 거예요. 확실한 것이 없다가 된다는 것은 미래를 생각할 수 있어요? 없어요? 미래는 모른다가 되죠. 보험 열댓개 들어놔도 마음은 늘 불안하고, 두렵다 이 말이죠. 믿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이 일을 벌이다가 실패로 끝나면? 투자하다가 투자비용의 이자도 안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 이게 실제로 이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믿을 게 없죠. 불안, 불안 하죠. 그러면 그 방법을 누가 사용하느냐, 주님이 사용하십니다. 우리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우리 자신을 깨기 위해서, 우리가 신자라고 우기는 것에 대해서 누가 흔들어요? 주님이 흔들어요. 너는 아무것도 믿은 적이 없다고 흔들어요. 이게 불신자에요. 흔들게 되면 우리는 가만히 곱게 흔들려집니까? 반발합니까? 반발하죠. 그게 바로 믿음이에요. 반발한다는 것은 내가 아는 대상 말고, 내가 미처 모르는 대상이, 내 세계 바깥으로 활동을 벌이고 왔다는 것을 어렴풋이 감을 잡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몰라요. 정말 이거는 너무나 감격스러워요. 사무라이가 덮치는 거예요. 단란한 가정이에요. 우리는 요 이 식구하고 살고 싶어요. 미리 계산 다 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믿습니다. 나는 이 행복을 믿습니다. 그걸 깨버렸어요. 장자를 죽여 버렸어요. 그럴 때, 내 통일성 있는 현실감은 깨져버렸어요. 내가 신자인줄 알았는데, 미완적이고, 내가 나를 믿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내∙가∙나∙를∙믿∙을∙수∙없∙다∙이 아홉 글자를 두 글자로 줄이면 믿음이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믿음이에요. 그러면 믿음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어떤 경우라도 나를 믿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나라는 말입니다. 절대로 나를 믿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나라는 것은, 이미 외부세계와 컨택contact, 접촉되어 있느냐, 이미 접촉되어 있다. ET가 손가락으로 하잖아요. 달이 떠 있는 하늘을 자전거 타고 날아가잖아요. 외계인과 소년이 손가락으로 컨택 하는 것 있잖아요. 접촉하는 거예요. 접촉을 시도하기 위해서 주께서 오셨습니다. 날 믿으라가 아니라, 날 믿으라는 말은, 니가 알고 있는 믿음의 세계는 그게 불신세계다. 결국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니가 그토록 싫어하는 사탄이, 내가 사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우리의 통일 된 세계를 포개버리고, 박살내고, 엎어버려서, 의미 있다, 유용하다는 이걸 엎어버리는 거예요. 뭐가 의미 있고, 뭐가 너한테 유용하고, 뭐가 관심이 있는데? 그녀는 예뻤다. 뭐가 예쁜데? 늙어봐라. 나중에 주름살이 다 되어버리지. 뭐가 이쁜데? 자식 나중에 돈 문제 걸려 보세요. 자식이 아니라 웬수죠. 뭐가 이쁜데? 두 살까지만 예뻐요. 세 살부터는 말썽쟁이에요. 그런데 그들을 탓하지 마라. 너가 평소에 너를 완전체로 봤던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문제가 있는 거예요.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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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1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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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