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강의 - 요한1서 2016
20160906 요한1서 시카고강의1-이 근호 목사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만든 세상에 우리가 나중에 들어와서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누가 만들었고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확정짓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지금 공부 할 게 요한1서입니다. 성경의 뒷부분에 나와 있으니까 사람들이 별로 주목을 잘 하지 않죠. 창세기부터 읽다보면 지치기 마련이고, 창세기 읽을 때는 재미있다 싶었는데, 레위기는 재미있는 내용이 하나도 안 나오니까 인내성의 한계를 드러내죠. 마태복음 신약의 족보부터 해가지고 슬슬 참을성 없는 사람들은 족보 하다가 걷어치웁니다. 요한일서까지 계속 쭉 간다는 것이 보통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죠.
요한1서를 읽게 되면 요한1서의 내용이 너무나 한정되어서 무슨 이야기인지를 잘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제목 자체는 사도요한이라는 사람이 교회에 편지를 세통을 보냈는데, 첫 번째 편지가 1서고, 두 번째 편지가 2서고, 세 번째 편지가 3서, 그렇게 제목으로 정해놨어요. 근데 요한1서, 2서, 3서를 이렇게 생각하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되느냐 하면 요한복음과 성경 제일 마지막에 요한계시록 나오는데, 그 사이에서 요한1서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아셔야 됩니다.
요한복음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활동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아, 예수님이란 분이 이런 활동을 하셨구나. 요한복음을 보면서, 아, 정말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리어 굉장히 신앙이 깊은 사람이에요. 근데 요한복음을 보면서, 이게 뭐가 어려워? 예수님이라는 분이 오셔서 활동했다. 끝. 전혀 어렵지 않아요. 근데 요한계시록에 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이 어렵다고 해요. 어려운데, 요한계시록은 어려운데 요한계시록을 풀이한 사람의 책을 보면 별로 어렵지 않고 쉬워요.
3차 대전 그런 것 있나 주시하고, 마지막 때를 대비해서 벙커 만들고, 생수마련하고, 3년 환란, 3년 후 환란, 전 환란 이렇게 해가지고 베리칩 안 받아도 돼요. 마트 갈 때 현찰 내고, 카드사용 안 하고, 전부 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현세 살면서 뭔가 피할 거리, 조심해할 거리만 찾는데, 요한계시록 전혀 어렵지 않다. 그렇게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요한일서를 건너 뛴 결과입니다.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사이에 요한일서가 깔려있다고 했죠? 이 셋 다 사도요한이 쓴 거예요.
요한복음 있고, 그 다음에 편지 요한123서가 있고, 마지막 성경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할 때, 요한계시록은 자꾸 이 현실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고,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과거에 이런, 이런 일을 했다는 그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중간에 있는 요한123서는 뭐지? 몽롱해요. 맥주 한 병 먹고 몽롱한 것처럼. 맥주 한 병 먹고는 되지도 않아요. 한두 병은 먹어야지. 몽롱한 것처럼 뭔가 무슨 이야기인지를 몰라요.
요한계시록은 현실에서 주의하라고 그 정도 하면, 그 정도는 나도 알아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거든요. 특히 요한계시록에 1장에서 3장에 보면 일곱 교회 나오잖아요. 일곱 교회 나오니까, 교회? 여기 네거리에도 교회 있잖아요. 그죠? 교회 있고. 주의 사자가 편지 보낸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주의 사자를 통해서. 그럼 주의 사자는 누구지? 교회 다니는 목사님이 주의 사자니까, 주의 사자에게 편지를 보내니까, 그럼 주의 사자는 이런 것 조심 하고, 저런 것 조심하고, 이런 것은 책망 받아야 하고, 이런 것은 칭찬받아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게 되면 요한계시록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 하거든요.
근데 주의 사자가 목사입니까? 그것부터가 이게 요한일서를 다 건너뛰니까 거짓말만 자꾸 등장하는 거예요. 주의 사자는 목사가 아닙니다. 주의 사자는 천사지 목사가 아니에요. 그러면 우리 교회 천사가 왔다는 것을 아는 교회는 기존의 교회가 아니고 영적 교회라야 이게 천사가 관리한다는 것을 알게 돼요. 영적교회. 당회장 목사가 관리한다고 하면 그거는, 이미 그 교회는 교회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려면 요한일서를, 123서를 거쳐야 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옛날에 이런 분이었다. 어? 그거 쉽네. 요한계시록에서 어떤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왜 환상으로 했지? 그걸 알고 싶으면 완전히 그냥 건너뛰지 마시고 요한123서를 경유를 해주셔야 한다는 그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경유를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신 그 일이 역사적으로 있다면 요한일서에서는 뭐가 날아가느냐 하면 역사가 날아가 버려요. 실제로 일어난 역사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고, 이렇게 하셨고, 열두제자를 불러 세우시고, 병을 고치고,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에 대해서 그걸 역사라고 해요. 실제로 일어난 역사. 오늘 아침에 식사를 몇 시에 했고 그게 역사거든요.
그럼 역사가 아니라는 말은 뭐냐 하면, “그게 무슨 소용 있는데?” 이게 역사 아닌 거예요. 이게 역사 아닌 거다 말이죠. 요한일서에서 역사 아니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카고의 거리에서 오늘도 교통사고 일어났을 거예요. 교통사고 나가지고 우리 고향 달성군 논공에서 19살 먹은 고등학생이 탄 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고등학생 다섯 명이 다 죽었어요. 그 중에 안전밸트 맨 4명이 죽고 안전밸트 맨 1명도 죽었어요. 안전밸트 맸는데도, 도대체 얼마나 속도를 냈으면 그렇게 됐겠어요? 다 죽었냐 말이죠. 그게 tv에 나왔어요. 그걸 뭐라고 했습니까? 강의 들었으니까 복습해보죠. 그걸 뭐라고요? 역사에요. 역사.
그런데 역사 아닌 것은 뭐라고요? 애 다섯 명 죽든 말든, 열 명 죽더라도, 세월호가 물에 빠져서 150명 죽더라도, 세월호 아시죠? 하도 유명하니까. 구원파와 관련된 사건, ~뭐 하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 집 엄마가 자궁이 약해서 자식을 십년을 기다렸는데, 세상에! 이번에 또 유산을 했대. 역사적으로 보면, 그 집 역사로 보면 무지무지 중요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요한123서에 보면 어떻게 됩니까? 뭐? 뭐? 뭐? 그래서? 어쩌란 말이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요한1서, 2서, 3서의 내용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동안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이, 그게 뭐냐 하면, 뭐만 믿었어요? 역사적인 희망이나 기대나 믿었지, 성경에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그 내용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그 내용을 빼버렸어요. 이건 큰 실수였습니다. 사람이 역사 일에 관심 있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자기의 일 년 뒤, 한 달 뒤, 아니면 내일 뒤에 관심 두고 산다는 말입니다. 일 년 뒤, 이년 뒤. 지금은 이래도 내일은 나아질 거야. 이렇게 뭔가 미래에 대해서 지금보다 훨씬 나은 행복이나 좋은 상황이 올 거라고 믿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사람은 어디에 갇혀 있느냐 하면 역사에 갇혀있는, 히스토리history에 갇혀 있는 셈이 됩니다. 여기 미국이니까 영어를 좀 써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어 쓰든지, 안 쓰든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히스토리에 갇혀있는 거예요. 역사 속에. 역사 속에 갇혀 있어가지고 하루 스물 네 시간 생각하는 것이 뭐냐 하면, 역사에 관한 것만 생각해요. 역사에 관한 것만. 이걸 가지고 자폐증 증세라고 하는 겁니다. 자폐증 증세. 자폐증이라는 것은 애를 키우는데 바깥에 안 나오고 어디 겁먹은 것처럼 자꾸 집구석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문 닫고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자꾸 또 기어들어가고 나올 생각을 안 해요. 엄마가 노크해도 문 안 열어주고. 이거는 특히 어린애들한테, 요새 이상하게 자폐증 애들이 점점 더 많아져요. 자폐증이죠.
모든 인간은 자폐증 환자입니다. 어디에 갇혀 있어요? 역사에 갇혀있어요. 그래서 역사 안의 이야기는 자기 딴엔 납득되고 이해된다고 생각하지만, 역사 밖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몰라. 바보에요. 무지몽매해요. 이순신 장군? 아, 그거 1592년 임진왜란 때 죽었던,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잘도 알아요. 과거 일을. 그런데 어떤 무당이 와서 이순신 장군을 지금 귀신으로 모신다, 귀신아 물러가라! 이순신 장군은 죽었어. 언제 죽었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죽었다 이 말이죠. 나의 죽음을 적군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면서 죽고. 죽었다는 말은 지금 있단 말입니까? 없단 말입니까? 지금 없는 거예요. 이 귀신아 물러가라! 없는 것을 왜 니는 믿느냐? 이렇게 되겠죠.
그래서 요한일서 1장을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이거 설명하는데 10분이 넘게 걸렸어요. 1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태초는 시간이 없었어요. 역사가 없죠. 역사에 없던 이야기를 이제부터 늘어놓겠습니다. 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역사를 믿던 사람들은 이 요한1서에 대해서 믿음이 있는 사람일까요? 없는 사람일까요? 답변은 간단한데, 역사의 끝만 믿는 사람에 있어서 요한일서의 내용을 믿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믿을 수 없는 것은 믿음이 없는 자예요.
결국 요한일서는 뭘 이야기한다? 너희들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보고 믿음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뭐라고 고집을 부리느냐 하면 “제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고집을 부리니까, 그거는 역사, 니가 아는, 자폐증환자가 헛소리하는 거라고 이야기해요. 결국 이 이야기가. 성경은 우리보고 믿고 천국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너는, 니가 믿는다는 것은, 자폐증환자처럼 역사 속에 갇혀 있는 것만 믿게 돼있는 존재가 너라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 있다? 없다? 믿음은 애초부터 없는데 믿는다고 하니까 성질이 더 나죠. 믿음도 없으면서 자꾸 믿는다고 하니까 성질이 더 나는 거예요.
애가 성적이 안 좋았다. 그래서 엄마가 화를 냈어요. “뭐 했어? 공부 안 하고?” 그런데 애는 애교가 많아서 “에이. 엄마 풀어!” 자꾸 다가오는 거예요. 엄마가 뭐라고 해요? “공부도 못하면서 꼴 보기 싫어. 저리가!” 밀어내는 거예요. 근데 “에이잉~!” 하면서 애가 다가오는 거예요. 주님께서 지금 밀어내고 있는데, 인간들은 뭐냐 하면, 에이잉~하면서 다가오는 거예요. 믿음도 없으면서. 역사를 믿으면서 마치 믿음이 있는 척 행세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일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 세상이 어떤 식으로 쓰여 지는가, 그걸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요한일서의 진도를 나가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요한일서 하나도 이해 못합니다. 읽기야 한국말이니까 잘도 읽죠. 읽으면 뭐합니까?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데. “태초부터”가 무슨 내용인지, 역사밖에 없는 사람은 태초를 설명 못해요. 자, 이 내용에 여러분들이 장단을 맞춰주면 좋겠어요. 제가 이렇게 물을 때, 개인적인 단순한 질문을 할 테니까, 여러분들이 단순하게 답변하면 되는 겁니다. 제가 무리한 논리는 안 하고 여러분들에게 납득이 되는 논리만 뽑아서 묻겠습니다.
여기 컵이 있는데, 컵이 있다. 컵이 카메라에 비쳐야 되는데, 비치죠? 동영상을 보시는 분들을 위해서. 이거 분명히 맞아요? 틀려요? 맞아요. 지금 간단하게 질문하니까 간단하게 답변해야 됩니다. 추임새를 넣어주세요. 있다가 뭐냐 하면 존재죠. 이 컵이 있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증명할 수 없어요. 컵이 있다 앞에 뭐가 생략되어 있어요. ((내가 보기에)) 컵이 있다. 지금 요한일서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누군지. 우리 자신이 진짜 자폐증환자인지 그거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내가 보기에 컵이 있다죠. 내가 보기에는,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눈이 있다죠. 보니까 눈이 있는 거예요. 눈이 있으니까 이걸 지워보겠습니다. 눈을 빼겠습니다. 그럼 내가 있기에 컵이 있죠. 내가 있기에 컵이 있습니다. 근데 내가 망치로 얻어맞았다. 기억을 잃어버렸다. 기억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목사님 앞에 컵이 있었는데요?” “어? 어? 나는 몰라?” 이러면 나한테는 컵이 있어요? 없어요? 그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있더라도 내가 관심두지 않으면 그건 없는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 앞에 사철나무인지, 주인보고 물으니까 모르겠다고 합니다. 나무가 있는데, 분명히 나무가 가보면 있어요. 있는데, 나뭇잎 숫자를 아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분명히 나무들 있잖아요? 분명히 있는데, 한 나무 당 나뭇잎 숫자가 몇 개이던가요? 관심 없죠. 그거는 사실은 나무가 있더라도 이론상 내가 관심 없는 것은 없다가 돼요. 그래서 있다를 존재라고 하는데, 있다=존재. 있다는 뭘 의미하느냐 하면, 나에게 의미가 있을 때만 있어요. 뭐든 게 나에게 의미가 있을 때만 있어요. 나무가 있으니까 나뭇잎 숫자 셀 수 있겠죠. 하지만 거기에 관심이 없어요. 관심이 없는 것은 나한테 없는 것이 됩니다.
지난밤에 시카고에서 부부싸움 몇 건이나 일어났어요? 모르죠. 이거는 내가 알고 싶은 것에서 빠져있으니까, 이거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누구한테 의미 있다? 나에게 의미 있는 것만 있기 때문에, 결국 누구만 있느냐 하면, 천상천하유아독존, 나만 있는 거예요. 나만. 이 세상에 나만 있어요. 그냥 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의미 있게 있는 겁니다. 첫 번째는 있다를 설명했어요. 있다는 것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있다는 것이 의미 있으려면 뭐냐, 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가 있는 거예요. 내가 있다는 것을.
“당신 참 예뻐!” 강의 듣는 사람들은 누가 예쁜지 궁금해 할 것인데, 뒤통수만 보이니까 모르겠지만. 하나의 예를 드는 거예요. 예니까 다른 사람들은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당신, 참 예뻐!” 그런데 다른 사람 보기에는 “별론데?” “내가 이쁘면 이쁜 거야.”여러분 결혼할 때 다 그렇게 했잖아요? 모든 여자들 줄 세워서 골라서 했습니까? 아니죠. 줄 세울 수 있는 그만한 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반경 몇 킬로 내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연관된 가운데서, 그것도 아줌마 빼고, 소녀 빼고, 아가씨들 중에서, 그것도 내 나이하고 얼추 비슷해서, 아래위로 플러스, 마이너스해서 5살 차이로, 그 정도 선에서 마음이 맞아서 한 거예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나한테는 예뻤다는 거예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멱살 쥐고, “니가 여기 있는 모든 여자들 불러봤어?” “아니.” “그럼 니가 왜 그 여자가 예쁘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느냐?” “내가 예쁘면 예쁜 거야.” 결국 그 여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뭐냐, 내가 예쁘다는 주장을 증명해주기 위해서 내 아내는 계속 예뻐져야 돼요. 내가 이쁘다고 하는 여자는 계속 이뻐져야 돼요. 이게 얼마나 일방적인 주장입니까? 이래도 자폐증환자 아니에요? 믿는다고요? 인간은 내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만 믿어요. 나한테 의미가 있고 것만 믿고. 나한테 의미 있다는 말은 뭐냐 하면, 나한테 유용하다는 것입니다. 내 삶에 도움이 되고 내 삶에 보탬이 되는, 나의 유용성. 나한테 유용하다는 말은,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말이에요.
나에게 이익이 될 경우에 그거는 의미가 있고, 그 의미가 있을 때는 나는 관심을 두고, 관심을 두게 되면, 너는 나하고 같이 있는 거야. 내가 존재하듯이 너도 존재해야 돼. 왜냐하면 내가 너를 예뻐하니까 너는 내 허락 없이 사라지면 안 돼. 근데 내 허락 없이 사라지게 되면 우리는, 이게 어디 내 허락 없이 사라져? 라고 하는 감정이 뭐냐, 슬프다. 보고 싶다. 이런 거거든요. 제 말 틀렸어요? 섭섭하네. 이런다고요. 니가 내 앞에서 사라지려면 내 허락 맡아야 돼. 허락 맡을 필요 없는데 왠지 섭섭하지. 안 갔으면 좋겠어. 니 내 옆에 붙어 있으면 좋겠어. 니가 나를 구속하려고 하느냐? 구속이 아니고 뭐 그렇다는 뜻이지. 이런 식으로.
근데 사람들이, 나오는 감정이라는 것이 그냥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 중간에 누가 있어요? 내가 여기 있음에, 있음은 존재입니다. 그 다음에 더 나아가서 내가 나에게 의미 있음에, 존재에서 의미가 들어갔습니다. 왜, 의미 있다고 했어요? 내가 나한테 유용하기 때문에. 나, 니만 내 옆에 있으면 나는 외롭지 않아. 누구 좋아하고? 내 좋아라고. 내 좋아라고 니는 내 옆에서 5미터 밖으로 떨어져서는 안 돼. 늘 붙어 다녀야해. 남녀 간에 연애하면서, 스킨십이라고 하죠.
근데 오늘같이 화씨 92도까지 올라가게 되면, 그것도 모르고 상대방 남자가 스킨십skinship하게 되면, 손 치워라! 근데 날씨 서늘할 때는 만지라고 하면서 왜 손 치우라고 하는데? 지금 날씨 더울 때, 당신의 스킨skin, 피부가 이렇게 터치될 때에 그게 나한테 유용하지 않아. 날씨 서늘할 때는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나한테 유용하지 않아. 땀나. 안 그래도 더워죽겠는데 그런데다 붙으면 36도 되고, 짜증나잖아요. 결국 우리가 뭐 하나님 믿고, 예수님 믿고, 그거는 무엇을 확인하느냐 하면 이 세상은 내 유용한대로,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막 살 거야. 하는 식으로, 이 세상에 일방적으로 의미를 주었고, 나름대로의 유용성을 거기다가 퍼붓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면 군에 갔다, 그런데 비상식량이 다 떨어졌다, 남은 것은 건빵 두개 밖에 없다, 그런데 같은 전우가 두 명 있는데, 그 애도 두 개 다 먹어야 살고 나도 먹어야 산다. 그럴 때는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것이 아니에요. 가위바위보, 또는 묵찌빠, 두개 다 먹기. 왜 그러냐 하면 건빵 두개 남은 상황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던, 어떻게 만들었던, 지금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