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의존교회 160812a (성경해석)-이 근호 목사
서울 의존교회 160812a (성경해석)-이 근호 목사 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디모데후서 3장 16절, 3장 16절하면 중요한 구절이 또 있죠.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상당히 중요한 구절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영생이라는 말을 언급함으로 말미암아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제시한 그 외에는 영생이 없다는 것을 단정 짓죠. 영생을 얻고 싶으냐, 그러면 영생 얻는 방법까지 제시된 것을 수용해줘야지, 영생은 탐이 나고 방법은 자기 방법을 사용하고, 그러면 영생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영생을 언급하면서 영생 얻는 방법까지 이미 제시가 되었거든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므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 방식 외에 다른 방식으로 영생을 아예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이죠. 그 말은 뭐냐 하면 영생을 얻는 방법에 있어서 인간들의 방법을 하나님이 거절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영생 얻는 방법을 따로 제시했다는 말은 인간들은 안 믿는다는 겁니다. 인간들의 사고방식과 영생 얻는 그 모든 시도를 주께서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영생만 탐내지 말고 그 방법에 대해서 수용여부를 밝히라는 겁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면, 여기서 어떤 입장에 있느냐 하면 독생자를 믿을 거냐? 나를 믿을 거냐?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십니까? 지금 이게 어려운 것이 아닌데, 영생이라는 말을 이렇게 끝에 놓았잖아요. 그 앞에 영생 있다, 이렇게 한 것이 아니잖아요? 영생이라는 말 앞에 뭐~ 하는 조건하에 뭐~ 하는 자만 영생을 얻잖아요. 지금 이 조건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말은, 임의로 주셨다는 말은 인간들이 영생을, 영원한 천국 가기 위해서 하는 모든 방법을 하나님이 거절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방법을 거절하겠다는 말은 하나님이 인간을 믿는다는 말이에요? 안 믿는다는 말이에요? 안 믿는다는 거예요. 인간의 방법을 믿지 않는 거예요. 왜? 영생 얻는 방법을 따로 챙겨주셨기 때문에. 그러면 그 영생 얻는 방법이 이렇게 하면 영생 얻는다가 아니라 어떤 인물이 등장해요. 그 인물이 바로, 독생자를 믿음으로 영생 얻잖아요. 지금 제가 어려운 것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독생자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으면, 그러면 인간은 누구와 경쟁관계에 있습니까? 나를 믿을 거냐? 독생자를 믿을 거냐?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 말입니다. 독생자를 빼버리고 인간들이 이렇게 하면 영생 얻는다고 하면 되겠는데, 독생자를 집어넣어버리면 독생자의 하신 일을 믿을 거냐? 하고 내가 한 일을 믿을 거냐? 하고 둘 중의 하나는 선택을 해줘야 해요. 둘 중의 하나는. 그러면 그 선택의 방법은 뭐냐 하면 내가 행한 어떤 것도 안 믿고, 그 다음에 누굴 믿는다? 독생자 예수님이 하신 것을 믿는다. 이렇게 돼야 뭘 얻는다? 영생을 얻는 겁니다. 이것은 곧 뭐냐 하면 자기 믿음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는 거예요. 자기 경험에 대한 불신, 자기 체험에 대한 거부, 자기 방식에 대한 거부, 그러면 인간의 한 평생이라는 것이 무엇이 연결되어 있느냐 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의 연속성이, 연결성이 인생이라는 겁니다. 애를 키우는 사람한테 누가 키웠느냐고 물으면 내가 키웠다고 이렇게 하지, 그러면 누가 키웠겠어요? 근데 내가 키웠다고 하게 되면 무엇을 얻지 못해요? 영생을 얻지 못하고. 누가 키웠느냐고 물으면 주께서 키우셨다고 이러면, “예수님이 내가 키우는 방식을 철회하고, 거부하고 예수님께서 애를 키웠습니다.” 이렇게 하면 애 키우는 문제를 떠나서 그 사람은 영생을 믿는 자가 되는 겁니다. 참 쉽죠~? 지금 이야기가. 너무너무 쉬운 거예요. 더 쉽게 말씀드릴까요? 교회 믿을래? 예수 믿을래? 둘 중의 하나. 하나 둘 셋 예수. 짬뽕이 좋아? 자장면이 좋아? 하나 둘 셋 자장면. 너무너무 쉬운 거예요. 교회 믿을래? 예수 믿을래? 하나 둘 셋 예수. 믿음 있는 사람한테는 그거보다 더 쉬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말은, ‘역시 믿을 구석은 나밖에 없어!’라는 말을 철저히 하는 거죠. 믿을 것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철저히 하는 겁니다. 그러면 예배당이 있으면 저 예배당을 누가 세웠느냐? 하면 우리 교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벽돌 한 장씩 나르고 십일조가 뭐야, 10의 5까지 바쳐가면서, 집 있는 사람은 전세로 빼고 바쳐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 세운 것, 그것 맞아요. 교회는 세웠는데 뭐가 없느냐, 영생은 다 받았어요. 영생이 없어요. 이름을 바꿔야 돼요. 영생 없는 교회. 대한예수교 장로회 영생 없는 교회. 날씨가 덥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주께서 그렇게 하신 거죠. 왜 주께서 날씨를 덥게 했느냐? 날씨가 더우라고 그렇게 온도를 높인 겁니다. 우리는 뭐하면 되느냐, 더우면 돼요. 참 쉽죠~? 날씨 더운 것에 대해서 짜증낼 이유가 없단 말이죠. 그래도 짜증이 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평소에 우리가 자기 몸이 쾌적한 것을 기대하는 습관이 남아 있어서 그렇습니다. 자기 몸의 쾌적한 것. 그러면 그 습관이 남아있게 되면 쾌적하게 안 되는 조건하에서는 원망이 계속 나옵니다. 그게 바로 지옥이죠. 지옥의 특징은 온도가 높다는 겁니다. 온도가 높고 두 번 다시 밖으로 못 나온다는 절망적인 것이 문제가 돼요. 온도가 높아요. 그럼 물로 식히면 되지 않느냐, 물 한 방울이 없어요. 그래서 이 땅에서 아무리 재벌로 잘나가도 지옥가게 되면 인생 망친 겁니다. 인생 헛수고 한 거예요. 실패도 그런 실패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목적이 뭐냐 하면 한 마디로 말해서 이겁니다. 나오라! 이 말이에요. 나오라! 나오라는 이 쉬운 말 가지고 이렇게 어렵게 했어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렇게 길게 이야기 한 겁니다. 간단한데. 달리 이야기하면 너 나올 맘이 있어? 없어? 이걸 묻는 거예요. “성경책을 보고 있나?” “예. 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올 마음이 있어? 없어?” “나올 마음이 있습니다.” 그럼 교훈이 잘 된 거예요. 왜냐하면 일단 나와야 되고, 나오면 갈 곳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일단 나와야 된다. 갈 곳이 있어야 된다. 갈 곳이 있어야 할지라도 들어가야 하니까. 갈 곳이 있으면 뭐합니까? 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죠. 다시 한 번 또 합니다. 나와야 되고, 갈 곳이 있어야 되고, 갈 만한 사람으로 달라져야 되고. 그럼 그 세 가지를 합치면 뭐가 되느냐, 나와야 되겠지? 그치? 이런 뜻이다 이 말이죠. 성도끼리 인사할 때, “아이구, 날씨 덥죠? 안녕하십니까?” 이런 말도 되고, “날씨 더운데 나와야 되겠죠?” 이런 뜻의 인사도 괜찮아요. 그런 뜻으로. “엄마! 나 이번 수학시험 백점 맞았어.” “그래! 그럼 나와야 되겠지? 그지?” “여보! 내가 과장으로 승진되었어.” “아이고! 축하합니다. 근데 뭐, 과장이 되었던지, 부장이 되었던 결국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오려면 그냥 나오면 안 되고 나와서 가야 할 곳이 있어야 되고 그리고 거기에 갈 만한 사람으로 달라져야 해요. 천국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거기에 갈 만한 사람이 못되는데. 남의 이야기죠. 내 이야기가 아니고 남의 이야기가 돼버려요. 천국은 있는 것 정도가 아니고 거기에 들어가려면 거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바뀌어져야 하는 겁니다. 근데 나온다는 이야기는 누가 합니까? 성경에서 이야기하죠. 나왔는데 갈 곳이 없구나? 아! 있다. 이거 누가 이야기합니까? 성경이 이야기하죠. 근데 누가 가지? 그거 누가 이야기합니까? 역시 성경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오늘 본문 참 쉽죠~? 문제는 뭐냐 하면 첫 번째, 나올 마음이 없다는 거예요. 나올 마음이. 세상 더럽다고 나는 뭐 자살하든 내 인생 떠날 거야. 하는데 바람에 뭐가 날라 온 것을 보니까 로또에요. 장난삼아 해봤는데 한 50억 당첨되었어요. 50억 가지고 나가겠어요? 아니면 좀 더 살다 나가겠어요? 성경에서는 나오라고 하는데 발목을 잡아요. 이 세상에 대한 미련들이. 성경대로 나오려고 하는데, 주위에서 이 세상에 니 만한 인재 없다. 이래되면, 그러면 내가 나오면 안 되겠지. 내가 좀 진짜 이런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나가야지. 이러면 서서히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겁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기 위해서 우리는 경제정의를 실천해야 한다. 이런 신학이 요새 대세가 되어가지고 연세대 신학과, 장신, 감신, 저런 데서는 천국이 딴 게 아니에요. 지상에 경제정의실현이 천국이라고 해요. 그들은. 가난한 자가 대우 받고, 어떤 그런 것 있잖아요. 환경운동하고, 세월호 보상금 올려주고, 뭐 그런 것. 그러면 그 사람들은 뭐가 없는 거예요? 나가자가 성립이 안 되죠. 그러면 성경 왜 봅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은 성경이 자꾸 싫어져요. 싫어지고, 인문학 강좌나 해가지고 파워게임해서 정치적 운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근데 성경은 딱 하나에요. “나가야 되겠지? 그지?”라고 하는 겁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그 이야기를 왜 하시는 겁니까? 이번 마태복음 수련회와 관련되어 있는데, 왜 성경에서는 우리보고 나오래요?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 이 세상을 다녀갔잖아요. 이 세상을 다녀갔어요. 다녀갔다는 말은 명성왕후의 노래에 나와요. "이 삶이 다 하고 나야 알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율~ 나 가고 기억하는 이 나 슬픔까지도 사랑했다 말해주길~~"(명성왕후OST) 예수님이 그냥 다녀갔어요. 예수님이 그냥 다녀간 거예요. 다녀가면서 잃어버린 양을 데리고 간 거예요. 자기백성이라고. 그러면 낚싯대로 건지지 왜 다녀가느냐, 다녀가면서 그 코스가 생겨버렸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라고 하는데요. 그 코스를 성령이 와서 빠져나올 자기백성에게 그대로 반복을 시켜버립니다. 반복을 시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그냥 글자라고 어겼던 이 성경책이 이제는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내 안에 실제적으로 활동이 되는, 능력이 되는 말씀으로 우리 안에 들어와서 그 말씀들이 나로 하여금 떠나게 만들고, 떠나면 갈 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리고 그 말씀에 의해서 갈 곳이 있는 정도가 아니고, 그 곳에 가는 사람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이 말씀이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할 때 우리가 학교는 어디까지 나와야 하고, 원어와 헬라어, 히브리어는 어디까지 배워야 하는가, 얼마나 배워야 하고 성경은 몇 독을 해야 하는가, 성경이 뭐로 되어 있다고 했느냐 하면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 있죠. 그러면 그 말씀을 집어넣는 것도 성령의 감동으로 집어넣고, 집어넣어만 주고 니가 알아서 하라고 성령이 손 털고 가버립니까? 어떤 숙제내주고 가는 겁니까? 백날 숙제해봐야 숙제 못해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성령께서 우리 속까지, 우리 속에 말씀을, 이걸 현실화, 실제화 시켜버려요. 실제화 시키는 이유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이제부터 이야기할겁니다. 하나님의 새 언약에 의하면, 예레미야에 예언되어 있고 히브리서에 나와 있고, 마태복음 26장의 새 언약에 의하면, 그전까지는 율법이 하나의 문자로써 마음 바깥에 스톱되어 있지만, 이제 새 언약은 단단하게 악마에게 매여 있는 우리 마음까지 침투를 하셔서 언약이 우리 속에 실제가 되도록 성령께서 그렇게 우리 속까지 들어와 버립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다 들어와 버려요. 그렇게 들어오신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마귀의 권세를 뚫고 구멍을 내놔버려요. 드릴로 드드륵 구멍을 뚫어가지고, 성령이 하시겠다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마귀가 “안 돼요!” 라고 할 수 없도록 구멍을 뚫어 놓은 거예요. 주께서 마귀의 권세를 이기는 그 권세를 가지고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활동을 하니, 늘 우리 몸은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정과 육이 있으니까. 인간의 혈육이 있으니까 어쩔 수밖에 없는데, 어쩔 수 없는데 어쩔 수밖에 없는 것까지도 주께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말씀이 와서 이걸 전환시켜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속에는 뭐가 남느냐 하면 내가 육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을 영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용서와 긍휼의 그 결과를 우리에게 퍼부어 주어서 죄가 된 우리를 우리 안에서 의로 바꾸어 주셔서 감히 더러운 자는 갈 수 없는 그 거룩한 나라,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천국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하게 뉘앙스가 뭐냐 하면 거룩하다. 속된 것은 들어올 수가 없다. 천국에 가보지도 않고 더러운 자는 못 들어간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아느냐? 시내산의 천국이 지상에 그대로 내려오게 되면, 죽어서 가봐야 확인하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성전에 대해서 모든 사람은, 더러운 사람은 거기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구약에 있는 율법 하나하나가 거룩에 대해서, 우리가 죽어서 가는 그 나라가 이미 율법을 통해서 이 지상에, 이스라엘 역사 속에 현실화가 되었다고 이래 보시면 되는 겁니다. 그 특징이 뭐라고 했어요? 두 자로? 거룩이라고 했어요. 거룩. 만약에 거룩한 것의 그 경계선을 넘어버리면 가차 없이 죽여 버리죠. 안식일에 나무하면 죽여 버립니다. 무당한테 점 보러 가면 죽여 버려요. 죽인다는 말은, 이곳은 그렇게 율법을 어기면 죽일 만한 정도로, 그만큼 거룩한 곳이라는 것을 처벌을 통해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처벌이. 이번에 마태복음을 할 때 그런 이야기했죠. 온전한 율법이 뭐라고 했습니까? 온전한 율법은 이미 처벌 자체가 온전한 율법이다. 온전한 처벌이 있다는 말은 율법 자체가 온전한 거룩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천국이라는 거룩한 나라는 예수님의 성령에 의해서 갈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해석을, 제가 이렇게 방금 빠른 속도로 성경해석을 해드렸는데요. 성경을 보는 관점,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 쭉 이야기해드렸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사람은 왜 그런 식으로, 방금 이야기한 그런 식으로 왜 해야 되느냐, 그걸 생각해봐야 해요. 세상에서 건져서 천국 간다. 여러분 이것이 간편합니까? 아니면 이 세상을 천국 만드는 것이 간편하겠어요? 지옥 없이. 인간들아 기다려라. 그래, 죄 졌어? 걱정 하지마. 니가 있는 그 자리를 천국 만들어줄게. 얼마나 간편합니까? 자, 어떤 집단에 열 명이 모였는데, 이 열 명이 다 날씨가 덥다고 짜증내고 있습니다. 근데 어떤 사람이 와서 하는 말이 “여러분, 다 덥고 짜증나고 하죠? 제가 10분 내로 여러분들을 기쁨과 희열이 충만한 공간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자, 이거 한 대씩 피워보세요.” 하고 마리화나를 하나씩 줬습니다. “피워보니 어떻습니까? 아, 이거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자, 이거하고, “여러분들 사는데 힘들죠? 천국 만들겠습니다.” 이거하고. 사실은 같은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심판하시고 십자가 죽으시고 건져내시고. 자, 이 방법하고, 마리화나 하나씩 태우게 해가지고 기쁨을 주는 것 하고 그 차아점이 뭐예요? 어떤 차이점 있습니까? 제가 상당히 어려운 질문을 했습니다마는. 어차피 이래나 저래나 희열과 기쁨이 충만하면 그게 천국이잖아요. 행복이 충만하면. 결과는 똑같은데, 그거 뭐 복잡하게 예수님 오셔서 비난받고 채찍에 맞으시고, 내 나라는 이 나라와 같지 않다고 그런 이상한 말씀 하시고, 제자들은 떠나버리고, 목자를 치니 양떼가 흩어진다는 그런 복잡한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한 대씩 피워 봐! 이래가지고 천국 되면 그런 간단한 이야기를 왜 그렇게 복잡하게 이야기를 하느냐. 무엇이 누락이 되고 무엇이 빠졌죠? 마리화나 피우는 자에게 뭐가 빠졌습니까? 이것은 오늘날 모든 교회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는 겁니다. 죄가 빠졌죠. 사람들은 자기 죄는 생각하지 않고 거룩을 탐을 내고 있어요. 영생을 탐을 내고 있고 행복이 충만하다는 그 천국을 탐을 내고 있습니다. 근데 정작 본인이 누군지는 몰라요. 그냥 탐내면 갈 수 있다고 그렇게 오해한 거예요. 저 멋진 나라는 당연히 내 것이지! 이렇게 생각한 겁니다. 근데 천국이라는 것을 풀이하면 뭐가 됩니까? 하나님의 나라죠. 나라 앞에 누가 붙어 있어요? 하나님의 나라죠. 우린 인간이잖아요. 인간이 왜 남의 나라에 갑니까? 자기 집 놔두고. 어떤 집은 넓고 에어컨 시설이 잘 되어 있고 그 구성원들이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딩동~♬ “애 누구니?” “나 이제부터 여기서 살 거예요.” “왜?” “이 집을 우리 집 하고 싶어요.” “니 뜻이야?” “예. 제 뜻이에요.” “그건 니 뜻이고. 나 안 넣어 줄 거야. 이건 내 뜻이고. 저리가!” 왜, 니 집 놔두고 왜 오죠? 이 문패 한 번 봐! 우리 집. 안 되어 있죠. 하늘나라잖아요. 문패가. 천국 가면서 문패는 안 보고 가요. 사람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요. 그러니까 사람은 들어간다? 못 들어간다? 못 들어가죠. 에덴동산도 쫓겨난 주제에. 어디를 넘봐요. 못 들어가는 겁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배웠던 모든 신앙은 다 잊으세요. 지금 근본적으로 사람들 꼬시려고 자꾸 사기를 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내가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예수 믿으면 천국 갑니다. 아, 좋다. 좋다 하지 말고 왜 가야 하는데요? 남의 집에 왜 가야 하는데? 천국에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니 꽃 없어요. 자기 꽃 없어요. 무슨 꽃을 찾겠니 찾겠니. 꽃 없다니까요. 무슨 꽃이더라. 거기에 다 심어 놓았어야 있지. 지가 천국 만드는데 뭘 기여했다고. 뭘 도움 줬다고 거기에 왜 들어와요. 갈 수 없는 곳이에요. 그러면 하나님 나라라서 인간은 못 들어가느냐, 그래서 이 나라가 무슨 나라냐 하면 아들의 나라가 돼요. 사람의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이 아들의 이름이 뭔 줄 알아요? 그 이름이 놀랍게도 사람의 아들입니다. 두 자로 인자가 돼요. 사람 같은 사람만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람 같은 사람이 있느냐, 그 모델은, 그것은 예수그리스도가 와야 알지, 독생자가 와야 알지, 그거 모르면 못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코스를 만들었어요. 독생자의 코스를 만들면 성도는 그 독생자의 코스대로 가야 됩니다. 그리고 먼저 앞서 갔던 독생자의 코스가 모든 구약성경을 완성하러 오신 거예요. 말씀을 응하려 함이라. 때가 됨에 말씀이 응하니. 제가 지금 25분 동안 이야기한 것은 뭘 자꾸 빼는 거예요? 나도 가야지를 자꾸 의도적으로 지금 제켜버리는 거예요. 나도 가야지가 되는 나라가 천국이 아니에요. 천국이 뭐 사람 수가 모자라서 하나님께서 세일하는 곳입니까? 만들어놨는데 사람은 없고 아무나 오너라. 사거리로 가서 아무나 오라고 해서 그 사람들이 아무나 간 게 아니에요. 반드시 뭘 입어야 해요? 마태복음 23장에서 뭘 입어야 해요? 예복을 입어야 해요. 그러니까 아무나 오라고 해서 아무나 온 사람들은 그게 혼인잔치의 혼주에게 농락당한 겁니다. 혼인잔치에 불러서 구경하려고 왔는데, 왔으니까 들어와서 맛있는 음식에 참여하라고 해야 하는데, 아니 유니폼을 안 입었다고 쫓아내버리면, 유니폼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개개인의 개성을 제거하는 거예요. 유니폼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일률적으로 만들어버려요. 일률적으로. 일률적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 유니폼이 누구를 닮았느냐 하면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예수의 옷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옷이라는 유니폼으로 전부 다 갈아입지 아니하면 혼인잔치에 못 가는 겁니다. 그러면 그 까짓것 예수의 옷 한 번 걸치지. 공짜라니까 걸치지. 하는데, 예수님의 옷이 있어야 걸치죠. 예수의 옷 어디서 팝니까? 어느 메이커에서 팔죠? 혹시 예수님의 옷 여기 신상 나온 것 있습니까? 그런 것 안 팔죠. 홈쇼핑에서 예수의 옷 팝니다. 39,000×10개월 할부 해가지고, 지금 매진 시간 다 되간다고 하면서 뭐 그렇게 팝니까? 예수의 옷이라는 것은 제사장의 옷을 대대로 물려주는 그 원칙을 살리는 것을 예수님의 옷이라고 하는 겁니다. 제사장은 제사장의 혈육이 아니면 다른 사람이 제사장이 될 수가 없어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내 옷을 입은 사람은 반드시 무슨 개념 하에 들어와야 하느냐 하면 자손이라는 개념이 굳어져야 합니다. 자손.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자손이냐, 예수님의 자손이라고 하지 않고 표현을 달리해야 합니다. 의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의의 자손이 어려우면 약속의 자손. 그게 어려우면 아브라함의 자손. 그렇게 되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서. 아브라함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은 공통점이 있어요.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거예요. 믿음으로. 믿음으로 의인된다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430년 후에 율법을 줘버립니다. 법이 오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선악체계가 마중을 나가죠. 저것 지켜야지. 이것 지켜야지. 저것 지켜서 영광을 돌리고 기쁘게 해드려야지. 이렇게 우리한테 법을 마중하는 법이 나와 버리죠. 그러면 이미 관심사가 뭡니까?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데, 관심사가 법을 지켜서 의인되겠다고 나서는 거예요. 제가 지금 하는 것이 성경해석 어떻게 하느냐, 그거 하고 있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2장 21절.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이래 되어 있잖아요. 율법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는 것은 내 자유다. 왜? 내가 율법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면 되는 거지. 니가 왜 시비를 거느냐?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왜?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자체가 지금 노선이 달라요. 무슨 노선이냐 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거예요. 촌에 이렇게 논두렁이나 밭두렁이 있다고 합시다. 두 사람이 서 있어요. 친구사이라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야기 계속 하는 거예요. 근데 한 친구가 이쪽 논두렁으로 가고 한 친구는 저쪽 논두렁으로 가는 거예요. 가면서 계속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점점 이야기하기가 힘들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점점 멀어지니까. 이쪽은 뭐냐 하면 율법으로 의롭다 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쪽은 뭐냐 하면 율법으로 의롭다 함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가는 거예요. 근데 한국교회는 뭐냐 하면 예수도 믿고 율법으로 의롭다 함도 되고, 둘 다 하는 겁니다. 왜? 교회 운영을 위해서 돈이 나와야 하니까. 교회 봉사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거기에 의미를 줘야하니까. 예수만 믿으면 천당 간다고 하면 교회는 있으나마나 되니까 그게 겁나는 거예요. 논두렁이 뭐냐, 백날 해봐야 둘이 직각으로 갈라진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한두 달 친구야 하다가, 그런 식으로 계속 살다 오년이 지나서 만났다. 이야기하면 둘 다 이야기 안 통합니다. 한쪽은 십자가 이야기하고 한쪽은 그렇게 사람들 격려해서 교회가 이 만큼 되었다는 이야기하고. 요새 교회 되려면 지시와 잔소리를 해야 돼. 그렇게 안 하면 교회 안 돼. 지금 교회가 되냐, 안 되냐를 이야기하고, 이쪽에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를 이야기하고. 이쪽은 예수 믿어서, 목사가 말씀 시키는 대로 해서 얼마나 우리 가정이 행복하냐를 이야기하고. 그러니까 그 사람은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좋은 가정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거예요. 좋은 가정이 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술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담배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지금 그런 이야기 하고 있고. 또 다른 쪽은 뭐냐 하면 천국에 가려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주님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는 쪽으로 가야 영생이 있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가 갑자기 논두렁밭두렁 생각이 나서, 옛날 가수 논두렁밭두렁이라는 것이 있어요. 논두렁밭두렁 항상 생각하세요. 처음에는 친구야! 하고 뭐 일가친척이 통하는데, 점점 성령의 감동을 받아버리면 요만큼 벌어진 각도가 나중에는 어이! 해도 못 알아들어요. 점점 더. 그런데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이 않고자 하는 자들은 외로워져요. 왜냐하면 멸망으로 가는 길의 사람들이 숫자가 바글바글하죠. 적읍시다. 바글바글. 이쪽은 휑함. 바람이 분다~~ 휑해요. 없어요. 없어. 이건 농담이지만 그래서 지옥이 더운 거예요. 천국은 좀 평수가 넓어요. 휑해가지고. 방금 한 것은 농담이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적은 자여 두려워 말라 천국이 너희 것이다. 적은 자여! 중간에 빼버리면 천국이 너희 것이다. 천국은 적음을 경험해야 한다. 외로움을 경험해야 되고 소수를 경험해야 되고. 근데 사람들은 이렇게 소수이야기하면,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이겠지. 이게 앞뒤가 안 맞아요. 소수이야기 해놓고 나중에 다수가 돼버리면 왠지 기분이 좋아가지고. 논두렁밭두렁 이 비유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이 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외롭다고 처음에 그렇게 느낄 거지만, 갈수록 뭐냐 하면 십자가에 관심이 있지. 내가 왜 외롭냐? 휑하냐? 나중에는 그것도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겁니다. 갈라디아서 다시 읽어보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이 말을 이렇게 바꿔보겠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멘트로 하게 되면 “만일 착해서 복 받는 경우가 하나님의 말씀 지켜서 그렇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헛되이 죽인 것이다.” 이제 확 다가오죠. 복 받기 위해서 착한 일 하고자 한 그것이 곧 예수님을 헛되이 죽이는 것. “나한테는 당신 죽인 소식은 이야기 하지 마소. 나한테는 다 헛소리요. 저리가세요.” 라는 사람들만.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나는 말씀 지킬 거야. 시킨 대로 할 거야. 그래서 착하다는 소리 들어서, 그러면 반드시 거기에 대한 상급과 보상이 따르겠지. 그 보상을 반드시 따내고 말거야. 이럴 경우는 예수님을 헛되이 하는 거예요. 여기 논두렁에서 이쪽으로 가는 사람은 아무것도 행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큰 보상을 주십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오늘 같은 경우 경산시 하양읍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주께서 어떻게 40.3도로 올리시는가. 전기 누진세 나오도록 최고 기온 40.3도로 올려놔버렸어요. 주여. 이 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왜 그러면 하양에 사는 사람들은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지. 그럼 40도에서 35도로 낮춰줄 건데. 뭐 벌 받아서 그렇게 된 거예요? 의에는 벌이 있을 수 없어요. 왜? 의롭기 때문에. 의로운 자에게 벌은 없습니다. 그 자체가 정상적인 거예요. 어떤 형편이든지 가장 정상적인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고. 왜냐, 형편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의가 계속 의로 내 속에 살아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거예요. 문방구에 보면 애들 장난감을 파는데 긴 빨대 같은 것에 끝에는 아주 작은 바구니처럼 생긴 것이 달려있고 그 안에 공이 들어 있어서 훅 불면 공이 공중에 떠올라서 한참 놀다가 숨 좀 훅하고 내뱉으면 다시 공이 바구니로 떨어지는 그런 장난감 있잖아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가 이 장난감처럼 계속 하게 되면, 이게 바로 코스가, 항상 이 코스를 생각해야 돼요. 노선을 생각해야 돼요. 지금 날씨가 추우냐? 더우냐? 내가 돈을 얼마나 버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어느 노상에서 살고 있느냐, 노상이 중요한 거예요. 좁은 길이잖아요. 좁은 그 다음에 길. 들어갈 때는 좁은 문. 좁은 문 출판사가 있어요. 좁은 문, 좁은 길. 길 위의, 도상의 존재라는, 마르셀 실존주의 철학자 그 사람의 주제가, 인생이라 하는 것은 어떤 스톱을 지켜서 보지 마라. 길을 봐야 한다. 그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길이 그 사람의 본질이고 가치다. 이래 본 겁니다. 아무리 남한테 칭찬받더라도 그 길이 어떤 길인지를 다시 조사를 해야 되죠.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의 길은 어떤 길이에요? 성매매 하는 길이죠. 그 길이 어느 길이냐 말이죠. 어떤 분이 복음을 알아서 그렇게 하면 니는 도대체 어디서 어떤 성경을 배웠기에 그런 식으로 보냐? 라고 원초적인 문제, 원본적인 문제를 제시할 거예요. 그때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배웠던 것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신 코스를 소개한다. 이렇게 하게 되면 일단 정답이에요. 예수님의 코스가, 일단 노선이 되어야 우리는 그 노선을 따라가는 식으로 그리스도에 합세가 되거든요. 그러면 예수님이 가시는 코스는 뭐냐 하면 말씀이 완성되어서 성령에 이끌리어 갔거든요. 예수님도 성령에 이끌려 가고 우리도 성령에 이끌려 간다면, 결국 우리 안에는 말씀의 완성태로서, 말씀의 완성태가 아까 이야기했던 문방구에 있는 장난감처럼 항상 남아있는데, 그 말씀의 완성 상태를, 그걸 거룩이라고 하고, 그걸 의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전체적인 감이 잡히죠. 이야기 안 해도 벌써 감 잡았지만. 성경해석을 할 때 제 말을 여러분이 인정하신다면 기본적으로 지금 뭐가 빠지는 거예요? 나는 저거 하고 싶은데, 나는 이거 하고 싶은데, 나는 이거 얻고 싶은데, 인간의 모든 요구가 전부 다 배제된 상태에서, 성경 자체에서 바로 예수님과 연결시켜야 그게 성경해석이다 이 말이죠. 왜냐하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 있고, 감동으로 되어 있는 구체적인 인물은 오순절 날 비둘기 같이 성령을 받은 예수님하고 관련이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한다 이 말이죠. 예수님을 증거 해야 하는데 자기가 직접 성경을 맞춰버리면 이거는 신천지나 여호와 증인이나 그거밖에 안 돼요. 네비게이토 그런 것 밖에 안 된다니까요. 네비게이토가 맨날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성경구절 시험 치는 거거든요. 몇 개 많이 외우면 선교시켜주고. 여러분 컴퓨터 보고 시험 칠 때, 컴퓨터야 3+5=? 답은 8. 옳지. 그러면 2×7=? 답은 14. 그럼 우리도 3+5=8, 2×7=14 이렇게 하게 되면 인공지능하게 됩니까? 그 경우의 수를 칠십오만사천오백개 하면 우리도 컴퓨터 되는 거예요? 이억오천개 하면 컴퓨터 되는 겁니까? 성경구절 많이 외우면 우리가 진짜 성령 받은 사람이 맞아요? 아니죠. 성령이 하는 기능이 우리 속에 현실화되어야지, 성경구절 외우는 그거는 요새 성경사전도 나와 있겠다 찾아보면 되잖아요. 그걸 외웁니까? 뭐 자랑질하려고요? 주께서 뭐 인공지능을 하늘나라에서 받습니까? 하늘나라 딱 들어가면 천사가 스톱! 잠시 스톱! 차에서 내리세요. 뭐 음주운전 측정하듯이, 디모데후서 3장 16절 외워보세요. 수련회 가서 자장면 먹기 위해서 성경구절 외우는 그거 하는 거예요? 지금? 못 외우면 자장면 안 줘요? 나는 그거 못 외워서 자장면 안 주는 수련회는 못 봤지만. 그거 외우면 합격합니까? 그럴 때는 이렇게 하세요. 그거 성경 나와 있잖아요? 이렇게 하면 정답이 되는 거예요. 성경책에 어떤 구절이 있는가가 아니라 내 안에 성경이 어떻게 살아 있느냐 이게 더 중요합니다. 내 안에 살아있는 게. 그럼 어떻게 살아 있느냐, 의로 살아있죠. 거룩으로 살아있죠. 누가? 그리스도가 함께 있으니까. 그리스도가 가로 채는 거예요. 그 모든 성경말씀을.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간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갈 길은, 우리에게 일어난 인생의 현상은 이미 분명해졌습니다. 자, 그러면 예수님의 가는 길의 특징이 뭐냐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있고, 예수님은 저리 가고. 아, 예수님이 저리 가는구나! 이게 예수님이 가는 길이 아니고. 멀쩡한 세상도 주님이 가게 되면 그 주변이 뭐로 바뀌느냐 하면 마귀의 정체가 폭로가 돼요. 복음이 가는 곳에 비 복음적인 요소가 폭로가 된다 이 말이죠. 따라서 성령 받은 성도의 특징이 뭐냐, 어느 자리에, 어디 가더라도 그 주변이 졸지에 뭐로 바뀝니까? 비 복음적인 사고방식이 출몰하는 것이, 이게 탄로가 되고 노출이 되고 폭로가 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성도가 교회 가버리면 그 교회는 마귀적 교회라는 것이 폭로가 돼버려요. 물론 폭로된다하니까 폭로되는 현상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나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믿음 없는 사람입니다. 왜? 가만히 있어도 주께서 그렇게 하게 하시는데 꼭 지가 나대서 결과를 보겠다는 것은, 자기 계획대로 접수하겠다는 건데, 이거는 하나의 열등의식에서 나온 것이지. 성도가 무슨? 그리스도 의 안에 있어서 의인 됐는데, 왜 남한테 기죽고 삽니까? 열등감을 왜 느껴야 되죠?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잖아요. 그럼 열등감 느낄 필요가 없죠. 가만히 있는데 의의 자리로서 의가 들어와 버렸으면, 이게 새 언약이라는 말이죠. 들어와 버렸으면 뭔가 출렁출렁, 뭔가 들어있구나. 이게 뭐지? 뭐가 들어있지? 맥반석인가? 안 그러면 담석인가? 뭔가 덜렁덜렁 들어있는 걸. 왜 열등감을 느끼느냐 이 말이죠. 하나님 의가 있는데. 오히려 자랑질을 해야죠. 니 그래 살면 수치당한데이. 나는 주님의 의가 있기 때문에 수치당하지 않아. 이런 게 있어야 된다 이 말이죠. 진주를 개한테 던지면 안 됩니다. 도리어 짓밟아 버려요. 사도바울이 마음대로 설친 게 아니고, 오히려 주께서 인도한대로 그냥 살았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고. 3년 해야 할 일을 성질 급해서 6개월 만에 예수님이 해치운 것이 아니거든요. 반드신 스케줄 따라서 했어요. 주님이 만든 시간표 따라서 했습니다. “때가 되매” 때가 되매 올라가자. 또는 내려가자. 스케줄 따라서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이 정상인 것처럼 그 제자들도 예수님 스케줄 따라 딱딱 그렇게 해야 돼요. 누구는 부르고, 누구는 고기 잡다가 부르고, 어떤 사람은 세리하고 있을 때 부르고, 한꺼번에 열두 명 부른 것이 아니거든요. 때가 되어 불렀다 이 말이죠. 그래서 제자들이 실수하고, 오류하고, 배신하고, 주의 일을 몰라도 그 자체로 극히 정상적인 거예요. 제자들이 그걸 자책하는 것이 아니고, 마태복음이라는 것을 써가지고 오히려 자랑하듯이, 옛날에는 이렇게 철이 없었다고 까발리잖아요. 그걸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위로를 받습니까? 마태도 이거밖에 안 됐어? 누가 높으냐? 이거 뭐 제자들이 할 소리야? 그 말씀이 지금 우리 속에 반복이 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예수 믿는데 남보다 더 잘살아야지. 이게 누가 높으냐? 하고 똑같은 소리에요. 우리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 말씀이 와서 내장되어 있으니까 이게 까발려지는 거예요. 자, 그러면 진도를 나가보겠습니다. 성경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연결이 되어야 해요. 연결이. 연결이 돼야 돼요. 성경해석 전체가 그 소세지 있죠? 줄줄이 소세지. 하나 잡아당기면 줄줄이 다 따라 나오잖아요. 애들 소풍 갈 때 그거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따라 나오듯이 성경구절 하나 잡아당기면 줄줄이 따라서 전부 다 연결이 되어 있어야 돼요. 오목사님이 수련회 소감 썼죠. 연결이 너무 잘 되어 있어요. 참 이런 이야기하면 제가 기쁜 게 있어요. 그럼 이런 이야기하면 이미아씨 글은 이건 글도 아니고 개판되거든요. 근데 자기 글이 별로, 목사님한테 별로 인상을 못 받은 것은 본인입장에서는 이거는 땡잡은 거예요. 지난번에 칭찬 너무 받았잖아요. 안 그래도 지금 마귀의 시험 들기 직전인데, 거기다가 연타석 홈런 때려버리면 이거는 뭐 이미아!, 이미아! 이런 다 이 말이죠. 살짝 바꿔서 오목사님한테 하게 되면 이미아씨는 나는 인간도 아니구나. 죽어야 돼. 나는 쓸모없어. 나는 끝났어. 끝났어. 그게 참 천만다행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다음번에는 오목사님이 작살나버리죠. 흐름이 있는데, 그 흐름 잡기가 참 힘들어요. 이 말 단어와 이 말 다음에 왜 꼭 다른 단어 말고 이 말이 등장해야 하는가. 다른 단어 말고 이 말이 꼭 등장해야 하는가. 그 안에 흐름을, 연결성을 끄집어내야 해요. 그러면 도대체 그걸 어떻게 끄집어내야 하는가. 그 끄집어내는 방법이 궁금해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게 뭐냐, 바로 역사입니다. 구약에 이게 참 잘나와 있어요. 구약 역사를 인간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주께서는 약속을 깔아놓고 약속과 그 다음에 숨어 있는 약속이 들어오면서, 여기서 역사가 형성이 돼요. 따라서 이 약속이 반드시 일어나야 될 이유는 이 약속에 대해서 백성들이 범죄 하게 됩니다. 모든 역사는 뭐냐, 범죄의 역사에요. 죄를 지은 순간 하나님의 그 다음 약속이, 죄지었다. 절망하지마라. 내가 이럴 줄 알고 이 약속을 준비했지. 하고 숨겨져 있는 약속이 딱 등장할 때, 타이밍이 된 겁니다. 그래서 아기 이유식을 처음 먹일 때, 아기가 이유식을 거부하잖아요. 이럴 줄 알고 또 내가 다른 맛있는 분유를 준비했지. 분유를 처음부터 이야기하면 안돼요. 바로 달려들 때는. 내 본성의 죄가 무엇을 거부하고 무엇을 실패를 하고 있다는 것을 들추어진 상태에서 그 다음에 준비된 약속을 줌으로 말미암아 죄의 깊이는 점점 더 내려가고, 의는 하늘에서 점점 많은 의가, 점점 더 그 다음의 계시에 의해서 주어지게 되면서 연결고리를 갖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