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61 - 불연속성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61 - 불연속성 16,08,08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172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디서 배우는가? 일년에 세 차례, 즉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에 세미나를 열죠. 가야산에서 세미나를 열 듯이 여는데, 성전에서 아버지 전체를 모아놓고, 즉 가장들을 모아놓고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가르쳐서, 그 가르친 것을 아버지는 가정에서 교육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만큼 "그것은 내 아들이다" 라는 겁니다.
◈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디서 배우는가?
지금 우리가 잠언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이 잠언서는 성경전체 안에 들어있는데, 그러니 이 잠언서를 알려고 하면 성경전체를 알면 된다는 것이다. 잠언서를 하면서 성경전체와 연관을 시켜주어야 하는데, 잠언서의 이야기와 성경의 다른 곳에서 하는 것이 다르다면, 그것은 틀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창세기를 하든 출애굽기를 하든 잠언서를 하든, 성경의 어느 곳을 이야기하든 간에 동일한 것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최종적인 동일한 것이 어떤 것인고 하니, "천국을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그 천국 백성들을 이 땅에서 만드시고, 그들을 소환해서 불러내시고 모집하신다" 라는 것이다. 그런 내용으로 요약하게 되면 그리 틀린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겠는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고 하니, 일단 천국을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천국을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데 말이다. 성경전체의 내용을 쉽게 해보면, 첫째로 "천국이 있다" 라고 한다면, 이 천국은 말 그대로 하늘나라, 혹은 하나님 나라, 아들의 나라, 혹은 성령 안, 예수 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 같은 의미라는 것이다.
◈ 하늘나라와 땅의 나라 !!
그러면 성경은 이 천국을 설명함에 있어서, 반드시 대조가 되고 대비가 되는 개념을 가지고 설명을 하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땅, 혹은 땅의 나라, 인간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나님 나라와 인간의 나라를 대비시켜놓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고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하나님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가 대조가 되고 대립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찰을 일으키고 투쟁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 대조와 대립이 되는 나라 !!
옛날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를 보게 되면, 인간의 나라는 하늘나라의 눈에 보이는 하나의 분점으로서, 하나의 그런 지점처럼 여겼다는 것이다. 즉 "이 땅에 잠시 살다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되지" 라는 식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도 역시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한다고 했는가? 대조, 혹은 대립이 된다고 했는데, 그래서 서로 충돌이 되고 다툰다고,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조가 된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 땅의 나라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 다음에는 죽어서 가는 공간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면 그들에게 그 공간은 하늘나라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이 이 땅의 나라를 하늘나라의 일종의 분점으로 생각하는, 그런 부담이 없는 하늘나라와 실제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하늘나라는 서로 같겠는가? 그게 아니면 서로 대조가 되겠는가? 당연히 서로 대조가 되고 대립이 된다는 것이다.
강의 초반부터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 전혀 별개의 내용들이 나오는데 말이다. 이 땅에 살면서 교회나 성당에서 사람들을 모집하면 거기에 가서 자기가 그리워하던 하늘나라에 간다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내용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심에서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인간이 생각한 하늘나라와 진짜 하늘나라와는 대립이 된다고 하면, 그러면 인간들이 생각한 하늘나라는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곧 지옥이고 사탄의 나라라는 말이다. 인간의 나라인 땅의 나라와, 그리고 자기들이 생각한 하늘나라, 그것을 내세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내세를 만들어서 그것을 둘로 나누었는데, 하나는 천국이고 다른 하나는 지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착하게 살면 그 공로로 천국에 가고, 반면에 악하게 살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 그게 인간이 구상할 수 있는 한계이고 전부라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이런 아이디어는 진짜 하늘나라와는 전체적으로 대립이 되고 대조가 된다는 것이다.
◈ 예수님을 믿고 지옥에 간다 !!
그러니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 라는, 그것이 곧 "예수님을 믿고 지옥에 간다" 라는 멘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는지가 중요하고, 그리고 그 예수님이 어떤 예수님인지, 그게 중요한 것이지,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간다" 라고 편하게 생각하게 되면, 자기가 소속되어있는 세계에, 자기가 이미 예상하는 세계에, 그런 세계에 죽어서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지옥에서 와서 지옥으로 간다" 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하늘나라가 많겠는가? 땅에서 이야기하는 하늘나라가 많겠는가? 즉 땅의 나라의 연장선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내세의 입장에서의 하늘나라가 말이다. 과연 어느 쪽을 이 세상에서 많이 이야기하겠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두 번째인데, 그런 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고 하니까, 그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의 장례식을 할 때 나오는 멘트들인데, 천주교와 기독교와 불교에서 골고루 다 하는데, 그들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신부와 목사와 중들이 나와서 뭐라고 하는가? 그 범위가 바로 여기 두 번째인데, 땅의 나라의 연장선으로서의 하늘나라라는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에 나오는 죽을 때의 장면이나, 신문기사에 나오는 내용들이 무엇인가? 아이를 세 명이나 키우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엄마가 있다고 하면, 그 아이들이 엄마에게 뭐라고 하는가? "우리 엄마는 좋은 나라에 갔을 거야" 라고 하는데, 바로 그 좋은 나라가 바로 여기 두 번째의 나라인데, 즉 사탄의 나라라는 것이다.
◈ 연속인가? 불연속인가?
그러니 따지고 보면 인간들의 생각은, 이 땅의 나라와 내세가 연속적이라고 여기는데, 하지만 성경은 그게 불연속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무엇인고 하니까, "십자가 외에는 구원의 능력이 없다" 라는 것인데, 오직 십자가라는 말이다.
그렇게 오직 십자가로만 천국에 간다는 것을 예수님이 그 당시에 누구에게 이야기를 했는가? 천국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천국도 믿고 여호와 하나님도 믿는 그들에게 뭐라고 하셨는가? "너희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하셨는데, 심지어 12제자들도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처소를 마련해서 다가오셔야 한다는 말이다.
◈ '들어가지 못한다', '들어간다' !!
그러니 인간들은 들어가는데 실패하고, 반면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는 것은 성공이 되고, 이 두 가지 사실이 십자가 사건에 담겨있다고 하면, 그러면 십자가는 무슨 의미인고 하니,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것과 '들어간다' 라고 하는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교회에서 목사들이 할 수가 없는데, 그렇지 않아도 오랜만에 교회에 나왔는데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면, 그들은 "그러면 들어간다고 하는 교회에 가란다" 라고 하면서 나가버리면, 교회가 그만 텅텅 비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꼬드겨야 하는데, "세례를 받으시고 성만찬에 참여하시면 그 이름이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아무튼 간에 사람들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미지, 굿판 !!
그렇게 붙드는 것을 가지고 이번 마태복음 수련회에서 세 글자로 표현했는데, 그런 모든 방식을 두고 '이미지' 라고 했고, 그 이미지로 말미암아 알 수 없는 공포를 누그러뜨리는 것을 무슨 판이라고 했는고 하니, 혹시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기억이 납니까? 물론 기대하는 제가 잘못인데(ㅋㅋ),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재앙이나 저주를 누그러뜨리는 것을 '굿판' 이라고 했는데, 일종의 살풀이라는 말이다.
이미지는 눈에 보이는데, 그렇게 눈이 보이는 것을 가지고 자기의 공포를 누그러뜨리면서 자기가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 굿판을 큰 교회라고 하고 작은 굿판을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니 사람들이 이왕이면 어느 굿판에 가고 싶어하겠는가? 큰 굿판에 가서 살풀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연속성밖에 없는데, 즉 "여러분, 나쁜 짓을 하지 마세요. 좋은 일을 하시면 복을 받아서 천국에 갑니다" 라고 말이다.
그러니 골치 아픈 신학이나 두꺼운 성경도 필요가 없고,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다시 내어놓는다는 것이다. 신부나 목사들이 말이다. "여러분, 착하게 살았지요? 조심조심하면서 악한 길로 가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긴장하면서 살았지요? 그러면 복을 받습니다. 천국에 갑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무엇이 빠졌는가?
십자가가 그만 빠지고 없는데, "올 수 없다" 라는 것이 말이다. 지금 12제자도 가지를 못하는 나라에 가야만 하는데 말이다. "올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넣어줄 게" 라고 하는 두 가지가 다 결합되어있는 사건이 곧 십자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두고 어리석다고 하는데,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해 보인다는 말이다. "아이고, 그것을 누가 믿겠노?" 라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것이다. 터무니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 터무니없는 이야기 !!
오늘 강의제목을 '터무니없는 이야기' 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그 어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리로도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함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따지고 따져서 살아가는데, 그래서 그것이 믿을만하다 싶으면 그쪽으로 선택해서 그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인간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믿을만해서 믿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따지는 것인데, 믿음은 믿을만해서 믿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란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말하는 믿음은 자기가 평소에 알고 있는 것의 끝 부분에 이어져있는 것이 바로 믿음인데, 즉 앎의 복합체이고 앎의 누적이라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그것을 '믿는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 음주운전은 싫어 !!
여러분이 버스를 탄다고 하면 술을 마시지 않는 기사가 모는 버스를 타겠는가? 아니면 술을 마셔서 얼굴이 벌겋게 된 기사의 버스를 타겠는가? 만약에 그러한 버스를 탄다면 무슨 일이 생길 것이 분명한데, 그러니 그런 버스는 당연히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버스는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인데, 자기의 누적된 경험으로 보면 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그러니 인간들이 생각하는 믿음은 단절된 게 아니라, "나는 안다. 이 정도는 안다. 더 안다" 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믿는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믿음을 깨보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경험상 그 정도는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런데 그런 믿음을 가지고 성경의 모든 말씀을 대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되면 자기의 지식의 연속성 안에서 성경을 왜곡하고 곡해해서 일방적으로 쓸어서 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식으로 아무리 성경구절을 많이 외운다고 해도, 그것을 해석하라고 하면, 자기가 아는 것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이제 목사가 귀한 줄 알았으면, 월급이나 좀 올려라 !!
그래서 장로님들에게 설교를 해보라고 하면, 목사가 자리를 비우면 종종 설교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 설교를 듣게 되면 교인들이 돌아서서 하는 말이 있는데, "자기의 경험밖에 없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성경말씀 속에서 수영을 해야하는데, 정작 성경은 아는 게 없으니, 성경구절을 한 절 읽어놓고는 자기가 은혜를 받아서 잘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말이다.
그래도 30분을 채우는 것이 쉽지가 않는데, 군대 이야기가 들어가면 겨우 채워진다는 것이다. 군대에서의 축구 이야기가 나오면 40분이 넘어가고, 그러다가 6.25 이야기가 나오면 무려 50분이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설교를 하고 내려오면서 "아무리 못나도 목사는 목사야" 라고 하는데, 그러면 나중에 그 소리를 듣고 목사가 뭐라고 하는가?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되겠지?" 라고 하면서 교만의 비틀거림으로 등장하는데, "주의 종을 아무나 하나? 설교를 해보니 힘들지?" 라고 하면서 자기의 자랑거리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자기가 설교를 좀 한다고 해도 경험의 연속성 외에는 내놓을 것이 없는데, 사실 목사도 마찬가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데, 제자들도 가지 못한 천국을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장세워서, 제자들의 그 불신을 우리 속에서 되풀이를 해줌으로서, "너희들의 믿음으로는 전혀 안 되지? 그러니 내가 십자가의 능력으로 구원을 하는 거야"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 우리 안에서 반복되는 제자들의 불신앙 !!
그것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반복해서 적용을 시키는데,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성경말씀을 보면서 제자들을 욕하면 안 되는데, "이런 놈들도 제자라고?" 라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욕하는 그 제자들의 불신앙을, 그것을 지금 우리도 매일같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는데, 믿음을 연속적으로 붙잡고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믿음은 붙잡는 것이 아닌데, 오히려 믿었으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운전을 하시는 분은 주님이지 우리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 복음 자동차 !!
앞으로 자동으로 운전이 되는 자율 주행 자동차가 나온다고 하는데, 빨리 그런 차가 나와서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우리가 운전대를 잡으면, 요즘 같이 더운 날씨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그리고 잠시라도 졸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자동으로 운전이 되지 않으니 운전자가 모두 다 알아서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동운전이 아니라 자기가 해야한다는 것이다. 혹시나 시험에 들까 싶어서 정신을 바짝 차린다고 하면서 용을 쓰고 하는데, 하지만 나이가 들면 모두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세월 앞에 장사가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젊어서는 그래도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설교시간에 긴장을 해서 듣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 시작한지 5분도 되지 않아서 고개가 저절로 내려가는데, 그것도 그럴 것이 낮 11시가 평소에 집에 있을 때는 낮잠을 잘 시간이라는 것이다. 오후 3시도 역시 그러하고 말이다(ㅋㅋ).
자기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니기에 몸이 이끄는 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설교시간에 잘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말이다. 믿음은 자기가 붙드는 것이 아니라 자율 자동차, 즉 운전대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자동차에 맡기고 그냥 마음놓고 자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깨어보면 목적지에 도착해있는데,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그런 자율 자동차가 나와야하는데 말이다.
◈ 자꾸만 미끄러지는 예수님 !!
제자들은 자기들이 걱정되는데, 자기들의 마지막 운명이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메시야는 왔고, 그런데 메시야와 자기 사이에 연속적으로 되기 위해서 뭔가를 붙잡아야 하는데, 그런데 붙잡으면 미끄러진다는 것이다. 무슨 참기름을 발랐는지 주님은 계속해서 엉뚱한 소리를 하신다는 말이다.
그래도 악착같이 붙잡으려고 하면 주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한다" 라고 하시는데, 즉 "목자를 치니 양이 흩어진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은 모두가 다 배신자라는 말인데, 오늘날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마 26:31)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자기가 아무리 "20년을 붙들었습니다. 목사로서 죽자고 설교를 했습니다" 라고 해도, 그런 것은 아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성경을 달달 외워도 소용이 없는데, 구원은 군데군데 스며드는 십자가의 용서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희생의 힘, 그런 용서의 그물망에 걸려서, 마치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말이다. 그렇게 걸려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랑의 줄로 꽁꽁 묶어서 ♬" 라는 노래가 있는데, 여기에 계시는 분들은 찬송가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런 노래는 모양인데, 아무튼 그런 노래가 있다는 것이다(ㅋㅋ). 그야말로 용서의 줄로 꽁꽁 묶어서, 그렇게 자율 자동차에 실려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도 얼마나 이런 단절을 모르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의 굿판을 벌리고 있는데,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면 확인할수록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즉 사랑의 높이와 깊이가 더욱 더 강렬해진다는 말이다. "아하, 너무 힘 주고 용을 쓰면서 살 필요가 없구나" 라고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동안 자기가 애를 썼다는 것은 사실 오해였는데, 주님께서 그런 상황에 몰아넣었던 것이다. 자기가 알아서 그렇게 했다는 것은 뭔가 단단히 착각을 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다시 정리하면 !!
다시 정리를 해보면, 인간에게는 연속성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