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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52강-창 10장 8-11절(영웅)160817-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창세기

52강-창 10장 8-11절(영웅)160817-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10장 8-11절입니다. 구약성경 12페이지입니다.

창 10:8-11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성경에 족보고 나오고 지명이 나올 때에 복음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기 위해서 성령에 의해서 기록이 된 겁니다. 따라서 성령 받은 성도는 이러한 평범하게 짝이 없는 세상의 족보와 지명과도 십자가 복음과 연관성을 지을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억지를 부려서 연관을 지으면 그것은 반칙이고요, 예수님께서 새언약을 이룰 때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경구절, 이 모든 것이 의미 있게 예수님의 새언약을 위해서 준비된 사건이고 하나님께서 사전에 이런 조치를 미리 해놓으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주께서 구약을 보실 때, 구약을 자기에게 완성시키는 그 방식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어떤 방식으로 그 코스가 잡혀 있는가?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멸망 받고, 저주받고, 지옥가야 될 사람을 배치를 해놓아요. 먼저 배치를 해놓고 그 속에서, 또는 그 옆에, 앞에, 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족보,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는 노선을 뒤에 배치를 해놓습니다.

차이를 발견하라는 그 말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함의 족속, 그리고 예수님은 셈의 족속이거든요. 유대나라는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은 야곱이 조상이고, 야곱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아브라함은 셈의 후손이고, 그렇게 해서 노아이후에 셈과 함에서 철로가 갈라지듯이 함족속과 셈족속이 구분되는 겁니다. 구분이 되면서 점점 더 멀어져 가지요. 너는 그쪽으로 나는 이쪽으로 갈라짐이 성립되는 겁니다.

갈라짐이 성립되면 너는 볼일 없다? 볼일 없는 것이 아니고 셈과 갈라진 함의 족속들이 차지하는 그 모든 지명들과 그의 후손들이 장차 셈의 후손들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그 갈등은 예수님 빼놓고 모든 인간과 예수님 사이의 갈등이고 그 갈등이 이스라엘 역사에, 지명에 미리 예고편처럼 벌어지게 되어 있어요. 이스라엘역사가운데서 티격태격, 이쪽은 예수님 노선이고 저쪽은 예수님노선이 아닌 악한 지옥 갈 노선이라면, 그러한 투쟁, 전쟁이 예수님 오시기 전의 이스라엘 내부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벌어지고 있는 그 양상을 구약에서는 이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합니다. 언약이 있는 쪽과 언약이 없는 쪽,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언약이 없는 쪽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우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우상숭배해서 망한 거예요.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망했다고, 선지자들, 예레미야, 이사야,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것,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렸다.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이방신인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망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함의 족속과 십자가의 관련성을 찾을 수가 있어요. 그 우상의 뿌리는 어디일까? 최초의 우상과 관련되어 있는 노선은 어디일까? 그것이 바로 노아가족가운데서 함쪽이 우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함의 자손은 우상을 섬겼더라, 라고 나오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상이라는 그 의미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성립되고 난 뒤에 우상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수상하다. 이스라엘이 뭔가 낌새가 이상해. 뭔가 어긋난 길로 가고 있어.” 라고 할 때 “너희는 우상을 섬겼어.”라고 지적을 하기 위해서 이방민족과 대조가 되는 입장이기에 아직까지는 이스라엘나라가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욥의 경우에는 이스라엘나라가 성립하기 이전의 아브라함 때거든요. 거기는 우상이라는 말이 없어요. 우상이라는 말을 할 때는 이스라엘 나라가 망한 이후를 지적하기 위해서 이웃나라 신을 우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벌써 좀 복잡해지지요? 이렇게 보시면 돼요. 인간이,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은 처음 태어났을 때는 모릅니다.

그런데 점점 나이 먹고, 세월이 가고, 여러 사람과 만나고, 어떤 지역이나 나라에 살면 마주치는 모든 것을 통해서 ‘내가 이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것을 세월 갈수록 점점 알고, 나중에는 죽어 마땅함을 알지요. 늙어죽는다는 것, 겹겹이 죄가 쌓여 있었구나, 그걸 아는 거지요. 물론 그걸 알면 구원받은 사람이지만.

그러니까 인간은, 젊을 때는 천하에 자기가 제일 잘났어요. 꿈 많은 소녀라 하잖아요. 사춘기 때는 한결같이 순수하고 순결하고 고귀해 보이고 자기처럼 깨끗하게 사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여요. 자기가 제일 깨끗하고 훌륭해 보이고. 20대는 나라의 국운을 위해서 기도하지요. 젊은 애들 기도하는거 보세요. 전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보면 난리도 아니지요. 그러다 회사 들어가면 회사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취직 안 되면 취직시켜달라고 기도하고.

갈수록 처음에는 상상했던 대로 굉장히 허황된 것으로 있다가 그 허황된 것, 모호한 것이 구체화되면 그동안 내가 누군지를 몰랐다는 것이 참 후회스럽지요. 내가 누군지를 알았으면 좀 적게 벌고, 좀 눈 낮추면서 살 것인데 자기가 뭐가 그렇게 대단한 줄로 알고 까불다가 청춘은 이미 지나가 버리고, 땅을 치면서 청춘을 돌려달라고 해 봐야 돌아오지도 않고, 그렇지요. 누구한테 돌려달라고 하겠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도록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만든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망하는데 있어서 누가 기여해야 되고, 누가 보탬이 되어야 되고, 누가 활동을 해줘야 되느냐 하면, 함의 노선, 지옥갈 민족들이 충실하게 자기역할을 다 해줘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계시를 유일하게 갖고 있는 민족이에요.

그 이스라엘민족이 보여주는 것은 뭐냐? 하나님의 천국백성,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거룩, 그것은 죽음 안에서야 비로소 새롭게 생겨난다는 겁니다. 이거 알면 복음 다 알았습니다. 이 모습대로 의를 받아들이고, 이 모습대로 거룩이 되는 것이 아니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나를 죽이는 작업, 죽이는 그 현장에서 비로소 생각지도 못한, 살아 있는 자가 감히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하나님의 준비된 영생이 그 죽음 안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나라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죽음의 사자가 찾아왔어요. 죽음의 천사가 와요. 그 죽음의 천사가 올 때 그 때 애굽사람들의 반응이 어디에 나오는가 하면, 출애굽기 12장 33절에 나옵니다.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백성을 재촉하여 그 지경에서 속히 보내려 하므로.”

하나님이 죽음의 천사를 보내서 폭격하듯이 애굽전체가 다 죽을 거라는 정도로 애굽사람들은 그렇게 느꼈어요. “이러다가 우리 다 죽겠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죽음의 천사가 애굽나라 전체에 쳐들어왔고, 그 때 나온 용어가 ‘곡성’이라는 나와요. 온 애굽에 곡성, 통곡소리가 들립니다. 자, 무엇을 겨냥해서 죽음의 사자가 찾아왔는가?

소위 죽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겨냥하기 위함인가? 이스라엘의 가치, 이스라엘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하나님의 피로 만들어지는 이스라엘의 그 의미가 뭐냐는 겁니다. 그것은, 죽음 속에서도 살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민족이 이스라엘입니다. 그것은 포괄적인 죽음 아니면 나타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서 예수 믿고 천당 간다고요? 그런 법칙은 없어요.

예수 믿든 안 믿든 다 죽어야 돼요. 하나님의 저주를 다 받아야 됩니다. 성도는 저주를 미리 받았다는 그것뿐이에요. 십자가 옆의 강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질 때, 저 십자가가, 내 옆의 십자가가 내가 하나님 앞에 받을 저주의 십자가를 대신 가져간다는 것을 강도는 믿었기 때문에, 오늘 밤 나와 함께 낙원에 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올림픽 메달이 여섯 개밖에 안된다고 난리들이잖아요. 메달 따니 뭐합니까? 영생 따야지요. 메달 따봐야 연금 좀 받고 그걸로 끝이에요. 그런데 거기에 온 나라가 목매고 세계 10위에 못 들어간다고 걱정하고 있는데 영생 못 얻는다고 걱정하는 사람 별로 못 봤습니다. 이와 같이 구약의 이스라엘이라는 것이 죽음이 막이 되고 영생은 그 죽음 뒤에 있었던 거예요. 죽음 뒤에 있었던 것, 산 사람이 어떻게 손을 집어넣어서 죽음 뒤에 있는 영생을 이편으로 가져오겠습니까?

그것은 안 되지요. 그럴 자격도 없고 권한도 없어요. 복음이 뭐냐? 복음은 죽은 자가 얻을 수 없는 것을 죽음 뒤에서 가져다주는 것이 복음이에요. 그래서 인간이 시도해서 복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십자가를 믿고, 백날 해도 영생을 못 얻어요. 주께서 가져다 줄 때, 이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니까 나의 저주, 나의 죽음 이후에 주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성령을 통해서, 성령세례 받은 자에 한해서만 십자가가 제대로 이해가 되는 겁니다.

이러한 원칙에 대해서 예수님 당시에 세례요한도 동일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마태복음 3장에서 세례요한이 이렇게 외칩니다. 7절에,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이 말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오는 것은 무슨 징후인가? 임박한 진노, 심판의 날의 징조로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필히 세례요한의 복음을 방해해야 된다는 거예요. 세례요한이 전하는 예수님의 복음을 방해하는 그 자체가 임박한 진노가 임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임박한 진노가 임해야 그 임박한 진노, 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그 반발은 누구를 겨냥해서 한 것인가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생각 못한, 예수님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잃어버린 양을 겨냥해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임박한 진노의 증인으로서 그러한 못된 짓들을 해야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 설교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인간의 어떤 철학과 과학도 임박한 진노에 대한 보호막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인간의 어떤 신학과 철학, 과학, 심오한 인간의 지혜도 주의 임박한 진노를 막아설 수가 없어요.

임박한 진노를 막아서는 것은 십자가외에는 없습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아무나 죽는다고 해서 십자가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십자가질 만한 분이 오셔야 돼요.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부터 임박한 진노를 유발할 징후가 등장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게 니므롯이 등장하는 겁니다.

함 자손에게 니므롯이 등장하는데 요세푸스라는 교회사가는 이 니므롯을 바벨탑의 선동자라고 봅니다. 고향이 바벨이니까요. 이 니므롯은 장차 앗수르의 조상이에요. 교회 좀 나와도 앗수르를 잘 몰라요. 앗수르하고 니므롯이라는 이 함의 노선이 셈의 노선과 만나려면 조상들까지 계속 이어져가야 되고 그 니므롯의 후손들이 앗수르라는 나라를 이루었어요.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잖아요. 사람 이름이 곧 지명 이름이라고요. 그 앗수르하고 이스라엘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열왕기하 17장 1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북쪽을 이스라엘, 남쪽을 유다라고 하는데 그 북쪽 이스라엘의 BC722년경 마지막 왕이 호세아왕이에요. 호세아 왕이 멸망할 때 그 멸망시킨 제국이 앗수르 제국이에요.

앗수르제국은 BC2200년부터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기 전의 BC 612년까지 이어져 온 거예요. BC722년경에 북쪽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왕은 살만에셀 5세입니다. 앗수르제국은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에게 못된 짓 하라고 설정되어서 배치되어 있는 겁니다. 하나의 무대장치라고 보면 돼요. 임박한 진노의 징후로서의 무대장치에요.

오늘 설교에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뭐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식으로 구원하느냐 하는 그것을 아셔야 돼요. 제가 니므롯을 이야기한 것은 뭐냐? 니므롯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적되는, 공격하는, 반발하는, 반항자같은 역할을 함의 자손으로서 했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구체화된 것이 앗수르라는 나라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실제로 니므롯이라는 이름자체가 대적자라는 뜻이에요. 뭘 반대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반대하고 대적하는 겁니다. 그런데 대적자라고 할 때 우리가 그 이름보다 더 관심두는 것이 뭐냐? 그가 그 당대의 영웅이라는 겁니다. 당대의 영웅이라고 할 때 본인이 스스로 영웅이라고 할까요, 남들이 영웅이라고 치하할까요? 남들이 영웅이라고 치하하는 겁니다.

왜 남들은 자기가 해결하지 않고 영웅을 고대하는 겁니까? 그것부터 먼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힘들면 힘들게 하는 상대를 죽이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다들 쉬쉬하지만 가장 근원적 본능이 뭐냐? 날 건드리면 죽이겠다는 겁니다. 자식이고 남편이고 필요 없어요. 나를 힘들게 하고 불편하게 하면 죽여 버려요.

지난 주일에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더운데 부부가 같이 자면 살인이 일어난다고. 가까이 오면 죽여 버린다고. 안 그래도 더운데. 평생 우리는 꾹 참고 사는 거예요. 참는다고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 잘해주면 좀 완화되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죽이고 싶어도 죽인다고 덤빌 수가 없어요. 상대방이 나보다 더 힘세면 내가 죽어요.

그러니까 힘을 잘 견줘서 해야 돼요. 사람들은 죽이고 싶다고 다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이 맺혀 있습니다. 날 힘들게는 하는데 고소해도 안 돼, 경찰서에 신고해도 안 돼, 그냥 꾹 참고 있는 거예요. 이층에서 담배 피워도 참아야 되고, 누가 내 자리에 주차를 해도 참아야 되고, 참 더러워서 세상 못살겠다, 그런 소소한 모든 것이 다 참아야 해, 참아야 해, 참아야 해, 그렇게 살고 있는 겁니다.

그 말은 뭐냐? 어디에 내 대신 해결해줄 영웅 없나, 영웅이 없나, 영웅 없나, 그것 찾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가 할 수 없는 그 빈자리는 힘이 남보다 약한 뜻으로 봐서 그 빈자리를 힘 있는 사람이 채워주기를 고대하게 되어 있어요. 그 채워주는 자를 영웅이라고 하고 그걸 지도자라 하고 그 지도자가 더 나아가면 왕이 되는 겁니다.

왕에게 아낌없이 자존심까지 버리지만, 사람들이 왕에게 다 굽실거리지만 그것은 왕을 이용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자존심까지 포기하면서 양보할 테니 내 모자라는 힘을 당신이 좀 채워주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영웅은 본인이 영웅이라고 해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그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거예요.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임금도 마찬가지고, 지도자도 마찬가지에요. 모든 인간이 이렇게 니므롯을 원하고 앗수르를 원해요. 하나의 예를 들어봅시다. 아까 열왕기하 17장 봤지만 북쪽 이스라엘과 앗수르가 붙었다. 그런데 앗수르가 북쪽 사마리아 성을 완전히 포위해서 멸망시켰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만약에 이스라엘 나라의 고위 관직에 있다든지, 북한의 영국주재 영사쯤 된다 합시다.

자기 나라는 약하다. 그런데 상대방은 강하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망명하지요. 그건 뻔 한 거예요. 우리나라에 전쟁이 났다. 그런데 강남에 산다. 대처는 간단해요. 미국으로 이민가면 돼요. 캐나나, 뉴질랜드, 호주도 있어요. 도망가면 되지요. 잘 사는 나라의 시민이 되면 되잖아요. 자칫하면 군대에 소집되는데요. 시리아난민들이 한국에 망명을 요청하는 이유가 뭡니까? 시리아정부가 군대 소집하는데요? 군에 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거든요.

결혼도 했겠다, 죽기는 싫어서 한국에 망명신청 하는 거예요. 모든 인간이 다 그런 거예요. 뻔 한 겁니다. 나부터 살아야지요. 나사는 것이 중요하고 나보다 이 세상에 더 중요한 것은 어디 있습니까? 내가 제일 중요한데.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셈의 편이 아니고 함의 편이 되는 겁니다. 강자의 편에 서는 거예요.

내가 이스라엘인데 앗수르에 포위되었다. 내가 먼저 백기 들고 나가서 망명을 신청합니다. “나 는 이 이스라엘의 고위직인데 나는 이 나라의 이완용이 되겠습니다.” 이완용이 보고 “당신은 왜 친일파가 되었습니까?” “우리나라가 멸망할 줄 몰랐습니다.” 이런 식으로. 친일파고 뭐고간에 힘 있는 곳에는 더욱더 많은 사람이 쏠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제국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힘이 곧 참된 신이 돼요. 참된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이스라엘 나라를 완전히 포위했던 우상숭배였습니다. 이스라엘나라가 어린양의 임박한 진노, 무서운 하나님의 천사에 의해서 나라를 만들어놓고도 막상 그들이 약속의 땅에 갔을 때는 힘, 힘, 힘 있는 것을 그렇게 부러워했어요.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부러워했고 광야에 있을 때도 열 번이나 “애굽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거지 떼도 아니고 이게 뭐냐? 애굽으로 돌아가자. 이 고생 하려고 왔나?”

다시 말해서 “내 소유의 힘이 없잖아. 내 스스로 자진해서 보존할 힘이 나에게 남아 있지 않으니 나는 이런 식으로는 더는 못산다. 하나님이여, 예수여, 삼위일체여, 힘 주옵소서.” 그게 오늘날 교회잖아요. 그게 함의 자손이에요. 바로 그 노선과 나중에 셈의 후손, 이스라엘이 만나게 되는 겁니다. 누가 이기겠습니까? 당연히 앗수르가 이겼지요.

그러면 유다나라는 누가 이겼습니까? 당연히 바벨론이 이겼지요. 그러니까 북쪽은 앗수르, 남쪽은 바벨론, 바벨론이라는 것이 맨 앗수르 후손들이에요. 제가 처음 설교할 때 이야기했듯이 다 언약이 없어요. 다 비언약족속입니다. 그걸 두 자로 우상이라, 우상숭배의 민족, 다른 신이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의 첫계명이 뭐냐? 나 하나님을 믿으라, 가 아니에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이미 출애굽때 하나님께서 애굽을 칠 때에 애굽의 모든 신들을 쳤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징표가 나타났어요. 그게 뭐냐? 피 흘리는 어린양이 징표에요. 그러나 애굽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은 피 흘리고 있는 어린양이지 그거하고 저 초월적인, 온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하고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오늘날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에요. 양 죽어서 피 흘리는 것과 천문학자가 보는 이 별들의 움직임하고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신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이 본문의 니므롯 이야기하고 예수님의 십자가하고 아무 관련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구약학자들은 이것을 옛날 역사, 지나간 역사로 봐요. 옛날에 그런 사람이 있었대. 끝! 이런 식으로 끝납니다.

복음과 관련을 짓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임박한 진노를 당하고 있는 입장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서 그래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처럼. 자, 그러면 이제 남은 문제는 뭡니까? 이게 바로 힘으로 버티고, 영웅을 좋아하고, 그런 민족의 제국들이 모든 약소국을 침범하는데, 니므롯을 두고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냥이란 동물사냥이라기 보다는 사람사냥, 또는 영토사냥, 여기까지 다 포함되는 거예요.

이런 영웅들을 섬겼는데 영웅이 왕이 되고 왕이 나라가 되는 겁니다. 모든 것을 다 접수해서 왕이 되거든요. 조폭 오야붕이라고 보면 되거든요. 그러면 인간 자체가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생각하다 보니 자기보다 힘센 사람을 의존하게 되고, 추종하게 되고, 고개 숙이고 이용하려하는데, 그게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데 어떻게 인간이 구원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이제는 이야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셈의 후손에서 나오는 줄기는 이러한 힘의 원리와 완전히 대조가 돼요. 판이합니다. 그걸 신약적으로 먼저 말씀드리면, 성령이 오게 되면 이미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구원문제, 영생문제가 해결이 되고 말았어요. 해결이 되니까 힘 빼고 살아요. 힘 빼고 살아도 이미 승리자입니다. 힘빼고 사는 것이 오히려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살 수 있는, 영웅보다 거 큰 영웅이지요.

전체를 아우르면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게 해답이라면 성령은 어디서 오는가? 성령은 예수님의 희생에서 오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예수님의 희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의 희생의 의미는 뭐냐? 예수님의 희생은 놀랍게도, 이 세상 인간이 추구하는 힘은 실은 하나님 앞에 별게 아님을 마음껏 보여준 것이 주님께서 아낌없이 “그래, 죽여라.” 한 것이라 그 말입니다.

“그래. 죽여, 죽여!” 그래서 죽은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사흘 만에 살려냄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능력이 이 세상 어떤 권세보다 더 센 능력인 것을 성령 받은 사람은 부활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비로소 알게 되었고 받게 된 거예요. 그러면 그 전에 어린양부터 줄곧 십자가로 이어지면서 남쪽 유다나라가 “언약으로 돌아오라. 언약으로 돌아오라. 언약을 잊지 말라. 언약을 잊지 말라.” 하는 것은 뭐냐?

너희들이 날마다 드리는 그 제사가 형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사가 제사로 끝나면 안돼요. 제사는, 너희들이 소위 힘을 추구할 때 정말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은 너희들이 추구하는 힘에 눌려서, 시달려서 억울한 죽음을 죽는 그 죽음이 진정한, 살아 있는, 인간이 드리는 제물, 산 제물이 되는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엘리야지요. 엘리야, 엘리사. 하나님과 함께 있기에 까마귀가 와서 먹을 것을 줄 정도로……, 까마귀가 팔보채나 탕수육 시켜줬겠습니까?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 준 그것은 엘리야가 나쁜 짓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쁜 짓해서 징계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 시대에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엘리야는 힘 빼고 살았던 겁니다. 너희들이 추구하는 그 힘이 없어도 나는 얼마든지 웃을 수 있고 얼마든지 이 자유를 빼앗기지 않을 수가 있다. 주께서 주신 희락과 기쁨과 의는 세상 어던 환란도 나에게 빼앗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사람을 줌으로서 세리가 되었든, 창기가 되었든, 강도가 되었든 관계없이 거지가 되었든 상관없이 우리는 이 땅에서 성령 받은 천국의 백성의 모습을 마음껏 발휘하는 겁니다.

발휘하기 전에 함의 족속들은 뭐냐 하면, 우리의 옛 모습, 우리의 옛 한계를 보여주는 거예요. “영웅 좋지?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 좋아하지?”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그래. 참 좋아했고 지금도 주면 마다하지 않겠어. 좋다고 받지. 하지만 그것으로 영생에 이르지 못해. 영생의 능력은 아니야. 진정한 자유는 줄 수 없고 오히려 욕망에 더 목말라 할 뿐이야.”라는 것을, 챙길 것은 다 챙기면서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님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에 그들의 움직임과 사건 하나하나가 십자가와 무관한 것이 없음을 알았기에 오늘날 무심코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도 주님의 복음과 관련되어 있는 복음의 은혜인 것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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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90 자유게시판 96강-신 17장 14-20절(왕의 길)160814-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6-08-14
15,689 묻고답하기 저주의 기준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6-08-14
15,688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6. 7. 22) 1강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6-08-12
15,687 자유게시판 51강-창 10장 1-6절(함의 자손)160810-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6-08-11
15,686 자유게시판 200강-고전 16장 10-14(예수님의 형제)160807-이 근호목사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6-08-07
15,685 자유게시판 95강-신 17장 8-13절(제사장 판결)160807-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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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83 자유게시판 안양20160708a히12장 5절(인솔)-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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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80 자유게시판 2016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 마태복음강해 제8강 [상징과 실체] - 최고관리자 1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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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8 자유게시판 2016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 마태복음강해 제6강 [수동적믿음]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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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