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여름수련회(마태복음강해:한없이작은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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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06 21:30
2016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 마태복음강해 제1강 [관점정리]
(강의:이근호 목사)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서 사라진 모든 자의 방향을 저희들이 추적해서 알게 하옵소서.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음을 인하여 구원을 받게 된 것을 이제는 우리의 운명으로써 수용할 수 있는 귀한 시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 번째 강의 제목은 [관점정리]입니다. 마태복음이 신약에 처음 나오면서 소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춰봅니다. 그런데 관점정리가 안 돼 있기 때문에 백 독, 천 독을 해도 그저 경험밖에 되지 않아요. 마태복음을 여러분이 다 외우시죠? 마태복음을 흩어보면 어떤 것을 느끼느냐 하면, 누군가 와서 관점이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시작했는데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 점점 더 한쪽은 머물러 있는데 저쪽은 후다닥 사라져 가버리는 겁니다.
오늘 오후에 울산의 대나무 숲을 이야기했는데 까마귀 떼가 앉아 있습니다. 장관이라 하는데 대나무 숲의 까마귀가 있다가 날아가 버리죠. 그래도 대나무 숲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뭔가 왔다 가버린 거죠. 그럴 때 어느 쪽이 움직였고 어느 쪽이 멈췄느냐는 그 문제입니다. 대나무 숲은 멈춰있었고 까마귀 떼는 왔다 갔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걸 시비 거는 거예요. 처음부터 인간이, 인간 세계가 멈추고 있는지 아니면 주님이 왔다 갔는지, 아니면 주님이 멈추지 않고 영원히 고정돼있고 인간들이 주위를 돌고 있지 않는지 관점을 다시 생각해봐야 돼요. 누가 우리한테 찾아와서 갔다는 것보다도 주님이 계신데 우리가 그만큼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멀어져 있다는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인류의 문명사나 과학사에서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천동설, 지동설이라고 이야기해요. 하늘이 움직이느냐, 땅이 움직이느냐는 그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대세가 뭐냐 하면, 지구는 멈춰있는데 태양이 움직였다고 본 거예요. 사실은 그전에도 이게 아니라고 이야기한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말발이 서질 않았고. 그런데 갈릴레이 갈릴레오에 의해서 태양이 있고 지구가 움직인다고 봤습니다. 그럴 때 태양이 공전하는 것이 아니고 지구는 공전한다는 거예요. 태양도 움직이죠. 태양이 가는 걸 황도라고 하는데 19세기 초에 베셀이라는 독일의 천문학자가 망원경으로 지구의 공전을 다음과 같이 증명했습니다.
지구가 있고 별이 있는데 만약에 태양이 있고 지구가 공전한다면, 여기 A, B, C, D 지점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별이 하나 있는데 A 지점에서 별을 봤을 때 C 지점으로 움직인다면 그만큼 차이가 날 것이란 말이죠. 그 차이 나는 각도를 연주시차라 합니다.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말은, 지구가 도니까 차이가 나지 만약에 돌지 않으면 차이가 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차이가 나는 걸 어떻게 아느냐 하면, 빛은 파장으로 돼있거든요(혹은 입자). 파장으로 된 것을 조사해보면, 어떤 때는 빨강으로 보이고, 어떤 때는 파랑으로 보이고, 어떤 때는 편이가 없음으로 보인다 말이죠. 적색 편이는 길어지니까 멀어지는 거예요. 청색 편이는 짧아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구가 이렇게 가게 되면 이쪽 파장이 파랑이 되고, 이쪽은 빨강이 되면서 스펙트럼에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변화가 일어나니까 지구의 공전이 맞는다는 겁니다. 변화가 일어난다는 말은, 멀어질 수도 있고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것으로 태양이 도는 게 아니고, 사실은 지구가 돈다고 한다면, 이걸 마태복음에 그대로 적용시켜 보는 거예요.
마태복음에서 땅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모든 족보에 대해서, 아들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의견이 점점 더 빠져나간다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아기 예수로 오셔서 십자가 죽음으로 빠져나가요. 그럼 이건 멀어지는 거죠. 인간의 생각과 공유하지 않고 인간의 생각은 그냥 멈춰있는데 주님만 홀로 잘 먹고 잘 살아라 야들아, 하고 쑥 빠지는 겁니다.
빠져나간 분, 주님이 중심인지 그냥 버티고 앉아 있는 우리 해석이 옳은지를 검토해봐야 돼요. 마태복음의 이런 관점정리가 먼저 검토돼야 되는 겁니다. 그동안 마태복음을 보실 때 어떻게 바라봤습니까? 뭔가 예수님 오셔서 의견 맞지 않고 그냥 빠져나가는 느낌을 못 느끼셨습니까? 울산 대나무 숲의 까마귀 나가듯이 분명히 뭔가 앉았는데 쑥 나가버렸는데 예수님 다녀간 뒤에 인간 세계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울산 대나무 숲에 까마귀 앉든 말든 변화가 없듯이 그냥 그대로. 예수님 다녀가도 우리는 역시 맛있는 것은 맛있고, 즐길 건 즐기고, 아이 낳고, 장가가고시집가고, 변화가 없어요.
그럼 마태복음이 우리한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말이죠. 오셔서 이상한 객소리하다가 나는 죽노라, 하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아버지여, 하면서 과대망상증 비슷하게 하고 가버렸다. 가고 난 뒤에 천지개벽이 일어나야 되는데 그냥 그대로에요. 아무런 일 없어요.
그런데 마태복음에 보면 인간이 멈춰있고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게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나와요. 별이 움직입니다. 원래 별이 움직이는데 이상한 움직임이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별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하늘 길을 다니는 자체를 움직임이라 하는데 그 별이 인간이 사는 주거환경까지 들어옵니다. 별이 하늘에 그냥 계시면 되잖아요. 무슨 큰일 났다고 별이 일상적인 환경 속까지 들어온단 말이죠. 별이 인간을 보려고 왔느냐? 그게 아니에요.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별은 어디 있느냐 하면, 지구가 있고 별이 있으면 하나님은 별 저편에 있단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에 의해서 안정되게 지구는 돌아가고 별도 제자리 잡고 돌아가고. 그래서 이게 정상이에요. 그런데 왜 별이 자기들 노는 하늘 동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고 들어오느냐 말이죠. 자칫하면 침대까지 들어올 판이에요. 생각해보세요. 별이 지목하기를 그 집 아니고, 미장원 말고 옆에 우체국, 거기야. 별이 그렇게 지목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집요? 아니, 빌라. 그 뒷집. 202동? 아니, 201동. 얼마나 집요하게 딱 꽂아서 찾아오느냐 말이죠.
별은 욥기에 의하면, 하나님 따로 계시고, 별은 하나님이 만들었고 제자리에 박혀있고, 인간은 인간 자리에 박혀있고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서 허용된 활동대로 돌아가면 된단 말이죠. 그런데 신약에 와서 이 별이 움직였는데 인간세계까지 파고들어왔는데 뭘 보려고 찾아왔습니까? 도대체 어떤 인간이 있기에. 보통은 별이 주거환경까지 쳐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여기에 없어야 될 인물이 생긴 거예요.
없어야 될 인물은 그전까지 없었던 인물이에요. 이 말은 신원조회가 안 된다는 거예요. 인간과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자는데 열두 제자들과 함께 동행 하시는데 “누구야, 너?” 도대체 신원조회가 안 돼요. 주민등록이 안 돼 있어요. 요한복음 7장에서 바리새인들이 물었습니다. “실례지만 신학교 어디 나왔습니까?” 출생지도 모호해요. 베들레헴이냐, 갈릴리 사람이냐. 마태복음 13장 마지막 대목에 보면, 기껏 신원조회 한 것이 아버지가 목수라는 거예요.
그런데 누가복음에 보면, 남들 다 이야기하는 그 아버지와 엄마가 하나님의 절기에 따라 갔다가 잃어버렸고 사흘 동안 찾다가 결국 찾았는데 예수님이 양친께 하는 이야기 좀 보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을 줄 몰랐습니까?” 만약에 제가 요셉이라면, “누구야, 너? 뭐야? 너 어디서 왔어?” 이럴 거예요. 사실은 알고 있지요. 마태복음 1장에서 천사가.
여기서 위기에요. 이 땅에 없으실 분은 없어야 돼요. 그게 우리가 살기 편하고 우리 상식대로 살아도 지장 없습니다. 왜 침입했는가, 에요. 왜 침투하셨는가? 침입이란 말은 마태복음 11장에 나와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이것은 그분이 이 땅에 개입하신 것은 이 땅을 흩고 속속들이 모든 체제, 사상들을 다 손대고 지나가면서 뭘 하느냐?
이번 강의 여덟 번째 제목을 미리 이렇게 정해봤습니다. ‘살 처분’ 오리나 닭, 돼지가 전염병 걸렸을 때 이걸 해요. 요즘에 하나 더 포함됐어요. 좀비. 좀비까지 살 처분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살 처분 나옵니다. 신원조회도 안 되신 분이 괜히 뛰어들어서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살 처분하겠다. 그래서 참다못한 현명하신 유대인 지도자들께서 이런 정신분열증 환자는 용납되지 못한다. 마땅히 당연한 조치지요. 살해했습니다. 너부터 죽어라. 여기가 어딘데 까부느냐, 하고 죽였습니다. 그 이야기가 마태복음입니다.
살 처분당할 대상이 예수를 믿는다는 게 말이 되겠어요? 분명히 여기는 그동안 다른 예수였을 가능성이 많아요. 나를 저주하고 나를 완전히 없애겠다고 큰소리치며 예언하신 그분을 내가 믿겠다는 것은 분명히 그것 빼놓고 다른 걸 믿을 가능성이 있고,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남들 다 예수, 예수 하니까 예수가 뭔가 이익이나 가져다줄 줄 알고 겁 없이 예수를 불렀던 경우 등 하여튼 여러 가지 경우가 있어요.
유대인들이 예수님 당시에 메시아를 학수고대했습니다.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고대했어요. 그 메시아는 시간의 주기를 통해서 오게 돼있어요. 유대인들에게는 시간의 주기인데 유대인 말고 다른 모든 민족들은 시간의 동질성, 그 내부에 항상 동질하다는 걸 이야기합니다. 시간의 동질성 앞에 모든 인간은 차이가 없다. 오직 시간은 동질하다. 거기에 반해서 유대인 말고 다른 모든 민족은 인간의 동질성이에요. 그 안에 인간 속에 신이 있어서 신을 믿는 인간들은 동일하다. 이런 철학으로 그들은 육천 년 문명을 이뤄왔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이집트 문명에서 모든 건축물들은 통로가 중요해요. 통로를 통해서 죽음의 세계로 인도함을 받아요. 이 땅은 아무것도 아니고 나그네 길이고 오직 죽음의 세계만 되는 거예요. 죽음의 세계와 여기 사이에 바로 왕이 있습니다. 신의 아들, 태양의 아들이에요. 이게 바로 백성들을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피라미드를 비롯해서 죽음과 관련돼있어요. 사람은 죽으면 사라지지만 영혼은 영원하다. 미이라 만들어요. 언젠가 영혼이 돌아와 합체되면 영원히 살 수 있다.
헬라인들의 주거환경이 신전으로 돼있습니다. 신들은 전담하는 전공분야가 달라요. 박카스라든지, 제우스. 여러 가지 신들은 신전에 모음으로써 모든 변화를 고정시켜놓고 그 신에게 제사 드리면 헬라문화는 안정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복잡한 것은 신들이 전담해서 처리해주니까 자기는 신만 믿고 안정하게 살면 되는 거예요. 중국문화 중심에는 조상이 있습니다. 특히 중국 남동쪽이나 타이완에서는 향 피우고 조상에 대한 섬김이 대단해요. 조상이 마을의 중심터가 되는 겁니다.
그럼 오늘날 현대인들은 뭐냐? 현대인들은 안정된 게 없어요. 불안, 불안해요. 그러면 인간은 뭐가 중심이냐? 방문이 중심이에요. 방문 닫고 컴퓨터게임만 하면 지가 중심이에요. 내가 중심이에요. 현대인들은 자기가 중심이에요. 옛날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겁니다. 있지도 않은 신을 믿었고, 사람은 살다죽으면 그만이지 왜 죽음에 대해서 벌벌 떨고. 번개 치는 신이 왜 필요해요. 피뢰침 하나면 다 막는데. 모든 병은 의학으로 해결하면 되는데. 불쌍하다. 몰상식한 무식한 조상들.
현대인들은 이성적으로 따져보니까 내가 곧 신이에요. 방문이 중요해요. 방문 닫고.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티비보고, 나 혼자 영화보고, 울고불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되는 거예요. 결혼이고 취직이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예요. 방콕. 그러니까 안정성이 없지요. 불안, 불안한 겁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장에 보면, 인간뿐만 아니고 인간이 생각한 별은 별자리에 그 위에 하나님, 지상에는 나, 이런 안정된 체계가 별이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다 틀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 별은 사람 구경하려고 온 게 아니에요. 없었는데 발생된 분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분이 누구냐? 아기 예수에요.
그러면 아까 그림을 봅시다. 별이 움직인다. 지구 중심에서? 아니, 별은 움직인다. 예수님 중심으로. 별마저. 지구는 있음의 전체성이에요. 마태복음 1장 족보 할 때 제가 언급해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서 태어났다고 돼있어요. 갈라디아서 4장 4절. 이 말은 뭐냐 하면, 여자에서 태어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의 전체성은 태어나더라도 남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