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강-YouTube강의(실체와 표상)160719-이 근호 목사
163강-YouTube강의(실체와 표상)160719-이 근호 목사제 163강, 제목은 ‘실체와 표상’입니다. 상당히 어려운 제목인데 실체와 표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표상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상징, 상징이라는 말은 이 세상의 사람들이 통하는 단어, 의미 이런 것이 상징이라면 실체는 인간들이 서로 이해하고 통하는 그 상징 때문에 항상 나타나지 않고 뒤편에 가려져 있는 것을 실체라고 이야기합니다.그러니까 표상의 세계, 상징의 세계에서는 실체는 잡을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고, 다가갈 수도 없는, 그런 형편에 있는 것이 실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세상에 실체도 있고 표상도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은 온전히 상징, 또는 표상으로 도배를 했는데, 그럼 실체는 어디에 있느냐? 상징이 실체가 아니고 단지 상징일 뿐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배후에 있는, 숨겨져 있는 그것을 실체라고 하죠. 왜 이렇게 어려운 제목을 했느냐 하면, 구약 이사야 45장에서 하나님의 대해서 어떻게 표현했느냐 하면 15절에,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숨어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식하느냐, 피조세계를 의식하고 피조세계한테 들으라고 한 이야기죠.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에는 숨어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는 반드시 하나님은 숨어있는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세계는 실체가 아니라는 말씀을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상징의 바다, 상징덩어리, 상징과 상징만 교환할 수 있는,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한계를 갖고 있는 그러한 세상, 곧 인간 세상. 따라서 너희들이 그 상징 세계에서 뭘 만들어내는가, 상징에서 만들어낸 신과 종교, 뭐 복음, 예수, 삼위일체, 어떤 것을 만들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상징에서 상징으로 연결되고 이어질 뿐이죠. 상징에서 상징으로 계속 연결되다 보면 사람들은 뭘 시도하느냐, 상징이라는 것은 인간에 의해서 소통되고 통용되기 때문에 인간들은 상징을 통해서 숨어 있는 실체를 따라가고 찾아가려고 시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 또는 종교행위, 다른 말로 하면 신앙, 또는 신앙행위로 그렇게 상징의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한 마디로 말해서 전부 다 가짜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전부 다 거짓이라는 겁니다. 그럼 이 상징이 언제 끝나는가? 이 표상이 언제 끝나는가? 바로 죽음으로써, 아! 그동안 가짜였구나! 죽어가는 존재에, 기껏해야 죽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알기는 뭘 안다고, 삼위일체가 어떠니, 신이 어떠니, 예수는 어떠니, 십자가는 어떠니, 복음이 어떠니, 천국이 어떠니, 지옥이 어떠니, 성경해석이 이러이러하니 라고 서로 서로가 합작이 되어서 그걸 개혁주의 신학이라고, 정통주의 신학이라고, 오직 보수적인 신학이라고 그걸 유포시켰고, 그 유포에 대해서 본인들이 같은 상징이니까 얼마든지 납득이 되고 수용이 될 수밖에 없죠. 제가 아까 이야기했습니다. 표상이 상징이 아니고 실체를 실체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숨어 계시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 잠시 이 땅에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리고 예수님의 영이 되신 성령하나님도 실체를 제대로 아시고 이 땅에서 자기 백성을 관리하십니다.로마서 8장에 보면 기도에 대해서 아주 단박에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기도할 줄 모른다. 너희는 빌 바를 알지 못한다.” 이걸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너희는 상징으로 태어나서 상징에 묶여있다.” 이런 표현인 겁니다. 그러면 기도를 누가 하느냐, 그거는 상징이 실체하고 거래하고 흥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체가 실체하고 흥정하고 거래하고 계약 맺고 완성시키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는 겁니다.상징은 빠져야 돼요. 상징은 빠지되 그냥 빠지지 말고, 기껏 상징에 불과하고 가짜에 불과하고, 거짓인 존재에 불과 하구나! 라는 고백을 쏟아 부으면서 빠져야 됩니다. 그러면 이 상징이 언제 끝나는가, 제가 아까 이야기했는데 인간이 죽고 나면 안다는데 성령께서는 그 죽고 나면 안다는 그 내용을 소위 살아있다고 우기는, 숨 쉬고 있다고 하는 그 인간에게 그 죽음의 영, 십자가 영을 미리 앞당겨서 죽고 난 뒤의 사실을 미리 알려줍니다.그것이 바로 로마서 5장에 나옵니다. 로마서 5장 14절에 보면,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했습니다. “아담이 상징에 불과하다. 표상에 불과하다. 아담은 기껏 실체가 아니야.” 라는 말을 하시면서 로마서 5장 14절에 언급한 그 조건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죄를 거론하고 죽음을 거론하고 죄의 왕노릇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5장 12절에 보면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상징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말해서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몇 년 살다가 죽으면 공동묘지에 묻힌다. 이렇게 죽음을 이야기 하게 돼요. 그러나 실체, 하나님 입장에서 성경을 보게 되면 인간이 죽는 것이 아니고 죽음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고 이렇게 설명하는 겁니다.성령을 받은 성도는 인간들이 납득이 되는, 인간들이 아는 상징에서 상징으로 설명해서는 안 되고, 실체이신, 유일하게 아시는 하나님 쪽에서 인간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방식대로 성도와 성도끼리, 그러니까 성령 받은 사람끼리는 그런 식으로 표현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떻게 표현하는 것인가, 성경대로 표현하면 됩니다.내가 살다보니까 죽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죄가 있는 한 우리는 이미 사망으로, 사망의 통제와 점령당하고 지배를 받아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 지금 죽어있는 상태로 살아있다, 존재하고 있다고 이렇게 자기 자신을 표현해주어야 하는 겁니다. 성도를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하죠. 성령 받은 사람은 예수의 증인이라고 이렇게 이야기하죠. 예수의 증인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증인이 되면 안 되죠. 왜? 나는 표상에 불고하고 상징에 불과하기 때문에. 뭐 예수이야기하고 뭐 이야기해놓고 그러니까 나는 잘났다, 이렇게 끝나버리면 안 되겠죠. 그럼 어떻게 끝나야 하는가, 예수님이야기하고 뭐 이야기하되 그러니까 그 내용에 입각에 보면 나는 가짜고, 나는 껍데기고, 나는 죄인이고, 나는 죽어 마땅합니다. 이렇게 나와야 되는 거예요. 에스더 4장에 보면 에스더라는 그 미모의 왕비가 이렇게 고백하죠. 그냥 왕비가 아닙니다. 미모의 왕비에요. 미모라고 해도 그런 미모가 아니라 미스바사에요. 콘테스트에서 1등한 미모에요. 그 나라에서 그 여자보다 더 이쁜 여자는 없어요.우리 같으면, 그런 미모를 가지게 되면 그 까짓것 모든 것을 상실해도 그 아름다움은 포기 못 할 겁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다른 말로 하면 “이 미모가 주께서 필요하다면 아낌없이 제 미모를 내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미모는 그 당시의 권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로 치면 “주께서 필요하다면 제 권력, 없는 것으로 여기겠습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저는 아담 안에서 표상입니다. 그저 상징일 뿐입니다. 단지 그리스도만 마음껏 증거 되게 하시고 이 상징물을 통해서 실체가 마음대로 발현된다면 그것이 주님과 저의 관계가 이어져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숨겨져 있는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는 상징으로 살아야 돼요. 그것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쁨으로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가짜인 주제에, 껍데기인 주제에 천년만년 살 것 같이,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불신자들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심지어 교회 내에서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