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2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5-프로이트
20160712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5-프로이트
(강의:이근호 목사)
2페이지부터 봅시다. 양이 많아서 붕붕 뛰지만 빠진 것 없이 하겠습니다.
프로이트가 정신을 이야기할 때 항상 동물적인 충동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걸 아시고 동물적인 충동이라 할 때 인간이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인간의 무의식이 말을 하는 거예요. 내 안의 충동이 나라는 껍데기를 사용해서 말을 하는 거예요. 말하면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교육받은 것이 담겨있는 거예요. 교육받았다는 것은 자기 곁에 누가 있다는 거잖아요. 교육과 정신은 그냥 맹탕이 아니고 반드시 누가 관여한 거예요.
누가 관여하느냐 하면, 전통적으로 조상과 선조, 아빠, 엄마가 혈통적으로 관여한 거란 말이죠. 엄마로부터 태어난 게 정신으로 태어난 게 아닙니다. 그냥 세포덩어리로 태어나게 했고 엄마, 아빠가 강제로 교육을 시키고, 강제란 말은 어폐가 있지만 자연스럽게 교육을 시키는데 그 교육이 아이의 충동과 마주하겠지요. 그러면 아이는 빈 몸인데 엄마가 들어온 걸 다 한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이 속에 충동이 있는 거예요.
그 충동은 뭐냐? 아까 이야기했습니다. 기분 좋으면 좋고, 슬프면 죽고 싶고. 그것뿐이에요. 그러면 교육할 때 말 안 들으면 때리죠. 맞으면 아프잖아요. 아프면 불쾌하지요. 불쾌하게 되면 불쾌한 것을 없애는 방법을 터득하겠지요. 그 터득이 정신 발생이에요. 드디어 요령이 생기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내 몸에 쾌락은 늘이고 불쾌는 줄일 수 있는 반응을 하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너, 말 잘 들으면 젖 줄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기쁨, 쾌락이 이상스럽게 신체 가운데서 어떤 부분을 중심으로 맴돌고 있더란 말이죠. 이걸 욕동이라 합니다. 또는 본능. 어떤 특정 기관을 통해서 강성해져요. 태어나서 6개월에서 1년까지 입술 근처에 쾌감이 와요. 쾌감이 오면서 덩달아 아버지와 엄마의 차이도 동반하겠지요. 이것을 성적 욕망이라 합니다. 욕망은 욕망인데 성적으로 구분지어지는 욕망이에요. 프로이트는 이걸 구순기라 해요. 입술을 통해서 정신이 발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프로이트에서는 성적 발달과 동반해서 정신발달이 이뤄지는 겁니다. 질문을 이렇게 해야 돼요. 정신발달은 어떻게 이뤄집니까? 성적 발달을 토대로 해서 이뤄집니다. 왜? 이게 과학이니까. 신체성이니까.
그 다음에 구순기에서 항문기라 합니다. 배변이 안 되면 기분 나쁘다가 배변이 되면 시원하죠. 오줌 쌀 때. 그게 1~3살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뭐든지 만지는 것마다 입으로 가져가고 그리고 엄마의 젖꼭지에 대지요. 살아야 되니까. 그런데 아기가 살아야 된다고 합니까? 아니에요. 이것은 젖먹이동물이 다 마찬가지에요. 그러니까 동물이라 보면 돼요. 동물은 분리되지 않아요. 어릴 때는 엄마 신체의 일부에요. 그냥 한 신체라 하면 안 돼요. 왜냐하면 사랑의 대상이 없어지기 때문에. 신체의 일부란 말은 엄마는 아기를 사랑하고 아기는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와 하나 되는 겁니다. 아빠는 어디 있느냐? 아기에게 아빠는 필요 없어요. 엄마가 최고에요. 엄마가 젖 주니까. 아빠의 젖꼭지 빨고 그러지 않습니다. 정신적으로 엄마와 분화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요.
그 다음에 3~5살을 남근기, 여기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주어지게 되는 겁니다. 입술 근처에서 기쁨, 항문 근처에서 기쁨 다음에 본격적으로 음경 근처에서 성적으로 쾌락과 불쾌가 발생되는 겁니다. 다섯 살이 끝나면 잠복기에 들어가요. 사춘기에 다시 드러나면서 모든 정신발달은 사춘기에 끝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정신발달은 결국 신체에서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을 억압하는 데서 나옵니다. 그러면 억압은 어느 쪽에서 어느 쪽으로 억압하느냐? 인간의 불쾌, 유쾌를 억압하는데 여기 제삼자 관계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처음에 억압하겠지요. 지금 5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교육이 이러면 아빠, 엄마가 싫어해. 이렇게 아빠, 엄마가 억압하잖아요.
프로이트는 인간을 두 개의 지형도로 이야기로 해요. 1차지형도는, 의식과 무의식과 전의식으로 나눕니다. 의식과 무의식은 무의식이 억압당한 상태에서 의식이 되고, 의식에서 강제로 눌린 것을 전의식이라 합니다. 전의식은 의식에 포함돼요. 무의식은 아무리 끄집어내려고 해도 끄집어내지 못하는 것. 이걸 원억압이라 하는데, 용어들을 계속 만들어내니까 용어 설명하게 되면 강의가 매끄럽지 못해요. 여러분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전공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용어에 대해서는 대충만 이야기합니다.
어릴 때부터 도저히 의식할 수 없는 잠재돼있는, 잠재돼있다는 것은 전의식이고, 잠재돼있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어요.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원 억압은 리비도, 그냥 동물적인 충동, 불쾌, 유쾌라는 근본적인 충동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이래서는 안 돼, 여기선 조용해야 돼, 라고 억누를 때 전의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의식을 자꾸 무의식으로 오해하는데 전의식은 의식에 속하지 무의식이 아니에요. 전의식은 잠재의식이 정확한 말이에요. 불쑥 튀어나오는 것.
평소에는 기분 나쁜 사람이라도 참아요. 참다가 술 한 잔 먹고 한국의 민중들은 개나 소밖에 안 된다고 나왔을 때 그게 잠재의식이 의식화 된 거예요. 아시죠, 그 사람이 누군지? 교육부에, 뉴스의 초점이 된. 그건 무의식에서 나온 게 아니고 잠재의식, 전의식에서 나온 거예요. 이런 지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억압하느냐? 어릴 때 아빠, 엄마와 삼자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육이 강제하겠지요. 커서는 친구, 학교 가니까 교사가 있고, 교회에선 목사가 있지요. 사회, 직장에는 상사가 있을 거고, 군대 가면 고참이 있을 거고. 이런 것들로 인하여 내가 이 자리에서는 처신을 잘해야 돼. 행동 똑바로 해야 돼, 라고 스스로 자기를 억누르겠지요. 그렇게 생긴 것은 슈퍼에고, 초자아라고 해요. 초자아와 이드, 알 수 없는 괴물과 그리고 에고, 현재 나라는 이 세 가지를 2차지형이라고 합니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정신을 이렇게 보는 겁니다.
정신을 이렇게 보면서도 우리가 항상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생물학적인 충동에서 유발된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거죠. 인간은 어떤 자리에서 점잖은 체하고 잘난 체하지만 환경이 가장 기본적인 동물적인 극한환경에서는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이고 종교, 신앙이라든지 믿음, 소망, 사랑, 그런 것 다 필요 없고 그저 내가 잘 되고 싶다는 것도 없어져요.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있을 때 나가 있습니까? 혼자 있을 때 나가 있어요, 없어요? 혼자 있을 땐 나라는 게 없어요. 나가 없는 게 아니고 나란 행세를 안 한다니까. 나란 행세는 타자, 타인 앞에서 그 순간 구성하게 돼있어요. 급조하죠.
나중에 자식들 결혼시킬 때 상견례하고 결혼식장에서 찍은 사진들 보세요. 가관입니다. 점잖은 체한다고. 그 위치에서 나는 이런 행동을 해야 한다. 그때 나는 상황에 맞게 급조한 거예요. 여기서 잘못 보이면 내 딸, 내 아들이 결혼해서 트라우마가 될 수가 있어요. 행동 조심해야 돼요. 자기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있는 폼, 없는 폼 다 내야 돼요. 끝나고 나면 한복 벗어던지면서 힘들어서 두 번 다시 못하겠다고 하지요.
초자아가 자아를 늘 의식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드가 또 당기죠. 초자아가 현실에서 타협해서 내놓는 것을 현실원칙이라 해요. 리비도는 쾌락원칙. 그래서 프로이트는 현실원칙과 쾌락원칙의 균형을 맞추면서 인간은 그때그때마다 정신을 가다듬고 산다고 보는 겁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하니까 그렇다면 지옥에 있는 공자, 맹자 또는 석가모니, 그리고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인간이 착하게 된다는 것, 바르게 된다는 것은 뭘 해야 돼요? 초자아는 자기보다 월등한 전통이라든지 윤리와 도덕을 말하거든요. 윤리도덕에서 자아가 정신 바짝 차리고 그걸 지켜내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향상된 인격적인 인간답게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 예수의 형상을 본받는 의와 거룩과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게 아니냐고 생각하겠지요. 맹자나 공자나 석가모니나 성화론에 의하면 그럴 가능성이 보이죠. 그런데 프로이트는 애초부터 그걸 거부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노골적인 정신병이 된다는 겁니다. 왜? 안 되는 걸 억지를 부리니까.
그게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근본을 속이면 안 돼요. 근본은 뭐냐? 쾌락원칙이거든요. 착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 받고, 힘들게 산다는 것. 직장에서 넥타이 바짝 매면 숨도 못 쉬어요. 목사들이 개척교회 할 때 장점 중에 하나가 설교할 때 넥타이 안 매고 남방 걸치고 하는 것도 포함돼있다니까. 그냥 편안하게 하는 것, 서서 안 하고 앉아서 하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쾌락을 위해서. 까짓 것 주 안에서 자유인데, 뭐. 이것도 안 한다고 지옥 가고, 한다고 천당 가는 것 아니잖아요.
이런 윤리나 모든 도덕이 아무리 칭찬이 주어져도 자아는 점점 더 통합되기보다 균열이 심해져요. 균열된 이것을 주체라 하는 겁니다. 자아가 아니고 주체. 자아는 자꾸 통합하려 하고 주체는 갈라지게 하는 거예요. 자아는 자기가 다루지면 주체는 자기가 다룰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어요. 그래서 자아는 늘 주체를 숨겨요. 그러니까 인간은 처음부터 위선자에요. 기만하고 위선적이고 연극배우고, 자기가 자기를 연출하고 꾸미고.
그런데 그것이 어디서 들통 나는가? 3페이지에 보면, 잠잘 때 드러나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잠잘 때 드러나는데 정신과 오는 환자들은 평소에 대낮에 길거리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까 남한테 피해를 주잖아요. 요즘 말로 하면 환자가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은 환자 따로 있고 정상인 따로 있잖아요. 혼자 잠자면서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문제는 대낮에 그런 짓하고 몽유병 환자처럼 다른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이런 게 문제가 된단 말이죠.
프로이트는 치료를 어떻게 하느냐? 자유연상이라고 일종의 최면 비슷한데 환자의 얼굴 보면 안 돼요. 비스듬히 앉아서 속에 있는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마음대로 끄집어내세요. 대낮에 꾸는 꿈이라고 보면 돼요. 최면도 꿈이니까. 속에 있는 꿈을 마음대로 발설하게 합니다. 발설이란 말은, 그 매개가 언어에요. 말을 하게 합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아까 이야기했지요. 인간은 자아가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이드, 무의식이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놓고도 우리는 남들 앞에서 내가 말했습니다, 내 뜻은 이렇습니다, 라고 거짓말해요. 나라 할 때 나가 뭡니까? 이드에요, 슈퍼에고에요? 이드지요. 충동이죠. 그런데 사람은 자꾸 나라고 위장하잖아요.
사람이 정신 바짝 차린다 할지라도 그래서 이성적으로 제대로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노이로제에 의하면 삐질삐질 땀이 나고 긴장이 된다는 말은 지금 내가 억지로 억누르고 있는 중이라는 걸 표하고 있는 거예요. 목사들 설교할 때 편하게 합니까, 아니면 정신 바짝 차리고 합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하잖아요. 예배시간에 설교와 그냥 평소에 편하게 하는 말투가 다르잖아요. 설교시간에 막 농담하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치료방법이 뭐냐 하면, 잃어버린 아버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다시 박아주는 거죠. 사람이 남한테 피해줄 정도로 정신병이나 신경증이 되는 것은, 흔히 말하는 환자가 되는 것은 본인을 잡아줄 수 있는 추가 없어요. 남들이 자유롭게 웃으면서 사니까 자기도 모방해서 웃으며 살면 되는 줄 아는데 이게 흉내 내다가 정신병이 더 도지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도끼로 쳐 죽였어요. 왜 죽였느냐고 하니까 남들이 행복해 보인다는 거예요.
결국 타인을 투사해서 자기 자신을 가져오는 거예요. 행복해 보인다는 말은 어릴 때부터 웃는 모습이 유쾌했잖아요. 그런데 유쾌할 수 있는 이유가 어릴 때는 엄마가 있기 때문에 그렇단 말이죠. 이제는 엄마가 늙어 죽었는데 또는 지금은 엄마가 치매 걸려서 요양병원에 가 있는데 옆에 있더라도 귀찮은데 짐이 되는데. 이제는 어느덧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남한테 간섭받기 싫고 내 일은 내가 결정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것은 초자아한테 배운 거예요.
예를 들면, 입사면접장에서 면접관이, “바이어와 일을 처리할 때 어떻게 할 것입니까?” “저는 엄마한테 물어보고 할 거예요.” 그러면 입사될 리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안 물어보게 되면 정신병자 된다니까요. 물론 엄마든 아빠든 대상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어쨌든 여전히 이드 안에 이드는 그것, 그냥 괴물, 괴물에서 점잖은 내가 되기 위해서 초자아한테 간섭받고 사는 거예요. 간섭받는다는 것이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어요. 그러나 어쩔 수 없어요. 그러면 취직도 안 되는데. 어른이 됐으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맞아요. 내가 알아서 하는데 그 원칙 안에 옛날 엄마, 아빠한테 배웠던 대로 한다는 뜻이에요.
제가 지금 강의하면서 이해됐는지 헷갈려, 정말.
이야기 쉽게 합시다. 회사에 입사했는데 이번 일은 네가 알아서 해. 우리 회사는 창조성을 강조하니까 당신의 창조력을 발휘보세요. 그래서 작업할 때 바로 대학교에서 교수한테 배운 거잖아요. 영어는 어디서 배웠어요? 토익학원 가서 배운 거잖아요. 자기가 할 수 있다는 게 다 외부에서 배운 거잖아요. 그리고 남을 대할 때 웃으면서 공손하게 대한다. 이것은 일곱 살 때 엄마, 아빠 살아계실 때 계속 배운 거라니까요. 내가 어디 있어요. 초자아가 뒤집어씌운 거지.
과장님, 제가 알아서 했습니다, 라는 말은 그 초자아의 두께를 나름대로 선택했고 타협했고 그걸 변형시켜서 일을 했다는 말과 똑같은 거예요. 제가 첫째 시간에 이야기했잖아요. 초자아에 의해서 내가 교육받고 산다는 자체가 정신분석학을 깊이 들어가면 그게 전부 다 정신질환, 정신병이란 거죠.
그 일을 해서 과장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닷가에서 때려치우고 싶다. 무엇 때문에? 건강검진해보니 암이 발견됐데. 암이 발생한 것은 스트레스 받았다. 스트레스 받았다는 말은 내 안에 초자아가 너무 강한 거예요. 회사 가면 숨이 막혀. “김 과장, 이 프로젝트. 김 과장, 이 프로젝트.” 이번 연말에는 획기적으로 해서 우리 부서가 일등 해봅시다. 그래프 그리고. 옆에 있는 회사는 이런데 우린 이게 뭡니까? 이게 초자아잖아요.
초자아한테 간섭받으면 전에는 내 능력으로 하다가 내가 사업을 할까? 내 일을 해볼 생각을 하지요. 도피지요. 왜 도피합니까? 불쾌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불쾌하면 죽잖아요. 이래 사나 저래 사나 마찬가진데 개인 사업이나 하다 죽을까. 청년들 회사 취업도 안 되고, 취업해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뛰쳐나올 걸 차라리 동업해서 벤처 기업해볼까, 그런 생각.
이 스트레스 받는 것으로 정신과에 찾아갑니다. 정신과 의사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세요. 부장, 과장 욕하고 다 나옵니다. 그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입니다. 꿈을 해석해서 당신이 잃어버린 옛날에 참 좋았던 것, 아빠, 엄마한테 사랑받고 보호받고 또는 간섭받던 그 시절, 그래서 내가 누군지 몰랐던 것을 다듬어가는, 형태로 잡아주는 그때 그 시절이 좋았지요. 그 시절이 좋았기 때문에 어른 되도 힘든 거예요. 그때를 잊을 수 없어서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어. 고향의 푸른 잔디가 그렇게 좋아서. 그때는 뒷동산에 누워있어도 누가 간섭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어 뒷동산에 누워있으면 회사에서 부르지요, 집에서 딸들이, 아들들이 아빠 어디 있느냐고 부르지요. 혼자 가만두질 않아. 힘들어요. 혼자 있을 때는 주는 밥이나 먹으면 되지 지금은 자기가 돈 벌어야 돼.
불교에서는 생로병사라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그게 아니에요. 초자아와 이드에 끼어버렸어요. 폭발할 지경이라. 이걸 풀어야 되겠지요. 풀면 내가 사랑했던 대상자가 내 자리를 잡아주는 거예요. 쉽게 말하겠습니다. 어릴 때 내가 아니면 불쾌해요. 어릴 때 나를 다시 되찾아주면 유쾌해요. 그때 내 자아가 처음 생겼기 때문에. 그때 그 시절이 좋은 겁니다.
여자가 아이들이 귀신 인형 가지고 놉니까? 그런 특이한 얘는 없고 보통은 백설 공주나 바비 인형 갖고 놀지요. 바비 인형을 왜 갖고 놀지요? 엄마가 줬잖아요. 아이가 인형을 입에 대면 엄마가 그렇게 하지 말라 하잖아요. 여자 아이가 칼 쥐면, 여자는 그런 것 하는 것 아니야. 인형 갖고 놀아야지. 인형은 엄마를 닮았지요. 예쁘지요. 그래서 어떤 사회학자는 말합니다. 남자,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고 사회가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켰다는 거예요. 우리 집안에서 여자는 조신해야 돼, 라는 집안의 풍토가 초자아로 작용해서 그로 하여금 조신해야 되고 여자가 바지 입고 돌아다니면 안 되고, 여자는 치마 입고 예쁘게 해서 나중에 좋은데 시집가고. 그게 자기 정신의 구성요소로 들어오는 거예요.
여기 봅시다. 3페이지 밑에. [여기에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응축(압축), 치환(대체), 대리 표상이 그것이다. 첫째 과정 ‘응축’은 나타나는 꿈이 숨겨진 꿈보다 내용이 적어지는 것인데, 숨겨진 내용의 일부가 하나로 뭉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얼굴은 A 같은데, 옷 입은 건 B 같고, 걸음걸이는 C인데 실제로는 D의 역할을 하는 경우다. 이건 네 사람이 한 사람으로 응축되어 나타난 것이다.]
분명히 꿈에 예수님이 나타났는데 옷은 중국옷을 입었다. 빵을 먹어야 되는 예수님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더라. 이게 바로 중첩된 거죠. [마치 여러 개의 사진을 한 장의 필름 위에 찍어 놓은 것과 비슷하다. “당신의 결혼을 축하합니다.”는 말을 ‘축 결혼’이라는 말로 압축한 전보문과 같다.] 이처럼 꿈은 그렇게 돼있다. 꿈은 우리가 아무리 해도 알 수 없는 무의식이 나온 거예요.
그 다음에 치환인데 숨겨진 요소가 관계없는 다른 것, 비슷한 것으로 치환되는 거예요. 샹들리에 부딪쳐서 피를 흘렸는데 샹들리에가 둥글게 생겼지요. 평소에 대머리 되지 않을까 두려웠는데 꿈에 샹들리에란 사물로 대체되어 꿈에 나온 겁니다. 인간은 자기 신체가 피해보는 것을 기피하는 식으로 꿈으로 대체함으로써 나는 대머리 안 되겠지, 라는 자기 본성, 쾌락원칙에 맞추어서 꿈에서 한 대 맞았는데 이제는 대머리 안 되겠지. 평소에 대머리 안 됐으면 하는 것이 꿈속에 샹들리에로 걱정근심이 나온 거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꿈의 내용이 이런 거예요. 그냥 대체에요. 안 됐으면 좋겠다, 또는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미리 당겨서 온 거예요. 개꿈입니다.
[셋째 과정인 대리표상은 ‘어리석다’나 ‘서두르다’ 같은 개념은 시작각인 영상으로 바꿔놓는 것을 말한다.] 너무 어리석어도 안 되고 서둘러도 안 되고 둘 다 나한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방법으로 꿈은 본래 내용을 왜곡하고 가공하고 변형한다. 이것은 ‘꿈의 검열’ 때문에 일어난다.] 검열해서 나온 것이 의식이고, 검열되지 않은 것은 무의식입니다.
그래서 평소의 인간의 행동은 꿈속에 나타나는 무의식이 있는데 낮에서 그걸 자꾸 검열해서 그래서는 안 돼, 그러면 회사에서 쫓겨나, 아빠, 엄마한테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니야. 왜?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돼. 이것이 계속해서 검열하는 모습으로 나오지요. 그런데 검열을 계속하게 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겠지요. 억압이 과도가 넘치면 그것이 신경증이 되고 노이로제가 되고 정신병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걸 잡아줄 필요가 있어요. 6페이지 봅시다. 위에서 세 번째 줄에. 잡아주는 것을 승화, 뭔가 위로 상승하는 요소. 불안을 승화로 바꾸는 거예요. 승화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뜨개질, 예술, 스포츠, 이런 것은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익이 되겠지요.
유럽 사람들이 축구에 빠져있지요. 광적이죠. 포르투갈 이겼다고 좋아하고. 프랑스 졌다고 울고 있으니까 위로해주고. 정규리그 5연속 1등한 삼성이 꼴찌 되니까 삼성팬은 화납니다. 스트레스 받아 치킨과 맥주 더 먹게 됐어요. 이유가 뭐냐? 동일성, 동일시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삼성 라이온즈가 이길 때 잘한다고 칭찬하고 싶어요. 임창용 선수가 마무리할 때 칭찬을 마구 했습니다. 도박하기 전까지는. 오승환이 있을 때 그렇게 칭찬했어요.
그 칭찬이 어디서 나왔는가? 어릴 때 엄마, 아빠로부터 칭찬받았던 그때 사랑 안에서 내가 소멸되고 싶어요. 중요한 겁니다. 인간의 본능은 뭐냐? 사랑 안에 내가 소멸되면 에고, 내가 없어지고 사랑만 남을 때 그것이 극단의 최고의 기쁨이고. 주이상스(향유)라 하는데 이건 라캉의 용어입니다. 최고의 즐거움이에요. 그러니까 성 테레사의 희열이라고 있지요. 마더 테레사의 희열, 성모 마리아의 희열. 성화, 향유, 무엇을 근거로? 자아의 소멸을 근거로.
갑자기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2장에 내가 삼층천에 올라갔을 때 나인 줄 몰랐다. 마태복음 17장에 나오는 엘리야와 모세와 예수님이 나타났지요. 베드로가 자기가 무슨 소리하는지 몰라요. 내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겠다고 할 때 베드로가 말을 했는데 내가 말한다가 아니지요. 그냥 말이 자기를 통해서 나와 버렸지요.
희열. 극단의 희열. 의사들은 그걸 엔돌핀이 돌았다고 해요. 정신적인 도파민을 활성화시켰다. 이걸 주사로 해서 도파민을 활성화시키면 이런 희열이 와요. 희열의 연속을 그리워해서 멕시코에서 올라오는 마약을 비싼 돈 주고 사서 주사 맞으면 젊은이들은 그때마다 삼층천에 갔다 오는 거예요.
희열에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마조히즘, 얻어맞는 데서 오는 희열과 사디즘, 때리는 데서 희열. 얻어맞고 때리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사회심리를 설명한 사람이 에리히 프롬이에요. [소유냐 존재냐] 책을 쓴 사람. 그 사람은 프로이트 사상으로 사회는 정신분석으로 다 설명된다. 때리는 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때리는 쪽이 맞는 쪽이고 맞는 쪽이 때리는 쪽이고. 사기 당한 자가 사기 치고. 사기 치는 자는 전에 사기 당한 적이 있고.
희열을 한 번 맛 본 것이 인간에게 크나큰 불행이 되는데 잊을 수가 없어요. 음주 측정할 때 경찰이 뭐라고 합니까? 더, 더, 더, 더 하잖아요. 전에 기도할 때 이렇게 했는데 희열이 덜 돼요. 그러면 꿇어앉아서 하게 되죠. 깍지를 끼면 아프겠지요. 더 아프게. 전에는 그냥 기도원에 왔다갔는데 이제는 소나무 뿌리를 뽑는다든지. 전에는 두 시간 기도했는데 세 시간한다든지. 세 시간했으면 네 시간을 채운다든지. 헌금을 할 때 십일조 했는데 십의 이조한다든지. 전에는 교회 한 번 나갔는데 두 번 나간다든지 새벽기도에도 나간다든지. 전에는 성경 석 장으로 끝났는데 이제는 다섯 장, 열 장 읽는다든지.
자학적인 방법과 피학적인 방법, 남을 때리든지 나를 때리든지. 그렇게 해서 뭘 얻고자 합니까? 나를 잊어버리고 사랑해 준 대상만 있던 그것과 동일시하고 싶은 그때가 그리워. 정신병 아닌 사람이 누가 있어요. 다 정신병이지. 모든 게 정신병이에요.
왜 교회 나옵니까? 만회하려고. 희열, 나를 잊을 정도로. 이 세상의 어떤 고통도 아편 먹은 것처럼, 그것도 아픈 거야?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로 주님의 사랑에 완전히 뒤집어써서 내 기쁨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건 도 튼 사람이고 처음 온 사람은 기쁨의 대상을 돈으로 와요. 잃어버린 건강과 잃어버린 돈을 빨리 만회해서 보상받아서 옛날 돈으로 즐거웠던 시절로, 아픈 것 없는 그 시절로 되돌아가서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고 나중에 죽어서 천당 가겠다는 이런 목적을 갖고 교회에 온단 말이죠.
그리고 도가 좀 트면, 우리 교회는 기복신앙을 일체 부정해. 오직 주의 성령의 충만함으로 희열한다. 성령의 충만도 희열 아닙니까? 충만의 정도를 측정해보자. 65, 70, 77, 나중에 안 되면 남에게 때리라고 하면 변태니까 스스로 자기를 때리는 식으로 굶어가면서 처음에는 양심이 있다고 39일까지만 굶어요. 예수님이 40일했는데 건방지게 어디 40일을 해. 나중엔 그것도 없어요. 40일도 합니다. 돌파기념 뷔페 가서 먹고. 그 다음에 역량 키워서 45일까지. 어디 에베레스트 올라갑니까?
산에 올라가는 짓, 누가 올라갑니까? 엄홍길, 왜 올라갑니까? 그게 미쳐서 올라가는 거예요. 공무원들 왜 자꾸 진급시험 칩니까? 왜 승진을 바라봅니까? 미쳐서 그래요. 삼성그룹에서 아이템 끄집어내고 돈을 왜 그렇게 버는 거예요? 미쳤어요. 부목사하기 싫어서 개척 교회하는 것 미쳐서 그런 거예요. 교인 하나 오면 목사가 좋아서 입이 벌어지고 두 달 만에 나가면 설교시간에 짜증내고 왜 그래요? 미쳐서 그래요. 미쳤다는 말이 듣기 싫으면 인간이 원래 그래요. 이건 아주 부드럽죠.
이제 마지막 결론 내리겠습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주장이 옳다는 근거를 대라고 할 때 언어로써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식으로 해석할 수 없다. 의식에서 과학이 나왔기 때문에. 과학에서 해명할 수 없는 게 따로 있다. 그게 무의식이다. 그걸 언어로 통해서 안다. 언어가 뭐냐? 꿈 해석이라든지 말실수를 통해서 한다. 과학이전에 말이라는 것은 말할 때부터 그냥 말 안에 정신이 들어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이게 사후적이기 때문에. 일이 끝나고 난 뒤에 나중에 해석하는 걸 사후적이라 합니다.
아기가 6~8개월에 어쭈어쭈, 하면 엄마가 해석해요. “맘마 먹고 맛있다는 그 말이지.” 그런데 아기는 그냥 어쭈어쭈 했을 뿐인데 엄마가 의미를 부여한다니까요. 그 의미가 모여서 그 가정에 착한 아이,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납니다. 그 의미를 얘가 되돌려 받아요. 그러면 그 얘는 그 집안에 착한 아이가 되는 거예요. 나는 착해야 돼요. 엄마, 아빠가 시킨 훈계조건 하에 착한 아이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집안에서 착한 것이 남의 집에서는 착함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쪽 말을 들어야 착하게 돼요. 그 회사의 말을 들을 때.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내가 규정한 자아가 저쪽에서 먹히질 않아요. 힘들어요.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프로이트의 이야기가 결국 말 해석과 관련돼있어요. 말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 되는데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와요. 땅에 속한 자는 땅의 말을 하고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의 말을 하지요. 요한일서에 나오고 요한복음에 여러 번 나오지요. 하늘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 말을 하지요. 땅에 속한 땅에 속한 말을 하지요. 그 대표적인 사람이 열두 제자잖아요. 베드로가 마지막 예수님 잡힐 때 나는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고 했지요.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야기했어요. 그게 권력에 매였기 때문에 그래요. 어둠의 권세에 매여서 그래요. 지금은 어둡다. 네가 어둠에 속한다는 겁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이렇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내가 대신 값을 치러주겠다. 이겁니다. 이미 해답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창세전에 해답은 끝났어요. 십자가 진다는 것은 이미 해답이 끝났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후에 창조가 시작되는데 창조의 모든 것은 십자가가 왜 복음이고 진리고 답일 수밖에 없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서 천지창조가 시작되었고 마감까지 진행되는 겁니다. 이 사실은 바로 성령이 와야 알 수 있는 거예요.
성령은 십자가를 통해서 옵니다. 우리가 잘 나가라고 성령이 오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소개하는 것으로 성령의 모든 임무는 마감되는 거예요. 못난 우리를, 동물에 지나지 않는 우리를, 정신병자로 사는 우리를, 말도 안 되는 우리를, 천국 갈 수 없는 우리를 어떻게 아들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주시는가? 이미 들어가게 해주시고 확정된 상태에서만 성령이 오게 돼있어요. 성령 받은 사람은 이미 구원이 된 상태에서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죄, 이런 죄 때문에 주께서 미리 가져가셨다고 감사하고 깨닫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사람은 감사와 기쁨밖에 없어요. 자기가 스스로 자기 과거와 비교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그냥 복음 안에서 희열을 느낄 뿐이에요. 누구 때문에? 내가 믿었기 때문에? 아니요. 예수님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주신 믿음. 예수님 때문에 믿음이고, 예수님 때문에 소망이고, 예수님 때문에 사랑이지 예수 믿는 그게 사랑이 아니고, 예수 소망한 게 소망이 아니고 주님 자체가 믿음, 소망, 사랑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아는 사람이 프로이트를 하는 이유가 뭐냐? 바로 오늘날 교회에 오는 교인들이 어떤 심보로 오는지를 정신분석학을 미리 알아서 그들의 고백이라든지 말에, 행동에 휘둘리지 말아야 된다는 거죠. 성령 없이도 얼마든지 종교적으로 희열을 맛보기 위해서 이 정도로 나는 돈을 미워했습니다. 자기 신앙 자랑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그걸 목표로 삼고 남과 경쟁해서 신앙에서 안 지려고 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게 육이거든요. 육과 성령을 구분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정신분석학을 외면할 수 없는 거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과학적으로 따져도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큰 문제가 있습니까. 하지만 이런 문제를 안다는 자체가 이미 성령께서 십자가 복음을 알려 주였사오니 이미 구원을 받은 자로써 세상을 향하여 복음 전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