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2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5-프로이트
20160712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5-프로이트
(강의:이근호 목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1856~1939, 73년밖에 못 살았는데 그 사람이 정신을 분석한다는 겁니다. 정신을 분석한다는 말이 새롭게 들리는 이유는, 분석이란 말이 전에는 어디에 쓰였느냐 하면, 현미경에 안의 개구리를 분석한다든지 또는 금석, 물체를 분석하잖아요. 정신을 분석한다는 말이 상당히 낯설어 보이지 않습니다. 왜 낯서냐 하면 정신이란 기본적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에 들어오면 정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물질이 중요한 시대에요. 과학이 중요한 겁니다.
정신분석이란 정신은 아무것도 아니고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서 인간이란 몸도 평범한 생물체에 지나지 않지요. 이 말은 그냥 밥이나 먹고 번식하면 그게 인생 다다. 아들, 딸 낳고 밥이나 먹고 살다가 나중에 힘 빠져 죽으면 끝. 그 외에 다른 의미가 없겠지요. 방금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면 정신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지요.
인간이 산다는 기본이 인간의 신체라는 생물학적인 상황, 그것으로 분석은 끝난 겁니다. 특히 의학 같은 경우에. 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몸 분석은 끝났잖아요.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니까. 아픈데 정신으로 다루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죠. 뒤에 두드러기 낳습니다. 정신적으로 문제 있습니까? 질문 자체가 성립 안 되지요. 여기 붉은 게 있는 정신적으로 문제 있습니까, 나쁜 짓했습니까? 이렇게 묻는 게 아니에요.
병원에 가면 나쁜 짓했느냐고 안 묻지요. 가만있어 보세요. 주사 한 대 맞으세요. 주사 한 대 맞으면 해결되는 것이고, 약 바르면 되는 겁니다. 그게 현대인들이 사는 기본이잖아요. 그게 좀 되고 난 뒤에 정말 할 짓이 없으면 정신이 무엇이냐? 인간은 어떻게 바르게 살고, 죽고 나면 어느 세계에 가느냐? 이것은 할 짓이 없을 때 심심할 때 돈 버는 일을 그만 둘 때 그때 여유로운 자가 하지 당장 급한데 주의 뜻이 어떠니 바르게 살겠다느니
급하다는 말은, 생물학적인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그 이야기가 전부거든요. 따라서 순서가 1순위가 인간은 생물적으로 인간 규명은 끝났다. 의학적으로 분석이 끝났기 때문에 몸 건강하면 기쁘게 살고 아프면 분석된 데이터에 의해서 약 먹고 주사 맞고 낫다. 여기서 더는 생각하지 말자. 이게 오늘날 과학적 인식입니다. 그래서 정신분석이란 게 인기 있을 리가 없지요. 보통 사람에게.
그런데 왜 정신분석학이 유명하게 되었는가? 약으로 주사로 병원에서 치료로 뭔가 해결되지 않다는 게 등장하면서 정신분석학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그전에도 안 되는 게 있었어요. 불행하다든지, 나는 왜 우울하게 되느냐? 저 사람이 왜 그렇게 미우냐? 저 사람이 사랑스러워서 밥도 안 먹힌다. 너무 사랑해서 밥이 안 먹힌다고 병원에 가봐야 입맛 돋우는 것 잡수세요, 하고 끝난다 말이죠. 그것이 인간들이 요구사항에 합치 되지 못하겠지요.
그래서 인간을 생물적으로 다룰 수 없는 다른 요소가 과학만능시대에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1페이지 위에서 세 번째 줄에 [참고로] 하고 나와 있지요. 신경증과 정신병인데 이것은 약 먹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물론 이것을 오늘날 정신과에 다룰 때 약이나 주사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게 아니고 광기를 진정시키는 거예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에 머무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원인을 해결해 줄 순 없어요.
프로이트는 원래 정신과 의사입니다. [정신질환에 전공하고 치료하는 의사로서 프로이트는 매일 신경증을 앓고 있던 사람들을 늘 만난다. 신경증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신경증이 뭐냐? 보통 정신과라 해서 정신병을 다루는데 신경증은 증세 좀 약한 것, 어느 정도 사회 적응이 가능한 상태고 정신병은 사회 적응이 안 돼요. 정신병은 정신과 치료로써 치료가 안 돼요. 진정하는 것이지. 정신분석학으로 정신병을 치료하지 못해요. 해명할 뿐이지 이유를 설명할 뿐이지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과학이 진리가 되는 이 사회에서 과학주의에 대한 수치심, 허점을 노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학으로 의학으로 다 되는 게 아니구나. 문제 있구나.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거예요. 우리가 인간을 볼 때 놓친 게 있다는 거죠. 인간을 해명하고 분석할 때 인간을 동물 실험하듯이 개구리 해부하듯이 인간을 낱낱이 해부했어요. 할 때까지 다 해보는 거예요.
프로이트 당시에도 두뇌를 해부했지만 프로이트가 거기에 알게 된 것은, 결국 남는 것은 두뇌에 대한 자극밖에 없더라. 어떤 자극을 했을 때 신경증, 정신병이 생기고 어떤 때는 생기지 않는다. 그것뿐이거든요. 그 과정에 대해서 왜 이런 자극에 대해서 나는 나폴레옹이다, 나는 대통령이다, 이런 형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 의학이 관여할 바도 아니고 관여할 이유도 없고 그런 거예요. 쉽게 말해서 나는 대통령이라고 할 때 왜 동 서기라 하지 않고, 삼성그룹의 부장이라 하지 않고 대통령이라 하느냐? 그걸 모른다 이 말이에요.
과학이 자존심이 어느 정도 세냐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해명해야 과학주의가 진리답다는 자부심을 이 시대가 공유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학교에서 이 세상에 과학적으로 안 되는 게 있습니까? 하면, 과학적으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어,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되지, 라는 이야기를 해야 된다 이 말이요.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해명돼야 되는 거예요.
그럼 이 세상에 해결 안 되는 게 있습니까? 해결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다 해결 돼. 그러면 안드로메다는 가봤습니까? 그건 네 몫이야. 후손들이 앞으로 과학을 발달시키면 안드로메다에 우주선 보내서 연구할 거야. 그래서 과학이란 미지의 것이 남아있더라도 가능성을 열어둘 때 지금의 진리 값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과학이란 자체가 진리(과학=진리)기 때문에 그 다음에 이야기할 건 없어요. 과학이라 왜 진리인지 증명해 줄 일만 생각하면 돼요. 연구를 못해서 모자란 것, 그래도 여전히 과학은 진리가 돼요. 그런데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데 과학으로 손댈 수 없다면 과학은 참지 못합니다. 용서가 안 돼요. 이것은 과학이 진리라는 명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과학이 틀릴 수 있다고 하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납니다.
인간을 의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인간을 살리는 것만 아니고 죽일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열려버립니다. 내가 하는 과학적인 일이 진리가 아니면 오류가 되고, 오류는 이 시대에 악이 돼버려요. 의사가 하는 의학이 짓이 악마 짓이 된다고. 논리가. 그래서 과학이란 말이 단순히 종교도 있고 과학도 있고 문학도 있고, 이렇게 있는 게 아닙니다. 과학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과학이 모든 걸 다 접수하든지 아니면 과학 자체가 엉터리라든지, 도 아니면 모에요. 둘 중에 하나에요.
프로이트가 바로 그런 과학적인 인식을 받은 사람입니다. 의사들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신앙을 모르기 때문에 신앙을 갖는다고 볼 수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거든. 의사가 만약에 예수 믿는다? 그런 일은 거의 없어요. 교회는 다니죠. 의사니까 대번에 장로도 되겠지요. 의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엉터리 예수를 믿든지 아니면 자신이 의학 자체가 죄라는 것을 인정하든지 둘 중에 하나 돼야 돼요. 의학도 옳고 예수도 옳다는 말은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의사가 그걸 판단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의사로 과학의 전문가로 종사한다는 자체가 이미 자기 자아성으로 자존심으로 굳어있는 입장이란 말이죠. 그래서 성경말씀이 의학과 다를 리 없다는 거예요.
어떤 과학자가 예수를 믿는다? 이건 터무니없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요. 그런데 과학자로 예수 믿는다는 경우 대표적으로 창조과학회하는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은 과학을 하면서도 예수를 믿는다는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거짓말쟁이에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들은 핑계대기를 과학을 통해서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셨음을 증명해내겠다는 겁니다. 거의 미친 사람이 아닌지 저는 그렇게 보고 싶어요.
창조론이 뭐냐? 진화론의 일부에요. 진화론은 나쁜 게 아니에요. 솔직한 것이지. 인간이 꺼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진화론에 다 모았어요. 진화론 바깥으로 인간은 나갈 수 없습니다. 진화론에 안에 창조론이 들어있어요. 창조론이 진화론 반대해봐야 진화론이 약간 부풀어진 거예요. 그 경계선 밖으로 못 나가요. 세상에 하나님은 과학으로 증명한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성경은 창조론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한 거예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지금까지 이야기한 거예요. 프로이트는 과학자이면서도 과학자의 자존심을 좀 꺾고 과학이 다가 아니란 것을 느꼈던 사람이에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할 때부터 이단 소리를 들을 각오가 돼있어야 되고, 과학에 한계가 있다는 말은 과학자가 할 소린 아니거든요. 모르는 게 있다는 건 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하면 안 돼요. 과학은 한계가 없어야 진리답거든요. 갈 때까지 가보는 거죠. 아직까지 측정기구가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그렇고, 아직까지 연구가 약간 어설퍼서 그렇고, 세밀하지 않아서 그럴 뿐이지 기존의 과학을 전체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부정하려면 삿갓 써야 되고 자동차 타지 말아야 되고 비행기 타지 말아야 되고 컴퓨터 부셔야 되지요. 시계 차지 말아야 되죠. 이게 모두 과학의 산물인데. 로켓이 목성에 가는 걸 보세요. 왜 과학에 대해서 시비 겁니까? 컴퓨터의 정확성 아니면 로켓이 목성에 못 가잖아요. 인간이 달에 서지 못하잖아요. 그리고 멀리 있는 사람과 화상통화를 못한단 말이죠. 이게 전부 과학의 힘이잖아요. 전등 있고 선풍기 켰잖아요. 과학의 힘이에요. 신발부터 해서. 땅 파면 이 옷 나옵니까? 안 나오잖아요. 전부 자연물 중에서 과학적으로 과정 거쳐서 옷을 입었던 말이죠. 과학을 모독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과학을 모독하려면 옷을 벗고 다니든지 그래야지요. 안경을 왜 씁니까, 아플 때 판피린은 왜 먹는데? 과학을 그렇게 싫어한다면 그냥 살다가, 기껏 원시인들 수명은 20~30이면 다 죽잖아요. 그렇게 죽어야지 왜 오래 살아요. 과학의 힘입니다.
프로이트는 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신병은 왜 생깁니까? 과학이 진리라면 정신병을 해결해야 되지 않느냐. 과학은 정신병, 신경증 해결 못합니다. 우리가 공부하면서 신경증이 뭐고, 정신병이 뭔지 알아야 되겠지요. 신경증이란 말은 잘 안 쓰는데 노이로제라고 많이 쓰죠. 노이로제는 여러 가지 있는데, 히스테리는 아무 이유 없이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갑자기 턱이 돌아간다든지 눈이 돌아간다든지 갑자기 열이 난다든지. 어떤 증세가 없는데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는 걸 히스테리라 합니다. 흔히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하죠. 어떤 말에 대해서 과도한 행동을 나타냈을 때. 요새 아가씨가 말이야, 상사가 말하면, 갑자기 커피를 들이킨다든지, 누가 결혼한다는 소리 들으면 소릴 지른다든지, 이런 행동을 히스테리라고 해요.
정신병은 사회 적응이 되지 않는 것, 신경증은 그것보다 증세가 약해서 사회 적응은 되는데 몸은 본인이 이유를 모르는 거예요. 강박증, 도착증. 뭔가 이상한 과정을 거꾸로 뒤집어서 생각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해야 하는데 여자의 속옷이나 스타킹을 만지면서 흥분하는 것, 도착증이요. 주로 성적인 경험이 많지요. 우울증, 잘 아시죠. 좋으면 좋다고 까불고 싫으면 싫다고 죽고 싶어 하고. 공황장애. 혼란 상태인데 비슷한 것이 대인기피증, 마이크 쥐면 벌벌 떠는 것, 사람 앞에 서면 식은땀이 나는 것.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단순히 내 생각뿐만 아니고 신체가 반응을 나타낼 때 그걸 신경증이라 합니다. 사람 앞에 서면 긴장 돼, 라고 말만하면 이건 신경증도 정신병도 아니에요. 그런데 마이크 쥐면 갑자기 땀이 나고 자기가 자기 몸을 조절 못할 때 그런 것을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히스테리 환자는 어릴 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발생된다. 언어를 통한 자기 동일성이 불안정해진다.]
어릴 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라고 프로이트는 보고 있어요. 아기가 산에서 떨기나무가 불 붙어서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그 현장에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지요. 예수님뿐만 아니고 모든 아기를 태어날 때 그 현장에 아빠, 엄마, 아기 있지요. 그걸 삼자관계. 장차 신경증이 되고 정신병이 되는 모든 원인은 삼자관계에서 아이가 후천적으로 정신이 발생한다는 거예요.
방금 후천적이란 말했지요. 그럼 선천적인 것은 뭐냐? 아기는 동물, 물컹물컹한 신체덩어리에 불과해요. 도롱뇽이나 개구리 또는 고양이, 개, 소, 원숭이와 인간을 동급으로 보면 돼요. 이게 바로 과학적이에요. 제가 이 과학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했지요. 인간은 정신이 위주지 신체가 위주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지요. 인간이니까 자존심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걸 북한식 용어로 하면, 최고 존엄성이 있고 싶지요. 그런데 아프면 어디 갑니까? 절에 갑니까, 교회 갑니까? 병원 가지고. 병원에서 의사가 뭐로 봅니까? 정신 소지자로 봅니까? 동물로 봐요. 전쟁터에서 의사가 없으면 수술을 누구한테 맡겨요? 수의사한테 맡겨야 되지요. 난 동물만 다룹니다, 이래서는 안 되잖아요.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미 정립됐어요. 인간은 정신으로 돼있는 게 아니에요. 인간은 세포로 돼있어요. 아니면 우린 병원에 갈 필요 없어요. 인간은 약 60~70조개의 세포로 돼있습니다. 그것도 20조, 100조 하다가 그랬는데 지 마음대로에요. 인간의 두뇌 속에 쓰임새의 관계가 백조에요. 백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는 우주에 있는 모든 수소 원자보다 많아요. 엄청나지요. 그걸 인간 신체의 신비라고 하는데.
인간이 신비롭다는 자체가 과학이 진리라는 뜻이에요. 20년, 200년 후는 모르고 지금의 과학 수준으로는 해명이 안 된다, 신비로움이 남아있다는 말은 뭔 뜻이냐 하면, 그러니까 과학은 여전히 진리 값을 한다는 뜻이에요. 거기서 누락된 것이 바로 정신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이야기했을 때 주위에 있는 모든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프로이트를 이단으로 간주해서 아예 사람 취급도 안 한 거예요. 프로이트는 그게 아니고, 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프로이트보다 더 과학을 따돌리고 정신으로 나간 사람이 있었으니 그 제자 라캉이란 사람이 있어요.
어쨌든 프로이트 입장에서는 히스테리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발생한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 하면, 아빠, 엄마, 자기, 삼자관계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삼자관계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최초로 아기가 사랑하는 대상은 엄마입니다. 이게 사단의 시작이에요. 아기는 자기를 사랑할 수 없어. 태어날 때부터 의존적입니다. 이건 원숭이도, 개도 마찬가지에요.
의존적이란 말은 과학적으로 보면, 독자적이 아니다. 독립성이 상실됐다는 말입니다. 과학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물리학에서 말하는 질점으로 봐요. 독자적인 점으로 본다고. 독자적인 점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다른 질점, 다른 사물과 물체의 역학적 힘을 논하는 것이 뉴턴의 만유인력이잖아요. 힘의 관계입니다. 거기서 과학도 나왔고 의학도 나왔어요. 의사가 환자를 볼 때 질점으로 봅니다. 이 세포가 문제 세포와 연결이 안 됐는지 이렇게 보지요.
인간은 세포덩어리에요. 단백질덩어리로 보는 거예요. 단백질덩어리를 수술해놓고 아저씨 수술 잘됐습니다, 라고 하지요. 이 아저씨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진짜로 말하면 아저씨라고 하면 안 돼요. 물질덩어리 수술 잘됐습니다, 라고 해야지요. 그러면 기분 나빠하지요. 왜 기분 나빠할까요? 물질덩어리 아니에요? “선생님, 수술 잘됐습니다.” 이러면 기분 좋아하고. 거기에 ‘나’가 있지요.
프로이트는 나 자체를 공격하지요. 나는 후천적이라는 거예요. 이걸 2차지형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1차지형이 있다는 말이거든요. 인간의 정신 내부에 1차지형과 2차지형이 있다는 거예요. 후천적, 2차 이런 개념은 1차 있고 이미 선행적인 것이 있지요. 그것이 과학적인 동물에서 나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프로이트는 자신이 정신분석을 하지만 과학자가 맞는다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기존의 과학에서 놓친 것을 내가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히스테리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은, 사랑이란 말은 선천적이 아니고 후천적이에요. 아기는 엄마 의존적이에요.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은 엄마에 예속된 거죠. 이 말은 분리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기는 자아라는 게 없어요. 엄마가 자기 자아를 대신하고 있고 대신하면 되는 거예요. 자아성이 분리되지 않는 겁니다.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을 때 제삼자가 볼 때 두 사람이죠. 그런데 아기는 한 사람이에요. 아기는 자아성이 없기 때문에 엄마와 한 덩어리로 있는 겁니다. 이게 선천적이죠. 자연스러운 거죠. 그런데 커가면서 엄마 따로 자기 따로 되잖아요. 그럼 이게 문제 있는 거예요, 정상적인 거예요? 이게 비정상입니다. 인간 자체가 비정상이에요. 동물에서 인간 된다는 자체가 비정상이에요. 태어나면서.
그렇다면 인간의 정상은 뭐냐? 프로이트는 다시 무기물로 돌아가야 된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이게 정상이에요. 프로이트는 과학자기 때문에 인간은 물질덩어리입니다.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거예요. 아무리 인간이 살아서 뛰어봐야 비행기 타봐야 나중에 하늘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땅으로 내려오죠. 인간이 비행기란 과학적 도구를 사용해도 다시 땅으로 돌아오잖아요. 아무리 과학적으로 보약 먹어봐야 죽음이죠. 프로이트는 죽음의 욕동, 죽음의 충동이 인간의 가장 선천적이고 기본적인 것이다. 그렇게 봐야 과학이 진리라는 우리 바운더리 안에 유지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프로이트에 대해서 욕하는 이유가 뭡니까? 바로 그게 싫은 거예요. 너무 정확하고 과학적이라서 싫은 거예요. 프로이트는 그 사람을 왜 욕합니까? 너는 과학이 진리라고 하면서 왜 일관되지 못하느냐? 사람을 죽인 것이 죄가 된다. 그게 왜 죄가 되지요? 나무 치고 책상 치는 것은 죄 아니죠. 그런데 사람 치는 것은 왜 죄가 됩니까? 이미 과학을 떠난 거예요. 사람은 세포덩어리죠. 세포덩어리를 친 거지 사람을 친 게 아니잖아요. 왜 일관되지 못해요.
급할 때는 병원에 오면서 최고 존엄성을 왜 주장합니까? 인간에게 존엄성이란 게 없어요. 없는데 왜 얼토당토않게 주장하느냐 말이죠. 그게 다 정신병이란 겁니다. 특히 라캉이 주장해요. 인간이 자기 존엄성, 가치를 주장하는 게 정신병이에요. 다시 말해서 정신병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게 정신분석학이에요. 인간의 정신병 중에 하나가 제사 지내는 거예요. 예배드리는 것. 세상에 보이지도 않은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 이런 망상이 어디 있습니다. 완벽한 망상증이에요. 왜 망상증임에도 불구하고 아닌 걸로 치느냐 하면, 거기서 돈이 나오고 권력이 나오기 때문에 그래요. 그 권력은 누구를 위한 권력인가? 나를 위한 능력이에요.
나는 어디서 나왔는가? 나 자체가 정신병자에요. 나는 엄마와 분리되면서 나가 생긴 거예요. 이때부터 우리는 반항의 기질이 있습니다. 벌써 내가 엄마와 하나 되지 않고 엄마 따로, 나 따로, 아빠 따로 될 때부터 사단 났어요. 문제 터졌어요. 한 평생 지옥 생활해야 돼요. 사람이 괴롭다. 왜 괴롭습니까? 자아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그냥 이슬 먹다 죽지. 왜 괴로운가? 사드 때문에 괴롭다. 칠곡 주민들 사드 때문에 데모하고 있거든요. 내가 사는 땅에 사드 있기 때문에. 그럼 나라는 누가 지키고?
모든 것이 나의 의미로 환원되지요. 교회 나간다, 예수 믿는다, 왜? 천당 가려고. 이게 정신병이라니까요. 사단 난 거예요. 전부 다 히스테리 환자들이에요. 이유도 없이 도끼 들고 남 죽이고. 분노조절장애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욱하는 성질 없습니까? 있지요. 참는 거예요. 참는 것은 치료가 아닙니다. 그냥 진정하는 거지요. 아까도 이야기했지요. 정신병은 치료되는 게 아니고 약물로써 진정하는 거예요.
프로이트는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아빠, 엄마가 있었는데 그 둘을 쪼개는 사람이 등장했으니 아버지라는 겁니다. 같은 성을 가진,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시하고 엄마를 경쟁자로 삼고, 딸은 엄마와 동일시해서 아버지를 경쟁자로 삼는 삼자관계가 일어나는데 그 모든 것이 리비도, 충동에서 일어납니다. 충동은 생물학적으로 일반 짐승들과 똑같이 갖고 있는 생존의 본능과 또 하나 죽음의 본능. 힘들면 죽고 싶고 좋으면 살고 싶은 것, 여러분 정신분석 끝났습니다.
인간은 뭐냐? 인간은 없어요. 기분 좋으면 살고 싶어 하고 존재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기분 나쁘면 죽고 싶어 하는 그 괴물이 나중에 교육 받기를 그걸 인간이라고 외부에서 교육받은 거예요. 정신분석학 참 쉽지요. 인간이라는 자존심만 포기하면 정신분석학은 쉽습니다. 내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신분석학은 이해하기 힘들어요. 내가 난데없는 괴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신분석학만큼 쉬운 게 없어요. 왜 괴물인가를 증명하는 게 정신분석입니다. 한시도 사람인 척하는 건 용납되는데 사람이라고는 하지 마라. 이게 정신분석학이 요구하는 겁니다. 정신이 돌았거든 정상이고, 멀쩡하거든 비정상인 줄 알아요. 그게 정신분석학이에요. 그러니 프로이트가 욕 안 먹을 수가 있겠어요? 모든 면에서 욕 얻어먹는 거예요.
사랑받지 못했다는 말은, 사랑이란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쁘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아기는 자기 자신이란 게 없어요. 아빠와 엄마의 투쟁 사이에서 거기서 같은 성을 따라서 골라잡습니다. 아이가 보니까 아빠는 남근을 갖고 있어요. 음경, 생식기. 아빠와 엄마, 삼자관계에서 뭔가 차이점을 발견합니다. 아빠는 생식기, 음경이라는 게 있는데 여자는 음경이라는 게 없어요. 원래 있는 게 정상인데 없는 걸 삭제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걸 정신분석학에서는 거세라 해요.
거세나 삭제 같은 것이 삼자관계 속에서 자기는 엄마와 하나지요. 자아는 없어요. 엄마가 자기 자아를 대신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맞은편에 아빠가 등장한다면 아빠한테 엄마가 눌리게 됩니다. 그러면 엄마의 남인 아빠가 아기의 남이 돼요, 안 돼요? 엄마와 하나기 때문에 남이 되겠지요. 남이 된다는 말은 동물에서 자기가 아닌 제삼자는 자기를 공격하게 되지요. 여기서 윤리도덕이 생겨나는 거예요. 너 내 말 안 들으면 엄마처럼 잘라버린다. 라는 거세의 위협을 받게 돼요. 얘한테 그런 소리하면 안 된다? 얘가 없다니까요. 얘는 엄마에서 일시적으로 나온 어떤 부산물로 생각하면 돼요. 얘는 자아가 정립 안 된 상태에요. 인간의 자아는 1년 6개월에서 3년 내에 생기는 거예요. 라캉에 의하면 거울단계에서. 자아라는 게 없어요.
아기가 엄마를 처음에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엔 그게 아니고 엄마가 아기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돼요. 엄마의 욕망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라는 겁니다. 엄마가 뭘 욕망하는 줄 몰랐는데 아버지를 보니까 아버지는 있는데 엄마한테는 없는 게 있어요. 음경이죠. 그러니까 얘가 생각하기를 엄마가 나를 아빠처럼 생각해서 욕망한다고 오해하게 되죠. 그러나 오해란 말은 잘못된 말인데 원래 진짜가 있고 다를 때 오핸데 얘는 진짜라는 게 없어요. 가르친 대로 올 뿐이에요.
이 모든 가르침, 내 말 안 들으면 거세해 버린다는 위협과 폭력, 양육, 이것을 사랑이라 하는 겁니다. 이게 왜 사랑이냐 하면, 사랑은 좋은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다, 포근한 것이라는 그런 느낌의 사랑이 아니라 그들은 부모로부터 이걸 사랑이라고 받았기 때문에 사랑의 내용을 채우는 거예요.
그런데 사랑의 개념이 결국 뭐가 되느냐 하면, 영원토록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이 되겠지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붙드는 거죠. 태풍이 오면 배를 육지의 말뚝에 묶든지 바다 속에 닻을 내리든지 해야 되겠지요. 이게 없으면 정신병이라는 거예요. 프로이트에 의하면. 아기가 되던 어른이 되던 반드시 의존하는, 지시하고 명령하는 이게 사랑이라는 거예요. 엄마, 아빠가 죽고 난 뒤에 이런 행동이 옳을까, 그를까 물을 사람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친구라는 게 사랑의 추에요. 사랑의 핵심이라니까. 그게 없으면 사람은 노이로제와 정신병에 걸리는 겁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우리가 알기 전에 흔히 상식적으로 정신병자는 자립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잖아요. 그게 바로 잘못된 생각이에요. 인간의 외심이라고 표현하는데, 외심이란 이상한 말이죠. 바깥에 있는 심지? 인간 속에 있는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핵심추가 사실은 바깥에 있는데 그게 인간 내부에 자리 잡을 때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거예요. 믿는 구석이 있는 거예요. 믿는 구석이 있으면서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정신분석학에서 치료할 때 잃어버린 삼자 관계, 특히 아버지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하는데 테베의 라이오스란 왕의 아들이 오이디푸스에요. 델포이에서 아폴로 신으로부터 신탁을 받는데 뼈를 준 자를 죽이고 살을 준 자와 짝이 준다는 계시를 받습니다. 뼈를 준 자니까 아버지고, 살을 준 자는 어머니죠. 오이디푸스의 아버지가 신탁을 받고 난 뒤에 아기를 안 낳으려고 했는데 술 먹고 실수로 아기를 낳았어요. 신의 운명을 거부하기 위해서 아기를 죽이려고 했어요. 오이디푸스란 말이 발목이 부었다는 뜻이에요. 아기를 나무에 매달려고 했는데 집행자가 요셉처럼 애굽에 20냥에 팔아먹듯이 고린도에 팔아먹었어요.
그러다 스핑크스 만나고, 수수께끼 풀고 오이디푸스가 죽지요. 오이디푸스가 죽는다는 말은 스핑크스 수수께끼를 풀었던 수수께서 속에 해석자가 수수께끼 속에 포함돼있기 때문에 푼다는 신화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수수께끼가 푸는 것이 제삼자가 풀어서 굴복시킨 게 아니고 푼 인간이 수수께끼대로 운명을 살 수밖에 없는 곳이 포함되는 그런 의미가 있어요. 결국 오이디푸스는 나중에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자기 신탁, 고린도에 가서 배다른 동생이 어디서 날아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느냐, 이런 식으로 하니까 자기 아버지와 엄마가 누군지 알기 위해서 신탁을 받으러 테베로 올라가다가 길에서 자기 아버지를 만나서 죽였지요. 자기도 몰랐어요.
나중에 보니까 신탁, 신의 운명은 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게 신화에 나오는 비극이란 말이죠. 오이디푸스의 비극,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를 차지한다는 그 내용이 비극이라면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지니고 있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이야기에요. 모든 인간은 비극으로 태어나서 마지막에 비극으로 끝나는 거예요. 잠복된 정신병자들이에요.
아무리 독립하고 싶지만, 오이디푸스가 독립했잖아요. 자기가 왕이니까. 왕은 최고의 자리입니다. 최고의 자리만큼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없어요. 최고의 자리지만 최고의 자리가 가장 비극적인 자리에요. 오히려 최고의 자리가 인간을 대표해서 인간은 왜 울고불고, 부처가 이야기했습니까? 생로병사의 비극, 모든 비극의 원인은 이미 태어난 환경 자체가 운명 자체가 비극적인 거예요. 인간의 주체에 대해서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것을 프로이트가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봅시다. 콤플렉스는 방해, 장애란 뜻이죠. 뭔가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거침돌을 내부에 장착하고 있는 것. 내부에 빼내고 싶어도 빼내지 못하는 장애물. 고린도후서 12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내 몸의 가시 빼달라고 기도했지요. 주님이 그 은혜가 네게 족하다. 사단의 가시에요. 사단이 있어야 인간이 된다는 말. 인간이 사단 없이는 천국 가는 사람이 못 된다는 이야기에요. 왜냐하면 인간 자아는 천국에 못 가요. 새로운 자아를 부여받아야 돼요. 나는 사탄과 단짝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인정하는 자만 천국, 아들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아들의 주되심은 반드시 죄인이 없이는 주가 못 되기 때문에. 죄인을 의로 바꿔줘야 주가 되거든요. 프로이트가 그걸 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히스테리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그렇고, 강박증은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래서 히스테리는 자기가 성공했다고 만족하는 경우가 없어요. 항상 불만이라. 그런데 강박증은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너무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너무 완벽해. 그래서 지하철 타고 난 뒤에 손을 열댓 번을 씻고. 나는 완벽하니까. 나는 완벽해야 돼. 조금도 흠집이 나면 안 돼요. 오류가 있으면 안 돼요. 억지스러운 인생. 양쪽 다 억지스러운 거죠.
[도착증 환자는 그는 거세(부모의 강제적 관여)를 거부하고 기본적인 환상 속에 빠져버린다.] 부모 자리에 부모를 대신한 물체나 사물을 채워서 허점을 메우려는 하는 게 도착증. 우울증은 자기애를 충족시킬 대상을 상실한 것을 못내 아쉬워서 자기 자신한테 애도하면서 과도한 알레르기 면역체제, 그러니까 일종에 알레르기 현상이에요. 자기에 대해서 너무 예민하게 자기 학대와 자기 제거, 실제로 죽어 버릴까. 난 나쁜 놈이야.
정신병은 이유도 몰라요. 신경증은 뭔가 자기가 어떻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신병은 그것조차 안 돼요. 정신병은 두뇌가 고장 나서 치매, 간질은 줄기세포로 바꾸든지 증세를 완화시키는 수술을 하면 되지만 심인성, 정신적인 문제의 정신병은 정신분열증과 편집증이 있는데 편집증에는 의처증, 의부증 같은 게 있습니다. 정신분열증과 편집증이 어떻게 다른가?
[정신분열증은 모든 기표로서 하나의 개념 혹은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증세.] A, B, C, D, E, 이런 것들을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여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나폴레옹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나폴레옹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야 된다. 정신분열증, 기독교 신자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구원받기 위해서 일어난 일, 주께서 하신 일. 비슷하지 않아요?
편집증은 하나의 의미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 좀 비슷하지요. 일어나는 일을 통해서 하나로 모으는 거고, 나는 하나라고 생각하고 그걸 전부 다 강제로 설명하는 것. 내가 말하면서도 여러분이 차이점을 알았는지 의심돼요. 내가 누군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로 모아질 때 정신분열증이에요. 그렇지. 그러니까 나는 나폴레옹이어야 돼. 네가 뭔데 나를 이렇게 하느냐, 할 때 이건 편집증. 네가 약국 앞에서 어느 남자와 바람피웠지? 남자가 의처증이 있을 때 그 여자가 어떤 행동을 해도 자기가 정당함을 내가 너를 의심하는 게 정당함을 증명하는 식으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정신분열증이 편집증보다 심하다고 보면 돼요. 내가 나폴레옹이다가 아니고, 나폴레옹이 나다, 이래 보면 돼요. 같은 말인가. 내가 나폴레옹 돼야지, 그게 아니고 그건 편집증이고. 나는 없어. 내가 나폴레옹 돼야 될 이유도 없어. 왜냐하면 처음부터 내가 나폴레옹이기 때문에. 흔히 말해서 미쳤다. 미쳤다고 하는 것은 정신분열증을 말하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는 10분 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