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을 삼키다
고린도전서 15: 54-56 사망을 삼키다사람들에게 주변에서 일상적인 죽음을 대하게 됩니다. 주로 연세가 많아서 돌아가신 분의 죽음입니다. 장례식장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사망 그 자체가 아니라 조금 전까지 사셨던 분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망이 인간을 삼킨 것이 되고, 그 인간은 사망 안으로 사라졌고, 동시에 죽음 만에 생생한 승자로 인식되게 됩니다. 죽음의 세력에서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점이 실제상황으로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사망을 상대로 싸움을 거는 자는 없습니다. 결투를 신청할 상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힘 쪽에서 발휘되는 ‘처분의 시점’을 맞아들일 뿐입니다. 사형수의 처지가 되어 형 집행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정체가 예수님에 의해서 드디어 밝혀집니다. 인간 세상에서 죽음은 ‘율법’에 의해서 그 본질이 풀리게 됩니다. 즉 ‘선악과 과실’을 따먹은 효과가 죽음을 초래한 것입니다. 죄가 죽음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인간들이 예상하거나 정리한 죄는 죽음과 무관합니다. 반드시 율법에 의해서 죄가 규정된 그 죄만 죽음과 심판과 저주와 지옥을 불러오게 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죽어도 죽는 이유도 모르고, 판결문인 율법을 받아놓고도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면서 죽어갑니다. 이러한 내막을 들추어 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하신 모든 일은 율법의 내막과 관련된 일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 17-18에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완성이 십자가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율법대로 죽은 지 사흘만에 살아났습니다. 십자가 지신 분의 부활입니다. 즉 ‘율법 완성자’로서의 부활입니다. 이는 십자가 밖에 머물고 있는 자는 구원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