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강-YouTube강의(유혹)160621-이 근호 목사
158강-YouTube강의(유혹)160621-이 근호 목사이번 강의는 제 158강, 제목은 ‘유혹’입니다. 보통 유혹이라고 하면 창세기 3장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만 생각할 겁니다. 그렇게 되게 되면 아, 유혹이라는 것이 옛날 지나간 날로 멈추고 말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유혹이 주어지고 있고, 우리 주님은 그 유혹을 유혹이라고 파악을 해야 된다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근데 성도나 오늘날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유혹 자체가 뭔지를 모르고 있어요. 유혹은 그냥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만이 유혹이 아니고, 신약에 들어와서 유혹은 그 범위가 전체까지 확대되어 퍼졌습니다. 유혹이라는 하는 것은 우리가 단순히 거기에 꼬임 당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하는 그런 뜻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유혹을 허락하신 이유를 알아야 돼요. 허락하신 이유는 유혹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있는 우리의 실상을 바깥으로 공개시키는 그런 일들을 하나님께서 하신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하면 되겠어요. 유혹이란 뭐냐, 남김없이 모든 것을 점령하려는 그 마음, 그 마음과 결부된 것이 다 유혹입니다. 남김없이 전부를 다 차지하고 싶은 이 충동은, 이것이 그냥 평범한 것조차도 하나하나 다 유혹으로 작용합니다. 길에 있는 돌멩이, 우리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흔한 돌멩이지만, 수석을 수집하는 사람 같으면 그것이 유혹이 되는 겁니다. 대충 아름다운 것으로 만족하지 않아요. 모든 아름다운 것을 다 차지하고 점령할 때까지 그 사람에게 유혹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도 마찬가지고요. 내 자식을 낳고 키우더라도 뭐 이정도 하면 만족한다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유혹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세상만큼이나 넓은 유혹에 끌리는 그런 죄의 속성이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죠. 시험에 들지 말라. 야고보서에 나오는 말씀이죠. 하나님이 유혹받지 말라는 말은, 또 주기도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말씀은 우리가 정신 차리면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 속에 어떤 요소가 있는지를 우리 자신이 모르고 있으니까 그걸 다 바깥으로 드러내는 계기로써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주신 겁니다.창세기 3장에서 선악과를 따먹었다, 유혹에 말려들었다, 라고 하는데 그때 등장하는 피조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뱀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그 뱀의 후손이 통치하고 지배하는 겁니다. 뱀의 후손은 뱀 탓이 아니고 오히려 그 뱀으로 하여금 아담을 유혹하는 그 감춰진 영적 존재가 뱀의 후손이 되는 겁니다. 여자의 후손이 여자보다 못한 게 아니고 도리어 여자의 주가 되시는 분이 여자의 후손이 되는 겁니다.그렇게 볼 때, 선악과만 달랑 아담이 유혹받았다? 그건 시작에 불과한 겁니다. 이제는 그 유혹의 극대, 유혹의 영적인 의미에서 유혹은 예수님 오시기 난 뒤의 모든 것이 포괄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을 때에 바로 마귀한테 세 번씩이나 유혹을 받았습니다.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 마귀가 마지막 제시한 유혹이 뭐냐, 손잡고 모든 것을 다 차지하자. 모든 것을 점령하자. 이렇게 되는 겁니다.그러한 유혹이 신약에 예수님 오시기 전에 구약부터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거기에 북이스라엘에 아합이라는 왕이 등장하고, 그리고 그 아합의 왕궁 근처에 나봇이라는 사람이 경영하는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원에 대해서 아합이 유난히도 집착하게 됩니다. 왕입니다. 왕 같으면 그 포도원 주인 나봇 보다 훨씬 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얼마든지 더 자유로울 수도 있는데, 유독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에 대해서 그렇게 강렬하게 유혹에 끌리고 있어요. 그래서 사단이 났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왕의 위치에 있다면, 그런 조그만 포도원 하나는 개인적으로 경작하도록 놔둘만 한데, 아합 안에 악마적인 속성이 기어이 그 나봇의 포도원마저 그걸 몽땅 다 점령해야 만족하는 유혹을 받은 겁니다. 그러면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마저 점령하겠다는 심보는,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전도하고 선교한다는데, 거기에 반드시 악마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뭐냐 하면, 눈에 띄는 온 아파트 촌, 주변에 있는 모든 상가, 민가, 그리고 지도책에 나와 있는 아프카니스탄, 뭐 탄자니아, 페루, 모든 나라를 기독교나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점령하겠다는 그런 심보를 가지고 선교와 전도에 나섭니다.그런데 그것이 성경적으로 합당합니까? 이 합당하냐고 묻는, 거기에 시비 거는 교인들도 별로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렇게 교인수가 차고 넘치면 교회 다니는 본인들의 마음이 흡족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유혹을 유발하는 악마의 마음이라는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키를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복음을 믿는 택한 백성만 갑니다. 그러면 전도가 뭐냐? 선교가 뭐냐? 떨어내는 거예요. 떨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올 것 없다는 거예요. 다 오지 말라는 거죠. 갈 사람만 가자는 갑니다. 이게 바로 올바른 전도고 올바른 선교에요. 천국가지도 못할 사람 오천만, 육천만 모아 봤자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오천, 육천만 모으기 위해서 예배당 짓는 그 자체가 이게 악마의 유혹에 빠진 거예요.모이자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십자가 앞에서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이게 복음이에요. 근데 멀쩡한 사람보고 죄인이라고 하면 올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올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러면 전도가 실패한 거예요? 성공한 거예요? 전도 대성공한 겁니다. 어차피 천국 못 갈 사람들이 안 왔으니까. 천국은 십자가 복음의 능력으로 가고, 근데 그 복음의 능력을 입을 사람이 몇 명 안 된다면, 몇 명 안 되는데 사람을 남겨두는데 성공해야 돼요. 그 사람해서 더불어 두 세 사람 더 오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천국 가지도 못하는 남편까지 끼어들고 자식까지 끼어들고 이러면 그거는 주님의 전도와 주님의 선교를 세상의 악마적인 교회가 지금 훼방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본성, 뭔가 내가 다니는 교회이기 때문에 커져야 되고 확장되어야 돼야 한다는 이것이 바로 아합 왕이 코앞에 있던 나봇의 포도원마저 점령 못해서 환장한 그 악마적인 심보가 교회 전도, 선교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현실화되고 구체화되고 있습니다.교인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십일조 꼬박꼬박 냈는데, 왜 우리교회는 몇 년 째 교인수가 불지를 않고, 교인수 안 불면 헌금도 안 나와요. 헌금 안 나와서 있는 교인들이 부담을 느끼면서 도대체 얼마를 더 바쳐야 교회가 운영이 되겠는가?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그것 자체가, 이 교회가 유혹거리가 되고 말았어요.유혹받을 짓을 했기에, 결국은 본인들이 유혹에 못 빠져나와서, 교회 다니면서 지옥 가는 그런 사단이 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