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20160610a히12장 1절(재앙과 징계)-이 근호 목사
안양20160610a히12장 1절(재앙과 징계)-이 근호 목사 첫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을 할 차례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증인들이 있으니까 이들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공통점이라고 하는 것은 이들의 개성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다시 말해 개성의 차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겁니다. 키, 인물, 학력이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인간들끼리의 차이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천국의 차이는 딱 하나밖에 없어요. 예수님과 우리의 간격이 있어야 되고 그 차이를 지니고 천국에 가야 돼요. 그래야 증인이 돼요. 일단 본인의 증인이 되면 안 되잖아요. 제가 분명히 증인들끼리는 차이가 없다고 했지요. 차이가 없다는 말은 각기 자기의 자랑질 하는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겁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선악과를 따먹지 않은 아담의 후손들도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지 간에) 전부 다 죄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죄가 있는 곳에는 죽음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다 죽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일반적인 죽음 속에서 특이한 죽음을 끄집어내는 방식을 사용하십니다. 죽음은 동일한 죽음인데 이 동일한 죽음을 일반적인 죽음과 특이한 죽음으로 나눌 수 있어요.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벨의 죽음이 있고 또 하나, 가인의 죽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똑같이 보이지만 아벨의 죽음과 가인의 죽음은 차이점을 드러내는데 이 아벨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증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인의 죽음은 아담의 죄를 증거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이제 머리가 명석한 분들은 아실 거에요. 아무리 색다른, 개성 있는 인간들이 등장을 하더라도 인간은 질적으로 딱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죽음을 증거하고 또 하나는 아담의 죽음을 증거합니다. 딱 두 종류에요. 어차피 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질이 다르다는 거지요. 죽을 때 그 죽음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연계가 되어 있으면 그 사람은 예수와 더불어 살 것이고, 아담의 죽음과 연계되어 죽게 되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상관이 없는 죽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죄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단 모든 바탕을 아담의 죽음으로 만들어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래서 아담의 죽음을 전부라고 보는데 이것은 일반 상식이고 보편적이지요. 그런데 여기에 아벨의 죽음이 등장을 하게 되면 이것은 특수한 죽음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특수한 죽음이 아담의 죽음과 다른 특수한 죽음인 이유는 나중에 그 안에 예수님의 죽음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그래서 증인이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될 때에 이 죽음에 누가 관여를 하는가 하면 아담의 죽음이 관여를 하게 돼요. 그래서 아담 계통의 죽는 자들은 가해자가 되고 특수한 죽음을 죽는 자들은 이것의 반대말로 피해자가 되는 겁니다. 이걸 일반화시켜 버리면 이 세상에 충만해 있는 악마의 죄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그런 죽음을 보여 주는 자를 두 자로 성도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다 죽는다 모든 인간이 죽는다 예수님이 죽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