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7 - 좁은 현실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7 - 좁은 현실 16,06,06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166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그렇다면 잘못된 길로 간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 이미 악한 길이 상주해있기 때문에, 그 악한 길을 파악해서 그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 잘못된 길 !!
여기에 '잘못된 길' 이라고 나오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기가 여기에 있는 것은 정산인데, 그런데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잘못된 사람이 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이런 점이 생기기 때문에, 제가 계속해서 언급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지금 매직이 없는데, 강대상 서랍에 가면 잊지 싶은데 좀 가지고 오세요. 아무튼 잘못된 길을 간다고 할 때, 자기는 정상적으로 있는데, 그러니 잘못된 사람이 아닌데, 잘못된 길을 선택할 때만 그 잘못된 길로 가서 나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잠언서가 되었던 전도서가 되었던, 성경전체가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경말씀을 어떻게 생각하는고 하니까, "성경에서 잘못된 길로 가지 말라고 헸으니, 내가 계속해서 옳은 길을 선택해서 가면 결국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게 바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 중립지역은 없어 !!
그것이 왜 잘못인지 그림으로 설명해드리겠는데, 사람이 이렇게 있으면 크게 길이 두 가지가 있는데, 옳은 길이 있고 잘못된 길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옳은 길을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는 잘못된 길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 자기가 스톱이 된 상태에 있으면, 그것은 중립지역인데, 즉 잘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 가지 가능성이 다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옳은 길로 가게 되면 정상적인 사람이고, 반면에 옳지 않는 길로 가게 되면 나쁜 사람이 되어서 지옥에 간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종교나 윤리도덕이 다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밟고 있는고 하니, 지금 우리가 서있는 자리가 우리의 자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자리라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는 피조물인데, 그런데 창조주와 떨어져서 피조물이 되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다. '피조' 라는 것은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그렇게 만들어졌으면 만들어진 자가 단독으로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게 벌써 잘못인데, 만들어졌으면 만든 분과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편 131편을 살펴보자.
(시 131:1)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시 131:2)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 131: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 젖 뗀 아이와 어미 !!
여기 2절에 보면,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젖 뗀 아이는 어디에 있는가? 어미 품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언뜻 보면 아이가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서 진짜 주인공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어미라는 말이다.
그런데 어미가 그 어미 됨을 이야기할 때는, "나는 어미다" 라고 하면서 등장하는 것이 아닌데, 그게 아니라 젖 뗀 아이를 앞장세워서 어미는 뒤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젖 뗀 아이가 그만 자기 자랑을 하게 되면 어미는 부각되지 않고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젖 뗀 아이는 그렇지 않고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는데, 그러면서 그 아이는 자기 엄마와 눈을 맞춘다는 말이다. 그러니 젖 뗀 아이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젖 뗀 아이 자체에게 독자적인 의미를 두어버리면 안 되는데, 젖 뗀 아이는 엄마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앞장서서 있다는 것이다.
◈ 그게 곧 메시야의 마음 !!
그렇다고 하면 시편 131편에서, 왜 이러한 마음상태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원자는 이 엄마와 같은 심령을 가지고 메시야가 온다는 것을 지금 시편 131편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니가 구원받은 이스라엘인 것을 자부하는가? - 예, 자부합니다. - 그러면 너희 엄마는 누구지?" 라고 묻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엄마가 왜 필요합니까? 저는 이제 다 커서 내 일을 내가 알아서 하는데, 어느 길로 갈 것인지 알아서 선택합니다" 라고 한다면, 그러면 이스라엘이 아닌데, 그것은 심령자체가 가출한 상태라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데,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마치 젖 뗀 아이와 같이 자기 엄마를 쳐다보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기 아들이라고 하는데, 왜 아들이라고 하는가? 아버지가 없는 아들은 없는데, 그런데 아들이 언제 되바라지는고 하니까, 아버지의 존재를 삭제시킬 때, 그 관계가 끊어지게 되고, 그러면 더 이상 그 아들은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 나는 관대하다 !!
자기가 누구 집 아들이라고 하면, "너거 아버지는 무엇을 하시노?" 라고 나올 게 뻔하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를 알리지 않기 위해서는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처럼 "나는 나다" 라고 말이다. 이 "나는 나다" 라는 것이 에스겔서나 이사야서에 보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마귀에 속한 민족들의 모토인데, 즉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들이 특징이라는 말이다.
'700명' 이라는 영화에 보면 그게 나오는데, 거기서 페르시아 나라의 왕이 뭐라고 하는가? "나는 관대하다" 라고 하는데, 언뜻 들으면 매우 겸손해 보이는데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게 아니라, 마치 불교에서처럼 "나는 부처다" 라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말이다.
그래서 길을 가는 사람을 붙들고 "당신은 예수처럼 될래요? 아니면 부처처럼 될래요?" 라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겠는가? 다들 예수보다도 부처가 되고 싶은데, 왜냐하면 부처는 누구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는 본인이 부처인데,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즉 '독생자' 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붙들고, "당신은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니면 예수님만이 위대해지는 것을 원하십니까?" 라고 묻게 되면, 물론 그렇게 질문을 노골적으로 하게 되면 신자인 티를 내고 싶어서 제대로 답변하지 않는데, 그래서 질문을 달리 해본다는 것이다. "당신이 위대해지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당신보다 다른 사람이 위대해지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자기가 위대해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예수님은, 영원한 아버지의 아들 !!
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는데, 이것은 아버지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밟고 있는 이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급선무라는 말이다. 그래서 잠언서는 무엇인고 하니, 뭔가 우리가 옳은 선택을 하는 책이 아니라, 자기의 본래 자리를 찾아가는 책이 잠언서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 본래의 자리가 바로 자기를 독자적인 독립된 존재인 것을 포기하기 만드는 자리인데, 즉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간다" 라는 것을 완전히 좌절시키는 자리인데, 그것이 바로 성도의 행복이고, 축복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자기 인생을 자기 힘으로 살아가지 않고, 자기 인생을 포기하는 상황, 그것이 성도로서는 최고로 복을 받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 가는 세월 그 누가 ♬
그것이 아니라고 하면, 자기 인생을 자기가 꾸려서 나가보라는 것이다. 가는 세월을 누가 막겠는가? 서유석이 그런 노래도 부르고 했는데 말이다. 아무리 순국선열이고 간에, 6.25 때 자기가 괴뢰군을 몇 명을 죽였던 간에, 그야말로 서서히 인천 앞바다를 향해서 나아가는데, 이 산과 들과 바다에서 그만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존재는 그야말로 일시적인데, 아침에 이슬이 되어서 잠시 반짝이다가 그만 수증기가 되어서 증발해버리고 마는 안개와 같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야고보서 4장에 나오는 우리의 인생의 제대로 된 모습이라는 말이다. 즉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라는 것이다.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렇게 되면, "그러면 우리가 의미가 없지 않은가?" 라고 하는데, 그래서 관계가 중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