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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60614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4-니체자유게시판-

20160614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4-니체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니체가 플라톤을 건드렸어요. 이것은 기존의 기독교에 대한 모든 것을 다 건드린 거예요. 그렇게 건드린 이유와 니체의 철학과 부합됩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은 옛날 사람이잖아요. 니체는 1800년대고 기원전 500년경이니까 2300년 차이나잖아요. 2300년 전에 플라톤이 초인 사상을 들고 나왔다는 말은, 과거는 이렇다는 게 아니라 지금 초인 사상이 마라톤에서 나타나기 위해서 과거로부터 이렇게 진행해 왔다는 것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자기 이론에 현재 자신이 충실하다는 것. 이것은 철학자들이 어떤 주장을 내세울 때 본인이 딱 맞아떨어질 때 내용만 진리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현실적으로 통째로 진리가 되는 장점이 있는 겁니다. 본인까지 포함하는 거예요.

“바르게 사세요.” 말만 이러면 아무 소용없잖아요. “나, 보세요. 나처럼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이게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살아?” “나는 이렇게 살아.” 니체의 백만 마디 말보다 본인이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아까 니체를 미친 사람이라 했지요. 그럼 니체가 아닌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인데 그들의 주장은 뭐라 했습니까? 그냥 입 다물고 떠내려가듯이 사는 거예요. 모든 운명은 신에 맡기고. 니체는 그 점을 알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만 해라. “나한테 붙을래, 기존에 것에 붙을래?” 이렇게 요구하는 거예요. 자기는 광야의 예언자니까.

어느 논리가 옳으냐가 아니라 어느 것이 너한테 공감이 되느냐는 거예요. 첫째 시간 마지막에 뭐라고 했습니까? “신을 찾고 뭘 해봐야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가 공감되지, 그지?” 그러는 거예요. 흑산도에 성폭행한 그 사람들이 만약에 교회에 나가든 안 나가든 나름대로 양심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럼 그 사람이 하고 싶어서 성폭행했다고 나옵니까? 아니지요. “나는 공모한 적 없습니다. 나는 손만 만졌습니다.” 이렇게 나온단 말이죠. 그건 곧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는 미친 사람 되기 싫어요. 정상적인 사람 되고 싶습니다.” 무슨 사람? 착한 사람 되고 싶다는 거잖아요.

니체는 말하기를 제발 착한 사람이란 환상을 깨라. 착한 사람하지 말고 초인이 되라.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너, 방금 흑산도 교사 성폭행했잖아.” 그런데 그 사람이 성폭행했다고 자랑한 적 없지요. 이건 나쁜 짓이니까. 니체가 보기에 성폭행보다 더 나쁜 것은 이게 나쁜 짓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더 나쁜 거예요. 실토해서 잡혔잖아요. 자수한 게 아니죠. 잡혔죠. 그러면 초인 같으면 어떻게 해요? 나, 나쁜 짓 안 했는데. 날 찾아요? 내가 그 짓했는데, 하고 자진해서 경찰서 나와야지. 이게 초인이라는 거예요.

방금 중요한 이야기했어요. 니체가 이런 이야기하니까 사람들이 니체처럼 안 하고 니체 이론이 자기 행동을 어느 정도 정당화하고 변명거리로 그것만 이용하는 자에게 니체는 용납이 없습니다. 그런 것을 초인이라고 간주하지 않는 거예요. 그걸 비속인, 쉽게 말해서 더러운 인간, 다른 말로 하면 위선자에요. 좋은 일할 때만 위선자라고 말하는 게 아니고 니체는 나쁜 짓하는 자에게도 동일하게 위선자라고 하는 겁니다.

왜 그렇게 세상에 자신이 없어. 기존에 플라톤 사상처럼 현재 선과 악이 지배하는, 그래서 니체 책 중에 [선악을 넘어서]가 있어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 권이 대표적으로 한국에 번역된 책이에요. 그걸 제가 다 읽었거든요. 위선자는 기존에 선악체계를 정상인 체제로 마음 두고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위선자, 다시 말해서 비겁한 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이 인간에게 책임지라는 말이 뭔 뜻이냐 하면, 니체에 의하면, 제발 너를 “나는 죄인입니다, 부족합니다.”라고 비하시키지 말고 상승시키라는 겁니다. 상승시키는 방법에 니체가 제시한 동물 비유가 있어요. 낙타가 있고, 낙타에서 사자, 사자에서 어린아이, 이렇게 해서 초인이 되는 겁니다.

낙타의 특징은 무거운 짐을 지면서도 군소리 않고 가는 것. 세상의 무거운 짐, 결혼해서는 가족이라는 짐, 직장에서는 직장생활 버텨야 되는 짐, 짐을 지고 살아가야 되는 거예요. 힘들게.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이게 뭐냔 말이죠. 노예가 따로 없는 거예요. 본인이 주인이면서 알 수 없는 주인을 섬기냔 말이죠. 왜 자진해서 노예가 되지? 이 바보야. 왜 알아서 짐을 지느냔 말이죠. 강요한 짐이 아니고 알아서 지는 거예요. 이렇게 살면 엄마가 좋아하겠지, 맨날 이러고 있단 말이죠. 자기 인생 살지 않고 엄마 인생사냐? 이럴 순 없단 말이죠.

여자 쪽에 아이가 셋이고, 남자 쪽에 아이가 둘 있다. 그런데 둘이 결혼하려고 하는데 남자 쪽 엄마가 결사반대해요. 그러니까 여자가 찔찔 짜는 거예요. 변덕도 많아요. 결혼하다고 했다고, 안 한다 했다가. 그때 남자가 꽉 잡아주는 거예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 당신도 결심하세요. 아이는 어떻게 하고요? 아이는 내가 담당하겠습니다. 이게 바로 낙타에서 사자가 되는 거예요. 내 인생인데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거예요.

낙타는 수동적으로 짐만 질뿐인데 사자의 특징은 전사, 군인, 적이 있어요. 낙타에서 사자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싸워야 된다. 소위 정상적인 사회질서에 대해서 싸워야 되는 거예요. 누가 이런 걸 좋아하겠습니까? 독재자들이 되게 좋아하죠. 그 중에 대표적으로 히틀러에요. 모든 민족들이 미쳤다고 하거든요. 그러나 히틀러는 뭐라고 합니까? 내게 주신 사명은 반드시 내가 이루고야 말리라. 투쟁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히틀러가 [나의 투쟁]이란 책을 지었잖아요.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를 따라가지 마라. 독일은 독일 나름의 독자적인 게르만족 혈통이 있고, 우리의 고유의 의지가 있는데 이 의지는 권력이 없어서 행사 못한 걸 권력의 의지를 따라서 충분히 할 수 있다. 니체가 1900년에 죽었잖아요. 2차 대전이 1939년에 일어납니다. 그 사상을 니체한테 배운 거예요. 사실은 배운 게 아니라 이용한 거죠. 자기 입장을 변명하기 위해서.

그런데 니체의 사상이 얼마나 좋은지 낙후된 독일, 맨날 수입만 하고 풀죽어있는 게르만 족을 목표와 이상을 향하여 그들에게 초인적인 힘을 집어넣는데 위버멘쉬, 니체 철학보다 더 나은 철학은 없지요. 깨어라, 일어서라. 그래서 니체의 낙타에서 사자되는 철학은 모든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할 때나 직원들 교육시킬 때 등장하고, 미국의 산업혁명이라 할 수 있는 포드 시스템, 모든 경영기법에 니체 철학이 다 스며들어있습니다. 인문학 강좌에 단골로 들어있어요. 제발 신을 믿지 말고 네 자신이 신인 것을 스스로 깨어서 인정하라. 눈 활짝 뜨고, 내가 신이네, 잠재력을 왜 죽이냐 말이죠. 그걸 왜 질식시키느냐, 발휘시켜라. 그러면 회사는 산다. 다단계도 마찬가지고.

안철수의 정신적 멘토가 법륜 스님이죠. 여기 부산에 와서 즉문즉설. 이것은 네가 나에게 무슨 질문을 하던 즉석에서 다 답변해줄게. 답변이 다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 있어요. 니체철학으로 무장하면 돼요. 질문들이라는 게 꾸리하게 하거든요. 맥이 빠져서. 자기 속의 잠재력과 긍정적 가능성을 생각 안 하고, “스님, 남들이 이렇게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물을 것 뭐 있노? 니가 신인데.

어떤 목사가 저한테 이런 질문을 했어요. 자기가 교인에게 복음을 전하니까, 보통 연세 많은 교인들은 복음을 몰라요. 그냥 들었던 대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할 뿐이거든요. 그런데 복음 전하니까 젊은 부부가 어렵다 하니까 주의 성도되게 하기 위해서 주께서 그렇게 하신 거라고 하니까 권사 입장에서는 자기가 알던 옛날 목사들의 권면과는 다르거든요. 그래서 권사 화가 난 거예요. 교인 몇 명 되지도 않은데 삐치면 어떨지 걱정이 돼서 목사한테 대든 거예요. 아이 둘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런 식으로 안 되지요, 한 거예요. 이럴 때 어떻게 하느냐고 저한테 물은 거예요.

제가 답변해줬어요. “제가 나이가 어려서 요령이 없이 복음만 전했는데 미안합니다. 그 젊은 부부를 권사님이 담당해서 해보세요.” 그 목사는 권사를 불러놓고 복음은 이렇다고 설명하려 했는데 그럴러니 자신이 없는 거예요. 나이 많아서 안 먹힐 게 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고 권사한테 한 몫을 떼어주란 말이죠. 그러면 권사는 목사가 자기 존재감을 인정해주니까 자긍심이 생기겠지요. 그러면 그 교회는 자기 존재감을 빛낼 교회가 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나서겠지요. 이게 바로 니체철학입니다. 어느 경영기법이나 모든 것에 전부 이게 다 들어가는 거예요. 이건 인간해방입니다. 자기로부터의 구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낙타에서 사자는 그렇게 돼요. 그런데 히틀러는 사자에서 어린애로 가지 않습니다. 자기한테 필요한 사자로 끝나기 때문에. 사자는 싸워야 될 대상이 있다는 게 문제가 돼요. 그런데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한 숭고한 인간성, 사자가 초인이 아니고 어린아이가 되는 게 초인이라고 니체는 말해요. 어린아이는 그야말로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다시 말해서 고려시대는 어떻고, 조선시대면 어떻습니까? 대충 삽시다. 강의 초반에 뭐라고 했습니까? 제발 흘러가는 대로 군소리하지 말고 입 다물고 다들 그렇게 살아. 세월이 이렇게 달라졌구나, 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에요. 자기를 질책하지 말라는 거예요.

가만있는 게 아니에요. 가만있는 것은 세 번째,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 불교죠. 불교의 문제점이 그거에요. 불교는 전부를 알아버렸으니까 무슨 의미 있겠노. 다 소용없는 걸. 잘 되도, 좋다고 소고기 사 먹겠지. 이게 불교에요. 대승적 마음. 그러나 니체는 그게 아니에요. 니체는 단체에 충실하라는 게 아니에요. 나한테 충실하라. 새로운 주체관을 내요. 그게 초인이에요. 초인이지 힌두교, 불교 사상이 아니에요. 신은 없다는 게 불교라면 신은 죽었다는 니체사상이에요. 없다는 건 원래부터 없다는 거고, 플라톤의 사상이 신을 가져갔는데 사실은 원래 인간이 신이라는 거예요. 그게 니체 사상이에요. 오늘 이 강의 듣고 니체 추종자 나오는가 모르겠다. 그 종교가 괜찮은 종교 같은데(^^).

첫 번째 이야기에서 플라톤 사상에 이어진 기독교 사상을 쳐버렸습니다. 두 번째, 실용주의 사상을 칩니다. 실용주의 사상이 과학적 사상이죠. 이게 아주 나쁜 사상이라는 거예요. 실용주의 사상의 기본적 모토가 쾌와 불쾌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과학적 사상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과학 진리들이 진리입니까, 편리입니까? 편리지요. 편리하다는 말은, 신, 진리, 이런 것을 안 보고 살아가는 거예요. 신이 있다, 없다는 게 아니고 그걸 무시하고 살아가는 거예요. 자기만 편리하면 되니까.

두 개의 교회가 있는데 똑같은 설교를 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한 교회는 복지시설이 잘 돼있어요. 한쪽은 에어컨도 안 나오고 선풍기 틀고 한다. 똑같은 설교라면 큰 교회에 가겠죠. 내 몸이 편하잖아요. 19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나죠. 니체가 보기에 인간이 신으로부터는 탈피했는데 자기 몸의 상쾌함에는 탈피 못했다고 본 거예요. 그러면 자기 몸의 상쾌함에 굴복하게 돼있어요. 몸이 아니고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인 굴복을 하게 돼있어요. 이게 바로 산업자본주의에요. 니체는 자본주의를 굉장히 공격합니다. 도덕의 종에서 풀려났는데 이제는 자본가의 종이 된 거예요. 그건 초인이 아니에요. 왜 자기 몸의 불쾌함을 못 이기느냔 말이죠.

그러면 초인은 어디 있느냐? 몸의 불쾌함 속에서 자기가 그동안 몰라서 잊었던 놓쳤던 또는 사용하지 않았던 놀라운 의지가 불쾌함 속에서 자각이 돼요. 어려움이 오면 올수록 우리는 초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부여받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니체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의 의지거든요. 힘에 의한 의지, 힘에서 만들어진 의지. 나는 힘의 덩어리에요.

이것을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에너지보존법칙이라 합니다. 화이트헤드의 표현으로는 극소질서, 좁은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 지나간 것이 돌아서서 나한테 영향을 주는 것, 모든 얽힌 관계에 의하면 그때마다 극소질서가 생기게 돼요. 그러면 원인과 결과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니체에 의하면 사건만 있을 뿐이에요. 사건 안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담겨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움직임도 사건이에요. 사건 자체는 몰라요. 니체가 이래서 어려운 거예요.

사건, 사건이 연발로 일어나지만 사건 자체는 없어요. 왜냐하면 사건 자체는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이것이 해석이 되었기 때문에 사건 자체로 등장한다. 쉽게 말해서 소급해서 이해한다면 되는 겁니다. 내가 10분 전에 물을 마신 것은 지금 내가 있기 위해서 물을 마셔야 됐어. 할 때 지금 내가 있는 건 사건입니다. 그러나 사건 자체를 찾을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지금 내가 해석한 거니까.

이걸 한꺼번에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나는 나다. 그런데 불교는 나를 있음을 무화로 바꾸잖아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니체가 보기에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가 왜 문제가 되느냐 하면, 이들은 어쨌든 간에 인간은 고통스러워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는 거예요. 그런데 대자연 자체가 고통과 고해의 연속이잖아요. 그 자체를 긍정하면 되잖아요. 왜 자꾸 그 고통을 없애려고 하느냐 말이죠. 이게 불교의 잘못이고 에피쿠로스의 잘못이에요. 에피쿠로스나 불교나 똑같아요.

어떻게 하면 고통을 없앨까? 착한 일을 많이 하자. 그러나 그건 마약같은 거죠. 그야말로 구제하기를 마약처럼 하는 경우가 연예인 중에 한둘이 아니에요. 김혜자도 그렇고, 죽은 오드리 헵번이 제일 증세가 심한 사람이고, 김장훈이 그렇고 래퍼 션과 부인, 그 사람들은 구제할 때마다 상상도 못할 엔돌핀이 나와요. 돈을 준 값어치가 충분해요. 마약 같은 겁니다. 또 그와 같은 게 채식주의자. 밥을 굶는 쾌감이 먹는 쾌감보다 월등하게 낫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고통을 없애겠다는 그런 게 목적이 됐다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러나 초인은 목적은 없습니다. 시작도 없기 때문에. 오직 현재 주어진 사건, 그것이 전부에요. 니체사상이 그래요.

실용주의가 편리를 위해서 있습니다. 식기세척기 만들고, 냉장고 들여놓으면 쉽가 그런 거군요. 니체는 그것만이 아니고 니체가 실용주의를 공격하고 싶은 것은 과학에 기초가 된 것은 물론이고 그것에 기초한 현대 시민사회 조직을 말하는 겁니다. 이것은 이번 여름수련회에서 마태복음 할 때 초반에 나올 거예요.

현대 시민사회조직의 실용주의입니다. 경제학, 신고전주의, 마르크스주의, 공리주의, 사회주의, 복지주의, 모든 것이 과학적 인식, 실용주의에서 나온 겁니다. 그 사회에서 배고파하는 사람을 최소로 줄이는 것, 그러니까 힘들어하는 사람을 최소로 줄이는 것이 가장 경제적으로 정의를 이루는 사회다. 롤스의 정의 론입니다. 분배론.

경제학자들의 모든 주장은 자본주의만이 아니에요. 그 안에 반드시 소득 분배의 균형이라고 하지만 사실 더 쪼개 보면 사람이 밥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균형 맞추기거든요. 그런데 니체가 왜 반발하느냐 하면, 내가 이 사회에서 얼추 중산층은 된다는 사고방식이 어디서 왔느냐 말이죠. 이것은 바로 잘 사는 사람들을 모델화해서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내가 하층에서 중산층이 되면 그걸로 만족하겠습니까? 앞에 강남이 보이고 해운대가 보이는데? 께름칙하겠지요. 언젠가 여기서 저기로 이사 갈까, 하겠지요. 인간은 보면 탐심이 일어나게 돼있는데 그걸 어떻게 말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게 자기한테 충실하지 않은 거예요. 아까 낙타에서 사자가 된다 했지요. 이러한 니체사상을 오해하는 거예요. 내가 되고 싶은 욕망을 싸워서 쟁취하면 사자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사자가 아니고, 니체가 보기에는 여전히 낙타에요. 빨리 좋은 아파트로 가야 되는데. 이게 자기한테 짐이 된다 말이죠.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다시 두 번째 이야기를 하면, 과학은 편리위주다. 모든 사회, 정치, 문화 전체가 이미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무장되었다. 이 회사에서 월급 받는 것이 나한테 합당한 편리를 주는지 계산해서 취직을 하든지 퇴직을 하든지 한단 말이죠. 그저 편리위주에요. 쾌감위주고. 그렇다면 사자에 멈추지 않고 어린아이가 되려면 어떻게 하느냐? 여기서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니체철학이 동원됩니다.

영원영겁 또는 영원회귀. 회귀란 말은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영원은 시작과 끝도 없이 계속 가는 것이고. 영겁이란 마찬가지로 끝없음이란 뜻이고. 영원회귀라 하는데 여기서 동일성을 찾아내게 되면 이것이 바로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게 초인이에요. 기존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니체 말을 못 알아듣고 광야의 예언자처럼 외쳐 것만 어려워하고 왜 모르느냐 하면, 본인이 갖고 있는 동일성, 이걸 자아정체성이라 하는데 쉽게 말해서 나, 나다운 나를 계속 영원토록 끌고 가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안 그런 사람 없지요. 사람이 움직이고 생각하고 누구 좋으라고 합니까? 자기 좋으라고 하는데 이런 욕구, 욕망에 니체 당신은 나한테 무슨 아이디어를 제공할 거냐? 이렇게 생각하면서 니체를 생각하는 거예요. 니체는 뭡니까? 이천 년 서구철학을 다 깨는 거예요. 그리고 니체는 논리로 다가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지요. 예언자는 시적으로 외칠 뿐이고 선포할 뿐이에요. 어째서 누구한테 무슨 이익이 됩니까? 이익 같은 소리하지 말라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니체가 사람들의 기분을 너무 잘 알아요. 이렇게 합니다. 컵이 있습니다. 물이 있습니다. 물을 마시세요. 니체는 명령하는 게 아니고 예언하는 겁니다. 진리를 선포하는 거예요. 현재 있는 그대로 실재라는 거예요. 물이 있다는 것도 실재고, 컵이 있는 것도, 실재고 물을 마시는 것도 실재라는 거예요. 분명히 니체는 예언자로 물을 마시세요, 하니까 사람들은 명령으로 듣는 거예요.

어린아이가 되라. 명령형이잖아요. 낙타되지 말고 어린아이가 되라고 명령하니까 니체 말 들으면 우리한테 무슨 이익이 되는데, 라고 생각하니까 니체 말을 이해 못하고 있는 거예요. 니체의 말을 들으면 나한테 무슨 편리가 오고 무슨 이익이 있느냐고 그런 토를 달면서 그런 심보로 다가서기 때문에 여전히 자기 동일성이 안 깨지겠지요.

니체가 이런 이야기할 때는 무엇을 염두에 두느냐 하면, 서구에서 교회가 말씀을 선포하잖아요. 백날 교회에서 설교해서 소용없다는 걸 알아요. 설교자가 무슨 소리하든지 간에 듣는 사람은 그 설교가 나한테 무슨 이익이 될 것입니까, 라고 받을 게 뻔 하잖아요. 나는 안 깨지죠. 동일성 자체에 영원함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거예요. 나는 나다, 계속 가는 거예요. 이건 초인이 아니죠. 주변의 상황에 따라 같이 떠내려가는 거예요.

그럼 무엇이 영원하다는 말이냐? 컵의 물을 마시라는 말은, 이것이 계속해서 돌아온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컵에 물이 있구나. 컵의 물을 마셔라. 이것은 무슨 대상이 있든 없든 자체적으로 계속 돌고 돈다는 겁니다. 불교보다 더 어렵지요. 그럼 뭐가 동일성입니까? 초인은 영원히 계속 동일하다는 게 동일성이죠. 내가 초인되라는 말이 아니고 초인은 그렇다는 거예요. 따라서 자기 동일성의 영원함을 포기하면 그 순간 그 사람은 뭐가 됩니까? 초인은 영원하다에 이미 포함돼버리죠. 그럼 그 사람은 초인이죠. 사자도 아니고 낙타도 아니고 어린아이에 있는 거죠. 있는 생긴 그대로 계속 돌고 도니까. 돌고 도는 것은 변화를 의미겁니다.

니체가 어린아이라고 한 것에 의미가 있어요. 여러분 갓 난 어린아이를 상상해보세요. 어린아이에게 장차 네 스케줄을 내놓으라고 하면 말이 안 되죠. 너, 앞으로 뭐 될래? 그건 좀 커서 할 이야기고. 어린아이는 몸만 있을 뿐입니다. 몸이 요구하는 대로 살 뿐입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여기 어린아이가 있네, 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리고 이 세상에 어린아이가 하나뿐입니까? 계속 어린아이가 생기잖아요. 어린아이가 늙어 죽어도 어린아이라는 알갱이는 계속 있잖아요.

이게 지난 낮 설교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이 형체와 알갱이를 나누잖아요. 형체는 죽어도 알갱이는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알갱이로 설명해야지 눈에 보이는 형체로 늙어 죽는다, 이걸로 설명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죽음이 다가 아니고 늙고 죽음을 유발시키는 그 알갱이가 뭔지 원천을 찾아가봐야 된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은 그겁니다.

니체는 말하기를, 니체는 기독교고 뭐고 다 버리니까. 사실은 니체가 신학교 출신인가 그럴 거예요. 이렇게 보면 돼요. 니체의 모든 철학은 성경을 모방했다?? 성경 개념을 차용했다고 보면 정확해요. 예언자도 그렇고. 니체가 왜 예수를 싫어하느냐 하면, 혼자 희생하고 남들이 그 희생을 받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이 싫은 거예요. 내가 나한테 충실해야지 왜 남한테 짐을 지우고 기대느냐 말이죠. 나는 날 믿으면 되지 예수를 왜 믿느냐 이 말입니다.

니체가 그런 주장을 할 때 뭔가 오해한 게 있어요. 니체가 오늘날 21세가 교회를 보면 내 사상이 교회에 있다고 할 거예요. 니체는 진짜 복음을 믿는 사람이 있다고 치고 그런 이야기하거든요. 전제가. 그러나 인간은 예수를 믿는 게 아니고 예수 믿는 자기 자신을 믿기 때문에 니체 말이 맞아요. 인간을 자기 자신을 처음부터 믿어왔어요. 예수 믿는 게 아니고. 예수 믿는 것은 성령이 임해야 되지 인간은 예수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보기에 니체가 답답해.

니체가 말한 철학대로 교회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지 잘난 맛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에 옵니다. 교회 와서 사랑받기 원하고 자기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교회 오고, 이미 승리했음을 과시하기 위해서 교회 오고, 내가 스스로 절제하고 술 끊고 담배 끊었다고 떠벌이기 위해서 교회 온 거예요. 전부 다 니체 후계자들이에요. 교회는 니체 후계자들이에요.

위선하지 않겠다는 것이 위선의 마귀로써 덮어씌운 거예요. 위선하지 않는 그것이 새로운 위선의 아이템이 된 거예요. 고스프레란 말 알지요. 일본만화를 실제로 따라하는 것.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을 중국에서 따라하는 것, 그 콘셉트를 그대로 베껴서 하는 것, 그것을 벤치마킹이라 하잖아요.

니체가 원했던 대로 지금 이 세상이 니체의 바다요, 니체의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니체를 공부하는 의미가 있어요. 우리는 입만 안 다물 뿐이지 이미 니체로 태어나는 겁니다. 그걸 논리적으로 규정을 못하고 정리 못해서 그렇지 모든 인간은 아담의 속성으로 태어나면 전부 니체로 태어나는 거예요.

아무리 신을 거론해도 그건 구색에 불과하고 자기 털 하나라도 건드리면 사나워집니다. 옥시 사건도 마찬가지고 2년째 버티고 있는 세월호도 마찬가지고. 동성애 큐어축제? 동성애 자체가 정신병자들입니다. 옛날에 왜 이런 축제가 없었느냐 하면 그땐 정신병자인 걸 알고 가만있었어요. 정신병자들이 늘어나잖아요. 전부 다 니체니까. 미친 사람이 늘어나니까 기존에 정상적인 세계에 편입을 시도하는 겁니다. 우리도 결혼할 테니까 주택자금 내놓으라는 겁니다.

니체의 주장대로 해봅시다. 니체의 시대에 니체는 안타까워서 이야기합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아, 내가 미친놈이니까 앞뒤 따지지 말고 내 선포를 들어봐라. 논리가 아니고 이성이 아니고 공감이 되는지 들어봐라. 지금 이 시대는 니체가 몰랐던 것은, 인간은 태어나면서 미친 사람으로 이단으로 정신병자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니체가 알았다면, 니체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어요. 너무 충격 받아서.

어떤 것도 인간 세계에서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니체가 그런 점에선 선지자에요. 해결책이 없으니까 영원토록 이 세상이 돌아감을 그냥 받아들이자. 그 속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어쩌면 초인이 되기 위해서 우주와 함께 해 아래 새로운 게 없으니 그것의 무한한 반복, 되풀이, 그것이 극소적으로 응축이 되면 지금 너고, 그리고 나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아무도 입 다물고 있는 것을 나는 미친놈이니까 내가 대신 외칠게. 세상을 왔던 그대로 되풀이 될 뿐이지 신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신? 그분 죽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신처럼 살아왔으니 그냥 신이다 여기고 이 영혼 속에 우리 몸을 눕히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이것이다. 제발 고통 같은 것에 매달리고 과학 따지지 말고 선악 따지지 말고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욕망에 충실하시고 그게 남한테 피해 입혔거든 벌 받고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내가 사형당하기 위해서 남한테 피해를 줘야 했구나, 라는 식으로 그것마저 지금 떠나면 다시 자연으로 흡수 통합된다. 물질세계는 없어진다. 없어지면 다시 뭉쳐지면 내가 될 테니까, 영원 회귀되니까 그렇게 세상을 보는 것이 실재다, 이게 진리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 니체한테 감사한 것은, 니체가 하는 말 전부가 진즉에 악마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해주죠. 악마는 압니다. 인간이 예수, 삼위일체, 뭘 하든 간에 그게 고스프레에 불과하고, 전부 다 위장에 불과한 것을, 흉내 내기에 불과한 것을 다 알아요. 악마는 진실 세계에 꼭꼭 숨어있습니다.

그 진실이 뭐냐? 복음인데 두 자로 약속이에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악마는 들어있어요. 약속대로 될 뿐입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이번 수련회에서 그것도 거론됩니다. 그 약속대로 세상은 움직입니다. 그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니체란 자들이 등장해서 외쳐야 되고, 그 외침이 이 현실에 대해서 어쩌면 그렇게 잘 이야기했는지. 어쩌면 우리 자신의 실상을 그렇게 잘 표현해줍니까? 자기 욕망에 충실하라. 하라가 아닙니다. 이미 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이 세상 죽었다는 사실, 그 죽음 앞에 설 때 우리의 실재는 비로소 성령에 의해서 노출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마귀가 가만있지 않고 니체 같은 분들을 설치게 해서 우리의 실상을 앞서 보여주니 감사합니다. 이 모든 된 것이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한 일환인 것을 저희들이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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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2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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