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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87강-신 15장 12-18절(6년과 7년)160612-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신명기

87강-신 15장 12-18절(6년과 7년)160612-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22.43.165.245)

87강-신 15장 12-18절(6년과 7년)160612-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신명기 15장 12-18절입니다. 구약성경 286페이지입니다.

“내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육 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 칠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공수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하셨음을 기억하라 그를 인하여 내가 오늘날 이같이 네게 명하노라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송곳을 취하여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영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일례로 할지니라 그가 육 년 동안에 품꾼의 삯의 배나 받을 만큼 너를 섬겼은즉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명기나 구약성경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상당히 답답해하고 어려워합니다. 시대가 그쪽시대가 아니고 21세기잖아요. 21세기에 종이라는 이야기 나오면, 노예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리둥절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종이라는 형편을, 그쪽 상황을 모르게 되면 또 무엇이 불안하냐 하면 구약성경 읽었는데 거기에 담긴 의미를 뽑아내지 못한데서 오는 불안감이 있어요. ‘성경을 보면 뭐하노? 뭐 알아야지. 이래 된다 말이죠. 성경을 볼라치면 뭐 종이 나오고, 뭐 주인이 나오니까. 지금 형편과 다르니까. 난감한 장벽처럼 느껴져 가지고 그냥 읽었으면 읽은 것으로 뛰어넘어 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하나님께서, “읽었는데 무슨 뜻이냐?” “모르겠습니다. 그냥 봐주세요.” 이렇게 때우고 하는데.

이 구약성경을 읽게 되면 아, 그 때 그 당시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때 그 당시 상황이나 지금 상황이나 구원의 원리는 동일하거든요. 그 당시 종이 나오고 주인이 나오면 이것은 자유과 관련됐다고 생각하시면 뭐, 거의 백퍼센트 정답입니다. 그 당시 상황가지고 자유를 설명하고, 우리 상황가지고 자유를 설명하고. 그 당시 상황은 애굽 나라에서 빠져나오면서 자유라는 것을 설명했다면, 지금은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빠져나와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하면 또 오해하니까, 예수님 가신 곳, 예수님이 만들어 내신 곳으로 나갔는데, 그냥 나가지 않고 빠져나온 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옛날에 애굽의 종이 되었었는데,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단체로 종에서 자유인이 된 것처럼, 지금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산다고 하지만 앞에 뭐가 붙어야 돼요. 종으로 사는 겁니다. 노예로 사는 겁니다. 이렇게 설명을 하게 되면 성도들은 발끈 안 하는데, 교인들은 발끈하죠. “우리가 무슨 종이냐?” 라고 하게 되면 그땐 사도바울의 편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입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구약에서 실제상황과 문화적 상황, 정치적 상황을 가지고 설명했던 것을, 지금은 영적상황으로 설명합니다. 다만 그때는 애굽에서 빠져나와서 생활 형편이 바꾸어지는 것으로 설명했다면 지금은 죄의 종이 되려면 먼저 주인 되는 죄의 위세와 권세를 알아야 돼요. 그 당시에 애굽 사람들이 얼마나 이스라엘 사람들을 학대했습니까? 지금 우리가 학대받고 있으면서도 뭐라고 우기느냐 하면 ‘나는 학대받은 적 없어. 자유자야.’ 자꾸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죄의 종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니 바리새인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언제 죄의 종이 되었느냐?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렇게 요한복음 8장에서 이야기를 하죠. 어쨌든 갇혀있는 겁니다.

이 점을 먼저 설명하고 오늘 본문을 설명해야 할 텐데요. 우리가 도대체 자유자라고 우기면서도 성경에서 니는 죄의 종이라고 이야기하니까, 성경이야기하고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 하고 안 맞는 거예요. 우리는 무슨 종이냐? 우리는 큰소리 칠 것 다 친다. 그러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보통 자식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또는 “아버님”이라고 그렇게 부릅니다. 어릴 때도 불렀고 결혼해서도 부르는데, 실제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위치는 본인이 독립했을 때 부르는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에요. 독립했을 때.

그런데 아버지가 니는 내 자식이라고 할 때는 그 자식은 절대로 독립했다고 눈 감을 때까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자식과의 관계의 핀트가 안 맞는 거예요. “니는 백날 그래도 내 자식이야.” 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 쪽에서의 개념설정이고. 자식들이 “아버지!” 라고 결혼하기 전에 부르는 것 하고, 결혼하고 난 뒤에 “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 하고 이게 뉘앙스가 다릅니다. 개그콘서트에 어떤 코너에 이런 게 나와요. 아버지가 딸을 나무라니까 뚱뚱한 딸이 하는 말이 “아버지! 제 나이 오십이에요. 이제 힘으로 안 져요.” 이렇게 하거든요. 그럴 때 부르는 아버지는 뭐냐 하면 더 이상 내가 주눅들 필요 없는 아버지라는 뜻이에요. 그냥 남이에요. 남인데 그냥 불러주기 뭐하니까 아버지라고 불러주고 어머니라고 불러주는 거예요.

그 안에는 뭐가 있느냐 하면 “간섭하지 마세요! 나는 더 이상 누구의 종이 아닙니다.” 근데 어릴 때는 같은 아버지인데 그러지를 못해요. “아버지이이~~” 이러면 수상한 거예요. “아버지이이~용돈주세요.” 이럴 때 아버지는 뭐냐 하면 아버지가 원하는 그 자식의 이미지에 철저하게 복속될, 예속될 용의가 되어 있습니다. “그저 용돈만 주세요.” 그렇게 되죠. 같은 가족관계도 이렇게 본인이 독립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서 개념이 다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복종할 주인이 없어요.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그래서 니가 죄의 종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섬기거나 복종할 게 없어요. 돈만 끼어있으면 어느 가족이고 아버지고 간에 누구한테 꿇릴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것 가지고 내가 살아가는 거예요. 그게 모토고 희망입니다. 사람이 몸이 아플 때, 몸이 아파서 괴로운 것도 있지만 몸이 아픔으로 말미암아 남한테 의지한다는 것이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는 거예요. 뿔다귀 날 정도로 자존심이 상하는 거예요.

평소에 큰소리치던 가장이 몸이 아파보면 아내가 “여기 미음 좀 드시우.” 하면 “치와뿌라!” 그래가지고 치우고 밖에 놀러간 사이에 슬슬 기어서 ‘아까 미음 끓여놓은 것이 어디 있더라?’ 하면서 지가 찾아 먹죠. 그래놓고 앞에서는 큰소리치고. “치와뿌라! 내 안 죽는다.” 안 죽었다는 거예요. 모든 사람은 주인이 없어요. 자기가 돛대고 자기가 신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뭘 보냈느냐, 예수님을 보내신 거예요. 복종해야 될 분을 보내신 거예요. 복종해야 될 분을.

그리고 그 분은 오늘 본문 신명기 15장에 나오는 그 주인에게 할당된 율법을, 아버지로부터 온 율법을 온전히 다 이루기 위해서 오신 주인으로 왔습니다. 그러면 그 분의 종은 없습니다. 주인은 등장했는데, 그 주인과 율법적 연관성을 짓는 종은 아무도 없어요. 왜? 이미 자기가 돛대고 자기가 독립자라고 주장하면서 마귀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귀의 종이 듣기 기분 나쁘면 죄의 종이 된 거예요.

그러면 죄의 종이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를 어떻게 아느냐 하면 죄의 종은 몇 번 선하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죄의 종이 되는 겁니다. 보통 그걸 다른 말로 하면 죽음의 종이라고 하는데, 입원했다가 나왔다고 해서 늙어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럼 이건 우리가 병원에서는 퇴원했지만 죽음의 종이 되는 겁니다. 건강하게 살아가지만 점점 허물어져가고 있어요.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왜 죽는가에 대해서 이유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 그게 종의 특징입니다. 내가 왜 죽는지, 살고 싶은데 왜 죽는지. 무슨 관계가 얽혀져서, 누가 있기에 살고 싶은 소망이 있으면서 죽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살고 싶더라도 내 맘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누구의 종이 되는 겁니다. 죽음 안에 예속되어 있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러한 실체와 그러한 진리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오셨습니다. 너희는 니가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니가 죄를 벗어난 것이 아니고, 니가 기대하고 있는 그곳에 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내 소원만 들어주면 된다고 하는데,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 환경에 가보니까, 어서오너라! 이것아! 죄가 거기 기다리고 있어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면 예수를 믿으면 되나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이건 백퍼센트 죄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믿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바깥에서 파고 들어와요. 내 자식, 내 새끼 어디 있나? 하고 찾아오는 거예요. 그걸 저는 특채라고 이야기하는데, 내가 특채한 사람 어디 있나? 하고 땅굴을 이렇게 파고 찾아오는 거예요. 땅굴을 파는데, 그 파면서 나타나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 땅굴 파는 그 모든 원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죄 속에 있으면서 빠져나간 그 원리를 그대로 가지고 파고 들어오시는 거예요. 이게 바로 설교요, 목회요, 교회입니다.

복음 외에는 아무것도 섞어서는 안돼요. 오직 복음뿐이에요. ‘본인은 뭐 드라마이야기 다 해놓고.’ 드라마이야기고 뭐든 간에 복음과 연계되어야 해요. 복음이 뭔데요? 복음은 우리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해줘야 해요. 그러면 내 잘못이 아니고 내가 다룰 수 없는 권세와 주님의 권세하고 충돌되어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 안에 하수인으로 있는 우리가 내 권세를 어떻게 조정할 수 없듯이, 주님이 구원하겠다는 그 능력을 내 손으로 뿌리치고 도망칠 수 없어요. 도망치면 끝까지 따라옵니다. 내 다리 내놔라 하면서 끝까지 따라와서 주님의 구원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신앙생활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 그 테스트를 하는 것은 간단해요. 멋대로 살았는데 계속 따라올 때, 그거 성도입니다. 주님 버리겠다고 그렇게 떨쳐도 계속 십자가의 의미가 순간순간 되새겨 날 때는, 내 죄를 내 맘대로 못하듯이, 그러한 십자가 복음도 내가 다룰 수 있는, 내가 처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어요. 남들, 친구만나면 전부 지 자랑하고, 돈 자랑하고, 자식자랑 하는데, 뭐 친구고 거들어줘야 한패 먹으니까 거들어주긴 주는데, 이상하게 그게 한계가 있어요. “그래. 기껏 그런 것 자랑하고 싶어? 내가 들어줄게. 들어주는데 니는 거기까지. 너는 고거까지. 니가 아는 벽지는 그거밖에 없어.” 폐쇄된 공간의 벽지는 그거밖에 없어요. 그게 전부에요.

성경에 대한 내막이 전혀 벽지를 뚫고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그 벽지는 뭐냐, 옛날 자기가 살아오면서 남들이 부러워했던 그런 것들만 더덕더덕 붙어있는 거예요. 마치 인기 연예인이 인기를 찾는 것처럼. 그거 없이는 죽는 줄 알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뚫고 들어옵니다. 그 뚫고 들어온 것이 뭐냐, 신명기입니다. 모든 율법이고 그 중에 신명기가 포함이 되어 있어요. 신명기가 포함될 때, 거기에 어떤 역할을 줍니다. “나 주인 할게. 니 종 해라.”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 성경, 오늘 본문을 보면서 “나 주인 할게요.” 자기가 주인 한다고 나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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