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문제 2004년 10월 3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9:3-6
Re..마 19: 3- 6 (이혼 문제)
이름 : 이근호(IP:)
이혼 문제
2004년 10월 3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9:3-6
19: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19: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19: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19: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
오늘 본문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의도적으로 예수님에게 시비를 겁니다. 남편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기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은가 하고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이 질문을 오늘날 우리들에게 누가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답변할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자기 마음대로 버리겠다는데 우리가 나서서 옳다 그르다 관여할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혼을 감행하는 부부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싫어서 갈라서겠다는데 남이 이러쿵저러쿵 참견할 바가 아니다고 항변할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에 묻는 이가 다음과 같은 단서를 붙인다면 어떡하겠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래도 이혼 할 거야?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데 당신은 왜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려고 해?"라고 한다면 그 이혼하는 당사자들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분간 교회 안 나가기로 했어. 하나님 믿는 것, 좀 쉬었다 믿을 거야 그러면 됐지?"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혼을 하든 무엇을 하든 남들에게 이런 저런 소리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하고 싶은 대로 살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가 하는 일에 장애처럼 막아서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고 나오는 것은 소위 예수님이 자칭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안다면, "아무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린 자에 대해서 당신은 어떤 식으로 대처할 것인가?" 라고 물어온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5-6절에 보면,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 원칙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유효하다는 겁니다. 무효나 흐지부지될 내용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인간에게 들이 댈 말씀입니다.
그런데 결코 이 말씀을 인간이 지킬 수 있다는 것으로 오산하면 안됩니다. 이 말씀을 인간이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인간들이 이 말씀을 못 지킵니다.
지금 부부가 사이좋게 산다고 해서 이 말씀을 지키고 있는 순간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인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벌써 잘못되어 태어난 겁니다. 인생관도 엉터리요, 하나님 관도 엉터리요, 구원관도 엉터리요, 천국관도 엉터리요, 축복관도 엉터리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인간의 능력으로 지켜낼 수 있다고 여기는 것도 큰 오해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뜻은 이것입니다. 남성의 몸도 아니요 여성의 몸도 아닌 제 3의 몸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남성이나 여성이니 하는 차별이 없는 몸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태어난 몸, 즉 남성이면 남성성이 지속적으로 담겨있는 몸, 여성이면 여성성으로 지속적으로 남아 있는 몸만을 지탱하면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자기 몸도 아니요 아내 몸도 아닌 제 3의 몸을 위하여 자기 몸을 희생할 위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빼놓고서는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말씀은 인간의 힘으로 달성될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 홀로 달성할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은 처음부터 남성성과 여성성과 상관없는 초월적인 몸을 염두에 두셨습니다.
그것은 신랑 되시는 그 예수님에 의해서 선택된 자만이 신부가 되어 천국에서 한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되는 그 광경을 두고 이 말씀이 먼저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몸은 '사람에 의해서 결코 나뉘어지지 않는 몸'입니다.
제가 가정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신부가 아무리 신랑의 품속에서 벗어나 보고자 몸부림쳐도 결코 성공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붙잡아 두는 신랑으로 인하여 생겨낼 그 몸이 바로 본 말씀의 성취인 것입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인간들의 부부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신 그 몸의 신부는 어떤 자입니까? 완전해야 되고 완벽해야하고 조금이라도 흠이나 티끌이 없어야 합니다. 전혀 때가 묻지 않아야 합니다.
신부의 그 점을 보이기 위하여 신명기 24:1-4이 있습니다. "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 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그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내었거나 혹시 그를 아내로 취한 후부가 죽었다하자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어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찌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케 하지 말찌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순결치 못한 자는 아예 신부가 될 수 없고 추방당해야 마땅하다는 겁니다. 그 추방당함의 마땅함을 위하여 '이혼 증거'가 필히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남자에 대해서 이런 조항이 없는 겁니까?
장차 오실 한 몸의 신랑은 아예 이런 점을 물을 필요조차도 없이 그 분은 완전한 분임을 암시하고 있는 겁니다. 그 분은 곧 하나님이시니 까요. 이처럼 이스라엘의 일반 가정은 출생 때 지니게 된 개인적인 몸의 행복과 영달을 위하여 결혼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메시야로 인하여 생겨날 제 3의 초월적 몸을 미리 보여주는 모형적 역할을 하게 되는 가정 생활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인간적인 행복을 가정에서 끄집어내려는 바리새인들이나 유대인들은 이 신명기 24장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 버리는 겁니다. 즉 '여성에게 있어 수치스러운 일이 있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만들어주신 가정의 거룩 성을 훼손한다 따라서 개인의 몸의 행복이 우선이 아니라 가정의 정결 성을 더 중요시해야 하기에 만약에 아내에게 불미스러운 일이나 수치스러운 일이 있다면 인정사정 보지말고 추방해야 한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핑계삼아 함께 사는데서 오는 지루함과 권태로움을 합법적 조치인 것처럼 위장에서 이혼을 남발했던 것입니다. 실은 남자들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가정이 달라지는 것이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법을 보면, '여성에게 있어 수치스러운 일'의 항목에 간통이나 바람피운 것말고도 요리 못하는 것, 설거지 못하는 것, 세탁을 잘 못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남편의 구미에 들지 아니하면 그로 인해 남편은 화를 내게 마련이고, 남편이 화를 내면 그 가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하지 않는 가정이 되기에,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가정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성을 위해서 남편이 싫어하는 아내가 그 가정에서 추방당해야 마땅하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습니다. 자, 하나님께서 짝 지은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겁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은, 인간들의 타고난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욕망을 주체못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하나님'으로 자처하면서 그 욕망의 배후에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논리를 펴면서 인간의 모든 것을 정죄 해 버리니 사람들은 그 예수님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사람을 이불 뒤집어 씌어 엎어놓고 숨막히도록 꾹꾹 눌렸는데 나중에 이불을 들추어보니 씩 웃고 있더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묻지요. "당신은 어째서 안 죽습니까?" 그러니까 그 사나이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의인이요 당신들은 죄인이기에 당연히 신께서 당신들이 죽이는 것이 당연하고 나는 당신네들이 나를 죽여도 우리 하나님이 나를 살려내는 것이 당연하지요"라고 말입니다.
이로서 신이 있느냐 없느냐 혹은 무엇이 진리냐 아니냐 하는 모든 문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표준으로 등장되는 겁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 달려 죽기 전에도 하신 모든 말씀은 다 진리가 되고 표준이 되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이혼하거나 화를 내면서 배우자와 그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의 그 어떤 말씀도 지켜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라도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죄만을 평생 믿고 살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자신의 의로움을 극복하게 하옵소서. 이혼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킨다는 환상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