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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요한복음 10장 40절(가락-본래적 죄)160607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요한복음 10장 40절(가락-본래적 죄)160607a-이근호 목사

이름 : 충성모(IP:222.99.181.154)

요한복음 10장 40절(가락-본래적 죄)160607a-이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0장 40절입니다. “다시 요한이 세례 주던 곳에 가서 거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왜 등장하느냐? ‘등장할 만하니까 등장했겠지..’ 라고 하면 안 되고요, 예수님이 바로 오셔도 되는데 세례 요한을 왜 앞장세웠느냐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전부 다 입을 다물고 있어요. 예수님이 바로 오시면 되는데 세례 요한을 왜 앞장세우느냐 말이에요. “물렀거라.” 하는 옛날 대감마님 앞에 하인을 세우듯이 왜 그렇게 하느냐 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해요. 광야에 외치는 소리이기 때문에 먼저 오셨다고요. 그런데 제 질문은 왜 그 소리가 필요하느냐 하는 거에요. 이사야에 나오는 말씀처럼 광야에 외치는 소리가 있어서 세례 요한이 오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오셨다. 그런데 소리가 누구냐 하면 바로 세례 요한이고 그 소리의 본부는 예수님이다라고 다들 이야기하는데 제 질문은 뭐냐 하면 예수님이 바로 등장하면 되는데 소리가 왜 필요하느냐, 앞에 하인, 종, 이런 식의 관계를 왜 유지해야 하느냐 이 말입니다.

그것은 무엇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까? 세례 요한은 원죄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원죄를 인정하지 않고 그냥 죄라고 인정하는데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할 때 그 죄, 그 죄가 만들어진 현실을 그대로 밑바닥에 타일처럼, 거름(퇴비)처럼 쫙 깝니다. 그러면 죄가 쫙 깔리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죄를 깔아야 되느냐 하면은 이걸 한 번 생각해보세요. 아담이 자진해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까, 아니면 누구에게 유혹을 받아서 따먹었습니까? 뱀의 유혹을 받았지요.

그러면 선악과를 따먹은 죄는 인간의 단독범행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인간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 거에요. 그것은 악마(마귀)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4장에서 아벨은 그렇지 않은데 가인은 모든 시작과 마감을 인간에서 시작해서 인간으로 마감을 시켜버립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있고 하나님이 있고 끝이에요. 가인이 동생을 죽인 이유는 죄, 다시 말해 악마가 덮쳐서 그렇거든요. 그러나 막상 정말 악마와 결탁된 가인은 아담의 아버지인 아담의 요소로써 모든 것을 마감하는 경향이 있어요. 모든 영적인 것을 배제해버리고 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현실이 우선이 되는 겁니다. 현실이라는 게 이것으로 종결이 되는 거에요.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 과학시대지요. 귀신이라고 하면 진짜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이고 천국은 가봐야 아는 거고 예수님은 이미 과거의 인물이고 하나님은 있는 게 아니고 대자연은 스스로 자기 촉매적인 국소질서로 만들어진 것이 되는 겁니다. 대자연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느냐 하면 자기촉매, 스스로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은 나에게 영향을 받고 영향을 받으면 또 거기에다가 영향을 주고.. 서로가 영향을 받으면서 서로가 하나의 질서를 만드는데 그 질서가 국소, 제한된 장소의 질서다. 이게 하나의 개체가 되는 겁니다.

개 따로 있고 소 따로, 말 따로 있는데 그것을 질서 덩어리, 동양에서는 그걸 기 덩어리, 서양에서는 에너지 덩어리라고 합니다. 에너지 덩어리는 엽록소에서 광합성에 의한 햇빛 에너지가 발생되면 동물 세포가 그걸 받아서 질소와 산소로 공급해서 이 세상은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무엇이 빠졌지요? 귀신이 빠졌지요, 마귀 빠졌지요, 선악과가 빠졌지요? 그렇게 선악과, 여호와 하나님, 약속, 이스라엘의 존재 의미를 빼는 이 작업은 배후에 악마가 있어서 나타난 현상이 되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원죄가 깔려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나쁜 짓을 해서 죄가 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생각하는 범주를 우리가 익히 아는 것으로 제한시키는 이 자체가 죄가 된다 이 말이지요. “가인아, 동생을 왜 죽였느냐?” “미워서 죽였습니다.” 이렇게 가둬두는 거에요. “사람이 왜 욕심을 내느냐” “인간에게는 이(理)적인 요소도 있지만 정(情)적인 요소도 있어가지고 감정이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이(理)적인 요소가 이걸 다스리면 된다.” 이게 바로 악마가 자기의 정체를 안 드러내고 자꾸 앞장세우는 거에요. 그 선악과를 뱀이 따먹었습니까, 아담이 따먹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따먹었지요.

그러니까 그 관계가 똑같아요. 뱀은 자기의 정체를 감추고 자기가 원하는 짓을 하면서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을 앞장 세워가지고 자꾸 마귀의 본심을 인간을 통해서 실현코자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인간은 “뱀이 시켰어요.” 라고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어 했어요.” “동생 왜 죽였느냐?” “죽이고 싶어서 죽였어요.” “왜 죽이고 싶은데?” “욱 하고 나오니까 죽였네요. 이제 다시는 안 그럴게요.” 지금 성경은 우리를 보고 “다시는 안 그럴 거지?”를 묻는 게 아니고 너희의 모든 행위를 뱀과 관련을 시키라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에게서는 종을 잡을 수 없는 약속이 나와요. 창세기 3장 15절의 약속이 무엇이냐 하면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나오지요. 인간이 아는 현실의 범위에서는 이것의 실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자식은 여자의 후손이 아니고 남자의 후손입니다. 족보가 전부 남자의 이름으로 들어가요. 시조에 보면 아버지 날 낳으시고 나오잖아요. 전부 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들어가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 마태복음 1장에 쭉 나온다고요.

모든 것을 그냥 우리가 납득이 되는 것, 우리가 보고 있는 것으로 제한하자는 이야기에요. 그리고 마귀 이야기, 귀신 이야기, 하나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우리한테 해꼬지할 때 그래서 추방할 필요가 있을 때 ‘에잇, 귀신아 이것 먹고 떨어져라.’ 그러니까 귀신하고 노닥거리는 게 아니고 귀신이 노는 세계 따로, 북한에 요덕수용소 만들 듯이 귀신 수용소를 만들어놓고 죽은 자는 거기로 갔다가 49제를 드리면 거기서 제대해가지고 또 영원히 가고 이쪽은 인간 동네이고 인간이 알아서 할 테니까 귀신은 자꾸 한 맺혀가지고 얼쩡거리지 말라는 거에요.

그래서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세요. 옛날 토속 종교나 교회나 똑같잖아요. 새벽기도 같은 데 나와서 강단을 치면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의 특징은 전부 다 한이 맺혀있어요. 그런데 한이 맺혀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자기의 뜻대로 안 된다는 거에요. 그러면 자기의 뜻을 어디에서 규정했습니까? 자기가 설정한 범주 안에서만 규정한 거에요. ‘아이고 우리 조상은 선악과를 왜 따먹었느냐?’ 이것 때문에 한이 맺힌 게 아닙니다. ‘우리 십자가 때문에..’ 이것 때문에 울고불고 하지 않아요. 그저 ‘돈을 사랑하면 안 되는데, 내가 먹는 것과 입는 것으로 족한 줄을 알아야지..’ 이것 때문에 울고불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설정한 나의 영역이 뜻대로 안 되는 이유는 필히 귀신이라든지 악마, 성경에 나오는 나쁜 존재 있잖아요. 그게 장난질을 치니까 그런 거라는 거에요. “마귀를 이기신 주여, 어서 후딱 이 귀신을 내 영역에서 추방시켜서 원상회복해주고 내 인생을 빠른 시간에 만회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거에요. 그 인간이 마귀의 앞잡이에요. 선악과 놓쳤지요, 창세기 3장 15절의 약속이 다 의미가 없지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눈에 보이는 행실 자체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요.

그리고 힘이 들면 기도해서 마저 채우면 되니까요. 그러니까 생각의 사고방식 모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현재 자기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자기 자신, 그게 계시의 핵심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원죄라는 게 없지요. 여기에서 제가 원죄라고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그 죄가 아니다 이 말이에요. 인간이 생각하는 죄는 누가 지은 죄입니까? 본인이 잘못해서 지은 그런 죄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그 죄 말고 밑바탕에 깔린 다른 죄가 있는데 이 죄는 인간들의 관심을 끌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등장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당신은 그런 주장을 감히 할 수 있느냐?” 세례 요한이 와서 한 일이 뭡니까? 세례를 줬지요. 그래서 이름이 세례 요한이잖아요. 그래서 세례 요한에 관해서 예수님과 연결해서 이야기한다면 세례가 없는 자에게는 구원도 없다 이 말입니다. 그걸 구체적으로 말하면 물세례가 없는 자에게는 성령세례도, 천국도 없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물세례가 뭡니까? 물세례라는 것은 물을 찍어바르는 것이 아니고 요단 강 물속에 잠수하는 거거든요. 이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겁니다.

이 세례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면 옛날에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속에 왔을 때 거기에서 한꺼번에 세례 받은 것으로 되어 있어요. 바닷물에 사람이 들어간다면 필히 거기에 들어간 모든 사람들은 다 죽었어요. 왜? 뒤따라온 애굽 군사들은 홍해 물에서 다 죽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세례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있는 게 원래의 모습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아래에서 죽어 있는 것이 원래의 모습이라는 거에요. 이 원래의 모습이 모든 인간 현실의 밑바닥에 깔려있는데 사람들은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가지고 자기가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다고 우기는 거에요. “살아있는 인간 더 한 번 살아보자. 그런데 이 살아있는 것을 방해하면 마귀다. 그리고 실수하면 죄다.”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세례 요한이 와야 될 이유가 예수님이 오시기 위해서는 평지 작업, 그 기초 작업이 미리 있어야 되는 거에요. 이게 바로 본질에 관한 문제이고, 이게 원천에 관한 문제입니다. 세례 요한을 만났다, “아이구 안녕하십니까?” 헤어졌다. 또 예수님을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헤어졌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으면 안 돼요. 세례 요한한테 붙잡히고 세례 요한한테 붙잡힌 상태에서 그때 예수님이 오셔야 돼요. (같이 있는 사람을 포함해서) 그럴 때 세례 요한이 하는 말이, “보라, 저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라고 했습니다. 누가요? 세례 요한이. 어느 자리에서? 바로 인간들이 도외시한 그 죄의 자리에 인간은 산 존재가 아니고 물에 빠져 죽어 마땅한, 지금 심판 앞, 저주 아래 있는...

지금도 산다는 게 저주에요. 이 세상 산다는 게 저주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게 저주 아래에서 태어난 거에요. 그걸 죄 아래에서 태어났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죄 속에 태어난 그런 행세와 모습이라는 것을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자리에 와야 세상 죄가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을 보라”라고 할 때 이 말은 인간이 자기가 죄 지은 것을 책임지라는 말이에요, 책임질 수 없는 입장이라는 말이에요? 책임질 수 없는 입장이에요. 복음이 기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책임지고 싶어도 책임 못 지게 하시는 이게 기쁜 거에요.

내가 숙제하고 싶어도 숙제하지 말라는 거에요. 십계명을 보고 다 풀려고 하는데 너는 풀지 말라고 하면서 시험지를 가져가 버려요. 이게 복음이에요. 이게 기쁜 소식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세례 요한의 세례 장면이 나와요. 4복음서에 다 있는 게 몇 개 있어요. 오병이어도 다 있고.. 세례 요한이 하는 모든 일이 세례 요한의 일이 아니고 누구의 일이냐 하면은 이미 시작, 개시된 주의 일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의 일을 예수님 만나서 악수부터 하고 시작하지 말고 세례 요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주의 일의 근처에도 못 온다 이 말이에요.

특히 누가복음 같은 경우에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 출생의 비밀을 기록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그것마저 예수님의 일이기 때문이에요.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현재 내가 죄 속에 죽어있음을 안다면 그 자체가 너의 일이 아니고 이미 시작된 주의 일이다 이 말입니다. 마치 세례 요한과 예수님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과 너와의 관계이기 때문에 너로 하여금 내가 이 지옥 같은, 죄 된 세상 속에 태어났구나를 알게 하는 거에요.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한 자로 육이라고 하는 겁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오(6월 25일이라고 하면 이건 아재개그에요. 나중에 집에 갈 때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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