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출 17: 7 (시험과 다툼)우리교회출애굽기

Re..출 17: 7 (시험과 다툼)

이름 : 이근호(IP:)

시험과 다툼
2004년 10월 3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17:7

17:7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맛사라는 말은' 시험하다'는 뜻이고, 므리바라는 말은 '비난하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집단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이들의 비난과 다툼을 중요시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한계상황을 이 두 개의 단어로 다 말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신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든, 누구든, 무엇이든지 이 신체성이 용납되는 한에서만 이해하려고 덤벼듭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하나님의 일꾼이 벌리는 일에 대한 원망과 불평과 비난과 다툼으로 일관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과연 인간들이 자신의 신체성으로 하나님에게 접근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 하실까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1:18에 보면,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기를, '전에 죽었지만 이제는 세세토록 살아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주장에 대해서 신체성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인간들의 안목에서 볼 때 전혀 수용 불가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평가하기에, 예수라는 분은 한 때 살아있지만 지금은 세세토록 죽은 있는 인물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신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정말로 살아 있다면 특정 공간을 점유하고, 특정 주소지에 거주해서 방문하게 되면 악수라도 나눌 수 있는 그런 실존자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거하는 주소도 없고 그런 공간도 없다는 말은 곧 죽은 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기 신체성을 기준으로 하여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려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체성에 근거한 평가가 과연 옳은 일일까요? 사실은 인간의 한계성은 이 신체성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벌리는 윤리라든지, 도덕이라든지, 종교적인 행동들도 모두 신체성이란 한계에 부딪쳐서 결국에는 신에게로 접근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되돌아오고 맙니다.

왜 자기 신체성으로 되돌아오는 겁니까? 신체가 깨어지고 해체되고 산산조각나면 결국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버린다는 점을 참으로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신체성을 겅험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 공포와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악마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게 꼴이 된다는 겁니다. 히브리서 2:14-15에 보면,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죽기를 무서워하는 것은 혈육에 속해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즉 육체와 신체를 지녔기에 신체의 본성과 육체의 본성을 거역할 수 없어 '죽기를 무서워하게 된다'는 겁니다. 신체의 와해, 육신의 해체에 대해서 겁을 집어먹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된 부활의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자기 신체성을 갖고 얼마나 애착과 집착을 보이느냐 하는 점을 전제로 하고 말입니다. 구약 욥기에 보면, 악마가 욥을 공격하는데 있어 욥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는 근거로서 욥의 신체성을 둡니다.

즉 욥에게 신체적인 압박을 가하면 결국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믿음이란 인간의 신체성을 이긴다'라는 쪽으로 악마에게 내기를 거십니다. 만약에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없다고 한다면 악마가 승리하는 셈이 됩니다.

과연 이 인간 세계가 바로 그러합니다. 악마의 예상대로 움직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체성을 건드리게 되면 하나님마저 모욕하고 얼굴 돌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종교성, 이런 신앙성이라면 악마에게 현재 굴복 당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집니다.

악마는 예수님에게로 달려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신체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를 약점으로 간주해서 공격해 온 것입니다. "아무리 메시야 사역도 중요하지만 먹을 것은 먹어야 할 게 아닌가"라고 하면서 유혹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유혹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메시야 사역을 수행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은 자신의 신체성을 애초부터 포기한 듯한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의 신체성을 업고서 그 신체성에 대해서 유지하고 지탱하려는 노력만 경주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고'입니다.

시편 127:1-2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이 본문에서 '수고'라는 말이 두 번씩이나 나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수고하면서 인생을 살아도 그 모든 것이 다 헛수고가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일하신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자기 집착이 곧 하나님께 원수노릇을 하게끔 되어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육을 위하여 심는 자는 반드시 영의 일에 대해서 반감과 배척과 공격을 단행하게끔 세상은 그런 식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즉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실은 아예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는 양상으로 세상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모두다 악마와 예수님과의 전쟁, 곧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과의 전쟁으로 인해 생긴 양상입니다. 자기 신체를 스스로 살리고자 하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필히 악마 편을 들어서 하나님에게 대들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죽음 안에서' 바라본 세상의 진면목입니다.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죽지 아니하면 도저히 들어올 수 없는 그런 세계를 유지하시면서 침투된 세계 안에서 이스라엘을 다루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어도 자신의 죽음이 안에서만 하나님과 대면케 되는 실정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도 모르고 그들은 자신이 펄펄 살고, 자신의 수고와 노력도 펄펄 살아있는 처지에게 하나님에게 접근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자연적으로 악마의 종이 되어 하나님에게 시비 걸고, 달려들고, 비난하고, 자기 입장을 확정짓기 위한 관점으로 하나님이 과연 자기들과 함께 있느냐 없느냐를 측정하려 했습니다. 그 측정을 가지고 '시험'이라고 합니다.

일종에 자기 쪽에서 하나님을 쑤셔보는 겁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려는 차원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쑤셔보는 그 당사자들은 자신이 엄연히 살아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3:1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사람들로부터는 이미 '죽은 자' 취급을 받듯이 이제 신체성을 가진 인간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죽은 자 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헌 신체성을 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소원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얼른 자신의 신체성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신체성으로 덧입는 겁니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분은, 어떤 영역에 속했느냐를 가지고 따지십니다. 신체성을 지닌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수고하는 자들은 모두 죽은 자에 해당됩니다. 반면에 이미 살아 계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들은 모두 산 자에 해당됩니다.

갈라디아서 6:8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했습니다. 14절에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미 믿음을 가졌기에 새삼스럽게 자기 신체성을 믿음을 획득하려고 하지 마세요. 신체의 수고와 노력을 동원한 신앙은 결국 그 신체가 다친다고 느끼지만 즉시로 다시 신체성으로 되돌아가는 속성을 지닌 가짜 신앙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간이 악의 화신일 수밖에 없음을 늘 명확하게 수용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4,233건 중 152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458 우리교회 [일반] 칠곡 강의 업 / 조그만 더 기다리세요 [일반] 최고관리자 04-10-14
457 우리교회 Re..행 13"44-48 (사도바울 설교에 대한 반응)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4-10-13
456 우리교회 [일반] 로그인 에러, 동영상, 테잎 발송 [일반] 최고관리자 04-10-13
455 우리교회 Re..출 17: 8-16 (아말렉과의 전쟁)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10-10
454 우리교회 Re..출 17: 8-16 (아말렉과의 전쟁)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10-10
453 우리교회 Re..마 19:11-12 (고자된 자와 천국)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10-10
452 우리교회 출 17: 8-16 (아말렉과의 전쟁)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10-10
451 우리교회 Re..행 13"34-41 (율법과 부활)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4-10-06
450 우리교회 [일반] 하나님의 지옥만들기 [일반] 최고관리자 04-10-06
449 우리교회 Re..마 19: 3- 6 (이혼 문제)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10-03
열람 ➜ 우리교회 Re..출 17: 7 (시험과 다툼)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10-03
447 우리교회 Re..출 17: 7 (시험과 다툼)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10-03
446 우리교회 출 17: 7 (시험과 다툼)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10-03
445 우리교회 Re..행 13"15-23 (바울의 설교)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4-09-30
444 우리교회 Re..출 17: 1- 7 (죽음의 경험)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27
443 우리교회 Re..출 17: 1- 7 (죽음의 경험)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27
442 우리교회 Re..마 18:23-35 (불쌍히 여김)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9-27
441 우리교회 출 17: 1- 7 (죽음의 경험)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26
440 우리교회 [일반] 8월 설교테잎 도착안된분 있으시면 [일반] 최고관리자 04-09-25
439 우리교회 Re..행 13" 6-12 (사도와 무당)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4-09-24
438 우리교회 Re..출 16:31-36 (증거 항아리)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20
437 우리교회 Re..출 16:31-36 (증거 항아리)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20
436 우리교회 Re..마 18:21-22 (용서)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9-20
435 우리교회 출 16:31-36 (증거 항아리)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19
434 우리교회 Re..행 13" 1- 5 (전도 일꾼)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4-09-16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