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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6 - 거룩의 실상강의잠언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6 - 거룩의 실상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6 - 거룩의 실상

16,05,16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9강, 갈라지는 지형 !!

오늘은 교재 165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9강, 갈라지는 지형] 이제부터는 잠언 1장부터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잠언 1장 2절에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라고 하는데, 이것은 "나는 너희를 어리석은 자로 기정사실화를 하겠다" 라는 겁니다. 즉 "너희는 아무 것도 모른다" 라는 의미입니다.

(잠 1: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 잠언과 상식 !!

어떤 분은 잠언서를 공부한다고 하면서 왜 잠언서 성경을 보지 않느냐고 하는데, 여기 9강에 오니까, 비로소 잠언 1장부터 차례대로 살펴보겠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앞에 왜 살펴보지 않았는가? 그 이전에 한 이야기는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잠언서에 들어가면서 상식적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인데, 그것을 전제로 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상식적인 것이 무엇인가? 여기 2절에서는 지혜와 훈계, 그리고 명철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구약적인 표현이라고 하면, 이것이 신약에서는 성령이 와야만 알 수 있는 복음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지혜와 훈계, 그리고 명철의 말씀이라고 하니, 이것을 윤리나 도덕적인 것으로 여기면 안 된다는 말이다.

◈ 육과 영이 다르다 !!

그 이유에 대해서 제가 1강부터 8강까지 설명을 했는데, 물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데 말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육과 영이 다르다" 라는 것인데 말이다. 신약에서 사도바울이 '육' 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타고난 것, 즉 죄인으로 타고난 그 죄인의 관점으로서, 그래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사고방식을 두고 육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영'은 무엇인고 하니, 육에게는 없는 것인데, 그러니 영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야기를 하려면 육이 아닌 사고방식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육은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인데, 반면에 영은 인간이 모르는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이것을 합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으로 인간을 구원하신다" 라고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영의 세계는 모르기에, '구출' !!

이 논리가 틀린 것이 아닌데, 여기에 인간의 세계가 이렇게 있다고 하면, 인간은 여기 자기 세계 안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 구원이라는 것은 구출인데, 즉 '빼낸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알고 있는 바깥의 세계가 영의 세계인데, 그러면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은 이 인간세계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구출이 되려고 하면 인간이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에서 오신 분이 있어서, 그분이 자기 백성을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방식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바깥에 있던 분이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렇게 합류를 했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보고, 즉 예수님을 보고도 그분의 말과 뜻과 행동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는 말이다. 12제자도 마찬가지인데,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 섭섭하게 여기지를 말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되어야만 구출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알던 이 동네에서 자기가 아는 저 동네로 가는 것은 이사를 가는 것이지 구출이 아닌데, 미국에 가도 구출이 아니고 이사라는 것이다.

그러니 구원은 한국에 있다가 미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이사를 가는 분도 있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동네가 그 동네이기에 말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로 가는 것이란 말이다.

예를 들어서, 북한 주민 가운데서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의 소망은 결코 탈북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남쪽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디로 가면 되는가? 남쪽 사람들도 모르고 북쪽 사람들도 모르는, 전혀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 구출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굳이 남쪽으로 올 필요가 없는데, 그냥 북한에서 살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냉면을 잘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으면 몰라도 말이다. 물론 남쪽에 와서 냉면집 사장이 된다고 해도, 그것이 구원이 전혀 아닌데, 물론 돈을 잘 벌어서 배불리 살아갈 수는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 아하, 교회도 아니었구나 !!

그래서 저는 이 세상에 교회가 많이 있다는 것을 상당히 위험요소라고 보는데, 왜냐하면 교회에 다니다가 다니지 않으면 구원이 될 줄로 오해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히 아는데 말이다. 목사가 있고 장로가 있고,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다들 뻔히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뻔히 아는 것에 합류하는 것은 구출이 아닌데, 오히려 구출은 교회에서 "아하, 교회도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아는 것이 곧 구출이라는 것이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교회에 가는 것과 상관이 없이 성령에 의해서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 말씀을 들음으로서 !!

그러면 "교회에 가야 성령이 있지, 교회에 가지 않는데 무슨 성령이 있는가?" 라고 한다면, 바로 그런 사고방식으로부터 구출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교도소에 있어도 구원이 된다는 말인데, 그 이유가 로마서 10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즉 말씀을 들음으로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렇게 복음이 전파되는 현장이 바로 구원되는 현장이지, 교회에 나와서 교회놀이를 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은 교회에 나오면 교회놀이를 할 수밖에 없는데, 교회에 나오면 그 나름대로의 재미를 추구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을 받는 사람은 "이럴 수가 없어? 내가 구원을 받다니?" 라고 하게 되는데,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내가 교회도 알지만, 이것이 아닌 그 외곽에서 주님은 나를 데리려 오셨구나" 라고,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교회에 와서도 기가 죽지 않는데, 목사나 신부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신약에서 육과 영의 관계가, 이렇게 여기가 육의 세계이고 그 바깥이 영의 세계라는 것은 이해가 되었지요?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즉 "이것이 구약 때부터 그런 것이 아니고 왜 신약 때 와서 예수님부터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라고 하신다면, 우리가 지금 잠언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그러니 잠언서를 통해서도 이런 이야기가 되어야하지 않느냐고, 나름 똑똑한 분들은 그런 의문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성(聖)과 속(俗)의 장소 !!

사실은 구약에도 있는데, 이번 강의제목이 '갈라진 지형' 인데 말이다. 신약에서는 육과 영으로 구분이 되지만, 구약에 보면 거룩한 장소와 속된 장소로, 그렇게 구분이 된다는 것이다. 성과 속의 장소로 말이다. 이 장소를 다른 말로 지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구약에서는 거룩한 장소가 따로 있고 속된 장소가 따로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만약에 거룩한 장소가 없다고 하면 나머지 장소는 무엇이 되겠는가? 거룩한 장소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러면 나머지 장소는 모두가 속된 장소이어야 하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룩이 들어오지 않으니 자기가 속되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노아 때에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했는데, 이것이 과연 속된 것인가? 전혀 우리의 일상생활인데, 이것이 과연 더러운 생활이냐는 것이다. 여자가 월경을 하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낳고 하는데, 이게 과연 속된 것인가? 그런데 이게 레위기에 나오는데, 레위기에서는 이것을 속되다고 한다는 말이다.

◈ 거룩이 나타남으로서 !!

해도 너무한데, 그러면 먹지도 말고 마사지도 말라는 것인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것인데, 그런데 이게 왜 더러우냐는 것이다. 더럽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경우인고 하니, 거룩이 나타나니 자동적으로 이게 그 실체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하, 우리가 평소에 하던 모든 것이 다 더럽구나. 아하, 그래서 죽는구나" 라고,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것을 깨우쳐 주신다는 말이다.

그러니 발상자체가 다른데, 오늘날 사람들이 성경이 어떤 이야기를 하면, 성경공부를 하기도 이전에 이미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바르게 먹고 마시고, 바르게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고, 바르게 사고 팔고 하겠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무엇을 하게 되면 그 앞에다가 '바르게' 라는 것을 집어넣는데, 즉 "욕심을 내지 않고 살겠습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 욕심을 내지 않고 살고 팔고 하면 그게 거룩인가? 그것은 인간이 익히 아는 것인데, 그러니 그것은 전혀 탈출이 되지 않는 상태라는 말이다. 만약에 탈출이 되었다고 한다면, 자기가 익히 아는 것이 구약적으로 속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제가 구약을 언급한 이유를 알았지 싶은데, 구약의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을 하면서 그 평범하다는 것이, 결국 그게 평범한 것이 아니라 더러운 짓거리라는 것을,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동행하시면서 밝혀주신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상식은 다 무너지는 것인데, 즉 "바르게 살겠습니다" 라고 하는 사고방식 자체도 이미 썩어빠진 사고방식이란 것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율법에 흠이 없다고 자부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가? 자기가 아무리 생각해도 율법에 위반된 것이 없는데, 그렇게 바르게 살아왔다고 자부한 사람이 누구인가?

사도바울인데,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뭐라고 하는가? 그딴 것을 다 버렸다고 하는데, 반듯하게 살아서 율법에 흠이 없다는 것을 주저 없이 버려버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탈출이 되었기에 말이다. 사도바울의 그런 고백이 굉장히 중요한데, 율법대로 반듯하게 산다고 하는 테두리, 그 테두리 안에서 아무리 분투노력을 하고 완벽에 완벽을 기해도, 그것은 구약적인 안목에서 볼 때도 더럽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나 성당에 다니면서 "반듯하게 살아서 천당에 가겠다" 라는, 그것을 성경말씀은 좌절시키고 절망케 한다는 것이다. 즉 "그런 것은 소용이 없어. 이미 바리새인들이 다했어" 라고 하면서 그런 사람을 절망하게 만드는데, 그게 바로 테두리의 기능, 즉 율법의 기능이고 말씀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 강의를 처음부터 다시 !!

강의를 처음부터 다시 하겠는데, 잠언 1장 2절에 보면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그래, 이제 성경을 보게 되었으니 제대로 깨달아야하지"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그렇지요?

그래서 잠언서 1장 2절에 보니까,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라고 하니, "그래서 말씀을 제대로 알아야지" 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동원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구원되지 못한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이 말씀과 합치를 시키려고 나서기 마련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 말씀대로 살려고 분투하고 노력하는 것이 거룩한 성도의 태도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그것이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공통점인데, 그러면 그 교회의 목사는 그들을 붙들어서 돈을 빼먹고 또한 교회를 키우는데 이용을 하는데, 그렇게 하려고 하면 그 사람의 선입관에 위반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동조를 해주어야 하는가? 목사가 높은 강단도 위에 있는데 말이다.

거기서 목사가 뭐라고 하는가? "여러분이 착하게만 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살아 생전에도 복을 받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 게 일종의 미끼상품이니 말이다.

그러면 이렇게 뻔히 복이 보이는데 어떻게 착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면 "목사님, 착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하면, "우선 하나님에게 정성을 다하고 이웃에게 봉사하면 됩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무엇인가? 뻔한데, 교회에 돈을 내고 충성하는 것이란 말이다. 쉽게 말해서,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잔재 !!

하지만 전혀 그게 아닌데, 그것은 이미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다 실패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이 그것 때문에 망했는데, 그런 실패의 잔재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데, 유대들이 바로 그 잔재라는 것이다. 지금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하는데, 이스라엘이 멸망한 잔재가 유대인들이고, 그들에게 둘러 쌓여서 예수님은 살해를 당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살해를 당한 십자가 사건을 지금 우리에게 들이댄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대인들의 모습이, 즉 이스라엘의 잔재가 우리에게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 했으면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서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라고 했겠느냐는 말이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이게 무슨 의미인가? "당신이 그리스도를 인정한다면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 않는 그리스도를 인정해야 한다" 라는 것인데,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 '나' 자신도 포함이 되는데, 그러니 "나를 기쁘게 하는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가 아님을 인정하고 수용을 해주어야한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주님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협상을 하려고 하는데, "제가 이런 성의를 바치면 알아서 좀 해주세요" 라고 말이다. 사실은 그런 것 때문에 구약이 있는데, 구약을 보게 되면 인간이 하나님을 상대로 얼마나 더러운 타협안을 제시하는지, 그렇게 해서 복을 따내려고 하는지, 그런 과정들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온다는 것이다.

◈ 산당, 그것은 곧 갓바위 !!

그 중심지가 '산당(山堂)' 이라는 것인데, 이 산당은 성전과 반대라는 말이다. 성전에 가면 율법이 나오고 하나님의 언약이 나오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피해서 산당에 간다는 것이다. 참 재미있는(?) 현상인데, 산당에는 율법이 없고 그냥 제단만 있는데, 그러니 자기가 정성을 다해서 드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말로 세 글자로 '갓바위' 라고 할 수 있는데, 저도 여러 번 가보았는데, 거기에서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집회도 하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벽이든 밤이든 시도 때도 없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물론 밤에는 위험해서 조금은 곤란하지만 말이다.

◈ 정성, 정성, 정성 !!

이쪽 하양교에서 올라가는 길이 얼마가 가파른지 모르는데,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정성', '정성', '정성' 이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정성을 다해서 올라가서 손을 뒤집어서 절을 하고 말이다. 수능에 좋은 성적을 내게 해달라고, 진리를 알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가파르게 올라가는 것이 누적이 되고 또 누적이 되면, 그것이 복으로 바뀔 것으로 여기는데, 그러니 일종의 '환전소' 라는 말이다. 달러를 바꾸듯이 그렇게 정성을 내밀고 바꾸는데, 그리고 그렇게 제단에 정성을 내밀기 전에 일주일 정도는 착하게 산다는 것이다.

이것을 안양강의에서 '표백' 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말이다. 표백이라고 하면 요즘 엄청 문제가 되는 옥시가 생각나는데, 진짜 표백제를 뿌려야할 놈들인데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착함에 정성까지 더하게 되니, 부처가 복을 주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데, 자체적으로 완벽을 기했으니 말이다. 복이 누수가 될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착하지, 거기에 정성까지 더했지, 인간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이게 바로 구약의 산당인데,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가 바로 이 산당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구출하는 용도로 말씀을 주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구출을 받는 것보다도 자기가 아는 세계에서 스타가 되고, 남에게 박수를 받고 부러움이 되는, 그런 자부심을 하나 노리고 산당에서 빈다는 것이다. "너, 정말 대단하다!" 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말이다.

◈ 그 이름도 유명한 '바알' !!

그 산당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오기 이전부터 있었는데, 그렇게 선점해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신이 있었는데, 그 신이 구약에 나오는 '바알' 이라는 것이다. 이 바알은 가나안 땅에 있던 수 백가지 신들의 대표적인 이름인데, 세분화하면 아스다롯도 있고 온갖 신들이 다 있지만 말이다.

'가나안 땅' 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 지중해가 이렇게 있고, 여기에는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그리고 터키까지 해서, 이렇게 그 이스라엘 주변지역을 '가나안' 이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함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노아에게는 함과 셈과 야벳이 있었는데, 함의 자식이 바로 가나안이라는 것이다.

함이 자기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은 것을 보고는 덮어주지 않고 나오는 바람에, 그만 자기 자식인 가나안이 그만 노아에게 저주를 받고 말았다는 말이다. 바로 그 함의 원주민, 즉 가나안 족속이 이렇게 여기에 자리를 잡고 이미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 이스라엘은 강탈자 !!

그러니 이스라엘은 어떻게 보면 강탈자이고 강도인데, 잘 살고 있는데 거기에 쳐들어가서 땅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마치 최씨 집안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비옥한 땅에 박씨들이 와서 한다는 말이, "이 땅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우리가 접수를 합니다. 그러니 너희들은 좀 나가주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는데, 인간의 이성과 상식적 사고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왜 최씨 집안이 잘 살고 있는데 박씨가 와서 자기 땅이라고 우기느냐는 말이다. 이것은 "독도는 우리 땅이다" 라고 우기는 일본놈들보다도 더한데, 횡포도 이런 횡포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이스라엘을 인간들이 살아가는 논리나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깡패와 같은 민족으로 만드시는가? 그것은 바로, 구출이 되려면 인간의 논리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강제조치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강제조치가 말이다.

◈ 이노무 새끼들이, 지금 뭐하노?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예를 들어서, 어릴 때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골목길이나 공원에서 친구들과 놀이를 하면서 노는데, 물론 엄마가 저녁을 준비해놓은 것도 모르고 말이다. 그러면 엄마가 어떻게 하는가? 처음에는 밥을 먹으라고 좋은 말로 하다가, 나중에는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가서는 호랑이 인상을 쓰면서 완전히 깽판을 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소박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최씨 집안에 그만 깽판을 놓고 만다는 것이다. 즉 여리고 성을 일시에 무너뜨리고 마는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횡포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하시는가?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들이 자기 세계에 자기가 함몰되어있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 때문인데, 마치 아이들이 소꿉놀이에 빠지듯이 말이다. 그러니 인간은 자기 바깥에 있는 어떤 영적인 세계를 전혀 모르고 그냥 눈에 보이는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그것이 살아가는 전부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 빌고 또 빌고 !!

그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산당, 즉 이방종교인데, 그것이 바로 바알종교라는 말이다. 이 바알종교는 농경시대의 신인데, 그러니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인데, 나중에는 바다의 신도 나오고 하는데 말이다. 대만에 그렇게 미신이 많은 것은 섬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물론 일본도 그렇고 말이다. 바다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기후변화에 생계가 왔다갔다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살기 위해서라도 바다의 신에게, 그게 용왕인데 말이다. 그 신에게 무엇인가를 바쳐야 하는데, 그게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심청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자라도 아줌마는 안 되고 처녀를 바쳐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신을 달랜다는 말이다. 요나의 경우에도 그러한데, 바다를 잠잠케 하기 위해서 자기 몸을 바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구약성경이 얼마나 우리의 일상과 밀착이 되어있는지 모르는데, 우리 인간이 지어낸 신과 말이다.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신은 살아있는 신이 아니고, 우리가 만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같이 우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인간들은 그것이 우상인 줄을 모르는데, 자기가 믿는 신을 누가 우상이라고 하는가? 그냥 자비로운 신인데, 그런데 여기에 구출을 위해서 침투한 여호와 하나님은 무엇을 대동하는고 하니, 그것이 구약성경 후반부에 나오는데, 그게 바로 사단이라는 것이다.

◈ 사단은, 반항한 피조물 !!

이 사단은 피조물인데, 즉 천사인데 하나님께 반항을 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악마는 피조물인데, 그냥 피조물이 아니라 '반항한 피조물' 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반항한 피조물이 어떤 신이 등장할 때만 사단이 되는고 하니, 진짜 창조주가 등장할 때만 반항한 피조물로서 자기 규정이 된다는 말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기존의 신으로는 되지 않는데, 거기서는 사단이 제대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짜 사탄은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인간과 사단은 이미 한 편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사단이 자기 정체가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인간의 신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하는 것과 관련된 신이기 때문에, 자기 몸이 아파서 불편하다든지 하는, 자기가 살아가는데 불편한 것에 대해서, 그것을 두고 사단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 생활이 어렵게 되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를 힘들게 했다는 이유 때문에 사단이 되어버리면, 그러면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민족들에게는 무엇이 되는가? 그만 사단이 되고 마는데, 즉 귀신들린 자이고, 그들의 오야붕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마 12:24)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 교회와 산당 !!

오늘날 교회가 위험하다는 이유에 대해서 이제 감을 잡았지 싶은데,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면서 마치 산당에 나오는 기분으로 온다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말이다. 사람들이 교회에 왜 나오는가? 생활이 윤택하게 되고, 자기 몸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 위해서 온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을 보게 되면 예수님을 사단의 대장으로 보게 되는데, 즉 '바알세불'로 말이다. 그리고 사단을 무엇을 보는고 하니, 진짜 메시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게 고린도후서 11장에 나오는 말씀인데, 즉 양의 탈을 쓴 인간들이,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주님의 종은 악마의 종으로 취급해버리고, 정작 악마의 종은 고린도교회의 당회장으로 모시고 있다는 말이다.

◈ 뻔하고도 뻔뻔한 논리 !!

부교역자가 되어서 그런 당회장에게 "그것은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것 같은데요?" 라고 하면 뭐라고 하겠는가? "교회가 되려고 하면 당신처럼 하면 되겠어? 그러면 다 떠나고 말아. 지금 당신이 이렇게 에어컨을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 누구 덕분인 줄을 알아? 당신처럼 하면 아프리카에 선교사를 파송하겠어? 그러면 그게 무슨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뻔하고도 뻔뻔한 논리인데, 물론 교인들도 헌금할 때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닌데, 다른 것은 목사가 다 알아서 할 것이고, 자기는 헌금을 하면서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하나님에게 보낸다는 것이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심을 맺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한 노림수를 가지고 "그래, 믿자.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믿음으로 믿어야해. 성경에도 분명히 그렇게 되어있고, 얼마 전에도 부흥사가 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으니까 말이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씁니다, 믿씁니다, 믿씁니다" 라고 하면서 철야를 한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주술이고 무당짓인데, 무당들이 칼춤을 출 때 옆에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데, 특히 주인은 간절하게 빌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나무가 흔들릴 때 그냥 구경만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주인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무당이 보고 야단을 치는데, 정성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또 다시 돈 봉투를 내놓고 빌어야 하고 말이다.

그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교회인데, 그것이 예배이고 부흥회라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키운 것이 바로 구약의 산당인데, 그래서 산당에는 계시도 없고 말씀도 없고, 인간의 욕망만 가득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헉헉거리면서 산 위로 올라가서, 거기서 이방종교를 만난다는 것이다.

◈ 산당에서 여호와를 !!

물론 우리는 그것을 바알과 아세라라고 하는데, 정작 그들은 거기 산당에서 누구를 섬긴다고 하는가? 산당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는데, 그러니 문제가 더 커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산당을 찾으니까 성전에는 오지도 않고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헌금도 하지 않으니 자기들의 생활이 쪼그라드는데, 그런데 전국의 산당들은 어떠한가? 연초마다, 절기마다 난리라는 것이다.

월삭이라는 것은 달의 첫 날을 의미하는데, 첫 날에 갓바위에 가는 것과 어떻게 그리 흡사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땅의 종족이라서 모두 같은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뭐라고 하는가? "너희들이 믿는 것을 이름을 바알에서 여호와로 바꾸면 된다" 라고 하는데, 그래서 여호와를 부르짖지만 그 내용은 전부가 바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어떠한 모습인가? 이름만 예수라고 하고, 그 내용은 모든 것이 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그게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이고 천주교라는 말이다. 그게 바로 2,000년 교회의 역사라는 것이다.

여기서 일단 교재 124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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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모와 자식의 관계
잠 13:24/잠19:13,18/잠23:13-14/잠 29:15,26/잠 1:8/잠 4:1/잠 6:20/잠 13:1/잠 15:5/잠 23:22/잠 20:20/잠 30:17/잠 17:17,25/잠 10:1
(2)왕과 백성의 관계
잠 16:10/잠 16:12-14/잠 20:2,26/잠 29:4,12/잠 31:9/잠 14:35
(3)부부와의 관계
잠 18:22/잠 31:10-31/잠 12:4/잠 14:1/잠 19:13/잠 21:9,19/잠 27:15-16
(4) 노인과 젊은이의 관계
잠 16:31/잠 20:29
(5)친구와의 관계
잠언 16:19/잠 24:26/잠 27:6,9
(6)종과의 관계
잠 17:2/잠 29:21/잠 30:10
(7)이웃과의 관계
잠 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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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망 !!

이것이 '관계망'에 관한 것인데, 잠언서를 중요한 것을 전부 다 뽑아놓았다는 것이다. 중복되는 것을 피해서 말이다. 지금 왜 이것을 살펴보려고 하는고 하니, 지금 산당을 기존으로 깔아보자는 것이다. 산당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산 위에 계시고 우리는 정성을 다해서 들이대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라는 관계인데 말이다.

그런데 잠언서에 보면, 부모와 자식 관계, 왕과 백성의 관계, 그리고 부부 관계 등, 그런 모든 관계가 전부가 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물망, 지혜의 거물망, 율법의 거물망 속에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미 꽂혀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산당은 무엇인가? 평소의 자기 일상이 따로 있고, 그러다가 뭔가 아쉬운 일이 있으면 정성을 짊어지고 산 위로 올라가서 '여호와' 라는 가상적인 신에게 빌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거룩한 것은 산당에 있고, 여기 일상은 자기만의 세계라는 말이다.

◈ 일상(日常)에 녹아있는 말씀 !!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라, 여기 산 밑의 일상의 세계, 즉 부모와 자식의 관계, 왕과 백성의 관계, 그리고 부부 관계나 친구 관계 속에 이미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녹아져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말씀의 지뢰를 우리의 일상생활에 줄줄이 깔아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산에는 왜 올라가느냐는 말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려고 가는가? 하나님을 만나는데 왜 산에 올라가느냐는 것이다. 어디 하나님이 산꼭대기에서 바둑을 두고 계시는가? 그것은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것이고, 왜 그런 짓을 하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잠언서는 그게 아니라 일상생활 가운데서 이미 하나님과의 접촉망이 형성되어있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 왕과 백성의 관계, 그리고 부부 관계와도 같은 관계망을 통해서 말이다. 물론 더 세분화를 하면, 고부 관계, 동업자 관계 등도 다 포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에 !!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어디를 건너왔는데, 그것이 어디인가? 홍해를 건너왔는데, 그때 그들이 물론 겁도 좀 났겠지만 너무너무 신이 났다는 것이다. 자기들을 뒤따라오던 애굽의 군사들이 다 물에 빠져죽었으니 말이다. 다 같은 인간인데 자기들은 왜 빠져죽지 않고 그들만 죽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건방지게 너희들이 어디를 따라오는가?" 라는 것인데, 앞 뒤 분간도 하지 못하고 말이다. 거름을 지고 시장에 가면 다 따라오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데리고 가는 것은 사람은 따라올 수가 없는데,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그들은 따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바닷속을 통과하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느냐는 말이다.

◈ 보고 나서 믿는, 야비한 믿음 !!

사람이 얼마나 야비한지 모르는데, 안 되는 것을 주님이 되게 하시니 뒤늦게 돌아보면서 '믿습니다' 라고 하는데, 이미 건너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믿음이라는 것은 이미 건너와서 믿는 게 아니라, 건너가기 이전을 보라는 것이다. 넘실거리는 바닷물결 앞에서 말이다. 그러니 이스라엘도 다같이 애굽사람인데, 그래서 모세에게 화를 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세야, 지금 니가 우리를 집단적으로 물 속에 넣어서 죽이려고 하지? 그러면서 하나님 핑계를 대는데, 모세 니가 믿는 하나님은 참으로 희한하다. 무슨 그런 하나님이 다 있노? 우리를 구원한다고 해놓고 죽이려고 이렇게 홍해바다에 데리고 왔는가?" 라는 것인데, 이러한 발상은 애굽이나 이스라엘이나 똑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닷물이 갈라지면서 길이 나고, 그 길을 건너오니까 뒤늦게, 마치 예전부터 믿었던 것처럼 위장을 한다는 것이다. '믿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따라오던 애굽 군사들이 다 죽었으니 말이다. "야, 신난다. 역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 그리고 그것을 내가 믿는구나" 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평가, 홍해를 건너고 나서 얼마 가지 않아서 다 헛방인데, 그래서 뭐라고 하는가? "이럴 것 같으면 차리라 애굽에서 살지,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 저 모세를 따라서 나왔던가? 이제 광야에서 다 죽게 생겼다" 라고 하는데, 이게 과연 믿음이냐는 말이다.

◈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서 만든 것이 곧 '금송아지' !!

그래도 모세가 있으니 그 모세를 의지했는데, 그런데 모세가 그만 등산을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지고 간 것이 없으니 조금 있으면 돌아올 줄 알았는데, 배가 고파서 말이다. 그런데 일주일이 되어서 한 달이 되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갈 곳이 없는데, 마치 최백호가 부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라는 노래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낸 게 무엇인고 하니, 그래도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서 모세가 따랐다고 하는 여호와를 만들자고 하는데, 모세를 대신해서 말이다. 그래서 백성들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공모했는데, 일단 그 조건이 무엇인고 하니, 여호와는 자기들의 소원을 들어줄 만큼 자비로워야하고, 그리고 힘이 세어서 애굽을 이겨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비롭고 힘이 센 것을 공모했는데, 공모자들의 대다수가 황소였다는 말이다. 그래서 황소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 황소가 낯설지 않은 것이 애굽에서 이미 이런 황소우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 친근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황소를 나무로 만들면 가치가 떨어지니, 그래서 가지고 있는 제일 귀한 금가락지를 다 내놓으라고 해서, 은가락지도 안 되고 말이다.

그렇게 자기들이 가진 것 가운데서 최고로 귀한 것을 바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는데, 그래서 모세의 형인 아론이 주동자가 되어서 자기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섬겼다는 것이다. 이제는 모세가 없어도 이 금송아지를 섬기면서 자기들이 알아서 가겠다는 말이다.

◈ 우상과 하나님의 차이점은?

그러면 여기서 제가 하나 묻겠는데, "우상과 하나님의 차이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우상의 특징은 기존의 자기가 체험하고 기억하던 것을 끌어 모으면 되는데, 그게 우상이라는 말이다. 5년 전에 기도원에서 기도해서 병이 나은 것, 그런 것을 모으면 우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게 우상이라면 진짜 하나님은 무엇인가? 약속의 실체는 이 땅에 없는데,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이다. 약속은 하늘에 두고 지상에서 하늘로 강제로 끌고 가시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우리를 나그네로 만들어서 말이다.

그렇다면 막연하게 하늘만 바라보면서 가느냐고 하면, 그것이 아니라 미리 이 지상에 하늘과 연계가 되어있는 말씀과 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실체는 분명하게 하늘에 있는데, 그런데 하늘과 이 지상에 있는 자기 백성과 연결되는, 그 연결선이 있다는 말이다. 그라고 그 연결선은 약속으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를 지신 분이 어디에 잇는고 하니, 하늘에 계시는데, 그러면 십자가를 지신 분과 이 땅에 있는 자기 백성과 유일하게 연결된 그 연결고리가 무엇인고 하니, 그게 바로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게 십자가 복음인데, 그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너희 죄를 위해서 내가 대신 죽었다" 라는 것인데, 즉 어린양의 피가 곧 십자가 복음이라는 것이다.

◈ 약속의 노선만이 !!

그러니 여기에는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추가될 것이 없는데, 만약에 추가가 되면 노선이 하나가 아닌 가짜 노선이 옆에 하나 더 붙게 된다는 말이다. 길은 하나이어야 하는데, 둘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피도 믿고 자기 착함의 행함도 같이 하는 것은, 그것을 하늘나라와 연결된 진짜 선이 아니라 가짜라는 것이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가지 못하도록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진짜 약속의 선만 남기기 위해서 무엇을 털어야 하는가? 먼지를 털 듯이 말이다. 자기 행함의 가치를 털어내야만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성경말씀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말인가? 그게 바로 부모와 자식 관계, 왕과 백성의 관계, 부부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등인데 말이다.

그렇게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는데, 그러면 우리가 이 주어진 말씀대로 살아갈 수가 있는가? 전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님을, 그것을 우리는 이 잠언서의 말씀을 통해서 매일같이 되새기게 된다는 말이다.

◈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

여기 교재 124페이지에 나와있는 말씀 중에서 하나를 보자면, 그 어떤 구절이라도 괜찮다는 것이다. 잠언서 13장 24절을 보면, 지금 잠언서를 보고 있으니, 왜 잠언서를 공부한다고 해놓고 정작 잠언서를 보지 않느냐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ㅋㅋ).

(잠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여기 펴자마자 엄청난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 초달은 회초리인데, 그러니 "회초리로 매질을 하지 않는 부모는 자식을 망치는 부모이다" 라는 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직 약속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했는데,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미 우상숭배를 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약속에 자꾸만 자기 행함을 붙이려고 하니 말이다.

그 행함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것으로 털어버려야 하는 것인데, 그래서 여기에 잠언서가 동원된다는 것이다. 물론 율법도 동원이 되지만, 우리는 잠언서를 하기에 잠언서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잠언서는 정성을 다해서 짊어지고 갓바위를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미 부모와 자식 관계, 왕과 백성의 관계, 부부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 이런 관계망 속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는데, 땅에서도 접촉이 된다는 것이다. 말씀과 말이다. 그렇게 말씀과 접촉되어서 관계망이 형성되면 자기가 털어버려야만 할 것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그것이 곧 애굽적인 사고방식, 즉 자기 행함으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털어버리는 차원에서, 방금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중에서 하나인 잠언서 13장 24절을 보았다는 것이다. 자식에게 매를 들지 않는 부모는 부모의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부모에 합당한 부모가 있으면 나와보라는 것이다. 그 어느 부모도 여기에 합당한 부모는 없다는 말이다.

◈ 죽어도 못 때립니다 !!

아브라함이 자기 자식을 죽였는데, 그러면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게 전혀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인 예수님을 버렸는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없는데, 그러니 우리는 잠언서 13장 24절을 전혀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보다도 귀한 것이 자식인데, 그런 자식에게 어떻게 매를 대고 심지어 버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자기 자식이 죽었다고 벌써 2년이 넘게 투쟁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우리의 인간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가습기 사건도 그렇고 말이다. 영국까지 가서 데모를 하는데, 부모의 자식사랑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국이 아니라 하늘까지 찾아갈 판인데 말이다.

사람이 언제 분노하는가? 자기를 때리면 그래도 참을 수 있는데,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는 자기 자식을 건드리면, 그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선생님이라고 해도 학교로 찾아가서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 자식을 왜 때려? 때리면 아프지 않는지 너도 한 번 맞아봐라" 라고 하면서 주먹을 날린다는 것이다. 자기 혼자서 안 되면 친척들을 동원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 자식을 위해서 기꺼이 신불자가 되리라 !!

오늘아침 뉴스에 보니 노인들은 국가에서 관대하게 대우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다 이유가 있는데 말이다. 노인네들을 공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선거할 때 표를 의식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현 정부는 노인네들이 찍어주지 않으면 완전히 '꽝'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버스나 지하철도 노인네들에게 돈을 다 받아야 하는데, 공짜로 태워주고 하니 쓸데없이 그렇게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노인네들에게 그렇게 관대하게 해주니, 자식들이 그것을 악용해서 노인네들 앞으로 카드를 만들어서 마구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중에는 자기 부모만 신용불량자로 만들고 말이다. 그래서 노인네들은 자식들이 가르쳐준 대로 돈이 없다고 하면서 파산신고를 했는데, 하도 이상해서 조사를 해보니, 그게 다 자식들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카드를 사용한 내역서를 보니까, 노인네들이 백화점에 가서 명품가방을 사고, 또한 최고급 피부 미용실에서 마사지를 받은 것으로 되어있으니 말이다. 그게 노인네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금액이 무려 4,500만원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법원에서 파산신청을 받아주지 않고 자식들을 보고 다 갚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게 빙산의 일각이지 싶은데, 이런 경우들이 얼마나 많겠느냐는 것이다. 재산은 자기 앞으로 하고, 반면에 세금은 부모 앞으로 다 해놓고, 그래서 돌아가시면 상속을 받지 않는 것으로, 그렇게 자식들이 못된 짓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놓고 효자라고 하면서 폼이란 폼은 다 잡고 말이다.

그것은 부모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자기 자식에게 매를 대기는커녕 도리어 자기가 대신해서 맞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이 세상에서의 부모의 자식과의 관계라는 말이다. 지금 한 가지만 예를 들었을 뿐인데, 이런 식으로 이 잠언서를 하려면 몇 달을 해도 다 하지 못하지 싶은데 말이다.

◈ 잠언서는 지킬 수 없어 !!

한 마디로 말해서 "잠언서는 우리가 지킬 수 없다" 라는 것이다. 도저히 지킬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전부가 다 자기 위주니까 말이다. 우리 속에 괴물이 들어있는데, 사단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아까 사단을 뭐라고 했는가? 하나님께 반항한 피조물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즉 "회초리로 매질을 하지 않는 부모는 부모도 아니다" 라고 하는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우리에게서 분노가 일어나면서, 우리는 "하나님, 해도 너무합니다. 그래도 지킬만한 말씀을 주셔야지 무슨 억지춘향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뭡니까? 그러면 어느 세월에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는가? "이것은 일단 제끼고"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바로 그렇게 "우리가 최선을 다한 것만 기특하게 봐주시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협상에 나섰고, 그렇게 해서 나라를 그만 후루룩 말아먹었다는 말이다. 그런 협상의 귀재들이 바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었는데,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에게 죽었는가? 바로 그들이 예수님을 '귀신의 왕' 이라는 누명을 씌어서 그만 살해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구출이 된다는 것이, 그게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을 잡아야 하는데, 구출을 당하면서도 구출하시는 주님에게 발길질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너무합니다" 라고 하면서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는 말이다. 광야에서 물과 음식이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태를, 그것을 우리가 매일같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 왕과 백성의 관계 !!

그러면 이제 '왕과 백성의 관계'를 보겠는데, 잠언서 16장 10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 라고 되어있는데 말이다. 잠언서는 줄거리 자체가 없는데, 다 끊어져 있다는 것이다.

(잠 16:10)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

달리 말하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왕이고, 왕은 보이는 하나님이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왕 배후에 누가 있다는 것인가?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렇게 하나님이 왕을 세우셨으니 왕의 말을 사람의 말로 듣지 말고, 하나님이 지금 왕 속에 들어서 있어서 재판한다고 여기고, 그것을 우리보고 받아들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왕과 백성의 관계인데,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과연 실현된 적이 있는가? 특히 북쪽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왕이 조금 잘못했다고 싶으면 백성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 나름 힘이 있다고 하는 신하들이 모여서 쿠데타를 모의하고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뭐라고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혁명을 일으켰다" 라고 하는데, 그것은 잠언서 16장 10절에 전혀 어긋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나쁜 짓을 일삼는 왕의 경우에, 여기에 대해서 백성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데, 그래서 "사단의 말도 우리가 들어야 합니까?" 라고 하면서 대들면,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는가? "왕을 교체하는 어디까지나 나의 소관이지, 너희들이 나서서 할 일이 아니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이게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인데, 그렇지요? 교회에서 목사들이 사고를 치고 나서 뭐라고 하는가? "주의 종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것이지, 장로나 집사들이 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만약에 그렇게 하면 당신들의 집안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라고, 그렇게 목사들이 공갈과 협박을 일삼아왔다는 말이다.

◈ 계란으로 바위치기 !!

그러면 그것이 틀린 말인 줄은 알지만 찜찜해서 그냥 입을 다물고 마는데, "내가 아니라도 누가 나서겠지? 내가 해봐야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교회에서 유명한 말이 두 개가 있는데,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라는 것과, 그리고 "은혜로 합시다" 라고 하는 말이다. 오늘날 목사들이 교회에서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목회를 해먹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왕의 발걸음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에, 왕의 잘잘못은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린다" 라고 하는 것을, 그것을 백성들이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왕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데 내가 나서면 무엇을 하겠노?" 라고 하는 자기 행위의 정당성, 그런 비겁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성경말씀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결코 지키지를 못하는데, 그러니 성경말씀을 보면서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꼭 그 말씀에 빗대어서 "나는 옳게 행동했습니다"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남들이 보면 말씀을 지켰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상은 말씀에 전혀 어긋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 노아방주의 경우에 !!

노아방주의 경우에, 거기에 저주를 받을 자들이 같이 동승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동승을 했는데, 바로 함이 거기에 탔다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아예 제거를 하면 되는데, 그런데 왜 동승을 하게 하셨는가? 그게 바로 성경말씀을 자기 입장에서 보는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성경말씀은 자기 구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즉 하나님의 주신 말씀을 그 어떤 인간도 해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이 주신 약속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약속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하니까, 우리는 그 의미를 모르고 어떻게 나오는가? 자기가 그 약속을 믿어주면 구원을 받는 줄 안다는 것이다. 자기가 약속을 인정해주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는데, 그런데 있다고 우긴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기 믿음을 스스로 정당화를 시킨다는 것이다.

◈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실패한 자만이 !!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실패를 해야만 하는데, 그래서 자기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물로 주신 것에는 믿음만 달랑 오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와 동행을 하신다는 말이다. 마치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이다.

그렇게 주님은 동행하시면서 우리에게 지적질을 해대시는데, 즉 잠언서 13장 24절을 통해서 말이다. 물론 우리는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까 이야기한 두 가지 멘트, 즉 "계란으로 바위치기인데, 주께서 알아서 은혜로 해주시겠지" 라는 것이 동원된다는 말이다. 목사에게 욕을 하면서도 보고 들은 것이 그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 말씀을 갑자기 깨닫게 해버리면, 졸지에 부모는 어떻게 되는가?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모가 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자식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발각 당하게 될 때, 바로 그 사람이 성도이고 구원받은 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 때문에 말이다. 주님이 동행하지 않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도의 특징은 늘 말씀이 새롭게 깨달아지고, 그 말씀 앞에서 자기가 죄임으로 새롭게 노출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게 바로 구원받은 성도의 특징이라는 말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주님의 백성이 아닌데, 왕과 백성의 관계가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 말씀도 역시 우리는 그야말로 '땡'인데, 지키지 전혀 못한다는 것이다.

◈ 부부 관계망 !!

그러면 부부관계는 어떠한가? 어떤 사람은 이 관계만은 자신이 있다고 하는데, 특히 딸을 자식으로 가진 분들이 그렇게 나온다는 것이다. 부부금술이 좋으면 딸을 잘 낳는다는 말이 있어서 그런 몰라도 말이다(ㅋㅋ). 거기에 성경구절이 여러 개가 있는데 하나만 골라서 찾아보자는 것이다. 저도 모르는데, 그 성경구절을 다 외우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볼 때마다 긴장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 잠언서 18장 22절에 보면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라고 하는데, 특히 남자들이 이 말씀을 잘 지키는지 모르겠는데, 과연 그러한가? 아내를 얻으면 그게 곧 복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착한 아내를 얻는 것이 복인가? 악한 아내를 얻는 것이 복인가? 문제가 결코 만만한 게 아닌데 말이다.

(잠 18:22)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그게 아니라 그냥 아내를 얻은 자는 복을 얻었다는 말이다. 좋은 아내, 나쁜 아내, 그런 차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주님, 왜 저에게 이렇게 힘든 아내를 주십니까?" 라고 하면, 그것은 복걸복이라는 것이다(ㅋㅋ). 오히려 자기에게 딱 맞춤형의 아내는, 자기가 보기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라는 말이다.

◈ 자기 마음에 드는 아내는 없어 !!

그렇다면 자기 마음에 드는 아내를 구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런 아내는 모든 남성에게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심을 한도 끝도 없기에 말이다. 처음에 결혼할 때는 "나 같은 못난 놈에게 당신 같은 아내가?" 라고 해놓고, 세월이 지나가면 그동안에 자기가 일을 해서 마누라를 먹여서 살렸다고, 그것을 자기 업적이라고 우기기 일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인인 남편에게 합당한 아내는 똑같은 죄인인 아내여야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었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서 말하면 "아내에게 잔소리를 실컷 들어라. 그게 너에게 합당한 복이다" 라고 하는,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말씀을 지킬 수가 없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나오는가? "내가 이렇게 평생을 고생해서 너를 먹여서 살렸는데, 당신은 나에게 해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라고 나오는데, 그렇게 이기주의적 입장에서 아내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 서로 바뀌었네요 !!

어제 우리 윤 집사님 부부가 예배 시간에 일찍 오셔서 이야기를 하는데, 교회에 오면서 여자 권사님이 운전을 하고 남자인 윤 집사님이 조수석에 앉았는데, 그렇게 해서 차를 타고 오는데, 윤 집사님이 조수석에 앉아서 운전에 대해서 마구 잔소리를 해대니, 운전석에 앉아있는 하는 사람은 운전할 맛이 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제가 그것을 듣고 "서로 바뀌었네요" 라고 했는데, 보통은 나이가 들게 되면 여자가 잔소리를 해대고 남자는 주로 듣는데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더 들면 그것이 또 바뀌는 모양인데, 저는 아직 그런 나이까지는 되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말이다(ㅋㅋ).

그렇게 말이 많다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맞이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인데, 즉 잠언서 18장 22절을 잊어버려서 그렇다는 말이다. 분명히 그 구절도 보았을 텐데, 봐도 건성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우리가 건성으로 보면서 놓친 것을 어떤 계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직접 심어주시는데,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었다" 라고 말이다.

◈ 복된 여보 !!

그러니 아무런 소리도 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복을 받았다" 라고 하면서 자기 아내를 복 덩어리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를 부를 때도 그냥 부르지 말고 '복된 여보!' 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사자성어로 말이다. 그게 촌스럽다 싶으면 '은총 여보!' 라고 하든지 말이다.

그러니 성경말씀은 우리가 전혀 지킬 수가 없는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자기가 편하면 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라는 말이다. 자기 몸이 불편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데, 사람이 욕을 한다는 것은 자기 파멸인데, 자기가 자기에게 욕을 하고 싶어서 남에게 퍼붓는다는 말이다.

상대방에게 "야, 이 멍멍아!" 라는 것은, 정작 자기가 힘들어서 못 살겠다고 하는, 즉 "니 때문에 내가 못 살겠다" 라는 게 아니라, "내 때문에 내가 못 살겠다" 라는 것이다. 자기 화냄에 바쳐서 못 산다는 것이다. 그냥 드론처럼 떠서 살면 되는데, 일일이 다 따지고 간섭하니 얼마나 화가 나느냐는 말이다. 그게 바로 주님이 짜놓은 말씀의 관계망에서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노인과 젊은이의 관계 !!

이제 '노인과 젊은이의 관계'를 보겠는데, 이제는 성경을 살펴보는 것이 무서운데 말이죠. 여기 잠언서 16장 31절을 보면,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라고 하는데, 머리가 희어지면 모두 철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잠 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이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니가 노인이 되었으면 젊은 사람에게 충고할만한 깊은 지혜의 우물에서 더욱 깊이 들어가서, 그것을 퍼서 젊은이에게 주는 책임을 다하라" 라는 것이다. 머리만 희어진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이 젊은 놈들아, 이렇게 사는 것이 사는 것이야. 그렇게 살면 안 돼" 라고 하라는 말이다. 그런 지혜의 보고가 되라는 말이다.

그런데 노인네가 무슨 아기도 알라(아기)도 매일같이 찡얼거리고 하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아버님, 이럴 때는 어떤 지혜가 필요합니까? 한 수 가르쳐 주세요" 라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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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727건 중 1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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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