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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중재자 ( 마 21:1-9 ) 대전- 75강자유게시판마태복음

중재자 ( 마 21:1-9 ) 대전- 75강

이름 : 주향(IP:211.231.24.139)

중재자 ( 마 21:1-9 ) 대전- 75강

이근호

2016년 4월 26일 본문말씀: 마태복음 21:1-9

(마2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마21: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마21: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마21: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마21: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마21: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마21: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마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태복음 21장 1절 예루살렘이 있으면 옆에 기드론 계곡이 있고 옆에 감람산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활동하고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고 휴식하시고 (눅 21:37) 쉬시고 예루살렘은 높은지대에 있어요. (해발 790m 사해로부터 25km,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55km) 우측으로는 사해가 있고 그 위로 요단강이 이어져 있으며 좌측 지중해 방향으로는 블레셋 평야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남쪽 유대 산악지역과 북쪽으로 에브라임 산악지대로 되어 있습니다.

(마21: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마21: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야기기는 사무엘 상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하나님의 투입이고 개입입니다. 투입이고 개입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냐하면 성경을 볼 때 항상 전체를 미리 알고 있으면 성경 보기가 훨씬 수월해요.

제가 9월에 미국을 가는데 미국 강의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을 하는데 미국에 가서 성도들에게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것을 이야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이해하면 쉽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이죠?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나귀가 나오잖아요. 그러면 인간도 피조물이고 나귀도 피조물인데 다 피조물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주께서 쓰시겠다 했거든요.

지금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냐 하면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어떤 사람이 당신 나귀를 왜 가져가? 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인간 대 나귀에서 보자면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냐 나귀가 을이 되겠지요? 그리고 나귀 주인이 있을 게 아닙니까? 그러면 인간 대 인간으로 이야기를 해서 나귀는 인간의 소유물이니까 데려가고 안 데려 가고는 그 나귀 주인에게 물어 봐야 되는데 지금 예수님은 급을 높이려는 거에요.

인간 대 인간 조차도 피조물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인간이 나귀를 다루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그 인간은 누가 다루겠냐는 말이죠. 인간을 누가 다루겠어요? 인간보다 초월한 존재가 등장해서 다뤄야겠지요. 그러면 이 말은 뭐냐 인간이 나는 누구이다라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이 피조물을 규정 할 수 있는 자격이 없어요. 해 봤자 거짓말입니다. 잘못 된 거에요.

나는 누구이다라는 자체가 잘못된 거에요. 나는 ○○하다에서 나를 뭐라고 하냐하면 1인칭이라 해요. 그런데 나라고 하는 것은 언제 시작됐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나가 아니고 태어난 지 6~8개월부터 나라는 것이 드디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실은 더 되야 돼요, 한 12개월 넘어가야 되는데 그 이전에는 나하고 너는 없어요. 누가 엄마를 장난삼아 때리면 아기도 울어요. 아직 엄마하고 분리가 안되있어요.

특히 어린애 하나가 어른에게 맞으면 (다른 애도) 자기는 안 맞았는데도 그 애 맞은 것이 자기도 맞은 것으로 여겨 같이 울어버려요. 아이들 병원에 가면 한 아이가 주사 맞고 울잖아요. 옆에 있던 멀쩡한 애들도 다 운다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어른도 마찬가지에요. 선생님이 애 하나를 나무랐는데 다른 애들이 겁을 먹고 가만히 있어요. 이것은 1인칭이라는 용어는 쓰지만 아직 완전한 1인칭이라고 쓸만한 정도로 분화되지 않은 거에요.

분화, 자기만의 세계로 분리되지 않았어요.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거지요. 나는 ○○ 이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해당되는 사람 없어요. 그러면 영어로 it (그것)이 되는 거에요. I (나) 자리를 누구에게 양보했다? I (나)의 자리를 다른 쪽에서 양보를 해야 되는 겁니다.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은 어디서 생겼습니까? ‘우리의 형상’이지요. ‘우리’는 1인칭 복수니까 그냥 1인칭이 되요.

집단 ‘나’ 가 되요. 집단적인 나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집단적인 나가 있는 이상은 인간은 나라는 단어를 쓰면 되요? 안돼요? ‘나’라는 것을 쓸 수 없습니다. 창조주 앞에서 저는요, 나는요, 하면 안돼요. 그러면 피조물이 창조주를 어떻게 부르느냐? 창조주 앞에서 나는요, 저는요, 하지 말고 경유를 해야 되요. 창조주를 거쳐서 와야돼요. 그러면 용어가 뭐냐하면 주께서 쓰시겠다가 되요. 주가 되는 겁니다.

창세기 1장에서 “우리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고” 에서의 ‘우리’가 2장, 3장, 넘어 가면서 에서 ‘우리’가 뭐로 바뀌냐 하면 여호와로 바뀝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엘로힘이 되어서 집단적 ‘우리’가 되지만 2장부터는 여호와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여호와께서 이끌어 오시니 그렇게 되어 있어요. 여호와 하나님의 신약의 용어로 하면 ‘주’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은 뭐냐하면 주님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나’라는 것은 의미 없다.

관계성에 대해서 알려 주는 것이 구약이에요. 이 말은 나는 그냥 나로 인하여 여기 ‘나’가 존재 하는 건 아니다. 나보다 먼저 존재하신 분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서 ‘나’가 여기 있다가 맞는 거에요.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해야 할 고백입니다. “주께서 그렇게 하셨잖아요” 이거죠. 욥도 마찬가지로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시니” 오후 설교에서인가 가림막이 이야기를 했지요?

자기를 가리는 것, 옷을 입음으로 욕망을 더 유발시킨다고 했지요. 벗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옷을 입는 순간 옷 뒤의 감추어진 부분이 궁금한 거에요. 나와 타인 사이에서 옷이 없던 욕망을 유발시키는 거에요. 그러면 창세기의 인간은 뭐냐? 할 때 그냥 뭐냐하면 안되고 창조주와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 뭐를 집어넣을 때만 인간이 되는 거에요. 창세기 2장에 선악과와 생명나무를 집어넣으므로 인간이 되는 겁니다.

제가 지금 정답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창세기 2장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지어낸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에덴동산에 있게 하고 선악과와 생명나무를 가지고 인간을 이야기해요. 그냥 이야기하지 않고 선악과와 생명나무를 거쳐서 이야기합니다. 생명나무는 임의로 따먹되 선악과는 ~하지 말라고 했지요? “선악과 과실을 따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러면 이 말을 그대로 적용시키면 제 3의 중재, 매개체로 말할 수 있는데 선악과와 생명 나무가 중간에 들어갔잖아요. 중간에 들어간 것을 인간 밑으로 깔을 수 있어요. 제 3의 것을 인간의 자리로 깔아 버리면 되요. 깔아 버리면 뭐가 되냐하면 인간이라는 것은 무슨 토대 위에? 죽음의 토대 위에 태어나는 것이 인간이다. 죽음이 만들어 낸 것이 인간이다. 이렇게 정리 됩니다. 논리가, (인간은) 죽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죽음이 뭔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인간은 만들어 졌다. 이것을 복음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십자가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났다. 따라서 인간은 결국에 선악과를 따 먹어야 하는 거에요. 만약 지금 집사님 앞에 선악과나무가 있다면 그리고 “따 먹지 마세요!” 라고 한다면 몇 년을 버틸 수 있겠습니까? “안돼!~ 그럴 수 없느니라,” 은장도를 가지고 허벅지를 찌르면서 “안돼! 안돼! 이러면 죽어!”

그런데 하지마! 안돼! 하면 더 먹고 싶은 거에요. 인간이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죽기 위해서 태어난 거에요. 죽음을 말하기 위해서 인간이 태어난 거에요. 다른 말로 하게 되면 선악과나무의 취지를 알리기 위해 인간은 만들어 진 거에요. 선악과나무는 아담에게는 ‘금지’가 되는 겁니다. 이번 강의 제목은 ‘중재자’에요. 인간의 모든 소망은 금지가 먼저 있기 때문에 소망해요. 나는 소망한다, 금지된 것을.

경계선을 쳐 놓음으로서, 옷을 입음으로서 옷 뒷부분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더 새롭게 없던 소망이 발생된 것처럼 하지마라하면 더 하고 싶어요. 음식 잘 안 먹은 애에게 그럼 먹지마라! 하면 “ 아니 먹을 께!” 하지마라하면 더 하고 싶은 거에요. 이것은 어린 아이들의 심리 관찰에서도 나타납니다. 애들에게 일단 과자를 먹게 해요. 애들이 맛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다음에 “과자 먹었지? 네 것 이제 다 먹었어! 이건 엄마 오면 줄꺼니까, 엄마꺼니까 먹지마!” 하고

과자를 멀리 치우는 것이 아니라 놀고 있는 눈앞에 가까이에 놓는 거에요. 이 심리관찰에 목표가 있어요. 누가 가장 나중에 출세할 수 있는 인간이냐? ①번 엄마 올 때까지 참는 애, 이 아인 출세 못합니다. 눈치 없을 때 대번 열고 먹는 애, 일찍 자의식이 발달한 아이이기 때문에 출세 할 아이에요. 왜냐하면 인간은 거짓될 때가 살 소망이 계속 생산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만족하면 그건 사람이 아닙니다. 죽어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때려죽이지 못하는 인간은 어떤 존재이냐? 아직까지 희망을 보일 때 죽음을 나중으로 유보시켜요. 선생님이 애한테 잘못했지? 하면 “잘못했습니다.” 이 아인 패고 싶어요. 잘못했지? “잘못했지만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라고 희망을 보일 때 그 벌주는 것을 지연시킵니다. 나중으로 연기시켜 줘요. 왜냐하면 가능성이 보이니까, 이것을 창조성( Creativity )이라 해요. 이 창조가 한국의 미래를 측정합니다.

과학적 창의가 한국의 경제를 살려요. 창의성 있는 인간은 죽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 이에요. 그 창의성을 뽑아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이고 역량이지요. 그렇죠? 가르친 대로 나오는 게 아니에요. 거기서 어떤 기발한 것을 뽑아낼 때 “야! 이게 될 놈이다.” 남이 생각지 못하는 것을 끄집어 낼 때 그것이 결국 사회적인 승자가 되는 겁니다. 영웅이 되는 거에요. 그 영웅은 바로 거짓된 것을 계속해서 창의성 있게 만들어야 되요.

거짓 된 것은 본래의 자아와 될 수 있는 데로 거리가 동떨어진 혼상적인 자아의 거리를 뚝떨어지게 끄집어 낼 줄 아는 역량을 가진 자가 창의성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못되더라도 허풍이라도 떠는 거에요. 비전 없는 인간은 인간도 아니지요. 뭔가 목표만 있으면 그 목표가 합당한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는 미신같이 믿는 것, 신념 같은 것이 새롭게 같이 병행해서 돌출된다는 것이 교육학에서의 희망입니다. 교육학 자체의 희망이에요. 허풍쳐라! 혹시 될 줄아냐!

그런데 방금 이렇게 이야기 한 것이 뭐냐하면 창세기 2장이야기잖아요. 창세기 3장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떻게 달라지냐 하면 창조주로부터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잖아요. 그러면 창조주의 자리가 ( ) 비어 있어요. 텅텅 비어 있습니다. 인간이 있고 이미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러면 ( ) 비어있는 신의 자리를 미어 있으니까 누가 만들겠어요? 인간이 그것을 채워야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4장의 가인이 제사 하는 거에요. 이것이 뱀의 레일이에요.

레일 알지요? 기차 레일, 선, 배열, 노선, 칙칙 폭폭, 칙칙 폭폭하고 가는 선, 인간에서 하늘로 가자! 인간의 이름을 높이자!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여전히 그 계통이 이어지는 거에요. 이것이 창세기 3장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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