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강-YouTube강의(실패 속의 진리)160517-이 근호 목사
154강-YouTube강의(실패 속의 진리)160517-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22.43.165.245)
154강-YouTube강의(실패 속의 진리)160517-이 근호 목사
이번 강의는 제 154강, 제목은 ‘실패 속의 진리’입니다. 진리라는 것이 실패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는 본인이 진리이면서도, 살아야 성공이라는 이 세상의 그런 분위기 속에 죽음으로써 그 진리성을 다 나타내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자체가 실패적인 세상이기 때문에, 거기서 진리대로 산다는 것은, 또는 진리와 합류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합세하는 길 뿐입니다. 딴 길은 없습니다. 분명히 성경에 그렇게 돼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그러면 천하를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그 귀한 영생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17장에 들어가게 되면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해같이 빛남으로, 거기에 참여한 엘리야와 모세도 같이 변화된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 입장에서는 참 멋있어 보이기는 보이는데, 문제는 그 영광에 가는 길이 죽음의 길이라는 겁니다. 예수님과 함께 더불어 죽는 죽음의 길이라는 거죠.
이 세상에서 죽음이라는 것은 실패의 마지막 모습이 죽음이라고 다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라는 것이 이 세상 속에서 실패 중의 실패, 극단의 실패, 곧 죽음 속에 있다고 한다면, 참 진리를 갖고 싶고 하나님의 영광에 가고 싶은데, 실패라는 것을 두려워하고 실패를 기피하고 싶어서 진리로 가는 그 노선을 외면하기 마련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자진해서 진리에 나섰던 사람은,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실패 중에 있습니다. 실패는 기정사실입니다. 모든 인간이 다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 누구도 자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따라서 천국 가는데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천국 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해서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까? 모든 인간이 다 갈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천국을 가게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 실패한 세상에 직접 관여해서 그런 결과를 낳은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독생자로 이 땅에 오셨는데 예수님 오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꾸준히 이 세상을 방문했습니다. 그 방문한 지점이 어디냐, 바로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이스라엘 나라 중심으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내용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인간의 힘으로 갈 수 없는 주님의 나라에 친히 하나님께서, 이 실패밖에 모르는 세상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일을 벌이신 역사가 이스라엘 역사고, 그 이스라엘 중심으로 써진 역사가 구약이라고 이렇게 생각하시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그 실패 가운데서, 이제 남은 문제는 실패 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성공을 하게 했는가, 이것이 궁금할 겁니다. 이사야 37, 38, 39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구약은 이스라엘 역사이야기라고 했죠. 그 역사 가운데 히스기야 왕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 왕 히스기야 왕 때에, 히스기야 왕은 유대왕인데,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일을 일으키십니다. 어떤 일을 일으키는가, 사람들 보기에는 ‘이거는 참 왕으로서 실패다.’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절망적인 일을 의도적으로 유발시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유다나라에 앗수르 군대가 침범하는 전쟁을 벌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 앗수르 군대를 몰고 온 사람이 랍사게고, 그가 몰고 온 군대의 숫자가 십팔만 오천 명이었습니다. 185,000명 가지고 예루살렘을 완전 포위했습니다. 포위하고 마구마구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만, 이런 일을 유발시킨 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개입하면서 유발된 겁니다. 자, 그럴 때에 히스기야 왕은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여기서 히스기야 왕이 뭔가 오해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자기가 유대의 왕이라는 점을 노리고 앗수르 군대가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앗스르 군대가 온 것은 예루살렘에 계신 여호와를 모독하기 위해서 왔는데, 이 히스기야는 자기 개인적인 영도력이라든지, 어떤 국가 운영에 실패에 대한 사태가 왔다고 생각해서 왕의 입장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거예요. 히스기야 왕이 자기를 공격하는 앗수르 왕의 모독의 말을 듣고 편지를 보내고 또 편지를 받아보고 그것을 어디로 가져오느냐 하면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기도합니다.
“그룹 사이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 편지를 보시옵소서. 이들이 하나님의 땅을 조롱하고 훼방하고 침범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좀 해결해주세요.” 이렇게 요청을 합니다. 그때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서 반드시 이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능욕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러고 난 뒤에 이사야가 하는 말이 이것은 내 종 다윗에게 준 약속을 위하여 이 예루살렘을 보호한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위하여, 쉽게 말해서 전체를 위하여 예루살렘을 지켜준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아침에 보니까 앗수르 군대 185,000명이 하나님의 천사의 공격을 받아서 다 죽었습니다. 아침에 나가보니까 시체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났습니다.
떠나고 난 뒤에 38장에 히스기야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 점이 참 중요합니다. 히스기야는 전체 속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속에 포함된 것이 히스기야 입니다. 그러면 전체의 성공은 곧 누구의 성공이냐 하면 개인의 성공으로 받아들여야하는데, 히스기야가 병으로 죽게 되니까, 히스기야가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방금 예루살렘의 성공이 자기 개인적인 성공으로 연결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윗의 자손을 지켜줬다면, 자기가 죽든 말든 상관없는 일인데, 전체 성공이 개인 성공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기가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을 실패로 본 거예요.
그래서 히스기야가 살려달라고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15년을 더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돼버리면 전체 성공 따로고, 개인 성공 따로가 돼버려요. 이게 뭐냐 하면 ‘예루살렘이 잘 지켜지면 뭐하냐? 내가 죽게 되었는데.....,’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시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려주니까, 이 살려줌이 전체의 성공에 관련된 것으로 보지 않고, 개인적으로 죽는 실패에서 개인적으로 살게 된 성공으로 오해를 하게 된 겁니다. 그러고 난 뒤에 39장에 15년 동안 살면서 무슨 짓을 했는가, 바벨론 나라에서 사신이 오니까 자기가 지 자랑한다고 창고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그 보여준 그것이 실패가 되어서, 결국은 바벨론 나라한테 보여준 창고의 무기와 모든 보화를 다 빼앗기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성공은 개인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성공은 하나님이 내려준 자신의 약속에 대해서 성공한 것입니다. 이것을 신약적으로 말하면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고 부활시킨다는 주님의 복음의 성공.
그 복음의 성공이 곧 내가 죽든 말든 나의 성공으로 이해를 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고. 예수님의 죽음과 내 사업 잘되는 것하고 무슨 관계입니까? 예수님의 죽음하고 우리 가정의 행복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주님의 죽든 말든 따로 내 성공을 기대한다면 이것은 바로 주님의 성공과 아무 상관없는 자가 됩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성공을 위한 복음은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이렇게 성공하셨습니다.” 라고 하면 우리는 “그 예수를 위해서 내가 죽는 실패를 해도 괜찮습니다.” 하는, 내가 죽을지언정, 내가 죽음이라는 실패가 온다고 할지라도 주님만 주가 되신다면, 그것이 나의 성공이라고 고백하는 사람, 그 사람만이 주님과 연관되어 있는 구원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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