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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60510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3-화이트헤드자유게시판[신학]

20160510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3-화이트헤드

이름 : 한윤범(IP:119.192.174.231)

20160510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3-화이트헤드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화이트헤드 논리에서 전체 속에서 부분이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라고 생각되지요. 그러면 그게 부분이 부분인 척했지 실은 잠시 순하게 잠복돼 있다가 반란을 일으킨 거죠. 처음부터 선악과 심자마자 아담과 하와가 달려들었습니까? 아니지요. 가만히 둘이 살다 먹었습니까? 아니지요. 제3의 요소 뱀에 유혹받아 따먹었잖아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모르는 새로운 요소가 추가해서 등장한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개념도 관념도 바뀌어야 된다는 겁니다.

아까 종속, 포함을 다시 말씀드리면 내가 붉은 옷을 입는다고 할 때 붉은 색깔 속에 내가 포함되지요. 파란색이 아닌 붉은 색 옷을 입었으니까. 그런데 빨간색 남아있습니까? 빨간색 나만 입습니까? 옷만 빨갛습니까? 빨간 장화도 있을 수 있잖아요. 빨간 것 전부를 내가 차지한 건 아니잖아요. 일부를 했을 뿐이죠.

화이트헤드가 이런 예를 드는데 어린아이가 젖을 먹고 싶다. 처음에 한 일 년 동안은 줘요. 나중에 이유식 할 시기에 젖은 안 나오고 그러면 엄마가 젖을 안 주지요. 그러면 애가 어떻게 합니까? 엄마의 다음 조치를 보지요. 처음에는 젖 달라고 앙탈부리다가 이유식을 먹게 되지요. 그럼 콘텍스트, 관계성이 바뀐 거예요. 젖 주는 엄마의 부분으로 있다가 계속 젖 준다고 알았는데 이제는 젖을 안 줌으로 말미암아 이유식 주는 엄마로 바뀐 거예요.

전체가 부분을 꼼짝 마라가 아니고 부분을 만들어놓고 주고받으면서 전체도 바뀌고 부분도 병행해서 바뀌는 논리가 되는 겁니다. 이것을 인간과 신에게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다 아시고 후회함도 없고 탄식함도 없고 실수도 없을 것이라는 하나님 관을 갖다가 선악과 따먹지 말라, 또는 하나님의 아들과 땅의 여자들과 결혼해서 육체가 됨이라. 내가 후회한다, 속았다고 후회할 때 사람들은 전부를 안다는 하나님에서 뭐로 바뀌겠어요? 하나님도 후회하시는구나. 하나님도 탄식하시는구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내가 알고 있는 전능하심의 개념이 아니라는 걸 교류하면서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생겼지요. 그걸 콘텍스트, 상황 자체가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객체와 주체가 서로 바뀐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바뀌느냐? 서로 교류하면서. 전체와 부분이 교류하면서 서로 변화주고 변화 받는 거예요. 그 말이 맞는다면 이 논리에 이의 있습니까? 전제로 깔아놓은 게 뭐냐 하면, 화이트헤드는 수학자에요. 과학자 인식이 갖고 있습니다. 과학적 인식이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물 컵이잖아요. 물 컵 따로 하나님 따로, 물 컵은 물체에 속하고 하나님은 정신에 속한다고 따로 하겠어요, 아니면 하나로 과학적 인식으로 통합하겠습니까? 통합하겠지요.

따로 하면 플라톤철학이 돼버려요. 원본, 원형, 형상은 따로 있고 우리는 다양성이다. 이게 서양역사를 플라톤철학이 지붕처럼 억누른 거예요. 그렇게 되면 모순이 생긴다는 겁니다. 뭔가 역설이 생긴다는 거예요. 부분이 전체보다 크면 어떻게 할래, 라고 화이트헤드가 말해주는 겁니다. 하나님 속에 인간이 있다고 보지 말고 더 정확하게 보자는 거예요. 진화론까지 수용해서.

원숭이에서 인간이 되었다면, 인간이 우월하고 원숭이는 못하다는 개념도 달리 생각해야 된다. 세상 자체를 모든 걸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정확하게 납득이 되고 현대의 모든 과학에 맞아 떨어진다 이 말입니다. 그냥 구원받으려면 교회 가시고 사업하려면 공장으로 가세요. 이런 식으로 해버리면 사람 자체가 전체를 과학적으로 포섭이 안 되는 거예요. 다 과학적으로 납득이 되려고 한다면 교류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부분이 따로 논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렇게 돼버려요. 근대 시민이 자율성이 국가 전체의 자율성에 종속됩니까, 아니면 포함됩니까? 국가 행복하면 개인이 행복한 겁니까? 만약에 종속이 되면 국가가 행복하면 자동적으로 국민도 행복해야 돼요. 김성근 감독이 잘하면 한화이글스는 항상 1등해야 돼요. 최고의 감독이니까. 그 팀도 최고 등수가 돼야 돼요. 따로 놀잖아요. 일본 같은 경우에 나라는 잘 살지요. 그런데 개인은 잘 삽니까? 좁게 살지요. 집도 작고.

그래서 현대는 과학적으로 나라가 잘 되면 행복하다는 일괄적으로 밀어붙이는 그런 식의 정치적 논리는 비과학적이라는 겁니다. 비논리적이고 비수학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거예요. 자신만만하게 화이트헤드가 공격하는 거예요. 나라가 잘 살면 개인이 잘 사느냐, 행복하냐? 봐라 당신 논리로 설명 못하잖아요. 화이트헤드 논리로는 설명되지요. 부분이 전체보다 더 클 수 있다. 이렇게 해야 성립된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국가의 자율성 못지않게 개인의 행복은 따로 챙길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과정신학이 아니면 설명이 될 수 없다는 것, 큰 소리 칠만 하죠.

나라는 못 살아도 대통령은 되게 잘 사는 사람 있지요. 사십 몇 년 동안 대통령 질하고 있는 사람. 자식이 42명이고. 그 자식들 취미가 프랑스에 가서 천만 원짜리 쇼핑하는 것이고. 적도기니란 나라인데 세계에서 제일 못 사는 나라에요. 북한도 마찬가지고. 평균 내면 괜찮아요. 그런데 한쪽, 대통령과 그 가족이 다 가져갔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실제 사실은 뭐냐 하면, 생명체란 것은, 인간 속에 60개조의 세포가 있다는 데 내가 편안하면 내 속의 암세포도 편안합니까? 나라는 게 있어도 세포는 세포끼리 따로 놀지요. 참 신기하지요. 이걸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지금까지 설명할 수 없어요. 암세포는 내게 속합니까, 속하지 않습니까? 내게 속하지요. 속하다 하면 안 돼요. 그게 틀렸다는 거예요. 내게 포함됐다고 해야 돼요. 속하면 나를 해롭게 해서는 안 돼요. 그런데 암세포는 내게 분명히 포함돼있는데 어떻습니까? 지 마음대로 해요. 나중에 암세포가 커지면 누가 죽어요? 나라는 덩어리 전체가 죽어요. 이걸 과학적으로 그동안 설명했느냐 이 말입니다.

보통 암 걸리면 누구와 싸운다고 해요? 암세포와 싸운다고 하지요. 말이 싸우는 거지 따져보세요. 누구와 누가 싸우는 거예요? 나와 내가 싸우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정확한 진리인데 왜 기존의 윤리와 도덕에서는 인정하지 않잖아요. 그건 우리가 암 걸리면 남 탓 합니다. 담뱃값을 안 올려서 폐암 걸렸다. 하도 아내가 단 것을 줘서 당뇨 걸렸다. 전부 다 남 탓이에요. 엄마가 자꾸 먹으라고 해서 내가 비대해졌다. 자꾸 남 탓으로 돌리잖아요. 기존의 철학은 이렇게 한계점이 있다는 겁니다. 정확하게 봐야 되는데 얼렁뚱땅 넘어간 거예요.

하나님은 거룩합니까? 거룩하지요. 그런데 왜 이 세상에 악마가 있고 나쁜 일들이 일어납니까? 왜 죽음이 있고, 왜 지옥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선하신 분인데. 하나님이 선하시고 거룩한 분이시면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다 거룩하고 다 선해야 되고 악은 없어야 되는데 왜 악이 있어요?

그럼 묻습니다. 세상은 하나님께 포함돼있습니까, 종속돼있습니까? 답변해줘야 복습이 돼요. 포함됐지요.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합니다. 신은 창조성 속에 포함됐다. 신은 그때그때마다 붙는 일반명사에요. 고유명사가 아니고. 이 세상에 신보다 더 높은 게 있는데 창조성이다. 왜 창조성이라 하느냐 하면, 과학적 인식이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보이는 물체와 물질을 통해서 정신을 구현하고 철학과 신학을 구현하는 것이 과학적 논리가 유지되는 방법입니다.

지렁이가 꿈틀거린다. 종전에는 하나님께서 지렁이를 꿈틀거리게 했다고 했지요.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창조성을 통해서,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원인은 지렁이 안에 있는 세포가 꿈틀거리잖아요. 가만있지 않고 꿈틀거리는 이유가, 대기의 습기와 화학적인 조성성분에 의해서 꿈틀거리죠.

그러면 창조성은 원인과 결과, 그 결과 자체가 다음의 사물을 만들고 존재를 낳게 하는 또 원인이 되겠지요. 이것을 그냥 존재라 하지 않고 존재는 너무 추상적이니까 화이트헤드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하나의 원숭이가 있기까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다고 봤지요. 그런데 국화꽃을 과학시간에 국화꽃을 피우는 이유는, 이라고 주관식으로 물었을 때 소쩍새가 울었다고 하면, 정답이에요? 정답이 아니지요. 국화꽃은 다음 중 어느 것을 닮았을까요, 할 때 내 누이 같다고 하면 정답이 아니에요.

화이트헤드는 그게 정답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초반에 이야기했듯이 동양철학, 불교 이런 쪽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거예요. 연기설,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돼있다는 겁니다. 이유 없이 굴뚝에 연기 나는 것 봤습니까? 아파트 연기 나는 것도 부부싸움해서 불 질러서 연기 나듯이.

신을 추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신을 상상하지 말고 머릿속의 신을 떼어버려라. 실제로 꽃이 피고 지렁이 꿈틀거리는 것을 모아서 그러한 창조성이 되게 했던 그걸 일반명사로 신이라고 하면 된다는 거예요. 분명히 전체를 신이라고 하는데 그 신이 되는 원인은 전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전체를 이루는 부분, 부분 안에 들어있겠지요. 이제 이해되십니까? 그 부분이 발작을 일으키고 부분이 자체적으로 생성이 되면 그게 전체로 모아져서 그게 바로 신이 되는 거예요. 그걸 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이죠. 신은 이름뿐이기 때문에 신 자체성이라 하는 거예요. 신 자체성을 신 되게 하는 것은 신의 소유권, 그것은 신의 창조성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소유권, 자체권이란 어려운 이야기를 했는데 이게 이런 뜻이에요. 정신과 육체에서 육체 없으면 정신도 없지요. 그럼 육체뿐입니까? 아니에요. 육체가 모아져서 육체를 이루죠. 정신과 육체의 관계는, 정신은 자체권에 속하고 육체는 소유권에 속해요. 전에 여러 번 강의했는데 상견례나 선을 볼 때 “오빠는 하는 일이 뭐예요?” ‘하는 일’은 소유권에 속하고 ‘오빠’는 자체권에 속하는 거예요. 나, 백수인데 이러면 못 사귀지요. 그럼 여자 쪽에서 백수라면 날 잊으세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날 잊으세요. 당신은 나한테 없는 존재가 되지요. 내가 선 봤던 그 남자 자체가 없는 게 돼요. 왜? 백수기에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밤에 잠을 자는데 저 멀리서 개소리가 들립니다. 개소리는 개에서 소유권일까요, 자체권일까요? 개가 소유하고 있으니까 소유권이에요. 그러나 개소리는 들리는데 개는 안 보이죠. 그런데 아침에 보니까 개가 있는 거예요. 네가 어젯밤에 잠 못 들도록 짖어대던 그 개야, 이걸 자체권이라 합니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요. 왜 화이트헤드가 존재를 존재의 자체권과 소유권을 나누느냐 하면, 존재 이야기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나님 자체가 있다고 하는 것은, 포이어바흐가 잘 지적한 것처럼 인간이 지어낸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신은 가짜 신이에요. 그럼 당신은 신을 믿지 않느냐? 아니요. 포이어바흐의 말에 동의하느냐? 동의하지 않아요. 포이어바흐는 신을 인간이 창조했다고 하잖아요. 포이어바흐는 신은 없다고 이야기한 거예요.

화이트헤드는 반대합니다. 지렁이는 있는데 왜 신이 없느냐? 국화꽃이 있는데 왜 신이 없느냐? 저 달은 누가 만들었지? 그럼 포이어바흐가 하는 말이, 달이란 빅뱅(포이어바흐 당시에는 빅뱅이론이 없었지만)이 있었는데 40억년 돌다보니까 가스체가 어쩌고 설명하겠지요. 백날 설명해도 소용없어요. 그 가스 어디서 왔는데? 가스라 하는 것은 코크에 의해서, 백날 설명해도 소용없어요. 그 코크 어디서 왔는데? 애들 질문하잖아요. “목사님,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어요?” 답변해보세요.

화이트헤드는 확실하게 설명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소유권에 의해서 하나님 자체권을 증명한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하나님 어디 있습니까? 기어가는 지렁이를 보여주면서 지렁이는 어디서 왔게? 지렁이 엄마한테 왔겠지요. 그렇지. 모든 게 하나의 지렁이 되기 위해서, 화이트헤드는 진화론을 믿으니까, 지렁이 되기 이전에 또 진화될 게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지렁이 되기 전에 아미노산의 결합에 의해서 되거든요. 아미노산 단백질 결합이 dna를 만들고 dna가 자기복제에 의해서 아미노산 생산되고 그래서 세포가 만들어진단 말이죠.

옛날 진화론과 요새 진화론이 달라요. 유성이 폭발하면서 유성 저쪽, 다른 유성의 생명이 지구로 전파됐다는 외계설이 요새는 더 우세합니다. 참 희한한 아이디어에요. 화이트헤드는 다 수용합니다. 그게 바로 신의 소유권되는 거예요. 신의 소유권은 먼지, 지렁이, 모든 게 신의 숨결이고 신의 소유권에 포함돼있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부분이 전체를 설명해주고 전체를 말해주는 겁니다. 부분이 소유권이고 전체는 자체권이 되는 거예요.

전선에 전기가 흐릅니다. 그러면 전기가 흐르는 것은 자체권이고 전선의 있음은 소유권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전선이 있다는 것이 전기의 흐름에 방해도 되지요. 소유권이 자체권이 없앨 수도 있고 태어나게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부분과 전체가 서로 교류한다고. 이제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우리가 서로 만나기 전에 여러분 각자 모습과 여러 영향을 줬을까요, 안 줬을까요? 영향을 줬지요. 안 줄 수가 있습니까. 하여튼 화물차 운전하는 사람들 진짜, 이러다가 그래도 얼마나 점잖은 사람들 많다고. 공산당은 때려죽어야 돼. 김용옥이 분명히 그런 이야기했거든요. 그런데 중국에서 강의하면서 공산당이 최고라고 한 거예요. 완전히 차이 나는 도올이에요. 그런데 앞으로 중국이 망하면 역시 자본주의 최고, 미국 최고라고 할 것이란 말이죠. 한국에 유리하도록. 본인이 어디까지 진화될 것을 알아요, 몰라요? 내가 누굴 만날지, 내가 대통령 만나는 것과 노숙자 만나는 것이 달라요. 앞으로 내 가정에 이혼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말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그게 바로 어디까지 진화될지 모르죠.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신이 자체라 하는데 당신이 앞으로 누굴 만나면 자체권도 바뀐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과정자체가 하나님 자체라는 거예요. 그래서 과정신학이에요. 존재를 하나 붙들고 신이라 하지 말란 말이죠. 그렇게 주장하는 순간 당신이 하나님 좋아한다고 하다가 사업 망하면 하나님이 어디 있어? 내가 믿은 걸 후회한다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 없는 게 돼요. 화이트헤드 보기에는 하나님 없다고 하지만 하나님 없다고 내뱉는 자기는 있잖아요. 그게 바로 신이었어, 라고 하는 거예요.

니체가 신은 죽었다 하지요. 화이트헤드는 그게 바로 신이야. 그렇게 말하는 너는 있잖아. 네가 어떻게 암세포를 다뤄? 포함돼있지 종속된 건 아니잖아. 네가 누굴 지배해? 누굴 통제할 수 있어요. 우리는 나를 내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임시방편으로 나라는 것이 요 정도까지 있어요. 키 얼마, 몸무게 얼마. 이게 죽어버리면 흙이 되지요. 흙이 된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다는 이건 무가치한 게 아니에요. 전체 신 자체에 보탬이 되는 부분이 되기 때문에.

지금 나름대로 설명한다고 하는데 설명이 됐는지 모르겠는데 여러분이 이해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서로 만나게 되면, 화이트헤드는 여기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요. 내가 여기 있다고 다른 분을 만나잖아요. 나는 가만있는 게 아니에요. 전체, 부분이 서로 교환한다니까. 내가 달라져요. 뒷담화, 이걸 철학적 용어로 담론이라 합니다. 찌라시지요. 내가 만약에 다른 사람을 만나서 여러분의 뒷담화를 한다면 나는 분명히 달라졌어요. 그런데 그 달라짐을 내가 예상하겠어요? 절대로 예상 못해요.

합생, 존재와 존재의 결합이 있다는 거예요. 물방울 하나와 물방울 하나가 결합되면 물방울 두 개 돼요? 한 방울이지요. 한 방울이지만 주변에 있는 상황의 원인으로써 전에 있던 한 방울의 물은 어디 갔는지 날아가 버리고 새롭게 형성된 새로운 방울 안에 합해졌지요. 그러면 원인, 결과가 모여서 합해진 그것이 존재의 소유권이 되고 합해진 그것은 존재 그 자체가 되는 겁니다. 그것들이 모이면 창조성을 이루면 신 자체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합생 된 게 가만있겠어요? 다른 옆에 있는 다른 존재와 합생의 원인제공을 하겠지요. 범퍼카가 이쪽저쪽에 박는 것처럼.

그래서 모든 것은 과정, 영어로 하면 becoming이 되는데 모든 것은 되어지는 거예요. 존재란 사실은 되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하나가 궁극성이고, 하나하나가 형식이고 그게 또 사실 존재고.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게 없어요. 이 강의 듣고 제가 십자가마을에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을 올려놓은 걸 보시면 이해되실 거예요. 정리해봅시다. 창조성 자체가 궁극적이면서 그 궁극적인 것이 부분 속에 다 포함돼있다고 보면 됩니다. 창조성이 개별성 피조물 속에서 자체적인 개별화를 이뤄나가는 거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그냥 살다보면 우리의 지식도 새로운 창조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지식도 늘어나는 겁니다. 그럼 나라는 것은 그때그때 다른 나로 새롭게 출몰하겠지요. 나라는 것이 자꾸 등장하겠지요. 이건 존재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건의 결과물들의 연속, 변하지 않는 속의 변화, 계속해서 변화해가는 것, 전체 신은 변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 계속 변해가는 그런 모양새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이걸 새로 생긴다고 해서 생기론이라 이야기하는데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을 다시 정리해드리고 그 다음에 이런 것이 왔을 때 복음적으로 어떻게 마주칠 수 있느냐는 것을 생각해봅시다.

우선 화이트헤드에서 항상 생각할 것은 과학적 수학적 논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세상을 대할 때 이미 과학은 진리로 판정 났어요. 해와 달은 만유인력으로 유지된다는 이것은 지금까지 이 법칙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과학은 무조건 진리고 그 과학을 과학 되게 한 것이 수학적 논리잖아요. 수학은 이유도 없이 합당한 논리, 진리가 되는 거예요.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안목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은 뭔 뜻이냐 하면, 과학은 따로 있고 하나님 따로 있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마저 과학적으로 납득되도록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는 이것이 과학의 진리성을 증명하는 가장 마지막 최종 단계가 신마저 과학 속에 집어넣는 이것이 과학이 할 수 있는 논리체제가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럼 과학적으로 따진다는 것이 뭐냐?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한 지렁이, 국화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 옛날에는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이 국화꽃 만들어놓고 하나님이 안 보였단 말이죠. 안 보이면 과학적 언어로 표현될 수 없어요.

에이어라는 철학자(미국 논리철학자)가 있는 검증되지 않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했어요. 종교, 언어 다 빼라 했습니다. 신도 대문자 God가 아니라 소문자 god로 써야 맞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신이 아니고 신들이라고 해야 맞다. 거기에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동의했어요.

화이트헤드를 다시 설명합니다. 과학적으로 분명히 해야 돼요. 화이트헤드가 아주 진지합니다. 단호합니다. 만약에 내 논리가 위배된다면 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고 과학을 진리라고 우기는 너희들부터 다 바꿔야 돼. 과학이 진리인 것을 안 바꾸려면 신을 과학 속으로 해명해야 돼. 과학 따로 있고 신 따로 있다고 나누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진리체제가 둘이 되니까.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서 신도 과학 안에 집어넣어야 돼요. 그래서 과학을 진리라고 사는 우리 정서에 맞고 편안하게 살 수 있어요.

신이 따로 있다면 신이 만약에 과학세계를 심판하게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과학적으로 진리라고 해놓고 나중에 된 통으로 뒤통수 맞는 수가 생긴다고. 그러면 우리만 손해 게. 그러면 안 되잖아요. 미리 신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 신을 알려면 눈에 보이는 대로 하면 돼요. 눈에 보일 때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게 과학적 안목입니다. 항상 그 결과가 나와야 되는데 여기서 과학이 진리면서 한계가 있어요. 예상 되는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것, 변수가 너무 많아서 안 돼요.

따라서 인간은 신에게 의존해야 된다는 겁니다. 갑자기 과학을 의존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과학을 의존하면 행복하지 않아요. 왜 그러냐 하면, 과학은 인공적인 기술적으로 아는 거잖아요. 아는 것은 새로운 창조성이 나올 때는 무식한 사람이 돼버려요. 만유인력 이게 다인 줄 알았지요. 그런데 상대성원리한테 뒤통수 맞았어요. 그런데 상대성원리는 결론이 없습니다. 상대성원리가 실제로 실증적으로 다 증명이 돼요.

태양 뒤에 숨어있는 별이, 태양이 일식 현상 때 뒤에 별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상대성원리는 안 보고도 맞췄어요. 이게 문제가 돼요. 지금까지 과학은 보이는 것으로 증명해서 결과를 얻었는데 상대성원리는 이론부터 내놓고 증명은, 아인슈타인 죽고 난 뒤에 너희들이 증명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과학에 의해서 비과학적 논리가 발생돼버립니다. 화이트헤드는 이것마저 수용할 수 있는 신학이 있고 철학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과정철학이라는 거예요.

과정철학을 내놓은 이유가 사람이 과학에 매이고 물질에 매이면 불행해져요. 과학이 전부다. 전부 아니에요. 신이 전부에요. 그렇게 과학, 과학하면서 신을 찾습니까? 우리가 겸손해야지. 또 우리가 아는 이론에 새로운 원인, 결과가 붙어서 합생, 새로운 존재 자체가 나올 때는 무슨 소리할래? 그때 우린 참 무식했구나, 이런 소리할 거잖아. 그러니까 그걸 미리 당겨서 하자 이 말입니다. 우리는 신 그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서 신의 소유권으로 날마다 합생의 과정에 놓여있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 마음을 겸손하게 행복하게 만드는 삶의 태도냐 말이죠.

과학 좀 발명했다고 그게 전부인 줄 알고 까불다가 새로운 이론이 나오면 엎어지면 좌절하고 인간이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과학이 진리라면 윤리도덕도 진리적이어야 되죠. 과학은 진리인데 과학에서 나온 윤리도덕이 돈만 알고 물질만 알고 죽여도 내 책임 아니다. 내가 했나? 새로운 원인이 추가했는데. 이러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신을 믿어야 돼요. 여러분, 연관성을 알겠어요? 화이트헤드가 신을 인정하는 이유를 아시겠어요? 까불지 말란 말입니다. 내년이 있고 그 내년이 있는데 과학이 뭘 전부라고 까부느냐 말이죠. 신 앞에 겸손해야지.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이미 신이 창조성이 온 구석구석 삼라만상에 퍼지는 걸 봐서 그게 모여서 신 그 자체가 된다. 그게 신의 소유권이니까. 이게 바로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의 모토고 목표고 취지입니다. 이야기 들어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지요.

여기에 대해서 동양철학이나 불교라든지 김용옥 교수는 백두선생 만세라고 외치는 거예요. 스스로 그의 제자라 하고. [이성의 기능]이란 책을 번역했고. 김상일이란 동양철학자도 마찬가지고. 둘 다 한신대학교 교수고. 김용옥은 석좌교수고, 김상일 교수는 나이가 많아 퇴직했을 거예요. 동양과 서양을 합생하는 거예요. 합생하면 진리가 나온다는 거예요.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봐야 선악과 문제도 풀리고, 창세기 6장 6절도 풀리고. 그 외에는 달리 풀릴 수 없다는 거예요. 부분과 전체가 서로 교류하면서 과정 속에 놓여있는 게 신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 복음적으로 그게 아니라고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사도 바울이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뿐만 아니고 열두 제자, 베드로도 이렇게 해요.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오신 분이라고 했습니까? 약속에서 나왔지요. 사도 바울은 약속을 언약의 완성으로 봅니다. 구약에는 언약이 있었지요. 과도기적으로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도 언약이 있었지요. 요한복음도 마찬가지고. 그 과도기 거쳐서 사도 바울에 오게 되면 약속이란 표현을 해요. 물론 언약이 있지만 약속을 증명하기 위해서 언약을 거론해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언약, 다른 말로 하면 로마서에서 말씀이라 하는데 모든 것을 언약을 앞장세우는 하나님에 의해서 벌어지는 일로 봅니다. 언약의 하나님, 하나님 앞에 언약이 붙어요. 만약에 언약을 떼버리면 화이트헤드의 말이 맞아요. 유신론이 아니고 다신론도 아니에요. 다신론이면 플라톤주의가 되고. 유신론도 플라톤주의고. 그게 아니에요. 서로 교류한다는 것. 그런데 거기에는 언약이 없어요. 하나님의 약속이 없어요.

하나님이 언약을 줬다고 보통 신학에서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화이트헤드가 그러니까 그 언약이 신에게서 나왔다니까. 이렇게 이야기할 게 아니냐 말이죠. 언약은 신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언약은 약속에서 나왔어요. 이게 인간이 생각한 원인, 결과가 전부 다 틀려져요. 예수님에서 언약이 나와요. 예수님이 구약의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기 때문에.

창조가 어디서 나왔는가? 요한복음 1장 1절, 화이트헤드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뭐라고 했는지 상상해보세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화이트헤드는 말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화이트헤드는 유신론, 하나밖에 없는 신을 공격해서 과정신학을 만들었기 때문에 신이 둘이 있다는 생각을 상상을 못한 거죠. 화이트헤드가 기존의 신을 치기 위해서라도 삼위일체를 하나로 묶어야 돼요. 성부, 성자가 있더라도 최종적으로 궁극적인 신은 성부가 책임진다고 해야 자기가 공격할 여지가 있어요. 신은 어쨌든 유일신 하나밖에 없다. 유대교가 그랬으니까. 구약이 그랬으니까. 나는 하나인 하나님이다. 나머진 다 우상이다.

화이트헤드는 자신만만하게 신은 하나라고 본 거예요. 자기는 수학자니까. 하나에서 다수, 다양성이 나왔다고 본 거예요.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이 하나가 아니에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 이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독생자가 나타남으로 처음으로 알려진 내용입니다. 화이트헤드로선 할 말이 없어요.

화이트헤드는 뭐라고 하겠어요? 예수, 그건 등급이 낮잖아. 대표자는 성부지 성자가 아니야. 이렇게 이야기할 거예요. 유일신을 치기 위해서 유일신적 관념을 전제로 깔기 때문에 그런 논리가 나온다 말이죠. 과정신학, 과정철학이 유일신을 까기 위한 논리거든요.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까고 말 것도 없어요. 아무도 몰랐어요.

아까 과정철학에서 인간의 지혜라는 것은 계속 시간이 감에 따라 지혜가 함께 늘어난다 했지요. 요한복음은 말합니다. 아무도 몰랐다. 이유가 뭐냐?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1장 5절. 그런데 1장 3절에 보면, 그가 없이 된 것이 하나도 없다 했어요. 그가 누굽니까? 하나님이 아니에요. 예수님 없이 된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막상 모든 인간 가운데 예수님이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결국 정리해보면, 아무도 몰라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은 입을 다물고 가만있다는 말이 아니고 온갖 철학과 신학, 과정철학이고 유일신이고 모르니까 그런 것들의 튀어나오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로마서에서 복음을 모르니까. 그 사람들에게 예수는 존재자로서 예수님이에요.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예수는 십자가 지신 분, 십자가 사건이에요. 십자가와 관련된, 새 언약과 관련된 예수입니다. 주님 계시니까 믿자. 이것 아니에요. 예수 믿고 지옥 갑니다. 십자가 경유한 예수님이에요. 왜? 그 속에서 십자가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몰랐던 죄인입니다. 그것이 십자가 안에서 그렇게 되거든요.

그 근거가 뭐냐? 십자가가 뭐냐 하면,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우리는 버림받아야 돼요. 화이트헤드가 모르는 어떤 분으로부터 버림받아야 돼요. 신으로부터 버림받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신을 이야기해도 신을 몰라요. 왜? 예수님을 모르니까. 예수님을 본 자만 아버지를 봐요. 예수님을 안 자만 아버지를 알아요. 예수님 모르는데 아버지 아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건 마귀가 배후에서 이런 과정철학, 과정신을 만들어낸 거예요.

그러면 선악과는 뭐고, 아까 창세가 6장 6절은 어떻게 푸느냐?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집어넣어서 해석하는 겁니다. 십자가를 위해서 인간은 따먹어야 했고, 십자가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선악과 심어야 되고, 뱀은 찾아와야 되고.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과 아들만 아는 그런 감정적인 교환이 있어요. 탄식하시고, 다시 건지시고.

구약 전체는 그림자에요. 신약의 십자가를 보여주는 모형입니다. 이스라엘도 물론 포함되고.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모형이라 하지 않아요. 예수님의 증인이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걸 정리하면서 육에 속했다. 육에 속한 것을 영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육으로 한 것은 육이요 영으로 한 것은 영이다. 성령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면전에 내세우게 돼있습니다. 몰랐으니까 십자가 사건 일어난 거예요. 몰랐으니까 죽인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스스로 죽는다고 했습니다. 안 사람이 없기에 모든 인간이 모르게 하도록 스스로 죽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들이 예수 죽였다고 본 거예요. 견해 차이가 난 겁니다. 예수님을 존재자로 하나의 인간으로 본 겁니다. 그게 바로 육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겁니다. 영은 예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세상 전체가 모든 만물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라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위해서 지음 받은바 되었다고 예수님을 위하여 그분을 위하여 예수님이 친히 지었다고 골로새서 1장 16절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모든 만물은 오직 그분을 위하여. 하나님이 아니에요. 신이 아니에요. 예수님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화이트헤드의 모든 철학이 마귀에서 나왔다는 것, 그럼 이 철학이 왜 나왔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욕보이기 위해서 이런 철학이 나왔고 사람들은 여기에 환호성을 보냈고, 그래서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이 저주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것을 또 공부할 수밖에 없지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다 인자 되시는 주님과 관련성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예수님을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사나죽으나 주의 것인 것을 이제는 잊지 않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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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2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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