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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60510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3-화이트헤드자유게시판[신학]

20160510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3-화이트헤드

이름 : 한윤범(IP:119.192.174.231)

20160510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3-화이트헤드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화이트헤드에 대해서. 수학자지요. 수학자란 말은 과학적 인식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1861~1947까지 살았던 사람인데 화이트헤드의 오늘 이야기해야 될 철학, 사실은 신학에 대해서 언급하겠습니다. 이 화이트헤드에 대해서 김용옥 교수가 아주 좋아합니다. 종교를 갖지 않은 것에 대해서 뭔가 변명할 수 있는 종교를 대체할 만한 웅대한 철학이 필요한 데 화이트헤드가 자기 신론을 앞서서 대변해주니까 굉장히 반기는 겁니다. 김용옥은 화이트헤드를 백두선생이라고 해요. 그 사람의 종교관, 신론을 자기 것으로 그대로 인수합니다.

이 화이트헤드의 신학에 대해서 김용옥 교수만 아니라 동양 철학을 하는 사람들도 좋아합니다. 그럼 어떤 점에서 화이트헤드의 신론이 동양 철학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느냐 하면, 그동안 서양 철학에서 과학을 언급하면서 과학의 우수성, 탁월성, 세상을 진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 과학이 나오게 된 원인은 서양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야기해온 거예요.

동양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잖아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혜택, 과학적인 기술과 합리성이 언급한 탄탄한 국가제도에 그들이 사실은 당했습니다. 제국주의에. 전쟁하면 당하겠습니까? 기술 차이가 월등한데. 그동안 주눅이 들었지요. 과학을 믿으려면 과학이 유발된 하나님까지 받아들여야 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리고 동양에서 과학이 발달한 모든 동기는 선교사들이에요. 하나님 믿는 데서부터 과학과 연결됐다고 생각한 겁니다. 서양 쪽에서는. 동양에서는 과학은 탐나고 하나님 믿으려고 하니까 그동안 살았던 동양체제는 무가치한 것으로 자진 폐기해야 되는데 이게 상당히 열등감 느끼고 기분 나쁜 거예요. 과학은 과학대로 챙기고 신은 안 믿어도 되고. 오늘날 젊은 사람들처럼. 과학 공부는 하면서 하나님과는 관계를 끊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처음에 과학이 나왔던 바탕이 되는 기독교 문화, 기독교 정신과 무관한데 과학은 과학대로 밝힐 수 있다, 이런 아이디어 같으면 동양에선 굉장히 선호할 수밖에 없지요.

지금 중국의 자본주의나 세계관은 과학적 세계관이잖아요. 무기도 발달하고 달까지 로켓도 쏴 올리니까. 그런데 중국 사람의 사고방식을 서양의 사고방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신을 인정하지 않거든요. 특히 대만은 제사가 굉장히 심해요. 대만은 여전히 옛날 중국의 한 문화를 고수하고 있어요. 그게 중국적이라고 우기면서. 그런데 반도체 같은 것은 대만에서 발달했단 말이죠. 인도도 마찬가지에요. 인도는 다신론이에요. 그런데 컴퓨터, IT산업 쪽은 굉장히 발달해있거든요.

그래서 서양에서는 좀 기이하게 보는 거예요. 과학은 받으면서 과학을 유발한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과학을 주셨습니다. 과학기술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평범한 것은 과학기술로 살고 정신세계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에 의존하는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균형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동양에서는 과학은 받아들이고 조상에 제사 드리고.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단 말이죠. 안 맞으니까 서양에서 동양을 보면서 너희들이 기술은 따라와도 정신이나 문화면에선 못 따라온다고 낮춰볼 수 있어요.

거기에 대해서 동양철학에서는 과학은 과학대로 챙기면서도 신에 대해서 동양적 해석할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양쪽 다 챙긴 게 되잖아요. 그걸 다 챙겨주신 고마우신 분이 백두선생, 화이트헤드가 되는 겁니다. 화이트헤드, 물론 영국 사람이죠. 왜 서양 사람이 기존에 교회에서 이야기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거부하고 따로 하나님에 대한 철학을 수립하려고 한 의도가 뭔지 생각해봐야 돼요. 그 사람은 수학자라고 했죠.

그러면 수학이 진리입니까, 하나님의 존재가 진리 되겠어요? 본인이 어떻게 믿든지 간에 사람들에게 수학적으로 하면 먹혀듭니까,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는 게 먹혀들겠어요? 수학적 논리가 훨씬 먹혀들겠지요. 특히 현대인들에게는. 그러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은 포기해도 수학은 포기할 수 없는 겁니다. 자기 전공분야기 때문에. 수학의 적확하고 분명한 논리, 확실한 논리에 대해서 포기 못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또 있어요. 양승훈 교수가 있어요. 창조론 주장하다가 기존의 창조론을 포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서 이단이란 소리 듣는데. 그 사람의 논리가 뭐냐 하면, 하나님은 포기해도 과학은 포기 못하겠다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성경을 과학적으로 보는 거예요. 성경이 맞는다면 그게 과학적으로 맞을 때 성경이 맞는다는 주장이에요. 성경도 맞고 과학도 맞으려면 기존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생각은 버려야 되는 거예요. 양승훈 교수에 의하면. 그 사람이 우리 교회 와서 나와 이야기도 했어요.

성경말씀이 진리가 되려면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증명하게 될 조건 하에서만 성경말씀을 언급해야 된다는 겁니다. 7일 만에 창조한 것도 잘못 생각한 것이고 과학으로 성경을 봐야 된다는. 그래서 진화론에 이야기하는 세대론이 맞는다는 겁니다. 수천 년 만에 그렇게 된 게 다 맞는 이야기고. 다만 진화론에서 문제 있는 것은 과학적으로 수정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의 주장은 격변론이라 하는 겁니다. 노아홍수로 다 그렇게 된 게 아니고 노아홍수 이전에도 빙하기라든지 여러 가지 격변이 있는데 그게 현재 지구의 과학적 증거와 맞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양승훈 교수가 과학을 통해서 성경을 보자 할 때 그 사람은 과학을 포기 못하는 거죠. 화이트헤드는 전공이 수학이기 때문에 수학적 논리를 포기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강의에서 분명히 이야기합니다만 수학이나 과학이 미신이에요. 왜 미신이 되느냐면, 안 믿어지지요. 낙차로 전기를 생산해서 전구를 밝히는 게 과학이지 왜 미신이냐? 왜 과학과 수학이 미신이 되느냐 하면,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해낼 수 없어요. 그럼 부분이라도 설명하면 좋지 않으냐고 하는데 부분을 설명하게 되면, 그 부분이 전체와 비교할 때 전체와 안 맞을 때 일부를 떼서 믿는 것은 미신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예쁘니까 미스코리아 됐겠지요. 그런데 막상 결혼해보니까 아는 게 너무 없어. 요리도 못해. 그러면 그 사람은 결혼상대자에 대해서 나는 예쁘니까 결혼하겠다고 할 때 본인이 전부를 안 게 아니고 얼굴이 예쁘다는 일부만 알았지요. 결혼상대자 전부와 얼굴 예쁜 일부와 억지로 결합시켰단 말이죠. 그러니까 나중에 이혼하는 거예요. 얼굴 예쁜 건 인정하지만 결혼상대자로는 안 됐다는 거예요. 누가 잘못한 거예요? 여자가 잘못된 게 아니잖아요. 본인이 예쁜 것 하나로 결혼상대자로 됐다고 생각한 자신이 결혼상대자라는 개념에 대해서 잘못된 신앙심,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과학이 행복을 보장해줍니까? 하나 예를 들어볼게요. 삼성전자에서 티브이 만들지요. 스마트폰도 만들지요. 이건희 쓰러진지 2년 됐어요. 그 아들 이재용이 삼성총수 되고 난 뒤에 수익이 26% 감소했거든요. 행복합니까? 그 사람 집에 삼성 세탁기 있겠지요. 행복해야 될 것 아니에요. 제가 지금 어려운 말하는 것 아니지요. 옛날에 눈으로 보면서 통화하면 좋겠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스마트폰으로 화상 통화하잖아요. 처음 나올 때 잠시 행복했잖아요.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이 보면서 행복합니까? “회장님, 26% 감소했습니다.” 행복하지 않지요.

발달된 전자제품을 갖고 있는 소비자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미신이지요.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것은 미신이 아닌데 삼성 스마트폰을 사셔야 됩니다. 사시면 여러분이 원하는 행복이 제공된다고 할 때 이 관계가 이미 미신 단계에 들어간 거예요. 미신이란 말은 잘못된 신앙심이잖아요. 잘못된 진리관이 되는 겁니다.

화이트헤드가 러셀과 함께 유명한 수학자에요. 그럼 수학자로 살지 왜 이런 주장을 했습니까? 왜 철학과 신학을 넘봤습니까? 수학자로 본인이 행복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요. 수학만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 뭔가 자기 앎의 범위를 확대할 때까지 가보겠다는 거예요. 마치 손오공이 부처를 떠나서 부처와 관계없는 자기만의 세계로 가고자 권두운 타고 갔는데 부처 손바닥이 나오잖아요.

화이트헤드에게 수학은 진리니까 끝까지 가보자는 거예요. 거기서 내가 옛날에 알았던 유신론,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계시다는 것이 잘못됐다는 거예요. 이 사람이 영국인이니까 서양의 전통적인 하나님을 받아들였는데 그것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설명 안 되도 대학교수나 하고 월급 타먹고 살면 되지 꼭 설명해야 되나, 이렇게 나오잖아요. 몇 년 남았다고. 낚시나 하고 골프나 치지.

그런데 화이트헤드는 설명이 안 되면 답답해서 미치는 거예요. 골프를 치고 크루즈여행을 가도 이게 설명이 안 되면 모든 것이 납득이 되지 않으면 자기가 환장하겠다는 거예요. 갈 때까지 가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수학을 밑천으로 해서 하나님이 누군지, 신이 무엇인지 끝까지 규명해보겠다는 겁니다.

그 규명 작업을 통해서 기존에 수천 년 내려왔던 서양의 모든 유신론을 업어치기 한 판으로 매치는 놀라운 원리를 발견했고 그것에 이름 붙이기를 ‘과정신학’이라 한 겁니다. 거기에 대해 드디어 신학계도 반응을 나타낸 거예요. 당신 말이 옳다는 거예요. 화이트헤드가 옳다는 것은 삼위일체 유신론,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틀려먹었다는 것, 그것으론 세상을 제대로 해명할 수 없고 세상을 납득시킬 수 없다는 점에 한 표 던진다. 당신 말에 동조하겠소. 엄지 척, 좋아요 하나 붙이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화이트헤드 앞의 모든 신학자와 철학자들은 거짓말한 거예요. 우리가 80인의 철학자 하면 늘 느끼는 게 뭡니까? 항상 뒤에 나오는 사람은 앞에 나온 사람을 자빠트리고 올라서지요. 그런 묘미가 있어요. 오늘도 마찬가지에요.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자빠트리는 겁니다. 어떤 점에서 자빠트릴 수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계시고 인간이 있다는 구조에서 나왔는데 내가 그 구조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으로 시비 걸어서 납작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자신감입니다.

그럼 이 시간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기존의 모든 수천 년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마찬가지고 힌두교, 불교, 이 모든 것이 과정신학으로 어떻게 통합적으로 설명되는지 궁금하지요. 그래서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에 매료된 사람들이 기독교 신학자, 철학자뿐만 아니고 불교의 중들도 그랬어요. 중들의 부처를 설명하고 힌두 철학을 설명하고 신을 설명할 때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으로 다해버려요.

앞에 김용옥 교수도 백두선생이라 하면서 추앙하고 그 사람의 제자라고 할 정도로. 이 사람이 신을 이렇게 설명함으로써 감리교 기독교 집안의 아들이라고 주눅 든 것을 화이트헤드가 거기서 해방시킨 거예요. 드디어 정신적으로 논리적으로 기독교야, 덤벼들어라, 종교야, 어떤 종교든 이야기해라. 나는 화이트헤드 신학으로 얼마든지 반박할 테니까. 그래서 수십 년 동안 김용옥 교수는 방송을 통해서 대 국민들을 향하여 선전해 온 겁니다. 지금도 원불교에서 이런 식으로 강의하고 있어요.

그럼 여기서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궁금할 수밖에 없지요. 그전에 도대체 옛날에 유신론이 뭐가 잘못됐느냐는 말이죠. 잘못됐으니까 자빠트렸겠지요. 우리는 하나도 잘못된 게 없는데 하나님이 한분 계시니까 이름이 하나님이고, 구약성경에 하나님은 하나이시니 나머지는 다 우상이다. 분명히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한분으로 계신다 말이죠. 그것도 인격적인 모양새를 지니고. 그것은 아무도 하나님을 분석할 수 있는 자격자가 없기 때문에, 피조물이기 때문에 피조물이 어디 감히 한분 하나님께 대든다는 그런 발상은 나올 수 없는데 화이트헤드가 뭘 믿고 그건 아니라고 큰소리 칠 수 있느냐?

디도서 1장 12절에 보면,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가가 말하되 그레데 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라고 에피메니데스라는 철학자가 이야기했어요. 에피메니데스는 이 사람이 그레데 섬사람일까요, 아닐까요? 그레데 사람이에요. 그러면 크레데 섬 바깥사람들이 너희들은 맨날 거짓말하는 거짓말쟁이다. 이건 뭔 뜻입니까? “너희들은 거짓말쟁이지만 우리는 거짓말 안 해. 우리는 크레데 사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참 말만 해. 그레데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을 너희가 새겨들어.” 그렇게 잔소리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레데 토박이인 에피메니데스란 철학자가 그레데 사람은 항상 거짓말을 한다면, 그 사람이 그 말한 것이 거짓말일까요, 참 말일까요? 이런 문제에 봉착되는 겁니다. 이런 경우는 십자가마을에도 있지요. 한국교회는 다 썩었다, 하는 그 교회는 썩었어요, 안 썩었어요? 그래서 십자가마을 공격하는 사람이, 십자가마을 빼놓고 다 이단이냐고 할 때 김대식 성도님이 십자가마을도 이단이라 했거든요. 그쪽에서 무슨 말이냐 하는 거예요.

화이트헤드가 수학자잖아요. 수학은 논리에서 나온 겁니다. 머리에서 나와요. 이 컵과 물이 있다고 하지만 수학에서는 컵을 1로 보고, 물을 1로 보면 2가 되지요. 그런데 이것이 수학적으로 2로 표기되는데 2에서 이게 나옵니까? 안 나오지요. 떡 두 개 나올 수 있고 개 두 마리 나올 수 있고, 집 두 채 나올 수 있지 딱 이것만 나온다는 게 없잖아요. 수학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지, 지붕처럼 덮는 거예요. 덮어씌우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논리가 되는 거예요. 덮어씌우려면 이게 개가 됐든 아파트가 됐든 적용이 가능한, 모든 것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처럼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논리가 수학에서 정립 돼야 하잖아요. 정립이 될 때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논리를 제일 밑에 깔아요. 그 밑에서부터 논리에 논리를 더하여 논리와 논리를 연결시켜서 그것 맞지? 그것 맞으니까 거기서 나온 이것 맞지? 두 개 맞으면 세 번째 것도 맞지? 해서 결국 맞는다고 나와야 틀렸다고 할 때 증명할 수 있는 논리들이 뒤에 준비돼있어야 돼요.

그 밑바닥의 논리는 뭐냐? 세 가지 논리가 있습니다. 그걸 모순율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는데, 모순율, 배중률, 동일률이라 했는데 그 말 자체가 더 어려워. 차라리 예를 드는 게 편해요. A는 A 아닌 것이 아니다. 컵은 컵 아닌 것과 같을 수 없다. 이게 모순율입니다. 모순율 생각하지 말고 물어보는 거예요. 이것 맞나, 안 맞나? 맞아. 바른 말했어. 그럼 그것 하나 챙기는 거예요. 배중률은 뭐냐 하면, A는 A이고 B는 B다. A가 B 될 수 없단 말이죠. 서로 배치, 대립되는 것, 이것도 맞는 말이죠. 앞의 말이나 뒤의 말이나 똑같아 보이죠. 그 다음에 동일률은 뭐냐? 더 간단해요. A는 A뿐이다.

바로 이걸 기초로 해서 신은 One, 일자, 오직 하나뿐이라고 수천 년 동안 기독교나 서양에서 계속해서 왔다는 겁니다. 이 논리가 마지막에 올라가게 되면 신은 한분만 있다. 왜냐하면 세상은 다양하지만 결국 다양한 것은 뿌리가 여러 개이면, 보세요. A는 B가 아니라면, A만 아니라 B도 있어야 비교대상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럼 A는 어디서 생겼고, B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A의 원천과 B의 원천이 따로 되면 세상은 하나가 안 돼요. 하나가 안 되면 A는 A라는 이것을 증명해줄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데카르트가 그런 이야기했는데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인간이라는 것을 누가 증명해줄 것이냐? 내가 증명하면 안 되지요. 왜냐하면 이미 나라는 게 있는데 또 나를 증명하면 이건 증명 자체가 안 되지요. 우기는 것밖에 안 되니까. 그래서 데카르트는, 신이 우리한테 확실한 진리를 줬다고 설명하는 거예요. 신이 왜 등장하는데? 신은 진리거든요. 니는 뭐고? 나는 진리가 아니거든요. 이러면 문제가 깨끗하게 끝나버려요. 모든 제일 좋은 것, 제일 아름다운 것, 모든 진리는 신에게 던져놓으면 돼요.

종이에 동그라미 원을 그려보세요. 아이들 열이면 열 다 다르잖아요. 그럼 열 개 중에 어느 걸 원으로 삼아야 될까요? 안 되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너도 원 그렸구나. 너도 삼각형 아니고 원 그렸구나. 이렇게 설명한다면 선생님이 생각하는 원은 뭡니까? 그건 내 머릿속에 있지. 그 머릿속에 있는 것이 이상적인 하나밖에 없는 이데아 세계의 원이 되는 겁니다. 그게 플라톤 철학이에요. 플라톤철학은 신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게 모든 역사란 말이죠.

왜 신이 하나 있는 걸 원하느냐? 둘 있으면 사람이 정서가 불안해집니다. 뭔가 최종적인 것을 알지 못하면 행복하질 않아요. 모든 걸 믿고 의지할 어떤 대상체가 있어야 돼요. 그때 인간은 안심한다고. 나는 누가 만들었지? 부모가 만들었다. 부모는? 할아버지가 만들었다. 이건 백날 해도 소용없어요. 할아버지는 또? 할아버지는 그 아버지가 만들었겠지. 그래서는 안 됩니다. 간단하게 증명하면 돼요. 신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그때부터 미끄럼 타듯이 자식 낳았다. 아, 신이 만들었구나.

아빠, 엄마 죽으면 어디 가? 죽으면 신에게 가지. 이건 서양이나 동양도 마찬가지에요. 죽으면 조물주에게로 귀신 되어 가는 거예요. 염라대왕이 둘되면 안 돼요. 염라대왕이 멱살 쥐고 싸우면 안 되잖아요. 염려대왕 앞에 죄수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싸우지 마시고 누가 대장인지 빨리 결정하세요. 최종자에게 우리가 모든 걸 다 걸 테니까. 진짜는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럴 때 우리 마음이 쉼을 얻고 평안을 얻습니다.

화이트헤드가 보기에 지금까지 그래왔어요. 문제가 창세기 3장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잖아요. 그런데 창세기 2장에 보면 분명히 따먹지 말라 했잖아요. 그런데 따먹었단 말이죠. 그러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 포함되느냐, 종속되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됩니다. 인간이 만약에 종속된다면, 인간의 행위의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인간을 만든 분이 책임져야 돼요. 인간에게 닦달내면 안 됩니다. 어린애가 잘못하면 경찰이 부모한테 책임을 묻잖아요. 애가 모를 때는.

진화론이 뭐냐 하면, 앞 세대의 형질 가운데서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새로운 형질이 나왔다는 거예요. 이게 문제가 돼요. 새로운 형질이 어디서 나왔어요? 앞에 없는 형질이거든요. 그 새로운 형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예요? 기존에 잠재돼있는 거잖아요. 그럼 없는 게 아닌데? 숨어있었는데. 라이프니치 철학처럼 접혀있는 것이 펼쳐진 것뿐이죠. 그럼 진화란 게 진화된 게 아니고 새로운 게 아니고 잠복돼있었네. 그런 셈이잖아요.

그러면 잠복된 것이 진화 한 번으로 끝나는 겁니까? 진화론에서. 세월 지나면 또 진화되지요. 갈 바를 알지 못하잖아요. 어디까지 진화될지 모르지요. 현재 인간을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한다고요. 인간을 지혜의 종이라. 원숭이, 유인원에 비해서. 만약에 인간이 여기서 진화한다면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붙여야 돼요. 또 진화한다면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사피엔스 사피엔스라 해야 돼요.

그럼 진화론의 특징은 결국 어디까지는 모르는 입장에서 진화론의 사고방식은 간단해요. 케세라세라, 될 대로 되라. 막 사는 거지 뭐. 어차피 완전은 없어요. 또 진화 중인데. 이 말은 내 진화에 대해서 내가 책임질 수 있다, 없다? 자기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 거예요. 최선을 다해봐야 그게 최선이 아닌데.

진화론도 문제고 신학도 문제에요. 선악과 본인이 심어놓고 왜 따먹었느냐고, 따먹을 때 좀 말리지, 말리지 않았어요. 책임을 물었다는 말은 하나님 따로, 인간 따로 거잖아요. 그럼 하나님이 인간을 어디까지 창조한 거예요? 하나님 여기 계시고 인간이 있다면,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으로 끝나면 문제가 안 돼요. 위반했거든요. 하나님의 지시를 범했잖아요. 하나님이 선악과에 못 가도록 조치해야 하는데 내가 잘못이네. 이러면 아무 문제가 안 돼요.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주로써 책임지는구나. 그렇다면 인간은 누가 만들었다? 인간의 행동까지 하나님이 모두 관여하니까 하나님이 책임지지 우리는 책임 없구나. 이러면 우리가 납득이 되는데 하나님이 닦달 냈다니까요.

왜 따먹었어, 하는 것은 따먹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관여하셨다, 안 하셨다? 하나님이 관여를 안 하신 게 아니고 못하시지요. 그것은 인간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관여를 못하지요. 선악과 따먹을 때 하나님은 보고도 말지지 못한 무능력자가 되는 거예요. 저거 뱀한테 유혹받으면 안 되는데 어쩌지, 나한테 그만한 능력도 없고. 말릴만한 능력이 없다는 티를 내는 거예요. 네가 따먹었잖아요. 에덴동산에서 나가. 이 말은 뭐냐? 하나님이 창조한 그 이상의 짓을 인간이 한 게 돼버려요. 그러면 창조 받은 인간 속에 창조자마저 차마 예상 못하고 손 못 댄 여분의 것이 인간 속에서 새롭게 발생됐다는 말이 합리적으로 맞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신은 뭐가 되느냐? 신은 저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지켜 볼 수밖에 없지요.

방금 예를 두 가지 들었는데 또 다른 예가 있을 수 있을까요?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든지 간에 책임은 내가 진다. 이런 예를 들었고, 인간이 우발적 행동을 할 때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어서 추방하는 것, 둘 중에 어느 쪽이 하나님이십니까? 서 목사님이 저한테 이야기했잖아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음악교과서에 실렸다고 했지요.

인간이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그걸 나쁜 짓이라고 책망할 권한이 있습니까? 이미 사랑하기로 작정했는데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 미워할 수 있는 권한이 없지요.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쁜 짓을 하는 권한은 하나님께로 온 게 아니고 다른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셈이 돼버린다. 그런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의 능력은 전지전능한 것이 아니고 제한된 거예요. 그럼 하나님 영역이 따로 있고, 영역 밖은 하나님도 어찌 할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 프로야구 봅시다. 한화이글스의 감독이 아주 훌륭한 감독이죠. 지금 한화이글스 몇 등 합니까? 열 개 구단 중에서 몇 년째 꼴찌하고 있지요. 왜 괜찮은 감독인데 팀은 꼴찌하고 있는 거예요?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합니까? 선수가 기계가 아니죠. 감독이 번트 대. 옳지. 도루 해. 다음에 홈런 치는 타임, 옳지. 다음은 홈런 치지 마. 안타 쳐. 이렇게 됩니까? 감독이라도 선수를 장악할 수 없지요. 그럼 그 선수는 감독한테 속했습니까, 아니면 포함됐습니까?

참 말 자체가 어렵다. 포함과 종속이란 말을 쓰고 있는 거예요. 소속이 있을 것 아닙니까. 삼성라이온즈 아니죠. 한화이글스에 소속돼있죠. 소속돼있으니까 감독 말 들을 게 아닙니까. 그런데 왜 감독 시킨 대로 안 돼요? 왜 따로 놉니까? 그건 포함은 됐지만 종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게 화이트헤드 철학의 시작점입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게 되면, 전체가 있는데 이 전체에 포함돼있으면 이걸 부분이라고 해요. 방금 포함됐다 했지요. 포함됐으면 부분이거든요. 그런데 부분되게 되면 전체의 속성과 동일한 속성을 분배받아야 돼요. 전체를 하나님이라고 보고, 지금까지 기독교, 서양철학이 그래왔으니까. 전체가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으니까 부분에 속합니다. 포함됐으니까. 하나님께서 선악과 따먹지 말라고 했지요. 따먹지 말라는 속성은 하나님 성질에서 나왔지요. 그렇잖아요. 계시가 말씀이 그러니까. 따먹지 말라는 속성을 인간이 갖고 있다면 천년, 만년 선악과 따먹겠어요, 안 따먹겠어요? 따먹지 말라는 것이 자기 속성이 되면 마귀가 열, 천 와도 안 따먹지요.

그런데 따먹었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위배된 속성을 발휘했잖아요.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잘못 안 거예요, 하나님 자체에 대해서 잘못 안 거예요? 여기서 화이트헤드는 신 자체와 신의 속성을 분리합니다. 신 자체는 영원하고 변함이 없지만 속성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화내고 걱정하고 이렇거든요.

창세기 6장 6절을 읽어보세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하나님이 지금 후회하고 계시는 거예요. 후회한다는 대목도 성경에 많이 나와요. 후회한다는 말은, 내가 뭔가 일을 그르쳤다는 뜻이거든요. 한탄할 때 어떻게 한탄합니까? 기분 좋게 한탄합니까? 이럴 수가, 이러잖아요. 일을 그르쳤구나. 너희들이 이렇게 나올 줄이야. 난 참 예상 못했다. 네가 그럴 줄 알았으면 만들지 말 걸. 제가 없는 말 지어낸 겁니까? 창세기 6장 6절 이야기입니다. 제가 없는 말 지어냈습니까? 성경에 나오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은 무능해도 되게 무능해요. 하나님이 알파고와 바둑 두면 하나님이 지겠어. 네가 그렇게 뒀나? 난 몰랐네. 자기 둔 수를 한탄하세. 치워라. 내가 . 신이 누구한테 진다면 신을 바꿔야 돼요. 이긴 쪽을 신이라고 하고 진 쪽은 신의 자격을 박탈해야 돼요. 그러면 신은 여전히 이긴 쪽이 돼요. 이름이 바뀌니까. 경기하면 승자와 패자가 있잖아요. 승자와 패자가 고유명사입니까? 그냥 명사지요. 만약에 특정 사람에게 승자가 되면 그 사람은 뭘 해도 승리자가 되지요. 내일은 승리, 내일도 승리. 그런 드라마가 있어요. 이름이 김 승리라면 그는 어딜 가도 승리하잖아요.

화이트헤드 이야기는 이겁니다. 하나님이 최고라고 하니까 그동안 수천 년 동안 오해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창조했다니까 어떤 할아버지가 계셔서 한꺼번에 창조한 것으로 잘못 생각했다는 겁니다. 하나님 자체는 고유명사가 아니에요. 일반명사에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했는데 그 창조한 방식에 대해서는 한꺼번에 끝낸 게 아니고 과정을 통해서 창조했음을 드러냈다는 것이 바로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입니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을 통해서 창세기 6장 6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누가? 신이. 그렇게 되면 우리는, 신인데 자기 일에 후회할 신이 어디 있어? 화이트헤드는 말합니다. 그게 바로 신이야. 한탄하시고 후회하심이 신이 갖고 있는 속성이 되는 겁니다. 이걸 소유권이라 해요. 그리고 그러니까 신이야, 이건 신의 자책권.

신의 자책권과 소유권으로 구분해요. 이 개념이 어렵기 때문에 미리 설명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잖아요. 인간이 범죄 했지요. 기독교사상에 의하면 전체가 하나님인데 부분이 전체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켰잖아요. 이 말은 전체에서 이 대목만은 누락돼야 된다는 것을 시사하는 거예요. 전체를 통제해야 되는데 반란을 일으켰으니까 이것 빼놓고 전체가 된 셈이죠. 아까 그레데 사람은 항상 거짓말한다고 할 때 그렇게 말한 에피메니데스 본인은 거짓말 아니죠. 그럼 본인은 빠져야 되는 거예요. 화이트헤드가 기존의 배중률이 잘못된 이유가, 참 속에서 거짓이 나오는 새로운 논리를 펼쳐야 된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인간은 반항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진리 가운데서 비 진리가 나오는 것을 용납하는 새로운 논리에 의해서 하나님을 재구성해야 된다. 어떻게? 그건 10분 쉬고 합시다.

첨부파일 : 20160510a 부산강의.hwp (31.0K), Dow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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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2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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