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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5 - 성령의 총탄강의잠언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5 - 성령의 총탄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5 - 성령의 총탄

16,05,02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도발적인 인간, 도발적인 사단 !!

보통 세상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주제넘은 짓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동물원 원장의 사생활을 거론하는 것과도 같다는 말이다. 만들어진 로봇이 만든 인간에 대해서 분석한다는 것은 일종의 도발인데, 즉 자기 자리를 떠나서 대드는 짓거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피조물이 창조주에 대해서 알고 싶어한다는 것은, 여기에는 도전의식이 담겨있는데, 피조물이 창조주를 알아서 무엇을 하겠느냐는 말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사단인데, 이 사단은 분명히 천사이지만 하나님에게 대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교재 163페이지를 살펴보자.

** 하나님께서 욥에게 "염소가 새끼를 낳을 때 네가 있었나? 하늘의 별을 만들 때 네가 있었나? 아무 것도 모르는 녀석이 무엇이 억울하다고 떠들어? 내가 너에게 고난을 준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준 것인데, 네가 왜 말이 많아?" 라고 하시는데, 그러니 장차 누릴 천국에 가면 주님이 주신 사랑에 비해 이 세상에서 품삯을 빼앗긴 것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왜 용서를 많이 받은 사람이 많이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욥 39:1)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느냐
(욥 39:2) 그것이 몇 달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우리는 염소가 새끼를 낳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물론 염소를 키우는 사람이면 옆에 있을 수도 있는데, 그리고 하나님이 별을 만들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제 6일인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그러니 인간은 하나님께서 별이 만들거나 별을 만들 때 관여할 수 있는 옆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즉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는 자리가 인간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을 만들 때,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라고 하신다면, 물론 그것은 바로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자리이지만, 창조주가 만드신 목적이 되는 분이 따로 계시다는 것이다. 그런 숨겨진 분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분이 아들이고 장차 주가 되실 분인데, 즉 "예수님을 위해서 천지창조를 하셨다" 라는 것이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그것은 내 자리야 !!

그러니 "하나님 말고 주가 따로 있다" 라는 것인데,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이런 것을 기대하고 하나님에게 접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안다고 하면서, 그 출발점을 "그것은 내 자리인데" 라고 하면서 나오니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 모든 만물은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놓아야, 그게 하나님에게 합당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만들어놓았다고, 인간들은 지금도 서슴없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신학자들의 주장이 바로 그러한데, 즉 "인간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났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랑은 독생하신 독생자의 사랑 외에는 없는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 이라는 노래가 거부감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래, 그 사랑의 자리가 바로 내 자리야" 라고 하는 이미 도전적인, 즉 하나님에게 자기 몫을 달라고 하는, 그게 이미 시작이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교회에 다니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당당할 수밖에 없는데, 즉 "내 인생을 내가 살아간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바로 사단이 가지고 있는 도전의식이란 말이다. "내 인생이 어디에 있는가?" 라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봐야만 나오는데, 그런데 자기 관점에서 바라보니까, "내 인생을 내가 살아가는데, 당신이 왜?"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 염소가 새끼를 낳을 때 네가 있었냐?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욥을 불러서 "염소가 새끼를 낳을 때 네가 있었나? 하늘의 별을 만들 때 네가 있었나?" 라고 하시면서 다그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비단 욥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매일같이 그런 질문을 하시면서 들쑤시고 계신다는 말이다.

우리가 고민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니가 별을 만들 때 어디에 있었지?" 라고 물으시는데, 그러니 그것은 우리보고 "니가 별을 만들 때 있지 않았으면서 무엇을 잘했다고 울고 있는가?" 라고 하시면서 다그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그렇게 모르면서 떠든다고 하는 것은 이미 우리 자리를 벗어난 것인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내가 너에게 고난을 준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준 것인데, 그런데 네가 왜 말이 많아?" 라고 나오신다는 것이다. 욥에게 해당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해당이 된다고 방금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그러면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면 되겠네" 라고 하신다면, 사람이 짐승들을 보고 이름을 붙이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멍멍 짖는다고 해서 '멍멍이' 라고 하고, 깡충깡충 뛴다고 해서 '토끼' 라고, '깡충이' 인가요? 그렇게 이름을 붙여주는 이유는 짐승들을 위해서 붙여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붙이는 것인데, 그렇게 대상을 경유해서 이름을 붙여준다는 말이다.

◈ 나는 어느 정도의 존재인가?

가정주부가 집에만 있으면 따분한데, 그래서 바깥에 나가서 일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은, 얼른 보기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런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어느 정도의 존재인가?" 라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그렇게 일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연세가 60이 넘은 분들에게까지 바깥에 나가서 일을 하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아직 30대나 40대라고 하면, 그런데도 그냥 집안에만 계속해서 머물러 있으면 그만 스스로가 정신적으로 붕괴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공상만 자꾸 늘어나고, 자기가 남들보다도 계속해서 처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클 때는 미처 몰랐는데, 그런데 다 크고 나서 말을 듣지 않으면 괜히 소외를 당하고 무시를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깥에 나가서 외부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자기가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고, 자기의 존재가치를 느낀다는 것이다.

◈ 인정투정 !!

그래서 인간이 외부를 상대해서 관계를 맺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다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많으면 왜 그렇게 하지 않는고 하니, 첫 번째는 힘이 없고, 두 번째는 정신이 없고, 그리고 세 번째가 중요한데, 알 것은 다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죽는 날만 기다리는데, 새삼스럽게 자기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는데, 동네 주민들이 와서 "이번에 어머니 연합회를 만드는데 총무를 좀 맡아주세요" 라고 하면, 갑자기 생애의 활기를 느끼게 되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구의원, 시의원, 심지어 국회의원까지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남들이 자기의 존재를 알아줄 때, 이것을 헤겔을 뭐라고 했는고 하니, 그를 연구한 철학자들도 그런 표현을 썼는데, 그것을 4글자로 '인정투정' 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즉 "인정을 받기 위해서 분투노력을 하는 것이 곧 인생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만약에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준다고 하면 !!

인간이 왜 하나님을 알아야 되는고 하니, 자기는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것에 만족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자기를 알아준다고 하면, 그러면 자기는 인정투쟁에서 승리하는 자가 된다는 말이다. 든든한 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준다" 라고 했을 때는, 여기에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굳이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불교나 철학을 공부하면서, 신이 이 세상에 남긴 자국들이나 흔적들을 수집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알았던 그 너머에 있는 신비까지도 정복을 하려고 한다는 말이다.

◈ 땅 넓히기 !!

학생들이 PC방에 가서 게임에 몰두하는데, 그런데 그 게임의 스토리가 무엇인고 하니까, '땅 넓히기' 라는 것이다. 즉 '내 영역 넓히기' 라는 것인데, 이것은 마치 개가 자기의 영역을 표시한다고 하면서 오줌을 누는 것과도 똑같다는 것이다. 개들이 왜 짖는가? 자기 마음대로 영역을 정해놓고, 그 안에 들어오니 짖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인데, 자기들 마음대로 영역을 정해놓고서 짖는다는 것이다. 국가와 국가간의 경계선이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노는 것이나 개들이 노는 것이나 별 다를 바가 없는데,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 보게 되면, 짐승이나 사람이 같은 6일째 만들어지는데, 그렇게 같은 날에 만들어졌으니, 일단 옆에 붙어있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리고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흙에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흙으로 만들었으니 죽으면 당연히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그게 전도서 3장에 나오는데, 18절에서 20절을 보자.

(전 3:18)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전 3:19)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전 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

여기 18절에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하는데, 그러니 인간이나 짐승이나 모두 같다는 것이다. 19절도 그런 말씀이고, 그리고 20절에서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말이다.

이제 우리 자신에 대해서 좀 알았지 싶은데, 물론 다들 알고는 있었겠지만 너무 허무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흙이 되려고 그렇게 평생을 노력한 셈이 되고 마는데, 기껏 흙이 되고 짐승이나 닮으려고 말이다. 그러니 그게 얼마나 허무하냐는 것이다.

허무하다는 것과 헛된 것은 다른데, 허무하다는 것은 헛되다는 것을 알고 절망하는 것인데, 헛된 것은 그냥 헛된 것이란 말이다. 그러니 허무하다는 것을 알아도 헛되고 몰라도 헛되고,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헛되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면 허무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허무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나 하지 않으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런데 "인생은 흙으로 돌아가니 허무하다" 라고 생각하면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이아몬드라도 되는가? 그러니 평소에 무엇을 원하기에, 그러면 안 된다고 여기느냐는 말이다.

◈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

그러면 사람과 짐승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재료는 다같이 흙인데, 그래서 하는 짓들이 비슷한데, 그런데 짐승과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 빠져버리면 무엇이 되는가?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러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인데, 그러면 여러분이 TV를 보면서 사람이 나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번 던져보라는 것이다. "저들이 어디를 봐서 인간인가?" 라고 말이다. 인간이 아닌데, 잠시 인간의 얼굴을 할뿐이지 짐승인데, 그야말로 짐승과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데, 마귀가 자꾸만 인간과 상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인간도 아닌데 마귀가 자꾸만 부추긴다는 것이다. "너는 인간이다. 인격적인 품위를 가졌다. 그러니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져라. 공자와 맹자를 봐라.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라고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았다는 말이다.

◈ 하나님의 형상은 오직 예수님뿐 !!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 아닌데, 그야말로 똑같다는 것이다. 늙으면 숨도 제대로 쉬지를 못하면서 죽는 주제에, 무슨 그런 만물의 영장이 다 있느냐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 예수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사람들이 평소에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수상하다는 것인데, 그리고 도전의지, 즉 "하나님이면 전부가?" 라는, 즉, 사단이 하나님에게 도전했던 그 도전정신이 이제는 인간에게 스며들어와서 인간 자체를 그만 다 버려놓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인간이 절을 짓든 교회를 짓든 다 마찬가지인데, 물론 그런 것을 짓지 않아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그러니 도대체 어디를 봐서 인간이냐는 것이다. "사형제도를 없애라. 인간은 존엄하다" 라고 하는데, 성경은 오히려 '죽여라' 라고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신약성경에는 노예까지 나오는데, 빌레몬서의 '오네시모'가 그런 경우인데, 그러니 노예해방을 주장하는 것이 성경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도 아닌 것들이 인간을 흉내내게 되면, 즉 하나님의 형상을 흉내내게 되면, 그 어떠한 정치적인 구조를 가져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 어떤 것을 해도 답이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 원판이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기 때문에 말이다.

짐승들이 모여봐야 동물농장인데, 아무리 혁명을 일으키고 해도 힘이 센 자가 최고라는 것이다. 밀림에서는 사자가 최고인데, 도끼는 잡아먹히기 위해서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여성평등을 외쳐도 여성이 힘이 약한 이상은 남자에게 잡아먹히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 다시 정리하면 !!

다시 정리하면, 피조세계에서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것은 인정투쟁, 즉 자기가 얼마나 잘난 인간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그것은 사단의 도전의지에서 나왔다고 감히 단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사단과 인간이 한 통속이 되었기에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도 없으면서 억지로 그것을 조작해낸다는 것이다. 경건과 거룩과 인자와 온유와 자비하심과 같은 것을, 그리고 양심과 같은 것을 모아서, "하나님, 이만하면 어때요? 하나님의 의로움 답지요" 라고 하면서 흉내를 낸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누구인고 하니, 아브라함이고 이삭이고 야곱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하셨는가? 아브람은 아브라함로 바뀌고 말았는데, 그리고 이삭은 어떠한가? 저주를 받을 자에게 복을 주려고 하는 그야말로 크나큰 과오를 범할 뻔했다는 것이다. 저주를 받을 자가 복을 받으면, 그것은 지옥에 갈 자가 천국에 가게 되니 큰 일이라는 말이다.

이삭은 자기 자식인 에서가 창세 전에 저주를 받기로 작정이 되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를 못했는데, 그래서 자기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축복을 해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평소에 고기를 좋아하는데, 이 에서가 사냥을 잘해서 고기를 종졸 가져다주니, 자기 기분을 잘 맞추어준다고 해서 좋게만 여겼다는 말이다.

그리고 야곱은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는데, 왜 바뀌는가? 육에서 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육은 무엇인가? 인간도 아니면서 사단과 한 편이 되어서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이 다 육이라는 말이다. 그 육의 대표적인 모습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고 "너희들 아비는 악마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다.

◈ 미신, 곧 잘못된 신앙 !!

그런데 악마의 자식의 모습을 보면 전혀 악마 같지가 않은데, 제가 어느 책에선가 그렇게 적었는데, 악마의 자식이 얼마나 인자하고 점잖은지 모른다고 말이다. 그야말로 품위가 넘치는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라고 하는데, 사람들마다 존경해마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는 이것을 '미신' 이라고 보고 싶은데, 즉 '잘못된 신앙' 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전혀 인정할 마음이 없는데, 자기들이 이 자연세계의 현상 속에서 믿을 만한 것들을 수집했다는 것이다. 괜찮아 보이고 착해 보이는 것들을 모두 다 모아놓고서는, 그렇게 해서 신에게 결제를 해달라고 서류를 내미는데, 그게 바로 가인의 제사라는 말이다.

여기 미신이 무엇인고 하니, 같은 말이 박수무당이나 점쟁이에게 점을 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괜찮아 보이고 신비로운 것, 그것을 3글자로 '진선미(眞善美)' 라고 하는데, 즉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 그런 것들을 모두 모아서 한 바구니에 담아서,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로 조작해낸다는 말이다.

그렇게 조작해낸 결정판은 천주교의 성당에 가면 알 수 있는데, 성당이라는 건축구조물과, 그 성당 안에서 신부들이 외치는 소리가, 그런 멘트들이 전부 불교와 똑같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냥 이름만 걸치고 있는 것인데, 예수를 이야기하면서 마리아를 성모라고 하면서 데려오는 것을 보라는 말이다. 기가 막힐 노릇인데, 마리아를 왜 끌고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별 다른 의미가 없다고 하는데, 예수님도 어머니에게 잘 해주었으니 우리도 그렇게 잘해주면 좋지 않느냐고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에게 바로 나오려고 하면 겁도 나고 부담이 되니, 사랑이 많은 마리아에게 먼저 나오면, 그게 마리아를 우회에서 결국 예수님에게 가는 것인데, 그러면 예수님도 그것을 봐서 잘 대해주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꼼수를 쓴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게 무슨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가 짓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간다는 것이다. 왜 그렇겠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도 아닌 것들이 인간이라고 하면서 사단의 정신으로 무장했기에, 사단과 한 통속이 되었기에 그게 적합하다는 말이다.

◈ 또 다시 정리하면 !!

또 다시 정리하면, 인간들은 자기가 사단과 결합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자신의 존엄성과 인격성을 놓치기 싫어서, 그것을 인정투쟁, 즉 자기를 무시하지 말고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모든 범죄가 여기서 시작이 되는데, 자기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한 친구나 아는 사람들끼리 범죄가 일어날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서로 좋다고 하면서 동거를 하다가 칼로 찌르고 말이다.

사람들이 술을 왜 마시는가? 자기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인데, 자기를 무시하면 부모고 뭐고 없다는 것이다. 길을 가는데 쳐다봤다고 때리고, 그리고 지하철에서 노인네가 자기에게 잔소리를 했다고 해서 마구 짓밟는데, 옆에 있던 사람들은 도와주지도 않고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누구 하나 그런 소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옥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자기를 인정해달라고 하는 동네인데, 그러니 지옥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가 바로 지옥이고, 우리는 그 멤버로서 살아가고 말이다.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너희들이 나를 무시하나?" 라고 나오고 말이다.

◈ 나는 무조건 인간이다 !!

이게 곧 인정투쟁인데, 제가 오늘 강의를 하면서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첫 번째로 잘못 끼운 단추가 자기를 인간으로 생각한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맞지요? 그런 괜찮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신을 찾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것을 다 끌어보아서 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인격적으로 훌륭하게, 그리고 남을 도와주고 봉사를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이 정도면 괜찮지요?" 라고 하면서 출발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단의 "신이면 전부야?" 라고 하는 도전의식이 강하게 깔려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식들에게 대대로 물려주는 것이고, 또한 우리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부가 여기서 끝나면 안 되고,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이런 짓을 했다. 좋은 것을 모두 다 끌어 모아서 신에게 나가려고 미신을 만들었다" 라고 한다면, 그러면 그것은 미신이고 안 된다고 한다면, 그러면 정작 하나님이 남겨주신 흔적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궁금하고 묻고 싶다는 말이다.

◈ 그러면 하나님의 흔적은 어디에?

다시 말해서, "이 목사, 당신이 그것은 미신이고 틀렸다고 하면, 그래도 하나님이 정작 이 세상을 창조할 때 뭔가를 남기지 않았겠는가?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라는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를 포함해서 모든 종교가 무엇인고 하니, "새를 봐라. 신이 아름답게 만들어놓지 않았는가?" 라고 하는 것이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옛날의 토속신앙을 보더라도 신에 대한 감사와 은혜가 다 나온다는 것이다.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주신 창조주에 대해서 헌신해야한다는 것, 그러한 가인의 제사는 모두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가인이 제사를 드리지 않아서 지옥에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셨다. 그게 은혜다" 라고 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 그러면 무엇이냐는 말인데, 그것을 바로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로마서 10장을 보겠는데, 6절과 7절을 누가 읽어보세요.

(롬 10: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 그리스도와의 관계망 !!

이게 무슨 뜻인지 단박에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무슨 의미이고 하니까, 믿는 자는 단박에 이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까,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인간도 있고 동물도 있고 나무도 있고, 또한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하늘에 올라간 적이 있는가? 없는데, 그러면 내려온 자도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누군가가 이 땅에 내려왔다고 하면,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고, 그러니 그 코스가 바로 하나님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 코스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오신 코스라는 말이다.

오늘 강의를 하면서 "이것은 아닙니다" 라고 하는 게 무엇인고 하니, "자연만물을 통해서 신을 알자" 라는 것이 미신이라고 하면, 그러면 미신이 아닌 것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그렇게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주님께서 열어놓은 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통로를 따라와서, 오직 그리스도와 관련이 되어있는 것만이 하나님의 흔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가 빠지게 되면 미신이 되는데, 그래서 구원을 받는 사람은 모든 흔적이 누가 개입이 되어있는고 하니, 그리스도와 관계가 되는, 그런 관계망으로서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하는 것, 그것이 믿어지는 사람이 바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자라는 것이다.

◈ 언약의 하나님 !!

그러면 자기는 누구와 관계가 되어있는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러니 지옥에 가는 에서, 또한 천국에 가는 야곱, 모두 다 누구와 관계되어있다는 말인가? 예수님인데, 그것을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되어있고, 그런 언약을 주신 분을 언약의 하나님, 즉 '여호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언약의 하나님과 관련이 된 체로 하나님이 흔적을 남기셨다는 말이다.

그러니 "해는 하나님이 만들고, 달도 하나님이 만들고" 라고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빠지게 되면, 즉 구약에서 말하는 언약이 빠지게 되면,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한 자기 백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약이 빠지게 되면 말이다.

◈ 어떤 노인네의 죽음 !!

그래서 어제 낮 예배시간에 "일상생활 속에서 복음을 뽑아내어야 한다" 라고 했는데, 그렇게 된다면 '나'에게 필요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필요한 '나'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그 설교를 준비를 하면서 아침부터 이런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주저했는데, 그래도 복음을 증거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저에게 닥친 사건이라고 여기고 전했는데 말이다.

우리 동네에서 어떤 노인네가 자살을 했는데, 분명히 아침에는 죽지 않았는데, 30분 뒤에 다시 가보니 목을 매달고 늘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연세가 70대 중반정도 되어 보였는데, 아는 분은 아니고 말이다. 아마 동네 사람들은 잘 갔다고 하지 싶은데, 젊은 사람이라고 하면 그래도 안타까워하겠지만 말이다.

저는 그 노인네의 주검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전부터 우리를 심판하셨다" 라는 것인데, 두 번째로 그 늘어진 몸을 보고 중력을 법칙을 느꼈는데, 이게 원래 우리 인간의 모습이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본래 모습이 바로 이러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일깨워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우리가 몸 관리를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죽지 않도록 하셨기 때문인데, 물론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너는 아직 살아있어야 한다" 라고 하는 주님의 강제조치로 인해서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 일상생활 속에서 복음을 !!

이게 바로 일상생활 속에서 복음을 끄집어내는 방법인데, "사나 죽으나 주의 은혜다" 라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인데, 그러니 한 평생동안의 어떤 기간이 정해져있다고 하는 것은, 그 기간을 통해서 모든 것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관여한 바가 없고, 오직 주님께서 관여하셔서, "너는 이만큼 살아라" 라고 확정지어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죽으라고 굿을 해도 죽지 않는데, 물론 죽을 사람은 어차피 죽고 말이다. 그 기간은 별로 차이나지 않는데, 10년을 빨리 가나 늦게 가나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구나" 라고 느끼게 되고 말이다.

◈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

그런데 그렇게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는 흔적과 연결되지 않고 죽는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데 말이다. 그러니 죽으면서 "예수님이 죽이신다" 라고 고백하면서 죽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고백을 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것도 역시 예수님이 살리신다" 라는 고백의 연결선상에 있다는 말인데, 그러니 살 때도 주를 위해서 살고, 또한 죽을 때도 주를 위해서 죽는다는 것이다. 그게 로마서 14장 8절의 말씀이라는 말이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렇게 숨겨진 주님의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그것은 고대 유대인의 종교가 아닌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지금 우리가 골라잡을 종교가 많이 있는데, 당신은 왜 하필이면 옛날 이스라엘의 종교를 선택해서, 그것을 독보적으로 여겨서, 그것만을 진리라고 하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하면서 내치는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 향린교회를 아십니까?

서울에 가면 '향린교회' 라고 있는데, 나름 유명한데 말이다. 일명 '민중교회' 라고 하는데, 사도바울은 틀려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한 말은 믿으면 안 되고, 마태와 마가와 누가와 요한의 그 복음서만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를 정치적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것을 개인적인 구원의 문제로 여겼는데, 그러니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은 혁명가로서 오셨는데, 그러니 우리는 이 땅에서 선지자 노릇을 해야합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구약의 선지자와 복음서를 연결시켜서, 그것만 따지고 다른 것은 다 아니라고 본다는 말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그 교회에서 그만 성경을 찢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교회에서는 가끔 스님도 모시고 설교를 시키고, 그리고 이슬람교 설교자를 '이맘(?)' 이라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도 데려다가 설교를 시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을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들어보자고 하는데, 그래서 그 교회에서는 데모도 자주 한다는 말이다. "북한과 대화로 풀자" 라고 하면서 목사부터 까운을 입고 앞장서서 전 교인들이 다 거리로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향린교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조립해서 신의 계시로 만든 것이 바로 문제인데,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국가인데, 그러니 "국가가 잘 되어야 우리가 행복하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굳이 교리라고 한다면 그것 하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어야 이 세상에 정의가 바다같이 강물같이 넘친다고 한다는 것이다.

◈ 대한민국 때문에 내가 불행해 !!

그런데 이게 비단 향린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30대나 40대, 심지어 50대의 정신구조가 무엇인고 하니, "나라가 개판이라서 내가 못산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왜 나라가 개판인가? 그러니 자기가 불행한 모든 것은 다 남의 탓이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이게 바로 미신인데, 오늘강의의 취지가 바로 이것이라는 것이다.

향린교회에서 왜 사도바울의 말을 언급하지 않는가? 골로새서 3장 3절을 보면,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라고 하는데, 그리고 빌립보서 3장에서도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골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 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들은 사도바울의 이런 소리가 듣기 싫은데, 그래서 "하나님이 어디에 있어? 우리를 행복하고 살기 좋게 해주는 게 최고의 신인데, 그러니 무슨 천국이 필요해? 이 땅에 살면서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게 최고가 아닌가?"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 그들에게는 신의 계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런 교회의 목사가 그 젊은 청년들을 모아놓고 무슨 설교를 해야지, 그들이 그 교회를 빠져 나오지 않고 계속해서 있겠는가? 그들을 교회에 계속해서 붙들어매는 방법이 도대체 무엇이겠냐는 말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설교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 대한민국은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향린교회와 같은 교회가 있고 저 같은 목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취직을 하지 못해도,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군으로서 선지자 노릇을 하게 되면, 우리 대한민국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같이 환경운동도 하고, 정치운동도 하고, 그래서 '헬조선' 이라고 불리는 이 지옥과 같은 대한민국을 천국으로 바꾸는데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고 소망입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당신이 어디를 봐서 인간인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자체가 신앙의 내용이 되면서, 그만 구원받는 성도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관심사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까놓고 말해서 "나도 좀 사람답게 살자" 라는 것인데, 그래서 제가 묻는데, "당신이 어디를 봐서 인간인가?" 라고 말이다.

어떤 목사님이 그런 식으로 복음을 전했더니만 젊은 사람들이 다 나가버리고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 되어서 저에게 묻는데, "목사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말이다. 그러면 저의 답변은 간단한데, "이 세상이 왜 지옥인지 이제 알겠습니까?" 라고 말이다. 그러니 헬조선이 아니라 헬지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옥을 사자성어로 뭐라고 했는가? '인정투쟁' 인데, 즉 "나 잘났다" 라는 사람들을 다 모아놓았다는 것이다. 자기는 잘났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것인데, 그렇게 잘난 사람으로 살겠다고 하는데 왜 대한민국은 그것을 바쳐주지 못하느냐는 말이다.

◈ 예수님과 사회정의 !!

하지만 스데반 집사님이 그렇게 살았는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향린교회처럼 사도바울의 편지를 신약성경에서 떼어낸다고 치고, 그러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가 그렇게 살았느냐는 말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과연 예수님이 사회정의를 부르짖었는가? 오히려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자기 영생토록 산다고 하셨다는 말이다.

(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그리고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도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히려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장사를 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아라"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니 세상에 대해서 미련을 가지는 자는 이미 죽은 자라는 것이다.

(마 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그래서 교회라는 것이 있게 되면, 그런 조직을 유지하게 되는 요소가 바로 천국을 틀어막는 요소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즉 교회를 교회답게 유지하려고 시도하는 노력자체가,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틀어막는 하나의 힘으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 교회인가? 복음인가?

그래서 "복음으로 괜찮은 교회를 만들자" 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인가? 복음인가?" 라고 하는, 그 둘 중에서 하나라는 말이다. 만약에 복음으로 괜찮은 교회를 만들려고 하면, 그 괜찮은 교회가 깨어지면, 또 다시 뭐라고 하겠는가? "신이시여, 이럴 수 있습니까?" 라고 나올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통로, 즉 하늘에 계시던 예수님이 하늘을 떠나서 이 땅에 내려온 순간, 독생자로서 말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누구를 만나는가? 마귀를 만난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말인가? 그게 광야인데, 이런 것이 다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마귀가 예수님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향린교회의 목사는 오늘 강의내용을 잘 들어야 하는데 말이다(ㅋㅋ).

첫 번째로 돌이 떡이 되게 하는 것인데, 즉 경제적 문제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사람은 인기를 얻어야 하는데, 즉 인정투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모든 영역을 자기 영역으로 삼고자 하는 욕망을 달성하는 것인데,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말이다. 이 3가지를 빼놓고 다른 것이 있으면 어디 제시해보라는 것이다.

◈ 죽는다. 그래, 죽여라 !!

그런 것이 안 된다고 해서 향린교회와 같은 곳에서는 데모를 하는데, 즉 "당신만 잘 살지 말고 같이 잘 살자" 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결국 마귀를 만나게 되면 무엇인고 하니, 3글자로 '죽는다' 라는 것인데, 즉 마귀에 우리에게 하는 말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죽는다" 라고, 마귀는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주님은 무엇인가? '죽여라' 라는 것인데, 즉 "니가 나를 죽어야한다. 그게 아버지의 뜻이다. 하지만 니가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는 스스로 죽는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오셨는데, 도대체 이런 예수님을 누가 믿겠느냐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저는 그게 참 수상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믿는다고 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그게 아니면 남들이 믿는다고 하니 덩달아 같이 믿는다고 하는 것인지 말이다. 저만 궁금한 것인가요?

◈ 교회는 복음을 싫어해 !!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그래서 복음을 전하면 당장에 보따리를 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가 선을 보러와서 설교할 때는 복음을 전하면 안 되는데, "이 교회를 몇 년에 안에 몇 명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라고 해주어야 하는데, 물론 대부분이 구라지만, 그래야 합격이 된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면 "저게 정신이 있나? 없나?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라고 하면서 내치는데, 그러니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교회에서 나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라고 하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주께서 그렇게 하시니 말이다. 그냥 "주님,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복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서 자기 자리를 만들려고 하는, 그렇게 해서 자기도 살려고 하는, 즉 "복음도 전하고 나도 살고", 그런 꼼수가 아니냐는 말이다. 그러면 주님이 뭐라고 하시겠는가? "지금 나랑 장난하냐?" 라고 하시지 싶은데 말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 그래도 죽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라고 하는데, 제가 방금 뭐라고 했는가? 죽고 사는 것은 주님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믿음인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 죽으라고 해도 죽지 않고 버틴다고 하면, 물론 죽은 것도 주님의 허락이 떨어져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살려고 하니, 나라꼴이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데모를 하고 한다는 것이다.

◈ 예수님에게 달려드는 좀비들 !!

아무튼 주님이 이렇게 하늘에서 내려오시게 되면, 여기에 주님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 가지 흔적들이 나타나는데, 악마를 비롯해서, 좀 더 실감나게 말하면 인간이 변해서 좀비가 되어서 마구 달려든다는 것이다. 사실은 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원래 좀비지만 말이다.

그렇게 예수님에 달려들어서 시비를 거는데, "나의 병을 좀 고쳐다오. 먹을 것을 다오" 라고 하면서, 그렇게 온갖 좀비들이 다 달려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이런 좀비들의 손에 죽어서 그만 다시 하늘로 가버리고 말았는데, 그분이 누구인고 하니,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좀비들의 왕초가 누구인고 하니까, 사람은 경건해야하고 바르게 살아야하고 거룩해야한다고 했던 바리새인들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바리새인' 이란 이름 자체가 '거룩한 자'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런 인간들이 예수님을 죽였다는 말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에 말이다.

◈ 처음부터 너희는 죄인이다 !!

그렇게 죄인을 부르려고 왔다는 것은, "죄를 지어라" 라는 말이 아니라, "처음부터 너희는 죄인이다" 라고 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인간은 그야말로 멋도 모르고 "나도 살아야 한다. 당신만 살면 안 되고 나도 살아야해. 무조건 살아야해" 라고 까불면서 나오는데, 여기가 지옥인지 천국인지도 전혀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예, 맞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10년 동안이나 귀신이 들렸던 여자가 무엇이라고 하는가? "주여, 제가 귀신이 들려도 당연합니다" 라고 나오는데(??), 그리고 백부장의 경우에도,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나이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도대체 이런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자기가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려주는 분이 따로 있다는 것인데, 왕의 신하의 경우에도, "주께서 말씀만 하옵소서" 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살고 죽는 것이 자기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주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살고 죽는 것이, 즉 자기가 산다고 해서 그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고백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죽고 싶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이 땅에 오셔서, 그리고는 곧 바로 하늘로 가지 않고 그 다음에는 음부에 내려가셨는데, 로마서 10장 6절과 7절을 다시 보자.

(롬 10: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니 이미 예수님은 음부를 다녀가셨는데, 그러니 예수님은 음부고 천국이고 다 아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다 아시는 분이 이 세상을 관통하셨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다녀가기 전에는 이 세상은 봄이 되면 새가 노래하고 꽃이 피고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녀가니 어떻게 되었는가? 이 아름다운 세상에 좀비들이 마귀를 대장으로 해서 살고 있을 줄은 꿈에 몰랐다는 것이다.

◈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나'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가?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가 구라가 아닌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살아났다는 것인데, 이 세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아무리 고상하고 멋진 논리가 오더라도, 그게 하나의 지식으로 끝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그런 이론도 있구나" 라고 하면 말이다. "그런 아이디어도 이 세상을 설명하는데 괜찮네" 라고 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직접 '나'와 실제적으로 연관성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그런 것이 있더라" 라는 것으로 끝나면, 그것은 지식에 머물고 만다는 것이다. 음부에 다녀가셨다는 것은, 천국과 지옥은 누가 만드신다는 말인가? 주께서 달려가면서 정리를 하시는데, 천국은 천국대로 지옥은 지옥대로 말이다. 그렇게 확정을 지어놓았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우리의 시민권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 라고 하는 것은 괜히 하는 말이 아는데, 다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앞에 '십자가를 믿는 자' 라고 하는데, 그것은 자기가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이 자기에게 쏟아져서, 그렇게 십자가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는데, 그런 자는 이미 그 생명이 하늘에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오는데, 어떤 신하가 임금에게 큰 부채인 일만 달란트를 탕감을 받아놓고,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와 같은 동료가 자기에게 빌려준 100데나리온을 갚지 않는다고 옥에 가두었지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이 화가 나서 그 신하를 그만 감옥에 가두었다는 겁니다.

(마 18: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18: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마 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마 18: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마 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마 18: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마 18: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마 18: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 관계망 !!

이것을 설명하는 단어를 세 글자로 '관계망'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니 '관계망' 이라는 것은 "내가 누구와 관련성을 가지고 사는가?"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책망을 받는 신하는 임금과 관련성이 있지만 자기 동료와도 관련성이 있는데 말이다. 동료가 자기에게 빚진 것을 갚지 않는다고 해서 그만 감옥에 집어넣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임금이 그 소식을 듣고 다시 그 신하를 그만 감옥에 가두고 만다는 것이다.

물론 1데나리온이 그 당시의 하루 품삯이라고 하니까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가 임금님에게 탕감을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6000데나리온이 1달란트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면 이게 얼마인가? 6천만 데나리온, 하루 품삯을 5만원만 잡아도, 이게 계산이 안 되는데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취지가 무엇인가? "니가 평소에 관계를 가질 때, 그 관계 속에 흐르고 있는, 즉 니가 이 세상을 보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게 나에게 들통이 났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용서' 라는 게 기준이 되어야, 그렇게 되려면 그 용서라는 우물에 '풍덩' 빠졌다가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용서를 뒤집어써야 하는데, 그것을 두 글자로 하면 '죄인' 이라는 것이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용서를 받아보니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이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인데, 죄를 아무리 지어도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는데, 그런데 용서를 받아보면, 자기가 그 용서를 몰랐다고 하는 것이 바로 가장 근원적인 죄가 된다는 것이다.

◈ 용서의 삐라 !!

주님께서 하늘에서 오시면서 용서를 뿌렸는데, 마치 탈북자들이 북한에 삐라를 뿌리듯이 말이다. 물론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수상하기 짝이 없는데 말이다. 그러면 그 삐라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무엇인가? "북한 주민들이여, 용서해줄 테니 제발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세요" 라고 하는 것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의 삐라를 뿌렸는데, 그런데 그런 용서의 삐라를 뿌리려고 하면 용서를 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것이다. 그러니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너희들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 라고 하는, 그런 의미라는 말이다.

그러니 정말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그렇다고 해서 십자가 목걸이를 하라는 것은 아니고, 그런 것은 그냥 취미로 하는 목걸이에 불과한 것이지 그런 증거는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십자가 목걸이를 하든 말든,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면 용서를 받은 자라는 말이다. 물론 '용서받지 못한 자' 라는 영화도 있지만, 하지만 십자가를 믿는 자는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용서를 받은 자,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왜 '타짜' 라는 영화에 보면 김혜수가 "그래도 나는 이대를 나온 여자야" 라고 하는데, 도박판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굳이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천국대학을 나온 자들이라는 말이다(ㅋㅋ).

그런데 여기에는 반드시 가짜가 있는데, 자기는 용서를 받아놓고 남들은 용서해주지 않을 때, 주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가짜야, 잘 가라" 라고 하시면서 제거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한다는 말이다.

◈ 용서를 받았기에, 용서를 !!

물론 주기도문은 예수님의 산상설교이기 때문에 순서가 바뀌어있는데, 그래서 우리가 남을 용서하면 주님께 용서를 받는 것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주기도문에는 우리가 왜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 포함되어있는데, 그런데 이게 십자가 이후가 되어버리면, 이미 용서를 받았기에 용서를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게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데 말이다.

(엡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성령이 그렇게 해주시는데, 그것이 용서 쪽으로 먼저 가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서 십자가 앞에서 죄인임을 드러내고, 즉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것을 고백하는 양산으로 행동에 나서게 된다면, 모든 만나는 자들마다 다 용서를 받는 효과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윤리도덕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살다보면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행하라' 라는 차원이 아니라, 성령께서 행하도록 해주신다는 것이다. 말씀대로 말이다.

물론 여기 마태복음 18장에서는 재산상의 문제인데, 신하가 임금에게 빌리고 임금은 탕감을 해주고 말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편지에 오면 재산상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자들에게 대해서 용서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스데반 집사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여기서 사도행전 7장 54절에서 60절을 보자.

(행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행 7: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행 7: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행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

여기에 보면 드디어 사울이라는 청년과 연결이 되는데, 그리고 60절에 보면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스데반 집사에게만 죄를 짓는 게 아니라, 주님과 함께 있는 자들에게 한 것이고, 그것은 곧 주님에게 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용서를 하고 말고 하는 것이 자기 소관이 아니기에, 그러니 주님이 알아서 처리해달라고 한다는 말이다. 자기 성질대로 어떻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판결의 모든 것을 주님에게 일임한다는 의미로 스데반 집사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말이다.

◈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

그러니 스데반 집사는 자기가 죽는 것도 누구의 소관이라는 것인가? 예수님이 함께 계시기에 예수님께서 알아서 할 문제인데, 자기가 어떻게 할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의 고민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를 두고 여기 55절에서는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라고 하는데, 그러니 우리는 성령이 충만한 것이 어떤 모양새인지 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것이 어떤 상태인가? 이 세상에 대해서 믿음이 없는 상태인데, 그러면 그게 무슨 의미인가? 그동안은 이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해왔는데, 그런데 그런 세상에 대해서 믿음이 없으니, 그것은 누구에 대해서 믿음이 없다는 것인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믿음이 없는, 즉 자기를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미장원에 가서 생각한 것처럼 머리모양이 나오지 않으면 속이 상하는데, 그런데 그 순간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어차피 자라는 머리카락인데, 다음에 잘 하면 되지 뭐" 라고 하게 되는데, 별로 거기에 대해서 한이 맺히지 않는다는 것이다(ㅋㅋ).

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든 것이 관계망인데, 즉 성령에 의해서 충만한 상태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주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예수님과 우리, 그리고 예수님과 스데반 집사님이 성령에 충만한 상태로서 관계망을 유지하기를 원하신다는 말이다. 물론 주님이 그렇게 인도하시고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억울하다' 라는 것은 아직 주체가 계속해서 살아있다는 것이고, 주체가 살아있는 이상은 아무리 구제를 하고 착한 일을 해도 그 노림수, 즉 '내가 착한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지' 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일절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계속해서 자기 관계망을 유지하기를 원하는데, 즉 "내가 구제나 착한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이 억울함을 해소해주시겠지" 라고, 그렇게 자기가 소망해서 설정한 관계망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게 '인정투쟁'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내가 이 정도 되는 존재다" 라는 것이다.

자기가 어디를 봐서 인간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자기는 무조건 인간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는 무조건 살아야하고, 이 세상은 무조건 자기 뜻대로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안 되면 남 탓으로 돌이고 말이다. 그러니 이 세상이 바로 지옥인데, 주님은 이러한 세상을 이미 통과하셨다는 것이다.

◈ 억울함 !!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의 몸뚱이는 주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서, 즉 주님의 구조를 옮기는 운반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알아서, "여기에 억울한 사람이 간다" 라고 하게 될 때, 그 사람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이 운반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억울한 사람이 누구인가? 예수님이 최고로 억울한 사람인데, 죄도 없는데 죄인으로 취급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예수님보다 더 억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주님의 억울함에 우리가 참여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동안 "저는 정말로 억울했습니다" 라고 여기는 것이 바로 죄가 된다는 것을, 즉 주님 앞에서 "주님, 제가 억울합니다" 라고 외치는 것이 바로 자기가 감추어놓은 죄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주님의 용서로 뒤범벅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주의 증인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 갈라지는 지형, 찢겨진 인생 !!

이제 교재 165페이지를 보자. 여기에 '9강, 갈라지는 지형' 이라고 되었는데, 이 '지형' 이란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지표면을 전제로 하고서 하는 말인데, 원래 지표면이라는 것은 단단하기에 갈라지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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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