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4 - 호강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4 - 호강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4 - 호강
16,04,18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161페이지부터 하겠는데, 지난 시간에 구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하나님에게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갚아주신다" 라고 했는데 말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구제가 될만한 대상을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잠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 이스라엘 자체가 곧 구제의 대상 !!
그것은 이스라엘 안에서 가능한데, 이스라엘 자체가 모두 구제의 대상들이라는 말이다. 즉 외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스스로 버틸 수 없는 집단이 이스라엘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나중에 땅을 가지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자체적으로 땅을 개간해서, 자기들도 살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도와주심으로서 산다" 라는 것이 그만 날아가 버리고 마는데,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이스라엘은 자체적으로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올 천국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성질이 있는가? "우리는 한 시라도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라는 것을 고백하는 집단이 곧 천국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는 죽어서 어디에 가는가? 천국에 가는데, 그러면 성도가 천국에 가기 전에 이 땅에서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는가? 이 땅에서도 역시 "한 시라도 도와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라는 것이 계속해서 유지되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제는 우리 힘으로 할 테니, 하나님이 그렇게 신경을 써주지 않아도 됩니다" 라고 나온다고 하면, 그 사람은 지금 당장에 이 땅에서 사는 문제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과연 천국에 갈 사람인지, 그게 그만 수상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라고 하면, 자기의 천국 백성들이 이 땅에서 어떤 식으로 살기를 원하겠는가? "이 정도면 우리 힘으로 살아갑니다" 라고 하는 환경을 그냥 방치해두겠는가? 그런 환경을, 그런 사고방식을 바꾸어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몸' 이란 것이 서로 상반되는 두 세력이 만나는 지점이 되는데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천국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그런데 그 천국은 어떤 사람만이 갈 수 있다는 말인가? "한 시라도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만이 주님께서는 천국에 데리고 가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제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사람은 어느 정도 가질 것을 가지게 되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 "나는 내 힘으로 살 고 싶어요" 라고 하는 것이 올라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즉 "주님이 없이는 나는 살 수 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과, "나는 내 힘으로 살만하면 살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마주치는 자리에 바로 성도가 있다는 것이다. 구약이라고 하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있다는 말이다.
◈ 축복과 저주 !!
그래서 이스라엘은 천국도 보여주지만 지옥도 같이 보여주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 언약은 두 가지 결과를 낳게 되는데, 즉 "지키면 복이 오고, 지키지 못하면 저주가 온다" 라는 말이다. 그런데 언약을 받은 사람들은 저주보다는 복에 자꾸만 관심과 시선을 두게 되는데, 저주는 자기들과 해당사항이 없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언약을 받은 것이 저주로 주어지게 되는 것이 어떤 경우인고 하니, "이제는 우리 힘으로 살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인데, 그게 이스라엘에게 왜 저주로 주어지는고 하니, 물론 천국도 있지만 맞은 편에는 지옥도 역시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천국과 지옥이 어떻게 분류가 되는지, 그것을 앞당겨서 보여주는 시범케이스가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말이다.
◈ 너는 앞으로 커서 무엇이 될래?
지금 초등학생들에게 "너는 앞으로 커서 무엇이 될래?" 라고 물으면, 그들은 평소에 알고 있던 것을 미래에 대한 모델로 제시하게 되는데, "나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축구선수가 되겠습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모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믿음이 있는 부모의 입장이라고 하면, 그것을 잘 귀담아 들어봐야 하는데, 과연 그 속에서 언약이 나오는지를 말이다.
물론 나오지 않는데, 왜냐하면 언약이 나오려고 하면 천국과 지옥, 즉 축복과 저주의 요소가 다 나와야 하는데, 그런데 "나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축구선수가 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그 아이가 모델로 삼은 것이 언약을 받은 쪽이 아니라, 언약이 없는 축구선수인 박지성을 모델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평소에 가족간이나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막상 교회에서는 언약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하지만 교회 바깥으로 나가면 어떻게 되는가? 언약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아예 우리 쪽에서 들어가 버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느냐는 말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언약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고 언약에 의해서 애굽에서 나왔던 민족인데, 그리고 그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민족이라고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살펴보았는데, 그런데 실생활하고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실생활에서도 "어디 이스라엘과 같은 사람이 없나?" 라고 하면서, 그런 자들을 찾아야만 성경말씀과 실생활이 융화가 된다고 할 수 있는데, 교회에서 성경을 보면서는 이스라엘을 운운하다가도, 막상 바깥에 나가게 되면 "당신은 대통령이 될 것이다" 라고 하면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과연 천국에 가는 모델인가?
◈ 물개박수를 치자 !!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사람 중에 높임을 받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미움을 받는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아들이나 손자가 어떤 모델을 정했을 때, 그게 만약에 사람에게 높임을 받는 이유로 인해서 그쪽으로 나가고자 한다면, 즉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어 보이기에 그쪽으로 간다고 한다면, 그것을 누가 말려야 하겠는가? 언약을 아는 쪽에서 말려야 한다는 것이다.
(눅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그런데 말리기는커녕 물개박수를 치면서(ㅋㅋ), 그러면서 칭찬이라는 칭찬은 모두 늘어놓는데, "우리 집안에서 인물이 났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옥에 가는 모델이 되겠다고 하는, 그것이 그렇게 좋다고 박수를 치고 칭찬을 늘어지게 할 문제냐는 것이다.
이것은 추상적이나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것인데, 논리가 매우 간단하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주었고, 그 언약은 상반된 결과를 낳았는데, 하나는 천국이고 하나는 지옥이다. 그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복과 저주다" 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제공한 유일한 진리를 아는 모델로서 등장을 했는데,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런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일을 모델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만 시선을 돌려서 언약이 없는 쪽에서 모델을 찾고자 하느냐는 말이다.
왜 박지성을, 요즘은 오승환이나 박병호가 대세인데, 그런 자들이 주님의 계시를 받았는가? 왜 그런 것에 시선이 가있고, 그리고 판사나 검사나 의사가 언약을 받았는가? 그런데 왜 그런 것을 찬양하느냐는 것이다. 저는 '언약내과' 이라는 간판을 본 적이 없는데, '속편한 내과'는 보았지만 말이다(ㅋㅋ).
◈ 언약을 개무시하는 자들 !!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왜 그렇게 개무시를 하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런 무시를 당해도 되는 대상이냐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에게서 올라오는 것은 언약이 없는, 이게 왜 그런고 하니까, "내 힘으로 내가 살겠다" 라는 게 어느 새 우리가 그리워하는 이상적인 모델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힘으로 스스로 살겠다고 나오면, 물론 사람들은 "저 사람은 자기가 모은 돈으로 스스로 사네.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 참 좋겠어. 누구에게 굴하지 않고, 눈치를 보지 않고, 을이 되지 않고 말이야. 자기가 가진 돈으로 먹고 사니 얼마나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인가?" 라고 하면서, 그렇게 편하게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바램을 있을 수 있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그런 사람들은 천국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면 천국에는 어떤 자들만 받아주는고 하니, "주님이 매일같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라고 하는, 바로 그런 자들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반대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고 하니, "나는 예수님이 싫어. 죽이고 말겠어" 라고 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나는 내가 가진 소유로 살겠어" 라고 하는, 그렇게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그게 바로 천국에 맞지 않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속에는 이미 언약에 대해서 반발하고 무시는 세력이 들어있는데, 그게 마치 화산의 마그마처럼 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사실은 내 힘으로는 내가 살지 못하기 때문에 후원해달라고 믿는 것이지, 그렇게 도와주어서 내가 자립하게 되면 더 이상 하나님을 찾는 귀찮은 짓은 하지 않겠어" 라고 하는 마음자세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인들이 교회에 오는 것도 수상한데, "독립을 하려고 오는 것인가?" 라고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독립을 하지 못해서 아주 불쌍한 모습으로 신에게 찾아와서, "신이시여, 조금만 도와주세요" 라고 해놓고는, 나중에 형편이 좀 풀리면 헤헤하면서 평소의 모습대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이다. 즉 자기 힘으로 자기가 영광을 받겠다는 식으로 나가버린다는 말이다.
◈ 인간은 모델이 따로 있어 !!
그런 잠재력을 다들 가지고 교회에 온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게 나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바로 인간이란 것이다. 이것을 정리하면, "인간은 모델이 따로 있다" 라고 할 수 있는데, 천국에 가는 것이 모델이 아니고 말이다. 즉 "지옥에 가도 좋으니,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델이 바로 나이고 싶다" 라고 하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들을 천국에 보내는 것이 주님의 놀라운 솜씨인데,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을 되게 하시는 분이기에 말이다. 의인은 없는데, 즉 아무도 자기 힘으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 되는데, 그런데 되게 하시는 식으로 개입하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말이다.
◈ 저놈을 천국에 보내려고 하면 !!
그러면 만약에 우리가 주님의 입장이라고 하면, 즉 "저기 지옥에 갈 놈이 있는데, 천국으로 보내겠다" 라고 마음을 먹으면,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조치를 내리겠는가? 이것은 보기가 없는데, 주관식 문제인데 말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참고로 해보면 정답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말이죠.
지금 그 사람이 자기가 힘으로 살겠다고 버티고 있는데, 그것은 천국에 전혀 맞지를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런 천국에 맞지 않는 인간을 천국에 맞게 만들기 위해서, 주님께서 미리 선점해서 그 사람의 환경에 손을 대는데, 그러면 어떻게 손을 대겠느냐는 말이다.
지금 그 사람은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에 근거하는고 하니, "나는 의인이기 때문에 살아있다" 라는 게 아니라, "나는 소유가 많기 때문에 살았다" 라는 것인데, 그렇지요? "나는 왜 이렇게 착하지? 그러니 내 힘으로 살겠다" 라는 게 아니라, "나는 가진 것이 왜 이렇게 많지? 나는 몇 억이 날아가도 살 수 있어" 라고, 그렇게 자기 소유에 푹 잠겨서 살기 때문에 큰소리를 친다는 것이다.
◈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죄의 문제로 !!
그러면 문제는 간단한데,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죄의 문제로 바꾸면 된다는 말이다. 죄는 언약이 내려와야만 알 수 있는데, 인간은 언약 앞에 서야만 자기가 저주받을 존재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은 의와 죄 때문인데, 의 때문에 천국에 가고 죄 때문에 지옥에 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 소유를 바탕으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경우에는, 자기가 죄인인지 의인인지를, 그것을 하나님의 의를 바탕으로 변경시키는 조치를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가 믿었던 소유를 날려버리면 되는데, 간단하다는 말이다. 지금 자기가 믿는 구석이 있기에 그렇게 버티고 있는데, 그게 바로 '돈' 이라는 것이다.
◈ 애굽생활, 그리고 광야생활 !!
그래서 거지꼴로 만들어버리면, 그러면 전혀 의지할 것이 없어지는데, 이게 바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광야생활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광야생활의 전제가 무엇인고 하니, 애굽생활을 해왔던 그 성질이 그대로 이어지는데, 홍해를 건너든 무엇을 건너든 말이다.
애굽의 성질은 무엇인고 하니까, 힘이 있고 소유가 있을 때, 그럴 때 소위 '산다' 라는 것이 성립되는 것이 애굽적이 사고방식이라고 하면, 그렇다면 힘도 없고 소유도 없을 때는 어떻게 사느냐는 말이다. 사람이 제일 살기 힘들 때가 언제인고 하니, 찾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라는 것이다.
◈ 나이가 80이 넘어도 !!
이미 나이가 80이 넘어가고 있는데 자식들이 한우를 들고 찾아오기는커녕 전화도 한 통이 없고, 남편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가버렸고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시어머니가 와서 자기 남편을 데리고 갔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래서 같이 있는 아들을 보고 항상 최고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어머니 이야기인데,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사실은 배가 불러서 그런 면도 있는데 말이다. 잠도 잘 주무시고, 식탁에 먹을 것도 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누군가가 자기를 찾아와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 형님, 그 동안 잘 계셨습니까?
물론 인상을 기리면서 찾아오면 안 되고, "형님, 그 동안 잘 계셨습니까?" 라고 하면서 웃으면서 와야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실제로 숙모가 왔다 가셨는데, 그리고 와서는 칭찬을 늘어지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형님은 시어머니에게 그렇게 잘해주더니만, 늙어서도 이렇게 복을 많이 받네요"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자식도 부모에게 찾아갈 때도 그냥 가면 안 되고, "어무이,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요즘 일이 잘 풀립니다. 어무이가 새벽마다 기도해주니, 이게 다 기도덕분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칭찬 보따리를 들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봉투도 넣어서 말이다. 그러면 새벽기도에 빠지던 것도 양심이 가책이 되어서 더 열심히 나가게 되고 말이다(ㅋㅋ).
그렇게 인간은 자기가 남들에게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 살아갈 때, 비로소 자기는 살아있다는 것이다. 남들이 자기를 있는 그대로 자기의 가치를 알아줄 때, 그러면 자기는 이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로서, 그러니 이것은 죄인이 아니라, 남에게 의로운 존재로서 밥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것인데, 인간은 바로 그런 것에서 사는 보람을 느낀다는 말이다.
◈ 의식주, 인기, 권력 !!
그러니 인간은 무엇인고 하니까, 방금 두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말이다. 세 가지라고 할 수도 있는데, 먼저 처음에는 무엇인고 하니, 일단 돌이 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안 되면 그야말로 짐승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게 갖추어진 다음에는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식이 찾아오든지, 누가 알아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80이 넘은 할머니가 "아직 여성스럽습니다" 라고 인정을 받는 그 가치, 즉 자기가 자기에게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그러면 아직도 기존의 그물망, 즉 살아있다고 여기는 이 세상에서 자기도 하나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것이고, 그리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집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의식주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주위의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자기를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는 무엇이겠는가?
지금 제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마태복음 4장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돌덩이가 떡덩이가 되게 하는 것이고,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인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남들이 알아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인가? 세 번째로,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큰아들을 보고 뭐라고 하는가? "야야, 나는 저것을 가지고 싶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남들처럼 살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아파트도 좀 넓히고 싶고, 죽을 때도 작지만 신문에 나오는, 그렇게 유명하게 죽고 싶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권력인데, 이것이 바로 마귀가 예수님에게 했던 세 가지 유혹이라는 말이다.
◈ 살아있네 !!
이 세 가지를 모아서 제가 방금 '살아있다' 라고 했는데, 그러니 인간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숨을 쉰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이런 환경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말이다. 이런 세 가지 가운데서 하나가 빠져버리면 '죽겠다' 라는 것이 뒤에 마구 붙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못 살겠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가 없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가겠는가? 집에 먹을 것이 많고, 남들이 알아주고,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면서, 남들이 자기에게 지시나 명령을 하지 않고, 모든 판단을 자기가 다 내릴 때, 우리는 가장 인간답게 산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바로 그것을 두고 '살아있네' 라고 하는 것인데,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옥에 가기 위해서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천국에 전혀 갈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바뀌어져야만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느냐는 것이다.
◈ 하나님이 방주는 왜 만들라고 하셨는가?
여기서 제가 문제를 하나 내겠는데,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 들어갈 때 천사가 입구에서 입장표를 받았는가? 자기가 방주를 만들어서 자기가 들어갈 때, 뭔가 움찔했는가? 노아가 그랬는가? 겁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쑥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면 방주는 하나님이 왜 만들라고 하셨느냐는 말이다.
장차 올 환경, 즉 지금 노아가 처해있는 환경이 아니라, 즉 시집가고 장가가는 환경이 아니라, 주께서 내리치시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네' 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 쪽에서 먼저 계획서가 날아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언약'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언약과 최종 판결문 !!
어제 낮 시간에 설교를 하면서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그것을 '최종 판결문' 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제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있네' 라고 하게 되려면, 기존의 환경에서, 돈이 있지, 친구도 많지, 그리고 자기가 판단한대로 다 얻을 수 있지, 그런 '살아있네' 라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살아있네' 라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좀 들었으면 하는데, 자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는 것이다. 천국에 간다고 하면서도, 천국에서 요구하는 인간상으로 바뀔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냥 '살아있네' 라는 것을 억지로 밀어 부친다는 것이다. 남들이 "아저씨, 참 대단합니다. 살아있네요" 라고 하면, 그게 그대로 하나님에게도 통하는 줄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 십자가에 달린 인간이 전부 !!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인간은 오직 십자가에 달린 인간인데, 그 외에는 인간이 없다는 말이다. 십자가에 달린 인간만이 전부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하는데, 이렇게 "의인이 없다" 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소유도 있고, 그리고 하는 것마다 잘 되고 하니, 거기에 죄가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자기는 숨도 잘 쉬고 잘 살고 있는데, 그런데 왜 죄까지 신경을 써야하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만 밀치고 만다는 것이다.
◈ 왜 들어가지 못하는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갈 때는 그냥 들어갔는데, 그러면 물어보겠는데, 물론 돌아오는 것은 없는 공허한 메아리지만 말이다. 그래도 묻겠는데(ㅋㅋ), 나중에 성막이나 성전에 들어갈 때 어떻게 들어갔는가? 자기도 성막을 짓는데 실을 바치고 가죽을 바쳤으니, 그래서 '들어갑시다' 라고 하면 성막에 들어갈 수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제사장 이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노아언약에서의 방주에는 그냥 들어갔는데,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모세언약에서의 성막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어디서 더러운 인간이 들어온다는 말인가? 피뿌림이 없으면 안 돼"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방주에서는 들어간다고 했는데, 성막에서는 안 된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약에 와서, 그러면 예수 안에 들어갈 때는 어떻게 들어가는가? "예수님, 넣어주세요" 라고 하면 들어가는가? 아닌데,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것을 더욱 더 확고히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달리 말하면 "죽어야 들어간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들어가고자 하는 주체가 살아있는 이상 절대로 넣어주지 않는 세계, 즉 "천국에 가고 싶어요" 라고 하는 혀놀림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주둥이에서 그런 요구가 나온 이상은 절대로 넣어주지 않는 나라, 그게 바로 천국이라는 것이다.
◈ 같이 죽어주시는 분의 이름으로만 !!
그러니 죽어야 하는데, 그러면 자기가 자살을 하면 되는가? 그것도 안 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같이 죽어주시는 분의 이름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같이 죽어주는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같이 죽는다는 말이다.
이게 로마서 6장에 나오는데, 그것으로 우리의 희망은 끝이 났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우리와 같이 죽으신 그분이 그만 다시 살아남으로서, 분명히 죽었던 우리가 예수님의 살아나심의 덕분으로 우리도 살게 되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는 말이다.
(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로마서 15장 7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이것을 어제 오전에 했는지 오후에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이제는 어제 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라고 하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이다.
(롬 15: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중간에서 우리를 받아서 하나님에게 패스를 하는데, 마치 미식축구처럼 말이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 이름으로 가는데,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자기가 알아서 나오는 것이 아닌데, 누군가가 받아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산파이고, 그 산파의 역할을 예수님이 하시는데, 그렇게 예수님이 우리를 받아서 아버지께 드린다는 것이다. 마치 이름도 없는 갈대상자에 담긴 어린아이가 바로 왕의 공주에게서 받아지듯이 말이다. 갓난아이가 헤엄을 쳐서 공주에게 가서는 재롱을 부린 것이 아닌데, 아이는 그냥 상자 안에서 울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다.
◈ 예수님이 받아주어야 비로소 천국에 입성을 !!
다시 정리하면, 노아언약의 노아의 경우에는 만들어진 방주에 자기가 걸어서 들어가면 되는 것이고, 또한 모세언약의 성막의 경우에는 세속적인 인간이 거룩한 곳에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새언약의 신약의 예수님의 경우에는 어떠한고 하니까, 예수님 자신이 들어가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이 와서, 즉 예수님의 영이 와서, 예수님의 영이 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말이다. 그렇게 예수님이 오셔서는 우리를 받아서 예수님 자신의 품안에 집어넣어서, 예수님이 우리를 안고 아버지에게로 가야만, 비로소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것을 요한복음 13장에서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라고 하시는데, 그러자 베드로가 다시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안 된다는 것이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6)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요 13:37)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요 13: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니 천국은 어떤 곳이라는 말인가? 인간이 자기 목숨을 바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즉 인간이 따라 부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가 천국을 이런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천국에 간다고 해서 다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천국은 없는 곳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모르기에 말이다. 우리가 모른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자기가 안다고 여기고 덤벼들지만 주님은 올 수가 없다고 하시는데, 그러니 베드로가 생각한 천국과 진짜 천국은 다르다는 것이다.
어제 오전시간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부활과 주님의 부활은 다르다고 말이다. 제가 한국교회에 대해서 심각하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그 천국이 그 천국이 아니란 말이다. 다들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면 좋겠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이야기하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극락인데, 천국은 그렇지가 않다는 말이다.
◈ 천국은 공포스러운 곳 !!
천국은 어느 정도인고 하니까, 공포스러운 곳인데, 이것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것인데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 아무 것도 아닌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의인이 되었기에 말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공포냐는 말이다. 그래도 뭔가 한 것이 있어서 천국에 넣어주면 몰라도 말이다.
도대체 우리 인간을 어떻게 보기에, "너는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손가락질을 하시면서 찾아오시는데, 그런데 그 주님의 손가락질 덕분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평생을 주님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지적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니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나는 너에게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니가 천국을 사모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상관없이 나는 너를 천국에 보내겠어" 라고 하는, 이런 주님의 지적질이 우리에게 와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데, 그러니 그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유지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너는 죄인이야" 라는 것인데, "나는 당회장이다" 라고 해도, 주님이 보시기에 당회장이 아니라 죄인이라는 것이다. "나는 박지성이 될래" 라도 해도, 박지성이 아니라 죄인이란 말이다. 우리에게 그런 안목이 필요한데, 다들 살아있다고 하는데, 돈이 있으니 살아있고, 인기가 있으니 살아있고, 권력이 있으니 살아있다고 하는데, 하지만 주님은 살아있는 게 아니라, 죽어있다고 보신다는 것이다.
◈ 인문학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인문학을 전공한 학자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참으로 멋진 소리를 했는데 말이다. 기자가 "인문학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질문을 하니까, "이 세상의 진리는 자연과학입니다" 라고 했는데, 수학, 물리, 화학 등, 그런 것이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몸이 아프면 검사를 해보고 수술을 하든지 해야한다는 것이다. 공자와 맹자를 찾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소크라테스를 공부한다고 해서 로켓이 달에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로켓이 달에 도착하려면 모든 자연과학을 동원해서 컴퓨터로 정확하게 계산을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게 과학의 힘이고 진리의 힘이라는 것이다. 병이 낫는 것도 과학, 달나라에 가는 것도 과학, 그러니 이 세상은 모두가 과학이라는 말이다.
자동차를 운전해도 이 과학이 필요하고,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여기 앞에 있는 카메라 등등, 과학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석기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발가벗고 꿀이나 따먹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인문학은 거짓말입니다 !!
그래서 인문학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그는 "거짓말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까, 과학이 진리인데,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 그만 기계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진리를 만들어놓고도 그 진리에 대해서 답답해하는데, 그게 참으로 이상하다는 말이다. 너무나 기계적이고 너무나 과학적이고, 그래서 감정도 무시를 당하고, 그야말로 정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기계로 만드는 것이 군대인데, 기계가 아니면 승리를 하지 못하니 말이다. 전쟁도 과학인데, 병사들이 제자리에서 제대로 움직여주어야 하는데, 보초를 서는 병사는 보초를 잘 서줘야 하고, 특히 레이더를 보는 병사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는데, 적기가 떴는데도 "잠시 화장실에 갔다온다고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대는 군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 인간은 기계이고 부속품 !!
그렇게 모든 것이 과학인데, 그런데 그런 과학이 되려고 하면 인간 자체가 기계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엄마가 보고 싶을 땐 ♬" 라고 하면서 노래나 부르고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군대를 대부분이 좋아하지 않는데, 물론 좋아하는 사람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빨리 그런 기계에서 사람으로 돌아오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제대를 손꼽아 기다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고 저녁에 집에 오면 넥타이든 뭐든 다 풀어버리고 그 자리에 자빠지는데, 씻는 것도 귀찮고 양발도 벗지 않고 그냥 자려고 한다는 것이다. 마누라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말이다. 그것은 직장의 과학적인 업무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러한데, 물론 아무리 놀아도 잘 씻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튼 그래서 필요한 것이 '거짓말' 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과학적 세계에서 인간은 일종의 부속품인데, 부속품이라는 것은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인데, 돌아가는 전체 구조에서 그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자기는 그 구조에서 잘린다는 말이다. "야, 너는 이것을 했어? 하지 않았어? 그러면 나가!" 라고 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이다.
◈ 당신은 당장 해고야 !!
호주에서 광부로 일하면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서 좋다고 취직을 했는데, 그런데 하루 일당량을 받아서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잘린다는 것이다. 노조고 뭐고 없는데, 책임자가 그만두라고 하면 당장 해고라는 말이다. 돈을 많이 주는 대신에 자기의 역할을 다 해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바로 잘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게 세상의 모습인데, 원래 이래야 세상이 맞다는 것이다. 노조에 가입했다고 해서 일을 못해도 대충 봐주고 하면 안 되는데, 그러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굉장히 냉혹한데,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가 들어가면 일이 안 되는데, 왜냐하면 광산이 여기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광산과 경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이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바이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든지 해서 문제가 생긴다든지 하면, 바이어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될 것이고, 그러니 그런 사람은 잘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달린 식구가 4명이고 어쩌고 하는 것은 개인적 문제인데, 자기가 자리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해주어야 누려도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혜택부터 먼저 받겠다고 하는 것은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기계인가? 전혀 아닌데,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즉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다는 말이다. 아까 산다는 것을 뭐라고 했는가?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고 인기를 얻고 권력을 가질 때,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게 될 때 비로소 '살아있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언제 보장을 받는고 하니, 태어나서 1년이나 2년 사이에 받는데, 그게 자기의 뇌리에 박힌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이 그리워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겠는가? 그 어릴 때의 그 사랑을 그대로 받고 싶어하는 세계인데,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것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 호강시켜주세요 !!
어제도 그런 설교를 했지만, 이 세상을 우리보고 고생을 하라고 태어난 세상인데, 그러니 기본적으로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호강을 하라고 나온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인간은 추방된 존재인데, 그러니 우리는 죄수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지은 죄를 대신해서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래서 지금 우리의 모습이 바로 벌을 받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해도 걱정이고 불안인데, 잘 되어도 걱정이고 못 되어도 걱정이고, 그놈의 걱정근심과 불안은 떠나지를 않는다는 말이다. 공포와 두려움이 말이다. 그래서 그 인문학자는 말하기를, 그러한 인간을 누가 위로해주는고 하니, 그것은 바로 인문학이 위로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을 거짓말을 하는데, 즉 "지금은 비록 부속품이지만, 당신의 본래 모습은 구원을 받아야 합당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비록 오늘은 직장에서 상사에게 야단을 맞았지만, 그것은 당신이 원래 그런 게 아니라, 조직사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인데, 여전히 당신의 가치는 다른 직장에 가서라도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힘을 내세요. 7번을 넘어져도 8번을 일어나세요 라고 해주는, 그런 거짓말, 오늘 강의 제목으로 이 '거짓말'로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 거짓말과 엄마, 그리고 교회 !!
그런 거짓말이 필요하기에 인문학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식이 사기를 치고 엄마에게 도망을 오면 엄마가 뭐라고 하는가? "그래, 일이 참 안타깝게 되었구나. 그래도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혔으니 자수해라. 내가 자주 찾아갈게" 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마저도 내치면 그 자식은 자살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엄마가 되어서, "도대체 일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지?" 라고 하면서, 마치 경찰이 조서를 꾸미듯이 엄마가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경찰이 오면 "아니, 사기를 친놈이 자기 집에 오는 것을 봤어요? 아마 친구들이 중국에 있다고 하는데, 벌써 거기로 도망을 갔을 겁니다" 라고 하면서 자식을 숨겨주지 말이다. 그게 거짓말이고, 인문학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사회는 개판이 되는데, 그 엄마가 평생동안 엄마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런 거짓말을 먹으면서 버티고 있는데, 그런 것조차 없다고 하면 견뎌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거짓말을 해주기 때문에 버틴다는 말이다. 그리고 요즘은 그러한 거짓말을 교회가 엄마를 대신해서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가 사기집단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성경에 말하는 교회라고 하면 과학이 말하지 않는 진리, 더 나간 진리, 즉 "당신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고생하는데,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기에, 그런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징벌을 받는 것이 너무나 마땅합니다" 라는 것을 이야기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개 같은 내 인생 !!
그것을 한 글자로 '개' 라고 하는데, 즉 "너는 개 같은 인생이다" 라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애완견을 키우는 집들이 많아서 개의 신분이 많이 상승했는데,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표현도 좀 바뀌어야하지 싶은데 말이다. 그러니 주님은 욕을 해도 아주 쌍욕을 하는데, "어디 개 같은 인간이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단 말인가?" 라고 말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한 이야기인데, 아니 욕인데 말이다. 즉 "나는 너희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서 왔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여인이 뭐라고 하는가? "맞습니다. 저는 개입니다. 하지만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개의 입장에서, 행여나 주인이 먹고 버리는 것이 있을까 싶어서,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니가 바로 천국의 백성이다. 너 같은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 살겠다고 하는 의식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사람, 물론 여기에 다들 그런 분들만 있는 줄로 아는데, 그렇지요?
(막 7: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 엎드리니
(막 7: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막 7: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막 7: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러니까 주님이 없는 가운데, 즉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살아있다' 라고 하는 기준은, 그것은 사실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지옥행 기차를 타고 좋다고 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라고 하면서 한 잔을 걸치고 춤을 추면서 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평생을 자기 잘만 맛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데, 그런 우리에게 성령이 말씀을 가지고 찾아오셔서, "이 개 같은 놈아!" 라고 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아하, 천국이 이런 사람이어야 하는구나" 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는 말이다.
◈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이렇게 개가 되는 것이 자기가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친히 그런 조치를 내려주셔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이 세상에서 믿을 곳은 아무런 곳에도 없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아까 뭐라고 했는고 하니,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이라고 했다는 말이다.
광야생활은 그야말로 물도 없고 양식도 없고 비축한 것이 전혀 없는데, 그러니 내일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껏 하루치의 양식만 제공될 뿐인데, 그것조차도 오늘까지만 주고 내일은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사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집단으로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니 늘 아슬아슬하다는 말이다.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주기도문대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 일용할 양식뿐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우리에게 주어진 목숨도 오늘로 끝이라는 말이다. 내일은 자고 나봐야 안다는 것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수없이 했는데, 그러면 이제는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가 즐겁고 가뿐하게 느껴지고 들리지 싶은데, 아닌가요?
여기서 시편 92편 6절과 7절을 살펴보자.
(시 92:6) 우준한 자는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시 92:7) 악인은 풀 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특히 여기 7절에 보면, "악인은 풀 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악인과 죄악을 행하는 자가 부흥하면서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
그러니 이 세상에서 흥왕하고 번창하는 것을 복 받은 기준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자기가 하는 일이 잘 되고 번창한다고 해서 "야, 하나님에게 복을 받았구나" 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성급하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반대로 보면 되는데, 즉 이 세상에 살 동안은 그야말로 하는 것마다 다 망하고 꼬일지라도, 마지막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는,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에게 복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면 마지막에 멸망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면 되는가? 멸망을 누가 주관하시는가? 예수님이 그렇게 하시는데, 그러면 매일같이 예수님을 의지하면 멸망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 그러면 멸망되지 않는데, 주님이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 사람을 사용하신다면 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마지막에 오지 않더라도 이미 멸망하지 않는 자로 확정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자야말로 진정 복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런 자들에게 나타나는 것, 즉 남들에게 보이는 것은 생장하지 않고 흥왕하지 않아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교재를 보겠는데, 161페이지를 보자.
**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어서 형제에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형들을 보고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라고 하면서 안심을 시키지요.
(창 45: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 상실과 잃어버림 !!
그런데 여기 보면, 무엇을 구원하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하는가?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라고, 즉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니 요셉이 알게 된 것은 무엇인고 하니, 생명을 구원하는 작업은 누구 소관이란 것인가? 우리의 아버지인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 소관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을 하기 위해서 우리 가정에 내린 조치가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은 바로 '상실' 인데, 즉 '잃어버림' 이라는 것이다. 야곱은 누구를 잃어버렸는가? 제일 사랑하는 아들인 요셉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그것은 무엇을 상실하는 대목인가?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아들인 이삭의 잃어버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게 안경인가? 물론 안경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돈이 좀 들어도 또 다시 구입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바꾸려고 해도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것은 다 바뀌어도 우리의 구주인 예수님은 바뀌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게 연필심과 같이 박혀있을 때, 마지막을 거치지 않더라도 이미 그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천국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물론 부처를 믿다가 예수로 바꾸고, 예수를 믿다가 부처로 바꾸는 사람도 있기는 있지만, 그렇게 바꾼다고 하는 것은 예수나 부처보다도 자기가 더 귀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주님이 나보다도 더 귀하다" 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 발생이 되는고 하니, 자기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망할 때,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미워하게 될 때, 그리고 "내가 여기 있다" 라는 것이 그야말로 절망으로 느껴질, 바로 그때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아무리 하라고 해도 전혀 하지도 못하고, 무슨 바보도 아니고 도대체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그렇게 지키지 않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전혀 희망을 가지지 않게 되었을 때, 그때는 믿을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처음부터 다시 하면 !!
방금 어머니가 오셔서 강의를 처음부터 다시 하겠는데(ㅋㅋ), "내가 가진 것으로 내가 살아있다" 라고 하면, 우리는 이것을 아주 편하게 생각하는데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어디서 발견하는고 하니, 자식이나 손주들에게 "너희들은 커서 무엇이 될래?" 라고 해서, "예,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한다면, "우리 집안에도 인물이 나는구나" 라고 하면서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자기 집안을 일으키는 모델처럼 생각했는데, 즉 '살아있다' 라는 것인데, 그런데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자기도 그 '살아있다' 라는 것을 동의해준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살아있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경우인고 하니, 천국에 갈 수 있을 때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러니 이 세상에서 잘 되고 번성하는 것을 두고 '살아있다' 라고 하는 증거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권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 친구들을 만나보면 자랑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을 바로 번창과 흥왕인데, 대답을 하지 않아도 뻔하다는 것이다. 그때는 시편 92편 6절과 7절을 들이대라는 말이다. 그것도 모자란다 싶으면 창세기 45장 5절을 들이대면 되는데, 즉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산가족으로 만들었다" 라고 하는 것, 즉 '가족의 상실'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알다시피 형들이 동생을 시기해서 죽여버렸는데, 물론 값을 받고 팔았지만 그 의도는 무엇인고 하니, "너 같은 인간은 없어도 괜찮아. 그러니 죽어버려!" 라고 하는, 그런 마음이 가득한 체로 자기 동생을 그만 노예상인에게 노예로 팔고 말았다는 것이다.
◈ 노예로 팔려 가는 요셉 안에는 !!
그런데 노예로 팔려 가는 요셉 안에 무엇이 들어있다는 말인가? 자기를 노예로 팔아먹은 형들의 나쁜 심보가, 그게 요셉의 품안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요셉을 하나님께서 국무총리로 만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을 미리 보여주느냐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혼자 달리셨지만, 그 십자가를 쪼개보면 누가 들어있다는 말인가? 물론 예수님을 미워하고 결국은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하지만 천국에는 가야하는 자기 백성들의 죄가 가득히 담겨있다는 것이다. 마치 만원버스처럼, 자기 백성들의 죄가 가득 가득히 담겨있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몰랐지만, 주님은 다 아시고 죄와 더불어서 죽으셨는데, 아버지는 그런 예수님을 사흘만에 다시 살려내시고 말이다. 물론 그래도 우리 인간들은 몰랐는데, 그런데 성령께서 십자가의 영으로 우리에게 찾아오니, "아하, 십자가 안에 내가 들어있었구나!"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알고 "창세 전부터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라고, 참으로 희한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 가자, 집으로 !!
이것은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고백할 문제인데, 이런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이게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는 것이다. 자기는 한 것이 전혀 없는데, 그런데 주님이 성경말씀대로, 언약대로, 아버지와 아들이 약속한 대로 모든 일을 다 마무리를 지어놓고, 천국까지도 다 마련해놓고, 그래서 이제는 불러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가자, 집으로!" 라고 말이다.
그런데 집으로 갈 때 그냥 가면 안 되고 자기가 저질러놓은 것들을, 즉 자기가 성질을 부려서 가족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 그리고 교통사고를 낸 것, 그런 것들을 모두 다 구경을 하면서, 그렇게 자기만 살아보겠다고 하면서,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몸부림을 치면서 살아온 것들을 구경하면서, 마치 이 세상에 소풍을 온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그네 인생을 마무리를 짓게 되는데, 그러면서 그 주변에 흩어져있는 자기의 죄성들을 타인들의 죄를 통해서 발견한다는 것이다. "나도 저렇겠지. 나도 저런 인물이겠지. 누구 욕할 문제가 아니구나" 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도 이한구라면 유승민을 잘랐겠지" 라고 하게 되는데(ㅋㅋ), 그게 남의 자리가 아니라 자기 자리이기 때문에 비난을 할 수 있지만, 막상 그 사람의 자리에 앉게 되면 우리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장담을 하든 말든 분명한 것은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살아있다고 하는 것, 그런 자기 존재를 위해서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그런 이기적 존재라고 하는 사실은 결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 이 자리에서 이기주의자로 하면, 그 자리에 가서도 역시 이기주의라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챙기게 되는데, 남에게 피해를 주어도 자기 자식을 위로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기 식구들에는 관대하고 배려가 넘치지만, 남들에게 손톱만큼도 용서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 자식에게는 용서가 넘치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용서가 다 되어있고 말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우리 자신에게 실망을 하도록 하시는데, 그리고 우리의 죄를 폭로시켰다는 것은 그것은 바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한데, 사과하면 구원을 해주겠다는 게 아니고 말이다. 이미 구원을 받았기에, 그런 사과는 자기 자신에게 하지 주님에게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너는 너에게 미안해하고 나에게는 할 필요가 없다. 너는 원래 그랬어야만 했다. 그런 환경에서 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야" 라고 하시는데, 물론 그렇게 최선을 다한 것이 죄지만 말이다. 의인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우리는 이 성경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면서, 이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시편 105편을 보겠는데, 16절부터 19절을 보자.
(시 105:16)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시 105:17)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시 105: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시 105: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다 !!
여기 16절에 보면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로마서 8장에는 뭐라고 하는가?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경우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면 그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하겠는가? 우리가 스스로 살만하다고 여긴 것을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술을 받으려면 우리의 살을 찢어야하듯, 그렇게 주님은 우리 내부에서 통하고 있는, 끊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시는가? 자기가 의지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체시키신다는 것이다. 시편 105편이 바로 그 이야기인데, 즉 우리가 의뢰하는 것을 다 끊으셨다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가? 죽어있다고 할 수 있는가? 죽어있는데, 바로 그 죽어있는 우리는 주님은 건지신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분명히 이게 위암인데, 그런데 바깥에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부를 찢고 안으로 들어가서, 위의 그 암 부위와 핀셋이 직접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레이저로 한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말씀은 우리가 잘난 척을 하는 그 비개 덩어리와도 같은 부위를 뚫고 들어가서, 그렇게 찢고 찢어서 어디로 들어가는가? 죽어있는 '나',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접촉이 될 수 있도록 죽어있는 우리 자신에게 말씀이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바로 그렇게 뚫고 들어가는 침이 무엇인고 하니, 그게 바로 십자가인데, 즉 복음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십자가로서 우리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의인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십자가에 접촉이 되면, 그 십자가가 가지고 있던 은혜로 인해서, 우리는 창세 전부터 살려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다시 시편 105편을 보면, 요셉이 종으로 팔려서 발에 착고가 차이는, 즉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요셉이 그렇게 팔리고 난 다음에 야곱이 살던 지역에 흉년이 들게 되는데, 그러니 요셉을 앞서 보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17절에서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