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행 13"15-23 (바울의 설교)
Re..행 13:15-23 (바울의 설교)
이름 : 이근호(IP:)
바울의 설교
2004년 9월 29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13:15-23
13: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3: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3: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3: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13: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약 사백 오십 년간)
13: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13:21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관심사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모였다하면 세상 적인 돈의 흐름에 대해서 일차적으로 궁금해하고 정보를 취득하기 위한 대화에 급급합니다.
세상 적인 부귀영달에 관심에 쏠려있는 사람들을 향해 돈도 안 되는 복음 이야기나 하나님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집단에서 왕따 당하기 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보면, 용감하게 감히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자, 과연 누가 이 사람들을 이렇게 용감하게 만들었습니까? 인간의 개인적인 자질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대로 따라 흉내내라고 주신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요구하는 대로 구원받게 해주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내용은 이 세상에 그 어떤 인간도 지킬 수 없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 할 것이 없이 자기만 챙기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숨길 수 없는 본심입니다. 즉 자기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주님을 사랑해야 저주가 없다"는 겁니다. 자기 사랑을 다 제쳐놓고 예수님부터 먼저 사랑할 자가 누가 있습니까? 따라서 성경은 인간은 죄인이라고 규정하기 위한 책입니다. 인간보다 더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책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자력으로 구원이 가능한 것이 아님을 확실히 보이는 목적으로 주신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은 자력이 아니고 누구 힘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에 의해서 특별 관리를 받는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특별관리라는 것이 어떤 방식일까요?
이 점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경우를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예수님도 자력으로 복음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에 의해서 특별관리를 받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경우도 마치 예수님의 행적의 재현과도 같습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4장에서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펴놓고 읽으시고 설교하셨습니다. 그 설교의 내용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설교 내용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봅시다.
누가복음 4:14-22에 보면,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
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 내용은 예수님의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설교에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 계셔서 사도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게 특별 관리하시고 계신 겁니다.
그러니까 결코 인간들이 자신의 노력과 결심에 의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입장에 못된다는 말입니다. 인간 세상에 그러하듯이 복음을 전하는 인간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신을 신뢰할 만한 입장이 못됩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가 전한 복음의 내용을 보면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역시 우리와 똑같이 마찬가지로 육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런 육적인 사람을 가지고서도 얼마든지 영적인 복음을 증거 해 주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들어 쓰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때는 현재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들어 쓰시는 중이라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제사나 번제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자신이 상한 심령이라는 점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있습니다. 즉 하나님 자신이 쓰시는 사람은 반드시 '상한 심령'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예가 바로 사사요 그리고 다윗입니다.
사사 기드온의 경우를 보게 되면,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할 만한 대단한 인물로 간주하지를 않습니다. 도리어 그 사람은 틈만 나면 하나님의 일을 거부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자신과 같은 자는 도저히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할 자격자가 못된다고 자신에 대해서 명확하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설교는 육적인 인간에서 어떻게 해서 영적인 결과가 나오느냐 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영적인 일이란 인간의 자질이나 열심과 전혀 상관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인들을 봉사나 열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조작하는 자들은 몽땅 다 사기꾼들입니다.
다시금 이야기합니다만, 오늘날은 세상이나 교회 내에서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싫어하는 풍토입니다. 그저 힘을 얻기 위한 대화만 주종을 이룹니다. 따라서 설교 내용도 거기에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는 가짜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뭘 듣기를 원하는가 하는 점을 하나님의 뜻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더러워도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복음이라면 그 복음만 전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따라서 육 적인 사람을 통해서 영적인 일을 수행하시는 분도 인간이 아니라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여전히 활동하신다는 그 현실성이 오늘날에도 영적인 현실을 자아내게 할 뿐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아예 없습니다.
그렇다면 육 적인 것을 통해 영적으로 나올 때 어떤 내용으로 분출됩니까? 일단 22-23절을 보면,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예언한 바가 있었던 그 메시야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아무리 구약을 통달하고 구약을 다 꿰뚫어도 전혀 나올 수 없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구약을 대하는 논리를 아무리 총동원 해봤자 거기에서는 예수라는 젊은 청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구세주라는 사실이 결론으로 도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을 열심히 탐구하여 메시야를 손꼽아 고대했던 유대인들은 그 예수라는 청년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점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오직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자들이 진정한 예수님을 구세주로 반길 수 있단 말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기를 지독하게 매달려있는 처지에서 과연 예수님의 하신 말씀까지 거리낌이 없이 곱게 수용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윗에게 약속한 그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라는 점을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해서 알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일방적으로 아예 예수님 자체가 메시야 임을 기정 사실을 단정짓고 난 뒤에나 나올 주장입니다. 참으로 위험한 독선입니다. 이런 독선은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께서 직접 그 현장에 계셔나 나올 광경입니다.
따라서 이런 예수님의 특별조치를 이해 못하고 이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엉뚱하게 맞이했습니다. 죽여서는 아니 되시는 분을 사람들은 죽여버렸는데 이것조차 선지자의 예언에 합당한대로 일이 진행된 결과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모든 일이 이것으로 끝난 걸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죽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심으로서 시편 2편에 기록된 그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는 겁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이 시편 2편과 예수님을 연관시키는 이유는, 거기에 보면 세상 모든 민족에 대한 심판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등장될 것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이 세상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전부 육에 속한 자들임이 확실해졌습니다. 육에 속했다는 것은 질그릇 부수듯이 마땅히 다 부셔져야 마땅하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고백이 있는 자만이 참된 성도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로 하여금 그 어떤 현장에서도 복음만을 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