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성과 우연성에 관해서
'우연'이 과학적 개념이라면, '우발성'은 존재론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연이 인과론적 메커니즘을 찾아내지 못할 때 성립하는 개념이라면, 우발성은 형이상학적 이유를 찾아내지 못할 때 성립하는 개념입니다. 이 세상은 숱은 원인-결과의 계열로 나름대로 따로 따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번개가 치는 것도 먹구름이 모인 원인에 의해서 생긴 겁니다. 그리고 그 밑은 어떤 사나이가 식당에 들어가는 것도 배가 고픈 원인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침 이 두 개의 '원인-결과' 계열이 서로 만나서 그 배고픈 사나이가 그 자리에서 번개에 맞았다면, 이것을 '우연한' 결과라고 하는 겁니다.반면에 왜 그런 '원인-결과'의 계열들이 꼭 생겨나야 하는가 하는 점을 따질 때는 우발성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즉 "이 우주는 왜 꼭 이런 식이어야 하는가?"하는 점은 '우발적'이라는 표현말고는 없습니다. 성령의 거듭남을 '우연'과 '우발성'으로 구분해서 설명드리자면, 어떤 인간이 거듭나기 위해서 기도원을 1000번을 찾아갔는데, 확률적으로 우연히 그 중에 한 번에 성령과 맞아떨어져 구원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우연, 그 자체의 가치를 간직하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이단 신학입니다! 새로운 '원인-결과'의 계열을 만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이것을 '논리화된 신학으로 굳히게 될 공산이 큽니다.)그런데 그냥 평소에 모든 일에 자기 가치와 의(義)만 추구하면서 열심이 살아갔을 뿐인데 어떻게 예수님을 알게 되었을 때, 이것은 우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차후라도 그 어떤 '원인-결과'의 계열에도 연결시킬 방도가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즉, "나는 왜 하필이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그 어떤 형이상학적 타당성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이런 식으로 구원된 사람은 모든 '우연적 논리'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비록 모든 인간이 다 우연과 필연적 구조 안에서 여전히 지내고 있음을 마땅히 인정하면서도 말입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이 임의로 붑니다."(요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