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오케바리 예수님!!!
우발성이라는 의미를 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십자가마을에서 찾아봤습니다. 말이 어렵더군요. 6월 초에 있었던 논쟁에 질문과 답변에서 강도와 이웃에 대한 글에서 자유게시판에 십자가의 우발성을 설명하셨던데요 ( 1982 우연성과 우발성에 대해서 클릭)이렇게 정리해 봤습니다. 즉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강도가 출현하고 아무도 예상 못했던 강도 만난자가 출현하고 아무도 예상 못했던 이웃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아무도 예상 못했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이미 그 의미가 사람들 속에 정립되어 있었다(이웃사랑 눅10장)는 뜻이겠죠. 그러니 그 의미랑 전혀 다르게 발생된 것이지요. 그 이유는 새 기준의 등장 때문이겠죠. 기존 의식의 강도 강도만난자 이웃이 완전 부서지고 새로운 강도 새로운 강도만난자 새로운 이웃이 등장하지요.그러니 이웃 사랑을 펼치던 이웃인 성전종사자(오늘날 교회와 관련된 자)는 강도 였고, 강도 만난자는 십자가의 구원받은 강도였고, 강도로 몰린 예수님은 이웃이었다는 것입니다.이런 현실을 누구만이 명확하게 밝혀 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만이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밝혀 내십니다.(여기서 그럼 예수 믿으면 우리도 밝혀 낼 수 있겠지 또는 이웃사랑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오히려 밝혀냄을 당하지요! 날마다. 그래서 날마다 죽지요. 자발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죠. 다름아닌 내가 강도임을 감춘채로 예수님을 강도로 몰아서 죽인 실제적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지요. 십자가가 그렇게 몰아 가는 겁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임을 성령이 날마다 탄식하시며 알려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상한심령이 됩니다. 그 여파로 그 파장으로 엉뚱하게도 예상치 못했고 전혀 원치도 않던 자들이 이 상한심령인 예수님의 믿음에, 마음에동참케 됩니다.)어제 믿음이란 없다고 했습니다. 없다고 가만히 있을 인간이 아닙니다. 반드시 찾고 반드시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쳐버리기 때문입니다. 없다고 주저 앉아버리는 인간은 없다는 겁니다. 유일한 희망은 자기 자신뿐이요 자기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도우미로 자처하고 나선 이웃들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 교역자들입니다. 유 캔 두 잇. 당신은 하실 수 있습니다. 힘내세요. 일어나십시오. 잠자는 거인을 깨우세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당신의 삶에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그런데 철퍼덕 주저 앉아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왔다는 사건입니다. 곧 하나님이 하늘에 있지 아니하고 이 땅에 직접 방문했다는 겁니다. 믿음을 찾아서, 없는 믿음을 생기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도리어 믿음이 우리를 찾아다니며, 없는 믿음을 창조하시더라는 겁니다. 누가요? 우리가요? 아닙니다.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시고 직접 믿음을 자기백성에게만 허락하시여서, 다른 믿음의 통로를 모두 거부하십니다. 차단하시는 겁니다.당연히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던 자들은 예수님에 의해 믿음이 없던 자로 밝혀지고, 믿음이 없어 늘 사람들에게 소외당하던 자들은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예수님이 연출 각색 각본 감독하시어서 때마침 믿음이 나타나도록 조치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에 학생회에서 공부한 뽕나무 습격사건인 삭개오의 믿음입니다. 뽕나무를 올라가는 것, 재산 반 뚝짤라 가난한 자에게, 토색때 4배 갚겠다는 고백을 오늘날 이웃 사랑 외치는 목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고백입니다. 누구만의 아이디어 입니까? (키 작고, 매국노, 현장범 간음한 여인, 1급 죄수 강도. 날때부터 소경된자, 귀신들린자 등등)그래서 전 우발성 이라는 신학적 용어보다 낯설음이라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합니다. 그 낯설음은 인간의 어떤 믿음도 다 비켜가고 인간의 믿음에 포착되질 않고, 또 믿고픈 마음이 절대로 없을 정도로 전혀 인간의 믿음과 매치가 안되는 모습이다는 겁니다.그래서 인간의 믿음은 자기 구원과 자기 선택과 자기 천국, 자기 신앙관리로 방향을 제시하지만, 전혀 이것과 상관 없는 예수님의 믿음은 그 반대인 참혹한 십자가로 방향을 제시하니 다 도망치며 각기 제 길로 가는 모습이다는 겁니다.인간은 사랑을 천국에서 완성코자 달려드는 반면, 예수님은 자기 사랑을 십자가의 저주에서 완성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이웃 사랑을 들고 온 인간은, 십자가의 사랑을 들고 온 예수님을 당연히 강도로 몰 수 밖에 없습니다. 저들이 자기들이 주장한 이웃 사랑으로 예수님을 강도로 몰 줄 예상 했겠습니까? 오히려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기에 더더욱 그들은 이웃사랑을 실천했기에 그 결과로 예수님을 죽인 겁니다.나는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호언장담 했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3번 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왜 십자가는 이렇게도 우리의 믿음의 결단을 역전되게 모순적으로 이런 인간의 사랑의 다짐을 다 받고 그 속을 까뒤집어 내는 것일까요? 왜 십자가는 인간의 어떤 지혜와도 한 번도 일치점을 보이지 않고, 그런 인간의 지혜를 요리 조리 다 피해다니듯 낯설은 지혜만을 제시하여 믿고자 열정을 바치겠다고 하는 자들을 스스로 다 기겁하고 저주를 퍼붓고 비웃으면서 다 도망치게 만들까요? 예수님만이 죄를 밝히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악의 실체를 못 밝힙니다.그것은 믿음이란 십자가의 믿음이란 예수님만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인간은 제외 되어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창조함에 제외된 제일 마지막피조물인 어떤 창조력도 발휘한 것이 없는것처럼 )죄의 해결은 예수님의 믿음이지, 의인의 믿음이지, 인간인 죄인의 믿음이 이룰수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완성하신 유일한 예수님의 믿음이 약속을 성취 하심으로 그 승리의 전리품으로 죄인에게 믿음을 선물 하시는 겁니다. 이제 그 선물 받은 믿음으로 곧 유일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믿음으로 우리는 넉넉한 이김에 참예합니다. 그 이기었음은 어떻게 표출되느냐 여전히 낯설은 모습입니다. (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즉 종일 ~~ 하루쫑~~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는 도살할 양 같이 되었다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우리가 교회에서 믿음 믿음 하며 소유하고프고 가지고프고 믿음 콘트롤 한다는 말이 순 엉터리가 되는 셈이지요.(고전 4: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믿었는데 살지 왜 죽냐는 겁니다. 다 살기 위해 믿지 죽을려구 누가 믿냐 라는 겁니다. 이 낯설음을 인간의 믿음은 친근스럽고 사랑스러운 온정으로 다 재편집하여서 길들였기에, 예수님은 오늘도 지금도 십자가를 앞장 세우며교회와 전쟁을 벌리시고 계십니다.마치 법궤를 언약궤를 증거궤를 앞장세우며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원망한 3가지 증거를 담고 뚜껑으로 덮은 언약궤를 이제 이스라엘이 치루는 모든 전쟁에서 최전방 선두 주자로 증거궤를 내세우며 전쟁을 치루는 아주 희한한 전쟁,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예상하지 못했던 전쟁을 칼과 방패도 없이 치르는 겁니다. 그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며 뒤 따르며 앞에서 그 죄의 증거를 앞장세워 나는 마땅한 죄인입니다 라고 자복하는 자는 이 언약궤를 통해 용서로 죄를 덮어줄 것이며, 그렇지 않고 용서를 거부하는 자들은 법궤가 다 진멸하겠다는 무시무시한 전쟁을 아주 희한하게 낯설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이제 십자가를 앞장 세워 전쟁을 펼치시겠다는 겁니다. 이 낯설음에 누가 십자가의 사랑을 자기 스스로 깨닫고 나아오겠습니까? 십자가의 믿음만이 자기백성을 찾아다녀서 십자가의 사랑을 허락함으로 나타나는 유일한 사랑입니다. 이웃 사랑은 십자가가 혼자 돌아다니며 펼치는 거룩한 전쟁에서 승리로 쟁취한 원수의 손에서 빼앗은 전리품이 바로 강도 만난 우리입니다. 그 강도만난자는 십자가의 이웃만 증거합니다. 바로 십자가의 이웃인 예수님입니다. (눅 10: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