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12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2-에벨링
20160412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2-에벨링
이름 : 한윤범(IP:14.39.134.85)
20160412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2-에벨링
(강의:이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에벨링, 1912년, 이 사람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주 오래 살았는데 아마 죽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백 살 넘었으니까. 이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왜 언급해야 되느냐? 그것은 이 사람이 본회퍼의 의견을 추종해요. 그래서 유명해졌습니다. 본회퍼가 이야기한 것을 체계 있게 잘 정리했어요. 본회퍼란 사람이 유명해진 것은 히틀러 살해계획에 가담해서 죽은 것으로 유명하지요. 또 그가 유명해진 것은 이 단어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세속화, 이것을 본회퍼가 가장 구체적으로 실천으로, 행동으로 보여줘서 유명해진 거죠.
세속화라 하면 교회 좌파란 느낌이 강하죠. 교회 우파는 천당을 향하는 뉘앙스가 있는 반면에 천당을 향한 게 아니라 더러운 세속을 우리가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단어 자체가. 교회 우파의 천국 간다는 말은 하늘나라 그리운 사람만 가고 나머진 버려두자는 태도가 있다면, 세속화는 어떻게 남겨진 탕자를 우리끼리만 가느냐? 그들을 돌보고 건져서 가는 게 참된 교회의 임무고 사명이지 않느냐? 세속화로 잘라낼 게 아니라 경계선 그어놓고 나가라고 할 것이 아니고, 찾아갈게, 하면서 기독교의 세속화의 논리가 전개되겠지요.
방금 제가 기독교의 좌파, 우파만 이야기해도 어떤 사람을 전도, 선교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냐는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처럼 들려옵니다. 그런데 방금 이야기한 것은 본회퍼와 에벨링과 아무 상관없는 거예요. 용어만 이용한 겁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우리는 하늘나라만 추구하고 따라오지 못하면 저리 꺼져. 가가가. 세상에 푹 잠겨. 우리는 세상을 떠나서 경건하게 거룩하게 살아서 예수님 만나고 천당 갈 거야, 라는 쪽으로 지향하게 되면 따라오지 못한 쪽과 하늘나라에 점점 가까이 가는 사람과 결정짓는 기준이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기준이 뭐가 되느냐 하면, 더러운 세상과 함께 마음껏 더러워라. 나는 너희들과 상대 안 한다. 천국 간다는 사람은 세속화하는 사람과 반대니까 결국 쉽게 말해서 바르게살기, 또는 거룩하게 살기입니다. 그런데 바르게살기 해버리면, 마치 대구 마라톤대회 할 때 처음에 오천 명 출발합니다. 대구 동성로에서 처음에 출발하자마자 갑자기 어떻게 돼요? 마치 새떼가 날아가는 것처럼 엘리트 선수들 몇 명 앞에 있고 나머진 우르르 뒤따라가는데 많은 사람들은 점점 앞과 간격이 멀어지겠지요. 앞에는 케냐 선수고 한국 선수 두세 명 따라가고 나머진 쭉 퍼지겠지요.
바르게 살라 해버리면 속도의 차이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교회에 전념했던 사람은 바르게살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고 방금 술 끊고, 담배 끊고, 방금 교회 온 사람이라면 속도가 안 나오겠지요. 마라톤 실력이 뒤처지겠지요. 갑자기 질서가 분산되면서 앞에 엘리트와 엘리트 아닌 사람이 흩어지면서 새떼 같이 날아가는 모형을 맞이할 것이란 말이죠.
그럼 어느 선에서 끊을까요? 좀 뒤처지고 아직까지 술, 담배 못 끊어도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까지 내칠 것이냐는 그런 문제가 생기겠지요. 그럼 여기서 바르게살기란 말을 수정해야 됩니다. 어떻게? ‘나름대로’란 말을 집어넣어야죠. 나름대로 바르게 살만큼 살아보기에요. 바르게살기란 어느 수준에 도착이 될 때 합격이 되잖아요. 그러나 나름대로 살 만큼 살아보기는 테스트의 경향이 강하죠. 그냥 한 번 그렇게 살아보기로 마음은 먹어본단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엘리트 선수 뒤에 오는 사람들도 엘리트 선수만큼 살지는 못하지만 어렵게 갈 것 없지요. 교회에서 대중기도를 시키니까 오랫동안 숙련된 공중기도를 했던 사람은 아무 떨림 없이 마이크 대고, 특히 장로들 주일 예배할 때 훈계하듯이 기도 노하우가 있을 것 아닙니까. 북한 핵문제부터 해서 줄줄 나오면 가뿐하게 3분 넘겨요. 그래서 얼마나 기도를 잘하냐 하는 것을 3분으로 끊을까요?
목사님들이야 3분이야 쉽지요. 그런데 평신도가 3분하겠습니까? 이 정보, 저 정보 어제 저녁에 10분짜리 적어놨는데 10초 안 돼서 다 까먹고 빨리 마무리, 수습은 해야 되겠고, 초초함은 벌써 들켰고,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아기는 울고, 기도의 흐름이 없느냐, 맥락이 없느냐 할 때 땀은 나고, 저쪽에서 예수 이름으로 끝내라고 하고, 속으로는 두 번 다시 기도하나 봐라, 하고 결심은 들고, 미운 장로 5분씩 하니까 따라잡으려고 했는데 그 노하우가 보통 노하우가 아닌 수십 년 노하우란 걸 깨닫게 되고. 자, 3분으로 끊을까요, 어떻게 끊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정리하면 됩니다. 비록 그 사람이 세속에 여러 가지 습관들을 못 버리고 있더라도 방향을 천국 쪽으로 하게 되면, 세속화에서 벗어나는 우파 쪽으로 잡자. 아무리 산 도적 같이 해서 더러운 행세, 욕설 나오더라도 방향이 저 높은 곳을 향한다면 우파로 잡자는 겁니다. 훈련시키고 교육시키면 되니까. 아무리 산 도적 같은 인간도 교회에서 흉내 내면 한 20년 지나서 장로 되면 그야말로 대중기도에서 김정은부터 해서 투표 잘하게 해달라고 하면서 3분 충분히 때울 수 있단 말이죠.
그러면 세속화가 좌파라면 우파에서 세속적인 사람을 무조건 끌어내리는 건 아니고 교회 방침에 협조하는 사람은 우리 편으로 넣어주는 거예요. 아무리 행동이 막 되먹어도 고분고분하고 당회에서 그런 짓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화투치고 그런 것 아닙니다, 할 때 끊을게요, 하고 자기 반성의 여지를 보이는 사람, 회개의 여지를 보이고 앞으로 엘리트처럼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자기 고분고분함을 보인다면 기존의 보수파에 해당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럼 본회퍼가 이야기하고 에벨링도 그쪽인데, 기독교의 세속화란 뭐냐? 방향 이야기했으니까 여러분 감 잡았을 거예요. 저 높은 곳을 향하는 게 아니고 방향을 정반대로 트는 거예요. 저 낮은 곳을 향하여. 이게 본회퍼가 이야기한 거예요. 왜 그런 주장을 했는가? 기존에 우파, 보수파를 보세요.
기독교의 세속화를 반대하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이렇게 되면 엘리트를 정점으로 해서 마라톤에서 오천 명이 한 곳으로 따라가죠. 그럼 여기서 무엇이 생기겠습니까? 질서가 잡히는 거예요. 갑과 을의 질서, 명령체계와 명령 받는 질서가 생기겠지요.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도 질서가 안정되지요. 경건과 거룩의 엘리트 집단이 있을 거고, 기도해도 떨지 않는, 그리고 광고하는 솜씨가 일반 사회자 솜씨를 능가하는 게 있겠지요.
다음은 장로님 광고가 있겠습니다. 광고할 때 인사말 몇 분해요. 오늘 날씨도 안 좋고 추운데 여러분 감기 걸리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교회에 김 장로, 이 장로가 존재하고 있음을 각인시키는 거예요. 본인은 교회 최정점에 있는 엘리트기 때문에. 엘리트이기 때문에 장로 됐잖아요. 로켓의 캡슐 부분이에요.
그렇게 될 때 교회가 그런 식으로 질서가 잘 잡혀온 거예요. 튀면 안 돼요. 네가 행동을 그렇게 엉뚱하게 한다는 것은 성경말씀대로 살아서 하늘에 계신 주님과 합세하세, 하나님 만나세, 라는 확정된 보수적인 체제, 질서에 네가 튀게 되면 너는 천국 안 가려고 환장한 거야, 버티는 거야. 이렇게 반발 들어오는 거예요. 네가 장립집사 주제에 그보다 급이 높은 장로에 대드는 것은 사적으로 대드는 것이 아니고 엘리트층을 감히 중간 계급에서 대든다는 것은 천국 안 가고 지옥 간다는 것과 같이 취급된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중간 층, 장립집사 층에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소위 기름 부은 쪽에 있는 사람한테 지적하거나 할 때 아이들 나무라듯이 함부로 하면 교회에서 잘립니다. 그러면 교회 목사가 문제 있고, 장로가 문제 있다고 할 때는 개인적으로 시위하듯이 하지 말고 너도 힘을 모아서 장로 되어 장로회에 참석해서 정식으로 손들고 해보란 말입니다.
젊은 청년들이 사법고시 준비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 사회에 억눌리고 가난한 자 편에 서서 정의를 실천한다고 하잖아요. 그것도 공부 잘하면 판사, 검사 되지요. 검사 되어 사회정의 실천하려고 했는데 거기 검사 선배들이 있지요. 검사장 승진 앞두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에게 바르게 하자고 하면 뭐라고 합니까? 햇검사에게 뭐라고 합니까? “까불지 마, 가만있어. 너만 검사야. 나도 수십 년 했어.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검사조직이 와해돼.” 자기는 정의 실현하겠다고 왔는데 막상 조직에 들어가 보니까 조직 내의 서열이 있고 위의 말을 들어야 할 때 거기서 사회정의하려면 자기도 빨리 승진할 수밖에 없지요. 승진하려면 윗사람의 말을 들어야 된단 말입니다.
그럼 변호사해야 되겠네? 그러나 변호사해서 사회정의 하는 그게 뭐냐 하면, 그게 바로 지금 나오는 법조인 드라마들 아닙니까. <시그널>도 마찬가지고. 나쁜 사람 잡는다고 경찰했는데 위층이 전부 돈과 관련된 범죄 집단이 됐을 때 할 수 없이 1990년대 신호 받아서 그런 식으로 정의사회 구현해야 되잖아요. 이게 목사 세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면 세속화란 뭐냐 하면, 방향을 엘리트 방향으로 틀어서는 안 되겠지요.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저 낮은 곳으로 향하는 거예요. 낮은 곳을 향하면 기존의 보수층에서 뭐라고 합니까? “너, 그런 식으로 해선 아무리 목사라도 지옥 가.” 기존에 압력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거기서 본회퍼가 뭐라고 답변해야 됩니까? 본회퍼도 목사잖아요. 우리가 목사지만 목사를 덮고 있는 게 뭔지 알아야 돼요.
목사를 덮고 있는 게 성경입니까, 전통입니까? 전통이에요. 그게 바로 노회에요. 교단이잖아요. 성경은 관계없어요. 교단은 교단법이 있고, 노회법이 있어요. 교회법이 있다니까요. 그래도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인간적인 법보다 성경이 더 우수하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천주교에서 이야기한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개신교가 하는 거예요.
성경이 옳은 데 성경해석을 누가 하느냐? 성경은 있지만 그걸 전통적으로 해석하는데 이걸 권위라고 해요. 천주교 권위는 교황에게 있고 개신교의 권위는 노회에 있고 장로, 목사의 모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개신교가 천주교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니까. 천주교의 권위가 교황에 있는 게 아니에요. 교황은 상징적 자리에 불과한 겁니다.
조선건국에서 정도전이 추구한 세계는 임금의 세계가 아니에요. 엘리트 유교학자들의 나라입니다. 경국대전의 내용이 뭐냐 하면, 우리나라 같으면 헌법인데,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거예요. 그걸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귀족정치에요. 귀족정치가 민주주의라는 겁니다. 내일 총선은 엘리트를 뽑는 거예요. 엘리트는 뽑아놓으면 엘리트는 계급이 되고, 자기를 뽑은 대중들은 부하직원들이 되는 겁니다. 별 볼 일 없어요. 표만 쥐면 되니까. 엘리트들이 법을 만들고 법에 의해서 국가가 돌아가고, 그게 의회주의고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면 국회 없애고 다르게 민주주의하면 안 되느냐? 국회의원 없애버리고 혼자 하면 되는데, 그 사람이 뭘 해야 되느냐 하면, 국민들에게 생활비를 줘야 돼요. 이게 보루네오 왕국입니다. 보루네오 왕국은 석유를 독점한 왕이 국민들의 복지부터 생활비 다 줘요. 그래서 국민들은 다른 나라로 이민 갈 필요 없어요. 물론 이민 받지도 않고. 그러니 알아서 임금을 섬깁니다. 돈을 주니까. 돈도 안 주면서 돈 주는 행세하는 게 바로 북한이에요. 어버이 수령님 덕분에 산다는 겁니다. 무슨 국회의원이 필요합니까? 무슨 법이 필요해요. 경제를 살리는 자가 그 시대의 임금이에요. 잘 살게 하는 자가 임금이에요.
그래서 경상도, 대구, 경남은 박정희를 이길 수 없는 겁니다. 지독한 가난한 나라를 새마을운동으로 살려냈잖아요. 그 영웅을 그리워하는 거예요. 인간이 민주주의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민주주의 필요 없어요. 자기 배고픔을 채워주고 놀아도 세상 부귀영화 누릴 수 있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무슨 정치를 원해요? 돈을 원하지. 그래서 마르크스가 정치란 경제의 확장이다. 경제란 기초에 입각해서 나온 환상에 불과한 것이 정치다. 정치꾼들은 뭐냐? 노동자를 착취한 자본가들을 위해서 국회가 있고 그들이 뽑아낸 게 대통령이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 나오지요. 서로 내 것이라 하지 않고 나누는 사회, 그걸 공산주의 사회라 합니다. 마르크스가 신학을 했기 때문에 그 사회를 구현한 겁니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국가를 거쳐야 된다고 주장한 사람이 레닌이에요. 스탈린이고 모택동이고 김일성이고. 그런데 중국 어떻게 됐습니까? 재벌 같은 사람들이 정보를 다 뒤고 있어요. 돈이 있어야 권력 쥔다는 것을 중화인민공화국이 다 보여주고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교회의 보수파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제가 강의하면서 여러 번 이야기했어요. 교회, 배부른 자의 오락 아니에요? 지금 배고픈 데 신이고, 죽어서 가면 되지, 살아서 왜 신을 섬길까요? 배부른 자들이 모이는 친목단체가 교회란 이유는, 지금 얼마나 배부르면 하늘을 쳐다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교양? 경건, 거룩, 이건 따지고 보면 여유 있는 자들의 교양 학습하는 것이란 말이죠. 부족합니다, 여러분 마음 낮추세요, 이웃을 사랑하세요. 교양 아니에요? 이웃을 사랑하고 마음을 낮추려면 그만한 인격으로 넘어올 여유가 있는 밑바닥에 경제적인 여유가 확보한 다음에 구제하듯이 저 아프리카에 우물 파주고. 우물 파주는 사람이 누굽니까? 돈 있는 연예인들 아닙니까. 만날 히말라야 찾고, 달라이 라마 찾고, 네팔 가는 사람들 누굽니까? 못 살아서 간 사람들이에요? 잘 사는데 돈 버는데 스트레스 받아서 스트레스 풀려고 히말라야 올라가는 거예요.
왜 보수파가 그렇게 교양 있느냐 하면, 돈 안 되는 인간들 다 떨어내서 그래요. 십일조 안 하면 나가. 집사 승진 안 시켜주면 나가란 뜻이에요. 십일조 안 하는 집안이 권사? 그 말은 돈 있는 집안만이 권사, 장로 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돈 있으니까 인격들이 대단하지요. 교양 있고 여유 있고 말을 해도 좋게 이야기하고. 십일조 한 달에 천 원씩 내야 백날 해도 장로 안 됩니다. 노가다를 장로 시키는 그런 교회가 어디 있어요. 당신이 될 때 얼마 냈어? 교회 교육관 지을 때 경제적인 보탬이 있어야 승진되지요. 제는 깜짝 놀랐어요. 요새는 교회에서 팀장 제도한다고. 교회가 팀장으로 돌아가 책임을 묻는다는.
그렇다면 본회퍼의 세속화는 뭘까요? 하늘나라를 쳐다보는 게 아니고 소위 떨어져나간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 돌리는 거예요. 기존에 보수적 기준으로 관심 돌리면 안 오지요. 그렇다면 기준을 바꿔야 되지요. 그 기준을 바로 본회퍼는 십자가로 본 겁니다. 에벨링이 초반에 불트만을 넘어서 루터의 영향을 받았다고 돼있는데 루터의 신학을 실제로 실천적으로 옮겼다고 소문난 누구냐 하면, 본회퍼에요. 미친놈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그걸 가만 두나? 운전대 뺏어야지. 그냥 본회퍼하면 최초의 세속화 신학의 아버지라고 보면 돼요. 그 사람이 간 곳이 교회가 아니고 감옥이었으니까.
그런데 실제로 본회퍼와 에벨링은, 이런 걸 설명하는 걸 제가 감사히 여기는데요. 다시 이야기합시다. 정치는 파워, 권력이 있어야 정치가 되거든요. 제가 서양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정치적 힘은 어디서 나오던가요? 식민지 정책이라든지, 금융자본주의의 초기가 유럽이잖아요. 이탈리아로부터 알프스를 넘어서 네덜란드에서 꽃이 피고 영국으로 건너가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가 활짝 핍니다.
정치는 경제 힘이죠. 그전에는 귀족이었는데 상공인으로 바뀌어요. 상공인은 무역과 산업을 통해서 돈/자본을 가진 거예요. 자본을 가진 자가 정치적인 힘으로 빼앗아 온 거예요. 전에는 신분제지요. 신분제도 그냥 되는 게 아니고 토지가 있어야 돼요. 토지는 고정적인 자산이잖아요. 그런데 무역은 주고받는 데서 이윤을 창출하는 거예요. 백날 토지 갈아봐야 가뭄 들면 완전히 다 망쳐요. 미국 초창기 이민자들이 누구였습니까? 아일랜드 사람들이거든요. 왜 건너왔느냐 하면, 가뭄 들어서 감자농사가 80%가 날아가 버렸어요. 19세기 초반에. 못 사니까 약속의 땅으로 간 거예요.
그전에 1600년대에 청교도가 지금 버지니아 쪽에 내려서 올라가죠. 인디언과 협상하고. 사실은 인디언을 속인 건데. 아메리카 대륙의 경작 방법은 인디언들이 노하우를 갖고 있었지요. 옥수수 등 작물농사법을 배운 거지요. 배우고 난 뒤에 인디언들을 다 죽였지요. 이게 자본의 힘입니다.
아무리 본회퍼가 세속화해도 세속 사람들이 못 살고 어렵고 교회 안 나오고 삐지고 나간 사람들이 마음속이 순수합니까? 이 사람들은 깨끗한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권력을 원해요. 그들은 자기가 해야 될 일을 생각 안 하고 내가 못 살고 몸이 아픈 것은 사회가 더러워서 내가 못 사는 거니까 어떤 위대한 영웅이 등장해서 날 잘 살게 하면 아낌없이 바칠게, 라는 노예근성, 거지근성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본회퍼가 말한 세속화할 때 대중들이 오해할 수밖에 없지요.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시는 게 아니고 낮은 곳에 오셨습니다, 라고 할 때 그들이 그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게 아니고 뭐로 받아들이겠어요? 그렇지, 이렇게 가난한 자를 내칠 하나님이 아니지. 여전히 앞서서 가는 엘리트와 동일한 심보로 빨리 엘리트 자리에 부자 자리에 앉게 해달라는 그야말로 세속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메시아 같은 그런 교회, 그런 정치꾼들을 원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정작 본회퍼가 이야기한 것은 그게 아니에요. 206페이지 위에서 열 번째 봅시다. [성경은 자기 스스로 해석한다.] 이게 바로 세속화에요. 인간들의 경제적 욕구, 정치적 권력 추구와 전혀 상관없습니다. 성경은 자기 스스로 해석한다. 그럼 이 말에 담긴 의미가 뭐냐 하면, 그 밑에 [성경주석과 교의학 사이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긴장]이라고 나와 있지요. 그게 바로 교리에요. 본회퍼 생각은 굉장히 간단하고 명쾌합니다.
제가 이걸 구호처럼 적어볼게요. 하나님과 관련해서 정확하자.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더럽다. 너 때문에 나 이렇게 가난하다. 남 핑계대지 말고 나는 하나님과 관련해서 정확하게 사느냐? 여기에 자기가 관심을 갖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게 하나님 보기에 정확하게 살아가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면 일반사람들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살기 바빠 교회도 몇 번 못 나가고, 기도도 10초면 끝나고, 헌금도 몇 푼 못했고, 위대하신 당회장님과 노회장님, 장로님들 정확하게 살고 있는데 우리는 못 살아요.” 이렇게 나올 거잖아요. 그게 교리란 말이죠. 그러니까 기존의 교리를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정확한 게 아니에요. 이유가 뭐냐 하면, 내가 어떻게 바르게 살려고 시도하면 정확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바르게 살려고 한다면 거기에 모범답안이 먼저 선점해 있기 때문에 그래요. 본회퍼는 모범답안을 없애버리라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사는데? 그 상황은 우리가 말씀을 지키는 게 아니고 말씀은 스스로 자기가 해석한다. 성경말씀이 그런 상황을 유발했고 성경 속에서 정답이 알아서 우릴 통해서 나온다는 겁니다. 에벨링의 주장이고 본회퍼의 주장입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의 모범답안을 당신은 어디서 참조했고 누구한테 들었습니까? 교회 목사들이 다 그렇게 하는데. 그걸 없애라는 거예요. 그게 바로 환상이고 가짜에요. 저 높은 곳을 향한 그게 잘못된 거예요. 당신이 사는 현장에 정답이 거기 있어요. 그 자리를 하나님이 밟았던 자리고 그 자리가 예수님이 오셨던 자리입니다.
그 뒤에 봅시다. [에벨링은 기독교 신앙이 지니는 세계적 현실의 연관성을 본회퍼로부터 이어받고 있다.] 신앙이 무엇과 연관돼있다? 세계적 현실의 연관성, 현실과 연관돼있다는 겁니다. 그럼 현실은 뭐냐? 신앙이란 말씀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라고 돼있지요. 이 말은, 그럼 신앙을 유발하는 것이 인간이란 말입니까, 말씀이란 말입니까? 말씀이죠. 인간은 반응물에 불과하니까. 말씀이 스스로 움직이는 반응 결과물이 신앙인이란 겁니다. 이게 본회퍼고 에벨링이에요.
그게 그 당시나 모든 시대에 새롭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뭐냐? 그만큼 우리는 교리에 둘러싸인 거예요. 보수파 교회에서 교리가 권위지요. 성경말씀이 교리를 만드는 게 아니고 성경말씀의 권위 있는 해석자들의 전통과 내려오는 신학체제, 교리들이 그동안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어긋나는 쪽으로 자기들만의 엘리트 단체를 만들어왔다. 그 단체가 바로 히틀러한테 투표한 거예요. 히틀러가 쿠데타 일으킨 게 아닙니다. 투표로 당첨되어 그 다음에 자기를 반대하는 야당들을 수용소로 보낸 겁니다. 친위 쿠데타지요.
그렇데 자신만만하게 야당들을 없앨 수 있는 이유는 일반 대중의 용인과 묵인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51%를 가지면 모든 걸 다 가진 게 되지요. 다수당의 횡포. 지금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이슈가 뭡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했던 모든 경제법이 다툼 때문에 실효성이 없어서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으니까 제발 새누리당에 표를 몰아줘서 과반수이상의 의석을 차지해서 나라가 잘되게 해달라고 지금 읍소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히틀러는 이미 그것을 실현에 옮긴 거예요. 그 당시 독일국민들이 히틀러 말만 믿고 표를 던졌겠어요, 아니면 히틀러에게 무슨 실적이 있어서였어요? 실적이 있었지요. 그게 바로 전쟁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본회퍼가 반발하는 거예요. 저 높은 곳이 아니고 오히려 좌파를 자처해서 저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은 대중들이 날 호응해서 기대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히틀러나 대중들이나 똑같아요. 세상 전반에 대해서 너희들은 하나님이 정확하게 이야기한 바를 모르고 있다. 성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을 정확하게 반응을 나타내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된다.
그 정확한 게 뭐냐? 정확한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이 없는 기독교. 신이 없다는 말은 본회퍼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냥 계시는 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돼요.
208페이지 봅시다. [기독자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에 속하면서 동시에 전적으로 이 세계에 속한다. 그리스도는 이 세계의 주이시며 그러므로 불경건한 자의 주도 되신다.] 신이 없는 기독교를 외쳤던 이유가, 그동안 하나님이 뭘 제거해버린 거예요? 실제로 정확하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성을 인간들의 교리에 속한 하나님이 그걸 감추고 덮어버리고 삭제시켜 버린 거예요.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동안 덮어왔던 뭘 벗겨내야 돼요? 신을 믿는 신 있는 기독교를(삼위일체 하나님이죠) 있음을 없음으로 바꿔야지요.
제가 예를 들 테니까 본회퍼의 취지가 어떤 내용인지 여러분 아시기 바랍니다. 총신에서 배웠던 개혁주의를 그대로 이야기하면서 한국교회는 썩었다. 목사들이 돈 밝히고 바람피우고 목사들이 섬기지 않고 갑 질해서 교회 키우려고 했으니까 그런 목사들은 개혁주의 신학에서 잘못됐다. 그래서 교회는 개혁돼야 된다. 교회가 주의 말씀대로 개혁주의신학으로 돌아가서 목사는 바른 말씀 전하고 장로는 섬김이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주장이 본회퍼와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르지요.
방금 이야기한 총신 나와서 개혁주의 했다고 했을 때 이상적인 교회를 버린 거예요, 추구하는 거예요? 추구하죠. 본회퍼는 그게 아니라니까요. 이제 본회퍼의 사상을 알겠습니까? 이상적인 교회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그 이상적인 교회를 이상화시키기 위해서 뭘 내치겠습니까? 이상적인 교회 상 자체가 교리가 돼버려요. 교리가 되면 소위 정말 제대로 한 사람이 전통과 권위에 도전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제거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왜냐? 기존에 하는 것이 이상적인 교회를 추구하는 엘리트들이 모였기 때문에 거기에 안 맞는 것은 제거해야 되는 거예요. 질서 위반자로 간주해서.
총신 나와서 개혁주의 공부 잘해서 한국교회는 썩어서 개혁해야 돼. 그래서 바른 교회해야 돼, 하는 생각이 본회퍼 생각과 같습니까? 다르지요. 본회퍼는 교회가 중심이 아니고 말씀이 중심인 거예요. 말씀이란 본회퍼 책을 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말씀이 현실 세계에서 구체화되게 되면, 바로 이 세상에 불경건한 자와 경건한 자 모두의 주가 되기 위해서 이 땅에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미움 받아, 상처받아 배척받으신 그분의 말씀의 활동성, 지금 활동성이 말씀의 활동성과 일치되고 어떤 이상화된 교회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 구석구석 십자가 정신이 살아서 파급을 일으키고 그 반응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성도라는 것이 본회퍼와 에벨링의 사상입니다.
208페이지 중간 이후에 [이 양자가 만나는 장소는 ‘양심’이다. 양심 때문에 세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 없이 신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그러니까 양심이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고 있다는 겁니다. 이 말은 양심대로 측정하거나 판단하거나 남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본회퍼의 히틀러 제거작전이 일반적인 윤리, 도덕에 어긋난다는 기준 자체를 본회퍼는 거부하지요. 왜? 쉽게 말해서 본회퍼가 기존의 목사들아 나도 한 양심하거든요. 너희들이 말하는 살인하지 말라는 말을 나도 알거든. 하지만 미친 인간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빼내야지 거기에 자기 착한 양심을 유지하면서 저러면 안 되는데, 하고 말만 해야 되겠어, 아니면 직접 폭력을 써서 히틀러를 그 자리에서 내려야 하는지, 그 당시 독일교회에 묻는 거예요.
여러분 답변 듣고 쉽시다. 그냥 말만 할까요, 안 그러면 폭력과 테러를 하더라고 그 자리에서 끌어내야 그 상황에 맞는 주의 뜻인지? 말만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지 양심 자랑하는 게 옳으냐 이 말입니다. 답변 없으면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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